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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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장편소설《진허》(9)
2013년 11월 01일 14시 01분  조회:1461  추천:1  작성자: 김극민
9
 
그는 마을 뒤산에 올라섰다. 사방 70리 논벌이 한눈에 안겨온다. 가을걷이를 끝낸 논판은 휑뎅그렁하기 짝이 없고 봄부터 논판을 적셔온 해란강은 제 할 일 다했다는듯이 한가롭게 벌판에 늘어져있었다. 재교육을 받으러 농촌에 내려온지 어언간 2년이 넘었다. 대학꿈은 나무아미타불이 되였고 이제는 시내로 돌아갈 희망마저 묘연해졌다. 도시에서는 로동자들이 생산마저 탈리하고 혁명한다는데 농민들은 그렇게 할수 없었다. 농사가 밥줄이니까 혁명한답시고 농사를 망칠수는 없었던것이다. 이제 겨울이 돌아와야 지난해처럼 시름놓고 계급의 적이나 주자파를 다시한번 삶아버릴것이다.

모내기가 끝나자 그는 민공으로 뽑혀 먼 산골 저수지공사장에 가서 일했다. 벼가을철에 돌아와서 벼가을도 하고 묶걱질도 했다. 어제까지 탈곡을 하다가 인편에 영희의 쪽지를 받고 오늘 연길로 떠난 길이다.

산잔등을 타고 언덕 몇개를 넘으면 남쪽교외에 떨어지게 된다. 언틀먼틀한 수레길에 락엽이 뒹굴고 재빛하늘에서는 금시 진눈까비라도 쏟아질듯 날씨가 을씨년스러웠다.

여름 내내 공사장에서 목도를 메면서 그는 자기의 장래나 운명을 두고 한없이 고민했다. 미술가의 꿈, 그것은 이미 락태된것이나 다름없었다. 시대는 예술가를 요구하는것이 아니라 무산계급혁명의 후계자를 요구한다. 시대의 요구를 따르지 못하면 도태되는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 도리를 뻔히 알면서도 차마 미술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 꿈은 그의 인생의 전부라 할만큼 소중했기때문이다. 미술가가 아닌 인생은 그한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심지어 미술가가 되지 못하면 영희와의 사랑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간 영희한테 무관심해진것도 그때문이였다. 무슨 중요한 일이기에 나를 만나자고 했을가…

어느덧 시가지에 들어섰다. 하남다리를 건너서니 숱한 반란파들이 《연변일보》사를 둘러싸고있었다. 지난해에는 학생홍위병들이 거리를 횡행했는데 지금은 자작투구를 쓰고 몽둥이를 든 로동자반란파, 기관직원반란파들이 주류를 이루고있었다. 확성기 여라문대를 설치한 선전차가 《연변일보》사를 향해 설전을 벌리고있었고 분노에 찬 반란파들이 일보사 건물에 돌멩이와 벽돌장을 뿌리고있었다.

일보사 맞은켠 시2중 담벽에는 주자파들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나붙고 이름자마다에는 극형에 처한다는 의미로 붉은 가위표가 란폭하게 질려있었다. 가는 곳마다 “타도하자!”, “박살내자!”, “개대가리를 까부시자!”라는 어구들이 눈에 띄웠다.

연길시제2중학교는 그의 초중때 모교였다. 그가 이 학교를 다닐 때에는 전국적으로 3년재해시기여서 누구라 없이 배를 곯았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체력을 소모하면 더욱 시장기를 느낀다고 중간체조까지 취소했다. 담임선생한테 혼나던 일이 생각났다. 강의를 듣지 않고 필기장뒤에 온통 그림만 그렸다고 호통을 쳤지… 아이들앞에서 필기장을 펼쳐놓고 “전람”까지 시키면서…

학교에서 좀더 걸어서 백화상점곁의 문화관에 이르렀다. 문화관벽에는 대자보들이 나붙어있었고 출입문에는 널판자가 가로질려있었다. 문화관이 오래전에 페쇄되여버린듯했다. 그는 마음이 허전해났다. 연길에 온김에 정선생을 만나보려 했는데 이렇게 허탕을 치고만것이다. 그는 문화관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초중때 하학하여 집으로 가는 길에 쩍하면 이곳에 들리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 보면 그때가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였다. 그가 미술실에 들어서면 정선생은 그저 “라일러? (왔니?)” 한마디 하고는 자기 일에 몰두했다. 정선생은 항상 업무에 바삐 돌아쳤다. 백화상점앞 대형전시판의 선전화를 정기적으로 바꾸고 각종 전람회의 글자도 새기고 프랑카드에 표어를 쓰기도 했다. 방학에는 그한테 석고상을 내주어 소묘기량을 닦게 했다. 한번은 선생이 그가 소크라테스의 석고두상을 그리는것을 보더니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넌 참 그림을 그리려구 세상에 태여난 놈이구나. 비례감각도 뛰여나구.”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너 앞으로 미술대학은 문제없어. 미술을 제대로 배워가지구 훌륭한 미술가로 되여야 한다. 나처럼 고역을 치르는 잡부가 되지 말구…”

미술실의 단골손님은 그를 내놓고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문화관과 큰길 하나 사이 둔 시도서관의 방동무였다. 방동무는 위장병에 부종까지 앓고있어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는데 오기만 하면 먹을거리에 대한 말만 했고 말을 시작하기전에는 의례 침부터 꿀꺽 삼키군 했다. 한번은 방동무가 그에게 말했다.

“얘야, 백화식당마당에 감자가 한 차 들어왔더구나. 너 대문밑으로 기여들어가서 서너알 가져오려무나. 난로에 구워먹게스리.”
“나보구 도둑질하라구? 싫수꾸마.”
“임마, 내 언제 도둑질하라 했니? 그저 슬그머니 가져오라는데…”
“그게 그게지 뭘…”
방동무가 엉큼한 수를 썼다. 짐짓 정선생과 이야기하는척하면서 그한테 미끼를 던졌다.
“정동무, 요즘 도서관에 쏘련에서 출판한 미술명작책이 수태 들어왔는데 인쇄를 얼마나 잘했는지 그림에 붓털이 말라붙은것까지 선명하게 보인다니까.”
그는 그 그림을 보고싶은 욕심이 굴뚝같이 일어났다.
“거 좀 보겝소.”
“안돼. 미성년자한테 열람증을 내주지 않아.”
“그러지 말구 좀 보겝소.”
방동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럼 감자부터 먼저 가져와. 굵구 토실토실한걸루…”

그는 그림을 보려고 난생처음 도적질까지 했다.

감자도적질로 그는 방동무와 친해졌고 도서관에서 마음대로 세계명화집과 같은 미술서적을 뒤져볼수 있었다. 고중때부터는 미술서적보다 문학서적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당시 도서관에는 평양에서 출판한 세계문학선집, 조선문학선집이 들어와있었다. 그는 학교공부에는 겨우 락제나 면할 정도로 응부하고 문학책만 읽었다. 아, 그것이 행운이였는가. 불행이였는가… 지금 와서 보면 불행이 아닐수 없다. “봉자수”의 해독을 가장 깊이 받은 셈이니까.

학창시절의 회포를 떨쳐버리고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도서관 뒤골목을 지나 례배당앞에 이르니 십자가의 첨탑은 무너진대로 있었고 안에서는 전기톱소리가 요란했다. 마당에 쌓인 통나무들을 보아 례배당을 목재공장에서 차지한 모양이였다. 례배당을 지나 실골목에 들어서니 동네아낙네들 몇몇이 길을 막고 서서 수군덕거리고있었다.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른것을 보아 분명 가두 “코신부대” 반란단원들이였다. 가두주임아주머니가 그를 보더니 희떠운 소리를 했다.

“이 총각 농촌에 가있더니 끌끌하게두 번졌네.”
말없이 그저 지나칠수는 없었다.
“동네 그간 무사함두?”
“아, 다 무사하오.”
그가 지나치려는데 한 아낙네가 팔소매를 붙잡고 쑹얼거렸다.
“엄마 아직두 예수를 믿는 모양인데 교육 좀 하오. 옆집에서 가두반란단에 고발하는 바람에 하마트면 투쟁당할번했다이.”
다른 아낙네가 께끼였다.
“엄마고집이 이만저만 아닙데.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한마디만 말하면 용서해주겠다는데두 끝내 그 말만은 번지지 않더라니까.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두… 말이 그렇지 우리가 뭐 불쌍한 로친네를 투쟁까지 하겠소?”
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악에 받친 소리가 튀여나갔다.
“변소청소나 하는 로친네를 투쟁해버리구 똥은 어디다 싸겠는가? 어느 개쌍년이 우리 엄마 까닥 건드리기만 해봐라. 개대가리를 까부시구 집에다 불을 콱 지르겠어.”
아낙네들이 겁이 나는지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는 풀풀거리면서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어두컴컴한 집안에 홀로 누워있었다. 아들이 들어서자 엉거주춤 일어나서 손을 잡았다.
“어제밤 꿈에 보이더구마는… 어찌 이렇게 오느냐?”
“……”
“네가 농촌에 내려가있는 일이 항상 마음에 걸리더구마는 지금 보문 하나님의 뜻인것 같다. 너두 알지? 길건너 량식국 다니는 집… 그 집 아들이 지난 주일에 총에 맞아죽었단다. 에그 참, 세월은 무슨 세월인지…”
“……”

어머니 베개밑에 성경책 모서리가 삐죽이 나와있었다. 문소리에 깜짝 놀라 기껏 감춘다는것이 저 모양인것 같았다. 어머니의 성경책은 보풀이 일대로 일고 책뚜껑은 헝겊에 풀을 먹여 몇번이나 덮씌웠는지 모른다. 책이라기보다 무슨 헝겊뭉테기 같았다. 글자 역시 옛날글자로서 “따”자를 “ㄷㅅ”라고 표기하여 고중졸업생인 그로서도 알아볼수 없었다. 분명 저 책은 내가 세상에 태여나기전부터 어머니와 함께 있었으리라. 고향 함흥에서 보통학교를 다닐 때부터 예수를 믿었다니 아주 소녀시절부터 애지중지해왔을것이다. 애초에 그는 당의 호소를 적극 받들고 농촌에 내려가면 정치사상표현이 우수함을 긍정받고 공산주의청년단에도 문제없이 가입할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문화대혁명으로 공청단조직이 마비되기전에 동네에서 몇몇 적극분자를 조직에 가입시켰는데 그만은 심사에서 미끄러졌다. 맑스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고 공산주의에 대한 상식조차 모르는 토배기계집애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를 문밖에 밀어낸것은 오로지 어머니가 예수를 믿는 문제거리가정이라는 원인밖에 있을수 없었다. 자기의 모든 불행, 불운이 어머니의 신앙에서 비롯되였다는 생각이 들자 속에서 또 불같은것이 울컥 치밀었다. 어머니는 녀동생을 낳고 산후병으로 귀가 멀었는데 웬간한 대화를 하려면 소리부터 질러야 했다.

“어머니, 그 성경책 이리 내놓으시우.”
“왜 그러니?”
“아궁이에 집어넣자구… 왜 그따위 책을 지금까지 집에 두고있습니까? 거리로 끌려다니며 투쟁을 당하자구 그럽니까? 예수가 중합니까? 아들이 중합니까? 엄마는 왜 아들생각을 꼬물만치도 하지 않습니까?”
그는 어머니한테 다가가서 성경책을 집어들었다. 그대로 부엌에 내려가려는데 어머니가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그의 다리에 매달리는것이였다.
“얘, 성경은 놔두구 대신 나를 죽여. 네가 어미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걸 다 안다. 당장이라두 죽었으문 좋으련만 하루삼시 너를 위해 기도하느라구 죽지 못해 살아간다. 얘야, 죄를 짓지 말아… 제발… 흑… 흑…”

그는 맥없이 가마목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성경책을 아궁이에 집어넣는다는것은 어머니를 화형시키는것이나 다름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어머니가 아무리 맞갖지 않더라도 차마 그런짓을 할수는 없었다. 그는 어머니한테 성경을 내밀며 말했다.

“농짝밑에 깊이 감춰두구 다시는 꺼내지 마시우. 아낙네들이 시시로 뛰여드는데 이제 발각되문 시내로 끌려다니면서 투쟁할겁니다.”
어머니는 딸꾹질하듯 어깨를 솟구치며 오열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웃목에 올라가서 어머니를 등지고 누워버렸다.

비가 새여 얼룩덜룩 지도가 그려진 천장, 군데군데 흙이 떨어져 벽돌이 드러난 바람벽… 좁고 허술한 집안이 오늘따라 그를 더욱 숨막히게 했다. 이런 집에서 어떻게 동년을 보냈던가. 배급세월에는 끼마다 수수밥만 먹었고 3년재해때에는 가랑잎으로 만든 대식품도 먹었다. 아비 없는 설음을 겪고 녀동생을 잃는 고통도 겪었으며 예수쟁이집안이라고 천대도 받았다. 그렇다고 항상 기가 죽어 지내지는 않았다. 자신의 미래가 꼭 밝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 어떤 고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그 미래가 보이지 않는것이다. 마음속에 시꺼먼것이 들어앉아 꾸물거리는것도 그때문이 아니겠는가. 아니, 개인리상이 파멸된탓만은 아니다. 투쟁, 비판, 개혁이라는 열화같은 시대정신에 자기가 왜 어울리지 못하는지 그것이 더욱 곤혹스러울뿐이다.

지난겨울 강아바이를 투쟁하던 정경이 떠올랐다. 황소눈을 부릅뜨고 목에 피대를 세우면서 계급의 적을 성토하던 빈하중농들, 계급의 적에게 귀쌈을 올리붙이고 사정없이 발길질하던 젊은이들… 나는 왜 그들처럼 행동하지 못했는가. 혹시 나의 정치사상립장에 문제가 있단 말인가. 그럴수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공산주의교육을 받았다.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만악의 자본주의사회는 멸망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전세계에서 승리하리라는것을 믿고있다. 나는 중국공산당을 옹호하며 모주석을 옹호한다. 비록 복순이와 같은 적극분자는 아니더라도 공산주의신념만은 변함이 없다.

혹시 너는 비겁한자가 아니야? 아니다. 내가 만약 비겁한 놈이라면 오히려 다른 젊은이들처럼 투쟁대상을 치고박고했을것이다. 무리와 함께 행동하는것이 가장 안전하니까. 황차 싸움군은 아니지만 일대일의 싸움판에서는 비겁하게 도망친적은 없다. 소학교때부터 그러했다. 바로 이 집 문앞에서 녀동생을 울렸다고 동네계집애를 패주었더니 계집애의 오빠가 달려왔다. 녀석은 중학생으로서 키도 크도 힘도 셌다. 녀석은 나를 굴뚝곁으로 끌고 가서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지. 대뜸 입술이 터지고 코피가 터지고 눈통이 부어올랐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녀석의 다리에 매달려 개처럼 허벅지를 꽉 물었지. 잔등이며 정수리를 사정없이 얻어맞으면서도 나는 꽉 문 이발을 놓지 않았다. 드디여 녀석이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렇다. 자존심에 관한 일이라면 그 어떤 상대와도 싸움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사상립장에도 문제가 없고 비겁한것도 아니라면 왜 강아바이투쟁대회에서는 표현이 그 모양이였는가. 혹시 “19세기”여서 그런것이 아닌가?

어느 정도 그런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적이라도 반항능력이 전혀 없는 약자를 구타하는것은 비인간적인 행위라는것을 책에서 배운듯하니까.

혹시 어머니의 영향이 아닐가? 그는 문득 소름이 끼쳤다. 이러쿵저러쿵해도 자기의 심성에 분명 어머니의 그림자가 비껴있음을 발견했던것이다. 그는 대체적으로 자기가 어머니의 사상영향에서 벗어나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아들이 예수를 믿도록 강요한적은 없었다. 기껏해서 어린 시절에 착한 사람이 되여야 한다느니 원쑤를 사랑해야 된다느니 바늘 하나라도 남의것을 도적질하면 안된다느니 그러루한 소리만 들었을뿐이였다. 무심하게 들었던 그 잔소리가 자기의 심성에 저도 모르게 작용하고있지 않는가? 그가 어머니의 착한 심성에 가장 증오를 느낀것은 대식품을 먹던 시절이였다. 그가 점심 먹으러 학교에서 돌아오니 문앞에 거지 같은 로인이 주저앉아 정신없이 수수밥을 퍼먹고있었다. 어머니가 곁에서 김치쪼각을 입에 넣어주고있었다. 집안에 들어가 가마목을 살펴보니 자기 밥그릇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어머니가 로인한테 내준것이였다. 그는 천둥같이 화가 나서 바깥에 뛰여나가 로인을 발로 차고 밥그릇을 빼앗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엄마한테 울분을 토했다. “나두 배고파죽겠는데 왜 거지한테 밥을 줍니까?” 엄마가 말했다. “너는 점심 한끼 굶지만 이 할아버지는 이틀이나 굶었단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 “듣기 싫어요. 세상에 제 새끼 모르는 엄마 어디 있어요…”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학교로 되돌아갔던것이다.

엄마는 착한 사람이 되면 복을 받는다고 했지요? 젠장! 엄마는 착한 사람이 아니여서 이렇게 구질구질 살아갑니까? “원쑤를 사랑하라” 했지요? 젠장! 원쑤를 어떻게 사랑한단 말입니까? 그게 바로 계급모순을 덮어감추는 전형적인 “자산계급인성론”입니다. 나한테 강아바이일가를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게 한것도 엄마탓이예요… 책에 미쳤던 과거가 미웠고 하느님을 믿는 어머니가 미웠다. 폭풍취우의 시대에 견정한 혁명청년으로 되지 못하는 자신이 더욱 혐오스러웠다.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깨고보니 날이 어두워진것 같았다. 그는 문밖에 나섰다. 어머니가 급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얘, 너 어딜 가려구 그러니? 집에 들어가 시루떡을 먹어. 금방 찐거야.”
“싫어요.”
그는 매몰차게 한마디 하고는 돌아섰다.
“얘, 밤에 나댕기지 말어. 총싸움이 벌어지는데…”
“……”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큰길에 나섰다. 얼마간 걷다가 뒤돌아보니 어머니는 떡을 손에 받쳐든채 그냥 그 자리에 서있었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지만 인차 뭉때려버리고 제 갈길을 걸었다.

얼마간 시가지를 돌아다니다가 강뚝에 올라섰다. 약속한 자리에 영희가 와있었다. 솜옷을 대수간 걸치고 머리수건도 쓰지 않은걸 보아 잠간 소풍한다는 핑게를 대고 집에서 빠져나온듯했다. 그들은 강뚝에 나란히 앉았다.
영희가 물었다.

“엄마 무사하던?”
“젠장, 로친이 밤중에 찬송가를 가만히 불렀다구 옆집 ‘사팔뜨기’녀편네가 고자질한 모양이야. 참, 나두 엄마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지각이 없어두 너무 없단 말이야.”
“동원이가 자살했다면서?”
“응― 죽었다.”
“왜 죽었다니?”
“살기 싫어 죽었겠지.”
“어금마, 너 무슨 말 그렇게 하니? 한집체호에서 이태 넘게 생활했는데 너한텐 아무런 감정두 없니?”
“흥, 지금이 어느땐데 감정타령 다하구있어.”
“너 한방에서 자면서 그 애가 죽으러 가는것두 몰랐니?”
“죽는 놈이 잘 있으라구 인사를 하구 가겠니? 녀석이 죽겠으면 강에나 빠져 죽을거지 우리 나무에 목을 맬건 뭐야.”
“우리 나무라니?”
“아따, 지난해 우리가 과수원에 올라가 이야기하던 그 돌배나무 말이다. 난 그 나무만 보면 항상 너를 생각했는데 인젠 보기두 싫어. 찜찜하단 말이야.”
“……”
“내가 그 녀석의 목을 맨 바줄을 풀어놓았어. 혀를 길게 빼물었더군. 딴세상에 가서두 공부만 할 작정이였는지 안경을 낀채로…”
“성격이 꼬장꼬장해 그렇지 마음은 좋은 애였는데… 아버지까지 투쟁을 당하니 정신타격을 이겨내지 못한거야.”
“건 모르는 소리다. 그 녀석은 문화혁명이 터지자마자 죽을 결심을 했을거다. 대학꿈이 수포로 돌아갔으니까.”
“넌 절대 실망하지 말어. 꼭 희망을 가져라.”
“희망? 흥! 집에 혼자 있는 로친네가 아니라면 내가 동원이보다 먼저 목을 달아맸을거다.”
“얘, 너 왜 그러니? 그간 왕청 딴 사람이 된것 같구나. 너를 만나자구 집체호를 둬번 갔다왔어. 저수지공사장으로 갔다더구나. 그사이 넌 내가 보고싶지 않더니?”
“왜 보구싶지 않았겠니? 그런데 네가 중요한 말을 할게 있다는건 뭐야?”
“나 약혼하게 돼.”
“약혼? 오, 그래서 병치료합네 하구 시내에 올라와있었구나.”
“병두 있었어.”
“남자는 어떤 사람인데?”
“몰라.”
“모르는 사람과 약혼해?”
“유리공장 로동자라는것밖에 몰라.”
“령도계급이군. 잘됐구나.”
“너 그게 진심이야?”
“으흠…”
“말해! 진심이냐구.”
“아니다. 원통하다.”
“우린 어떻게 하면 좋아?”
“……”
그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눈앞이 캄캄할뿐이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자기한테 “로동계급”을 물리치고 영희를 차지할만한 힘이 없었다.
영희가 말했다.
“넌 미술재간이 있어서 앞으로 꼭 출로가 있을거야. 대학은 아니더라도 공장 같은데 추천받을수 있을거야.”
“내 보기엔 이 혁명이 인차 끝날것 같지 않다. 넌 나를 5년이구 10년이구 기다릴만하니?”
“집에선 시집보내지 못해 안달이야… 난 모르는 사람한테 시집가기 싫어.”

젠장, 오늘밤 영희를 내것으로 만들구 농촌에서 아무렇게나 결혼해버릴가? 이놈, 무슨 미친 생각이야. 그건 자살과 다름없어. 네가 죽는건 괜찮지만 어찌 영희까지 죽이려 하느냐… 연변병원쪽에서 콩튀듯하는 총소리가 들려왔다. 배속에서 시꺼먼것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거치른 소리가 터져나갔다.

“시집갈수 있으면 가버려! 난 암만 해두 너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단 말이야…”
영희가 발딱 일어섰다. 눈물 고인 눈이 차겁게 번뜩이였다.
“네가 이럴줄 몰랐다. 네가 불구뎅이로 끌어두 끌려가려던 참이였어… 이 ‘19세기’야, 난 너를 한평생 원망할거야.”
영희는 눈물을 쏟으며 그한테서 도망치듯 달아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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