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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3
2017년 12월 21일 23시 44분  조회:1769  추천:0  작성자: 죽림

 

 

 

 

 한국 동시조의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이지엽 (시인, 광주여대 교수)

 

1

   후천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시인들은 성장기 때 대개 어떤 계기가 주어져서 시를 쓰게 됩니다. 큰 깨달음보다는 어찌보면 아주 사소한 일이 평생의 진로를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아동문학은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같은 아동문학의 범주라 할지라도 하위 장르의 속내를 들여다보년 여기에도 엄연히 냄새나는 위계질서가 있고, 시인으로서 마땅이 받을 대접을 못받는 소외그룹이 있습니다. 상업화의 논리가 팽배해 있는 현실 상황 탓이라고 보기에는 신중히 검토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전문가 집단이 이미 형성된 동시와는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동시조는 그야말로 어쩡정한 상태에서 지리멸렬해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강렬한 문학적 상상력이나 영감을 줄 어떤 제도적 장치와 노력이 동시조 창작을 위해서는 없는 것입니다. 이 글은 한국 동시조의 흐름에 대해 살펴보고 여기에서 도출되는 문제를 근거로 한국 동시조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동시조 창작에도 도움이 되도록 창작기법 쪽으로 접근해 보고자 했으며 되도록 작품 전문을 인용하였습니다. 



   동시조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동시조 작품인 심훈의「달밤」으로 보면 70년 가까이 되었지만, 동시조 창작에 대한 자각이 구체적으로 일어난 1968년을 기준으로 보면 30여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동시조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낀 몇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다 보니 많은 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작품만을 놓고 보자면 오히려 장르담당층이 좀더 확산된 오늘날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 
저 달이 네 눈에는 능금으로 보이다냐 
어린 것 등에 업혀 따 달라고 조르네 
네 엄마 얼굴을 보렴 달 한 송이 열렸고나. 

―심훈,「달밤」전문,『中央』(1934. 4)

 

(2) 
띄 밭에 보슬보슬 
봄비가 뛰논다 
샛노란 띄싹은 
흙덩이 헤치고 
작은 손 목 넘겨들어 
나도나도 달라네. 

―조윤재,「봄비」전문,『四海公論』(1935. 5) 

(3) 
창에만 피는 얼음꽃 
꽂아둘 꽃은 없어 

빈 병에 버들강아지 
한 가지를 심어놓고 

겨울 속 
싹트는 봄을 
나랑 둘이 지킵니다. 

보송한 더듬이로 
얼음꽃을 쓸어 먹고 

강아지, 버들강아지 
눈 비비는 하루 아침. 

요요요! 
젖줄을 따라 
품에 들며 설렙니다. 

―박경용,「버들강아지」,『카톨릭 소년』(1968. 4) 

(4) 
사쁜 사쁜 사쁜 
가만 가만 가만


거미줄 채를 쥐고 
가슴도 달싹 달싹


큰마당 
빙빙 맴돈다 
잠자리를 쫓는다. 

앉을까 말까 
챌까 말까


잡힐 듯 또 파르르 
마음 졸인 술래잡기

 
잠잘아 
고추잠잘아 
고기고기 앉아라 

―이근배,「잠자리」,『소년』(1969년) 

 

   (1)과 (2)의 작품은 1934년 과 1935년, (3)과 (4)의 작품은 1968년과 1969년에 발표된 것으로써 두 작품군에는 30년 이상이 간극이 있지만 그 서정의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1)과 (2)의 작품에는 '달'과 '봄비'의 자연적 대상을 통해 동심의 세계를 그려내었습니다. '조르네'와 '달라네'의 청유적 진술을 통해 순박한 동심이 당대 현실에 어떻게 굴절되고 있는가에 대하여 우회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주목됩니다. 일제강점기 시기의 궁핍한 농촌 실상 가운데 우리의 어린이들이 겪어내야만 했던 배고픔과 절망의 가장 진솔한 표현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달 한 송이' 열린 '엄마의 얼굴'로 환치시키면서 거기에 넘치는 무한한 평화와 안온함을, '너도 나도' 작은 손을 디미는 새싹들에게서 푸릇푸릇한 생명성과 건강함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3)과 (4)는 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동심에 가까이 다가가 있음이 감지됩니다. 보다 현대적인 감각은 단순한 서술형 어미를 쓰지 않고 '요요요!'라든지 '잠잘아/고추 잠잘아/고기고기 앉아라'등 감탄이나 독백 등 다양한 수사법을 동원하여 시적 긴장과 굴곡을 느끼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보다 동심에 접근하고 있음이 감지되는 것은 (1), (2) 작품의 서정자아가 어른이거나 의제된 어른인 점에 반해 (3)과 (4)의 경우는 온전하게 어린이라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3 )
   90년대 동시조는 60∼70년대와는 달리 장르 담당층과 세계관이 훨씬 다양해집니다. 자연을 통한 아름다움과 깨달음이 가장 광범위한 주제로 나타나면서 때로 현실에서 느끼는 아픔, 더 나아가서는 역사 현실에 대한 자각과 존재론적 성찰의 깊이에도 이르는 다양한 무늬를 보여줍니다. 이 다양한 무늬의 바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뭐니뭐니해도 대자연일 것입니다. 크게는 산과 바다와 강과 들판, 작게는 꽃, 나무, 새 등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이것들을 대상으로 쓴 작품들이 많습니다. 동시조 마찬가지입니다. 

 

(5) 
홀딱 반할 마을 하나 도화지에 옮겨놓자 
산 하나 세워놓고 시냇물도 돌려놓고 
울 밖에 살구꽃 피면 짝꿍 불러 함께 놀자. 

기와집이 어떨까 아니야 초가집이야 
동구밖 그 자리에 느티나무 자라게 하자 
위에선 까치도 놀고 그늘에는 나그네. 

들머리 훨씬 지나 무지개 걸어 놓고 
송아지 두어 마리 제물에 울게 두고 
오늘은 원두막으로 동화책을 들고 가자. 

ㅡ유성규, 「내가 살 꽃마을」, 한국동시조 제 9호 

 

   유성규 시인의「내가 살 꽃마을」(5)은 배산임수의 살구꽃 피는 초가집이 있는 마을입니다. 인정이 넘치고 따스한 마을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전형성을 지닌 시골 마을입니다. 그 속에 '짝궁 불러 함께 놀'고, '동화책'만큼 건강한 마을…….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이제 그런 마을은 없지요. 시인은 이를 염두에 두고 가상적 공간으로 처리하였습니다. 박옥위 시인의 다음 작품에도 자연의 위대성은 그대로 살아납니다. 
 

좁쌀같은 배추씨앗 
한알을 받고는 

무슨 의논 했을까 
그 밭의 흙들은 

커다란 통배추 하나로 
스스로 자랄동안. 

강냉이 한알 받고 
강냉이 몇자루 주고 

콩 한알 받고서는 
콩꼬투리째 몇 개나 주고 

흙은 꼭 엄마와도 같이 
아무말도 안한다. 

―박옥위,「흙은, 참!(1)」, 한국동시조 제2호 
 

   흙 속에 심어논 '배추 씨앗 한 알'이나 '강냉이 한 알'이라도 허술하게 놓아보내지 않고 '커다란 통배추'와 '강냉이 몇 자루'로 돌려주는 흙의 위대성은 '어머니'와 다를 바가 없다할 것입니다. 
 

(7) 
샛노란 보름달을 
누가 베어 먹었지 

혹시나 하느님이 
밤참으로 먹었을까 

아니야 스치는 갈바람이 
먹장 구름 가리킨다. 

―김옥중,「조각달」, 제3호 

(8) 
사알짝 돋아난 막내 동생 젖니 같은 
흙 틈새 뚫고 나온 봄나물 새촉같은 

가느단 새 순 한 가닥 
하늘밭에 솟아났다. 

―윤삼현,「눈썹달·2」, 한국동시조 제4호 

(9) 
하늘은 
푸른 바다 
눈썹 배가 떠가고 

하늘은 
넓은 호수 
구름 새가 쫓아오고 

바람이 
얼굴을 감춘채 
씽씽 뛰는 운동장. 

―김사균,「하늘은」, 한국동시조 제4호 

 

   이 작품들은 하늘이나, 하늘에 떠있는 달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려내는 것은 각기 다릅니다. 김옥중 시인은 '보름달'의 일부분만 남아있는「조각달」을 '하느님이/밤참으로 먹었을까'라고 엉뚱하게 추측해보다가, 그것보다는 그 '보름달'을 가린 '먹장 구름'이라고 슬며시 핑계를 댐으로써 동시에서 얻기 어려운 재미성을 가미하고 있습니다. 윤삼현 시인은 재미보다는 참신한 비유를 통해서 이제 갓 생겨난 초승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초승달을 '눈썹달'이라고 새롭게 해석하려는 것도 재미있어 보입니다. '동생 젖니'나 '봄나물 새촉'은 '초승달'과 잘 어울리는 비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김사균 시인은 하늘을 '푸른 바다'와 '넓은 호수', '운동장'으로 비유하여 그려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각각 이와 대응되는 사물들을 한 가지씩 설정하였는데 '눈썹 배', '구름 새', 얼굴을 감춘 바람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단순하게 하나의 비유로 그려내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가) 하늘은/푸른 바다/눈썹 배가 떠가고 

나) 하늘은 /푸른 바다/파도치는 푸른 바다 


   가)는 하늘이 푸른 바다로 변하여 거기에 더 보태어 바다 위에 조각배(원래 의미는 초승달 혹은 그믐달)가 떠가는 풍경까지를 보여주지만 나)는 다만 '푸른 바다'라는 단순한 묘사에 그치고 맙니다. 자연은 어떻게 어디까지를 그려내느냐에 따라 이렇듯 달라집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적 대상을 그냥 멀리 있는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대상에 시인의 마음을 실어주게 되면 더욱 그 대상은 우리와 친근하게 가까워 집니다. 
 

(10) 
꽃이 지네 
하얀 잎이 
땅바닥에 떨어지네. 

어머나! 
이렇게 
고운 잎에 흙이 묻네 

꽃잎아 
두 손 벌렸다 
내 손바닥에 떨어져라. 

―김상형,「꽃잎」, 한국동시조 제3호 

(11) 
옥수수 
개꼬리가 
붙잡다가 
놓치고 

수수이삭 
서속이삭 
붙잡다가 
놓친 것을 

마당의 
바지랑대가 
힘 안들이고 
잡았네 

―정태모,「잠자리」, 한국동시조 제4호

 

 

   김상형 시인의「꽃잎」에는 꽃이 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어린이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정태모 시인의 작품에도 부드럽게 위어지는 물체에는 앉지 못하고 '바지랑대'라는 버팀대에는 쉽게 앉은 잠자리를 보고 그것을 놓치고, 잡는 것으로 의인화하여 동심을 실어낸 것이 눈에 보일 듯, 손에 잡힐 듯 친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4

   자연을 대상으로 한 동시조는 자유시나 동시가 그런 것처럼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와 현실을 떠나서는 살아가기 힘듭니다. 그러기에 현실이나 역사를 시에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은 소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동시조에도 이런 작품들은 소중하게 읽힙니다. 

 

(12) 
하나님께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주소도 전화 번호도 
모르고 있잖아요 

더구나 팩스 번호를 
제가 어찌 알겠어요. 

―장순하,「하나님은 내 친구·1 -전화번호 」, 한국동시조 제5호 

(13) 
겉으론 
끄덕끄덕 
안으로 
도리도리, 

독버섯 
여기저기 
냄새나는 
사람숨결, 

그래도 
하늘 뜻 하나 
안에 새겨 
살곺다. 

―경철,「새로운 출발·2」, 한국동시조 제4호 

(14) 
오늘은 
젓가락 쓰는 법을 배웠다. 

반찬이 퉁그러지고 
밥은 흐트러지고 

콧등에 입언저리에 
앙괭이를 그렸다. 

새들은 
젓가락같은 긴 부리로 잘도 집는데 

우리는 
손가락이 자꾸 얽혀 애를 먹는다. 

아차차 또 놓쳐버렸네 
떠오르는 엄마 얼굴. 

―허일,「콩이의 일기」, 한국동시조 제3호 

스르르 
별똥별이 미끄럼 타고 온다. 

깜박 깜박 
개똥벌레 반딧불을 켜고 간다. 

별 하나 반딧불 하나 
아, 그리고 나도 하나 

―허일,「방학 일기」, 제3호 

(15) 
등나무에 기대 서서 
신발코로 모래 파다, 

텅 빈 운동장으로 
힘빠진 공을 차본다. 

내짝꿍 왕방울눈 울보가 
오늘 
전학을 갔다. 

―김일연,「친구 생각」, 한국동시조 제7호 

 

   장순하 시인은 일찍이 '국민시조'라 하여 '경시조'쓰기 운동을 펼친 바 있습니다. 이를테면 본격시조인 중시조보다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고 쓰기 쉬운 생활시조 운동의 하나로 이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두 권의 경시조집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든 작품도 '하나님'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초월한 신성한 존재를 평범한 사람으로 끌어내려 아무렇지 않게 그려냅니다. 경철 시인의 작품에도 현실의 모습을 '독버섯/여기 저기'라고 하여 비판하고 있습니다. 허일과 김일연 시인의 작품에는 또래들이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것들 중 인상적인 기억이나 사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15) 
사진을 보는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빛 한점 없는 아득한 어둠 세계 
시커먼 개펄이 온통 천지를 다 메웠다.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난 수평선 위엔 
분명, 샛별을 거느린 조각달이 떠 있었다. 
바다는 물때를 만나 곰실곰실 기어오고 

그 개펄 밤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플래시를 터트리며 내딴은 공들였는데 
어쩌면! 한낱 개펄로만 둔갑해 버리다니 

아쉬움 못 떨치고 눈여겨 보느라니 
차랑차랑 밀려오는 빛물결을 지켜서서 
진흙에 발목 잡힌 채 내가 혼자 거기 있다. 

*물 때 : 밀물이 들어오는 때 

―박경용,「별난 사진」, 한국동시조 제7호 

 

   박경용 시인의 이 작품에는 밤 바다에서 찍은 애 사진이 현상된 것을 보고 그 느낌을 아주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주 근사한 사진이 나오리라 기대했는데 '시커먼 개펄'만 드러난 상황을 차분하게 그려냄으로써 동시조로서는 아주 독특하면서도 정밀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6) 
어머닌 내 손을 끌고 
차도를 뛰어 건넙니다 

선생님은 날마다 
이러지 말라하셨는데 

이럴 때 
어떡해요 나 
선생님 어떡해요. 

―문무학,「어떡해요, 나」, 한국동시조 제4호 

(17) 
초가집 헐어내고 빨강 파랑 양철 지붕 
하아! 세상은 갈수록 깨끗하고 깨끗하여라 
국도 변 
신고 받습니다 전주 위의 까치집. 

―이지엽,「깨끗한, 참 깨끗한」, 한국동시조 제9호 

(18) 
덧셈 뺄셈에다 
곱셈과 나눗셈을 

배운 대로 익히고는 
분수 숙제하는 오늘. 

분단된 
남한과 북한 
서로 2분의 1이구나. 

―서벌,「1/2」, 한국동시조 제6호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생각으로 그려내는냐는 더욱 중요합니다. 위의 작품들은 그러한 예를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16)의 작품에는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어머니와 잘 지켜야한다는 선생님의 당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린이의 심정을 통해 어른들의 잘못을 꼬집고 있습니다. (17)의 작품에도 날로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문명 속에 점차 잃어만가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18)분단된 현실을 산수 숙제를 하면서도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역사의식까지 생각을 연장시키고 있습니다. 동시조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깊은 감명과 교훈을 주는 쪽으로 전개된다면 더 바람직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이나 혹은 현실, 더 나아가 역사까지가 동시조의 시적 대상이 되고, 이에 대해 창작되된 작품이 주종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폭 넓계 활용되는 방법을 보면 어떤 사물에 시선을 집중시켜 그 사물을 재미있게 묘사해보는 것입니다. 

 

(19) 
뙤약볕에 그을리는 
초록색 지구덩이 

씨줄은 지워지고 
날줄만 선명하다 

적도쯤 
쪼개고 보면 
진다홍의 속엣말. 

―경규희,「수박」, 한국동시조 제2호 

(20) 
별빛 먹고 자랐을까 
이슬 먹고 깨었을까 

햇살도 눈이 부셔 
파르르 떠는 길섶 

수줍어 입술 빼무는

 

새악시를 닮은 꽃. 

날개 젖힌 꽃잎 두 장 
살폿한 정 품어 안고 

파르라니 고운 자태 
바람도 숨을 죽여 

가신 이 보일 듯 말 듯 
그리운 맘 닦는 꽃 

―윤현자,「달개비꽃」, 한국동시조 제3호 

(21) 
바닷물도 숨이 가빠 새파라니 올라온 
화엄사 각황전 추녀 끝에 물고기는 
땅그랑 땅그랑 울며 하늘못을 맴도네. 

사람들만 사는 세상 높은 굴뚝 연기 매워 
살랑살랑 꼬리 저어 바람따라 가다 말고 
떠나온 물길 그립다, 가을비나 부르네. 

―홍성란,「물고기 한 마리」, 한국동시조 제6호 

(22) 
와! 비다 
쏟아진다 
북소리 쏟아진다 

마음을 열어라 
목청을 돋구어라 

 

우렁찬 오케스트라 
빗방울의 음악회. 

어디선가 들려온다 
툭투툭 후두두둑 

케스넷 소리다 
작은 북소리다 

산울림 울려 퍼지는 
빗방울의 음악회. 

―박석순,「음악회」, 한국동시조 제5호 


   (19)의 작품은 '수박'을, (20)의 작품은 '달개비꽃'을 (21)의 작품은 '풍경(風磬)'을 (22)의 작품은 '빗방울'을 각각 그려냈습니다. 보이는 외면을 세밀하게 그려 내보는 것이 기본이지만[(20)], 사물의 속성[(19), (22)]을 파악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거기에 상상력이나 비유를 얹으면 보다 다양한 느낌을 가져옵니다. (19)의 '수박'을 지구덩이로 보는 것이라든지, (22)의 '빗방울'이 쏟아지는 것을 음악회를 열고 있는 것으로 본다든지 (21)의 '풍경'을 울려나는 것을 물고기 한 마리가 물길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는 것 등이 이러한 예에 해당됩니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자연이나 삶을 나름대로의 소박한 논리로 해석해보는 시도도 있는데 다음의 경우는 그 좋은 예에 해당됩니다. 

 

          (23) 
          산이 
          선 채로 
          한없이 
          견딜 수 있는 것은 

          발 아래

          무릎 아래 
          맑은 
          강물 속에 

          물고기 
          뛰노는 모습 
          항상 
          볼 수 있기 때문. 

          강이 
          산의 주위만 
          한사코 
          맴도는 것은 

          산에서 
          새어나오는 
          아름다운 
          향기며 

          새들의 
          노래 소리를 
          늘 
          들을 수 있기 때문. 

          ―이해완,「산과 강」, 한국동시조 제8호 

 

 산과 강이 언제나 연대어 있는 것은 지형적인 이유에 해당되지만 시인은 '물고기의 모습을 항상 볼 수 있'고,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동심의 순박한 이유를 들어 나름대로의 해석을 보여준 것입니다. 

한국 동시조의 깊이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작품을 통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그 생각으로 삶이 여물어 갈 수 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요. 

 

(24) 
나직한 콧노래처럼 
가슴 촉촉히 젖는 밤 

날 새면 
부신 연분홍 
앵두꽃도 벙글겠다 

내 동생 
무거운 말문도 
그냥 슬슬 열리겠다. 

ㅡ진복희,「봄비」, (쪽배 2호 『5 : 3』, 책만드는집, 1999년) 

(25) 
밤나무 아래 서서 
하늘 한참 쳐다보면 

할배가 감췄다가 
꺼내 주는 알사탕처럼 

한 개 뚝! 
떨어지는 아람 
산 고요가 무너진다. 

ㅡ서재환,「산고요」, (쪽배 2호 『5 : 3』, 책만드는집, 1999년) 

 

   위의 두 편의 작품에서도 '봄비'나 '고요'의 의미를 통해 시의 행 사이에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봄비」에서는 그 '봄비'가 어떠한 역할을 해줄 것인가라는 추측과 바램을, 하나는 앵두꽃 벙그리라는 자연적 현상을 통해 다른 하나는 동생의 말문이 트이리라는 생활 가운데의 기대를 통해 작지만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산고요」에서는 밤 한 송이가 그 큰 산의 고요를 무너뜨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은 중장의 비유에서 연유하고 있습니다. 위의 세 작품은 시적 대상을 통해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해 보여주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26) 
하필이면 다른 아홉 그루는 다 놔두고 어쩌면 
저기 저 느티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 언제쯤 
그 둥지 아기새에게 그걸 물어 볼 수 있을까 

ㅡ이정환, 「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 

(이정환 동시조집, 만인사, 2000년) 

 

   이 작품에는 해석이나 판단을 시인이 한 방향으로 정하여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홉 그루는 다 놔두고 어쩌면 저기 저 느티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라고 시인은 독자에게 묻습니다. 독자들은 이 질문을 각자에게 던져보며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뭘까? 여러 가지 답이 가능합니다. 정답이 따로는 없지요. 어떤 것에 대해 사유하고 고민하게 하는 것. 거기에 시인은 의미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동시조의 흐름을 어떤 시적 대상을 가지고 어떠한 방법으로 창작되어져 왔나를 살펴보았습니다. 자연과 현실 혹은 역사, 그리고 사물 등에 이르기까지 아주 광범위한 소재를 시적 대상으로 삼아 다양하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21세기 우리 동시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까. 지금까지 전개되어온 양상을 전제로 다음 몇가지를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동시와 마찬가지로 동시조 역시 아동을 위한 시이고 보면 당연히 교훈성을 띨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서정성에 바탕을 두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한다든지, 추상적인 어휘로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비만 오면/강물에는 고기떼가 죽어나니// 
막 버린/자연훼손/너도나도 막아보세 

―「이래서 되겠는가」중에서 (2-149∼150) 

높다란 하늘아래/기다긴 목을 느리고// 
평화를 노래하면서/자유가 그립대요 

―「동심의 꽃밭에서」중에서 (2-172) 

흘러가는 영원으로/먼 훗날/불멸의 노래/부를 날을 위하여 

―「화병의 꽃다발」중에서 (2-202)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모르면/만물의 영장이라 말 할 수 있겠는가 

―「효도」중에서 (2-214) 

 

   동시가 그러하듯 동시조 역시 시적 화자는 아동이여야 합니다. 아동의 눈과 아동의 가슴과 아동의 목소리여야 합니다. 그런데 동시조 중에는 제목이「아내를 바라보며」같은 것들도 종종 눈에 띄는 것을 봅니다.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동시조를 창작하는 전문가가 배출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창작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조는 동시와 달리 지금껏 시조시인들에 의해 비전문적이고 간헐적으로 창작되어져 왔습니다.『한국 동시조』(발행인 : 박석순)가 그나마 90년대를 지켜왔고, 박경용, 서재환, 신현배, 진복희, 허일 시인 등이「쪽배」라는 동인을 결성 두권의 동인지를 내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더욱이 기성 시조 전문지에서는『열린시조』가 초·중·고등학생의 작품 현상공모를 통해 여기에서 선정된 작품을 매호 소개하는 정도고 다른 곳에서는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있습니다. 동시조를 쓰는 전문 작가군이, 각종 신인상을 통해 등단할 수 있도록 신인상 부분에 동시조 부분을 신설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하루 아침에 될 수는 없으므로 시조시인들이 동시조에 대한 애정을 아울러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시조 창작을 하는데 있어서도 고전적이고 자연적인 소재보다는 오늘의 우리 현실을 가감없이 담아내는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첨단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동시조만이 초가집과 둥근 달을 그려내고 있다면 문제지요. 사이버 공간과 컴퓨터와 테크노 댄스와 채팅방에 길들여진 우리의 어린이들이 과연 얼마만큼 그러한 세계에 공감할 수 있을까요. 이제 이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마음이 되고 그들의 사고를 가져와야 합니다. 동시조가 사랑 받을 수 있는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민족 고유의 숨결이 흐르는 그릇 안에 오늘날의 생각과 역사를 살아 숨쉬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동시조를 창작하려는 모든 이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이며 책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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