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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평]고향의 개울물은 오늘도 소리내여 흐른다
2019년 07월 19일 09시 46분  조회:406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고향의 개울물은 오늘도 소리내여 흐른다

김경화

 

고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가 개울물이다. 알알이 모래알마저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개울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손가락 하나 쯤 뻗어 물 속에 담그어보면 그 시린 온도에 주춤하곤 했다. 그것도 잠시 다시 손 전체를 넣어보면 그 기분 좋은 청량함에 머리 속까지 맑아지곤 했었다. 들여다보는 돌멩이가 물 안에서 손을 뻗쳐 만져보는 돌멩이와 형태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는 걸 알아가면서 나는 나이를 먹고 성장해갔다. 언제나 거기에 그렇게 그 모습으로 있을 것 같아서 기분 좋고 세상이 다 변해도 그것만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 든든한 존재, 고향의 개울물은 내게 그런 것이다.

그 개울물을 닮은 사람이 있다. 한없이 순수하고 투명해보이는 사람인 듯한데 한발 다가서보면 엉뚱함이 불쑥불쑥 튀여나오고 장난기 다분한 사람, 조용하고 말수 적은듯 보이지만 친해지면 정말 재밌는 사람, 오래 들여다보고 깊이 있게 알아야 비로소 보이는 사람, 언제라도 떠올리면 기분 좋은 사람, 내가 본 소설가 조원은 그런 개울물 같은 사람이다. 나이로 보나 문단데뷔로 보나 나한테는 훌쩍 선배지만 전우씨 하고 부르며 시시한 롱담을 무랍없이 할 수 있는 사람, 굳이 “이건 비밀로 해주세요.” 하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 없는 사람, “이런 말 해도 되나요?” 하고 조심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소설가 조원은 내게 그런 친구이다.

계기라는 게 있다. 사람을 만나게 되는 계기, 사물을 만나게 되는 계기. 그건 어떤 계시이기도 하다. 델 것 같은 해볕이 아스팔트를 녹이던 그 여름, 나는 기차를 타고 서너시간을 달려 대구로 갔다. 회사에서 야간근무를 하면서 심신이 많이 지쳐있던 때였다.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걱정거리도 많던 시기였다. 나는 숨을 쉬고 싶었다. 그러다가 소설가 조원을 만나기로 했다. 특별한 리유가 있는 건 아니였다. 그를 만나면 뭔가 숨이 쉬여질 것 같아서도 아니였다. “언제 한번 만나 식사나 합시다.” 하는 서뿌른 약속을 한 지도 오래됐고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갈 데도 마땅치 않던 차에 소설가 조원이나 만나 롱담처럼 했던 약속이나 지켜보자 한 것이였다. 어쩌다가 한번 쉬였던 그 주말, 짧지 않은 거리를 기차를 타고 헐금씨금 달려갔다. 대구기차역에 막 내려 주위를 슥 돌아봤다. 그 낯선 기차역 한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드나들고 렬차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시끄러운 그 속에 언제나처럼 말라있는 그가 소년처럼 천진한 미소를 머금고 쭈볏거리며 서있었다. 《도라지》잡지에서 청년작가작품집 출간식 행사를 하던 때 한번 봤으나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초면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생경함, 서먹함, 이런 것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기차에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일가 아니면 머쓱하게 웃으며 서있을가 하면서 그의 모습을 예상해봤던 나한테 그의 그런 모습은 의외였다. 나는 그의 그 순수함 가득한 미소에 그냥 풉 하고 웃어버렸다.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할 법한 서먹함이 그 기차역 지붕을 뚫고 저 하늘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버리는 순간이였다.

그 날, 해볕이 너무 뜨거워서 나는 그한테 몇번이고 “오늘 날씨 몇도라 했죠?”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마다 그는 차분하게 대답해주었다.

“36도라네요. 덥죠? ㅎㅎ”

참 인내심 있는 사람이구나. 그에 대한 내 첫인상이였다.

그 날, 우리는 두피가 빨개지고 피부가 익는 게 아닌가 걱정하면서도 신나게 돌아다녔다. 너무 뜨거워 걷다가 멈춰서 음료수로 목을 추기고는 다시 또 돌았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방천시장, 이상화고택, 마치 돌아다니기에 굶주린 사람들처럼 우리는 그 날 열심히 돌아다녔다.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돌아다니면서 “맞아요, 그러니까.” 하고 맞장구를 쳐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뜨거운 한여름, 한국에서도 가장 뜨거운 대구의 여름, 그 대구의 여름중에서도 그 날은 가장 뜨거운 날이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기억은 내게 떠올려보면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아마 그가 풍기는 좋은 에너지 때문이였으리라.

많은 아픔을 겪었음에도 그는 순수함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 우리가 소설에서 추구하는 것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작가도 비슷하다는 공통점을 찾아내고 나서 그는 아이처럼 신나했다. 그는 좋은 것, 즐거운 것들만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우리는 서로 무심한 척 상대방의 아픈 곳을 외면하며 최대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아파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배려였다. 나는 그게 너무 다행스러웠고 편했다. 그는 적절히 거리를 두면서도 선배답게 진심어린 충고와 위로를 잊지 않았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으며 말 한마디도 례의에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깍듯이 나한테 존대말을 했으며 행동 하나에도 신중하고 조심하는 성격인 듯했다. 허황한 것을 바라지 않으며 온전히 땅에 두발을 딛고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진중하고 바른 사람, 변하지 않고 믿을 만한 사람, 내가 그 날 그에게서 받은 인상이였다.

그 만남 이후, 우리는 한동안씩 련락을 안하다가도 위챗으로 한참씩 주절주절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소설에 대한 견해를 나누고 요즘 읽는 책에 대해서 말하곤 했다. 어쩌다 쉬는 주말이면 가끔 일정을 잡아 문화기행이네 하면서 한곳씩 정해서 구경하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그런 만남은 우리에게 그 상황에서 부릴 수 있는 사치였고 숨을 쉬는 어떤 통로였다. 교대근무를 하는 와중에도 그는 틈틈이 책을 읽고 소설을 쓴다고 했다. 나한테도 소설을 쓰라고 부추겼다. 도저히 몸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피페해있던 때인지라 나는 그의 그런 에너지가 다만 부러웠다. 지금은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다고 푸념하듯 털어놓자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럼 쓰지 마요.”

그는 알았을 것이다. 그 때의 내 상황에 꼭 맞는 답이 어떤 것인지를 말이다. 도저히 할 수 없을 때는 하지 않는 것, 가끔은 다 내려놓을 줄도 아는 것, 그는 내게 그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 같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불평 없이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시시하거나 재미없지 않은 건 일상의 재미를 알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서이다. 출퇴근길에 무심히 지나쳐도 좋을 소소한 풍경 하나하나가 모두 그의 즐거움이 된다. 그는 날씨가 맑으면 감탄하고 어느 고물상 울타리 안의 항아리가 정겹다고 은근슬쩍 침범해들어가 사진을 찍는 엉뚱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소주 한잔의 여유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술을 가까이 안하는지라 함께 술을 마셔보진 못하고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은 있다. 술 한잔 들어가면 그는 즐거워한다. 기분도 좋아보이고 수다스러워진다. 알 수 없는 횡설수설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귀 기울여 들어보면 왠지 그럴듯해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러다가도 나중에 만나면 언제 그랬나 싶게 다시 아닌 보살을 한다. 소설가 조원의 인간적인 구석이다.

내가 십년 가까이 되는 한국생활을 접고 귀국할 때 그는 가끔 만나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를 잃었다고 내심 아쉬워했다. 돌아가면 건강에 주의하고 소설 쓸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다. 돌아와서 소설을 썼을 때 나는 첫 사람으로 그한테 자랑했고 그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나도 쓸래요.” 하고 질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돈이나 벌어요, 소설은 내가 쓸 테니.” 하고 견제했는데 이렇게 또 《장백산》에 톱으로 나간단다.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나한테 작가평을 써내라고 협박한다. 못 말리는 친구 같으니라구. “나도 작가평을 쓰게 해줘요. 이미 다 생각했응께.” 하고 은근히 나한테 《장백산》에 톱으로 나갈 만한 소설을 써내라고 협박한다.

“왜 소설을 써요?”

그에게 물은 적 있다.

“저한테 소설은요, 자기 구원이랄가. 저한테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요.”

그가 하는 말이였다.

그는 또 한번 스스로를 구원한다. 일상의 지루함과 따분함으로부터 자신을 건져올리고 있다. 자기 스스로를 놓지 않는 이상 그는 소설을 쓸 수 밖에 없는 사람인 듯하다.

얼마 전, 고향에 갔었다. 십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내 고향의 개울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촐촐촐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그 개울물에 손을 담그고 나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 조원을 떠올렸다.

밝은 가을해살이 찬연하게 대지를 고루 비추고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가을날씨였다. 나는 저 멀리 대구의 하늘 아래에서 오늘도 자신의 삶에 열정을 다하고 있을 그의 행복을 빌어보았다.

출처:<장백산>2017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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