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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윤동주 시의 무궁무진한 힘과 그 가치...
2019년 01월 20일 01시 34분  조회:2820  추천:0  작성자: 죽림
윤동주와 그의 시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해석

오광욱(용정, 윤동주연구회 회원,연변대학 문학박사)
 
1. 들어가는 말
 
민족시인 윤동주(1917.12-1945.2)에 대한 연구는 1948년 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된 후 많은 연구자들에의하여 지금까지 활발하고 다각적인 시각에서 다루어져 왔다. 윤동주는 당시 일제의 식민통치가 극심하고 문필활동이 자유스럽지못한 상황에서 125편의 시, 동시, 산문 등을 남겼는데 지금까지 시인에 관한 각종 연구논문, 저서 등은 220여 편에 달하고 있다.
윤동주에 대한 연구를 간단히 살펴보면 크게 전기적 사실에 대한 연구, 문학사적위치에 관한 연구, 정신사적 측면에서의 연구, 비교문학적연구, 원전확정에 관한 연구, 형식적 측면에서의 연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정신사적 측면에서의 연구는 다시 크게 주체성, 저항성, 종교성 등에 대한 연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처럼 시인과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는 다각적인 시각과 심도 있는 차원에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윤동주의 시를 조명한 논문은 손꼽을 정도로 가련한 상황이다. 심리적 모티브에서 일어나게 된 인간의 활동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활동의 결과인 문학작품도 역시 심리학의 대상이 될 수 있듯이 시인의 작품도 심리학적인 관점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리고 또한 윤동주의 시가 오늘날까지 작가와 다른 시대, 사회에 살고 작가와 전혀 다른 경험을 지니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사랑받는 것도 시대와 사회를 초월한 우리들이 모두 공감하는 어떤 보편적인 제시를 심리적으로 우리들에게 안겨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여 본고에서는 윤동주와 그의 대표적인 시 작품들을 칼·융(Carl Gustav Jung,1875-1961)의 분석심리학으로 해석해보려 한다. 윤동주에 대한 이러한 심리학적 접근은 한 작품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해줄 수 있을 뿐더러 시인의 정신세계를 진일보 파헤쳐 작품의 심층적 의미와 지니고 있는 가치를 더욱 분명히 할 수 있을 뿐더러 현시대 심리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2. 자아의 성숙
 
칼·융의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의식의 중심에는 자아(自我)가 존재하고 무의식의 중심에는 자기(自己)가 존재하는바 의식 속의 자아가 무의식의 내용물을 부단히 파헤치고 깨달아나가 자기와 포옹할 때 자기성장, 즉 자기실현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의식의 중심에 위치한 자아는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하나는 바깥세계와 관계를 맺고 이에 적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식의내면세계를 살펴 이와 관계를 맺고 이에 적응하는 기능이다. 의식의 중심으로서 의식을 통제하고 견고히 하는 것이 자아이지만 동시에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에 받아들여 이를 동화시키거나 그 뜻을 인식하는 것도 자아의 몫이다. 그만큼 성숙된 자아는 자기실현의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되는 것이다.
윤동주는 기독교가정에서 태어나 종교적인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소학시절 윤동주는 서울에서 발행되던 아동지 《어린이》와 《아이생활》 등 잡지를 정기적으로 구독하였고 5학년 때에는 송몽규 등과 함께 《새 명동》이라는 등사판 잡지를 만들 정도로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우등생인 것으로 전해진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어린 시절 윤동주는 이미 자아가 의식의 중심을 통치하고 자아의식이 어느 정도 성숙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윤동주의 성품에 대하여 동생 윤일주는 “동주형의 근실하고 관유함은 할아버지에게서, 내성적이요 겸허함은 아버지에게서, 온화하고 치밀함은 어머니에게서 각각 물려받은 성품”이라고 말하였다. 윤동주와유년시절을 같이 보낸 문익환도 회고담에서 윤동주를 “내면적이고 말수 적은 사람이지만 그를 건방지다고 보지 않았고 모두들 그런동주와 사귀고 싶어했다”고 말하였다. 그 외에 장덕순도 윤동주를 “外美内美한 인간이며 그의 시가 아름답듯이 그의 인간도 아름답고 그의 용모가 端正优美하듯이 지극히 아름답다”고 하였다. 상기 진술에서처럼 윤동주가 “근실하고 관유하고 겸허하고 온화하고치밀하고 내성적이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역시 자아가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자아의식이 어느 정도 성숙되었음을 의미하며 “건방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린 윤동주에게 있어서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이미 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시인의 이런 성숙된 자아의식은 그의 초기작품인 《초 한대》, 《거리에서》등 작품에서도 아주 잘 나타나고있다.
 
초 한대-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맛는다.
 
光明의 祭坛이 무너지기전
나는 깨끗한 祭物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같은 그의 몸.
그의 生命인 心志까지
白玉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려 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暗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祭物의 伟大한 香내를 맛보노라.
 
-1934년 12월 24일,
《초 한대》전문
 
시인은 초 한 대를 깨끗한 제물, 염소의 갈비뼈로 비유하면서 자기희생정신을 노래하고 있으며 생명인 심지까지 불태우면서 어둠을밝힌 한 대의 초와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준 예수를 동일화함으로써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마음으로 살려는 시인의 성숙된 자아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1935년 9월 1일, 윤동주는 집안 어른들을 설득하여 평양숭실중학교 3학년에 편입되어 수학하지만 이듬해 봄, 신사참배 거부문제로학교가 폐교당해 다시 용정광명중학교로 전학해 중학교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무렵 그는 소년잡지에 글도 게재했고 많은 양의 책을 읽었으며 문학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다. 자아의 성숙과 함께 시인은 차츰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세계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
 
달밤의 거리
狂风이 휘날리는
北国의 거리
都市의 真珠
电灯밑을 헤염치는
조그만 人鱼 나,
달과 전등에 비쳐
한몸에 둘셋의 그림자,
 
커졌다 작아졌다.
괴롬의 거리
灰色빛 밤거리를
걷고 있는 이 마음
旋风이 일고 있네
 
-〈거리에서〉중에서
 
1935년 북간도에서의 일제의 탄압과 통치가 극심해진 시기에 씌여진 이 작품에서 어린 윤동주의 자아가 느끼는 북간도의 거리는 광풍이 휘날리고, 괴로움이 넘쳐나고, 회색빛에 잠긴 쓸쓸하고 암울한 거리다. 현실세계는 결코 자아가 느끼고 있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1936년 봄에 씌여진 작품 《닭》에서도 “한间 鸡舍 그넘어 苍空이 깃들어, 自由의 乡土를 잊은닭들이, 시들은 生活을 주잘대고, 生产의 苦劳를 부르짖었다.”고 씀으로써 시인은 자유와 고향을 잃어버리고 피폐한 생활난에 허덕이는 우리 민족을 닭에 비유하면서 슬픈 현실의식을 잘 나타냈다.
《초 한대》등 작품에서 보여 지는 것이 종교적인 환경 속에서 일상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아의식의 성숙이라고 할 때 《거리에서》, 《닭》등 작품에서 보여 지는 것은 실존적인 차원에서의 좀 더 성숙된 자아의 현실적인 의식이라 할 수 있다.
1938년 2월 17일,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부친이 원하는 의과를 포기하고 대신 연희전희학교 문과에 송몽규와 함께 입학한다. 여기서 윤동주가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고집대로 좋아하는 문과를 택함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자아가 완전히 의식의중심을 굳게 통제하고 자아의식이 상당히 성숙되었음을 의미하는바 이제는 힘 세고 성숙된 자아가 무의식의 여러 내용물들을 서서히 맞이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무의식의 의식화, 즉 자기실현을 시작하였다.
 
 
3. 무의식의
의식화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무의식은 거대한 창조적 힘을 지니고 있고 사람은 생명본연의 성질에 따라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모든 정신적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를 원하기에 자아가 자기를 향해 가는 것, 즉 자기실현을 하는 것은 자아가 무의식을 적극적으로 의식화함으로써 가능하며 무의식을 보는 작업은 힘들고 고민과 고통이 동반될 뿐더러 인간의 삶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제라고주장한다.
이제 시인 윤동주가 어떻게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화하는가를 작품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발에 터부한 것을 다 빼어 바리고
黃昏이 湖水우로 걸어 오듯이
나도 삽분삽분 걸어 보리이까?
 
내사 이 湖水가로
부르는 이 없이
불리워 온것은
참말 异迹이외다.
 
오늘 따라
恋情, 自惚, 猜忌, 이것들이
자꼬 金메달처럼 만져지는구려
 
하나, 내 모든 것을 余念없이
물결에 씻어 보내려니
당신은 湖面으로 나를 불러 내소서.
 
-1938년 6월 15일,
《이적》전문
 
작품 《이적》에서 황혼이 내려앉은 어느 날 시인은‘부르는 이’ 없는 ‘소리’를 따라 기이하게도 호수가로 와 연정, 자홀, 시기 등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우선, 시간적으로 볼 때 황혼이다. 황혼은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대략 중간쯤 되는 시간 때다. 낮은 의식세계요 밤은 무의식세계를 상징할 때 황혼은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가 만날 수 있는 경계선인 것이다. 바로 이 경계선에서시인은 무의식 세계로 진입하였던 것이다. 다음, 시인이 다가간 곳은 호수이다. 심리학적으로 호수는 그 깊이, 내용물 등을 가늠하기어려운 존재인 것만큼 미지의 세계, 즉 무의식세계를 상징하며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와의 대면을 상징한다. 셋째로 호수라는 무의식세계를 마주하고 시인이 느껴지는 연정(恋情), 자홀(自惚), 시기(猜忌) 등은 무의식의 여러 가지 내용물로서 시인의 자아는 바로무의식을 의식화하였음을 상징한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어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忆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 9월,
《자화상》전문
 
상기《자화상》에서 ‘우물’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심층적공간이다. 즉 분열된 자기를 엄중하게 들여다보고 내면적 고통과 맞대면하는 공간이며 자기성찰의 공간이다. 무의식의 의식화, 즉 자기실현을 위해서는 우선 “나는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와 같은 아주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을 바탕으로 하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하여 시인은 자기성찰을 하는 바 현재의 자신을 미워하고 자기성장과정에서 내면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자신이 가엽게 생각되고 ‘있어야 할 자신’ 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있어야 할 자신’이바로 ‘自己’이며 자기실현은 ‘있는 나’인 자아가 ‘있어야 할 나’인 자기를 찾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바로 무의식세계를 인식하고 자기성장 즉 자기실현을 요구한 것이다.
자기실현을 의식의 중심인 자아가 의식과 무의식을 합친 전체정신의 중심인 자기를 찾아가 포옹하는 과정이라고 칼·융은 말한다. 윤동주의 대부분 시는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려는 자아의 자기실현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시인은 바로 작품을 통하여 무의식을 의식하고 자기실현에 도달하려는 확고한 신념과 그 욕구를 아주 잘 표현하였다. 《무서운 时间》(1941.2.7) 에서 “거 나를 부르는것이누구요”, 《또 太初의 아침》(1941.5.31)에서 “하얗게 눈이 덮이였고 电信柱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 무슨 启示일까”에서 모두 ‘소리’가 등장한다. 이 ‘소리’를 심리학적으로 볼 때, 무의식의 ‘부름’이고 나를 일깨우는 각성의 소리이며 평화로운 존재의 상태를 뒤흔들어 고통스런 번민을 시작하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소리인 것이다. 윤동주가 자기실현을 위하여 이미무의식의 의식화를 시작하였음을 시사하는 바다. 그리고《또 다른 故乡》(1941.9) 에서 “가자 가자 쫓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아름다운 또 다른 故乡에 가자.”와 《序诗》(1941.11.20)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고 한 것처럼 시인의 확신에 가득한 “가자”라는 결심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바로 자기실현을 향한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칼·융의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무의식의 의식화과정에는 수없이 많은 내적인 고민과 갈등이 동반된다. 시인의 《바람이 불어》(1941.6.2) 에서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理由가 없다”, 그리고 또한 《序诗》(1941.11.20)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한 것처럼 바람으로 인해 시인은 괴로움을 깨닫고 있으며 심리학적으로 그것은 바로 자신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시인이 처한 시대와 현실상황을 잠시 떠나 심리학적으로 볼 때 윤동주한테 고민과 갈등이 생겨나게 되는 것은 바로 성숙한 자아가 거대한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에서 감수해야 하는 심리적 고민과 고통인 것이다.
 
 
4. 그림자의 인식과 통합
 
칼·융의 분석심리학에서 그림자는 의식에 가장 가까운데 있는 무의식의 내용이며 무의식의 의식화과정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심리적 내용이다. 그림자는 자아의 어두운 면, 자아로부터 배척되고 버림받아 무의식에 억압된 자아의식의 여러 가지 성격 측면이다. 쉽게 말하면 그림자는 “나”가 싫어하는 “또 다른 나”, 앞으로 “나”가 받아들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어두운 “형제”다. 그래서그림자는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부정적이고, 열등한 측면과 자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도덕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그림자는 우리가 직면하기를 꺼려하는 모든 열등요소고 아직 자아가 접수하지 않은 요소들이지만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요소들이기에 언제나 의식에 동화되려 하며 우리가 그림자를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지고 심하면 자아의식을 덮쳐 지배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해칠 수 있는 거대한 파괴적인 힘이 작동된다. 하여 칼·융은 “사람들이 그림자를인식하지 못할 때 그것은 본능의 냉혹하고 위험한 양상을 지니게 된다”고 주장한다.
무의식에 잠재한 그림자는 단지 햇빛을 보지 못하여 나쁜 것처럼 보일 뿐 의식화로서 그림자는 발전될 뿐더러 자기실현의 좋은 에너지, 좋은 밑거름으로 될 수 있다. 하여 자아의 버림으로 무의식에 억압된 그림자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살려서 자신의 것으로 통합하여야만 정신적으로 더 성숙되고 더 인간적인 사람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이제 윤동주가 어떻게 자아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여 자기실현을 향한 힘겨운 여정을 시도하였는지를 살펴보자.
1941년 9월,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시절에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또 다른 고향》을 쓴다. 이 시는 윤동주가 최초의 시 《초한대》(1934년)에서 마지막 시 《쉽게 씌여진 시》(1942년)에 이르는 자기 찾기 과정의 중심에 있는 시로서 윤동주가 자기 내면의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면서 전체정신의 중심에 이르고자 하는 열망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故乡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房은 宇宙로 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风化作用하는
白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이 우는것이냐
아름다운 魂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乡에 가자.
 
-1941년 9월,
《또 다른 故乡》전문
 
이 시에서 화자는 ‘어두운 방’에 처해있고 ‘어두운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서는 바람이 불어온다. 이런 방에서 시적 자아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고 또 다른 고향에 가기를 갈망한다. 심리학적으로 해석할 때 우선 어두운 방은 무의식세계를 상징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자아에 흡수되기를 바라는 무의식의 내용물이다. 때문에 시적자아는 ‘바람’이라는 무의식의 공격에 괴로움을 느끼고있다. 다음 어둠을 짖는 ‘지조높은 개’는 시적자아의 내면을 각성시키고 깨닫게 만드는 영혼의 목소리다. 셋째로 이 시에서 시적 자아는 ‘나’와 ‘백골’과 ‘아름다운 혼’으로 분열되고 있는데 특히 ‘백골’과 ‘아름다운 혼’은 대립의 관계에 처해있다. 또‘백골’이라는 시어가 4회 등장하는 바 이는 무게중심이 ‘아름다운 혼’ 보다 ‘백골’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시에 나타나는 ‘백골’은 자아의 버림으로 무의식에 잠재한 그림자며 ‘아름다운 혼’은 전체정신의 중심인 자기로, ‘나’는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에받아들여 이를 동화시키거나 그 뜻을 인식하려는 성숙된 자아다. 여기서 시인은 분명 ‘백골’이라는 그림자를 인식하고 있으며 그그림자를 통합하고 ‘아름다운 고향’으로 상징되는 자기, 즉 자기실현에 도달하기를 지향하는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세계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여 전체정신의 중심인 자기로 다가가려는 힘겨운 노력과 도전은 고국에서의 마지막작품 《忏悔录》(1942.1.24) 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보자. 그러면 어느陨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우선 여기에서 밤은 무의식세계를 상징하고 거울은 《자화상》의 우물처럼 자기성찰의 상징적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거울을 통하여 자아를 응시하고 무의식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다음운석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행동인 것만큼 자기실현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상징하고 슬픈 사람의 뒤 모양은 바로시인 자아의 버림으로 무의식에 잠재한 어두운 그림자를 상징한다. 이런 자신의 그림자를 통하여 자아를 응시함은 시인이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살려서 보기 좋게 통합하는 걸 상징한다.
칼·융은 진정한 자신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세계의 자신의 그림자를 억압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왜냐 하면 이러한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자기의 주동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만이 자신이 싫어하는 “어두운 형제”인 그림자를통합하여 그 속의 창조적인 힘이 의식세계를 지배하게 함으로써 심리학적인 의미의 성장, 즉 자기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여칼·융은 그림자를 통합하는 것은 평생 동안 해나가야 할 작업이라고 잘라 말한다.
1942년 1월 29일, 윤동주는 창씨개명을 한 후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은 윤동주에게 뿐만 아니라 그 시대 일제의 식민통치 속에서서럽고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모든 조선민족에게 있어서 분명히 모두가 싫어하는 그림자다. 이러한 그림자를 직면하여 윤동주가 도일(渡日)함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자신이 싫어하는, 힘이 강한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윤동주의 일본에서의 작품을 보기로 하자.
 
黃昏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로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이 기울이면
땅검의 옮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소리를 들을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든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든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 보내면
거리 모통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든 흰 그림자들,
 
내 모든것을 돌려 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黃昏처럼 물드는 내방으로 돌아오면
 
信念이 깊은 으젓한 羊처럼
하로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1942년 4월 14일,
《흰 그림자》전문
우선 시간적으로 보면 황혼이다. 황혼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가 만날 수 있는 경계선이며 이 경계선에서 시인은 무의식세계로 진입하였던 것이다. 다음 발자취소리는 무의식의 ‘부름’이고 나를 일깨우는 각성의 소리다. 셋째로 시적자아를괴롭게 만들었던 수많은 ‘나’와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는 자아의 어두운 ‘형제’인 그림자이며 수많은 ‘나’를 제고장으로 돌려보내고 또한 ‘흰 그림자’를 연연히 사랑함은 자아가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자신이 오래도록 들여 보았던 어두운 내면의 그림자를 통합한 후 시적자아는 그제야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 즉 깨달음을 얻은 양이요, 자기실현을 이룬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세계의 그림자를 통합하고 자기실현을 향한 자아의 절실한 갈망과 힘겨운 도전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며 완성도가 높은 절창인 《쉽게 씌어진 诗》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다.
 
……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时代처럼 올 아츰을 기다리는 最后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慰安으로 잡는 最初의 握手.
-1942년 6월 3일,
《쉽게 씌여진 诗》중에서
 
이 시에서 윤동주는 자신의 무의식세계의 그림자인 ‘어둠’을 통합하고 자기실현을 이룬 ‘最后의 나’ 가 되기를 희망하고 ‘最后의나’를 전체중심인 자기로 상징한다고 할 때 시인은 바로 자아와 자기가 포옹하고 악수하는 성숙되고 지혜로운 모습, 즉 자기실현에도달한 자신을 심리적으로 갈망하는 것이다.
 
 
5. 나오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윤동주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중심으로, 특히는 작품을 완성한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윤동주의 내면의 정신세계를살펴보았다.
기독교적인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고 자아가 의식의 중심을 굳게 통치하고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분화되었을 뿐더러 자아의식이 어느 정도 성숙되었다. 그리고 자아의 성숙과 함께 시인은 차츰 자신이 처해있는참혹한 현실에 눈길을 돌리게 되며 자기실현을 서서히 시작하였다. 자기실현을 함에 있어서 시인의 자아는 무의식의 부름을 듣게 되고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에서 내적인 고민과 갈등을 겪게 되며 이러한 것을 자신의 《서시》등 작품을 통해 아주 잘 표현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고향》, 《참회록》 등 작품에서 시인은 자신의 ‘어두운 형제’인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하여 자기실현을 지향하며 도일의 심층적인 의미와 도일후 작품인 《흰 그림자》, 《쉽게 씌여진 시》 등 작품에서도 자신의 그림자를 진일보 통합하는 모습과 자기실현을 향한 갈망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전체정신인 자기에 도달하기 위한 시인의 절실한 욕망이며 자신한테 주어진과제이기 때문이다.
분석심리학에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누구에게나 자기실현, 즉 전체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의식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모든 사람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기실현은 사실 엄숙한 것도 심각한 것도 아니다. 바로개인의 ‘평범한 행복’을 구현하는 과정이며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으나 아직 실현하지 못한 삶을 가능한 한 많이 실현하는 것이다. 특히 삶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자기실현은 행복 그 자체거나 행복한 삶의 중요한 조건이자 자질이다. 윤동주의 대부분 작품들은 전체중심인 자기를 찾아가려는 자아의 자기실현을 표현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종교, 시대와 사회를 떠나 현재까지 우리 모두가 시인의 작품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인은 보편적인 인간심성이며 인간의 원초적 조건인 자기실현을 작품 속에 구현하였고 또한 독자들한테 심리적으로 진정한 행복을 위해 자신의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과정, 즉 자기실현을 적극 요구한 것이다. 바로 우리 모든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한 자기실현의 욕구를 작품 속에 표현한 것이 윤동주의 많은 대표적인 시가 우리 후세한테 전해주는 심리적인 제시이고 수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고 또한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이며 진정 윤동주의 시가 지니고 있는 무궁무진한 힘과 크나큰 가치인 것이다.
 
 
오광욱 프로필:
문학박사, 연변작가협회 회원, 《두렵게 노크하다》(공저), 《최서해 소설의 인간형과 대사회적 대응양상》, 《윤동주 향토애의 심성과 그의 시세계》, 《리색 한시연구》,《김혁의〈마마꽃, 응달에 피다〉에 대한 분석심리학적고찰》 등 논문이 있음. 현재 연변대학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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