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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중국 동북 지방연변등 지역과 북한지역) 고구려高句麗족과 한강이남(대한민국)의 삼한韓족
2021년 05월 21일 02시 18분  조회:201  추천:0  작성자: 고구려
한국인인  우리는 한민족(韓民族)입니다. 

한민족(韓民族)은 근원은 한반도 이남에 존재했던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의 삼한(三韓)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마한은 지금의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 진한은 낙동강 동쪽의 경상도 지방, 변한은 낙동강 서쪽의 경상도 지방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고, 삼한이 한반도 이남지역에 기반한다고 보고있습니다. 

따라서, 삼한(三韓)을 세운 한민족(韓民族)과 고구려를 세운 북방민족은 같은 민족이 아닙니다. 

우리는 남한(南韓)과 북한(北韓)이 같은 한민족(韓民族)인줄 알고 있지만, 실제로 북한은 한민족(韓民族)이 아닙니다. 

우선, 북한(北韓)이라는 명칭 자체가 남한측에서 일방적으로 붙인 명칭입니다. 

북한의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議人民共和國)"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북한을 "북조선(北朝鮮)"이라고 부르고, 남한을 "남조선(南朝鮮)"이라고 부릅니다. 

남한의 국호는 "대한민국(大韓民國)"입니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을 북한(北韓)이라고 부르고 남한을 남한(南韓)이라고 부릅니다. 

남한(대한민국)은 삼한(三韓)의 정통성을 계승한 남방민족인 한민족(韓民族)이기 때문에, 韓을 집어넣어,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 지은 것이고,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고조선(古朝鮮)의 정통성을 계승한 북방민족이기 때문에, 北朝을 집어넣어, 국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議人民共和國)이라 지은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북한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한민족(韓民族)이 아니라 북방민족입니다. 

다만, 오늘날 남한인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북한(北韓)이라 부르며, 북한이 한민족(韓民族)의 일부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고, 
북한인들은 남한을 남조선이라 부르며, 남한이 북방민족의 일부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북방민족이 세운 고조선과 고구려는 한반도가 아닌 요동지역에서 태동했으며 요동지역을 주 근거지로 삼았으며, 고조선과 고구려를 세운 북방민족은 한반도 이남의 우리 한민족과는 전통적으로 적대적 관계에 있었습니다. 

고조선과 고구려가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아닌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북방민족이 세운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우리 한민족이 지배하던 한반도 이남지역을 단 한번도 지배하지 못했고(일부 영토의 점령이 아닌 완전한 지배), 한민족 또한 한반도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현존하는 모든 고조선의 강역도들을 보면 한결 같이 고조선의 영역에는 한반도 이남지역이 제외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고조선이 건국될 때부터 시작하여 고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한반도 이남지역에는 고조선을 세운 북방민족이 넘볼 수 없었던 강력한 우리 한민족(삼한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고조선이 멸망하고 난 뒤 고조선 유민들이 한반도 이남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 

고조선의 강역도를 보면 고조선의 영토는 정말 광대했습니다. 그렇게 강력했던 고조선이 건국할 때부터, 멸망할 때까지 그 긴 세월동안 단 한번도 지배하지 못했을 만큼 강력했던 한반도 이남지역이, 고조선이 멸망하고 난뒤 허겁지겁 보따리 싸서 쫒겨온 일부 고조선 유민들에 의해 지배되었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으며 사실이 아닙니다. 

북방이민족이 세운 고조선, 고구려, 발해가 멸망할 때마다, 우리 한민족은 그들 북방민족들 일부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은 그들 북방이민족들과 융화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발해 멸망 이후, 천년 동안 발해를 우리 역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발해를 우리 역사로 쓰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유득공 때부터입니다) 즉, 우리 조상들은 고구려와 발해를 한민족이 아니라, 북방이민족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한반도 이남지역의 우리 한민족들은 한반도 이북지역의 북방 이민족들을 차별하고 멸시해왔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한반도 이북의 북방 이민족들은 조정에 출사도 못하게 만들었고, 그들 북방이민족들을 한반도 이남의 한민족과 철저하게 분리하여 차별해왔습니다. 그래서 한반도 이북지역의 북방 이민족들은 한반도 이남의 한민족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고자 무수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조선시대의 벼슬아치나 관리들 중에 한반도 이북지역 출신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경향은 이어져서, 우리 한반도 이남의 한민족(한국사람)은 한반도 이북지역의 북방 이민족(북한사람)을 차별하고 멸시하고 있습니다. 

국경을 접하고 있고, 같은 언어를 쓰고 있고, 피부색이 같다고 것이 같은 민족이라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란과 이라크의 예를 들면, 이란인과 이라크인은 피부색도 같고, 이란과 이라크도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국경을 맞대고 있고, 같은 언어인 아랍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언어가 이란어, 이라크어로 따로 불리고 있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남북한의 방언 차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란은 페르시아문명의 발상지이고, 이라크는 바빌로니아문명의 발상지입니다. 즉, 그들은 피가 다르고 뿌리가 다른 민족들입니다. 그래서 수천년 동안 오늘날까지도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남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구려, 발해가 멸망한 이후 북방민족 일부가 한반도 이북지역에서 한민족이 세운 나라에 속해서 살기는 했지만 천년이 넘도록 서로 섞이지 못하고 오늘날까지도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남과 북은 민족성이 확연히 다릅니다. 

남한의 민족성은 삼한인(신라)들의 민족성을 계승했기 때문에, 강대국에 굽히고 강대국과 교류하며 살아가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민족성은 북방민족의 민족성을 계승했기 때문에, 강대국에 굽힐줄 모르고 강대국과 대립하며 살아가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나라에 굽히고 당나라와 교류하여 번영을 누렸던 삼한인(신라)의 민족성이 오늘날 미국에 굽히고 미국과 교류하며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의 민족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당나라에 굽히지 않고, 당나라와 대립하여 결국 나라를 멸망에까지 이르게 했던 북방이민족(고구려)의 민족성이 오늘날 미국에 굽히지 않고, 미국과 대립하여 결국 나라를 멸망 일보직전에 놓이게 만든 북한인들의 민족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역사는 속일 수가 있어도, 피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흔히들 한민족이 고구려와 발해 유민을 받아주었다고 해서, 우리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계승했다고 주장을 하는 데 이 또한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 입니다. 

고구려와 발해유민들은 중국으로 더 많이 갔습니다. 

또한 백제 멸망 이후, 백제의 지배계층들과 백제 유민들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지배계층이나 유민들을 받아주었기 때문에 그 나라의 역사를 계승할 수 있다는 논리라면, 일본이 백제의 역사를 계승하는 것도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하는 것도,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국호를 고려라 했다하여,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논리는 역사적으로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있는 뉴 잉글랜드(New England)가 잉글랜드라는 명칭을 사용한다고 하여, 영국(England)을 계승할 수는 없습니다. 

근대에 들어, 유럽인들은 동양을 탐험하면서 동양의 정보를 삽화로 그려 유럽사회에 퍼뜨렸습니다. (당시에는 사진기가 없었으므로) 

이중에는 조선에 대한 삽화도 있었는데, 삽화에 나온 조선인은 중국인이나 동남아인의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즉, 서양인들의 눈에는 동양인들은 다 그놈이 그놈인 것처럼 보였던 겁니다. 

오늘날에도 한국이 어디에 붙어있는 줄도 모르고, 한국인을 보면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아는 서양인들이 많습니다. 
또한 오늘날 서양에는 심지어 한반도를 중국영토나 일본영토로 표시해 놓은 지도도 많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중국인과 외국인의 눈에는 만리장성 동쪽에 있는 사람들은 다 고구려인으로 보였던 겁니다. 그래서, 중국인들과 외국인들은 우리 한민족을 고구려(COREA, KOREA)인으로 착각하여 불렀던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에도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착각하여 부르는 것처럼) 

확실한 사례로는, 신라왕족 출신인 궁예가 고구려를 계승한다며 후고구려를 건국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고구려의 피가 단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신라왕족이 어떻게 고구려를 계승할 수 있을까요? 말이 안되는 것이지요. 궁예도 찔리는 것이 있었는지 국호를 곧, 마진, 태봉으로 바꿉니다. 

궁예는 신라왕족 출신으로 신라왕실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궁예는 신라에 대한 병적인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궁예는 자신이 고구려를 계승할 수 없는 신라왕족 출신이면서도, 신라의 가장 큰 적이었으며 신라가 가장 두려워했던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표면적으로 내세웠던 것입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그러한 궁예의 신하였으며, 신라의 호족 출신입니다. 

궁예의 신하였던 왕건 또한 궁예와 마찬가지로 신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기 위해서, 신라의 가장 큰 적이었던 고구려라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 뿐이지, 실제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은 아닙니다. 즉, 왕건 자신이 고구려를 계승할 자격이 안되는 신라 호족 출신이지만, 신라를 부정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기 위해서는 왕건 자신 부터 신라인의 후예가 아닌 고구려의 후예라고 내세울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즉, 만일 왕건이 고구려인의 후예라고 자처하지 않았다면, 과거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꼭두각시 보장왕을 앞에 내세우고 막후에서 통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왕건은 꼭두각시 신라왕을 앞에 내세우고, 신라라는 국가를 유지한 채로 막후에서 통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던 것입니다. 왕건이 고구려가 아닌 백제의 후예라고 자처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왕건이 제거한 견훤이 백제의 후예임을 먼저 자처했기 때문에 왕건은 백제의 후예를 자처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중화민국을 건국한 손문의 예가 있습니다. 

손문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중화민국을 건국하면서 멸만흥한(滅滿興漢)을 내세웠습니다. 즉, 어떤 식으로든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부정해야만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멸망시킬 대의명분을 내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부정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국할 유일한 명분은 만주족의 적이었던 한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라를 부정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국할 유일한 명분은 신라의 적이었던 고구려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만일 손문이 멸만흥한(滅滿興漢)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선 청나라의 종묘사직을 접을 명분이 없습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부이에게서 황제의 자리를 박탈할 명분이 없습니다. 즉, 손문이 할 수 있는 일은 부패한 청나라를 개혁해서 깨끗한 청나라를 만드는 일 뿐입니다. 그래서 만주족이 중국인들이고 만주족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만주족을 멸하고 한족을 부흥시킨다는 극약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고려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신라는 국가의 일반적인 평균수명을 훨씬 넘어 천년이나 지속된 왕국입니다. 그래서 신라말기에는 극심한 부패현상과 말기현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백살 넘게 산 노인이 치매에 걸려 죽지도 않고 벽에 똥칠을 하며 살아있었던 겁니다. 

만일 왕건이 고구려를 내세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선 벽에 똥칠하고 있는 신라의 종묘사직을 접을 명분이 없습니다. 신라의 경순왕에게서 왕의 자리를 박탈할 명분이 없습니다. 즉, 왕건이 할 수 있는 일은 부패한 신라를 개혁해서 깨끗한 신라를 만드는 일 뿐입니다. 그래서 신라인들이 한민족이고 신라의 역사가 한민족의 역사이고, 고구려인들이 북방이민족이고 고구려의 역사가 북방이민족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아닌 고구려를 내세우는 극약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입니다. 

조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계도 고려왕조를 부정해야만 했습니다. 

고려가 나라 이름만 고려였지, 실상은 북방이민족이 세운 고구려와는 관계없고, 한반도 이남 삼한의 한민족이 세운 나라라는 것을 당시의 고려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성계는 자신이 대대로 한반도 이남 전주지역에서 뿌리내린 골수 한민족인 전주 이씨임에도 불구하고, 고조선을 계승한다며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지은 것입니다.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뻥은 이미 고려가 써먹었으므로, 이성계는 고구려 이전의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뻥을 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걸친 이러한 뻥의 부작용은 의외로 심각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한민족의 정서와 맞지 않는 북방이민족이 세운 국가를 계승한다고 뻥을 치고, 고구려와 발해 멸망 이후, 일부 북방이민족과 함께 흘러 들어온 북방이민족의 기질(일명 고구려병(高句麗病)) 때문에 한민족은 심한 병을 앓았고 피고름을 짜내며 병을 치유해야만 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고구려병이 든 묘청이라는 작자가 우리 한민족의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북벌을 운운하면서 우리 한민족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김부식을 비롯한 우리 한민족은 가까스로 묘청의 난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관련된 인물들과 그 삼족을 멸함으로써 1차로 북방민족(고구려인)들의 씨를 말렸습니다. 

고려시대 말기에는 고구려병이 든 최영 등의 작자들이 또다시 우리 한민족의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북벌을 운운하면서 우리 한민족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이성계를 비롯한 우리 한민족은 위화도 회군으로 가까스로 최영 등의 북벌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관련된 인물들과 그 삼족을 멸함으로써 2차로 북방민족(고구려인)들의 씨를 말렸습니다. 

이로써 우리 한민족은 고구려병을 치유하고, 원래의 한민족의 기질을 되찾아 명나라를 섬기면서 임진왜란 이전까지 200년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고, 임진왜란 때에는 명나라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나라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말기에 접어들면서 외세의 침탈이 극심해지자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고종은 고려, 조선 양 시대를 이어온 뻥의 한계를 깨닫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버려버리고 원래 우리 한민족의 정통성을 되찾는 의미로 대한제국(大韓帝國)을 건국했던 것입니다. 

한반도 이북의 북방민족들은 북방이민족들의 기질과 맞지 않는, 남쪽의 한민족 따위에게나 어울리는 사대주의가 튀어나올 때마다, 그들의 핏줄 속에 흐르는 백혈구(민족성)가, 침투한 세균(사대주의)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고,(예 : 영류왕의 사대정책에 반발한 연개소문의 쿠데타) 

한반도 이남의 한민족들은 한민족의 기질과 맞지 않는, 북쪽의 북방이민족 따위에게나 어울리는 북벌이 튀어나올 때마다, 우리의 핏줄 속에 흐르는 백혈구(민족성)가, 침투한 세균(북벌)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예 : 묘청, 최영 등의 북벌을 진압) 

즉,‘조선 역사상 일천년 안에 제일 큰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은 ‘조선 역사상 일천년 안에 제일 큰 사건’을 성공적으로 진압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반도 이남에서 이미 오래전에 뿌리뽑힌 줄로만 알았던 고구려병이 다시 만연하고 있습니다. 

북방이민족의 역사인 고구려, 발해의 드라마가 판을 치고, 우리 한민족을 위협하고 있는 북방민족이 세운 고구려와 북한을 옹호하고 그들과 합치려는 불순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이상이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해석되어져야 하는 것이며, 현실은 언제나 달콤한 것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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