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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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평]<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에 대한 미니멀리즘적 분석
2019년 07월 18일 09시 08분  조회:271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에 대한 미니멀리즘적 분석

김경훈

 

1. 들어가면서

이번 호에 독자들 앞에 놓여진 박초란의 소설은 <나는>라는 중편이다. 제목을 접하는 순간, 어딘가 충격적인 듯한 짜릿함이 들었으나 읽어내려가면서 쭈욱 느꼈던 것은 미세하다 못해 자잘한 조각들이 선별 없이 가루처럼 쌓여가는 무의미하고 지루한 텁텁함이였다. 하지만 결말에서 마치 제목을 귀띔하는 듯한 한마디에서 다시 그 짜릿함이 돌아오고 내 머리 속에서 메아리치면서 그냥 지루하고 별 의미가 없는 내용은 아니라는 강한 부정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이 소설을 들여다보게 되였다. 그 순간, 내게는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두개의 사건과 그 사건들보다 더 중요한 두개의 의미층이 차례로 다가왔다. 

 

2. 버리기를 일삼는 ‘그녀’

소설의 서두에는 녀자주인공의 엄마가 개발로 집안의 물품을 잃어버린 사건부터 다루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엄마가 알뜰히 챙겨넣은 송이버섯된장이며 직접 지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달인 간장이며 아끼던 크고작은 오래된 독과 단지들이며 천정에 두렁두렁 달아두었던 말린 명태와 고사리와 버섯들이며 항아리마다 가득했던 콩과 옥수수와 쌀들, 이외에도 한쪽 창고에 가득 장져놓았던 장작들과 석탄무지며 엄마가 장보러 갈 때면 쓰던 작은 끌차와 온갖 도구들, 남김없이 사라졌다. 엄마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 외에도 미처 기억 못한 것들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엄마의 손때가 묻은 것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엄마의 기억 자체를 지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엄마한테 자신의 그림자나 다름 없는 지난날이 저런 물품과 함께 사라졌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안타까운 일이였을가. 하지만 이 소설에서 작가가 주목하고저 하는 것은 그러한 ‘잃어버린 사건’이 아니다. 작가는 동네를 개발하면서 부주의나 무관심으로 발생한 ‘잃어버린 사건’ 자체보다는 엄마의 딸인 녀자주인공에게서 나타나는 ‘물건 버리기’증세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기 위해 장치로 ‘잃어버린 사건’을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 버리기로 작정한 것은 곰인형이였다. 그런 곰돌이인형이 왜? 왜! 집안에 있는 건지 한참을 생각했다. (중략) 넌 어데서 왔니? 인형 같은 걸 사들인다는 건 결코 내게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였다.”

 

친구가 막무가내로 맡긴 쏘파 밑에 숨어있던 곰돌이인형을 시작으로 녀자주인공은 주방양념을 버리고 소나무원목상까지 버리려고 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접시, 숟가락, 전기밥가마, 책, 옷가지 등등을 버린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엄마가 잃어버린, 어쩌면 빼앗긴 물건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화가 날 정도로 아까워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왜 전기밥통까지 닥치는대로(?) 버리려고 하는 걸가?

 

3.  줏기를 일삼는 ‘그 남자’

이 소설은 사실 사건중심이라기보다는 사건을 통한 주인공의 느낌이나 생각이 중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보아왔던 ‘버리다’란 사건과 함께 이 소설의 또 다른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 ‘버리다’의 반대가 되는 ‘줏다’이다. 

 

“이번에는 그는 곧장 문을 열고 한달음에 쓰레기통 앞으로 달려나간다. 그리고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그는 곰인형을 집어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뭔가 비밀스러운 작전이라도 치른 듯 그의 별로 뜨거워진 적 없는 심장이 툭툭툭 소리를 낸다. 그는 화장실 개수대 안에 곰인형을 던져놓고 화장실문마저 꽁꽁 닫아놓고 나서 거실로 나와 하나 밖에 없는 방석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로서도 자신의 방금 한 행동을 리해할 수가 없었다. 굳이 남이 버린 곰인형을 주어와야 될 리유 같은 걸 죽었다 깨도 찾아낼 수가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 ‘죽었다 깨도 찾아낼 수가 없는’ 리유도 모른 채 남자주인공은 계속해서 녀자가 버린 노트며 지어는 내용물이 무언지도 모르는 종이봉투까지 주어들인다. 물론 이웃집 녀자의 저러한 물건들을 분별 없이 주어들이는 행위는 일종의 가벼운 증상의 련물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지만 소설은 그러한 일차적인 범위에서 이야기를 끝내지는 않는다. 그것은 약간 황당하게 느껴지기는 하나 남자주인공의 이름에서 비롯되는 어쩌면 운명적인 것에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이름은 박수남이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딱 학교 다니기 전까지만 그렇게 불렸다. 학교 다닐 나이가 되여서야 호구부에 박수납이라고 적혀있다는 걸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등록처의 직원의 실수로 나의 이름은 박수남이 아닌, 박수납이 되여버렸다.”

 

‘수남’이 아니고 ‘수납’이라고 했으니 박수남이라는 남자주인공은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직원의 실수로, 더 적절히는 작가의 알면서 모른 척 한 실수 아닌 ‘실수’로 녀자주인공의 물품을 수납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남주인공의 그러한 련물증은 사실 작가에 의해 교묘하게 배치된 ‘규정된 동작’으로 행위의 저 끝자락에는 녀자주인공과의 사랑의 인연이란 푸르고 빨간 색실에 이어지고 있음을 이 작품을 끝까지 읽어본 독자라면 대개 알아차리고도 남을 일이기도 하다.

바로 저러한 ‘수납’, 적절히는 수집 행위를 거듭하면서 남자는 녀자의 취미에서 성격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그는 처음 그녀의 곰인형을 집어 들여오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 때부터였을가? 그는 인연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무섭지도 않았던 걸가? 그는 궁금해지기도 한다.”

 

4. 자기를 버리려고 하는 녀자

소설 속의 녀자주인공은 그러면 왜서 물건을 버려서 집안을 비우려고 하는 걸가? 

 

“버리기를 시작한 지 이제 일주일, 나는 집안을 모조리 비우고 텅 빈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여러 나라를 돌면서 사들였던 기념품들과 아빠트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거라고 믿고 있었던 그 모든것들을 비워내고 싶어졌다. 그것은 그것을 사들일 때와 비슷한 열정의 무게로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그즘 나는 조금 랭정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어떤 리유를 불문하고 그 어떤 열정이 일렁인다는 건 내가 알 수 없는 어데론가 무분별하게 흘러갈 수가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녀자주인공은 그러한 물건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든 간에 그것들에 휘둘릴 것에 가장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물건들에 인위적으로 씌여진 이름이나 값어치들 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괜시리 여러겹으로 들씌워진 터무니 없는 찬양과 목소리들이 녀자주인공을 꼼꼼히 감싸고 무겁게 지지눌렀을 것이였다. 사실 요즘 들어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적인 문제중 하나가 물질이나 금전에 대한 과욕이라고 할 때, 그러한 거대한 욕심의 덩어리에 치여진 순수한 인간성이 어떤 꼴로 버려져 있는지는 지성이 조금이라도 살아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이지러진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소설 속의 녀자주인공이 물건의 값어치보다는 자기만의 공간을 먼저 고려하면서 버리기 시작하는 행위는 처음에는 매우 개성적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상한 행위로 비칠지는 몰라도 사실 그 뒤면에는 저러한 현대인들의 물질을 향한 배금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물건을 버리는 녀자주인공을 보여주기 시작하던 데로부터 나중에 소설의 제목에서 그 주인공이 스스로까지 버리고저 한다고 알려주는 작가의 속셈에는 현대의 찌들어가는 인간의 물욕과 기타 현대병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녀자주인공은 자기를 버림으로써 자기 머리 속에 내재되였던 그러한 현대 바이러스를 깨끗이 비워내고 자기만의 순수와 개성의 진정한 삶의 공간과 시간을 되찾자고 한 것이였다.

 

5. 자기를 잠재우려는 남자

소설의 남자주인공은 괴이한 수납벽이 있어서 녀자주인공을 당혹하게 만드는 한편 가끔 예고 없이 잠이 들어버리는 기면증을 앓고 있어서 놀라게 만든다.

 

“이양이 계산을 하는 새 그는 카운터에서 한발 물러선 채 깜빡 존다. 까무룩 잠 속에 빠져드는 순간, 매번 그는 내가 지금 자고 있구나, 확인에 재삼 실패한다. 그 순간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마저도.”

 

기면증이란 일상생활 중에 발작적으로 졸음에 빠져드는 수면장애로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작품의 남자주인공은 저러한 기면증에 가끔 빠져 자전거를 타면서 졸고 졸업시험 때 시험지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첫 데이트에 나가 녀자 앞에서 졸기까지 한다. 병적인 증상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비우고 버리려고 하는 녀자주인공과 비교해 보면 사실 비슷한 의식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녀자주인공이 물건을 버림으로써 자기 의식 속에서 과잉됐거나 조종되고 있는 부분을 버리고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되찾으려 했다면 남자주인공은 그 녀자주인공이 버린 물건을 수집함으로써 녀자를 느끼고 알아가면서 잃어버렸던 남성의 정체성을 되찾으려 한 것인데 기면증은 말하자면 이지러진 현실을 잠시 도피하고 자기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획득하는 수단인 셈이다. 

기면증은 어쩌면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외부세계와 철저히 차단함으로써 내부의 억압된 목소리를 비로소 들을 수 있다는 작가 나름의 소설적 장치가 아닐가. 자기를 잠재움으로써 남자는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결말에서 녀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향해 힘겹게 물어보는 말마디는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의미가 깊게 느껴진다.

 

“혹시 모다피닐을 드세요?”

 

6. 나오면서

<나는>라는 중편소설에서 녀자주인공이 보여준 여러가지의 ‘버리기’는 결국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 행위 다름이 아니다. 

‘미니멀 라이프’란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면서 적게 가지는 대신 삶의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고 거기에 의미를 두는 생활방식을 말하는데 이러한 삶의 방식은 갈수록 물질과 금전에 더욱 집착해가는 현대인의 고질병이 더욱 우심해가는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녀자주인공이 버리려고 했던 것은 소설적 사건만으로 보면 여러가지 물품이지만 녀자주인공과 그녀를 둘러싼 남자주인공의 행위를 함께 생각해볼 때, 녀자주인공은 결국 자기의 의식 속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인간들 속의 저러한 현대인의 고질병을 송두리채 버리려고 몸부림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서두의 부분에서 녀자주인공을 괴롭혔던 쏘파세트와 운명적으로 도적질하다 싶이 남자주인공에게 선물한 이양의(?) 전기밥가마 등등이 이 점을 말해줄 것이다.

사실 이 소설 속의 녀자주인공이 추구했던 ‘미니멀 라이프’의 삶의 방식은 지극히 개성적이면서도 앞으로 우리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미래지향적인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왜냐 하면 그러한 삶의 방식은 지극히 자연친화적인 순수한 인간성의 발현에 기초하고 현재의 우리 뿐만 아니라 이후의 세세대대를 위한 진정한 행복에 잇닿아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소설의 제목과 련관시켜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버림으로써 참되고 순수한 우리로 다시 태여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끝으로 이 소설에 대해 부언한다면 주인공의 단순하면서도 의미가 깊은 ‘미니멀 라이프’의 삶에 대한 추구를 좀더 다양한 시각에서 립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작가가 취한 여러가지 시점(1인칭과 3인칭)은 긍정할 만한 노력이나 작품의 구성적인 측면에서 좀더 긴밀하고도 미끈한 련관과 흐름으로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점은 작품의 결말에 어느 정도 긴장하면서도 흥미롭게 ‘이양’이라는 인물과 주인공들과의 관계가 해명이 되고 그동안 따분한 듯이 느슨하게 흘렀던 소설의 수평적인 흐름이 순간적인 탄력을 받아 수직적으로 주제를 향해 치솟는 느낌과는 너무나 비교되여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출처:<장백산>2017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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