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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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뜬 달/김택만
2016년 04월 14일 14시 48분  조회:1162  추천:0  작성자: 아침은 찬란해
강물에 뜬 달 / 김택만
 
여름 밤,나는 강변을 거닐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강바람은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쓸어준다. 이 부드럽고 향기로운 바람결은 마치도  어린 시절에 무더운 여름이면 자주 나에게 부채질하여주었던 누나의 부채바람결 같다.
하늘에 떠있는 휘영청 밝은 달은 환히  웃는다. 나를 보고 다정히 웃는다.그래서인지 웃는 달이 한결 시원해보인다. 강물 속에도 달이 있다. 강물 속에는 하늘도 있고 구름도 있다. 천갈래 만갈래 강물을 비추는 달빛이지만 저 강물속의 달이 더 밝은것같다. 달이 저 강가에서 미역을 감나보다. 저 달과  물장구도 치며 놀고 싶다만 달이 부서질가봐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누나 생각이 간절히 난다. 피는 물보다 짙다고 하는데 형제의 정이 바로 이런것인가?. 아마 누나의 따슷한 사랑이겠지. 나에게 있어서 엄마가 해라면 누나는 달이다.
사실 4살우인 누나와 같이 한집에서 살아온 시간은 길지는 않다. 17살에 내가 현성에 있는 고중기숙사에 들어가면서 함께 있지을 못했다.
내가 첫돐때쯤 마을에 도는 전염병에 걸려 무려 3개월동안 입원치료를 받을정도로 많이 아팠고, 그후 미열로  어릴적 내내 아팠던 기억이 많이난다. 아버지, 어머니가 밭일에 나가면 누나가 나를 항상 데리고 놀았고 보살펴주었다. 어린 누나의 손에 이끌러 유치원에 가던 기억, 누나가 냇가에서 빨래하면 개구쟁이 나는 신이 나서 물장구치며 놀던 기억이 삼삼하다.
내가 살던 마을은 시골이여서 소학교가 있는 진소재지마을과 5리정도 떨어져있어 소학교때부터 걸어다녀야 했다. 그때면 학교가는 길에 누나가 나의 무거운 책가방을 대신 메주었고 겨울이면 반급에서 난로불 피우는 땔나무도 누나가 이고메고 날라다 주었다. 그때 겨울이면 왜 그리도 춥던지. 날이 채 밝기전에 집을 나서야 해었다. 마스크 끼고 털모자 쓰고해도 추웠다. 기침을 콜콜해대는 나에게 누나는 그 추운 겨울날에 자기 목도리를 풀어 내 목에 꽁꽁 감싸주었다. 그때 나는 누나가 추워하지않는줄로만 알았다
약골인 나는 중약도 꽤나 많이 먹었다.부모님들께서 일찍 일밭에 나가면 중약 달이는 일은 누나의 몫이였다.화로불에 약달이는 일은 금방 중학교에 올라간 누나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얼굴을 한번 찡그리않고 마다하지않고  열심히 달여주었다.약 냄새가 달콤한 냄새는 아닌데도 말이다.쓰디쓴 약 먹기싫어하는 나에게 누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먹게 하였다.
무더운 여름날 맥없이 누워있는 나에게 부채질도 하여주었고 그 부채바람은  은근히 부드럽게 시운하게 감싸주었다.그 바람은 정녕 향기로웠다.간혹 꼬꼬~댁 암닭우는 소리가 나면 곧장 닭장으로 달려가 갓 낳은 닭알을 가져올 때면 누나는 그렇게 좋아하였는데 웃음이 남실거렸다.닭알을 삶아서는 나만 가만히 먹이였다.
학교다닐 때 공부도 퍽 잘 한 누나였지만,  형님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여 누나는 형님의 학업을 뒤바라지하려고 대학입시를 포기하였다. 그렇게 시골의 농사군이 되였다. 그리고 내가 현성의 고중에 입학하고 기숙사생활을 하게되니  뒤바라지는 더욱 힘겨워졌다.. 마을에서 일욕심쟁이로 이름이 있었고 그만큼 부지런했다. 농군의 일이 힘들고 고달파도 힘들단말 한마디 없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3년후 동생도 대학에 입학하게 되였고 4형제중에서 누나 혼자만 농사군이 된것이다. 이것으로 내내 가슴이 아려온다.학교시절 누나에게도 꿈이 있었고 빨갛고 파랗고 노란 꿈을 꾸었을것이다.희망과 뜨거움으로 부풀어있었을것이다. 우리 3형제의 대학공부엔 누나의 희생이 있었고 ,누나의 고달픔과 땀 그리고 배려와 덕택이 깔려있었다. 좋은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5년전, 누나는 나이 어린 자식 둘을 어머님께 맡기고 한국으로 떠나갔다. 나는 누나가 이국타향에 가서 어떻게 고생하겠는가하는 생각에 마음이 얼어붙어 떨고있었다. 기적소리 울리며 떠나가는 렬차를 보며 두 줄기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려  두 줄기 레루를 따라 저 멀리로 흘려갔다. 남자라는 자존심도 부끄럼도 모두 버린채 한참 울었다. 하나밖에 없는 누나를, 우리 형제를 위해 희생한 누나를 저렇게 고생속의 한국으로 떠나보내야만 하냐고!? 누나를 보살펴주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하고 도와주지 못하는 나의 무능과 자책감와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와 울었다.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그토록 마음이 아프게 울기는 처음인것이다. 누나야,미안해…이 뜨거운 눈물은 형제애의 눈물이였고 가족애의 눈물이였다.
누나는 지금도 한 달에 두세번 꼭 전화를 걸어온다. 잘 있었니? 아프지 않니? 일은 잘 되고있니? 잘 있다는 나의 말에 흡족해하며 또 전화할게라고한다. 언제나 시름을 놓지못하는 누나다. 지금도 난 누나에겐 시름못놓는 동생이고,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래일도 누나의 어리광스러운 동생이고 싶다.
옷섶을 한방울 두방울 적신다.아마 맑은 하늘에서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는 빗물이겠지.달에게는 눈물이 없다는것을 나는 알고 있다.달님의 눈가의 잔주름이 더 늘어났는지 살펴보고 싶고 손은 더 거칠어지지 않았는지 만져보고 싶고 몸은 더 축가지 않았는지 안아도 보고 싶다.
저 강가에서 밤낚시를 즐기는 낚시꾼이여, 달은 낚지 마소서. 달을 괴롭히지 마소서. 저 강물에 뜬 달에 술 한잔 따라주고싶다. 너도 한잔 나도 한잔 마시며 오손도손 지나간 일과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면서 취하고싶다.
강물은 달빛 싣고 하늘가로 유유히 흘러간다. 추억과 그리움을 싣고 흘러간다.
강물은 쉼 없이 쉼 없이 흘러흘러 가도 강물에 뜬 달은 물결따라 그 품에 그대로 안겨있다. 향기로운 이름- 누나, 누나와의 추억도, 누나의 인자한 모습도, 누나의 따뜻한 사랑도 세월의 강이 수없이 수없이 흘러 가도 저 강물에 뜬 달처럼 내 가슴에 아련히 남아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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