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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우물
2020년 12월 29일 09시 17분  조회:666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고향의 우물

리삼민


장장 10년 만에 고향에 다녀오게 되였다. 대련에서 내가 살던 흑룡강 동녕으로 가려면 렬차를 타고 12시간을 달려 목단강 역에서 내린 후 다시 뻐스를 갈아타야만 닿을 수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그 사이 강남 갔던 제비들이 돌아와서 둥지를 틀고 지지배배 노래를 부르던 초가집들은 온데간데 없고 벽돌기와집들만 즐비하게 늘어섰다. 우쑤리스크로 향하는 동녕해관을 건설하면서 농민들이 풍년가 부르면서 오르내리던 흙길도 어느새 너비가 7메터가 되는 세멘트길로 바뀌여져있었다. 그나마 소학교 옛 건물과 운동장이 남아있기에 내가 살던 옛집의 자리를 찾을 수 있어 다행이였다.
집 근처에 이르니 80대로 되여보이는 로인이 큰 대통을 입에 물고 끄덕끄덕 졸면서 해빛쪼임을 하고 있었다. 우리 웃집에서 살던 신윤칠로인이였다. 길고 짧은 대통이 6개나 되여 ‘신대통’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나는 천천히 로인 앞으로 다가가 “어르신, 그간 안녕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올렸다.
“엉? 이게 리정사녀사의 셋째아들 아닌가?” 로인은 나를 인차 알아보면서 나의 손을 꽉 잡아주셨다. 신로인에게 마을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더니 그는 허허 웃으면서 “다 가버렸소.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이 아래 우물물도 어디로 흘러갔는지 보이질 않소.”라고 대답했다.
우물 말이 나오니 나의 추억의 실타래도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 세기 50년대초로 기억된다. 귀농으로 모여온 고향 사람들은 일본놈들이 버리고 간 낡은 관사에다 대수 나무를 걸어 집을 짓고 정부에서 내려보낸 두병의 좁쌀로 굶주린 창자를 달랬다. 그런데 마실 물이 없는 게 가장 큰 골치거리였다. 마을 사람들은 삽과 괭이를 들고 나와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땅밑으로 9메터 가량 파내려가니 시원하고 깨끗한 샘물이 모래를 뚫고 퐁퐁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환성을 올리며 샘터 주위에다 돌을 쌓고 용드레까지 걸어놓았다. 밑에 내려갔던 일군들이 땀벌창이 되여 올라오자 동네 아낙네들은 새참을 준비하느라고 바삐 서둘렀다. 닭알을 삶아오는가 하면 터밭에서 오이와 고추를 따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쌍가매할머니는 손수 걸러낸 막걸리를 바가지에다 듬뿍 담아가지고 와서 수고했다며 일군들에게 권했다. 윤털보로인은 어느새 강변에 가서 수양버들 한그루를 떠다 우물가에 심어놓았다. 물이 어찌나 맑았던지 이 물로 만든 두부는 하들하들한 것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고 오이랭국, 청주, 막걸리를 만드는 것은 물론 향병원에서도 이 우물을 주사기 소독용으로 길어갔다.
콩 한알도 서로 나누어먹던 시절, 마을 사람들은 우물가에 모이면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낙네들도 그 주위에 모여 흥겨운 가락을 뽑아냈다. 〈아리랑〉, 〈도라지타령〉, 〈농부가〉… 가사가 똑똑히 기억나지 않지만 가락이 구슬펐던 기억은 어렴풋이 남아있다. 어렵던 과거의 향수를 달래듯 마을 사람들은 드레박질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한 드레박, 두 드레박 물을 길어올리며 불렀던 노래는 때론 조용히 흐르는 물처럼, 때론 요동치는 파도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적셨다.
어머니 품에 안긴 아이가 피로를 쫓는 쑥향기에 취해 자고 있을 때 쯤 하루일에 지친 농부들은 또 우물 주위에 모여 신대통로인의 구수한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졸음을 몰아냈다. “옛날에 김삿갓이라는 별명을 가진 방랑시인이 있었지…” 신대통로인이 한창 흥에 겨워 옛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뿅하는 방귀 소리가 들려왔다. 둘러보니 바로 내 옆에 앉아있던 누나 벌 되는 김희숙이였다. 누나가 부끄러워서 어쩔 바를 몰라하는데도 신대통로인이 “또 이러면 시집 못 갈 줄 알아.”라고 일부러 골려주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웃음보를 터뜨렸다.
내가 소학교 6학년 때 일로 기억하고 있다. 밤에 숙제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온몸에 열이 나는가 싶더니 배까지 아파났다. 그 때 구급약이라야 정통편뿐이였다. 어머니가 준 약을 부랴부랴 삼키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안달이 난 어머니는 이른새벽에 신대통로인을 불러왔다. 마을에 큰일이 있을 때면 밤중이라도 주저없이 나서는 후더운 로인이였다. 신대통로인은 나의 머리와 배를 만져보더니 “속에 내혈이 들었으니 얼음덩어리가 필요하오.”라고 말했다. 그 때는 이른봄이였고 랭장고도 없는 시절이라 어디 가서 얼음덩어리를 얻어온단 말인가? 페암으로 아버지를 보낸 고통이 채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집에 또 이런 불행이 닥쳤으니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으랴.
“저 우물벽에 아직까지 얼음이 얇게 붙어있을지도 모르네.”라는 말을 남긴 채 신로인은 쌩하고 밖으로 나가더니 한식경이 지나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들고 와서 나의 배꼽 우에 올려놓고 나서 머리에 침을 놔주었다. 신통하게도 한시간도 안되여 열이 내리고 통증도 씻은듯이 사라졌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 다시 우물에 깃든 이야기들을 떠올리니 감회가 남달랐다. 새 농촌 건설이 시작되면서 마을에 있던 숱한 우물들은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우물가에서 달을 보며 소원을 빌던 마을 사람들도 이제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아마도 각자 새 삶터에서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꿈을 이뤄가고 있겠지.
고요한 달빛이 흐르는 우물터에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장작불에 구워낸 옥수수를 나누어먹던 추억은 점점 기억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샘물처럼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던 인심과 이웃과도 아우나 형님처럼 무랍없이 지냈던 그 세월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워난다. 적어도 후덕하고 진실했던 농촌 인심만은 저 우물처럼 사라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로년세계》2021년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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