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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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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국渤海国
2017년 11월 03일 12시 37분  조회:116  추천:1  작성자: 고구려

발해는 고구려사람들이 고구려의 옛땅에 고구려의 정치제도와 문화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나라이다.

당시 국내외적으로 《발해국》을 가리켜 《고구려》, 《고려》라는 옛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실례로 758년 발해사신이 일본왕에게 자기 나라왕의 인사를 전하면서 《고려국왕》의 인사를 전한다고 하였다. 일본왕들도 발해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주 《고구려왕》이라고 썼다.

이것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다는것을 말한다.
 

발해는 고구려유민들에 의하여 옛 고구려땅에 세워진 국가였으며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였다.

발해는 당나라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한 고구려유민들의 줄기찬 투쟁속에서 성립되였다.

당나라침략자들을 옛 고구려땅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한 고구려유민들의 투쟁

당나라침략자들을 반대하는 고구려인민들의 투쟁은 676년이후 한층 복잡한 국면에 부딪치게 되였다. 그것은 신라가 당나라침략자들과 다시 야합하면서  《고구려국》 압살하려는 배신행위를 계속 감행하였기때문이였다.

- 신라의 배신행위와 당나라침략자들을 반대한 고구려유민들의 투쟁

신라통치배들은 대동강이남지역을 차지하고는 이 지역에서 고구려유민들의 투쟁을 기어이 막아나섰다.

신라의 문무왕은 680년에 누이동생을 안승에게 시집보낸데 이어 683년에는 그에게 신라의 소관(제3등급)의 벼슬등급과 왕실의 성 김씨를 주고 그의 일가친척들을 수도 경주에 이주시키는 방법으로 《고구려국》을 말살하였다.

신라의 배신행위는 고구려유민들의 큰 분노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금마저(익산)에 남아있던 고구려유민들은 신라를 반대하여 봉기를 일으키였다. 그들은 달려드는 토벌군과 결전을 벌렸으며 그 우두머리들을 처단하였지만 결국에는 진압되였다.

그후 대동강이남지역으로부터 많은 고구려유민들이 그 이북지역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복잡한 정황에서도 당나라침략자들을 반대하는 고구려유민들의 투쟁기세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투쟁은 압록강이북지역을 중심으로 계속 고조되였다.

당나라침략자들은 676년 2월에 《안동도호부》의 소재지를 료동군 고성(료양)으로 옮겨가는 한편 677년 2월에는 장안(서안)으로 끌고갔던 고구려의 보장왕을 료동으로 끌어다가 이른바 《조선왕》으로 내세워 국가회복을 위한 고구려유민들의 투쟁을 무마하려고 꾀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유민들은 적들의 술책에 속지 않았으며 《조선왕》을 배격해나섰다. 또 보장왕자신도 당나라침략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료동에 오자 당나라를 배반하는 활동을 벌리였다. 궁지에 빠진 당나라침략자들은  《조선왕》을 페지하고 다시 데려갔다.

고구려유민들의 이러한 줄기찬 투쟁과정에 점차 새로운 소국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고구려를 계승한 새 나라가 형성될수 있는 기초가 이루어져갔다.

- 고구려를 회복하기 위한 대조영을 비롯한 고구려유민들의 투쟁

이 시기 압록강류역과 그 부근의 의주일대에는 《고구려국》이 새로 섰으며 한편 태백산(백두산)일대에서도 진국이라는 고구려유민들의 나라가 건립되였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자료에 의하면 진국은 678년경에 나타났으며 684년경에 자기 존재를 더욱 뚜렷이 하였다고 볼수 있다.

당나라침략자들을 반대하고 고구려국가를 회복하기 위한 고구려유민들의 투쟁은 696년 영주(오늘의 료서, 열하일대)지방에서의 폭동을 계기로 더욱 고조되였다

영주지방은 원래 고구려사람들의 활동무대였던것만큼 적지 않은 고구려사람들이 살고있었다.  당나라침략자들은 고구려멸망후 많은 사람들을 랍치해갔는데 그 일부를 이곳에 강제억류하였다.

당나라침략자들은 영주의 류성현(조양)에 도독부를 설치하고 거란족을 비롯한 그밖의 여러 종족들과 함께 이주해간 고구려인, 말갈인들을 가혹하게 억압착취하였다.

영주지방의 고구려유민들은 696년 5월에 마침내 거란인, 말갈인들과 합세하여 대규모적인 폭동을 일으켰다.

고구려사람들은 고구려의 옛장군인 대조영의 지휘밑에 료동으로 진출하여 고구려국가를 회복할 큰뜻을 가지고있었다.

대조영이 지휘한 고구려유민들로 조직된 부대는 폭동군의 동부전선주력이였는데 그들은 수개월동안에 영주의 동쪽과 동남쪽의 많은 성들을 점령하였으며 9월에는 료서의 고성(영주동남방 270리지점, 지금의 대릉하하류)에 쫓겨와있던 《안동도호부》를 공격하여 큰 타격을 주였다. 폭동군의 맹렬한 공격에 질겁한 《안동도호》 배현규는 폭동군과 맞설 엄두도 내지 못한채 성안에 들어박혀있었다. 적들은 697년 4월에 20만명의 대군을 파견하여 폭동군을 저지시키려 하였으나 그들의 전진을 가로막지 못하였다.

이처럼 폭동군은 696년 5월부터 그 이듬해 4월까지 1년동안 련속 큰 승리를 이룩하였다.

- 천문령전투에서의 큰 승리

697년 4월경에 돌궐족의 무력간섭으로 말미암아 전반적정세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돌궐군은 당나라군과 협동하여 폭동군의 한 부대인 거란인부대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계속하여 다른 한 부대인 말갈인부대를 격파한 다음 고구려군을 추격하여왔다.

고구려유민부대는 당나라침략군을 격파하지 않고서는 고국땅을 향해 진격하려는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다는것을 알고 분산된 말갈인부대를 수습하여 자기의 력량을 보강한 다음 동쪽으로 계속 진격하였다. 고구려군은 침략군을 완전히 소멸해버릴수 있는 유리한 지점으로 유인하면서 행군을 다그쳤다.

고구려군은 698년 초에 천문령(료녕성 창무서쪽의 령)에 매복하였다가 불의에 대기습전을 벌리여 적들을 거의 몰살시켜버리였다. 고구려군의 공격이 얼마나 드세였던지 적우두머리 리해고는 패잔병을 수습할 엄두도 못내고 저 혼자 겨우 도망치였다.

 

 

 

천문령전투에서 결정적승리를 달성한 고구려군은 사기충천하여 계속 동쪽으로 진격하여 료하를 건너갔다가 다시 송화강상류 휘발하를 건너 동모산(돈화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고구려군은 이전 고구려령역안의 봉건세력들과 광범한 인민들을 집결시켜 새 국가를 세울수 있는 담보를 마련하였다.

발해국의 성립

-698년 발해국의 성립

대조영을 중심으로 한 새 봉건세력집단은 이미 이룩한 군사적승리와 정치적력량에 기초하여 698년에 소국인 진국을 확대발전시켜 발해국의 성립을 세상에 선포하였다.

발해국의 1대왕은 대조영(大祚榮 - 왕호; 고왕) 이였고 초기 수도는 동모산이였다.

발해국의 성립과 더불어 압록강하류 류역일대의 고려(고구려)국은 그 후국으로 전환되였다.

 

령역은 서쪽은 료하, 북쪽은 흑룡강일대, 동쪽은 조선동해와 연해주, 남쪽은 대동강과 덕원(원산)을 이은 계선으로서 금야강 이북의 옛 고구려령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있었다.

초기수도는 동모산(돈화동쪽)이였고 후에 상경(흑룡강성 녕안현 발해진)으로 옮겨졌다.

발해는 국내외적으로 보통 《고구려》혹은 《고려》라는 옛이름을 그냥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발해왕을 《고려왕》, 사신을 《고려사신》이라고 흔히 썼다.

발해국은 봉건지주계급이 주권을 쥐고 인민들을 억압착취하는 봉건국가였다.

― 성립의 의의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국의 성립은 우리 나라 중세력사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중요한 사건이였다.

발해국이 성립됨으로써 고구려의 옛땅을 기어이 강점하려던 당나라침략자들의 의도는 완전히 파탄되고 민족의 자주권을 지켜나갈수 있게 되였으며 고구려사람들이 옛 땅에서 자기의 주권을 가지고 생활을 계속해나갈수 있게 되였다.

고구려유민들의 줄기찬 투쟁에 의하여 당나라침략자들이 끝내 쫓겨나고 발해국이 성립됨으로써 신라의 외세의존정책에 의해 빚어졌던 엄중한 민족적위기가 극복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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