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의 황혼에 바다를 마주하고 조용히 앉아 두 눈을 감고 시원히 불어오는 바다 바람을 폐부로 느끼며 복식호흡을 하다가 천천히 눈을 뜨니 시야에 안겨 오는 것은 모래를 파며 장난하는 우리집 쌍둥이와 무연한 바다뿐이다. 파도도 조심스레 해안에 닿는 이 조용한 저녁에 눈앞의 화면은 나로 하여금 온 세상이 다 내것 같게 한다. ‘살아 있다는 게 이렇게 아름다운거구나! ’하는 느낌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언젠가는 유방암이라고 오진을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밤새껏 울어 본적도 있고 장자의 글 몇줄 읽고 나도 이제는 죽음을 겁내지 않고 초연히 속세을 떠날 수 있을것 같아서 남편에게 ‘유언’까지 남긴 적도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대지진의 처참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내곁에 붙어 앉으며
‘엄마는 지진 나도 죽으면 안돼…’,
‘다쳐서 병원에 가도 나하고 꼭 같은 병원에 가, 절대 날 잃어버리지 마…’
이렇게 걱정에 떠는 딸애를 보니 생명이란 원래 아무때나 초연할 수 있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내가 초연히 갈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가야 할 때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며칠전 올해 89세 나는 한 고향마을 할머니를 만났었다. 그 할머니는 너무도 정정하시고 정신이 말끔하셔서 나는 ‘아름답게 늙으셨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저도 모르게 저 자그마한 체대에 어디서 에너지가 생겨서 여토록 이렇게 몸과 정신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머릿속에 파고 들었다. ‘시집도 안 간 여자애를 혼자 밖에 내놓을 수도 없고 해서 이렇게 따라왔어…’.
손주들 다 키워주셔서 아들집에서 향수를 하셔도 되겠건만 이번에는 외손녀가 걱정이 되셔서 이렇게 오신거다. 아직도 할머니의 기력을 지탱하고 있는 그 에너지는 바로 이 책임과 의무였던 것이다. 할머니의 생명은 불타는 황혼처럼 아름다웠다.
동방구가(东方九哥)의 ‘헛되이 죽지 말자’란 말이 생각난다. 살아 있다면 꼭 죽을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슬퍼할 것도 없고 무서워 할 필요도 없다. 태어날때부터 이미 죽음으로 방향이 정해 진 인생길이지만 착실하게 걸어 가고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자. 아니, 죽을 때까지 태양처럼 자신을 깡그리 불태워서 재가 돼서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해도 괜찮다.
내 존재가 한때 누구에게는 행복이었고 내가 사라짐으로 해서 누구도 비참해 지지 않는다면 그때가 바로 내가 초연히 가도 될 때인 것이다. 아직 씩씩하게 살면서 부모와 자식을 위해 의무와 책임을 다 하는것이 오늘이다.
내가 있어서 하늘이 있고 내가 있어서 바다가 있고 내가 있어서 행복한 우리 집이 있다. 그래서 나도 즐겁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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