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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손맛
2020년 12월 29일 09시 25분  조회:577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외할머니 손맛


한미화

년초부터 느닷없이 들이닥친 코로나 사태로 인해 행정적이라 할 만한 두문불출이 이어지다 나니 거미줄 치던 주방은 어느덧 나의 손길로 번쩍번쩍하게 변신했다. 끼니마다 밥을 하느라 매일 주방에서 살다싶이 하노라니 저도 모르게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되는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상에 숟가락만 달랑 얹는 호강을 부리거나 배달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다가 갑자기 이 번잡하고 고단한 작업을 맡게 되면서 비로소 주부의 고달픔을 실감하게 되였다.
외할머니는 태여날 때부터 오른쪽 팔다리는 크고 굵었지만 왼쪽 팔다리는 작고 가늘어서 무겁고 처진 오른쪽 몸 때문에 항상 몸이 오른쪽으로 기우뚱해졌다. 이런 신체적 원인으로 외할머니는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많은 불편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일터인 가마목에서만은 날아다니는 고수였다.
어릴 적부터 우리 가족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농사일로 바쁠 때면 외할머니는 나와 동생을 보살피랴, 온 가족의 끼니를 마련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쳤다.
외할머니의 아침은 닭이 홰를 치는 새벽에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엌에는 큰솥, 중솥 그리고 평가마가 걸려있었는데 외할머니는 먼저 큰솥에 감자를 깎아서 가지런히 놓은 후 그 우에 미리 씻어놓은 입쌀과 다른 곡물들을 얹어 밥을 지었다. 철에 따라 곡물들도 원두콩, 열콩, 찰옥수수 등으로 바뀌였다. 갖은 잡곡과 감자가 한데 어우러져 밥맛이 유난히 구수했고 찰졌다. 그래서 그랬는지 누룽지도 별맛이였다. 다음은 차례 대로 중솥에는 찌개를 끓이고 평가마에는 료리를 볶았다.
“딱딱딱”, 도마에서 야채 써는 소리가 귀맛 좋게 들려오면 우리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걸쳐 입는다. 외할머니는 썰어놓은 야채를 차례 대로 가마에 넣고 주걱으로 휘리릭 저어놓고는 부엌 아궁이에 내려간다. 잘 마른 부지깽이를 아궁이에 밀어넣고 탁탁 치면 금세 불길이 거세지고 솥은 쌕쌕 뜨거운 김을 토해낸다.
구수한 밥 냄새와 자글자글 끓는 찌개 냄새, 그리고 제철 야채를 볶을 때마다 꼭 잊지 않고 한두점씩 넣었던 삼겹살이 기름에 볶아질 때마다 풍기는 고소한 냄새, 이런 ‘냄새들의 향연’은 그야말로 아침잠을 삽시간에 걷어가는 도적이였다.
나와 동생이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면 할머니는 갓 구운 찹쌀지짐은 엿에 발라서, 감자지짐은 양념간장에 찍어서 우리 입에 넣어준다.
“옜다, 요거 맛 좀 보거라.”
외할머니는 늘 음식을 손으로 휙 뜯어서 우리 앞에 내밀었는데 그 때마다 나와 동생은 앞다투어 잘도 받아먹었다. 또 외할머니가 국자로 국물을 떠서 한입 간을 보고 다시 우리더러 맛 보라고 하면 우리는 아기제비처럼 목을 길게 빼들고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손맛이 더해져서 그랬는지 외할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은 그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꿀맛이였다.
사탕이나 과자, 과일과 같은 간식들이 귀한 시절이라 떡은 시골 애들에게는 귀하디귀한 먹거리였다. 외할머니는 멥쌀가루나 찹쌀가루, 밀가루, 옥수수가루나 녹두가루, 아무튼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가루를 비닐봉지에 넣어 비상용으로 잘 보관해두었다가는 우리가 배고파할 때면 간식으로 전을 부쳐주군 했다. 팥앙금이나 콩가루도 외할머니가 떡을 만드는 과정에 빼놓을 수 없는 주재료였다.
식구들이 아침상에 마주앉으면 외할머니는 습관처럼 자신의 그릇에서 밥을 덜어서는 외할아버지나 아버지의 그릇에 얹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번거롭게 왜 그러시느냐고 한사코 사양했지만 밥상에서의 이 관행은 늘 변함이 없었다.
외할머니의 식탁에는 늘 찌개, 볶음료리, 김치가 빠짐없이 올랐고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은 눈으로 어림짐작해서 손으로 한줌 쥐여서 훌훌 뿌렸다. 아무리 바쁜 농사철이라도 밥상에서는 새로 볶은 반찬에서 김이 몰몰 피여오르고 있었다.
식탐이 많은 나와 동생이 간혹 식탁에 오른 음식에 먼저 손을 대기라도 하면 외할머니는 우리의 손을 탁 치면서 어른들이 저가락을 들기 전에는 절대 먼저 먹으면 안된다고 으름장을 놓군 했다.
우리 집 가마목에는 늘 따끈따끈한 음식을 담은 남비가 놓여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우리 오누이한테 그 남비는 가장 반가운 존재였다. 남비 안에는 항상 떡이나 주먹밥, 삶은 고구마나 옥수수, 감자누룽지 같은 음식이 푸짐하게 들어있었다. 가끔 입이 간질거리고 심심할 때면 외할머니는 소금을 뿌려 말린 미꾸라지나 돌종개에 밀가루옷을 입혀 기름에 달달 볶아서 주었다.
저녁식사가 끝난 초저녁에도 외할머니의 가마목은 분주하기만 하다. 외할머니는 뜨거운 열기가 한풀 꺾인 평가마에 콩이나 해바라기, 찰옥수수알을 볶는가 하면 감자나 고구마를 펴놓고 대야를 덮어놓고 군고구마나 군감자를 만들어 식구들의 입을 호강시켜주었다.
외할머니는 특정된 직업이 없어도 한평생 가마목을 직장으로, 주부를 전업으로 삼아왔다. 외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가고 홀로 남겨져 치매에 시달리던 시절에도 외할머니는 가마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어머니가 해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면서 밥상을 엎지 않나, 새로 장만한 전기밥솥에 솥을 넣지 않은 채 씻은 쌀을 그대로 넣어 대형사고가 일어날 번한 적도 있었다.
전기밥솥이나 전자렌지 같은 신형의 가정용 전기제품들은 음식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없다며 여름에도 굳이 밖에 딴가마를 걸겠다고 우기는가 하면 홀로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바지를 태운 적도 있다.
그 뒤 우리가 사는 고장에도 출국바람이 불면서 아버지는 외국으로 떠났고 나와 동생도 잇달아 타향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면서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단둘이 남아있는 가마목에서는 더 이상 예전의 그 시끌시끌한 풍경을 찾아볼 수 없게 되였다. 그러니 외할머니가 밥상이 조촐하다고 화를 낼 것도 불 보듯 뻔한 일이였다.
가마목을 늘 차지하고 있던 가마솥도 이젠 소임을 다해서 바통을 전기밥솥이나 가스렌지, 전자렌지 등 신형의 전자제품에 넘겨주었고 외할머니도 평생을 바친 가마목에서 은퇴했다. 부엌 아궁이에서 마른 장작이 타는 소리, 가마가 쌕쌕 뜨거운 김을 토해내던 소리 그리고 그 옆에서 귀맛 좋게 들리던 칼도마 소리도 이젠 그냥 한가닥 추억으로 가슴에 남아있을 뿐이다.
가족들에게 맛 있고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겠노라 하루도 빠질세라 가마목과 아궁이를 넘나들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삼삼하다. 그 투박한 손끝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엔 정녕 가족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녹아있었기에 지금도 외할머니의 손맛이 배여있는 음식들이 그토록 그리운 모양이다.
고향을 떠나 여기저기 거처를 옮기면서 고향의 맛을 찾을가 해서 수많은 음식점들을 누비고 다녔는데도 신선한 유기농 식재료만 고집했다는 음식도, 훌륭한 료리사의 손끝을 거쳐 탄생했다는 특급료리도 외롭고 지친 나의 오감을 달래주지 못했다. 그 익숙한 맛이 하도 그리워서 집에서 밥을 한답시고 인터넷에 널려있는 레시피를 본 따 어설프게 흉내를 내보았지만 외할머니의 손맛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넙죽넙죽 받아먹을 때는 그것이 그토록 소중한 존재인 줄 몰랐지만 나도 한가정의 밥상을 책임지는 주부가 되여보니 외할머니의 로고에 새삼 때늦은 감사를 드리게 된다.


《로년세계》2021년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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