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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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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년세월의 닭도적들
2013년 05월 06일 10시 37분  조회:1712  추천:3  작성자: 라주
                                     김은철
몇십년전에는 전기가 안들어온 마을이 많았다. 그리하여 밤이 되면 석유등잔을 켜 놓고 어둑스레한 불빛아래 끼리끼리 모여앉아 한담을 늘어놓거나 구수한 옛 이야기를 하는것이 긴 겨울밤을 보내는 즐거움이였다. 가끔 화투나 트럼프를 놀때도 있었으나 1전놀이 도박도 엄금하던시기라 감히 돈내기는 못했다. 그러나 트럼프나 화토로 무내기를 하다가도 진편에서 술을 사는 놀음은 가끔 있었다. 헌데 여느집이나 생활이 궁핍하다보니 안주감이 문제였다. 그때면 두말없이 닭을 훔쳐오군하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제집닭이건 남의 닭이건 가리지 않았다.

순박한 농촌사람들이라 많이는 자기집닭을 가져왔으나 남의집 닭을 훔쳐오는 경우 도 많았다. 안해나 부모들이 바가지를 긁을 때면 내가 너네 닭을, 네가 우리 닭을 바꾸어 훔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청년들이 닭을 많이 훔쳤기에 마을사람들은 술덤벙물덤벙하는 청년들의 도적질을 장난으로 여기고 웬만하면 눈을 감아주었다. 허지만 나이가 든 사람이 닭을 훔쳤을 때에는 경우가 달랐다. 고약한 놈으로 락인찍 혀 평생 “닭도적”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수 있었다.

내가 살던 마을에 “닭도적”이라는 별명을 가진 홀아비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분명 최주길이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입버릇처럼 “닭도적”이라고 불렀다. 언젠가 새로 이사온 생산대부기원이 공수를 기입하다가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닭도적”이 라고 적어놓아 한바탕 사람들을 웃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주길이는 딱 한번밖에 훔치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닭도적”으로 몰리운다고 씩씩거렸다.

마을에는 또 혼자사는 과부가 있었는데 그가 너무 말이 다사하고 암팜같이 사무러 워서 “최앵앵”이라고 불렀다. 그는 해마다 50~60마리씩 닭을 길러 현성에 가서 중학 교에 다니는 손자의 학비를 대주었다. “최앵앵”이네 집이 탈곡장근처에 있어 닭들이 일년사시절 낟알을 주어먹다보니 살이 통통 졌다. 닭의 천적은 족제비지만 “최앵앵” 이는 족제비보다 닭도적들의 성화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닭을 많이 기르는 “최앵앵” 은 자기네 집 닭이 혹시 남의집 닭우리에 들어갈가봐 닭다리에다가 빨간 천을 동여매여 표기해 놓았다. 그는 수자에 어두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수자를 몰라서가 아니라 몇개를 센후에는 얼마를 세였던지 기억하지 못했다. 더구나 닭이라는게 정연히 줄을 서서 우리로 들어가는것이 아니라 띄염띄염 한두마리씩 혹은 무리를 지어서 밀치고닥치고 하면서 우리로 드나들었기에 잊음이 헤픈 “최앵앵”으로 서는 아무리 해도 닭수자를 정확하게 셀수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고아 낸 방법이 짝을 마추어 세는것이였다. 즉 아침에 닭이 우리에서 나올때 두마리씩 짝을 무어 세였는데 마지막에 한마리가 나오면 나무가지 하나를 닭우리우에 올려놓은 나무함지에다 넣고 두마리가 나오면 나무가지 두개를 나무함지에 넣었다.

이런 비밀을 알리없는 마을의 청년들 몇이 어느날 밤 “최앵앵”이네 닭 한마리를 훔쳤다. 이튼날 아침 “최앵앵”이가 우리에서 나오는 닭을 짝을 맞춰보니 한마리가 모 자랐다. 그는 소문을 내지 않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두엄무지쪽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한집 두엄무지에서 닭튀를 해서 버린 털과 빨간 천쪼박을 찾아냈다. “최앵앵”은닭도적을 잡았다고 온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를 질러댔다. 결국 전날저녁에 닭을 훔쳐먹은 청년 넷이 지부서기한테 끌려갔다. 지부서기는 노발대발했 다.

‘이 쌍눔의 새끼들, 최아주머니가 뉘긴지 몰라서 그집닭을 훔쳐? 아들이 민공판에 나가서 남포에 치워죽구 며느리두 재가를 해서 혼자 손자를 데리고 사는 불쌍한 늙은인데 하필이면 왜 그집닭이냐?그 닭이 없으면 늙은 로친네가 손자공부를 어떻게 시키겠느냐? 한놈새끼 10원씩 내놔!”
닭을 잡아먹은 네청년은 찍소리 못하고 10원씩 벌금을 하여 닭값을 치러주었다. 10마리도 더 살수있는 돈을 받은 “최앵앵”이는 오히려 제쪽에서 송구하여 큰 수닭한 마리를 청년들에게 주었다. 그후부터 청년들은 “최앵앵”이네 집닭을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허나 사람의 마음은 천자만별이여서 똑 같을수 없었다. 간혹 고약한 심뽀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가 바로 다름아닌 우리 마을의 유명한 주정뱅이자 닭도적인 최홀아 비(최주길)이였다. 그는 결혼한지 7~8년이 되여도 안해가 잉태하지 못하자 결국 리혼 하고 말았다. 리혼후 그는 재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었다. 녀자의 살뜰한 손길이 미치지 못하니까 그는 끼니를 대충 때울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썰썰 하거나 술안주가 없을 때에는 “최앵앵”이네 닭을 훔치군하였다.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진작 “최앵앵”이가 닭을 짝을 맞춰 세여둔다는 비밀을 알고있는 그는 한번에 두마리씩 훔쳤다. 그러면 짝이 맞기에 셈을 잘 모르는 “최앵앵”이를 쥐도 새도 모르게 속여 넘길수 있었던것이다.튀를 한 닭털도 모두 고기를 삶을 때 아궁이에 쑤셔넣어 흔적을 말끔히 없애버렸기에 꼬리를 잡히지 않았다. “최앵앵”은 어쩐지 자꾸만 닭수자가 줄어드는것 같아 집집의 두엄무지를 서캐훑듯 샅샅이 뒤졌지만 헛물을 켜고 말았다. 확실한 증거를 쥐지 못한터라 “최앵앵”은 과따치며 동네방네에 소문도 내지 못하고 벙어리 랭가슴앓듯 속으로 끙끙댔다.

그래서 며칠동안 전전긍긍하며 골머리를 썩여 생각해 낸것이 닭한마리에 나무가지 하나씩 나무함지에다 넣어두는 방법이였다. 즉 아침에 닭이 우리에서 나올때 한마리 가 나오면 나무가지 하나를 나무함지에다 넣는 방법이였다. 같은 방법으로 저녁에도 닭이 우리로 들어갈때 한마리가 들어가면 나무가지 하나를 꺼냈다. 그러나 이 방법도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최홀아비한테 먹히지 않았다. 그는 닭을 훔치러 갔다가 여느 때와 달리 함지안에 나무가지가 수십개 들어있는것을 보고 인차”최앵앵”이의 잔머리를 짚어냈던것이다.
“흥, 앵앵거릴줄만 알았지. 그런 소대갈을 가지고 이 여우골을 못 당하지!”

그날 최홀아비는 나무가지 하나를 꺼내버리고 닭 한마리를 훔쳐왔다. 그시기 공산 주의를 실현한다면서 온 마을사람들이 집체식당에서 공동으로 식사하였기에 사람들을 너나없이 배고픔에 시달렸다. 한해 겨울에 몇번만 닭을 훔쳐먹던 최홀아비는 허기를 참지 못해 눈만 뜨면 기름이 자르르 도는 닭고기가 눈앞에 알른거려 울때뼈가 요동쳤다. 그리하여 밤이면 도적고양이처럼 어슬렁어슬렁 “최앵앵”이네 닭우리로 찾아가군 하였다.

별의별 수를 다 써도 여전히 닭이 잃어지자 이번에는 나무가지수와 똑 같게 콩알 을 따로 건사했다가 이튿날 나무가지수와 대조해 내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과연 나무가지수와 통알수자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날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무가지 를 하나씩 꺼내버리는 방법으로 닭을 훔쳐간다는것을 눈치챘다.

“최앵앵”은 소문을 내지 않고 이 사실을 여우잡이귀신이라고 불리우는 이웃집 한령감한테 말했다. 한령감은 여우의 발짝만 보고도 암컷과 수컷을 가려내는 여우잡 이 달인이였다. 그는 한해겨울에 여우나 족제비같은 짐승을 잡아 수입을 톡톡히 올리는 사람이였다.
한령감은 “최앵앵”이에게 절때 소문을 내서는 안된다고 단단히 입단속을 시키고 나서 나무함지속에다 족제비를 잡을 때 사용하는 덫을 놓고 그 우에 벼겨를 살짝 덮어놓았다.

한편 밤중이 되자 배에서 연신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나면서 구수한 닭고기가 눈앞 에 얼른거린 최홀아비는 함정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살금살금 어둠을 헤치며 “최앵앵”이네 집으로 향하였다….. 헌데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등을 깬다더니 나무함지속에 손을 밀어넣는 순간 그만 덫에 걸릴줄이야! 천만뜻밖이였다. 평소에 무식하게만 보아왔던 “최앵앵”이가 이런 기발한 생각을 굴려 낼 줄은 몰랐다. 그는 감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삼십륙계 줄행랑을 놓았다.

이튿날 “최앵앵”이는 아침 일찍 대대위생소에 가서 닭조적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지나 오른 손에 벙어리장갑을 낀 최홀아비가 우거지상이 되여 위생소에 들어섰 다. 도적이 제발이 저리다고 그는 “최앵앵”이가 오또기처럼 독기를 품고 앉아 있는것을 보고 흠칫 놀라 되돌아서 나가려 하였다. 허나 몇발자국 못 가서 “최앵앵” 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이 주정뱅이 같은 나그네, 어제밤에 우리 집 닭을 도적질하러 왔다가 덫에 치웠 재이오? 어디 그 잘난 손을 보기요. 여우새끼 제아무리 역다해도 포수를 못 당해낸답데.”

“최앵앵”이가 벙어리장갑을 확 잡아당기자 덫의 톱날에 찍혀 짓이겨진 손이 드러났 다. 급해서 솜에 불을 붙혀 지혈한 흔적이 남아있는 손등에서는 그때까지도 조금씩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철같은 증거앞에서 더는 발뺌을 할수 없게 되엿다. 최홀아비는 락태한 고양이 상이되여 자기의 조적행위를 이실직고할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최주길에게는 “최홀아비”라는 별명대신 “닭도적”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녔다……

세월은 류수와 같다더니 인젠 내 나이 고희를 넘겼다. 사람이란 늙을수록 고향과 소꿉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법이다. 그리하여 몇년전에 고향마을에 간적이 있었다. “최 앵앵”이는 이미 세상을 뜨고 최주길이는 머리가 하얀 늙은이로 변했다. 내가 갔다고 고향친구들이 술상을 마련하였다.서로 그동안 그리웠던 회포를 나누다가 어망결에 닭도적질하던 이야기가 튕겨나왔다.
“술은 닭이랑 도적질해다가 먹어야 제맛인데…”

내가 넌지시 한마디 내던지자 모두들 집안이 떠나갈듯이 웃었다. 솔찍이 말해서 술상에 둘러앉은 친구들 가운데 닭 한마리도 훔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한번 옛솜씨를 피워보지?”
그 말에 모두들 최주길이한테 눈길이 쏠렸다.
“이것들이, 여기 닭을 안 훔쳐본 눔이 어디 있어?”
“나는 훔친적이 없다.”
“나두 안 훔쳤다.”
“나두.”

누구 하나 닭을 훔쳤다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아닌 보살을  하며 시치미를 뗐는 데 그건 오로지 혼자만 닭도적으로 몰리운 최주길이를 즐겁게 놀리기 위함에서였다.

“어찌 되였든 주길이는 우리한테 공로가 큰 사람이다. 포로가 되여서도 자기동지를 물어 넣지 않은 진정한 “혁명자”다. 그리구 이젠 “닭도적”이라는 모자두 벗구 로친까 지 얻어 재미있게 살지 않나. 자 그런 의미에서 최주길이한테 첫잔을 바쳐 올린다.”

“제맘대루 부르구 쓰고해두 이늠들 쌍놈구실 하나는 제대루 하는구나. 응당 량반한 테부터 술을 먼저 부어올려야지.”
“하하하…”

모두들 유쾌하게 웃었다. 닭도적질하던 일도 이젠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였다. 비록 기아와 굶주림에 시달리였던 흉년세월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였지만 어찌보면 그것은 다시 못올 그리움이고 애착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향은 죽는 순간까지 사람들의 가슴속에 고이 간직되는것이 아닐가!
 
    이 수필은 2012년 "청년생활"제9기에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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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금강산
날자:2013-05-06 13:41:11
생각도 하기 싫은 그 못살던 시절의 한대목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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