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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소사전] - "은유"란?... "환유"란?...
2017년 11월 15일 22시 05분  조회:5987  추천:0  작성자: 죽림
  •  

    비유법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수사법으로 직유법, 은유법, 의인법, 의성법, 의태법, 풍유법, 제유법, 환유법, 중의법 따위가 있습니다.

     

    은유법은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입니다. 예로는 '내 마음은 호수요.' 따위가 있습니다.

     

    환유법은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으로, 숙녀를 '하이힐'로, 우리 민족을 '흰옷'으로 표현하는 것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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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유와 환유의 "개념쌍"은 고전적이지 않다. 전통적으로 은유는 직유와 대조적인 한 쌍으로 취급되었고, 환유는 제유와 짝을 이루곤 했다. 그런데 ‘언어학적 전회’ 이후로는 은유와 환유가 "개념쌍"이 되어 새로운 용법으로 쓰이고 있다. 이 둘은 단순히 수사학의 여러 단위 중의 하나가 아니라 언어의 본질적인 속성을 반영하고 있는 핵심적인 맞짝 개념이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용법에 따르면, 은유와 직유는 두 대상(비유 대상과 비유의 매체) 사이의 유사성에 입각해서 작동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직유는 ‘처럼’이나 ‘같이’를 동반하여 직접적으로 비유하는 것을 뜻하고(내 마음은 호수처럼 잔잔하다), 은유는 간접적인 경우를 말한다(내 마음은 호수다). 한편, 환유와 제유는 부분으로 전체를 대표하는 비유법이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와 결합 양상의 차이에 따라 제유와 환유가 구분된다. 예를 들어, 사각모로 대학생을 비유할 때는 환유이고(그가 드디어 사각모를 썼다), 소주로 술을 대신할 때는 제유다(어제 소주 한잔 하셨나요). 환유는 하나로 이어져 있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서 발생하고(사각모는 대학생의 일부이다), 제유는 집합과 거기에 속하는 낱낱의 원소의 관계에서 생겨난다(소주는 술이라는 집합의 원소이다).

    최근에 자주 쓰이는 은유/환유의 개념쌍은 이와 같은 고전적 쓰임과는 조금 다르다. 은유는 구심력을 지닌 중심화된 사유, 체계 지향적인 힘을 일컫고, 환유는 그와 반대로 원심력을 지닌 탈중심화된 사유, 탈체계적인 힘을 지칭한다. 이런 용법은 소쉬르와 야콥슨(R. Jakobson, 1896~1982) 같은 언어학자들의 언어의 근본적 원리에 대한 통찰에 기반하고 있다.

    야콥슨에 의하면, 우리가 쓰는 말은 선택(selection)과 결합(combination)이라는 두 축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에게 내장되어 있는 어휘 사전에서 단어를 끄집어내는 것이 선택 기능이고, 선택된 단어를 배열하는 것이 결합 기능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을 한다는 것은 머릿속에서 단어를 고르고 조리에 맞게 그 단어들을 늘어놓는 무의식적인 과정인 셈이다.

    야콥슨의 이런 설명은 언어에 대한 소쉬르의 통찰에 기반하고 있거니와, 야콥슨은 이런 원리를, 실어증이 지니고 있는 두 유형을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다양한 양태의 실어증은 크게 두 가지의 유형적인 극단성을 보여준다. 하나는 단어들을 이어서 나열하기는 하지만 정작 정확한 단어를 짚어내지 못하는 증상으로, 이를테면 책상이라는 단어를 지칭하지 못한 채 의자나 연필 같은 그 주변의 단어를 맴도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단어를 정확하게 짚어내기는 하지만 그 단어들을 문맥과 어순에 맞게 배열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어순이 뒤틀려 문장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이다.

    전자는 언어의 선택 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으로서 유사성 장애(similarity disorder)라 불렸고, 후자는 언어의 결합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서 인접성 장애(contiguity disorder)라 지칭되었다. 유사성 장애는 자기 뜻을 나타내는 단어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해 뜻과 말 사이에서 형성되어야 할 유사성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고, 인접성 장애는 선택된 단어들이 규칙에 따라 배열되지 않아서 단어와 단어가 지녀야 할 인접성의 사슬 관계에 이상이 초래된 경우이다.

    은유와 환유는 언어가 지닌 이와 같은 두 축의 특성과 직결되어 있다. 은유(이때 은유는 직유를 포함한다)는 선택 기능과 유사성의 원리(이는 뜻과 말 사이에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유사성의 궁극적인 형태는 동일성이다)를 축으로 하여 작동되고, 환유(이때 환유는 제유를 포함한다)는 결합 기능과 인접성의 원리(이는 인접한 단어들이 규칙에 맞게 배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를 축으로 이루어진다. 유사성을 동력으로 하는 은유적인 힘은 의미의 중심을 향해 나아간다. 여기에서는 어떤 단어가 의미의 핵심을 포착해내는지가 문제가 된다.

    환유는 인접성의 원리에 따라 끝없는 연쇄를 만들며 이어진다. 여기에서 의미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단어에서 단어로 이어진다. 예를 들자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마침내는 원숭이가 그와는 아무 상관없는 백두산이나 태극기로까지 이어진다. 이것이 흔히 사슬로 비유되는 환유의 원리다.

    사물의 핵심을 지향하는 서정시에서는 은유적 표현이, 디테일의 풍부함을 추구하는 산문 예술에서는 환유적 표현이 지배적이다. 낭만주의와 상징주의에서는 은유가 압도적이고, 사실주의에서는 환유가 주도적이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은유적 태도가 우세하고, 피카소의 입체파는 명백한 환유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은유는 하나의 대상을 향해 집중하는 힘이고 환유는 자유롭게 유동하는 충동이다. 시에서는 대상이나 정서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나 깊은 핵심에 도달하는지가 여기에서는 관건이다. 이와 반대로 소설에서는 대상의 특성을 풍부하게 잡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단도직입적으로 결론에 도달해버리면 이야기도 끝나버린다. ‘서사적 우회’라는 말이 있듯이 이야기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그 결말에 이르는 길이 단락에서 단락으로 이어지며 풍부하게 만들어지는 흐름이다.

    이런 식의 대조는 사고 일반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은유는 중심을 향해 박두해들어가는 것이고, 반대로 환유는 정해진 중심이나 지향점 없이 자유롭게 유동하는 상상력의 형식이 된다. 해체주의나 탈구조주의는 이념적 양극성이 사라지면서 등장한 사유 형태이다. 여기에는 정해진 중심이 있기 어렵고, 이런 세계에서는 환유적 상상력이 좀더 우세한 사유의 형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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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와 환유는 그것이 쓰이는 역사적 맥락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한 시대에는 환유로 취급받던 것이 다른 시대에는 은유로 취급당한다. 이를테면 <창백한 죽음>이라는 표현은 요즘 은유로 쓰인다. <지치다>라는 말은 원래 설사를 한다는 뜻으로 환유적 표현이었으나 요즘에는 은유적 표현으로 쓰인다.

     은유와 환유는 특정한 시대와 관련을 맺기도 한다. 역사 철학자 지암비스타 비코는 <새로운 과학>에서 은유를 비롯한 환유, 제유를 단순히 비유의 차원을 넘어 언어사와 문화사를 재는 잣대로 삼았다. 신의 시대에는 어느 비유보다 환유가 지배적으로 쓰였고, 영웅의 시대에는 제유가 압도적이어서 이 무렵 인간은 곤잘 주피터 신의 아들로 자처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어떤 비유보다도 은유가 가장 널리 쓰였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에코는 심층적인 면에서 은유와 환유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은유적 메커니즘과 환유적 메커니즘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게 마련이다. <모든 은유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부호 체계를 구성하고 부분적이건 전체적이건 모든 의미장의 구조가 기초하는 일련의 환유적 연관성과 만난다>

     축어적 관념과 비유적 관념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이 둘이 환유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비유는 은유로 봐야 할지, 환유로 봐야 할 지 경계선이 모호하고 애매하여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한 이론가는 아예 <은환유(메타프토노미)>라는 용어로 부른다. 메타프토노미란 바로 메타포(은유)와 미토노미(환유)를 합하여 만들어낸 합성어다.

     

     은유가 한 사물의 다른 사물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라면, 환유는 한 개체를 그 개체와 관련 있는 다른 개체로써 말하는 방법이다. 은유의 기능이 주로 사물이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다면 환유는 사물이나 개념을 지칭하는데 그 기능이 있다. 은유가 이해를 위한 장치라면 환유는 지칭을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추천
  • 답변

    비유는 어떤 사물의 가치를 그 자체에 고정시키지 않고 다른 것에서 유추한다. 미국 철학자 어번(W.M.Urban)은 언어와 현실에서 언어의 가동성을 강조했다. 사물과 언어관계는 거리가 있으므로 부단히 움직인다고 본 것이다. 이는 언어의 추상성과 언어 의미 사이에 무한한 가능성을 뜻한다. 한편에서 비유는 진리를 전달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인식도 있었으나, 18c 말엽부터는 비유는 필수적이며 세계를 인식하는데 꼭 필요한 도구로 보고 있는 태도가 강하다. 비유는 인생관이나 세계관과 맞닿아 있어 인간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형식이 되는 것이다.

     

    1

    은유는 매개어의 개입 없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되어 의미의 轉移와 새로운 의미를 환기시키는 비유법이다. 은유를 이해하려면 유사성을 파악해야 하지만 동일성과는 별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아리스텔레스는 '인생의 황혼'으로 노년을 표현했다. 수학적 비례로 치환시시켜 a/b=c/d 따라서 ad=bc이나 노년의 인생에 대한 관계가 황혼이 하루에 대한 관계와 정확히 같지는 않다. 유사성은 바로 흡사한 것이기 때문에 이같은 관계가 성립한다. 은유는 일종의 수수께끼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뜻을 유추하기 힘들다.은유의 장르라 할 만한 시를 두고 새뮤얼 코울리지가 <시란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고 막연하게 이해될 때 가장 큰 기쁨을 준다>고 얘기한 것은 바로 이같은 맥락이다. 윌리엄 엠슨은 은유가 가능한 것은 애매성 때문이라고도 했다. 은유는 우리를 당혹하게 하지는 않지만 이제껏 보지 못한 유사함을 밝혀 우리를 일깨워주고 매료시킨다.

     

    환유는 원관념을 연상되는 다른 말로 바꾸어 한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낸다. '그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라든가 '십자가와 초승달' 등이 그 예이다. 환유는 상징의 발생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깃발이나 십자가, 베일 같은 상징은 실재를 환기시키는데 상징과 실재가 모두 같은 문화에 있기 때문이다. 문화가 변하면 상징이 사라지는 것처럼 환유는 확고한 문화적인 관습에서 설득력이 생긴다. 환유는 최근에 들어와 주목받기 시작했다. 환유의 어원인 미토노미아는 '이름을 바꾼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일상 생활 언어에서 은유보다 환유가 더 많이 쓰이고 언어학자들은 환유쪽에 더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20C 미국의 야콥슨은 은유와 환유의 성격을 밝혀내는 데에 크게 이바지한 학자이다. 그것을 실제 비평에 적용해 문학의 스타일도 은유나 환유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고 밝혀냈다. 18C에서 19C 낭만주의 예술에서는 은유적 성격이 강하고 19C 중엽부터의 리얼리즘 예술에서는 환유적 성격이 강하며 세기말의 문예 사조라 할 상징주의에서는 은유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문학 장르에 있어 시는 은유적이고 소설은 환유적이며 연극은 은유적이고 영화는 환유적이라 주장한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는 이 둘의 관계가 깊이 연관성을 띠며 상호작용을 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어떤 비유는 은유로 보아야 할지 환유로 보아야 할지 그 경계선이 굉장히 애매하고 모호하다. 메타프토노미라 하며 은유, 환유 동시 성격으로 규정하기도 한다.좋은 예로 밀양 아리랑이 있다.

     

                              정든 임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이 경우 입을 벙긋거리는 행위로 웃는 행위를 나타낸 것은 '환유'이나 이것이 행복하다는 마음을 나타내니 '은유'가 되는 것이다. 은유는 한 사물을 다른 사물의 관점에서 말하는 방법이고 환유는 한 개체를 그 개체와 관련 있는 다른 개체로써 말하는 방법이다. 은유는 개념 이해의 방법으로 많이 쓰며 환유는 지칭하는데 많이 쓴다. 은유와 환유는 그 역사적 맥락과 연관되는데 한 시대의 환유가 다른 시대 은유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 <창백한 죽음>이 예전에는 환유였으나 현재는 은유이다. 사람이 죽은 뒤에는 얼굴 빛이 희게 변하기 때문에 결과로써 원인을 나타내는 환유였으나 추상적 관념인 죽음을 의인화하여 그 얼굴 색깔이 희다고 하는 은유로 현재 쓰는 것이다.

    제라르 주네트·새뮤얼 레빈·존 설 같은 이론가들은 환유를 은유의 하위 갈래로 여기기도 하지만 이 둘의 형식에는 차이가 있다. 은유가 유사성에 의존한다면 환유는 인접성에 기초한다. 환유는 은유와 비교하여 인간의 경험적 토대가 크다. 흔히 은유는 추상적인 느낌이 강하고 환유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이 강하다. 영국 이론가 호미 K.바바는 최근 은유와 환유를 포스트식민주의 문학 이론에 적용했다. 은유적으로 읽으면 의미의 보편성에 주목하게 되고 환유로 읽으면 보편성보다는 개별성이나 특수성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바바에 따르면 피식민지 주민을 문학 작품 속에 재현하는 것은 <차별의 주체, 타자의 역사와 타자의 문화>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은유화하면 등가의 원칙을 끌어들이고 이 원칙은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추상적 명제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고 염려한다. 이는 다시 말해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의 담론에서 은유가 많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은유를 폭력의 언어, 환유를 저항의 언어로 볼 수도 있다. 전통적인 제도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은 환유의 수사적 장치가 적당하고, 영원불변하고 본질적인 것과 연관되는 은유는 기존의 폭력적 성격의 것들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것이다. 은유는 모든 현상을 하나로 뭉뚱그려 동일성에 무게를 싣고 환유는 인간을 모든 구체적 현상 속으로 낱낱이 파헤쳐놓는다. 김욱동 교수는 그 예를 문정희의 시 「작은 부엌노래」와 정현종의 시 「부엌을 기리는 노래」로 설명한다. 문정희의 시는 남성 가부장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보이며 환유가 지배적인데 정현종의 시는 남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은유가 많이 쓰이고 있다.
    ====================덤으로 더...

     

     
    “깊은 슬픔을 밑에 깔고 어머니가 누리는 잔잔한 평화 속에서 죽은 삼촌과 내가 뒤섞이는 이 인접성, 나는 그것을 어머니의 환유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어느 날 아버지 대신 나를 부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순수하고 완벽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환유는 결여된 은유다.”  

    황현산 선생의 `잘 표현된 불행`에서 `어머니의 환유` 일부분을 인용했다. 환유를 일컬어 결여된 은유라고 표현한 저 독창적 말씀에 매료되어 내 식의 해설을 쓰고 싶어졌다. 자세하게 분류하자면 여러 가지로 뻗겠지만 일반적으로 환유라 하면 표현하는 대상을 그것과 가까운 다른 말로 바꿔 말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앞치마가 환유가 되면 주부를 뜻하고, 월스트리트가 환유로 읽히면 영향력 있는 금융세력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선생의 저 말을 나는 은유로 소진되고 남은 것들이 모여 환유가 된다, 라고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은유는 낭만이나 환희나 쾌락 같은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 라는 식의 낭만적 은유가 지나고 난 뒤의 파편 같은 현실이 환유가 된다. 저 인용문에서 결여된 은유는 어머니의 환유가 되는데 그것은 곧 자식인 작가 자신이다. 물론 그 원천은 작가의 아버지가 된다. 일반적 희생의 이미지인 모성에게 지아비의 결여는 세상의 결여이고 그것은 곧 당신의 결여가 된다. 그 결여의 기도는 자식을 향한다. 즉 어머니의 환유는 결국 아버지 모습을 한 자식에 대한 기대치라 할 수 있다. 그런 어머니가 자식 입장에서는 정신적인 우주가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제 결여를 다독이기 위한 텃밭으로 기능한다.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에 의하면 은유는 유사성에 의존하고, 환유는 인접성에 의존한다고 했다. 유사성을 표현하는 언어는 어쩐지 낭만적이고, 인접성을 표현하는 언어는 왠지 사실적이다. 낭만적 자족이 은유라면 결핍의 우주야말로 환유가 된다. 그러니까 환유의 발자국은 몽상의 구름에 가닿는 게 아니라 사실의 들판에 맞닿아 있다. 환유가 살아있는 실체적 진실이 되는 순간이다. 

    /김살로메(소설가)
    ///경북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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