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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갑 아리랑]중국의 강탈抢奪?, 조선족의 허탈한 배신? 한국의 자업자득!
2021년 10월 06일 03시 03분  조회:173  추천:0  작성자: 고구려
[김연갑 아리랑]중국의 강탈抢奪?, 조선족허탈한 배신? 한국의 자업자득! 입력2012.06.21. 오전 7:31 수정2012.06.21. 오후 2:20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공감 1 【서울=뉴시스】김연갑의 '아리랑' <7> 2009년 10월 17일 오전 11시 연변 룡가원 소극장. <두만강창극단> 창단 공연 첫 순서에 <두만강 소리>가 초연되었다. 스산한 공연장이지만 그 열기는 뜨겁고 경건하기까지 했다. 김봉관·안계린 등 원로 예술인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필충국 작사, 안계린 작곡, 13명의 공연단 합창으로…. 백년 한에 미워 숨지면 어떠랴/ 천년 사랑에 고와죽으면 어떠랴/ 어제 날 백의 인생 청색 삶이요/ 오늘날 백의 인생 분홍 삶이라// 아리아리스리랑 아리아리스리랑/ 어화 둥둥 우리네 소리/ 아리랑 스리랑 두만강 소리. (글쓴이 채록) ‘아리랑’이 후렴에서 쓰였다. 아리랑의 정서가 듬뿍 담겼다. 이처럼 중국 동포 사회의 많은 노래나 공연작품과 문학작품에서는 지금까지 ‘아리랑’이 조국·어머니·고향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이 때문에 동포사회에서 아리랑은 동시대의 노래인 것이다. 2009년 10월 18일 오전 9시 연길 기차역사(驛舍) 2층 신문 가판대에서 <라지오텔레비젼신문>을 샀다. 이 주간신문 14면에는 <연변아리랑>이란 노래가 악보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김동진 작사, 위절복 작곡 <연변아리랑>이다. 장백산 높은 봉에 울리는 노래/ 눈꽃처럼 피어나는 연변아리랑/ 풍진 세월 험한 고개 넘어 넘어서/ 이 땅에 뿌리내린 우리네 노래/ 아 기뻐도 아리랑 슬퍼도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연변 아리랑. 아리랑을 ‘이 땅에 뿌리 내린 우리네 노래’라고 했다. 분명히 원류를 조국 한반도에 두고 있음을 확인했다. 동시에 아리랑의 동시대성을 말한 것인데, 이는 작사자만의 표현은 아니다. 중국동포사회 모두의 인식이다. 아리랑의 지속과 변용의 실상을 이 이상 더 잘 말해주는 실증이 또 있겠는가? 이는 민족사적 차원의 접근이어야 해석이 가능하다. 민요론이나 서구의 이론으로 접근하는 것은 적절한 연구방법이 아니다. 위의 두 상황은 글쓴이가 2009년 10월 <나운규의 길을 걷다>를 집필하기 위해 16일부터 22일까지 회령 땅 두만강 건너편 중국 삼합 지역 일대 답사 과정에서 직접 접한 상황이다. 그래서 서슴없이 ‘민요는 사라져 간다. 그러나 아리랑은 이 시대에도 다시 태어난다’라고 말할 수 있다. 동포사회에서 오늘도 아리랑을 창출해 부르는 이들은 주로 이민 제한 시기인 1925년부터 강제 개척이민 시기인 1945년 사이에 이주, 정착한 이들이다. 이들 속에는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전선을 옮긴 독립운동이라는, 자신 있게 큰 뜻을 품고 망명한 지사들도 있었다. “두만강 뱃사공들이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간도(間島)와 중국으로 망명하려는 애국자를 싣고서 푸르고 깊은 물결을 헤치면서 합창하던 것도 <아리랑>이었다.” 간도 망명객과 아리랑의 관계를 말한 것에는 이의가 없다. 이들은 이 강을 건너 망명지로 가면 독립군이 되든, 아니면 이들을 후방 지원하는 보급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아리랑을 각별하게 불렀다. 이들이 부른 아리랑은 염원을 담고 있다. 1938년 박기홍이 '國民報'에 기록한 <혁명가의 아리랑타령>이 바로 그들이 부른 아리랑과 정신이다. 두만강 언덕에 쇠북이 울고/ 장고봉 꼭대기 탄환비 온다/ 무장 두른 백의장사/ 네 소원 네 소원 일우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결사대 용감하다. 아리랑을 부르며 결사항전의 투지를 다졌다. 이는 <독립군아리랑>이나 <광복군아리랑>과 함께 항일전선에서 당당히 동지로 기능을 수행한 것임을 분명하게 알려 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아리랑에 긍지와 자부심을 담아 삶의 노래로 주체화하며, 이를 원기층으로 삼아 많은 아리랑들을 창출해 냈다. 그것이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불려지는 <진달래아리랑>(아리랑 아리랑 아리랑고개/ 진달래 곱게 피는 연변이로세/ 설한풍 가셔진 연변이로세/ 떨기떨기 선편들의 넋이 어렸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고개 고개/ 진달래 곱게 피는 우리 연변/ 사시적 피고 피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길에/ 진달래 향기로운 연변이로세/창업의 봄바람 아리랑길에/ 우리살림 진달래로 활짝핀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길에 길에/ 내마음의 진달래는 사시절 피네/사시적 피고피네)·<장백산아리랑>· <기쁨의 아리랑>·<연변아리랑>(《연변음악》2011년 6월호, 69~71쪽. 김학송 작사, 림성호·김봉관 작곡 장백사 천지에서 쏟아지는 물이/ 금산각 나래 펼친 먼바다로 흐르오/ 하얀집 하얀마음 감돌아 출렁 연변처녀 사랑노래 아라리가 났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삼각산 새고개를 넘어 넘어갔다//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서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넘어 간다)·<된장아리랑> (《연변음악》, 2011, 9월호, 황상박 작사, 김일균 작곡)같은 것들이다. 이 중 <사과배 따는 처녀>는 1921년 용정의 돌배나무에 함경북도의 사과나무를 접지하여 만들어 낸 ‘사과배’와 같이(1909년에 최창호라는 조선 소년이 조선 함북 경성으로부터 부모를 따라 두만강을 건너와 백두산 아래의 벽촌인 내두산에 와서 살다 로투구에 이사해왔고 1921년에 최창호가 고향 경성에 갔다가 여섯 대의 북청 사과나무 가지를 가지고 돌아와 2, 3년생 되는 당지의 돌배나무 줄기에 접했다. 그 뒤 5년이 지난 1927년에 바로 그 돌배나무에서 사과배가 열렸다. 중국 속에 살고 있는 조선족을 나타내 주기도 한다. 이런 물질문화의 성공을 중국 속의 성공적인 삶으로 표현한 상징적인 존재이다. 꽃피는 계절에는 꽃과 향기가 이채롭다. 이런 상황이 1960년대 최삼명 작곡의 <사과배 따는 처녀>로 아리랑 후렴을 쓰고 있다) 조선족들의 성공적 현지 정착을 표현하였다. 이는 최초의 창작 아리랑으로 장동운 작사, 최상명 작곡이다. 이 최초의 창작 아리랑을 수록한《가곡집》제1권은 총73편의 창작곡과 소수민족 민요를 수록한 중요한 문헌이다. 표지에 한족복장을 한 중국처녀와 한복의 조선족 처녀가 노래를 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한글로 조선족 노래 문화를 중요하게 담고 있다. <사과배 따는 처녀>(이 작품에 대해서는 『우리노래 60년』, 연변인민출판사, 2008, 88쪽에 상술되어있다) 연분홍 진달래야 춤추어다오/ 우리마을 과수나무 꽃피여 난다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사과배는요/ 소문이 높아서 손님도 많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사과배는요/ 삼복철 스리스리 녹는 꿀맛이라네. (『연변가곡집』(1946~1962), 연변인민출판사, 1964) ‘락천적이며 자호감을 가지고’ (《연변음악》, 2002, 7·8, 31쪽)부르라고 했듯이, 매우 밝고 자신감이 넘치는 노래이다. 이런 조선동포들의 자족감을 아리랑으로 표현한 노래들은 앞으로도 이들의 삶의 지향에 따라 더 많이 창출될 것이다. 실제 앞에서 살핀 창작아리랑, 즉 ‘조선족아리랑’은 ‘새’를 접두사로 쓰고 있는데서 삶을 긍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아리랑>(김덕균 채보, 리춘자 창), <새아리랑>(채택룡 작사, 허세록 작곡), <장백의 새아리랑(최현작사, 안계린 작곡), <새아리랑>(『박진우작곡집』, 리욱 작사)이 그것이다. 리욱 작사의 경우 후렴에서는 “아리랑고개에 아침해 웃소이다” 그리고 “아리랑고개길 무지개 길로”라고 하여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아리랑고개는 ‘조국’ 또는 ‘고향’을 향한, 비록 그 조국과 고향이 부모님의 것이라 해도 이를 주제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노래집 60 청춘닐리리』(연변 동북군정대학 길림분교 교사연구회 편찬,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40주년기념, 1992, 8, 동부조선민족교육출판사)는 1992년 발간된 노래책인데, 창작 아리랑 3종과 6종의 전통 아리랑이 수록되었다. 서문에서는 “우리 겨레들의 실생활을 반영한 노래” 또는 “우리 겨레들이 일본제국주의에 짓밟혀 나라 잃고 고향을 떠나 이름 성씨마저 빼앗긴 눈물겨운 망국노의 처참한 생활 속에서 나라와 고향을 그리며 민족적 울분을 토로”한 노래라고 하였다. 여기에서의 ‘우리 겨레’, ‘나라와 고향’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남북한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민족 정서의 면면한 아리랑에의 계승은 소중한 것이며 눈물겨운 한 사례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체육관광부 수장은 이를 우리 아리랑의 ‘亞流’라고 한 것이다. 그야말로 동포사회 아리랑을 타자화한 것이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중국동포사회의 아리랑 계승은 모국 문화를 그리워하고 계승하려는 징표이다. 조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아리랑으로 형상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포들은 어떤 아리랑이라 해도 같은 정서로 이해하는 포네믹한 이들이다. 이런 아리랑을 중국 소수민족 전체 7%, 그 중 14위 ‘조선족’ 아리랑을 93% 한족과 6% 소수민족과 공유해야한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닌가? 참으로 난감한 문제이다. 그런데 역사적·정치적 측면에서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번 사태의 주체 중에 우리 동포사회가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물론 중앙정부의 요청이 있어서이긴 하지만, 아리랑에 대한 조사와 그 보고서를 제출한 주체가 바로 우리 동포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동포가 ‘중국 아리랑사태’의 중심에 있게 되었나? 앞에서 살핀 중국의 저의를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크지만, 그러나 동포들로서는 나름의 속내가 있었다고 추측된다. 1992년 중국과의 국교 수교 이후 많은 방송·신문의 기자·작가·학계의 연구자 등이 내왕하며 동포사회 문화를 취재, 조사보고, 논문 등으로 활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사나 연구논문 등은 동포사회를 타자화 하여 비교의 대상으로만 삼아 활용만 했을 뿐만 아니라 조력 사실을 무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동포사회 문화를 보존·전승하는데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를 하는 협력관계로 나가지 못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고국에서 허드렛일로 살고 있는 동포들을 무시하는 시선이 동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이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김봉관 선생이 2009년 생생하게 한 학술모임에서 회고했듯이 동포들은 고국에서 가지고 온 전통문화를 온전하게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특히, 문화대혁명 10년 동안의 심한 탄압을 견뎌내며 지켜온 유무형의 문화와 전통은 한민족의 혼과 같은 것인데도 잠시 방문한 학계와 방송집단은 목적을 달성하고 결과를 얻고 귀국한 후에는 조선족을 무시하고 일회적인 활용 후에 나몰라라 한 것이 그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게 했다. 이의 결과가 바로 이번 사태의 숨겨진 배경이기도 한 것이다. ( “북조선이 없어서 그러는 것은 이해하고 더 해주고 싶다. 그러나 큰소리 치고는 돌아보지 않은 한국은 정말 서운하다.”(2011년 9월 중국 동포와의 통화)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태는 우리가 자초한 일면이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이는 앞으로 해외동포 정책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문제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동포사회에 민요 발굴 조사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중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것이 연변 정암촌에서 불리는 <청주아리랑>이다. 이후 국내에서 석·박사학위논문을 비롯해 5편이 이를 주제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청주에 <청주아리랑합창단>이 설립되고 이를 주제로 한 공연과 학술 모임도 있게 되었다. 이렇게 주목을 하고서도, 동포사회 내 발굴 배경에 대해 간과했던 것이다. 2005년 글쓴이도 직접 정암촌을 답사하여 그 실상과 함께 발굴 된 배경을 확인하게 되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 하에 조사하였다. 바로 앞에서 살폈듯이 동북공정 논리 확대의 한 과정으로 중앙정부가 자국 무형문화재로 지정, 관리하기 위해 조사하였던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이런 동포사회의 상황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 이에 대한 논리와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즉, 우리도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현재의 <문화재보호법>으로는 아리랑·된장·김치 등을 지정하기 어렵다. 반드시 기·예능자를 지정해야 하기 때문인데, 이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기·예능 보유자를 지정할 수가 없다. 지정 대상 인원이 무제한적이거나 너무 많기 때문이다)하건 ‘등록제도’ 등의 대체화로 동포사회 전승문화를 포괄적으로 제도 범주에 두었어야 했다. 또한 김봉관 선생은 총 1466쪽에 달하는 대형 민요집『중국조선족 민간 음악집』을 발간한 원로 작곡가로 <청주아리랑> 등의 조사에 참여한 음악가로서, <장백의 새아리랑>을 작곡한 안계련 선생이 세계유네스코 아리랑 등재를 적극 지지한다는 <찬동서>를 제시하며 메시지를 보냈을 때, 이의 진의를 파악하여 대처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이를 반신반의 하여 이번 사태를 맞고 만 것이다. (글쓴이는 이와 관련된 문건을 관계 부처와 언론사에 전하고 심각성을 전했으나 반응을 얻지 못했다) <후원 신나라레코드>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www.arirangsong.com 좋아요0 훈훈해요0 슬퍼요0 화나요0 후속기사 원해요0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안내 뉴시스 언론사홈 바로가기 뉴시스 헤드라인 1 페이지 2 페이지 3 페이지 이 기사의 댓글 정책은 뉴시스가 결정합니다.안내 댓글1새로고침 내 댓글 댓글 쓰기 댓글 입력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댓글 정렬 옵션 선택 순공감순 최신순 공감비율순 BEST댓글 운영 기준 안내안내 레이어 보기 클린봇이 악성댓글을 감지합니다. 설정 프로필 이미지park****댓글모음 옵션 열기 우리것에 대한 소중함을 너무 모르는 우리들... 요즘 공부중인 학생입니다. 대학원 과제 때문에 자료를 찾았는데 이런 기사도 있군요. 일단 조선족에 대한 연구 조차도 주먹구구식에 목적 의식없이 중국 눈치보기에 급급했던게 사실이니... 뭐하나 당당한 주장은 못하고 다 빼았기는... 정치적 분열, 지역감정, 파벌주의, 이기주의... 우리의 슬픈 역사는 지금도 반복 재생중입니다. 2012.06.21. 16:09 답글0공감/비공감공감2비공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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