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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그는 절대로 "문약한" 학생이 아니었다...
2019년 03월 23일 19시 12분  조회:2672  추천:0  작성자: 죽림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당시의 윤동주.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당시의 윤동주.ⓒ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윤동주는 문약한 학생이 아니었다. <서시>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그는 노래했다. 이런 시만 보면 섬세하고 연약한 청년 같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었다. 무장독립투쟁까지 생각했던, 내면적으로는 강한 면모를 보유했던 투사였다.
 
겉모습과 다른 윤동주의 그런 내면이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에서 약간이나마 어느 정도 묘사됐다. 영화 속의 윤동주(김하늘 분)가 강한 모습으로 묘사된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자 했던 그의 강인함이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묘사된다.
 
<동주>는 윤동주가 일본 유학 중 체포돼 경찰 조사를 받는 장면을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릿쿄대학에 입학했다가 도시샤대학으로 옮긴 뒤 항일운동 혐의로 붙들린 뒤의 상황이 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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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 루스 이 소니도스

  
영화는 중간중간 윤동주의 회상을 통해 체포 이전 상황을 하나둘씩 제시한다. 윤동주와 일본 경찰을 제외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회상 장면에서 등장한다. 회상 장면에서는 윤동주가 지은 시들도 이따금 흘러나온다. 시 낭송회를 감상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영화에서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런 일이다"라는 대목이 있는 <쉽게 쓰여진 시>도 나온다. 또한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골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구절이 있는 <아우의 인상화>,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는 부분이 있는 <병원> 등이 소개된다.
 
<동주>는 주인공이 인생 단짝인 송몽규(박정민 분)의 영향을 받아 총칼을 들고 싸울 생각을 했다는 점을, 일본 고등형사(김인우 분)와의 대화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송몽규는 윤동주 집에서 윤동주보다 3개월 먼저 태어난 고종사촌형이다.
 
고등형사는 송몽규가 계획한 무장투쟁 계획을 윤동주에게 읽어주면서, 너도 알고 있었느냐는 식으로 물어본다. 110분짜리인 영화가 1시간 3분을 지날 때쯤 고등형사가 읽어준 송몽규의 친필 계획서는 아래와 같다.
 
"대일본제국에서 실시된 조선인 동원령을 조직적으로 이용할 것.
유사 시 이용할 일본인을 포섭할 것.
장교급으로 군부에 깊이 들어갈 조선인 제국대학생들을 선발할 것."
 
송몽규는 일본군에 편입된 조선인들을 이용해 무장투쟁을 벌이고자 했다. 이 계획에 윤동주가 어느 정도 가담했는지를 고등형사는 알아내고자 한다. 송몽규의 친필 서류를 보여주면서 형사는 말한다.
 
"송몽규 글씨는 알아볼 수 있겠지? 릿쿄대학으로 간 것도 송몽규의 영향 아닌가?""
  
 송몽규(앞줄 중앙)와 윤동주(뒷줄 오른쪽).

송몽규(앞줄 중앙)와 윤동주(뒷줄 오른쪽).ⓒ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윤동주는 1943년 7월 14일 교토에서 특고경찰(사상범 전문)에 체포됐다. 송몽규는 4일 전 체포됐었다. 이들에 대한 조사 기록이 내무성 경보국(警保局) 보안과가 작성한 1943년 12월호 <특고월보>에 실려 있다. '재(在)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 책동 개요'란 제목의 문서다.
 
정병욱 교수가 한국어로 옮기고 윤일주 교수(윤동주 동생)가 해설을 붙인 이 문서 번역문이 송우혜(송몽규 조카)가 쓴 <윤동주 평전>에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주범' 송몽규와 '공범' 윤동주는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조선문화 수호 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해방 뒤의 정치체제까지 준비하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특고월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두 사람은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전쟁의 종국에 가서는 반드시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고 망단(妄斷)하고 일본의 국력이 피폐한 틈을 타서 조선독립의 여론을 환기시켜 민중을 봉기케 하여 일거에 독립을 완수시킬 것을 의도하여, 교토에 있는 조선인 학생 여러 명을 지목하여 충동함으로써 동지를 얻는 데 노력한 결과 제3고등학교 학생인 고희욱을 얻어, 1942년 10월경부터 금년(1943년) 7월경까지 교토의 시내 각처에서 3명이 가끔 회합하여 민족의식의 앙양 내지는 구체적인 운동 방침 등에 관하여 협의해 왔던 바 ······."
 
당시 일본이 곧 망할 거라는 윤동주 등의 판단을 두고 특고경찰들은 '망단'(妄斷)으로 폄하했다. 하지만 윤동주 등에게는 확신이고 갈망이었다. 일본이 곧 망할 거란 확신을 갖고, 또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면서 윤동주 등은 싸움을 결의했다.
 
이들은 우선 대중 선전전에 주력하기로 했다. 우리말과 우리 글이 없어지면 우리 민족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인식 하에, 우리 언어로 된 문학작품을 생산·배포해 조선인들에게 영향을 주는 활동을 하고자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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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위키백과

   
대중 선전전 외에, 실제적인 무장 투쟁도 계획했다.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를 대비해 일본군 내의 조선인들을 모아 봉기한다는 발상이었다. <특고월보>는 이렇게 말한다.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의 강화조약에 즈음하여 조선의 독립 문제가 반드시 조건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만일 제기되지 않더라도 일본의 국력이 약해지거나 또는 일본이 패전하는 기회를 타서 독립운동을 전개시키면 조선인은 모두 궐기할 것이다. 그때에 조선 출신 군인들도 큰 구실을 해야 할 것이며, 우리들도 목숨을 바쳐 궐기해야 한다."
 
그날이 되면 목숨을 바쳐 궐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을 몰아낸 다음에 어떤 정치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 그들은 그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아래와 같은 임시방편적 대책을 준비했다. <특고월보>에 나오는 내용이다.
 
"독립 후의 정치 주권자는 누구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얼마 동안 군인 중심의 독재정치에 맡겨야 한다."
 
해방 직후의 과도기 동안은 군인 독재를 통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인식이었다. 소수의 청년 학생들이 세운 계획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마음 속에 담아두거나 토론회에서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경찰의 조사 결과처럼, 이들은 조직원 확보에 나섰다. 계획을 행동으로 옮겼던 것이다.
 
윤동주 등의 계획은 빛을 보지 못했다. 실천 행동의 초기 단계에서 특고경찰들에게 발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념을 실행에 옮기고자 행동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전시의 암울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 그것도 적지 일본에서 무장독립투쟁을 꿈꾸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윤동주의 민족 사랑이 관념적 사변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실천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으며, 그가 시에서 읊었던 것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시구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윤동주는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마루타 생체실험으로 의심되는 뭔가에 의해 몸이 시들어가다가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28세 젊은 생을 마감했다. 정말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다 간 독립투사였다. 1990년, 대한민국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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