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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투르게네프의 언덕
2018년 08월 21일 23시 55분  조회:4313  추천:0  작성자: 죽림

 

윤동주

/투르게네프의 언덕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했다.

둘째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있을 것은 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 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올 뿐-

 

 

이 시는 거지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생기고 있을 것은 다 있었으나 아무런 도움을 못 준 자신의 행동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했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이었다.
나는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소년들을 삼킨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있을 것은 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 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보았다. 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올 뿐이었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목 ‘투르게네프의 언덕’이 이 시를 시로 존재하게 한다. 내용은 시적인 면이 없다.
다만 제목에서 투르게네프가 지은 <거지>라는 시에 나타난 화자의 태도와 자신의 태도를 비교하여
자신은 투르게네프처럼 진심으로 거지를 측은하게 여기지 않고 이들을 도와줄 행동을 할 수 없는
소심한 인물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투르게네프가 지은 <거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가난하여 눈물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를 입은
늙은 거지가 동냥을 청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외출을 해서 아무 것도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잡고 미안하다 했다.
그런데 거지는 오히려 손을 잡아준 것도 적선이라고 하였다.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
첫째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했다. /
둘째아이도 그러하였다. /
셋째아이도 그러하였다. /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소년들을 삼키었느냐!’에서 나오는 거지는 거지가 아니다.
그들은 거지의 차림을 하고 있지만 거지가 아니였다. 스스로 폐물을 주어 팔아 사는 소년들이다.
화자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선입관 또는 통념으로 이들을 거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있을 것은 다 있었다. /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 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거릴 뿐이었다.’에서는
투르게네프와는 다르게 세 아이에게 줄 것이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만지작거리며 망설이고 용기를 내지 못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보았다. /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올 뿐- ’은
투르게네프와 달리 화자와 거지 사이에는 아무런 교감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냥 스쳐가는 사람과 이들에게 동정을 느낀 사람만 있었을 뿐이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올 뿐-’은 화자의 마음 상태를 암시하는 배경이다.
가난한 사람을 돕지 못하고 망설이던 자신에게 쓸쓸함을 느끼는 것이다.///전한성

 

사족:

윤동주의 시 중에 담담한 시이다.
그렇지만 윤동주의 속임없는 마음이 잘 전달되는 시이다.
윤동주의 장점은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조금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고>

투르게네프

/거지

 

 

길거리를 걷고 있었지요.
늙은 거지 한 사람이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눈물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아아, 가난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잔인하게 이 불행한 사람을 갉아먹는 것일까요!

 

그는 빨갛게 부풀은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했습니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져 보았습니다……
지갑도 없고 시계도 없고 손수건마저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외출을 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어쩌나……'

그러나 거지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습니다.

"미안합니다, 형제, 내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려."

거지는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 거꾸로 이 형제에게서 내가 적선을 받았다는 사실을…….(인터넷에서 옮김)



==============================///

아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는 투르게네프가 쓴 시 ‘거지’를 모티프로 하여 쓴 시이다.
작가는 화자와 세 명의 소년 거지 사이의 우연한 만남을 소재로 삼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괴리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과 번민을 형상화하고 있다.

 

투루게네프라는 철학가가 어느 겨울날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 돈을 주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돈이 한 푼도 없었다. 투루게네프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며 그 걸인의 더럽고 터진 손을 잡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걸인은 밝은 얼굴로 아니라고 선생님은 오늘 나에게 무엇보다도 큰 적선을 했다고 말한다.


 

▣ ‘투루게네프의 언덕’에 관한 배경 설명

 

윤동주는 투루게네프의 시 ‘거지’에 나오는 사이비 형제애, 싸구려 이웃 사랑에 대해 반발했다. 그리하여 아무 손해도 없이 감사와 인심만 획득하는 투루게네프의 ‘거지’식의 자선이 지니는 자기 기만성과 부정직성을 폭로하는 작품을 써서 제목조차 ‘투루게네프의 언덕’이라 붙인 것이다. 특히 ‘투루게네프의 언덕’에서 굳이 ‘언덕’이라고 설정한 그 외조건이야말로 투루게네프가 그려 낸 값싼 온정 또는 자기도취가 그 미망을 벗어나서 극복해야 할 어떤 단계를 상징한 것인지도 모른다. 목적이 그러했기에 그는 작품 구도에서 신경을 썼다. 거지를 만났을 때도 다행히도 주머니에 ‘지갑, 시계, 손수건, ……’ 등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던’ 투루게네프 식의 상황 설정 대신에, 불행히도 ‘지갑, 시계, 손수건, ……’ 등 ‘있을 것은 죄다 있었던’ 상황을 설정해 놓음으로써, 우리의 뿌리 깊은 가식과 헛된 이웃 사랑을 거침없이 조롱하고 풍자한 것이다.


=================================///


투르게네프 (Ivan S. Turgenev, 1818-1883)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부흥기를 이끌었습니다. 한국에는 1910-1920년대 초반에 투르게네프의 소설과 산문시가 집중적으로 소개됐는데, 해외시 번역에 앞장섰던 김억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김억은 일찍이 오산학교 시절 스승인 이광수로부터 러시아 농노제의 실상을 다룬 투르게네프의 소설집 『사냥꾼의 수기』를 소개받고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투르게네프의 모든 작품을 구해 읽었다고 할 정도로 투르게네프를 좋아한 그는 다수의 산문시를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산문시는 규칙적인 운율을 갖고 있지 않아서 운문시와는 달리 번역 과정에서 비교적 손실이 적습니다. 게다가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는 이해하기 쉬운 내용 속에 감동을 전하고 있어서 그만큼 애독되었습니다. 
  

 


윤동주 (尹東柱, 1917-1945)는 많은 독자들이 잘 알고 있듯이 일본 유학 중에 항일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본이 생체실험을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바닷물을 주사했던 것입니다. 「투르게네프의 언덕」(1939)은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에 쓴 것이며, 대표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암울한 시대에 순수한 삶을 노래한 시로 사후에 출판되었습니다. 연세대학교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있다고 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투르게네프와 윤동주의 관계에 대하여 로쟈 선생님의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휴머니즘과 섣부른 휴머니즘 
로쟈의 문학을 낳은 문학  
투르게네프와 윤동주의 산문시 
이현우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알려졌지만, 그의 문학적 경력은 서정시로 시작해서 산문시로 마무리된다. 『루진』(1856)을 필두로 하여 마지막 장편 『처녀지』(1877)까지 여섯 편의 ‘사회 소설’을 쓴 투르게네프는 이후 생의 말년에는 80여 편의 산문시를 썼다. 산문시는 러시아 문학의 고유한 장르가 아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 체류 중이던 투르게네프가 보들레르의 산문시에 영향을 받아 시도한 것이 그의 산문시다.  


투르게네프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문학 형성기에 가장 많이 읽히고 번역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일본에서 그의 산문시는 문학청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처럼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범상치 않은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어서였다. 일본을 통해 투르게네프를 수용한 우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많이 번역돼 읽혔던 산문시 ‘거지’를 읽어 보자.  


시적 화자인 ‘나’는 거리를 걷다가 늙은 거지를 만난다. “눈물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화자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늙은 거지는 손을 내밀어 나에게 적선을 청하는데, 호주머니를 뒤져 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빈손으로 산책을 나온 것이다. 동냥을 청하는 거지의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다.”  


당혹한 나는 하는 수 없이 “힘없이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쥐고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늙은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그때 문득 ‘나’는 깨닫는다. “거꾸로 이 형제에게서 내가 적선을 받았다는 사실을….”  


식민지 조선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만한 주제인데, 특히 윤동주도 이 ‘거지’에 반응한 독자였다. 그런데 윤동주의 반응은 공감과 함께 위화감도 포함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거지’를 명백히 패러디해서 쓴 ‘투르게네프의 언덕’(1939)에서 시인은 ‘거지’의 기본 골격을 반복하지만 몇 가지 설정을 비튼다. 시적 화자가 걷는 길은 ‘고갯길’로 바뀌고 ‘늙은 거지’는 ‘세 소년 거지’로 대체된다.  


나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는 넝마주이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 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이들의 행색은 투르게네프의 늙은 거지와 마찬가지로 비참하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덜너덜한 남루, 찢겨진 맨발.” 나는 탄식한다.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는 건 인지상정이다. 투르게네프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호주머니를 뒤져 본다. 한데 투르게네프의 화자가 빈손이었던 것과는 달리 윤동주의 화자에게는 두툼한 지갑과 시계·손수건 등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이것이 윤동주 식 반전이다. 거지 아이들에게 동정심은 일지만 선뜻 자기 물건을 적선할 만한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게 더 바람직하련만, 나는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아이들을 부른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 역시 투르게네프의 늙은 거지와는 다르다. 세 아이가 모두 피곤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그렇게 아이들은 사라지고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거지’의 반복이지만 ‘차이 나는 반복’이고 변주다. 시의 의미는 이 차이에 의해 생산된다. 투르게네프의 시 ‘거지’의 주제는 한마디로 휴머니즘이다. 길에서 만난 늙은 거지에게 적선을 하고 싶었지만 가지고 있는 물건이 없었던 나는 되레 늙은 거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투르게네프는 적선의 의미를 뒤집고 있는 것인데, 시에서 나보다 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오히려 더럽고 남루한 행색의 거지였다는 사실에 시적 화자는 물론 독자도 감동을 받는다.  


반면 ‘투르게네프의 언덕’에서는 적선은커녕 교감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세 소년 거지’에게 잠시 동정의 마음이 일지만, 그것은 고작 일시적인 기분에서 머문다. 나의 동정심은 이기심을 넘어서지 못한다. 자기 것을 내줄 만한 ‘용기’가 없는 나는 아이들과의 거리를 한 치도 좁히지 못한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는 섣부른 휴머니즘, 말뿐인 동정심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시의 ‘나’가 시인 자신이라면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가혹한 자기비판의 시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자주 부끄러워했던 윤동주의 초상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신의 휴머니즘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두 편의 시를 거울로 삼아 비춰 봐도 좋겠다. 

================///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김기림의 <>이란 시처럼 단수필이 아닌가 할 정도로 수필에 가까운 산문시였다쉽게 읽혀질 뿐만 아니라단락마다 눈앞에 그림으로 펼쳐져 기억하기에도 좋았다게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윤동주의 겸손된 마음과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와 내 마음을 훈훈히 데워주었다거의 한 달 동안 나는 윤동주시에 푹 빠져 살았다동족을 사랑하고 시대를 아파하며 이국땅에서 죽어간 젊은 시인 윤동주누군들 그를 기리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투르게네프의 언덕>이란 제목이 계속 낯설었다윤동주는 왜 이 시에 <투르게네프의 언덕>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디오게네스도 아니고거지 소년들을 본 것과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정말 아리송했다그러다가 투르게네프의 시 <거지>를 접하고서야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표절에 가까울 정도로 두 시가 비슷했다투르게네프의 시 <거지>가 결국은 윤동주의 <투르게네프의 언덕>에 연상작용을 불러일으켜 준 장본인이었다.

 

윤동주는 앞서 걸어가는 세 소년 거지를 보며 투르게네프의 <거지>를 떠올렸던 것이다.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파우스트등으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투르게네프는 1000명이나 되는 농노를 거느린 대지주의 아들이었으나 평생 농노제를 증오하고 맞서 싸울 정도로 인간에 대한 그것도 약자에 대한 연민이 남달랐던 작가다. 1818년생이니  거의 200  사람이요척추암으로 1883년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그가 떠난 지도 100 년이 넘었다하지만그는 윤동주에 의해 살아나고 독자들에 의해 거듭 부활하고 있다.

 

  <거지>라는 작품에서도 그의 따뜻한 마음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이것은 실화요시적 설정이 아님에 더욱 큰 감동을 자아낸다줄 것이 없어 거지 손을 덥석 잡아주며 용서를 청하는 대지주의 아들그리고 호주머니에 죄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지 소년들의 마음을 헤아려 선듯 건네지 못하고 있는 윤동주두 시인의 마음이 그들의 작품보다 앞서 내게 달려와 안긴다그들은 갔어도 그들은 시 속에 살아 있다한 편의 시가 주는 감동과 동의를 할 수밖에 없는 설득력그 속에서 시의 힘을 느낀다.

=================///

 

 

감상

  윤동주 시인의 시는 보통 분위기나 어조가 감성적이고 무언가에 젖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시는 뭔가 다르다. 화자는 찢어지는 가난함을 견디며 사는 어린 소년들의 모습을, 그저 건조하고 담담한 어조로 묘사할 뿐이다. 하지만 담담하기 때문에 이 시는 절절하고 슬프다. 원래 북받치는 감정을 통해 슬픔을 표현하는 것보다 그냥 담담하게 말하는 게 더 절실해보이고 감동적인 법이다. 문득 노을이 지는 황량한 언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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