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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에서도 조각적 회화공간의 미를 창조해야...
2017년 10월 28일 22시 39분  조회:422  추천:0  작성자: 죽림

유명 화가의 미술 작품들 (18) : 미켈란젤로 Buonarroti Michelangelo (1475~1564)

 

조각적(彫刻的) 회화공간의 창조(創造)

 

 

 

 

시스티나 예배당(정면)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궁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를 의뢰받았을 때(1508년) 성당 옆벽에 이미 15세기 화가에 의해서 모세전(傳)과 그리스도전(傳)의 주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거기에 그는 구약성서 속의 장면들로써 이를 완결지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그것은 천지창조에서 시작하여 노아의 이야기에 이르는 장면, 그리스도의 탄생과 재림을 예언하는 사람들, 즉 선지자들의 여자 예언자격인 무녀(巫女)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선조들의 모습이 이에 해당한다. 그때 그는 율리우스 2세 묘당을 위해 열심히 제작을 추진 중에 있었다. 그것이 중단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이 천정화(天井畵)를 위해 조각 아닌 회화(벽화)의 세계에 들어서야 했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도 <캇시나(cascina)전투>와 같은 전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천정화를 입구에서 제단 쪽으로 진행하였고 표현 형식도 4단계로 나누어 발전시켰다.

 

 

 

 

최후의 심판

 

한 팔을 들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군림한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천상(天上)과 지옥(地獄)의 세계가 함께 하는 거대한 공간과 그 속의 군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 규모는 자그만치 2백 평방의 벽에 391인의 인물이 그려져 있는 그런 것이다. 이전의 어느 심판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규모와 구상이다. 이 일을 위촉한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사망했지만 누구보다 미켈란젤로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파울러스(Paulus 3세)가 교황이 되고 나서 새로 의뢰하여(1534년), 그는 더 없는 제작에의 의욕을 불어넣을 수가 있었다. 이때는 또 개혁적 정신주의자 비토리아(Vittoria Colona)를 사귀게 된 시절이라 행복하던 때이기도 하다. 당초의 계획은 제단 벽의 이 최후의 심판과 아울러 입구 벽에 장식할 <루치퍼(Luzifer)의 추락>이 들어 있었으나, 다음 제작할 파올리나 예배당 일로 그를 데려가 버려서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최후의 심판

 

한 팔을 들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군림한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천상(天上)과 지옥(地獄)의 세계가 함께 하는 거대한 공간과 그 속의 군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 규모는 자그만치 2백 평방의 벽에 391인의 인물이 그려져 있는 그런 것이다. 이전의 어느 심판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규모와 구상이다. 이 일을 위촉한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사망했지만 누구보다 미켈란젤로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파울러스(Paulus 3세)가 교황이 되고 나서 새로 의뢰하여(1534년), 그는 더 없는 제작에의 의욕을 불어넣을 수가 있었다. 이때는 또 개혁적 정신주의자 비토리아(Vittoria Colona)를 사귀게 된 시절이라 행복하던 때이기도 하다. 당초의 계획은 제단 벽의 이 최후의 심판과 아울러 입구 벽에 장식할 <루치퍼(Luzifer)의 추락>이 들어 있었으나, 다음 제작할 파올리나 예배당 일로 그를 데려가 버려서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예레미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미래에의 희망을 강조하면서 살던 선지자 예레미야가 무녀(巫女) 리비아 맞은 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앞선 무녀와는 대조적으로 조용히, 그리고 생각에 잠긴, 정적인 포즈를 하고 있는 노인상(老人像)이다.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에서와 같이 시스티나 천정화에서 여러 가지의 독자적인 해석과 조형적인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규모와 작업의 범위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범인(凡人)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은 그 하나하나의 그림의 내용과 도상(圖像)과 그들이 전하는 사상을, 특유한 인간과 인체의 표현으로 매개하면서, 한편 전체의 구성에 대한 그 나름의 리듬에 한 몫을 담당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형태의 표현만이 아닌 특유의 미적 색채감을 남기고 있다.

 

 

 

 

리비아의 巫女

 

고대의 여자 예언자격인 시빌라(Sibylla)라는 무녀(巫女)들은 열 명 정도가 세계 여러 곳에 살면서 앞으로 닥쳐올 일을 말하였던 것으로, 후에 와서 그리스도나 그의 가르침에 관한 예언으로도 가끔 인용되었다. 여기서는 남자 예언자와 함께 등장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이 예언자 연작에서 다른 부분과는 구별되게, 대개가 책이나 종이 두루마리를 펴고 있거나 들고 있는 포즈를 취하게 함으로써 그 부분의 특성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여기서도 '그때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모든 일들을 기록한 책을 내놓을 것이다.' 커다란 책을 두 손으로 들고 뒤에서 옆으로의 움직임의 공간을 예상케 하는 이 리비아의 무녀의 그림에서 앞의 예언자 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격렬한 움직임의 '요나'에 가까운 커다란 움직임의 자태를 찾아볼 수 있다. 그가 남긴 이 그림을 위한 습작에는 남성상(男性像)의 데생이 돋보인다.

 

 

 

 

에리트레아의 巫女

 

노아의 이야기를 둘러싼 선지자 그룹, 즉 입구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이 <에리트레아의 巫女>는 이사야와 마주하는 비교적 정적인 표현 세계에 속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에게서는 육체와 영혼의 표현상의 균열이나, 도상(圖像)내용과 표현 형태 사이의 일치의 초극이라 는 문제가 그의 중요한 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런 면의 한 경우를 이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후의 심판을 말한 에리트레아의 무녀가 비록 책장을 넘기면 서 무시하는 모습에 그의 그 놀랍고도 엄숙한 예언의 기미를 담고 있다고도 하겠으나, 역시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인체의 움직임이 그다지 크지 않은 조용 함이라 하겠다. 뒤의 기대의 박공을 떠메고 있는 장식 조각의 푸토(putto)들이 입구 위의 예언자 군에서 보는 바와 같은 정면성을 넘어서 사선으로 움 직이고, 그에 못지 않는 배경의 어린이의 움직이는 포즈도 이를 깨뜨리지는 않는다.

 

 

 

 

노아의 만취

 

'방주에서 돌아온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 셈과 야벳에게 고하매 이들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는 창세기 9장의 이야기 내용이 하나의 화면에 동시에 묘사되었다. 커다란 포도주 통이 놓여 있는 막사 안에 취해 있는 노아와 그 앞에 세 아들이 서 있고, 밖에는 '씨를 뿌리고 거두어 들이는 일에, 덥고 춥거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낮과 밤을 끊이지 않는' 농사를 짓는 노아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림 네 귀퉁이에는 다름 아닌 4계절의 의인상(擬人像)이 그 의미의 내용에 일치시키고 있다. 봄(右下), 여름(右上), 가을(左下), 겨울(左上).

 

 

 

 

빛과 어둠의 창조

 

천정화 중간축(中間軸)의 마지막에 해당되며, 구약성서 순서로는 첫째 장면이 되는 이 그림의 장면은 바로 창세기 1장 45절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빛과 어둠의 창조 내용이다. '-하나님의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 내용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담홍색의 옷에 싸인 신령이 두 팔을 들고 위를 쳐다보며 빛과 어둠을 만들고 있는 것이 그려져 있다. 이 가운데의 그림 내용에 일치하고 있는 듯이 사방 귀퉁이에 낮(右下), 아침(右上), 저녁(左上), 밤(左下)을 나타 내는 것으로 보이는 의인상(擬人像)이 있고, 그 각각 한 쌍씩이 끈으로 메다이용에 연결되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한쪽 팔을 머리 뒤로 가져가서 몸을 옆으로 틀고 있는 <아침>의 상에서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정신적인 상태를 육체적으로 표출할 때 많은 움직임도 보인다.

 

 

 

 

델포이의 巫女

 

<빛과 어둠의 창조>에서 노아의 이야기들에 이르기까지 9구분으로 된 구약성서 내용의 천정 중심 화면 전 후 좌우에 12체의 선지자, 그리고 무녀가 그 아래 건축적인 틀에 억눌려 있는 그리스도의 선조 그림들보다 훨씬 위풍있게 그려졌다. 그런 예언자의 위치는 입구 바로 위에 있는 선지자 자카리아(Zaccaria)를 비롯하여 첫째 그림, <노아의 만취>를 두고 왼쪽에 <델포이 의 무녀>와 오른쪽에 <선지자 요엘(Gioele)>, 그 다음의 삼각 벽면을 건너서, <노아의 번제>를 두고 왼쪽에 선지자 이사야와 오른쪽의 에리트레아의 무녀와 <에바의 창조> 그림을 두고, 구마의 무녀와 선지자 에제키엘, <하늘과 물의 분리>를 두고, 선지자 다니엘과 페르시카의 무녀, <빛과 어둠의 분리>를 두고, 리비아의 무녀와 선지자 예레미야, 그리고 제단 바로 위에 선지자 요나가 위치하게 된다. <델포이의 무녀>는 후반 이후의 표현이 전체적으로 대담해지고 커지는데 반하여, 균형이 잘 잡힌, 전반의 그림 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이다.

 

 

 

 

천체의 창조

 

미켈란젤로는 이 천정화의 가운데 축에 해당하는 그림의 구분에 4체의 나체상<이뉴도(Ignudo)>이 있는 작은 형태의 것과 그것이 없는 큰 형태의 경우를 교대로 배열하면서 예배당 안쪽에서부터 내용의 순서가 시작되어 입구에서 끝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내용상으로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이것이 달과 해를 창조하고 식물을 창조하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19절까지의 이야기가 되겠다. 밝음을 안고 달과 해를 창조하는, 역동감에 넘친 성난 표정의 하나님의 비상하는 모습과, 식물을 창조하는 하나님이 등을 보이며 사라지는 모습이 한 장면 안에 동시적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서는 입구 쪽의 노아의 장면에서 보는 바와 같은 실내 장면이 외부 공간으로 바뀌고 그 표현은 여기에서 그 절정을 맞이하는 역동감(力動感)이 넘치는 공간감(空間感)에 가득 차 있다.

 

 

 

 

이브의 창조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창세기 2-21, 23). 커다란 망토에 둘러싸인 하나님은 오른손을 들어 그야말로 나무 밑에 자고 있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오는 듯한 이브를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에서 그가 볼로냐(Bologna)에서 본, 그가 많은 영향을 받은 쿠엘치아(Gacopo della Querciar)의 힘찬 구약성서 부조와의 유사점을 지적받기도 한다. 주위의 나체상은 인체 속에 흐르는 네 가지의 액체 내지 네 가지의 인간의 기본 성격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혈액으로서의 다혈질(右下), 황담즙으로서의 담즙질(右上), 점액으로서의 점액질(左下), 흑 담즙으로서의 우울질(左上) 등으로 지적된다.

 

 

 

 

요나

 

천정화의 입구에 위치한 선지자 자카리아(Zaccaria)와 마주 보며, 안쪽 제단 위의 중요한 벽면에 차지하고 있는 것이 <요나>이다. 조용하고 균형이 잡힌 전자의 그림들이 보여주는 표현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몸을 뒤로 젖히고 심한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뒷배경의 유동성도 이에 호응하여 한층 더 고조되는 공간을 낳게 한다. 요나는 큰 물고기에게 먹혀 하나님에게 기도 한 결과 3일 만에 그것에서 토해 내어졌다. 그런 뜻에서 부활의 상징이 덧붙기도 한다. 커다란 입의 물고기가 요나 옆에 보인다. 이와 같이 12체의 선지자와 무녀(巫女)의 배치라는 구성이 타에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거소가 마찬가지로, 이들 선지 자 내지 무녀를 그리는데서 보여주는 미켈란젤로의 해석이나 의미 부여도 독자적인 데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요나가 있는 천정에 붙은 벽에 바로 최후의 심판 그림이 위치한다.

 

 

 

 

이사야

 

메시아를 기다린 선지자 이사야가 정면을 향해 옆을 내려다보면서 앉아 있는 데서 드러난다. 직각에 가까운 팔과 다리의 포즈는 등뒤로 둥글게 윤곽을 주는 망토의 곡선과 함께 이 천정 벽황서 미켈란제로가 여러 번 시도하던 경향으로, 여기서도 반영시키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이 가만히 앉아 있는 좌상에서도 주로 그 포즈나 형태감의 흐름에서 정적인 고전주의를 초극하고 있다. 그런 예를 이 천정화에서는 수없이 헤아린다. 조각가인 그가 그림 세계에서 보여주는 조상적(彫像的)인 것 속에서 나타내고 있는 그와 같은 특수 경향은 그의 예술로 하여금 고전적 이상주의 속에 이미 싹트고 있는 매너리즘적인 특성을, 그것이 나아가서는 과장되는 공간감과 더불어 바로크적인 특성을 지닌 것의 근거로 지적 받기도 한다.

 

 

 

 

노아의 燔祭(번제)

 

노아의 번제의 주제로 알려진 내용은 홍수에서 구제된 노아가 그의 처와 딸, 그리고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에게 감사의 번제를 올리는 장면으로 창세기 8장 20-21절에 나온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다시는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미켈란젤로는 이 천정 벽화에서 캇시나 전투 하도(下圖) 이후 처음으로 프레스코 벽화 제작에 임하였고, 힘든 경험을 겪게 되었다. 방주 문 앞에 딸과 처 사이에 서서 하늘을 가리키며 준비를 지시하고 있는 흰 수염의 노아의 모습에는 <도니가의 마돈나>상의 요셉과 닮은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표현은 후기의 작품에 비하여 딱딱하다. 둘레에는 인간의 네 가지 감각 [후각, 시각(右下), 촉각(右上), 청각(左上), 미각(左下)]이 나체 의인상(擬人像)으로 표시되고 있다.

 

 

 

 

하늘과 물의 분리

 

하늘에서 물을 분리하는 일은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창조하신 다음 둘째날에 이룬 일이지만, 앞서 말한 그림의 순서로서는 천체(天體)의 창조 다음에 배치하였다. 그 이유는 네 귀퉁이에 물질계의 상징으로 보이는 4원소의 의인상을 함께 나타내기 위해서인 것 같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물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창세기 1-9, 10) 이런 내용에 그림의 주제를 맞춘 것으로 추측되는 것은 나체상의 상징과 어느 정도 연결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람, 즉 공기의 상징과 물, 불과 흙의 상징을 이들 속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푸른 옷을 둘러 쓴 여자같은 상은 물(左上)을 나타내고 곱슬머리는 불(右下)이 아닐는지. 두 손을 번쩍 든 하나님은 아래를 보면서 부유하고 있다.

 

 

 

 

원죄

 

여기서는 두 가지의 장면이 동일화면에 나타나고 있다. 중앙의 지혜의 나무를 중심으로, 왼쪽은 나무를 감고 있는 뱀에 유혹되어 이브와 함께 나무 열매를 따려는 아담, 오른쪽에는 천사에 의하여 낙원에서 추방되는 두 남녀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거기에 열매를 따려는 아담의 뻗은 파로가 유혹하는 뱀의 팔, 그리고 천사의 검 (劍)을 피하려는 아담의 뻗은 팔에서 다시 양 면(面)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균 제감과 나무를 이중(二重)으로 감고 있는 여자 얼굴의 뱀과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천사로 두 부분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오른편의 추방당하는 아담과 이브는 브란카시(Brancasi) 예배당의, 울면서 쫓겨나는 마사치오(Masaccio)의 같은 주제의 상을 방불케 하는 바 없지 않다. 그러나, 젊은 시절 흠모하던 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은 감정이 흐르고 있다.

 

 

 

 

에제치엘

EZECHIELE

1510년 355X380Cm

바티칸궁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 부분

 

 

성 베드로의 책형

 

앞서 본 티토스의 소묘에서처럼 전체로 묶여 있거나, 매여 있거나, 또는 추락하는 걷잡을 수 없는 부자유스러운 육체 속에 정신적인 고통을 내뱉고 있는 것이 경험상으로 봤을 때의 그 당시의 미켈란젤로의 예술 원리라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그의 특성은 오늘날 <노예>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는 여러 미완성 작품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이런 정신과 육체의 싸움에는 거의 비극적이라 할 성향마저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것에 속하는 화제(畵題)로서 적절한 것이 후기 작의 <성 베드로의 책형>에서도 드러난다. 화면에는 사선(斜線)으로 구획하면서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린 베드로가 중심이 되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미 중앙의 그와 같은 장면에 대 응할 만한 격렬한 움직임을 주위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무거운 하늘이 짓누르는 것처럼 모두가 속으로 침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울의 回心

 

그림은 바울의 다마스커스에서 있은 회심(回心)사건 을 다룬 것이다(사도행전 9장). 70살 가까운 미켈란젤로는 교황 파울러스 3세의 명에 따라서 <최후의 심판> 벽화가 거의 완결되려 할 때 이것을 다시 제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교황의 이름에 따른 바울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기독교에 강한 반감을 가진 사울이 전도하는 제자들을 박해하려고 대사제(大司祭)의 편지를 가지고 그들이 활동하는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도중,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이 내려와서 눈이 어두워지고 땅에 넘어졌다. 그때 '사울, 사울, 왜 나를 박해하는가?'의 소리가 들려와서 누군가고 물었더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그 후 기도한 그가 3일 후 다시 눈이 뜨이게 되자, 그는 신력(神力)에 감동하여 기독교로 개종(改宗), 이름을 바울(Paul)이라 하였다. 화면에는 하늘의 빛으로 넘어진 사울이 부축을 받고 있고, 하늘에는 예수와 더불어 이 기적을 보는 성자들이 있다.

 

 

 

 

미래의 왕 우지아와 그의 어머니

IL FUTURO RE OZLA

1510년 245X340Cm 바티칸궁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 부분

 

 

 

 

미래의 왕 에제치아와 그의 어머니

IL FUTURO RE EZECHLA

1510년 245X340Cm 바티칸궁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 부분

 

 

 

 

미래의 왕 조로바벨과 그의 양친

IL FUTURO RE ZOROBABEL

1509년 245X340Cm 바티칸궁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 부분

 

 

 

 

미래의 왕 요시아와 그의 양친

IL FUTURO RE GIOSLA

1509년 245X340Cm 바티칸궁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 부분

 

 

 

 

티토스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칙서로 일단 고된 일에서 해방된 미켈란젤로가 1532년 후반 로마에 들렸다. 거기서 여러 즐거운 친교를 맺은 것을 그 때의 편지에서 전하고 있다. 그 중에는 카발리에리(T. Cavalieri)와의 깊은 우정도 경험했다. 그 해 겨울이 미모의 귀공자가 와병에 들자, 위문으로 보낸 두 소묘가 가니메드(Ganymed)와 이 티토스라 전한다. 욕망에 쫓기던 거인 티토스가 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져 두 마라의 독수리에게 밤낮으로 간을 쪼아 먹히는 이야기이다. 이는 불법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사랑에 대한 형벌과 그 고통을 나타낸 것이다. 억센 독수리가 가하는 고통 속에 허덕이는 몸뚱이가 돌에 매여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이 소묘의 내용이다. 후에 그린 머리를 아래로 십자가에 못 박힌 베드로는 이런 고대 신화의 기독교적 해석으로 옮긴 것이라 말할 수 있다.

 

 

 

 

聖요셉이 있는 聖家族

 

피렌체의 부유한 예술 애호가인 도니(A. Doni)의 혼례를 위해 그린 그림으로 속칭 <도니의 톤도(Tondo: 메 달형)>라고 한다. 여기에서 성 안나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아기 요한이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같은 주제의 성가족 그림(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과 비교할 때 그 특징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뒤에 우뚝 솟은 성 요셉의 상에서다. 전통적인 구성에서는 요셉이 이런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바닥에 앉은 성모 마리아가 중심이 되어 몸을 뒤로 젖혀 요셉이 받들고 있는 그리스도를 안아 내리려는 모습에서 주요 인물 세 사람의 보다 밀접한 구성체가 성립된다. 이와 같은 군상의 구성체를 통해 드러나는 인체의 젖히거나, 굽히거나, 기대는 포즈는 그의 조각 작품에서 즐기는 기본 포름의 경향으로, 여기서 이미 그 기미 가 드러나고 있다.

 

 

 

 

켄타우루스族의 싸움

 

로렌초 데 메디치 궁정에서 우대받고 살면서 그곳 신 플라톤 학파 사람들과 교제하던 때의 작품이다. 네 발 달린 말의 상체(上體)가 인간 모습을 한 야수적(野獸 的)인 켄타우루스족(族)은 그 이웃 라피드 족(族)을 위협하던 족속이었다. 미녀 히포더마이어(Hippodamia) 혼례연에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그들 라피드 족의 아 낙네를 약탈했다는 켄타우루스 족의 신화 이야기가 주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 보여주는 미켈란젤로의 관심은 켄타우루스족과 싸우는 라피드족이 얽히고 설키면서 드러내 놓고 있는 나체(裸體)의 어지러운 군상(群像)이다. 가운데 팔굽을 들고 있는 켄타우루스 족의 에우류도스를 향해 손에 돌을 쥐고 던지려는 왼쪽의 라피드족과, 목을 조르고 머리칼을 잡아뜯는 오른쪽의 무리들 뒤로 달아나는 여자들이 함께 보인다.

 

 

 

계단의 聖母

 

일찍부터 표현력을 인정받은 미켈란젤로가 당시 피렌체 국부(國父)인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의 비호를 받고 공부하던 초기의 작품이다. 수유(授乳)받고 있는 듯한 그리스도를 품고 계단 앞에 앉아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반 이상을 차지하며 전면(前面)에 부각되어 있다. 마리아의 거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옷의 감촉은, 옆을 응시하고 있는 긴장되면서도 정적인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유동적인 포름의 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 교체의 성격은 옆에서 위로 오른 계단과 그 뒤의 아이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국부적으로 암시되거나, 부분적으로 형태감이 완성되어 드러나는 이 초기의 부조 형식에서는, 그의 이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유한 경향이 이미 엿보이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몸을 감싸는 옷과 무릎의 역할이라 할 것이다.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초기 작품이며, 동시에 르네상스 전성기의 대표작이다. 그리스도의 시신(屍身)을 무릎 위에 앉은 어머니 마리아의 군상(群像)이 자연스럽고도 이상적인, 특유한 아름다움을 띠며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후기에 가서도 같은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였으나, 그가 보여준 것은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상(大理石像)이었던' 이 작품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이 피에타상 형식의 직접적인 계보는 중세 북구(독일) 형식의 개신(改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물 크기 이상의 마리아가 보통 크기의 그리스도를 크게 포개진 옷의 무릎 위에 비스듬히 사선으로 안고, 슬픔과 고통을 내면화(內面化)시키고 있는 청정하면서도 부드러운 아름다움은 당시의 미켈란젤로가 보여준 독특한 이상적 조화미의 세계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하겠다.

 

 

 

 

다윗

 

'젊고 불고 용모가 아름다운' 다윗은 골리앗의 목을 벤 승리의 청년상(靑年像)으로서 조각가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가 되었다. 발 아래 골리앗의 목을 누르고 검(劍)을 가지고 서 있는 부드러운 소년상(少年像)은 그런 일반적인 다윗상의 형식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가로서의 자신을 충분히 발휘한 것도 역시 다윗상에 서였다. 그러나 그가 1501년 8월 피렌체 대성당의 의뢰를 받고 제작하게 된 그 커다란 대리석상은 그와 같은 승리의 상과는 그 취향을 달리하고 있다. 망태를 메고 옆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서서 돌을 쥐고 막 던지려는 순간의 나체(裸體) 청년상이 균형감을 지키면서 드러나 있다. 그 자신 같은 때에 청동(靑銅)의 다른 다윗상을 만들었다고 전하나 실물은 없어졌다. 1495년 메디치가에서 일단 나온 그는 실물보다 큰 헤르쿨레스 상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모두 이 작품 제작의 환경을 들려주는 것이다.

 

 

 

 

피에타

 

이 피렌체 성당 피에타를 최초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바자리(G. Vasari)의 예술가전(傳)에서다. (1550) 부성(父性)의 사랑이랄까 권위 같은 것을 띤 머리 수건을 쓴 니코데모의 모습이 뒤에서 떠받들 듯, 흐트러지는 그리스도의 시신을 앞으로 안고 있는 상이 지배적이다. 이 <피에타>는 마리아 무릎 위에 안긴 고전주의 적인 방식의 그의 초기 피에타와는 그 취향을 아주 달리하고 있다. 여기서는 <수난의 그리스도>의 형식을 빈 새로운 중세(中世) 해석인 매너리즘의 배경이 커다랗게 부각된다. 그것은 더 이상 이상화(理想化)하지 않는 세계에로의 복귀라 할 수도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이 거친 군상(群像)작업을 보고 곧 부러질 것 같은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스스로 즐기면서 제작한 이 작품 속의 니코데모에서 작가의 자화상을 보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승리

 

율리우스 2세 묘당을 위한 조각 가운데는 1505년 최초의 계획 이후 여러 번 그 계획이 바뀌거나 축소됨으로써, 제외되거나 방치되거나 새로 계획되는 조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가운데에 <승리>의 이름으로 불리는 조각은 같은 시기에 만들다 미완성한 채로 남아 있는 4체의 노예상(수염이 있는 노예, 젊은 노예, 아틀라스 노예, 잠이 깬 노예)과 의미 내용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그 <승리>의 상이 나타내고 있는 상 자체에서 부터다. 노인(老人)을 발 아래 밟고 있는 젊은이의 나체상, 거기에서 그는 단순히 한 노인에 대한 승리가 아니고, 적어도 노인으로 상징되는 내용에 대한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중세(中世) 이래 내려오는 '시간의 할애비'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나타내는 4체의 의인상과 더불어 이를 초극하는 승리를 말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브루투스

 

브루투스의 이름으로 우수가 섞인 남성 흉상(胸像)이 미완성이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 <최후의 심판> 제작 중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외형화(外形 化)된 인물상이, 즉 하나의 이상(理想)의 상(像)이 새겨져 있다. 당시의 미켈란젤로는 거대한 시스티나 제단 뒤의 벽화를 그리면서, 기품있는 비토리아 콜로나 (Vittoria Colona)와의 은혜에 찬 친교 관계를 맺고 있을 때라, 많은 편지와 시작(詩作)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에 압제자 코지모(Cosimo 1세) 때문에 고향을 등지게 되어 로마에 피신해 온 피렌체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나게 됨으로써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절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 속에 압제자 알레싼드로(Alessandro)를 살해한 로렌초 (Lorenzo de Medici), 즉 피렌체 공화국만의 자유의 보복자를 본 도나토(Donato Giannoti)가 있었다. 여기에 자극이 된 것이 압제자의 살해자로 이상화된 <브루투스>였다.

 

 

 

 

묶여 있는 노예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화를 완성한 직후 미켈란젤로는 그간 중단되었던 율리우스 2세 묘당을 위한일을 계속 했다. 이때 만들어진 작품으로 <모세> 이외에 <빈사의 노예>, <묶여 있는 노예>와 같은, 노예의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벌의 나체상이 전한다. 묶여져 있거나 인간의 고통스러운 상태, 또는 부자유스러운 인간의 상태는 사실 미켈란젤로의 후기 작품에서 특히 자주 논의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이것이 대리석 조각을 주요 표현 수단으로 하는 조각가의 자기 과제라는 각도에서 보면 그 내용과 재료에 관한 예술적 연관성을 강조할 수도 있다. 이 노예상에는 분명히 계획된 묘당을 위한 조각이라는 목적이 있고 보면, 사체(四體)가 하나의 구성 단위로서 인간의 기질이나, 4대 원소를 곧 잘 의 인화(擬人化) 했던 당시의 표현상의 관습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여러 이뉴도의 경우와 유사하다 할 것이다.

 

 

 

 

로렌초 데 메디치(아침, 저녁의 擬人像)

 

1505년 이래 단속적인 추진을 해오던 율리우스 2세 묘당의 계획이 또 한 번 대폭적인 축소를 본 때가 1516 년이다. 같은 해에 메디치가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피렌체의 성 로렌초 성당의 정면을 장식하는 일을 맡게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파기되어 버렸다. 이러한 심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카라라대리석을 사들여 준비에 열중하던 그의 실질적인 피해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에 수락하게 된 것이 레오 10세 자신의 아버지와 동생을 합한 메디치가의 4인을 위한 묘당 계획이 되겠다. 처음 이 계획에서 미켈란젤로에게는 성 로렌초의 성당 자체가 가건축의 형편이었기 때문에 조각 분야의 일만을 담당시킬 작정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여기에 자신의 조각과 건축이 일치하는 하나의 통일적인 작품을 계획했다. 로렌초 데 메디치상과 아침, 저녁의 의인상은 그런 것 중의 한 부분이 된다.

 

 

 

 

로렌초 데 메디치(아침, 저녁의 擬人像)

 

1505년 이래 단속적인 추진을 해오던 율리우스 2세 묘당의 계획이 또 한 번 대폭적인 축소를 본 때가 1516 년이다. 같은 해에 메디치가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피렌체의 성 로렌초 성당의 정면을 장식하는 일을 맡게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파기되어 버렸다. 이러한 심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카라라대리석을 사들여 준비에 열중하던 그의 실질적인 피해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에 수락하게 된 것이 레오 10세 자신의 아버지와 동생을 합한 메디치가의 4인을 위한 묘당 계획이 되겠다. 처음 이 계획에서 미켈란젤로에게는 성 로렌초의 성당 자체가 가건축의 형편이었기 때문에 조각 분야의 일만을 담당시킬 작정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여기에 자신의 조각과 건축이 일치하는 하나의 통일적인 작품을 계획했다. 로렌초 데 메디치상과 아침, 저녁의 의인상은 그런 것 중의 한 부분이 된다.

 

 

 

 

聖母子

 

고딕적인 해석에 어울리는 장엄한 분위기를 띠고 있는 성모자상(聖母子像)이다. 아기를 데리고 정면으로 앉아 있는 마리아상(像)은 '장엄한 마돈나'의 모습을 그 대로 지니고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풍요로운 치마폭으로 아기 예수를 감싸면서 한쪽 발을 내려 디딘 마리아와 그의 무릎 사이에서 내려올 듯 말 듯 하면서 자연스러운 자태를 지니고 서 있는 아기 예수에서 전 체에의 조화로운 분위기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아기 예수를 보호하는 마리아의 역할이 이중삼중(二重三 重)으로 강조되고 있다. 옷으로 보호받는 나체의 아기 예수, 무릎 사이에 그를 감싸고 있는 성모 마리아, 그 리고 마리아의 왼손이 아기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그 자태가 이를 모두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고전적인 성 모자상이 완성될 수 있는 이유를 당시의 주 문장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세

 

시스티나 천정화가 완성되고 얼마있지 않아서 당시의 교황 율리우스 II가 사망했는데, 그때 유언에, 1505년에 계약한 바 있는 미켈란젤로의 율리우스 II 묘당을 위해 10,000 두카덴(Dukaten)을 남겨 놓았다. 사실 이 묘당을 위해서 계획하고 추진하던 미켈란젤로의 그간의 노력은 그 시스티나 천정 벽화의 고난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식은 적이 없었다. 그곳에 안치될 상의 하나로 예정된 것이 바로 이 모세상이다. 머리 위의 뿔과 십계의 石板(석판)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예고자로서의 모세는 그 위엄의 모습을 대리석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여기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여러 예언자 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감을 넘어서서, 평생 대리석을 유일한 매체로 삼던 미켈란젤로의 조각가로 서의 본격적인 대결이 그의 응집된 量塊(양괴) 속에서 이 <모세>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론다니니의 피에타

 

같은 만년기 작품의 <피에타>, 특히 피렌체의 <피에타 > 같은 경우에서처럼 여러 인물의 군상이 아니고, 이 <론다니니의 피에타>에서는 단지 마리아 혼자서 그리스도를 앞으로 떠받들고 있는 형태이다. 그 두 인물이 겹쳐져 있는 이 상은 이미 하나님 아들의 시신을 안고 지키고 있는 마리아의 인상으로서도 박약하고, 또 마리아에 안긴 그리스도의 인상도 박약하리만치 그야말로 특이한 자태의 미완성 상이다. 여기에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1974년에 발견된 그리스도의 頭部(두부) 부 분이다. 그것과 이 상을 연결시켜 볼 때 많은 수수께끼의 문제점이 제시된다. 그 가장 현저한 경우는 이 상의 上半身(상반신)이 더욱 더 가느다란 형태감으로 바뀌어, 어느 조형 형태상의 극단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두 만년의 그가 애쓴 자연스러운 인체의 표현에 중점을 둔 그의 표현 형식상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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