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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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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목포의 눈물”에 대한 탐구
2013년 09월 24일 12시 15분  조회:1806  추천:6  작성자: 김은철
       노래 ”목포의 눈물”에 대한 탐구

                            김은철

 내가 흘러간 노래 “목포의 눈물”을 처음 듣게된것은 8살이 되였을가말가 했을 때다. 그때 우리 집은 돈화에서도 120리나 떨어진 소고라는 깊은 산골마을에서 살았다.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우리 몇몇 코흘리개애들은 늘 산에가 놀았는데 산에는 탄알깍지나 무슨 부서진 쇠쪼박같은 신기한 놀음감들이 많았다.

  어느날 나는 동무들과 같이 뒤산에 가서 놀다가 우연히 9.9식탄알을 몇개 주은적 이 있었다. 나는 그 탄알을 축음기가 있는집 주인을 주었다. 그랬더니 주인은 축음기 를 틀어놓고 우리 코흘리개애들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때는 마을의 집집마다 거의나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산에서 주은것들이였다 쏘련홍군과 일본군의 싸움에 이어 해방군과 국민당이 치렬한 싸움을 벌어졌던 곳이라 산에가면 혹시 그런것들을 주을수 있었던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건국전이라 개인이 총을 가지고 있어도 관계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총을 가지고 꿩이나 기러기를 잡았고 겨울이면 노루나 메돼지같은 짐승을 잡기도 했다

 축음기를 돌릴때면 마을의 어른들도 종종 모였는데 나는 늘 한쪽켠에 앉아 노래를 듣군하였다, 어른들은 노래를 들으면서 남인수나 이난영같은 가수들에 대해서도 많이 론했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나는 가수들이란 다른 세계의 사람들로 느껴지 면서 은근히 가수가 될 신기하고 황홀한 꿈을 품게되였다. 아마 그것이 내가  젊은시 절에 그렇게도 음악을 좋아한 계기가 아닌가싶다.
 그 많은 노래들을 들으면서 내가 특별히 좋아한 노래는 “목포의 눈물”과 “홍도야 울지말아”였다. 그때 나는 벌써 그 노래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집은 1949년1월에 흑룡강성벌리현향선이라는 마을로 이사를 갔다. 이사가서 나는1학년에 다니게 되였다. 그때 나의 한반 친구인 김영수라고하는 애의 집에 축음기가 있었다. 그 축음기는 마을의 김단장이라고하는 사람을 처단하고 재산 을 청산할때 분배받은것이였다. 레코트판은 몽땅 해방전류행가곡이 아니면 일본노래 들뿐이였다.

 내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벌리중학교에 가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음악에 정력을 몰붓기시작했다. 그때는 공사합영이요, 우파투쟁이요하는 정치운동들이 거세차게 일 고있을 때여서 일체 류행가는 부르지 못하도록 엄금이 되여있였다. 그러다가 가사쓰기를 시작했는데 머리속에는 늘 어릴때 들은 류행곡가사들이 떠오르군 하였다.

그런데 다른 노래의 가사들은 그 내용이 리해되는데 “목포의 눈물”만은 도대체 무엇을 썼는지 전혀 알길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내가 중학교선생이 되였고 시대도 변하여 자유롭게 흘러간 옛노래를 부를수 있게 되였다. 나의 두 아들도 예술학원을 졸업하고 모두 음악에 종사하게 되였는데 나는 늘 아들들과 흘러간 옛노래들에 대하여 답론하군 하였다.

 “아버지, ‘목포의 눈물’ 이 노래에서 ‘3백년원한품은 노적봉 밑’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두고 한 말입니까?”
 언젠가 우리 삼부자가 모여앉아 이야기하는데 할빈 민족간부학원에서 음악강의를 하고있는 작은아들이 나를 보고 묻는것이였다.
 “글쎄….너는 어떻게 리해를 하고있니?’
 “몰라 묻지않습니까? 난 그래도 아바진 작가이니까 알고 있는줄 알았는데….”
 아들의 물음에 나는 대답을 못하였다. 얼굴이 뜨거웠다. 소위 민족교육의 교육자로 서, 작가로서 이런 질문에도 시원한 답변을 못해주었으니 얼굴이 뜨거워 났다. 나뿐 아니라 음악을 전공한 두 아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것 같았다.

 “목포의 눈물은” 일제때에도 부르지 못하게 하였고 해방후 중국에서도 해방전 모든 노래들과 함께 부르지 못하게 하고있었다.
 그래도 나는 중학교시절부터 이 노래가사의 뜻을 알려고 은근히 별러오고 있었다. 개혁개방후 해방전의 노래를 마음대로 부를수 있는 자유를 얻게되자 나는 도서관을 다니며 해방전가요에 대하여 소개한 서적들을 찾아보기시작하였다. 그러나 “목포의 눈물”을 소개한 글은 있어도 내용을 분석한 재료는 없었다.

 그러던중 어느날 모를 단어를 찾아 사전을 뒤지는데 “임진왜란”이란 단어가 눈에 띄였다. 우연히 임진왜란이 1592년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7년간 싸운 전쟁이라 는 해석을 보는데 “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밑”이라는 가사구절이 류성처럼 머리에 떨어지는것이였다.
 “그렇지, 문일석선생이 바로 이걸 념두에 두고 목포의 눈물을 썼구나!”
 임진왜란으로부터 1904년 한일의정서나 1910년 한일합방체결로하여 국권을 일제 에게 빼았겼던 그 사이의 시간은 바로 삼백년이다.

 “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밑에 /님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는 바로 왜적수군들과 목포앞바다에서 영용하게 싸운 우리 수군들의 원한 품은 넋을 말하는것이요 그 넋은 바로 조국에 대한 사랑의 정조일것이다. 그런데 삼백년이 지난 오늘 국권을 일제에게 빼았겼으니 그 정조를 애달프다고 할수밖에 더 있겠는가!
 하여 문일석선생은 자연경물에다 조국을 빼았긴 아픔을 “유달산바람도 영상강을 안으니 /님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사랑”이라고 쓰면서 주정을 토로하고있다.
 여기에서 알수 있는바 ”님”은 결코 남녀간의 사랑대상이 아니라 조국을 상징하고 있으며 “사랑”역시 조국애를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2절을 먼저 이렇게 리해하고 나니 아리숭하기만 하던 1절의 함의도 어렵지 않게 풀려나 왔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부두의 새악씨 아롱젖은 옷자락/리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일절의 이 가사에서 “가물거리다”는 어떤 물체가 보일듯 말듯하다고 할때 쓰이는 단어로서 소리의 들림을 묘사하는데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문일석선생은 뱃노래가 가물거린다고 묘사함으써 국권을 빼앗긴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의 운명을 눈으로 보는듯이 그려 서정적주인공의 애달픈 감정을 한층 더 강조하여 표현하고있다

 이 가사에서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는 조국운명의 엄중성을 자연경물로 상징하여 표현하고 있으며 “부두의 새악씨”는 서정적주인공과 나라사랑을 품고있는 모든 조선민족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리고 “리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은 조국을 빼앗기게 되는 슬픔과 울분을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일제의 탄압하에 조국에 대한 사랑과 빼앗긴 울분을 직설적으로 표현할수 없었던 그 당시 문일석선생은 은페적인 수법을 사용하여 이 노래를 지은것이였다.

 수십년을 두고 알듯말듯한 이 노래의 수수께끼를 풀고나니 체한 음식이 시원스레 풀린 기분이다. 내가 두 아들과 함께 다시 모여 앉아 “목포의 눈물” 에 대한 내  견 해를 말하자 두 아들도 내 견해에 동의해 나섰다. 
  “그런데 노래부르는 사람들은 이 노래에 내포된 깊은 함의를 알기나 하고 부릅니 까? 그저 일반 애정노래로 착각하고 부르지요.”
 아들애들의 말에 나도 동감이다, 소위 수십년을 어문교원으로 살아온 나도 기실은 아리숭한 파악밖에 하지못한채 이 노래를 불렀던것이다.

 가창자로 놓고보면 가사의 사상내용을 파악하고 부르는것과 파악하지 못하고 부르 는것은 질적인 차이가있는것이다. 내용을 전혀 알수없는 외래어로 된 노래를 불러보 면 내용을 알고 부르는것과 모르고 부르는것의 현저한 차이를 실감할것이다.
 나는 때때로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부른다. 그때마다 이 노래가사를 쓸 때 나라 를 빼앗긴 울분속에서 분노에 떨고있었을 문일석선생의 나라사랑정조가 내 가슴속에 도 흘러들군 하였다. 한짧막한 한수의 가사라 해도 작자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진정이 담겨있는 노래라면 가창자가슴에 바다처럼 넓은 희망을 안겨줄수도 있고 태산이라도 움직일 용기와 힘을 줄수도 있는것이다.

 “목포의 눈물” 이 노래외에  “눈물젖은 두망강”이나 “황성옛터”같은 노래들도 모두 내용을 은페하면서 썼다. 이런 노래들은 나라를 빼앗긴 울분과 나라를 찾겠다는 강렬한 사상감정으로 조선사람들의 가슴속에 나라를 찾겠다는 희망과 힘을 키워주었 던것이다.
 하여 일제는 이런 노래들에 금지령을 내렸고 지어 작사자들을 옥에 갇아넣기도 했다.
 지금 우리의 후대들은 이런 노래에 담겨있는 애국애족의 사상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마땅히 이런 노래들에 숨겨져있는 사상감정을 깊이 포착하도록 후대들 을 인솔해야한다고 본다.
                   2013 1,16,3,53    


     이 수필은 2013년 "예술세계" 제2호에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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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 ]

3   작성자 : 김은철
날자:2013-10-04 19:31:58
동원선생님, 그리고 문학동인님 전 고희를 넘긴 늙은입니다. 글을 쓴지는 오래되나 1994년부터 2010전까지는 창작을 중단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2010년 5월부터 다시 필을 들어 씁니다. 선생님들이 댓글로 칭찬을 해주시니 사기가 오르는군요 70살까지 교단에서 사업하다 그만두니 지금은 시간도 많습니다. 고기잡이도 다니고 산나물캐러도 다닙니다. 그리고 사교무추러도 다닙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있어서 글도 씁니다. 선생님들이 칭찬해주는 바람에 어깨가 으쓱해 지는군요. 선생들의 고무와 칭찬에 아무래도 글을 좀 더 써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은철 올림 (라주)
2   작성자 : 동원
날자:2013-10-04 14:42:00
김은철 선생님~ 정말 훌륭하십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오래전에 가사에 얽힌 기사를 언듯 본적이 있었는데
곡자체가 무언가 암시를 해주는 듯 하지요
혜안이 참으로 밝으십니다...재외 동포로 한민족의 얼을 발굴하시는 선생님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그리고 고맙습니다.
강녕하셔셔 후세에 길이 빛나는 문운 번창하소서^*


[작가의 존함과 블러그를 첨부하여 널리 보급하겠습니다]
1   작성자 : 값진문장
날자:2013-09-25 20:28:43
노래분석글 잘읽었소. 값진문장을 썻냈음에 감사를 드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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