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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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적인 '이단자'는 어떻게 문학을 하나? [잔설 김문학 대담]
2018년 08월 01일 08시 21분  조회:3085  추천:42  작성자: 김문학

 문화대담 

초인적인 “이단자”는 어떻게 문학을 하나?

 

잔설(残雪)+김문학

 

 

0.들어가면서

 

잔설(残雪)은 당대 중국문단의 빛나는 “이단자(异端者)”다. 그녀의 이름은 항상 카프카와 나란이 연결돼있으며, 중국 문학의 카프가, 또는 미술로 말하면 피카소와 비견되는 여류작가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작품의 양과 질을 감안할 때, 단순히 중국의 “카프카”가 아닌, 카프카를 초월한 특이한 초인간적인 “이단자”로서 잔설을 평가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1985년 혜성같이 등장한 잔설의 기이한 소설을 접한 때로부터 나는 이내 그녀의 팬으로 돼버렸다. 당시 80년대 중국문화의 황금시기에 출발했던 그 많은 기라성 같은 작가, 문인들이 도중하차하고 잠적을 감춘자들도 부지기수지만, 그녀는 이 “기괴한 소설” 한 길만 지키며 어느새 대가로 돼 당대문학의 지위를 굳히고 있었다.

 

난삽하고 기괴하며 스토리도, 인물도, 공간도, 지어 시간마저도 애매한 잔설의 작품은 대부분 현실주의를 신봉하는 작가와 독자를 따돌리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젊은 층과 지식층에 그녀의 열성팬이 만만치 않으며, 특히 미국, 일본 등 해외에 팬층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여, 그 작품의 신기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세계에서도 좀처럼 없는 기재(奇才)"라고 격상한 왕몽(王蒙)의 말은 틀림없다.

 

그런 잔설은 중국 당대문단과 거래를 단절하고 매일매일 소설과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으며, 거이 외부인간과 만나지 않는걸로 알고 있다.

 

마침 잔설의 오빠 등효망교수(유명한 철학가)와 내가 친한 외우이기도 했던덕으로 잔설(본명 등소화,邓小华)과 이내 연락이 닿았고 또 재빨리 만나게 되였다.

 

2016년 12월17일 오전10시, 북경 밀운의 자택에서 잔설과 남편 노용(鲁庸)씨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63세(1953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잔설은 소녀같이 천진하고 솔직한 내면세계의 여성임을 알수있었다. 방안에는 난방이 잘되여 있어 훈훈했지만, 그녀는 외출용 다운재켓을 착용하고 있은것이 인상적이였다. 오랜풍습병 고질때문이라고 웃으며 해명해주었다.

 

오빠의 친구이기도하고 또한 내가 일본에서 온 친근감때문에 잔설은 첫 시작부터 정열적으로 자신의 문학체험과 문학관을 주저없이 이야기 했다.

 

“김선생도 아시겠지만 일본에서 가장 먼저 내 소설을 번역소개했고 또 내 작품 평론을 쓴것도 일본 대학교수였지요!” 나는 이내 그녀가 누굴 가리키는지 알수있었다.

 

“콘도나오코(近藤直子)선생이 거이 잔설선생의 소설과 평론집을 번역 출간했고, 잔설선생을 중국의 카프카라고 높이 평가 했지요!”

 

“맞아요! 김선생 잘 아시네요.”

잔설은 천진한 소녀처럼 환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대담은 어느 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으며, 점심이 되자 노용씨는 우리에게 푸짐하게 야채위주의 건강음식을 차려주었다. 남편은 작가 부인의 믿음직한 내조자였다. 

 

평소 술을 전혀 못 한다는 잔설은 우리와 함께 캔 맥주 한 통을 같이 마셨다. 빨갛게 상기된 홍조로 인해 더욱 소녀 같아 보였다.

 

호남 방언이 섞인 잔설의 말씨는 그래도 알아듣기 쉽기도 했는데, 그의 이성,정서 및 말할 때의 제스처는 나로 하여금 그녀가 신 내린 무녀(巫女)로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 잔설의 소설은 바로 그 영적세계에 있는 초인간적인 여성이 발산하는 불가시적인 내면 정신세계에 대한 기술임이 분명하다.

 

그럼 잔설 본인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1.문학을 철학처럼 하기

 

김: 오늘 잔설여사님을 처음 뵙겠습니다만은, 전혀 낯설지 않네요. 1985년 제가 대학 4년생때부터 기괴하고 음울한 멋이 있는 여사님의 소설을 접하고 열성팬이 된것도 있고, 또 요즘 오빠되시는 철학가 등효망교수로부터 자주 잔설씨의 얘기를 들어서 구면인듯 옛친구로 느껴져서 기쁨니다. 오늘은 잔설 누님의 (여러가지 호칭을 엇바뀌어 쓰는 내가 좀 이상한가?) 소설과, 작품론, 창작과 일상에 관해 많은 소중한 얘기를 듣고 싶어요.

 

잔: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 오빠 효망한테서 김선생의 “귀재”얘기를 늘 들어와서 한번 나도 언젠가 만나고 싶었지요. 정말 바다건너 우리 집에 오신 귀중한 손님이니, 오늘은 친구가 돼서 마음을 열어놓고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호탕한 웃음)

 

김: 잔설씨의 소설은 중국 문단에는 그누구도 없는 "문학을 철학처럼 하는", 그런 "철학으로 문학을 하는"특징이 돋보입니다. 소녀때부터 철학을 좋아 했고 또 오빠의 영향도 많이 받았나요?

 

잔: 맞아요!난 문학을 철학으로 영위하고있어요. 소녀때부터 철학과 문학을 혹애했는데, 내게 영향을 준 사람은 두분 계셔요. 한 분은 울 아버님이시고 또 한 분은 오빠 효망이지요. 두 분 다 우수한 논리성적 두뇌를 갗춘 지식인이시지요. 잘아시다시피 효망오빠의 영향이 관건적 영향을 했어요.

 

김: ”철학”을 여기서 “영성”으로 바꿔도 될것 같은데요?

 

잔: 네, 쉽게 말해서 철학이지만, 내실은 “영성”이지요. 환상, 몽상, 팬터지 등 일반에서 보면 기괴하고 난해하고 몽경 같기도 한 그런 언어로 소설을 써내고 있습니다. 평론가 정덕배(程德培)씨가 내 소설을 “꿈(梦)”으로 지칭하고 있는데 현실과 상대한 세속의 대안(对岸)에 있는 몽환같은것들을 나열하여 쓰고 있는게 내 소설이지요.

 

2. 철학가 오빠와 소설가 누이동생

 

김: 그러네요. 내가 보건데 오빠 등효망과 여동생 잔설(등소화) 두 오누이는 정말 절묘한 문화콤비를 이루었다고 봐요. 서로 철학과 문학을 흡수하면서 상부상조를 이루고있는데, 아마 이는 당대 중국문화계에서는 유례를 볼수없는 “풍경”이라 생각합니다.

 

잔: 효망오빠는 나를 제일 잘 이해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지지자이고 사상적 동반자입니다.(웃음) 오빠의 철학적 이론이 내 창작에 영항을 주었다면, 나 또한 창작으로 그의 이론을 지지한다고 해야 하지요.

 

김: 두분이서 대담집도 내시고하셨는데 참 오누이가 전 부럽습니다. 등효망교수가 펴낸 《残雪:灵魂的历程五》에서 국내최초로 여동생의 작품을 높이 평가 해주고 “당대 작가중에서 가장 일찍 자아현신(自我现身)적 신형인격을 건립함을 의식하고 그것을 건립하는 일을 사명으로 삼는 작가”라고 평가 했습니다.

 

잔: 효망오빠는 문학을 최고로 철학의 시각으로 평론하는 문학평론가이지요. 국내에서도 이런 평론가는 전례가 없습니다. 나의 기괴한 영혼의 환상소설을 이해할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우리 오빠 같은 학자만이 내 소설을 이해하고 평론할수있기 때문이지요. 지금까지 내 작품을 진짜로 파악하고 평론을 쓸 수 있는 평론가는 아직 국제적으로도 많지 않습니다. 그중에 효망오빠가 내 소설을 해독할수있는 소수자의 한사람이고 아마 제일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웃음)

 

김: 오빠는 철학을,누이동생은 문학을 하지만 두분다 사유의 혁명을 통해 인생의 깊은 심층구조를 파헤치고 있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3.왜 나의 소설은 난삽하고 기괴한가?

 

김:  1985년 처녀작 《山上的小屋》로 부터 시작된 단편이고 장편이고 잔설씨의 소설은 기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것으로 일관돼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잔설씨의 소설을 읽는 일 자체는 문학연구자나 학자나 또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누구나 용기가 필요하고 인내력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 누추하고 조잡하고 기괴하고 난해한 소설을 언어, 구성,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오리무중에 빠뜨리기 십상인데 왜 이렇게 난삽하고 기괴합니까?

 

잔: (웃음)그건 내가 영혼을 쓰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눈에 보입니까? 안보이지요. 그런데 이 본래 볼수없는 불가시적인 영혼을 가시화시킨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 날까요?

 

당연이 누구나가 다 놀랄거에요! 한 사람이 잘 살고 있는데 누가 그 사람의 영혼속의 것들을 영화로 촬영하여 그 자신에게 보여준다면 경악 할 건 불보듯 뻔하지요. 그러니 이런 영혼을 보이게끔 소설로 써내면 기이하고 불가사이 할거예요. 어쩜 이럴수 있단 말인가고, 그리고 사람에 따라 본능적으로 불결하다고 느낄수 있어요.

 

그러니 이런 불결하다든가 누추하다든가 하는건 다 세속적 시각에 비낀것이지요. 영혼은 세속적 인소를 배제하고 있으니까요.

 

김: 그러니까 세속화에 절은 우리 독자들이 덜 세속화된 영성의 세계를 처음 보게 되니까 난삽하고 괴이하게 보일수 밖에 없단 말씀이네요.

 

잔: 그렇지요!

 

김: 결국 독자들이 이미 익숙될대로 익숙된 열독전통, 서술전통을 뒤엎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잔설씨의 세계관, 가치관에서 기인되는 문제겠습니다만, 즉 세속의 대안(对岸)에 있는거겠죠!

 

4.나의 세계는 세속적인 세계와 대립된다.

 

잔: 맞어요! 내 소설이 인성의 여러가지 암흑면과 기괴한 음울한 면이 많다고 독자들이 비판적이고 부정적으로 지적하지만, 사실 이런 인식은 죄다 그들의 무지, 또는 인식차원의 미달로 비롯되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무엇을 묘사했다고 여기는 자는 전혀 내 소설을 해독할 자격이 없는거구요! (웃음)

 

사실 내가 “무엇을 묘사하는게”아니예요! 내 세계는 여러분의 세속적인 세계와 대립되는겁니다. 이게 포인트거든요. 내가 있는 세계란 내가 원고지와 마주하여 내 “야망의 역량”으로 새롭게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신세계이니까요.

 

김: 그러니까 잔설씨의 소설은 또 하나의 세속적인 세계와 대치되는 창조된 세계, 세속에 없는 초탈한 “영성의 세계”라 해야 겠군요.

 

잔: 완전 그렇습니다. 나는 어릴적부터 내게만 속하는, 방금 문학씨가 말한 그 영성의 세계서 살아왔어요. 그러니 난 이 세상 인간들이 다 익숙한 세계, 거기서 전개되는 속된 말, 대화에 대해서도 반감을 갖고 있었답니다.

 

김: 역시 반골적 소녀셨군요!(웃음)

 

잔: 네, 어른들이 이렇다고 하면 나는 굳이 아니라고 했어요. 내가 영위하는 세계는 내가 창조해내서 세속세계를 저항하는 거지요. 내가 기왕 이 세속세계를 이탈하여 살수없는 만큼이나 이 세속과 저항하는 방법으로서의 내 세계를 만들어 내는것, 이게 내 소설창작입니다.

 

5.“잔설 서술양식”

 

김: 나는 잔설씨의 소설을 반복적으로 열독하면서 잔설씨는 중국문단에서 매우 기이하고 그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유니크한 소설쓰기 양식(모델)을 창립해냈단걸 발견했습니다. 물론 제 말씀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전통적 열독습관이나 경험으로 당신의 소설을 읽는다면 소설의 스토리 전개, 작중 인물의 발전 등이 추측 불가능일 뿐만이니라 소설 언어의 어휘, 구절등이 끊어지고 연결이 결핍된 고립성, 그리고 인물사이, 사건사이, 행동사이에도 고립, 단층이 있어 난삽함의 미궁입니다. 따라서 미궁의 구조는 특이한 텍스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어, 현실의 장면같아보이지만, 세부에서는 또한 철학적 내면 심층의 테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 인성은 무엇인가? 어떻게 왜 살아야 하냐? 철학적사고를 구체적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통적 서술양식으로 이런 상징적 세계를 표현하기 어려우니까 잔설만이 있는 특수한 서술모델을 고안해냈다고 봅니다.

 

잔: 아하! “잔설 서술양식”이란 개념이 좋은데요!(웃음) 내 소설이 재래식 전통소설 서사모델과 전혀 틀린 이야기 구성으로 돼있고, 카프카와 같은 텍스트가 난해한것과 같이 내 소설도 난해합니다.

 

사실 영혼에 관한 이야기는 그 속으로 파고들어가면 전통소설이야기보다 더 재미난걸 발견할 수 있고 구조도 기이하여 미증유의 미(美 )를 발견 할수 있어요.

중국 소설가로서 내가 처음으로 카프카를 해독한 책을 펴냈는데 내 평론집을 보면 카프카의 묘미(妙味)를 터득할수 있게 되고 따라서 전통적 추리소설보다도 더 절묘한 이야기와 만나게 될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큰 진감을 느낄수 있을꺼에요.

 

6.카프카를 무색케 하는 작가

 

김: 카프카를 해독한 책으로서는 정말 일류에 속하는 책이라 평가합니다. 잔설씨는 자신에게 큰 영향 준 작가를 우선 카프카를 꼽고 일본의 카와바타 야스나리 등을 지목하시는데, 카프카의 소설《성》《변신》등과 비교하여 볼때, 나는 본인 앞에서 칭찬하는게 아니라, 이미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우리 잔설씨가 카프카를 초월했다고 진지하게 평가 하고 싶습니다.

 

잔: 사실 나도 동감이에요(웃음), 자화자찬이란 빈축을 살 위험을 무릅쓰고 직언하자면, 카프카 소설의 영역이 나보다 훨씬 좁고 인간의 부조리에 관한 사색은 좋으나, 이미 인성, 인간의 자아 등 여러 영역에서 나는 그를 넘어섰다는 자신감이 들어요, 세계적으로 나와 같은 소설은 전례가 없지요!

 

김: 과연 그렇네요! 카프카는 소설에서 어떤 이념을 불어넣은 건 아닌가요?

 

잔: 그건 후세 평론가들이 억지 해석이구요, 카프카의 작품이 철학적이념의 고차에 달할수있는 이유는 그의 사고에서 나온게 아니라, 사실은 내심의 정서적 누적에서 온것입니다. 내 생각에 현대주의(모더니즘) 소설은 즉흥적으로 써낸거에요. 《성》역시 완전히 즉흥으로 씌여진것입니다.

 

《심판》《변신》역시 간단한 철리를 끄집어 내기위해 그렇게 긴 글로 쓴거지요.

 

김: 잔설씨는 카프카보다 더 전위적이고 그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지요. 카프카 서술양식은 연결성이 있지만 당신의 소설은 연결성이 결핍된 상태로 모든게 고립되고 점(点)으로 되여 있어서 조약성이 있지 않나 생각 됩니다. 어떤 서양의 평론가가 잔설씨의 소설을 보고 “중국인도 이렇게 쓸수 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고  절탄했지요. 카프카보다 더 전위적이고 모더니즘적이라는 거에요.

 

잔: 사실 아까 문학씨가 내 소설에 연결성이 부족하다고 얘기했지만, 내 작품엔 일관적 정서가 연결돼 있고 내가 쓸 때도 정서적으로 수미일관 같았답니다. 고립돼보이지만 정서로 관통돼 있어요.

 

내용으로나 서사양식으로나 언어로 보나 정말 나같이 소설을 영위하는 작가는 세계적으로도 나밖에 없어요. 난 이 점에 대단히 자부심을 갖고 있답니다.(웃음)

 

7.”신실험문학”이란 무엇인가?

 

김: (웃음)동감입니다. 그리고 당대 중국문학의 여러가지 사조, 기법이 우후죽순처럼 솟아 나왔는데, 잔설씨의 약 10년전부터 스스로 제기한 “신실험(新实验)문학”이란 개념이 신선했어요. 그건 잔설씨의 창작충격 그 자체와 연관이 있다 보는데요. 이 점에 대해서 상세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잔: 나는 친한 장소파(张小波)와도 “우리의 문학”에 관해 토론을 했지만, 장소파씨는 우리의 작품을 “본질을 묘사하는 문학”이라 칭했는데 나는 나같은 부류의 특이한 문학을 “신실험”이라 자칭하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험”의 특징이 우리 부류의 작품중에 관철돼 있는바, 하지만 우리의 실험은 서양의 신소설의 텍스트위주의 언어적 실험과 상당히 이질적이지요.

 

김: 오, 서양의 신소설과 틀리는군요.

 

잔: 네, 나같은 소수의 작가는 중국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고집하면서 외부적으로는 고전 문학언어에 대한 존중을 보류하고 있어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문학은 인성의 가장 깊은 곳에 역적(力的)인 나선형의 폭발로 발육되는건데, 이 합리성은 반론의 여지가 없으며 생명력은 추측할수도 없이 강하답니다. 

 

  왜 이 실험문학을 하게 되었냐면, 우리 자신의 정신적 억압이 너무 오래고 본능적으로 보복의 충동이 우리더러 민족의 거대한 잠재의식의 보물고에 잠입하게 했는데, 또한 이 보물이 처음으로 우리 자신에게 소유하게끔 했습니다.

 

김: 그러니까 자아의식이 강한 잔설씨에게는 모든 “외부” “외계”가 다 자신적 경상(镜像)에 불과 하다는 거겠죠!

 

잔: 바로 그거에요! 물론 나의 글쓰기는 서양 고전문학을 배운 기이한 과실이지요. 중국 신문학에 대한 포위망을 격파하는 그런 노력입니다. 그러니까 이왕의 중국 주류문학이 인성의 옅은 표층위에서 오락가락하는 관성을 격파하는 “새로운 실험문학”이 노린것은 핵심,본질입니다. 또한  “신실험문학”이란 자아에 관한 문학입니다. 즉 자신을 실험품으로 생명력이 얼마만큼 진부한 통념, 관념의 질곡에서 폭발할 수 있냐 테스트하는거지요.

 

이런 문학의 전망은 무한히 넓은것으로 전통문학의 협애성과 유치성을 포기하고 직접 인간성으로 승화되여 자신을 구하는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기 때문에 도달한 보편적 의의는 전례없는것입니다.

 

이러자면 자신의 영혼속에 들어가 영계에서 피비린 싸움을 벌여 종극적인 미( 美)를 걸러내야 합니다. 그러나 작가가 자신을 제단에 올려 놓고 전인류에게 전시하는 장거이지요. 난 이것으로 자호감을 느낍니다!(웃음)

 

김:  (웃음) 대단한 장거네요! 영혼의 격투속에서 미의 극치가 생출하는 문학, 과연 영성의 문학이군요. 그러니까 “신실험문학”을 “영성의 문학”이라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8.“자동적 서사”혹은 무당 같은 글쓰기

 

잔: 무방하지요!

 

김: 나는 어쩐지 무당이 신이 내려 굿을 하듯이 잔설씨같은 작가는 신이 내린 그런 작가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웃음),아닌가요?

 

잔: 무당과 유사성이 있어요. 나처럼 고난도(高难度)적 글쓰기는 모든 작가와 이질적인데, 조상의 유전성을 의존하면서 무술(巫术)적인 자동서사(自动书写)와도 유사하지요.

 

그렇다고 무술은 아닙니다. 이건 강대한 합리성과 공모한, 잠재의식심처에서 유발한 봉기와도 같습니다.

 

그러니 이게 쉽지 않아요. 신실험문학, 또는 아까 문학씨가 제기한 영성의 문학 글쓰기는 작가 자신의 지극히 민감한 감각과 천재적인 강철같은 논리사유력이 구비되여야 하지요.

 

김: 그러니 일반 한다하는 대가적인 작가들도 범접을 못할 영적세계의 글쓰기군요!(웃음)

 

잔: 그렇죠. 또한 여기다가 서양문화 핵심적 내재반성의 힘이 가미해야 됩니다. 영혼에 대한 격투도 옅은 표층차원의 “자기비판”따위가 아니라 명상중에 암흑의 통로를 진입하여 내심의 지옥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 이계(异界)에서 안깐힘을 다하여 인성의 퍼포먼스(Perfomance)를 통해서 인간자신의 여러가지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매번 창작은 번마다 낡은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자신을 탄생시키는 실험이지요!

 

김: 참 쉽지 않을 텐데요. 그런 자신의 죽음과 신생을 이룬다는게.

 

잔: 물론입니다. 이런 창작이 고난도라고 했던 까닭은, 머릿속에 텅 비어있어 의거할데가 없는상태에서, 무중생유(无中生有)로 폭발시켜 자신을 구원하는 빛발을 생산시켜야 하니까요. 일반인에게서는 이런 신비한 방식이 불가사의로 보이지만, 사실 이런 방식은 가장 자연적이고 인성이 부합되는 방법이에요.

 

김: 그러니까, 작가가 오랫동안 자각적으로 이런 레슨을 거쳐야 되겠네요.

 

잔: 네, 그런 훈련을 통해 일종 심층적 은밀생활(심상)이 인간의 일상생활과 동재해야 됩니다.

 

김: 이런 신실험문학은 일반 작가의 실험소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다른 차원의 얘기가 되겠네요.

 

잔: 그래요.马原、洪峰、王蒙、莫言등 신시기 소설의 선봉자와는 차원이 틀리지요. 이들은 표층인성에서 표유하지만, 나는 심층 인간의 내면 영혼을 쓰니까요. 내게 글쓰기는 예술지상의 경향이 있고, 예술에 대한 경민도는 중국문학사에서 유례를 찾아 볼수도 없답니다.

 

 

9. 왜 중국문학에 고전적 명작이 못 나오나?

 

김: 어떤 외국 평론가가 지적하기를 “잔설에게는 두개 영혼이 있는데 문학적 영역에 나타난 귀신적인 영혼과 세속중의 일반인과 별 다른게 없는 영혼, 이 양자가 분리된 상태”라고. 이런 분리를 통해 영적인 글을 쓰는게 이해가 됩니다.

 

자, 그럼 화제를 돌려서 당대 중국문단, 문학에 관한 솔직한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잔: 중국 당대 문학, 솔직이 고백하면 유치하고 자아가 결핍하고 공리성이 강하고 또한 정치색채가 많은게 흠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표층현실을 초월하여 심층의 내면세계,자아의 세계, 그 수수께끼같은 세계를 발굴하는 영혼의 문학, 심성의 문학이 순문학에조차도 보이지 않지요. 나같은 작가는 아직 극소수자이고 아직 이해자가 적습니다.

 

김:  이건 중국의 문화전통의 힘이 너무 강대하기 때문인가요?

 

잔: 그래요. 그런 전통의 토양에서 육성된 문학은 독자적으로 인간성탐색의 사명을 짊어지기엔 너무 역부족이고, 그런 힘이 모여도 결국 와야 할 이성의 광(理性之光)을 차단해버립니다.

 

그러니 당대 중국문단에서 미래에 영구히 남을 고전적명작이 나오기엔 너무 실망적이예요. 우리에겐 민족문화에 대한 교양이 부족하고 순문학이 박약하지요. 그런 “민족성”과 “세계성”에 관한 의논이 자주 나오지만, 이런 용속적인 테마자체가 하품이고 옹졸하게까지 느껴져요.

 

그러기에 이런 의논보다는 우리에게 필요한건 원대한 흉금과 기백, 생명,인성, 독립에 대한 집착과 문학자신에 대한 자신감이지요.

 

10.중국문학의 집단성 퇴보, 그리고 자비(自卑)감

 

김: 그래도 근대 《홍루몽》이나 당대의 가평요, 막언, 여화 같은 명작가들이 나타나지 않았나요?

 

잔: 예전에도 어느 글에서 언급 했지만 ,《홍루몽》이 삼라만상을 썼지만 인물의 자아의식은 여전히 표층적에 머물렀고 인간의 아동시대에서 답보하고있으니 서양과 같은 성숙과는 거리가 멀지요.

 

자아적 격투에 상승되지 못한채 아동적 유치성에 정지돼있어요. 그러니 이 문화속에서 자란 나는 이 문화의 결함을 비판하지요. 우리가 성숙해야 하니까요. 문학자들마저 아동기에 머물러있으면 말이 됩니까.

 

김: 잔설씨는 자아의 영혼의 시각에서 중국문화에 대한 비판도 잔설적입니다.

 

잔: 중국문학속에 잠재된 최대의 결함이 유치성, 아동성이예요. 아동의 경계에서 벗어나 성숙되어야 되는데 말이에요. 특히 남성작가들이 더 해요. 물론 내가 여성이니까 그게 보이지요. 거이 낭만주의, 현실주의 그런 수법으로는 자기반성이 높은 수준에 달하기 어럽지요.

 

김: 재밋는 지적이네요!

 

잔: 80년대 余华、苏童 등이 좋았지만 40이 넘으니까 후퇴해버려요. 莫言도 40살이 넘으니 신창작 그런 탐구보다도 자기 답습상태에서 정지됐어요.

 

말하자면 중국문단의 집단적 퇴보, 그런거지요! 그리고 모두가 중국전통문화에 회귀해야 유일한 출로라고 생각해요. 우리 중국것이 다 서양, 외국것보다 우수하다 이거예요. 우리 조상의 우수성을 발굴하여 발양광대(发扬光大)하면 세계문학을 다 정복한것처럼(웃음).

 

그러니 문단의 남성작가, 평론가들은 대부분, 나의 글쓰기에 대해 아니꼽게 보고 있습니다.(웃음)

 

서양문학의 그런 “인간”의 문학만이 문학이고 우리의 문학은 “아동적문학”이라 질타하니까. 그들이 반발하는거에요(웃음)

 

김: 내가 우리 조선족문학의 수준이 50점도 안된다고 꼬집었는데 그것과 유사하네요(웃음)!

 

잔: 그러니 결국 그들이 자비(自卑)하고, 흉금이 좁은거지요. 이 문화속에 안주하면서 뭘 수호한단말입니까! 지킬 수 있나요? 문화가 지킴으로써 신생을 얻을수있나요? 왕몽이 이런 선전을 잘하는데 뭘 수호하자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그의 관념중엔 진정한 반성이 없습니다.

 

김: 잔설씨가 중국 주류문단과 거래를 안하는것도 차원의 차이기 때문입니까?

 

진: 그래요. 주류가 어디 진짜 순문학을 하는겁니까? 난 중국작가협회주석이 큰 모임행사에 나와 달라고 초청한것도 한마디로 거절 했어요. 내가 왜 거기에 소속되고 나가야하나요! 난 내가 독립자유로 글쓰기만으로도 충분해요. 수준미달 작품을 갖고 서로 높이 올리추고, 굉장히 분식을 하는 그것도 자신감이 없는 표현이거든요(웃음)

 

11.초인적 “이단자”의 일상

 

김: 일상생활에 대해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천재적 “이단자”의 그게 궁금합니다.(웃음)

 

잔: 기실 내 글이 괴이해서 그러지 난 상당히 세족적인 인간이예요. 전형적 소시민이지요.(웃음)

 

지금 난 거의 세속적인것과 사귀지 못하고 있어요. 옛날과 많이 달라요. 20대에는 남편과 재봉일을 하면서 글을 썼지만 이젠 그것도 관둔지 오래고 남편이 다 가사를 하고 난 책읽고 글쓰기만 전념합니다.

 

김: 그러니 아까 노선생(남편)이 한 요리들이 정말루 맛있었어요. 전업주부(主夫)의 살뜰한 보살핌이 있으니 좋겠어요.

 

잔: 나는 매일 매일 365일이 독서와 글쓰기예요. 설날도 안쉬고, 멈출줄을 몰라요. 하루만 거르면 병에 걸릴것만 같아요.

 

김: 과연 글쓰기의 특급”프로패셔널”이시네요. 지금 거이 친구와 만나는 일도 안한다면서요!

 

잔: 네,절대루 없어요. 예전에는 세속적인 사람이었지만(웃음), 창작이 날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서서히 뒤로 물러서고 물러서서 이젠 두사람의 세계에요. 나와 남편의 세계, 난 지금 자신의 세속적 생활을 압축시키고 있어요.

 

김: 글쓰기는 어떤 스타일입니까?

 

잔: 난 오전에 장거리로 달리기를 하고 와서 샤워하고 책상과 마주앉아 약 한시간 쯤 글을 써요. 원고지에 육필로 쓰지요. 컴퓨터로 타자를 안해요. 

 

영어도 독학으로 배워서 글도 쓸수있어요. 영국, 미국에 짧은 글도 발표하기도 해요.(영문 글과 육필로 된 원고를 나에게 보여 주기도 한다)

 

김: 정말 나와 유사한데가 많아요. 나도 육필로 쓰고 타자를 할 줄 몰라요(웃음)

 

잔: 난 구상도 사색도 안하고 그냥 원고지만 펴면 글이 술술 나와요. 그리고 수정도 안합니다.(从不构思,一笔下稿,也不改稿) 매일마다 글쓰기외에는 또 철학을 읽고, 철학분야의 글도 써서 몇권 냈어요. 북경대 철학교수 수준도 내 눈에는 유치해요(웃음)

 

12.암흑속의 인간을 광명으로 인솔하기 위하여

 

김: 과연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천재이시네요! 어느 학자가 지적하다시피 “잔설은 정신의 깊은 차원을 추구하면서 중국문학사에서 최초로 문학적방법으로 이 과정을 묘사해냈다”고 하면서 “잔설의 소설은 일종 즉물(即物)적이 아닌 정신의 유열(愉悦)이다”고 평가했어요.

 

잔: 감사합니다! 사실 암흑속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이 암흑에 있는 줄 모르고 살지요. 우리가 문혁시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낙원이라고 느낀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 나라 국민은 병에 걸린 환자와 같아요. 지어는 아주 병질이 골수까지 배인 그런 엄중한 상태거든요. 무슨 병이냐면, 노신선생이 쓴 ”아Q병”, 자아를 상실하고 생존의 낙을 잃어버린 그런 우매한 환자이지요.

 

자아를 보아낼수 있는건 소경이 앞을 보는거와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현재도 내일도 내게 주어진 재질을 활용하여 “자아”를 인식하는 어려운 글쓰기에서 극치까지 발휘할수 있는게 나의 유일한 낙이거든요.

 

나는 오로지 암흑의 심층에서 끊임없이 길을 개척하고 등불을 만들어 인간들을 광명으로 인솔하는 그런 성취감에서 살고 있어요. 물론 이런 글쓰기가 나와 국민들과 교류하는 특이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나는 내가 건강하게 80세까지 장수할수있다는 자신감이 있는데, 난 생명이 다 하는 순간까지 글쓰기를 견지 할것입니다.(웃음)

 

                                              (끝)

 

대담자 소개

잔설(残雪),본명 등소화(邓小华) 1953년 장사에서 태여남.

당대 중국 신실험문학의 기수. 

 

1985년 처녀작 발표이래 700여만자에 이르는 신실험문학작품, 평론집을 발표하였음,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영어권,일어권문학계에서는 당대 중국 문단의 가장 창조성과 독창성이 있는 작가로 꼽히고 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 《苍老的浮云》《五香街》《最后的情人》등이 있다. 그중 장편소설《最后的情人》은 미국에서 최우수번역소설상을 수상했으며 영국 독립문학소설상 후보로 지명되였다.

 

2017년 미국에서 출판된 장편소설《边疆》은 문학계의 화제작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일본에서는 잔설의 소설은 문학계의 환영을 받고 있는바, 대량의 소설 문학평론이 번역 출판되였으며 2008년에는 《세계문학전집》대형시리즈에 잔설의 중편 2편과 단편 5편이 입선되였는데 이는 중국작가로서 유일 입선자이기도 하다. 일본의 변역가 콘도나오코(近虅直子)는 동경에서 “잔설연구회”를 창립하여 해마다 잔설을 소개평론하는 잡지 《잔설연구》를 정기로 펴내고 있다. 

이밖에 미국,영국, 일본의 대학에서도 잔설과 그의 작품을 문학교과서로 사용하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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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 ]

3   작성자 : 윤로인
날자:2018-09-20 09:25:31
김선새의 글을 읽는 일은 내 여생의 가장 큰 행복중의 하나입니다 .천재적 이단자의 글쓰기, 일상생활,사고방식 이런것들은
정말 우리에게 큰 계시를 주고 있으며 그누구보다도 김선생의 글은 사상성 ,철리성,지식성에서 함량이 높기때문에
독자의 환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족 지식인속에 김문학 선생이 있다는것은 우리조선족의 행복입니다 !
2   작성자 : 경희
날자:2018-08-29 07:55:58
좋은 대담 읽고 많은 공부가 되엿습니다
잔설은 제가 좋아하는 특수한 기법과 사상을 갖춘 여류작가 이지요
김문학교수님만이 할수 잇는 시리즈 문화대담 정말 수준이 높고 영양가 만점입니다
자주 대담 올려 주시길 기대해요 ㅎㅎ
1   작성자 : 연변독자
날자:2018-08-02 09:06:26
오래만에 오른 대담 잘 읽었습니다 .
두분 다 영성이 있는 특이한 문화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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