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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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장편소설《진허》(8)
2013년 10월 24일 16시 15분  조회:1419  추천:0  작성자: 김극민
 
8
 
!
- 칭-
쾅칭 쾅칭 쾅칭 쾅칭… 쾅쾅칭칭 칭칭쾅쾅…
따르륵 딱!
- 칭-
!

악사석에서 터지는 징소리였다. 쾅쾅할 때마다 그는 혼이 날아나고 몸이 부서지는듯했다.

무대우에 경극배우가 나타났다. 야단스러운 무늬가 돋친 의상을 입고 등에 령기(令)를 줄느런히 꽂고 상투적인 동작으로 창을 휘두르다가 문득 멈추고는 “이이아아―” 하며 곡조를 뽑는다. 악사석의 깽깽이잡이가 골을 내저으며 신나게 깽깽이를 켜대고 징잡이는 또 징을 치려는듯 팔을 추켜들었다. 다시한번 “쾅!” 소리를 들었다가는 아예 정신을 잃고 뻐드러질것 같았다. 그는 대뜸 귀를 막고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함께 들어왔던 동네애들이 보이지 않았다. 관중석에는 늙수그레한 한족 할아버지, 할머니들뿐이였다. 그는 부리나케 출입구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밖에 나서니 밤이였다. 웬 일이야? 금방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대낮이였는데… 동네애들과 함께 소극장 문앞에서 놀다가 문표를 받는 사람이 없으니 들어오지 않았던가.

여기는 진학가두로서 한족들의 집거구역이였다. 서쪽으로 한동안 올라가면 백화상점이 있고 그가 사는 광명가두도 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 방향을 알수 없었다. 어찌할바를 모르고 그냥 서있는데 징소리가 또 터졌다.

쾅칭 쾅칭 쾅칭 쾅!

가슴이 떨렸다. 어디선가 경극배우들이 몰려와 그를 빙 둘러싸기 시작했다. 시꺼먼 얼굴, 진붉은 얼굴, 코대에 흰 칠을 한 얼굴… 눈섭이 우로 치솟고 눈시울이 새빨간 녀배우가 길다란 소매를 너울거리며 “이이아아~” 하고 목청을 뽑았다. 그는 너무도 무서워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웬 처녀가 마치 자기 동생이나 다루듯 그를 마구 다잡아세웠다.

“울긴 왜 울어? 나이 열살이나 처먹구…”

무슨 소리야? 내가 열살이라니? 그는 처녀를 올려다보았다. 뜻밖에도 영희였다. 영희는 그보다 키가 곱절이나 더 큰것 같았다.

“이게 어떻게 된 판이야? 내가 왜 요렇게 작아졌어?”

“시끄러워. 너 집으로 가. 나두 집으루 가겠다. 문화대혁명이 터졌어.”

영희가 사라졌다.

주위가 다시 캄캄해졌다. 여기가 어딘지 알수 없었고 자기가 누군지도 알수 없었다. 그저 마음이 한없이 불안할뿐이였다.

아우성소리가 들렸다.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면서 주위가 환해졌다. 금방 자기를 에워싸고 있던 경극배우들이 불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비명을 지르고있었다. 다시금 여겨보니 사람이 아니라 경극용 복장이며 나무칼, 창, 검 따위 무대도구들이였다. 층집에서는 홍위병들이 원고뭉치, 잡지뭉치, 각종 문건들을 창밖으로 내던진다. 그것들은 불속에 들어가 경극용 복장, 도구들과 함께 불에 타버린다. “북경시문련”, “북경시문화국”이란 나무간판도 불속에 들어간다. 불길은 맹렬히 타오르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타래쳐오른다.

군복을 입고 허리띠를 졸라맨 녀고생홍위병들이 층집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을 끌고 나온다. “문련”, “문화국”의 책임자와 임직원들이다. 홍위병들은 그들을 불더미주위에 빙 둘러세우고 허리를 굽히게 한다. 그리고 저마다 허리띠를 풀어쥐고 잔등이며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갈기기 시작한다…

모택동의 말씀이 떠오른다. 해방후 지금까지 문학예술계… 제왕장상, 재자가인, 죽은 사람들이 통치… 경극부문의 문제가 더욱 엄중… “문련”, “문화국”이야말로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 독소를 산포하는 책원지이고 그안에 들어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잡귀신”들이다… 홍위병들이 어찌 선참으로 때려부시지 않겠는가.

하늘땅을 뒤번지는듯한 함성이 들려온다.

“위대한 무산계급문화대혁명 만세!”

“위대한 수령 모주석 만세! 만세! 만만세!”

천안문광장이다. 모택동이 성루에 나타난다. 초록색군복을 입고 “홍위병”완장을 두른 모택동. 모택동이 군모를 벗어 흔들며 망망대해를 이룬 홍위병들에게 회답한다.

“인민 만세!”

광장이 삽시에 격정으로 끓어넘친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부르는 홍위병들, 광기, 열기, 함성에 태양도 빛을 잃고 구름도 경악하여 멈춰버린듯…

전국의 대학교는 초생을 중지했다. 고중, 초중, 소학교까지 수업을 중지했다. 동방의 거인, 위대한 사회주의중국에서 인류력사상 전례 없는 대사변이 벌어지고있는데…

너는 누구냐?

지금 어디에 있느냐?

여전히 자기가 누군지 알수 없었다. 사위는 캄캄했고 어디선가 “우―” 하는 아츠러운 소리만 들려올뿐이다…

이윽고 또다시 환영 같은 정경이 나타난다. 상복을 뒤집어쓴듯 대자보와 표어들이 새하얗게 나붙은 거리, 선전삐라가 눈송이처럼 흩날리고…

고향도시 연길이 아닌가.

홍위병들이 교회당의 십자가첨탑을 허물어버린다.

거리에서는 상여, 제사용기물, 병풍, 고서, 고화 그리고 조선문으로 된 수없이 많은 문예서적들을 불에 태워버린다. 착취계급의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 이른바 짓부셔야 할 “네가지 낡은것”이 조선족에게 각별히 많은것 같다. 효자효부(孝子孝妇), 존상애유(尊)의 전통관념이나 관혼상제 의례의식… 어느것이 “네가지 낡은것”에 속하지 않겠는가.

연설, 변론, 돌총질에 여념이 없는 홍위병들…

거리는 홍위병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치마저고리에 붉은 완장을 두른 녀인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온다. 일명 “코신부대”라고 불리우는 광명가두 주부반란단이다. 그녀들은 만세를 웨치고 구호를 부르고 변론에도 끼여든다. 무단적투쟁에 대처하려는듯 손에 빨래방망이를 든 아낙네도 있다. 전에 없던 일이라 동네늙은이들은 괜히 겁이 나는듯 비실비실 골목길에 숨어들고…

자치주 제1임주장 주덕해동지가 타도된다.

한때 이름을 떨치던 작가, 예술인들이 개패를 목에 걸고 고깔모자 머리에 쓰고 투쟁대에 올라 홍위병들의 성토를 받는다.

반혁명분자, 우파분자, 지주, 부농 따위 계급의 적들과 점쟁이, 뚜쟁이, 좀도적, 바람둥이들도 “잡귀신”모자를 쓰고 조리돌림을 당한다.
과감한 반란정신, 무자비한 투쟁… 혁명의 불길은 갈수록 거세게 타오르는데…
너는 누구야?

어디에 있느냐?

어두운 허공에서 거뭇한 줄 몇가닥이 어슴푸레 나타났다. 천장의 서까래였다. 그는 자기가 지저분한 꿈과 잡념에 엇갈아 빠지면서 집체호 뒤방에 누워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우―” 하는 소리는 뒤산에서 눈보라를 일구며 내려오는 바람소리였다. 자정이 지났을가? 아직 닭울음소리는 나 않은것 같은데…

그는 비몽사몽속에서 완전히 깨여났다.

저쯤 누워있는 동원이한테서는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녀석이 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있는 모양이였다. 문화대혁명이 터져서부터 녀석은 공부도 하지 않고 누구와 말도 하지 않는다.

미닫이문을 사이 두고 앞방녀석들의 코고는 소리가 문풍지 우는 소리와 이상한 조합을 이루면서 요란하게 들려온다…

지난 8월, 느닷없이 터진 문화대혁명은 집체호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제 1년만 견지하면 어엿한 대학생이 된다는 희망이 산산이 깨여져버린것이다. 불과 한두해 사이에 혁명이 승리적으로 끝나고 대학교학생모집이 회복되리라고 믿는 애들은 없었다. 앞방의 녀석들은 재수없이 후배들보다 한해 먼저 졸업한탓으로 홍위병도 되지 못했다고 울분을 터치였다. 그리고 집체호를 당장 마사버리고 연길로 돌아가 혁명하자고 떠들었다. 하지만 재학생도 아닌데 어느 홍위병조직에서 받아주며 호적까지 농촌에 떼왔는데 무슨 명분으로 시내 혁명에 참가하겠는가. 그저 드문드문 연길에 가서 혁명형세나 관망하고 돌아올수 밖에 없었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농촌에서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였다. 지식청년들은 동네청년들과 련합하여 즉시 반란단을 조직했다. 지식청년으로서 혁명에서의 표현이 우수해야 앞으로 공장 같은데라도 추천을 받아 농촌에서 빠져나갈수 있다는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였다.

반란단 단원으로서 그는 농촌의 “네가지 낡은것”을 짓부시는 활동에서 남들보다 못지 않게 혁명성을 발휘했다. 동구밖에 나가 상여막을 허물고 상여를 불사르고 마을에서 돌려가며 쓰던 유일한 병풍을 찾아내여 불사르고 옛날 어느 산골에서 훈장질했다는 늙은이네 집에 쳐들어가 족보와 낡은 책 몇권을 뒤져내여 마당에서 불살라버리고… 유감스럽게도 농촌에는 반란단원들이 통쾌하게 때려부실만한 “네가지 낡은것”이 얼마 없었다. 함지박이나 절구통 같은것들도 “낡은 풍속”과 관계가 있는듯하지만 차마 그런것까지 박살낼수는 없고…

자신의 혁명성을 더욱 충분히 표현하려고 그는 뼁끼통을 들고 다니면서 집집의 바람벽에 표어와 모주석어록을 쓰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안되여 그는 선연하고 힘있는 필치로 마을의 외경분위기를 확 바꾸어놓았다. 이만하면 혁명에서의 공로를 충분히 인정받을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밤송이 같은 머리,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 마디가 툭툭 불거진 갈퀴 같은 손… 엊그제 소학교강단에서 투쟁받던 김시룡동지의 모습이였다. 전 대대적으로 으뜸가는 “주자파”이기에 각 마을 반란단에서 련합하여 투쟁대회를 열었던것이다. 군중들은 무시로 주먹을 추켜들며 우렁찬 구호를 웨쳤다. 하지만 그는 군중속에 끼여있으면서 도저히 구호를 웨칠수가 없었다. 적개심이 꼬물만치도 솟구치지 않았던것이다.

김시룡동지는 인민공사 사장이며 대대당지부 서기였다. 전국에서 제일 먼저 호조조를 조직하고 그후 집단화운동에서도 공을 세웠기에 일찍부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전국로동모범”의 영예를 받아안았고 북경에 가서 모택동의 접견도 10여차례나 받은분이였다. 중국조선족농민의 대표적인물로서 높은 성망을 지니고있었지만 아래마을에서 제일 헐망한 초가에서 살고있었다. 인민공사 전체 사원들이 벽돌집에서 살기전에 자기는 절대 그 집을 떠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과연 로동인민의 본색을 잃지 않은 훌륭한 간부요 진짜공산당원이였던것이다. 이런분이 글쎄 어떻게 자본주의길로 나아간다고 볼수 있겠는가. 그는 도저히 납득할수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관점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주자파”와 한바지를 입은 놈으로 락인찍히고 여태까지 쌓은 업적이 물거품이 될가봐 겁이 났던것이다. 젠장, 국가주석 류소기, 당중앙의 등소평도 타도되는 마당에 김시룡이 다 뭐야.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자… 하지만 투쟁대회에 참가해서도 “타도하자!”는 소리는 입에서 나가지 않았다. 납득이 되지 않는데도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는것,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괴로운 일이였다…

오늘, 아니 이젠 자정도 넘었겠는데 어제 일이겠지. 낮에 생산대회의실에서 강아바이를 투쟁하던 정경이 떠올랐다.
강아바이는 도람통으로 만든 난로우에 올라서있었다. 벽돌장을 딛고 섰지만 발밑이 뜨거운지 연신 발을 옮겨디디고있었다. 벽돌 서너장을 얽어서 목에 걸어놓고 허리를 굽힌채 팔을 뒤로 쳐들게 했으니 그 자세가 무척 괴로운 모양이였다. 이른바 전국적으로 류행하고있는 “분기식”투쟁방식이였다. 강아바이는 시종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희슥희슥한 머리칼사이로 비지땀을 줄줄 흘리고있었다.

“부농분자 강봉운을 타도하자!”
“부농분자 강봉운을 타도하자!”
“모든 잡귀신을 타도하자!”
“모든 잡귀신을 타도하자!”
……
복순이가 구호를 웨치면 군중들이 따라불렀다. 돌이 에미는 구호를 웨칠 때 주먹을 가장 힘있게 쳐들었고 목소리도 중뿔나게 높았다. 아마 너덧명 아낙네들의 목소리를 다 합쳐도 돌이 에미의 목소리를 당할것 같지 않았다.

얼마전 아래마을 “반란단”에서는 논물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여러 마을 녀자들과 놀아났다고 대대 수리위원을 투쟁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심사과정에서 수리위원은 다른 녀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가 돌이 에미에 한해서는 자기가 피해자라고 진술했다는것이다. 그저 아무 생각도 없이 삽을 메고 논뚝을 걸어가다가 그 녀편네한테 랍치당해 옥수수밭으로 끌려들어갔다고… 반란단에서 웃마을로 진상조사를 왔다. 하지만 말도 꺼내기전에 돌이 에미한테서 상욕을 얻어먹었다.

“이 새끼들아! 내 몸에 붙은걸 가지구 내 맘대로 했는데 너희들 무슨 상관이야? 문화대혁명이 농촌안깐들의 보지를 들춰내는 혁명이야?”

돌이 에미가 암펌처럼 길길이 뛰는 바람에 반란단 젊은이들은 찍소리 못하고 달아나버렸던것이다…

“천도깨비”란 별명을 가진 동네청년이 몽둥이로 난로가장자리를 탕 내리치며 엄포를 놓았다.

“그냥 뻗댈 예산이야? 탄백해라. 네가 빈하중농을 착취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부농이 될수 있었겠어?”

강아바이가 와들와들 떨면서 겨우 대답했다.

“저는 누구를 착취하지 않았습니다. 토지개혁때 이미…”

반란단원들이 으르댔다.

“이놈! 된맛을 봐야 제대루 불겠니?”

“네놈의 집에서 고농살이를 한 사람이 있었다는데 그래두 속이려구?”

“우리 선친께서…”

“선친이란 무슨 소리야?”

“우리 아버지 생전에… 마가라는 사람이… 그 사람은 머슴이 아니고…”

“이놈! 끝까지 항거할테냐?”

복순이가 기세를 올리려고 또 구호를 웨쳤다.

“탄빠이 충콴! 캉쥐 충얜!(탄백하면 관대하고 항거하면 엄벌한다.)”

군중들이 따라웨쳤다.

“탄빠이 충콴! 캉쥐 충얜!”

오전부터 시작된 투쟁대회가 오후까지 계속되고있었다. 문득 회의실에 목수건을 감싼 아낙네가 허둥지둥 뛰여들어왔다. 강아바이네 이웃인 “얼빠이”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지금 한창 엄숙한 계급투쟁이라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군중들앞에 와서 손발을 내저으며 종잡을수 없는 소리를 줴쳤다. “얼빠이”는 사람이 좀 얼빤하다고 중국말, 조선말 중간으로 붙인 별명인데 이 시각에는 진짜 얼빤해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것조차 잊고있는듯했다.

김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수건이나 벗구 똑똑히 말하우. 무슨 일이우?”
그제야 그녀는 수건을 풀면서 입을 열었다.
“주… 죽었수… 죽었다니까…”
아낙네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돼지새끼가 죽었어? 뭐가 죽었어?”
“천둥에 개 뛰여들듯 들어와서 무슨 생뚱같은 소리야?”

그녀는 급한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지 어눌하게 사태를 설명했다.

“령감이 투쟁당하는걸 창문으로 들여다보구 내려가던데… 글쎄 그새루 죽었더라니까… 내가 미심해서 들어가 봤더니… 양재물 먹었소…”

“얼빠이”아주머니는 손으로 제 목을 한번 긋고 말을 이었다.
“숨이 없수. 주… 죽었수.”

강아바이 마누라가 자살했다는 소식이였다. 돌이 에미가 김대장한테 다가가 수군거리더니 몇몇 아낙네들을 불러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행여 구출할 희망이 있을지 알아보려고 했을것이다. 그들이 나가자 회의실의 아낙네들이 몽땅 따라나갔다. 투쟁대회분위기가 즉시 한산해졌다. 강아바이는 그 와중에도 귀동냥으로 마누라가 잘못된 사실을 알아들은 모양이였다. 강아바이는 실신한 사람처럼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문득 통곡도 아니고 비명도 아닌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난로우에서 굴러떨어졌다. 반란단원들이 강아바이한테 욱 달려들어 귀쌈을 치고 발길질하며 사정없이 짓뭉개기 시작했다.

집체호에서 저녁식사가 끝나자 복순이가 돌연히 그한테 질문했다.

“넌 왜 투쟁대회에서 구호를 부르지 않니?”
그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불렀다. 내가 회의실 안팎에 써붙인것은 구호가 아니냐?”
복순이가 픽 랭소하더니 모주석어록을 외웠다.

“위대한 수령 모주석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셨다. ‘혁명은 손님을 대접하는 일도 아니며 그림을 그리거나 수놓이를 하는 일도 아니므로 그렇게 우아하게 점잖게 할수 없다. 혁명은 폭동이며 이 계급이 저 계급을 뒤집어엎는 맹렬한 행동이다.’”
복순이의 딱친구 정옥이가 맞장구쳤다.

“너한테 딱 들어맞는 어록이야. 넌 왜 남자라는게 그렇게 과감성이 없니? 계급의 적에게 발길질두 못하구…”
남자의 자존심까지 건드리자 그는 밸이 울컥 치밀었다

“너 참 유치하다. 다 죽은 령감태기한테 발길질하는게 남자들이 할짓이야?”
그의 말대꾸가 웃방남자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뭐라구? 야, 이재 니 뭐라구 했니? 우리가 강아바이를 투쟁하는게 유치하단 말이야?”

“임마! 너 그림만 잘 그리면 다야?”

“야, 임마, 너 문화대혁명을 뭘루 보구있니? 납득되지 않는 문제가 있으문 내놓구 변론하자.”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게 되였다. 그는 웃방으로 들어가 세 녀석들과 마주앉았다.

“그래, 납득되지 않는 문제를 말하마. 투쟁대상을 치구박구하는게 납득되지 않는다. 왜?”

“야, 이 새끼 봐라.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계급투쟁이다. 계급의 적을 호되게 족치는것이 뭐가 납득되지 않니?”

“모주석께서 그런 식으로 계급의 적을 타격하라구 했어?”

“임마, 너 혼자 옳구 혁명적군중은 다 틀렸겠구나? 너 참, 계급립장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야?”
“난 모주석의 혁명립장이다. 왜?”

“이 새끼야, 너 좀 주의해라. 너처럼 봉자수(封资修―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의 책을 많이 읽은 놈이 우리 집체호에는 없다. 동창이라구 감싸주는것두 모르구…”

“이 새끼들이… 혁명도사들치구 그런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니?”

상대방들의 어조는 점점 격화되고 그도 화가 꼭뒤까지 치밀었다. 그는 본래 변론에 약했다. 늘쌍 감정충동부터 앞서다보니 조리있게 자기 관점을 표달할수 없었던것이다.

복순이와 몇몇 녀자애들이 들어와서 그들을 갈라놓았다.

“그만해, 우린 모두 혁명적지식청년들이야. 집체호내부에 근본적인 리해충돌이 있을수 없어. 립장문제가 아니구 인식문제야.”
……

웃방녀석들의 코고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너희들한테는 고민이라는것이 별로 있는것 같지 않구나. 사람이란 워낙 너희들처럼 단순하게 사는게 옳지 않을가? 일하라면 일하고 놀라면 놀고 혁명하라면 혁명하고…

정지간에서는 아직도 녀자들의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희는 며칠전에 병치료를 한다면서 연길로 돌아갔다. 녀자애들의 말로는 병치료보다는 딸을 류별나게 아끼는 엄마가 어수선한 세월에 딸한테 무슨 일이 생길가봐 불러간것이라 했다. 아! 영희, 지난여름 함께 과수원으로 올라갔던 그날 밤까지만 해도 너나 나나 불과 며칠후에 문화대혁명이 폭발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그는 문득 자신의 첫사랑이 꽃만 피고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들면서 가슴이 산산해났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울부짖었다. 문풍지 우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난로에서 굴러떨어지던 강아바이모습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엊그제까지 그는 강아바이와 함께 우사마당에서 두엄 끄는 일을 했다. 그날 담배쉼 할 때 침울한 얼굴을 해가지고 홀로 두엄더미곁에 앉아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가? 자기가 투쟁당할것을 미리 짐작했을가? 아니면 외동딸을 생각하고있었을가… 강아바이 딸은 본래 위생학교를 졸업하고 대대위생소에서 간호부로 있었는데 사청운동때 성분문제로 밀려나왔다고 한다. 서른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간것도 성분때문이지 다른 원인은 없을것이다. 눈에는 항상 고적한 빛이 어려있었고 때로는 사람들을 보고 얼굴에 웃음을 띠울 때도 있었지만 너무 처량한 웃음이여서 안 보기만 못했다. 지난가을부터 그녀가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돌더니 며칠전에 행방불명이 되였다. 아버지가 투쟁 맞고 어미가 자살한줄 알게 되면 얼마나 기막혀하겠는가. 미리 그런 불상사를 예감하고 어느 깊은 산골에 들어가 자결해 까마귀밥이나 되고있지 않는지…

눈보라… 눈보라…

거적에 싸인 시체를 싣고 삐그덕거리면서 눈보라를 헤치는 소수레를 방불히 보는것 같다. 래일 강아바이 마누라는 저렇게 울어주는 사람 하나 없이 뒤산기슭에 묻힐것이다.

, 계급투쟁… 계급투쟁은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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