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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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장편소설 《진허》(3)
2013년 09월 11일 11시 27분  조회:1053  추천:0  작성자: 김극민
 
축구장 절반만한 공지에 판넬, 오비끼, 삿보드, 철아시바 따위들이 저마끔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모두 건축공사장에 임대하여주는 기재들이였다. 연변에서도 이전에 집을 지을 때 “아시바”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지금은 “쟈즈”란 한어로 통하는것 같고 “각목”을 일본말로 “오비끼”라고 부르는 늙은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오래전에 모두 저세상으로 가버렸을것이다. “삿보드”란 세멘트바닥을 만들 때 밑에 받치는 쇠기둥일것이고 판넬이란 세멘트벽이나 기둥을 조성할 때 형틀로 쓰일것이다. 판넬은 철판으로 된것도 있고 나무합판으로 된것도 있었다. 규격도 크고작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판 넬무지만 해도 공지의 절반을 차지하고있었다. 판넬이란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일가? 영어인가? 일어인가? 아니면 판대기나 널이라 하여 한국말로 “판넬”이라고 부르는것일가… 젠장, 한국말이든 외국말이든 나하구 무슨 상관이람? 내가 여기서 얼마나 일하겠다고…

건축공사장에서 실려오는 판넬은 성한것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철판판넬에는 세멘트가 덕지덕지 달라붙었고 나무판넬은 구멍이 뚫리지 않으면 가름대가 부러져 너덜거리였다. 일용직들은 거진 판넬수선에 달라붙었다. 망치로 철판판넬의 세멘트를 까고 기름칠을 해서 규격에 따라 쌓아놓고 나무판넬은 합판을 갈아대거나 가름대를 바꾸었다. “아우”가 전문 나무판넬을 수선했다.

준이는 곽씨와 함께 각목을 정리했다. 아무렇게나 부려놓은 각목들에는 대못들이 줄줄이 박혀있어 먼저 못을 뽑은 다음 한곳에 정연히 세워놓아야 했다. 곽씨는 못을 뽑는데 들어가선 그야말로 달인이 다된 사람이였다. 6메터짜리 각목을 번쩍 들어 받침대에 올려놓고는 길다란 못뽑이 두자루를 량손에 갈라쥐고 팔을 이리저리 몇번 움직이면 못들이 번쩍거리며 공중에 튕겨오르는데 그 잽싼 솜씨가 마치 옛 장수 쌍칼 쓰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준이는 못뽑이 두자루는커녕 한자루 쓰기에도 힘에 부쳤다. 혹간 옹이에 박힌 대못을 만나면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야 했다. 누가 목을 조이기라도 하듯 “끼익―” 소리가 절로 나오고 항문이 조여들대로 조여드는것이였다. 그가 이런 본새로 각목 한대를 가지고 씨름하는 동안 곽씨는 벌써 너덧대를 수월히 해제끼는것이였다.

20일전, 준이가 처음 판넬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박사장은 그의 월급을 80만원으로 정했다.

“아니, 직업소개소에서 90만원이라고 해서 왔는데요?”

“80만원이우. 일하는걸 보면서 10만원 더 올리든지… 교원이라더구만?”

“누가 그럽데까?”

“소개소에서…”

“젊었을 때 노가다판을 돌아다니며 못해본 일이 없는데…”

박사장이 코웃음쳤다.

“손을 보면 일할 사람, 못할 사람 다 아우. 교원인데는 뭐라우? 몽골대사관 사람두 여기 와서 일했구 산동대학의 교수도 여기 와서 일했다니까… 아따, 싫으문 다른데루 가시든지…”

소개소에서 월수입의 10퍼센트를 먼저 납부하라고 하여 9만원을 이미 떼운 판이다. 그대로 눌러있을수 밖에 없었다.

곽씨는 사흘전에 여기로 왔다. 그는 20년 동안 전국의 판넬이란 판넬은 거진 돌아다녔다면서 흥정할 여지조차 없다는듯이 일당 7만원을 요구했다. 박사장은 두말없이 동의했다. 곽씨가 걸싸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준이는 자기가 “80만원짜리”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박사장의 계산은 괜한 주먹구구가 아니였던것이다.

에누리없는 하루 12시간 작업이였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약 10분간의 새참시간과 점심시간 한시간을 내놓고는 줄창 손발을 놀려야 했다. 6월 초순인데도 태양은 삼복철의 열기를 내뿜어서 가만히 서있는 사람이라도 숨을 헐떡거릴 지경이다. 적삼은 땀에 흠뻑 젖어 잔등에 달라붙고 초모자밑으로는 콩알 같은 땀방울이 줄쳐 떨어진다.

한국에 와서 처음 남동공단으로 출근했던 일이 떠올랐다. 전문 고급주전자를 생산하여 외국에 수출하는 업체였다. 1층에서 반제품이 흐름선을 타고 올라오면 2층에서 연마, 열처리 등 몇가지 공정을 거쳐 완성된 제품을 포장까지 했다. 10여명의 녀공들이 포장작업을 했는데 그녀들은 길다란 탁자에 마주앉아 주전자에 손잡이를 달고 뚜껑을 맞추고 몸체를 닦고 상표를 붙이고 비닐봉투를 씌워 작은 박스에 담았다. 준이는 작은 박스를 큰 박스에 포장하는 일을 맡았다. 먼저 차곡차곡 접혀진 큰 박스를 손으로 벌림과 동시에 발로 툭 차서 함을 만들고 작은 박스를 한번에 세개씩 모두 열두개를 집어넣는다. 뚜껑을 닫고 테프로 봉해서 곁에 있는 벨트에 올려놓으면 그것이 3층으로 올라가는데 일거수일투족이 신속하고 민첩해야 했다. 조금만 주춤거려도 작은 박스가 무더기로 쌓이면서 앞에 앉은 녀공들이 빨리 치워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들의 작업도 덩달아 지체되기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잔업까지 하고나면 하루 열두시간 일하는 셈이다. 20일간 일하면서 공장로동이 무척 가혹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와보니 어이쿠! 자기가 사람이 아니라 역축처럼 느껴진다.

그는 원래 돈이나 벌려고 한국에 들어온것이 아니였다. 이태전부터 안해가 한국에 와서 가정부로 일하고있었고 그는 집에서 놀고있었다. 퇴직을 했으니까 노는것처럼 보였겠지만 기실 무의미하게 허송세월을 한것은 아니였다. 책도 읽고 그림도 구상했다. 무슨 공리적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한테는 취미이고 향락이기때문이였다. 년초에 딸의 성화에 못이기여 친척방문비자를 내여 한국에 왔다. 한달이란 체류기간이 눈깜짝할새에 지나갔다. 그대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딸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좀더 눌러있기로 하고 정직하게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3개월 연장수속을 했다. 연장기한이 끝나면 월드컵이 오라지 않았다. 젠장! 한국에 왔다가 월드컵도 구경하지 않고 돌아갈수 있는가? 그는 불법체류를 강행하기로 마음 먹고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던것이다.

“아저씨, 아저씨는 못을 뽑지 말구 합판이나 정리하시우. 지게차가 드나들수 있게 이쯤에다…”

박사장이 어느새 그의 뒤에 와있었다.

“그렇게 하지요.”

준이는 못뽑이를 내던졌다. 여기저기 널려있거나 각목밑에 끼워있는 합판을 빼내여 질질 끌고 다니면서 한곳에 쌓아놓는 일은 별로 힘들것도 없었다. 박사장이 인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는 의도였는지 아니면 늙은 교사가 땀벌창이 되여 일하는것이 보기에 안스러웠는지 몰라도 아무튼 쉬운 작업을 하라니까 고마왔다.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아우”의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새참이다. 새참!”

준이는 사무실쪽을 바라보았다. 사장부인의 은회색승용차가 마당에 들어서고있었다. 날마다 이때쯤이면 사장부인은 읍에 가서 새참거리를 사오군 했다.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자지러지고 여기저기서 인부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 마치 양계장의 닭들이 모이 주러 나오는 주인을 보고 활개치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새참은 빵 하나에 우유 한통씩이였다. 각목을 세워놓은 곳에 그늘이 져서 준이와 곽씨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저쪽에서 일하던 리씨가 핸드폰을 귀에 대고 걸어왔다.

커피를 주문하는 모양이였다. 곽씨가 얼굴의 땀을 씻으며 말했다.

“아저씨, 얼굴색이 말이 아니구먼, 엊저녁에 술을 그렇게 마셨으니 탈이 아니 날리 없지. 쯔쯔…”

“자넨 노가다판에서 엉망으로 취해본적이 없는가?”

“나라구 왜 취한적이 없겠수, 한 10년전인가, 광주 판넬에서 사장님하구 술 마시구 트레일러에 올라앉았다가 산굽이에서 나떨어졌는데… 뒤에 따라오는 차가 없은게 다행이지… 그후부터 어떤 경우든지 석잔 이상 초과해본적이 없다니까…”

“믿을수 없어. 막일하는 사람이 술 모르구 어떻게 사나?”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수? 생각 좀 해보시우, 마누라두 딸년들두 나 하나만 믿구 사는데 내가 덜컹 잘못되문…”

리씨가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때를 잘못 만나 림시로 여기 와있지만 형은 평생 이런노릇을 한다는게 지겹지도 않아? 왜 젊었을 때 일찌감치 아무 기술이나 배워두지 그랬어?”

“난 원래 머리 쓰는 일엔 질색이야. 이 일이 뭐가 어째서? 그래두 20년 동안에 마누라한테 가게 두개를 마련해줬구 딸 둘은 서울에서 공부시킨단 말이야.”

한국에도 이렇듯 순진한 사람이 있단 말인가? 준이는 마치 연변의 두메산골에서 소꼴이나 베는 젊은이를 보는듯 친근한감을 느꼈다.
“아침에 여기를 때려치우구 가겠다더니 정말 갈 셈인가?”

“가지 않구, 여기서처럼 먹구는 배기지 못한다니께… 괜히 몸을 망가뜨리면 어떡할라구…”

그들이 새참을 다 먹자 “아우”가 다가왔다.

“형, 나 담배 한대 주우.”

준이가 담배갑을 열어보니 두가치밖에 없었다.

“자네 줄거 없어, 한대뿐이야.”

“두대구먼, 형제간에 사이 좋게 나눠피우기우.”

녀석은 거의 빼앗다싶이 담배 한대를 꺼내가졌다.

준이는 눈결에 길건너마을 “우곡정사”앞에 승용차 한대가 멈춰서는것을 보았다. 비록 가까운 거리는 아니였지만 부인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리고 주인인듯한 사람이 대문안으로 모셔들이는것을 알아볼수 있었다. 준이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아우”에게 물었다.

“저 ‘우곡정사’의 스님은 어떤 사람인가?”

“늙은 사기군이지 뭘 그래?”

“이 사람, 아무리 막일하는 사람이라구 말조차 막말하문 안돼.”

“형 뭘 안다구 그래? 저앞 논답이 절반은 우곡이네 소유라구. 땅투기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야.”

“중이라면 념불이나 해야지 그런짓을 해도 되나?”

“아따, 그보다 더한짓도 할라니.”

택시 한대가 공사장에 들어서더니 한 아가씨가 보따리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리씨가 손짓을 하자 아가씨가 종종걸음을 쳐왔다. 엊저녁에 술심부름을 왔던 배달아가씨였다. 아가씨는 보자기를 펴놓고 일회용커피잔 네개를 내놓았다. 그녀가 엉덩이를 들고 커피를 붓는 사이에 “아우”의 손이 마치 처마밑의 새둥지나 들추듯 그녀의 치마속으로 불쑥 들어갔다. 아가씨가 징그러운듯 그 손을 뿌리쳤다.
“이러지 말아요.”

“아우”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커피잔을 손에 들었다. 곽씨와 리씨는 그런 일은 자기네와 상관 없다는듯이 잠자코 커피만 마셨다.

아가씨는 리씨한테서 돈 3천원을 받아가지고 택시 있는 곳으로 종종걸음을 쳐갔다.

새참이 끝나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일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사무실쪽에서 박사장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다 바라가! 가란 말이야! 일당을 그대로 계산해주겠으니 냉큼 꺼져버리라구!”

일용직들이 그늘밑에서 꾸물거리며 새참시간을 초과했던것이다.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이쪽에서 목공작업을 하던 “아우”는 연신 사무실쪽을 바라보며 못을 박지 않으면서 헛망치질만 탕탕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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