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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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정신무진(2)
2007년 12월 21일 23시 44분  조회:2865  추천:84  작성자: 량춘식
[중편소설]
정신무진

량춘식

 6. 죽으라, 내 육체여

이튿날도 그랬다. 안개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 그것이 몸밖으로 새여나올듯이 목구멍으로 스멀스멀하며 퍼져오르면 생고기를 씹는듯, 녹물을 마신듯 비린내가 입안으로 진동한다. 게다가 이를 사려물고 되넘기느라면 게트름이 어쩔수 없이 새여나왔고 구역질이 튕겨오른다. 

치과를 찾아간다고 술을 한 이틀 끊어놨더니 몸속이 온통 이런 증상이라니, 이발이야 빼여버려 그만이지만 이건 또 무슨 병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시원히 검사를 하고 약이라도 지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술이라도 맛있게 마시려 해도 이깟 증세의 병증이 없어야 될거니깐. 이제 술은 안해의 상징인데야!

백강, 하류의 물살은 거창했다. 물굽이가 숲에 가리는듯하더니 긴 턴넬을 뽑았고 전속으로 얼마간을 달리는가싶더니 뻐스는 팔면통시에 와닿았다. 

돈 일원이라도 아끼고저 터덜터덜 걸어서 시병원에 들어섰다. 
일층의 자궁유방 검진실앞에는 녀자들이 줄느런히 늘어앉아 기다리고있었고 이층의 간센터, 삼층의 신장, 페, 척추센터앞에는 검진으로 나선 해쓱하거나 부추김을 받는 병인들이 가끔 보였다. 
종합검진을 받았다. 아마 난생처음 들어서는 프로급병원인가보다. 혈액검사, 소변검사, 허파MPT촬영,위내시경검사를 하는데 온오전이 걸렸다. 돈이 아까와 3원짜리 랭면으로 점심을 넘기고 첫사람으로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검사를 받았다. PET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신체부위와 장기안의 암세포뿐아니라 앞으로 발전할수 있는 악성변중세포를 확실히 촬영해내는 첨단장비라고 의사가 말했다. 

검진을 마치고 이틀을 기다리라 했다. 그 이틀동안을 어떻게 보냈던지 모른다. 흉막염이나 페, 위나 비장에 문제가 생기면 어쩔가 큰 근심이였다. 일단 결핵에 걸리면 소 한마리에 개 열마리는 먹어놔야 깨끗이 치료된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또 위벽이 마사졌거나 비장에 문제가 생겼다면 호주머니가 아닌 이상 뒤집어볼수도 없어 속이 바질바질 탔다. 

퉁공기와 옥공기에 더운 물을 떠놓고 나는 중얼거렸다. 이제부턴 술을 적당히 마셔둘테요, 내가 건강해야 아이의 래일을 볼수 있잖아. 그리고 여보, 당신 돌아오는 날까지… 술을 이틀째 끊으니 단통 입맛이 도는 느낌이였다. 쌀밥을 앉히고 감자를 썰어놓고 장도 끓여서 먹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둬술 드네 했는데도 배가 부른것처럼 더 구미가 없었다. 배속에 가스가 차오르면서 게트림이 나고 구역질도 느껴졌다. 그래도 밥을 떠넣고 씹어서는 넘겼다. 넘길 때마다 래일과 함께 눈물이 고여올랐다. 

종합검진 사흗날아침은 날씨도 청량했다. 무엇보다 몸이 거뿐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들과 안해의 얼굴이 번갈아 날아들었다. 살것 같았다. 밥이 들어가니 몸이 춰서는게 아닌가. 아무런 고민도 없이 날듯이 뻐스에 올랐다. 

시병원에 이르니 오전 아홉시 반이였다. 의사가 기다렸다는듯 맞아주었다. 의사는 우리 시병원에 갓 들여온 의기가 고첨단장비라고는 하지만 의사들이 아직 조작경험과 검진결과에 대한 분석력이 깊지 못할수도 있으니 한번 더 큰 병원엘 가 다시 검진을 하면 어떨가를 물어왔다. 

―아니, 뭐 종양이라도 생겼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단통 눈이 둥그래져서 걸고들듯이 물었다.  

의사는 주의사항을 적어주었다. 술, 담배, 섹스는 끊고 잠을 많이 잘것,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산책을 할것, 청국장을 많이 먹을것, 고등어 꽁치 등 푸른 생선을 많이 먹을것… 등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채 오래도록 일어날수 없었다. 간암, 이건 간암이란 말이 아닌가.

―그 어떤 불치의 병도 초기에 발견했으면 괜찮을겁니다. 가능성이 있지요. 설령 우리의 검진이 백프로로 들어맞다고 장담을 못하니까요.
나는 녀자들이 줄지어 앉아있는 자궁유방 검진실앞 복도를 지나서 병문을 나왔다. 제정신이 아니였다. 

몇백원을 다 쓰고 호주머니엔 뻐스비만 남은듯했다. 

뉘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몰랐다. 

퉁공기와 옥공기가 뚱그렇게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부지중 중얼거렸다. 

―돈은 죽음을 관리하는 가장 문명한 도구야. 그런데 정신은 죽음을 압도하는 가장 철저한 공구란 말야.

정신이 죽음을 앞당길수도 미룰수도 있다는 도리를 난 믿는다. 그럼 나의 정신은 누가 무르게 만든것일가.

나는 잘 알고있었다. 이대로 무너진다면 달포안으로 몸이 말라 죽어갈것이란것을. 하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 치자. 그러면 어째서? 이제 간암으로 첨단설비검진이 나온 이상 죽음의 순서를 결정하는건 오직 돈밖에 없잖은가. 나에겐 돈이 없다.

아, 아들에겐 절대로 말할수가 없다. 일본에 있는 안해에게도 아니, 이젠 남의 안해가 된 계복에게 알린다? 무슨 소용 있으랴. 언제까지 살을 저미는 암세포확장의 진통을 겪다가 죽지 말고 아예 자살을 하는게 도리일것  같았다. 

간암! 간암!!… 미칠것  같았다. 장밤 눈을 커다랗게 뜨고 깜깜한 집안속을 죽은 넋으로 떠다녔다. 그래, 이만큼 살아도 오래 버틴 셈이구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배반을 받은지 일년이 넘도록 살았으니 이건 나로서는 기적이랄밖에. 이젠 죽어야지. 이건 하느님의 뜻일거였다. 죽어서 천당 가자. 천당에서 계복이를 데려가야지. 계복이와 다시 련애부터 새롭게 시작을 하는거야. 그래, 이젠 죽자. 어떻게 죽을가… 농약을 마실가, 안돼. 창자가 너무 아프다던데. 절벽산에서 뛰여내릴가, 안돼. 콩가루가 되고나면 천당에서 계복이가 날 알아 못볼거야. 뒤강에 얼음을 끄고 돌을 달고 익사할가, 안돼. 얼마나 차갑다고… 죽어도 안락사버금으로 가는 죽음을 택해야 하는거야. 그게 뭔데? 오, 술이여, 내 아픔과 고통과 죽음마저 무마해줄수 있는게 오직 너란 말이지… 그래, 죽으라 내 육체여. 술속에서 저도 모르게 천천히 즐겁게 죽으리.

나는 《죽으라 내 육체여》라고 술에 내 육체를 내여맡겼다. 그러나 《죽으라 내 령혼이여》는 하지 않았다. 정신이 죽으면 육체도 죽는다. 그러나 육체가 죽어도 정신은 살아있는 법이다. 내 정신, 령혼은 천당에서 계복이와 화합하여 행복의 구들이 놓일것이라고 난 믿고있었다. 

나는 내 육체를 죽이고저 노력했다. 술이 들어가 간암세포에 영양분이 되게 하고저 시도했다. 

나는 천천히 나를 죽이는데 성공하고있었다. 


7. 고향의 《 암 》

번연히 알면서도 최대 수치란걸 알면서도 해남도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알면 가슴 아파 공부못할줄을 알면서도 나는 그럴수밖에 없었다. 

―돈 좀 꾸시우. 우리 아들이 방학에 오면 곱배로 갚아드릴터이니. 

―돈 좀 꾸시우. 이제 우리 안해가 일본서 돈 부쳐보낼터이니…
새빨간 거짓말을 꾸며댔다. 십원도 꾸었고 일원도 꾸었다. 꾸어준것이 아니라 《쯧쯧, 어쩜 이 지경이 되다니》 혀를 차면서 불쌍해서 건네준 돈들일것이다. 

아들은 달마다 어김없이 돈 백원씩 백오십원씩 부쳐보냈다. 했건만 그 돈으로 꾸어낸 돈을 갚아주지 않았을뿐만아니라 계속 걸인이 되여갔다. 

세상 일은 첫걸음을 떼기가 바쁘단 말이 있다. 그 어떤 천한 일이든 일단 맘 먹고 시작만 뗐다면 되려 즐겁고 하고싶은 일로 되여 남들이 어떻게 보는줄을 모를 지경이 되는것이다. 

《천천히 죽어》가는 길은 어려웠지만 그 어려운가운데서도 즐거움이 있을줄이야. 돈을 5원 꾸었다면 마른명태 하나에 술 한근 사들고 하루 세끼를 맛있게 살수가 있는거였다. 가물에 단비라고 맛도 말끔하게 가난한 가운데 뾰족하게 도드라짐을 어이 알랴. 술은 자꾸 당겼다. 간경화복수나 간암환자들이 술이 더욱 당긴다는 말을 봐선 내 병이 간암일것은 분명하렷다. 

먹고싶은것을 먹자. 먹고싶은걸 먹지 않고 죽겠는가. 암세포야 뭐든지 가리잖고 자란다는데 구태여 이것저것 가리겠는가.

하루에 마시는 술만도 거퍼 한근 지어 한근 반이 되니 아들이 부쳐오는 고깟 백원돈으로 어찌 담당하랴. 그렇다고 막 죽기는 싫은 나인지라 걸인이 되여야 했던것이다. 빌어서 먹든 꾸어서 먹든 저녁에 어스름이 깃드는 집안 구들우에 밥상을 놓고 창가로 뵈는 깜빡이는 별들이나 달빛을 빌어 술이 넉근한 퉁공기를 들어 옥공기와 맞부딪쳤다. 그 술맛이 그처럼 달콤할수가 없었다. 목구멍으로 술이 넘어간뒤 녹이고 씹는 소금이나 알사탕, 땅콩, 이리꼬구이들이 그처럼 맛있을줄이야.

부엌아궁이에는 기본상 불을  때지 않는다. 저녁에는 전등도 켜지 않는다. 텔레비는 고장난지 오래다. 록음기도 페품이나 다를바 없었다. 핸드폰은 눅거리로 팔아치웠다. 전화비때문에 전화는 벙어리가 되였다. 

동네에 나서면 뉘집 개들의 꼬랭이를 베여서 불에 구워 술안주 하고픈 생각이 굴뚝 같다. 두부파는 한족 녀자의 손마디를 끊어서 기름에 튀해 먹고싶었다. 니 손가락 하나에 값이 얼마냐, 술안주 해먹고싶다. 그래놓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키들거렸다. 돼지를 보면 엉뎅이살이 먹고싶고 잡을수 있다면 쥐새끼도 삶아서 개고기처럼 먹고싶었다. 

배 고플 때는 닥치는대로 먹었다. 길섶에 나뒹구는 생감자알이나 무우도 와삭와삭 씹어먹었고 뉘네 금방 내던진 먹다만 국수오라기도 쉬파리를 쫓고 쥐여서 먹었다. 그래도 감기에는 걸리지 않고 설사를 하는법 몰랐다. 걸인의 우세는 거기에 있었다. 이런 생들의 건강은 병도 왔다가 달아나는 모양인지 모를 일이였다. 어쩜 내 암이 걸인생활로 더 악화되지 않고있는지도 모를 일이던것이였다. 

나는 우거지든 들나물이든 쓰레기더미의 음식물이든 먹고서 배가 부르면 슬금슬금 뒤동산으로 오른다. 높으직한 뒤산 언덕에 나무잎을 꺾어서 펴고 누우면 두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정신이 새삼스러워난다.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며 아래우와 좌우를 시야로 담는다. 그러면 별난 생각들이, 종래로 해못본 깨달음들이 련달아 생긴다…

밤이면 하늘은 고달프게 잠든 땅을 내려다본다. 그러다도 낮이면 하늘은 땀 흘리는 땅을 내려다본다. 

밤이면 땅은 금덩이로, 천당으로 뜬 달과 별을 쳐다본다. 그러다도 낮이면 땅은 바람부는 구름을 쳐다본다. 

나는 밤이면 찬 구들우에 누워 아무것도 안보일 천정만 바라본다. 그러다도 낮이면 술 한잔에 아름다운 몽유와 환청으로 갈 밤을 위해 걸인으로 떠돌이한다. 

밤과 낮― 밤은 꿈이며 낮은 현실일뿐이다. 

나는 꿈과 현실의 공간에서 나를 찾을수 없었다. 

―막 죽다니 그게 될소리냐. 나도 모르게 죽어가야 하는게야!!
그건 나의 좌우명으로 된지 오래다.  

뒤산은 한겨울에도 해볕으로 따스했다. 량쪽으로 큰 산들이 바람을 막아주는 탓으로 적설우에 누워도 소르르 잠들게 따스하다. 어느날, 나는 문득 너무 따뜻함에 놀라며 눈을 떴다. 해살이 물처럼 흘러내리는 공간으로 논이 보였다. 두부모처럼 틀을 쳤고 가두어넣은 논물이 거울처럼 번들거린다. 써레를 놓는 사람, 모를 꽂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이게 언제 봄이 왔지? 나는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파란 수건, 빨간 수건, 노랑 파랑  때깔 고운 녀인들의 고운 모습도 보인다. 녀인들이란 늙은이들만 내놓고 깨끗이 출국이요 큰도시로 나간 마을에 웬 녀인들이란  말인가. 옳았다. 싹모 나온 한족녀자들일거였다, 단 몇집뿐의 모내기라도.

걸인, 여적 마을안으로 돌면서 비라리를 했지만 이젠 한번 들로 나가봐야겠던것이다. 

배가 고프다. 집에 가봤자 씹다남은 명태꼬랑지와 껍질밖에 더 뭐가 있으랴.

아지랑이속을 걸었다. 다리가 자꾸 맥없이 헛질린다. 이랴, 이랴… 소  때리는 중늙은이가 다루는 논이 첨 띄였다. 논머리에 비닐보퉁이가 보인다. 가서 헤쳐보았다. 챠, 이게 뭐야. 찰떡에 만두에 이밥, 달걀지짐에 소고기장졸임에 고추장 거기다가 시큼털털한 막걸리가 있잖은가. 수저를 보니 세사람몫이였다. 에라, 세상에 도적질을 모르는 걸인이 있다더냐. 나는 비닐에다 찰떡이며 밥이며 고기며를 세몫으로 나눈 한몫씩만 주어담아 사라졌다. 

이튿날도 들로 나갔고 사흗날도 들로 나가 일군들의 밥과 찬과 막걸리를 훔쳤다. 그러다가 나흗날만에 드디여 들켜서 물매를 맞았다. 한마을 사람들이여도 날  때렸다. 그중 중늙은이가 나서서 말렸다. 

―관두게. 가족도 잊고 고향도 잊고서 제 좋을 볼장 보구 사는 그 안해가 나쁜 년이지… 그런 화냥년들때문에 지금 세월에 불쌍한 나그네들만 녹아나잖았나. 어찌 됐든 우리 동네의 《암》이야. 죽여버리지두 못하구 감옥에 처넣지두 못할 《암》이라구…


8. 죽는 육체를 부르는 죽는 정신

내 육체여 천천히 죽어가자던 나는 들에서, 모내기에 열성이 오르고있는 남녀로소들이 보는데서 물매를 맞으면서 더 살아 뭣하랴 절망을 한것이다. 

―이 놈들아, 때리겠거든 음식도적인 나만 욕하면서  때릴것이지, 죽이겠거든 이 못난 놈의 행실만 탓해 죽일것이지 불쌍한 내 안해는 뭣 하러 끼여서 욕질이냐…

나는 맞으면서도 그 말만 웅얼거린것이다. 

그날 밤 난 집에 들어와 대성통곡을 했다. 계복아, 내 사랑하는 안해야, 사람들이 널 가족도 잊고 고향도 잊은 제 좋을 장만 보구 사는 나쁜년이라구 손가락질을 하는구나. 내 어찌 그런 말을 듣고 가만있을수 있겠느냐. 네 비록 지금 날 버린채 타향에서 군사내와 재미있게 살고있다 해도 난 남들이 널 욕보이게 할순 없구나. 생각나겠지? 20여년전 내가 《나쁜집 애》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던 나날에 그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달려와 막에 홀로인 나와 설을 쇠주던 일을, 처녀들이란 나를 온역 피하듯하던 그 세월에 너만은 어쩌라고 구들 잘 고치고 물고기 잘 잡는 《인재》라며 한사코 날 사랑한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참 얼마나 다행이며 꿈도 못꿀 일인지 그저 하늘의 뜻이랄밖에. 영원히 장가들 꿈이라곤 엄두도 못내고있은 내가 후영의 칡벼랑늪에서 그대 처녀를 알게 될줄이야. 지금 이 시각 생각만 해도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도록 흥분을 하는, 내게는 달처럼 이 세상이 다하도록 단 하나뿐일 사랑을 웬 놈들이 험담을 하게 내버려둔단 말인가, 내 안해가 설령 그렇게 되였다 한들 내 안해에겐 죄가 없다. 다 이 못난 놈, 아들놈 하나 공부시킬 돈 못벌고 가난하게 산 이 놈의 탓이지… 온 저녁을 그렇게 갈파하다가 드디여 깨달은것이 죽자, 내가 죽어야 더는 안해를 험담할수 없을게 아닌가. 그거였다. 
나는 생각했다. 간암에 걸린 내가 여적 죽지 않고 살아있음은 내 정신이 죽지 않고있었기때문이란걸. 정신이 살아있어봤자 공갈과 비방으로 짓찧어질것인데 차라리 죽어서 령혼이 머나먼 앞날이 가있는 안해에게로 가 머무는게 그럴법하였던것이다. 

나는 막 죽음을 이 갈았다. 찬구들에 눈 펀히 뜨고 누워있었다. 거의 매일을 굶다싶이하고 나날을 보냈다. 어떤 날은 물도 마시지 않았다. 상우에 놓인 퉁공기와 옥공기가 나를 뚱그렇게 내려다본다. 술이 마시고싶어졌다. 물이 마시고싶어졌다. 뭐건 막 먹고싶어졌다. 그러나 이 악문채로였다… 그런데도 나는 잘 죽어지지 않고있었다. 그러나 내 몸은 차츰씩 못해갔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눈확이 푹 꺼지고 관골이 흉하게 드러나있었다. 내 몸은 검불처럼 가벼웠고 마른 뼈우로 가죽이 늘어져 겉들렸다. 

―이제 곧 죽는가봐.

그런 중얼임이 바람을 향해 목탁을 치면서 읽는 중의 천수경처럼 들렸다. 바로 그 순간이였다. 한 녀인의 챙챙한 목소리가 내 귀전을 쳐오는게 아닌가. 그건 계복이의 음성이였다. 이십여년전 후영의 칡벼랑늪가에서 내 목을 끌어안고서 내 귀에 하던 말이였다. 

―우리 죽으면 령혼이 이 칡벼랑늪에 와 만납시다. 우리 죽으면…
내 죽는 정신은 어데로 가고있었다. 그리고 내 육체는 거멓게 색이 죽어가고있었다. 


 9. 먼저 가 머물리

나는 동네의 《암》이기에 내 꼴을 사람들에게 보이고싶지 않았다. 그들이 내앞에서 내 안해를 저주했기에, 나를 죽이지 못해하기에 나는 그들을 만나길 꺼려 한다. 

내가 맘속깊이 기대한 날이 온것 같았다. 창공에 보름달이 걸린것이다… 우리는 그날 밤 칡벼랑가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늪에 금황빛의 보름달이 떴었다. 보름달을 보면서 보름달이 우리들의 마음의 융합이라고 계복이가 그랬을 때 나는 남자답지 못하게 울었다. 내가 사람의 늙음과 따르는 필연의 죽음이 아쉬워 그런다고 그 원인을 말했을 때 계복이는 사람의 마음 즉 령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며 저 물속 둥근달이 우리들의 령혼을 만나게 할것이라고 했던거였다… 난생처음 녀자와 흠뻑 취해 나눈 말이라서 그런걸가, 그 말은 왜 방불히 어제 한 말처럼 내 귀에, 가슴에 생생한것일가.

내 정신은 후영의 칡벼랑아래 늪가운데로 잠겨있을 금황빛 보름달께로 쏠리고있었다. 

후영, 아득했다. 줄배로 강을 건너야 하고 강을 건너서도 시오리길이 잘되였다. 더구나 결혼하고 이십여년이나 못가본 곳이다. 언젠가 누가 그랬듯이 후영이란 그 섬땅은 인간들에 의해 버려진지 너무 오래된 땅이라고. 1991년에 마을의 마지막 농호가 부치던 논이 뿌려진채로였다니 그 긴시간을 섬의 변화가 어떠한지를 상상할수마저 없는거였다. 온갖 짐승들이 욱실대고 잡초가 성하여 나무숲이 꽉 들어차 방향을 분별할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이제 일어서야 한다. 기어코 이 밤에 가 닿아야 한다. 그리고 칡벼랑에서… 이 밤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을 하니 걷잡을수 없게 헉헉 울음이 터진다. 아들아… 내 아들아, 이러는 아버지를 용서해다우. 아버지에게 있어서 아들, 너만큼이나 너의 어머니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거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가. 이승에서 내 사랑을 이루지 못할바하곤 저승에서 령혼사랑이라는걸 해보려 하니 오히려 네가 이런걸 알면 아버지의 처사가 옳다고 할지도 모르겠구나, 아들아 넌 이미 성공한 셈이니 이 아비는 맘 놓고 네 어미와 만나러 간다. 기운을 내여라, 언제든 이 아비의 령혼이 널 지켜주고있겠으니까.
이 추레한 몰골로 이 허약한 약골로 이제 거기까지 갈수 있겠는가. 내 36도 체온이 찬구들을 덥히려는듯 여윈 등허리를 붙이고 뗄줄을 몰랐으니 몸속의 밸까지 차겁다못해 고드름이 생긴것 같다. 몸이 차다못해 고환과 항문사이의 거리도 줄어든것 같이 여겨졌다. 

다리를 들어 엉뎅일 일으키려는데 여위여 뼈가 질린 쪽의 항문 괄약근이 열렸는지 똥물이 나와있었다. 아아, 이 정도가 될줄도 모르고 누워만 있었으니. 나는 내 몸속을 알았다. 간암증상은 이런가.

벌벌 가마목으로 기였다. 거기에 대야가 있었다. 대야에 가마속의 녹낀 물을 퍼담고 바지를 벗고 사타구니를 씻기 시작했다. 깨끗한 몸이여야 내 령혼도 맑아지고 냄새가 없을것이였다. 누구는 《널 배반한 네 안해의 령혼이야 똥보다도 더러울거 아냐》 그럴지 모르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안해가 날 배반한것은 전적으로 내가 사내구실을 못하고 안해를 가난하게 살게 한때문일것이며 가난때문에 자식의 학비마저 댈수 없었기때문이라고. 그리고 안해가 타향에서 다른 사내와 사는 동안, 그동안은 즐겁고 행복한 동안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사이에 떠도는 간악한 아픔과 교활한 고통이 동반된 가시방망이로 살속을 휘젓는 세탁과  같은 추리의 과정인것이며 속죄와 반성의 과정이란걸 난 안다. 안해와 그 사내와의 매 한번의 교합이야말로 최초의 계복이가 저 황야에 버려졌다가 번개와 우뢰에 깜짝깜짝 놀라며 원래의 계복이로 회귀하는 과정임을 나는 믿는다. 

나는 또 안해의 아름다움이, 흰피부로 알리는 뻗어간 파르스름한 심
줄들이, 사금처럼 빛뿌리는 이발들이, 흰절벽과도  같은 목이, 젖냄새 같은 발걸음 모습이… 나에게는 황홀경이지만 이 세상 모든 사내들에게는 악과 불행과 공포의 형체로 안길것이라는걸 말이다. 
안해는 아주 짧은 기간을 녀성일것이다. 선량하고 요염하고 유혹적일것이다. 그러나 차츰 연분홍으로 분장한 속이 빈 갈대일것이며 뱀의 분신일것이다. 드디여 변하는 악과 변하지 않을수 없는 필연의 결구일것이란걸 난 안다. 

오직 나에게만은 불변의 현혹이며 무지개빛갈의 사랑일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사내들이여, 조용히 물러서라, 두말없이 잘못을 깨닫고 머리 숙여라.

왜? 내가 안해의 속으로 령혼이 되여 머물러가기때문이리라.
나는 몸을 꼬부렸다. 간일것이다. 칼로 도려내듯 아프기 시작을 한다. 그리고 입에서 역한 냄새가 났다.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냄새였다. 냄새는 혐오할수록 더욱 날카롭게 느껴지는 모양이였다. 간이 작용을 잃으니 속에 들어간 음식물이 없음에도 창자, 그리고 위벽이 마구 썩어내는 모양이였다. 

20여리길! 최후의 도박을 하리라. 그곳에서 안해를 《상봉》한다고 여기고있었다. 내 정신은 거기에 가 극치를 이루고있는거였다. 상봉의 금황빛의 달속에 가 나 먼저 머물리라 한것이였다. 

10. 나는 죽었다. 

집안에는 먹을게 없었다. 창가에 기웃이 들여다보는 달이 재촉을 한다.

달이 서산에 떨어지거나 구름에 가리기전에 밤도와 목적지에 가닿아야 했던것이다. 

나는 울음이 없었다. 색바랜 지성이 공상과 악을 낳았고 악이 울음을 매장했다. 그 대신 몸을 떨게 하는 영화는 눈앞에서 시나브로 상영되고있었다. 

계복이는 거기 있었다… 그해 겨울이 물러가고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였다. 로농들은 후영에로 나를 불렀다. 구들이 뜨뜻하고 술추렴도 하려면 내가 필요했던거였다. 다른 일은 바빠서 못하고 식모일은 할수 있다는 조건으로 계복이도 내려온것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눈치 못채게 주의하여 사랑했다. 몇달전의 추운 겨울속에 설도 함께 쇠고 창백한 달이 비추던 칡벼랑늪의 얼음우와 막의 구들에서 포옹도 했건만 그 정도 더 깊지 못했다. 남들의 눈이 무서워 몇번 만날 기회마저 주어지지 못하고만 우리 사이였던것이다… 우린 더는 참을수 없어했다. 사랑이 극도에 처하면 남들이 어떻게 보는것도 모른다. 

후영의 달은 밝았다. 어둠이 깃들면 난 《고기그물 보러》하고 막을 나섰고 계복이는 《남새 다듬으러》 하고 나선다. 우린 칡벼랑늪가에 이르면 말 한마디 없이 한몸이 되여 뒹굴었다. 번개식련애를 하고 막에 나타나야 했던것이다. 그런데도 들통이 났다. 

막의 로농들은 《나쁜집 애라도 얼마나 착하고 재간있수. 갸들이 좋아하게 모른척하라구.》 너도 나도 감싸주던 일은 죽을 때까지도 잊을것 같지 않다. 로농들은 너희 둘이서 실컷 사랑을 하라며 웃 생산대막으로 막을 비우고 놀러 갔다가 한밤중에야 왔고 터줏대감령감은 나를 불러서 엄숙하게 《암만 봐두 녀자측 부모들이 동의할것 같지 않으니 애를 배게 하려마. 그럼 별수 없이  음흠.》 하며 방법까지 대주었다. 결국 우린 서로 이 악물고 노력을 했다. 그러나 여름은 빨리도 흘러 계복이는 호랑이 같은 아버지한테 불려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로 돌아가서 비밀이 탄로났다. 계복이 아버지의 부름따라 마을 민병련에서 나를 감금하였다. 생산대의 반공실 헛간을 한칸 내여 나를 가둔것이다. 하루 세끼를 녀동생이 밥을 날랐다. 창살이 박힌 구멍새로 들이밀어주었다. 

밤이면 전등도 없이 캄캄한데서 보냈고 낮이면 민병들과 함께 부업을 가 남포에 불을 다는 위험한 일을 해야 했다. 민병들이 수군거렸다. 

―문화대혁명이 끝난지 언젠데 뭐 아직도 사람을 못살게 굴다니.

―저 민병련장새끼가 그 계복이를 탐해서 이러는거 맞지.
우리 한반에 다니던 동창들이 가만히 위안해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때론 내가 불을 단 남포에 맞아서 죽고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계복이와의 사랑을 생각할 때면 힘이 솟군 했다. 

기적이 발생될줄이야. 감금된지 사흗날밤에 똑똑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안의 빗장을 빼고 널문을 여니 계복이였다. 계복이가 나에게 쇠를 써는 톱을 들이밀었다. 나는 아주 잠간새에 구석쪽으로 쇠창살을 하나 썰어냈다. 밑둥만 썬 창살을 슬쩍 벌리니 계복이가 기여들어올수 있었다. 우린 또다시 열렬했다. 매일 밤중마다 한몸으로 타올랐다. 긴 가을이 다 갈 때까지 계복이는 애가 들어설줄 몰랐다. 초겨울에 난 된감기에 걸리게 되면서 풀려서 집에 오게 되였다. 엄동속에서도 우리의 사랑은 후영의 구들처럼 뜨거웠다. 계복이는 그 무슨 핑게를 대서든 잠간씩 내게로 왔다가군 그랬다. 
세월은 나와 계복이를 놓고 양공질을 하는것일가.

계복이 집에서 계복이와 마을 민병련장의 혼사를 억지로 결정하고 혼사날까지 잡을 무렵, 그러니까 문화대혁명이 끝난지도 2년이나 되던 1977년 10월의 어느날, 나의 아버지의 《우파분자》, 《부농분자》 등 억울한 루명이 뒤늦게야 현위에 의해 벗겨진것이다. 기쁨은 겹쳐서 들어왔다. 현교육국에서 사람이 내려와 정책락실로 나를 향중심소학 교원으로 자리를 준것이였다. 비록 정식교원이 아니고 림시 월급을 받는 대과교원이지만 그건 실로 내가 꿈도 못꾼 일이였다. 

인간이란 그런가보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변한다더니 소학교엔 후영의 칡벼랑늪에 가물치처럼이나 탐스런 처녀교원들이 많았다. 지나온 사랑에 지치고 맥을 잃었던지 내가 깜빡깜빡 계복이를 잊고있을 때 거의 달포나 보지 못한 계복이가 내앞에 불쑥 나타났다. 
계복이는 노을빛 블라우스에 수박색 미니치마를 받쳐입었고 왼쪽 가슴에다 반짝이는 만년필을 꽂았다. 그는 자기도 마을 소학교 민반교원으로 사업하고있다고 자랑하고나서 아버지가 그러는데 너희 둘다 교원이니 약혼에 동의한다고, 그러나 요구조건이 있는데 꼭 올 가을안으로 결혼을 해야 된다는것이였다. 거기다가 계복이가 자긴 아마 자꾸 토악질이 생기는걸 보아 임신한것 같다고 암시를 주는게 아닌가.

우린 그렇게 그해 겨울에 결혼을 하였다. 결혼후 안해는 오상중등사범학교 함수를, 나는 연변대학 조문학부 함수를 하면서 교원사업을 하느라 정열을 불태웠다. 그런 눈코뜰사이 없이 바쁜가운데서도 젤 재미나는 일은 휴가일에 계복이가 나따라 후영으로 칡벼랑늪의 가물치를 잡으러 갈 때다. 시커멓게 치렁치렁한 깊은 그 늪으로 그 누구도 못들어간다. 유독 헤염재간이 좋은 나만이 들어갈 엄두를 낸다. 반두를 쥐고 벼랑굽을 더듬거리면 요동치는 가물치가 풀떡풀떡 걸려나온다. 안해는 내가 던진 가물치를 받아 다래끼에 넣을 때마다 흥분하여 산이 떠나가게 소릴 지르군 한다. 그 소리가 얼마나 은은하든지 나는 내내 온몸에 기운이 배군 했었다…

안해의 그 은은한 목소리가 자꾸 부른다. 나는 밤속을 휘청거리고 걸었다. 이틀이나 굶은 몸이 무슨 맥으로 20여리를 걸어낼가. 굵직한 몽둥이를 지팽이로 찍으며 자꾸 발작을 내여디딘다. 강도 어떻게 건넜던지 모른다. 강물에 달이 기웃거렸다. 오래만에 배줄을 당긴다는 느낌도 없이 당겨 건넜던거였다. 

강을 건너고부터는 어림짐작으로 첩첩한 산을 따라 굽이굽이 휘둘러간 철길을 따라 내려갔다. 

얼마나 긴 시간을 걸었을가. 드디여 맘속의 그 섬으로 굽어드는 표적, 왕릉 같이나 솟은 소산이 눈에 띄였다. 하마트면 알아보지 못할번했다. 철길역이기에 기어이 알아본것이리라. 순간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오래 인적이 닿지 않은 섬은 전혀 알아볼수 없게 변해있었다. 관목숲이 꽉 우거진 섬은, 아니 인간들에 의해 버림받은 섬은 너무나 잔혹하게 혹독하게 모습을 달리하고있었으며 그런 악렬한 환경으로 나의 앞길을 막고있었다. 거기다가 얼핏 들어도 귀에 익은 적현사와 은화사 그리고 늘매기 같은 독뱀들의 울음소리들이였다. 위험은 도처에 은페해있었다. 칡벼랑늪을 찾아가는 길이란 근본 존재하지 않고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사위가 코앞도 알아보지 못하게 캄캄해진것이였다. 쭉 머리끝까지 공포증이 엄습했고 목덜미에 찬기운이 돌았다. 그리고 전신에 닭살이 돋아있었다. 수백마리의 독사들이 내 아래다리로부터 기여오르고 늑대들이 시퍼런 불덩이를 뚝뚝 흘리며 날카론 이발을 드러내고 내 뒤덜미를 덮쳐오는것  같았다. 그저 이렇게 죽고싶지 않다는 생각, 오직 그 한 생각으로 난 악이 되받치고있었다.

―계복아아, 나 왔단 말야아…

어떻게 그 소리가 산악을 메아리로 들렸는지 몰랐다. 
삽시간에 온 후영의 관목숲에서 울어대던 뱀의 울음소리와 잡음이 뚝 멎고 삼라만상이 고요하였고 구름을 헤치고 나온 달이 금황빛으로 은실은실 쏟아져내리는것이였다. 

분명히 내앞으로 길이 열리는것  같았다. 아니, 령혼의 안내였을거였다. 나는 죽음직전의 유령의 착한 작간일거라는 깨달음을 가지며 더욱 떳떳하고있었던것 같다. 

바루 저기로 꿰지르자. 방향은 명확했으나 잡풀과 관목이 어우러져 꽉 막아나선데다 발목을 넘는 물과 아마 논을 풀었던 자리라 흙두렁이 때아니게 발목을 걸어넘기는바람에 넘어지고 또 걸렸다. 거기다 뱀이나 짐승때문에 한보를 내걸으면 몽둥이로 둘레를 두드리고 해야 했다. 

―마지막 고통의 몸부림이다. 이제 곧 정신적아픔과 육체적아픔이 없는 계복의 령혼이 누워 기다리는 천국의 따스한 구들로 나가리니…
그런 중얼임이 끊임없이 내 입에서 나가주고있었다. 
나는 기진맥진했다. 십여메터를 나가는데 십여분씩도 더 걸리는것 같았다. 사람이 움직이는게 아니고 주검이 무엇에 의해 흔들리는것이라고 하는게 적절할것이다. 

창공에 달은 창백했다. 후영에서 고생하는 아들의 여윈 어깨를 붙잡고 통곡을 하던 어머니의 핼쑥한 얼굴처럼 창백했다. 

―어머니, 천국에 가면 어머니도 뵐수 있잖습니까.

그런 중얼임으로 어머니 령전에 용서를 비는 찰나, 시야로 번들거리는 뭣이 날아들었다. 은실은실 쏟아지는 달빛아래 그것은 한폭의 수채화 같았다. 침엽림 활엽림을 들쓴 칡벼랑이 날카롭게 솟고 그아래로 롱구장만큼한 치렁치렁한 늪이 극히 원시적형체로 안겨든것이다. 
나는 내 미칠듯한 흥분을 안다. 이승에서의 안해 잃은 삶이 정녕 그 얼마만큼한 고역인지를. 지옥생애를 해탈하려는 내 목적지, 칡벼랑 늪이기에… 나는 극구 내 흥분을 진정시키며 늪가 억새풀우로 몸을 던졌다. 달이 내려다보고 닭모이를 뿌린듯 금황빛의 옥수수알 같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바람은 살랑살랑 내 볼을 어루쓸고 잠들었던 풀벌레들은 일제히 카톨릭노래런듯 간단히 연주를 끝내곤 잠잠한다. 

늑대무리대신 사람냄새를 맡은 북대황 말모기들이 아귀아귀 접어들어 피를 빤다. 그것들은 저고리에까지 침을 박고 흡혈을 하는 판이다. 스르륵 뱀 한마리가 내 목을 타고 넘어간다. 전문 육식을 한다는 들쥐 한마리가 찍찍 하고 동료들을 불러 여러마리의 큰 쥐들이 내 육체를 에워싸고 파란 눈알을 반짝인다. 어데선가 우어우어 하고 늑대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승은 인간사이의 모순과 리기를 위한 비렬한 삶때문에 약자는 토혈을 할 신음에 젖어야만 하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병마와 짐승들까지 시시각각 생명을 노리것이니… 나는 한시급히 이승을 떠나리라 한것이다. 

기운이 좀 들었던가 나는 내 몸을 꿈질거리고 벌벌 기였으며 지팽이를 짚고 일어서서 마지막으로 이승의 주위를 눈박아 살피고 헉 긴숨을 들이켰다. 

나는 지팽이를 버리고 나무사이에 몸을 의지하여 한나무 두나무를 잡고서 칡벼랑을 톺아올랐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그제날 계복이와 둘이서 가지런히 앉으면 생산대 탈곡장의 벼짚가리우 같던, 뛰여내려도 푹신한 북데기우라 위태로울것도 없던… 내 어깨에 다소곳 플라스틱머리댕기 맨 처녀 머리가 기대인 처녀총각이 달빛으로 아래 늪 수
면우로 거울 같은 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가을은 밤이 길었다. 

드디여 나는 그 찍어낸듯한 벼랑길로 그우에 서있었다. 아래로 늪이 달을 잉태해있었다. 물속의 달은 계복이로 변해 웃고 손젓는다. 육체는 어디다 두고 령혼인가 유령인가 이 늪에 와있다고, 나를 기다린다고, 이승의 못된 인간들에게 껍질인 육체만 남겨두고 우리 둘의 넋은 천국으로 날아오른다고 나는 나의 정신으로 굳게 믿고있었다. 

나는 인간세상에 대한 그 어떤 미련도 련민도 없었다. 고통과 아픔과 죄악만이 찬 세상이니  말이다. 시선이 가 머문 자리, 늪속의 대야 같은 달속엔 리혼도 배반도 사기도 기다림도 없는 곳이였다… 나는 안깐힘을 써서 뛰여내렸다. 풍, 쏴륵 하는 청각의 맞힘소리와 함께 코끝이 아려나면서 내 정신은 날고있었다. 죽는구나 아니, 안해가 힘껏 끌어당기는구나. 드디여 안해의 령혼과 융합이 되누나 그런 바늘끼 같은 생각이 곧 죽음의 짧은 과정임을 깨닫지 못하며 나는 죽었던것이다. 


11. 조개와 가물치

독자들은 내 이 글을 보면 소설 같은 과장이라거나 거짓이라고 웃을지도 모른다. 룡궁에서 자라를 타고 간 가지러 륙지에 나왔다는 《토끼전》의 한 대목을 읽고 표절한게나 아닌가고 손가락질을 할것이다. 

분명히 난 익사했을텐데, 그리고 왜 안해는 그림자도 뵈지 않는가. 이건 아름답기 그지없을 천당이 분명할텐데 왜 이리 아프고 춥고 비린냄새만 찼을가. 그런 불평과 의혹으로 아마 정신이 들었을것이다. 
의식이 회복됨에 따라 나는 발부위가 심하게 아파남을 느꼈다. 그런 아픔이 완전히 정신이 들게 했을 때 나는 늪가에 머리를 처박고 물에 잠겨있었는데 코끝에 물이 일렁거리고있었다. 원래 나는 뭔가 커다란것을 안고있었다. 아, 난 죽지 않았구나. 천국의 문지기가 날 접수하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고 깨닫고있었다. 안해의 령혼이 없기에 난 천국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게 분명했다. 

내 발부위가 심하게 아파나고있었다. 이건 뭣이 날카론 이발로 물어뜯는 과정이였다. 나는 둔덕에 기여나오고저 버둥거렸다. 풀을 잡고 몸이 둔덕에 오를 때에야 나는 원래 나를 물에 둥둥 뜨게 한 커다랗게 안긴것이 조개였음을 알아보았다. 작은 가마뚜껑만큼한 조개였다. 

조개는 물속을 헤염친다. 일단은 밑바닥의 모래나 흙속을 파고들어 보이지 않다가 먹어야 할 시간이 오면 돌덩이가 튕기듯 쑥 솟아올라와 단단히 닫혔던 동근 껍질을 벌려 부유하는 생물이나 걸려든 물고기를 집어서 소화시켜버린다. 

조개는 한마리의 가물치를 단단히 집고있었는데 반근은 실히 될 가물치의 몸통부위까지 삼키고있었다. 

그런 가마뚜껑 같이 큰 조개를 내가 타고있다니 이건 아무래도 신기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간밤 내가 뛰여내린 자리는 늪중 깊이를 알수 없는 깊은 수중인데 어쩜 내가 이곳 둔덕까지 조개를 타고 나온것일가… 아니, 이건 뭐야, 또 무엇이 내 발을 갉아먹는다. 나는 둔억에 안깐힘을 써서 기여오르며 발을 들었다. 에크, 이게 뭐야. 날카론 톱이로 물고 놓지 않는건 뱀무늬처럼 생긴 한뼘이나 되는 가물치였던것이다. 가물치란 놈은 메사구보다 더한 놈이다. 육식을 하고 산다. 작은 고기, 썩은 짐승의 고기, 좌우간 고기면 다 먹고 사는 놈이다. 

내 발바닥의 살점은 보기 흉하게 뜯어먹히운채로였다. 피가 흘러내려서 뚝뚝 떨어졌다. 다시 보니 내 턱주가리와 손등, 팔도 살점이 군데군데 허비우고 뜯겨서 피가 흥건히 내배고있었다. 대체 내가 죽지 않고 둔치까지 나와 숨이 붙어있은게 조개가 나를 태워서 나온것인지 가물치들이 내 살점을 뜯어먹느라 물어당겨서 나온것인지 알턱이 없었다. 

늪은 고즈넉했다. 그리고 수면은 검푸렀다. 아름다운 늪이였다. 계복이와 사랑했던 늪이였다. 오매에도 잊지 못할 곳이여서 죽으면 계복이가 있을 천국에로 가 살수 있다고 늘 느끼고 느끼다가 드디여 찾은 사랑늪이 아니던가. 아, 그런데 사랑늪속의 가물치들이 산채로 내 살을 뜯고 베여먹다니… 언녕 마귀늪이 된지 오래구나.
가물치에게 뜯기운 군데군데 상처들이 소금을 뿌린듯 콕콕 쏘고 아팠다,

벌써 진물이 나고 고름이 흐르는듯 누우런 부패막이 씌우기 시작을 한다. 이가 갈렸다. 이를 옥물었다. 

그 아픔이 내던져져 익사에 성공못한 의혹서린 정신과 더불어 점점 내 오랜 공상과 착각을 쫓고 씻어내고있으면서 리지를 되찾고있는거였다… 무엇이 나를 이 꼴로 만들었는가? 정신이다. 내 정신의 비관실망과 타락이 내 육체를 죽음에로 내몬게 아니란 말인가… 그래, 살아야 한다. 암이라도 랑만적으로 살아냈다던 기적적인 인간들이 많다던데, 살수 있는데까지 살아서 아니, 이 악물고 노래하고 춤 추면서 살아낼 때, 그 쓰고 고통스런 삶은 내 정신상 보람되고 영웅스런 자호로 될것이 아닌가. 《니 아비는 암에 걸려서도 내게 한마디 알려주지 않았고 또 이 꼴이라도 악으로 버티고 산다…》 로부터 아들에게 끈질긴 의력의 유전성을 확보시켜주어야겠다고 깨닫는 순간에는 기운이 흘러듦을 느꼈다. 

뭐든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둔치에 꺼꾸로 엎뎌서 막 사라지려 하는 조개를 붙잡았다. 작은 쇠가마를 들어올리는것만큼 무거워났다. 희귀하였다. 사발만큼한 조개가 있다던데 가마만큼한 조개를 잡다니 이게 그래 개혁개방이 되여 고향을 떠난지 오랜 농민들이 보고퍼 오랜 시간을 자란… 원시세계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조개껍질을 벌리고 빼낸 가물치를 쥐여들었다. 손톱으로 껍질을 찢어발기고 새하얀 속살을 생것채로 씹어먹었다. 씹으면서 자꾸 울었다. 생명을 너무 소홀히 대한 단순하고 무지한 어제를 생각해 울었다. 이제 살아가야 할 일을 생각해 울었다… 배신을 당하고도 련민을 하고 더러운 사랑을 수호하고 어제의 내가 아니고 더러운 년을 저주하기 위해 하루라도 더 버티고 살아야 한다는 리념에 감동하며 울었다. 

가물치대가리와 지느러미를 떼던지고 다 먹어버리고 누웠다. 누워서 이른아침의 하늘을 보았다. 새들이 우짖고 풀벌레들이 극성스레 울어옜다. 나는 정신이 들고 맥이 남을 느꼈다. 나는 묵직한 돌멩이를 주어들고 힘껏 큰 조개껍질을 깼다. 붉고 누르무레한 색갈의 조개속살이 나왔다. 물씬 비린내가 풍겼다. 속에는 거마리들이 우글댔다. 그 거마리들을 주어내고나서 날이 선 돌쪼각으로 조개속살을 베여내서 입안에 넣고 씹었다. 질겼고 비렸다. 꿀꺽 넘기고마는게 나을상싶어서 그냥 넘겼다. 울컥 토악질이 나오면 목구멍으로부터 밀려나온 조개고기를 다시 넘겼다.  

작은 가마만큼한 큰 조개였지만 속살은 한공기도 차지 않았다. 나는 그걸 끝내 다 넘겨버렸다.  

조개껍질이 해살에 비취색으로 번뜩거리는걸 바라보며 《나는 악한 인간이야. 이제부턴!》 그런 생각이 들었고 웃음이 나가고있었다. 참으로 너무 오래만에 웃어보는 웃음이였다. 


12. 내 삶을 낚다

나는 너무 오래동안 나를 잃었다. 단순하고 천진하고 무지하기까지 했던 내 정신을 믿은 결과로 인해 삶을 곡해해온것이였다. 
이제 내 기억속의 아름다왔던 후영은 그늘로 어두웠다. 후영의 칡벼랑늪에는 내 사랑이 없다. 늪속에 잠긴 금황빛달이 천당이요, 계복이의 령혼이 머문 자리요… 하는것들은 허상이요, 정신질병이 일으킨 착각이였다. 늪에는 내 살점을 도려먹는 무서운 가물치들이 우글거린다. 

나는 그 가물치들을 잡고저 했다. 가물치들을 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것이다. 한마리의 가물치를 잡을 때마다 안해가 가족과 사랑을 어쩜 그리 쉽게도 배반할수 있는데 대한 복수의 과정으로 페허된 내 마음터에 조금씩조금씩 안위와 복구의 영양토를 펴가리라 한것이다. 그런데 생각처럼 가물치가 잡히겠는지 그런 근심도 없잖았다. 

젊어서 원체 《물고기박사》란 별명까지 달고다녔던 나지만 너무 오래 자연과 거리를 멀리한때문에 그런 재간이 있는건지 의심할 지경이였고 있더라도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 단 한마리라도 잡자. 나의 악을 기르고 그 년을 저주하는 표징으로서 자신을 고무하리라!
가물치, 가물치는 귀한 고기다. 옛말에 정승이 먹는 고기라 했으니 가히 《귀족물고기》겠음을 알수 있다. 주둥이가 뾰죽하고 날카론 톱이발이며 몸뚱이는 둥글다. 육식을 하기에 요동을 치면 그 힘이 대단하다. 

나는 아침에 점심밥을 준비했고 낚시대와 초롱그물을 들었다. 헛간에 오래동안 묵어있었더라도 잘 보관했기에 쓸만했다. 그리고 작은 알루미늄가마도 하나 넣었다. 

젊었을적에는 20리길을 한시간 반이면 족히 걸어냈으나 이제는 그 배로 시간이 들었다. 

단 한마리라도 낚을수가 있을가. 그러나 뜻밖이였다. 낚시에 풀메뚜기를 잡아 꿰여 뿌리니 냉큼 동동이가 물속에 쑥 끌려들어간다. 잡아당기니 낚시대초리가 활등처럼 휘면서 끊어질듯한다. 얼려서 겨우 끌어내보니 근반이나 갈 싯누런 가물치였다. 

세상에 젤 낚기 힘든 물고기가 가물치라던 말이 떠오르며 고개가 저어진다. 약아빠지고 밤새 개구리 지어 뱀까지 잡아먹어 배를 불린 놈이라 웬간해선 낚시찌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가물치가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낚시찌를 보기 바쁘게 물다니, 생각해보니 모두 인간들때문이겠다. 가물치들이 오랜 세월 태고연한 원시림속에서 인간들의 흔적을 잊고 살다보니 멍청해진것일게고 낚시찌에서 인간냄새를 맡고 물어내는것일거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안해 잃고 불쌍한 사람의 삶을 돕기 위해 헌신을 하는것이나 아닐는지.

점심무렵을 넘기지 않았는데도 잠간새에 열댓근이나 실히 되게 낚았다. 비닐주머니속에서 그것들은 황금빛으로 풀떡거린다. 탐스런 놈들이였다. 오래동안 처음으로 기쁨이란걸 느껴보았다. 어쩔수 없이 안해생각이 났다. 계복이가 가물치를 다래끼에 주어담으며 내던 그 은은한 목소리가 맺혀온다. 그러나 단념해야 했다. 《나쁜 년!》 그랬다.
등걸불을 지피고 알루미늄냄비를 걸었다. 기름을 붓고 고추장을 좀 풀고 가물치국을 끓였다. 아, 맛있었다. 술생각이 났으나 참았다. 이제 술이란 저녁이나 아침에 속이 아플 때나 냄새가 날카로울 때에만 조금씩 마셔서 아픔을 마취시키리라 다진것인데.

가물치 열댓근도 얼마나 무겁던지. 땀이 그칠줄 모르고 흘러내린다. 이 가물치를 한근에 5원씩 사는 사람이 있을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비척비척 걸어서 거의 해질녁에야 동네가 보이는 간이역에 닿았다. 혹시나 해서 간이역 플래트홈에서 서성거리는 한족에게 가물치를 내보이며 사겠는가 물었다. 

―한근에 10원씩 줄터이니 아니, 그저 백오십원에 다 넘기우고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시장을 다 돌아도 가물치란 볼수 없단다. 초식어인 잉어나 붕어, 초어따위들은 흔하지만 육식을 하고 크는 물고기는 유독 메사구밖에 볼수 없다고 그랬다. 특히 초식어보다 육식어의 고기가 더 구수하고 영양가가 높다는데에 눈길을 모을수도 있겠지만 육식어인 메사구, 가물치고기는 사람의 혈액을 맑게 하고 항암작용을 논다는데서 초식어보다 육식어의 값이 껑충 뛰여오를거라고 그랬다. 그러니 보구 죽자 해도 없던 희귀한 가물치를 한근에 12원씩인 메사구값보다도 눅게 주었으니 나는 몰라도 한참은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몰랐던것이다. 

그날, 돈 백오십원을 받고 나는 내가 간암환자라는것도 잊고서 흥분을 했다. 걸음걸이도 씨엉씨엉이였다. 안해를 잃고 얼마나 긴 시일을 술과 동무해 살아왔던가. 

요란하게 화장만 추구하는 녀자일수록 사랑의 버림과 가깝고 술만 죽여내는 남자일수록 저승과의 거리가 가깝다. 

나는 그 점을 잘 알고있었으므로 이 악물고 비관을 멀리하려 애썼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였지만. 그 어려운 억제와 견제의 과정에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후회하는 돌이킴앞에 가슴 찢어지게 하는 슬픔을 못이겨할  때가 가끔이군 했다. 내 인생이란 이게 뭐냐. 안해의 배신을 당하고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고 암에 걸리고 걸인이 되여 물매를 맞고 손가락질을 받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느님은 나에게만 한벌 또 한벌의 족쇄를 채우는지… 그 최악의 경우에 처했더라도 난 어찌하여 살리라 한건지 나는 나를 끝내 감동하고 나를 이기리라 다진것이였다. 

나는 매일 가물치를 낚았다. 간이역에서  전문 도매장사군이 날 기다려서 맞돈으로 넘겨받는다. 

겨울이 다가올 때까지 나는 꼬빡 하루도 빠짐없이 후영으로 나다닌것이다. 

첫눈이 내리던 그날, 나는 무심결에 거울을 보았다. 거울속에는 몹시 초췌하고 검누른 사내얼굴이 있었다. 문득 나는 내가 오랜 시일을 간암이란걸 잊고 지내온 나 자신이 간암확진이 내려서 지금껏 옹근 한해 반이나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왜 나는 죽지 않어? 칡벼랑늪에 투신자살도 안되고 억망으로 퍼넣는 술로도 간암이 폭팔되지 않고… 내 병은 참으로 질기다는걸 믿으면서 나는 먼 해남도에서 비용때문에 작년 음력설에도 못온 사랑하는 아들이 한없이 그리워나며 더운 눈물이 핑글 고였다. 

나는 살얼음이 낀 철에도 벼랑늪가에 앉아 낚시로 의력을 길렀고 얼음이 꽝꽝 얼었어도 얼음에 구멍을 빼고 낚시찌를 넣었다. 

어떤 날에 나는 많으면 열둬마리, 적으면 한두마리밖에 낚지 못했지만 그건 나의 전부의 삶의 방식이였다. 

나는 매일 가물치를 먹었다. 마지막엔 의무적으로 먹었다. 가물치고기가 항암작용을 한다고 굳이 믿고있기에… 가물치는 《약》이였다. 못된 년으로 만들어진 약이였다. 
나는 결국 내 부활을 낚고있었다.

13. 인생은 이런가

《죽음》이란 두자는 한시도 내 뇌리를 떠난적 없었다. 한달을 더 살수가 있을가, 어쩜 몇해를 더 살수 있을지도 모르지. 죽음이란 신신펀펀할 때 급작스레 찾아든다던데… 그런 생각과 함께 끊임없이 속이 아프고있었다. 별로 먹은것도 없이 디젤유나 쇠비린내 같은 냄새가 게트림으로 올리밀었고 간부위와 위 그리고 대장으로부터 홍문에 이르기까지 쓰리고 아리기도 했고 하루에 한번 꼴로 칼로 베듯 쭉 아파날 땐 정신이 까빡 잃어지고 눈앞이 캄캄해난다. 
술은 이 악물고 마시지 않으려 했지만 혹간 밤중에 진통을 제거하느라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 인이 박힌 술은 자꾸 꿀물인듯 당긴다. 밥은 당겨서 먹는다는것보다 억지로 넘긴다고 해야 적절할것이다. 그저 몇숟갈이면 벌써 트림이 나오고 배가 불러진다. 

나는 매일 새벽에 눈만 뜨면 력서를 마주한다. 또 하루를 살았다는 표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한 혈육인 아들과의 상봉의 날과 가까와지리란 표기이기도 했다. 이제 아들을 본다면 죽어도 뭐 한이 있을성싶잖다고 느껴도 보았다. 아들아, 코밑이 검실검실하니 수염도 나고 더욱 청년답겠지. 아들아, 이 아비는 단 너만 믿는다. 이 세상에서 단 너만이 이 아비를 생각하고 아파할것 아니냐. 이번 음력설엔 꼭 왔으면 하는데… 오직 너의 성공을 바랄뿐이다. 이번 음력설엔 제발 왔으면. 그저 그런 바램일뿐이구나… 밤마다 무당이 굿을 하듯 먼 해남도남쪽을 바라고 꺼꾸로 엎뎌서 두손을 합장하고 손을 부비고 또 부볐다. 

나는 조금만 걸어도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고 사지가 나른해나며 눈앞에 별이 반짝이던 전과는 달리 몸이 많이 나아지고있다는 느낌이였다. 매일 20여리 후영을 갔다올수 있다는게 보통사람도 바쁜 노릇인데 말이다. 내가 정말 암환자일가, 왜 이럴가, 확실히 점심나절마다 늪가에서 끓여먹는 가물치고기때문일가. 그게 진짜로 항암역할을 하는 모양이라고 의심하고있었다. 그보다는 매일 몇십원씩 버는 돈에 정신이 분발된다는것, 그것은 확연한 일이였다. 

그래, 살자! 나는 살아가고있는거야… 그러면서도 나는 그냥 죽음이 꿈뜰 찾아올 어느날인가를 무섭게 의식하고있었다, 역시 뼈만 앙상하고 얼굴색이 주검 같은 나의 꼴을 거울로 들여다보면서.

겨울은 깊어가고 폭설이 터지면서 나는 후영을 갈수 없게 되였다. 나의 주려마른 맥꼴로 어찌 혹독한 겨울을 헤칠수가 있으랴. 이제는 전화할 때마다 음력설무렵에 웬간하면 가리라던 아들의 말대로 아들만 기다리던 나였다. 

나는 말려둔 가물치고기를 구워먹군 했고 가끔씩 메사구를 사서 탕을 끓여서 먹는걸 잊지 않았다. 항암에 기운이 있다고 믿어서였다.
나는 완강하게 살았다. 위가 쓰린지 창자가 잘리는지 간의 종양이 크느라고 그런지 몸통속이 마구 진통이 날 때는 술을 꿀럭꿀럭 들이키곤 그랬다. 

아들은 내내 전화가 없었다. 그믐날밤까지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 밖에서는 눈만 소리없이 내려서 쌓이고있었다.

속이 진통이 시작되자 난 술을 마셨다. 술이 몸에 퍼지자 제발 오늘밤도 죽지 말자, 새날을 보리라. 그런 생각속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가. 잠결에 감은 눈까풀이 강렬한 빛발을 받으며 이마에 손길이 느껴지고있는것이였다. 꿈결이겠거니 가느스름히 눈을 뜨니 집안에 전등이 켜진게 아닌가. 그와 함께 자길 빤히 내려다보고있는것은 아들일거였다. 그래, 내 아들이 왔구나, 아들이… 그런데 다시 여겨보니 이건 안해, 계복이가 아닌가?!… 내가 이거 칡벼랑늪속 금황빛달궁에 들어선게 아닌가. 거기서 안해와 만난것이로구나.

―여보, 나… 나야요. 제가 왔어요, 여보…

그제날 안해의 그 은은한 목소리 그대로였고 분명히 집안을 울리고있었다. 난 내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아팠다. 생시였다. 정말 안해가 옳았다! 나는 화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나는 뒤로 비실비실 물러나면서 앞에 앉은 계복이를 뚫어지게 바라만보았다. 5년전의 그 계복이가 아니였다. 많이 겉늙었다. 람루한 의복차림새에 량어깨는 좁아지고 뼈골이 날카롭게 안겨온다. 얼굴은 누르끼했고 눈확과 관골이 두드러졌고 턱이 뾰죽했다. 

―당신, 계복이 옳아?

―나… 나야요, 미안해요…

―많이 못쓰게 됐구만.

―당신도 왜 이 지경이 됐나요? 흑흑…
안해는 죄송스러운 눈빛으로 울고있었다. 그런 안해의 육체와 눈빛과 눈물이 모든걸 다 말해오고있었다. 더 물을게 뭐란 말인가.
나는 안해를 힘없이 품에 끌어안았다. 내가 되려 여위였으나 단단할 안해의 품에 안기고있었다. 그리고 나는 쇼크했다. 
안해가 내 인중을 눌러주어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고 꺽꺽거리다가 터뜨린 보물처럼 소울음을 퍼질렀다. 슬프고 슬픈 울음이였다. 울면서 넋두리로 물었다. 

―이제 또 떠날거야?

―떠나단요. 우리 서로 이렇게 안고 살거야요…
실로 꿈만  같았다. 안해의 뜻밖의 출현앞에 나는 거의 미칠듯한 흥분상태에 처해있었다. 할 말 못할 말을 가리지 못했고 슬픔과 분노와 기쁨을 주체할길 없어했다. 

―여보, 아무 말도 하지 마오, 돈을 못벌어가지고 왔대도 그게 뭐 대수요. 가장 근본은 우리 둘의 사랑이 변치 않은것이잖소. 상봉, 이 이상 또 뭐 바랄것 있단 말요.

그랬으나 안해는 한사코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이실직고하고있었다. 안해가 일본에 가서 뜻밖으로 맹장염에 걸려 입원치료비가 없어 죽음의 경각에 처해 길어구에 쓰러졌을 때 중년사내의 도움을 받아 살아났고 그 은혜로 《갇혀》 그의 안해질을 하는 막대한 대가를 치렀다는 솔직한 하소연은 끔찍스럽기도 했다… 

그 사내는 일본인이였고 도박군이고 건달이였다. 그러니 나이가 사십을 바라보도록 장갈 못들고있던참인데 마침 다 죽어가는 곱살한 녀인을 구해주게 된거였고 굳이 안해로 《만든》것이였다. 달아나지 못하게 려권과 기타 출국서류를 앗아내여 주지 않았고 친척들까지 동원하여 감시였다. 사내는 물론 암펌 같은 시어미까지 한사코 임신을 시키기 위해 발광을 했단다. 피임약을 먹다가 들켜서 물매를 맞군 했는데 갈비뼈 두대가 나가고 코등의 뼈가 끊어도 졌으며 시어미와 시누이들한테 뜯기워 머리가 무더기로 빠지기도 했단다. 그래도 죽을 생각은 없었단다. 악을 쓰고 살았단다. 다행한 일은 애가 들어섰으나 술 먹은 사내의 발길질에 류산을 한거였고 그담엔 더는 임신을 할수 없은거란다. 5년 3개월하고 열이레란 긴 시일을 두고 한시도 남편과 아들과 고향을 잊어본적이 없단다… 끝내 려권과 출국서류를 찾아냈고 탈출에 성공한것이란다. 《내가 당신을 이 지경으루 만들었군요, 내가…》 그러며 안해는 목놓아 울었다. 

―이건 하늘의 뜻이요. 하늘이 나를 고험한거라구. 우리 사랑을 고험한거라구… 어쩜 난 암이 아니라두 다른 사고로 일찍 죽었을런지두 모르지. 당신이 일본에 나갔고 그런 《배반》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살아있은건지두 모르잖어. 난 이겼소. 당신이 날 사랑하는 그 마음때문에 이겼구 석달을 못넘긴다는 간암에 항거하여 여적 살아온거 아니겠소. 난 행복하오. 여보, 인생이란…

―불행이든 행복이든 지어 죽음과 환생까지도 전혀 뜻밖으로 되여있는게 인생이지요. 어리광대극 같지요. 정말 인생이란 그런것일가요…
―그런것일망정 우린 우리 사랑을 흐트러짐 없이 지켜낸것이잖소. 금전에도 천당에도 유혹되지 않는 사랑은 얼마나 보귀한것이오. 더우기 지금 세월에 말이오…
한희와 비애가 차넘치던, 안해가 집에 들어선 그날은 2005년 양력 4월 20일의 한밤중이였다. 


14. 보내야 할 땅

그렇게 가지 말라고 말렸던 일본땅엘 안해는 갔었고 가서 생명을 잃을번하고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질 친 《생지옥살이》를 면치 못한것이였다. 

그것이 죄의식으로 되여 안해는 내내 죄송스러워했고 눈물지었다. 
안해는 그간 몇번이나 나를 끌고 병원으로 가 암인지를 재확진하고저 했으나 번마다 나의 굳은 고집앞에 손을 들고말았다. 간암이겠지, 아니 죽을 때가 되면 죽겠지. 검사한다고 암이 나을가. 그보다는 암도 나의 강인한 삶앞에 손을 들고만거야! 가 아집으로 깊이 배긴때문이였다. 

간암!! 나는 간암환자― 2년이 가깝도록 나는 왜 죽지 않고있을가?

… 나는 구경 언제 죽는가?… 아, 무섭다. 《병원》이란 두글자가 젤 무섭다. 젤 추악하고 젤 저주스럽다. 그건 염라왕이나 다를바없게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의사놈들은 구경 의사인지 백정인지 알바없게 나를 혼동시키고있다. 한번은 감기에 걸려 주사를 맞았는데 주사를 맞고 집에 와 앉은것이 쿡 하고 엉덩이에 못이 박혀서 튕겨일어나 보니 그때까지 내 엉뎅이에 주사바늘이 꽂혀있은채로였던것이다. 의사란 놈은 아마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시각까지 밤에 흘레붙는다거나 술 처먹을 생각만 골똘했을가. 곁집의 아줌마는 맹장수술을 한지 이태동안을 배안에다 가위를 넣고 다녔는데 의사는 왜 가위도 꺼내지 않은채 배를 꿰맸을가. 사람들은 그런다. 건장한 사람도 병원엘 들어서면 병자가 된다고… 위암이 더 붓지 않으면 이 여윈 놈이 당뇨병이나 고혈압환자가 될지도 모를것이며 이제 석달을 못넘긴다는 사형판결을 받을것이 불보듯할게 아니란  말인가… 아아, 닭살이 돋고 뒤덜미에 찬기운이 인다. 으스스 떨린다.  

그래, 아는것보다 모르는게 낫지. 녀인은 의심하지 말고 믿고 데리고 살아야 행복하듯이 암이란 놈은 모르고 사는게 도리여 편할것이라고… 아프다, 또 아파난다. 위속에 지푸라기가 쌓이고 가시방망이가 들어있는 느낌이다. 밥도 조금씩 하루에 열서너끼로 나누어 먹건만 왜 소화되지 않고 구토하고 설사를 하는건지… 간이 작용을 못노니 위액이 마를것이고 위벽이 염증을 일으킬거였다. 한번씩 아픔에 입술을 악물고 땀벌창이 될 때면 안해는 그저 내 머리를 붙안고 흐느낌을 먹는다. 

안해의 고통은 더 이를데 없었다. 남편의 《사형선고》만 해도 앞이 막막한데 일본에 나갈 때 꾼 10만원이 20만원으로 불어 빚독촉이 심했고 그러니 친척간이 원쑤간으로 번지고있는 판국이였으니 그저 죽지 못해 사는 꼴이였다. 직업도 띄우고 《사형선고》를 당하고 주위 사람들을 원쑤로 만들고…
어느날 나는 오래동안을 두고 고민해오던 말을 안해앞에 했다. 

―여보, 당신이 아까와서 차마 말 못꺼냈소만 이대루야 살순 없잖겠소. 밤낮 랭수 한사발 떠다놓고 귀신한테 빈다구 죽을놈이 안죽을수도 없는거구. 은행대부금을 내여 한국엘 나가 버는게 어떠하오… 불은 불로 끄구 독은 독으로 치랬다구 빚도 빚을 더 지는 방법으로 더 큰 돈을 버는 길을 열어야지…

―사신이 시시각각 당신을 위협하는  때에 내가 당신 놔두고 어찌 떠날수 있겠어요. 나때문에 당신 그런 몹쑬 병을 얻은건데 이제 또 어찌…흑흑.

안해는 내 목을 끌어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아니요. 남편을 살리기 위하여, 빚을 갚고 우리 자식을 류학보내기 위하여 한국엘 나가는게 아니겠소. 나는 아마 당신을 기다리느라 더 아득바득 살수 있을것이오…

안해는 그렇게 한국으로 떠나게 된것이였다. 출국비자는 희망이였다. 

―한국엘 가면 일본에서보다 한결 안심하고 돈 벌수 있을거야요. 말이 안통하는 일본에선 걸음마다 걸채이고 넘어져 코를 깼다면 한국에선 걸음마다 기운이 날걸요, 날따라 해외나들이 시책이 좋아진다는 고국이잖아요. 이번에는… 이번에야…

그날 밤 안해는 출국비자를 안고서 아기처럼 기쁨에 겨워 울었다. 
안해는 귀가 반년만에 다시 집을 떠나게 되였다. 나는 몸이 말째여서 연길공항까지 배웅할수 없었다. 그저 집문앞에서 배웅으로 앙상한 손짓만 했을뿐이였고 안해가 보이지 않을 때부터 눈물만 좔좔 흘렸을뿐이였다. 안해도 소리내여 울면서 갔을것이고… 동경을 해탈하고 서울행에 오르는 안해를 바라는 내 마른 육체는 해질녁까지 추풍에 나붓기고있었다… 죽을 때까지 이 악물고 분투해야 하는게 인간의 종지가 아니랴. 그런 종지는 또 변함없는 사랑이라야 싱싱한 생명력을 갖고있는거고… 돈은 죽음을 관리하는 가장 문명화된 도구다! 사랑은 죽음을 이겨내는 영원한 주제이다!!… 정녕 지금 세월에 변함없는 사랑이란 그 얼마나 보귀한지…


2007년8월18일
(<<연변문학>>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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