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을 위한 차
이렇게 몸과 마음이 지친 날에 나는 조용히 나만을 위한 차를 우린다.
풍상설로를 겪으며 대지의 정화를 듬뿍 지닌 찻잎이 들끓는 물속에서 모든 것들을 토로할 때 나는 요동하는 그 향기로 먼저 나의 가냘픈 신경을 마취시킨다. 그리고 고요히 자사호와 마주 앉아 하루의 분망으로 먼지 날리던 내 마음이 차분해질 때까지 그 찻물을 나 한잔 자사호 한잔 나누어 마신다. 그러다가 자사호가 차르르해지면 부드러운 다건으로 정성껏 닦고 또 손으로 쓰다듬는다.
내 손위의 자사호가 어떤 때는 속세를 살아가며 많은 것들을 담기도 하고 쏟아버리기도 해야 하는 내 마음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정녕 내가 빛나게 닦고 어루만져 주고 싶은것은 이 자사호인지 아니면 세파에 때 묻기도 하고 부스러지기도 하는 내 자신의 영혼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이렇게 온화하게 자사호를 쓰다듬고 만지작거리며 차를 마시다나면 오장육부를 다 꺼집어 내었던 것처럼 허탈했던 몸과 마음에 부드럽고 향기 은은한 그 무엇이 차 오르는듯한 느낌이 든다. 차는 이렇듯 심령으로 흐르는 음료다. 그래서 차와 함께 하는 나의 생활에는 영혼의 양분이 고갈하지 않을 것 같다.
나만을 위한 차를 우리면서 나는 찻잔에 담긴 찻물을 들여다보듯 내 속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리고 씻어버려야 할 것은 씻어버리고 메말라가는 것들에게는 촉촉히 이슬을 내려준다. 이렇게 그때그때 자신을 보듬어 주면서 사노라면 내 안의 평온과 기쁨이 더더욱 돈독해 지는 것 같다.
오늘도 혼자 조용히 찻잔을 홀짝이다나니 나의 사색은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고 차츰 맑고 가벼워 지다가 끝내는 피어오르는 차향따라 가물거린다. ‘오늘 밤, 차는 나의 연인이어라!’ 라는 글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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