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meditationschool 블로그홈 | 로그인
명상학교

※ 댓글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블로그 -> 지식/동향

나의카테고리 : 세상의 이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2013년 07월 18일 16시 36분  조회:2093  추천:0  작성자: suseonjae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김령준




조선조 중엽이었습니다.
충청도 어느 마을에 서한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서한은 항상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려서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머슴살이로 컸습니다.
거기다가 얼굴도 얽어 버려서 결혼을 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마땅한 신부감도 없었죠.
어찌 어찌 조그만 자신의 땅을 일구고 살았지만 농사일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습니다. 서한은 가끔 불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괴롭게 살 것을 하늘은 왜 태어나게 하셨단 말인가……"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던 중 어느 날, 그는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에겐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는데,
그 모든 시간을 이렇게 불행하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서한은 직접 행복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을 한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 질 수 있기 때문일 거야."


서한은 장사를 해서 돈을 벌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조그만 논을 팔아 약간의 돈을 만들고,
물건을 떼어다가 장터를 돌아다니며 팔기 시작했습니다.
장돌뱅이의 생활은 잠시도 한자리에 있지 못하고
전국의 장터를 찾아 다녀야 하는 고달픈 나날이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돌아다닐 바에는 그냥 농사나 지을 걸 그랬나……"


가끔 후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가지고 있는 약간의 돈과 부지런함이 그의 유일한 밑천이었습니다.


그는 장이 열리는 곳이라면 하룻밤에 100리 길도 마다 않고 걸었습니다.
10년 동안을 부지런히 전국 방방 곡곡을 누빈 결과 수중에 상당한 돈이 들어왔습니다.
장안의 경제가 돌아가는 모습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안목도 키울 수가 있었습니다.


"아직 충분하지 못해……"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포목점을 차렸습니다.
그 동안 전국을 다니며 배운 장사의 지식은 상당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각 지역의 포목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시기 적절하게 사고 팔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는 번창했습니다.
점점 규모가 늘어갔고, 서한은 고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아무리 벌어도 그의 마음은 흡족하지가 않았습니다.

장돌뱅이였을 때는 자신의 가게를 하나 가지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지만,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가게를 키우고,
부자가 되었어도 돈에 대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돈에 대한 것은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구나……"


그는 더 이상 돈을 벌기를 단념했습니다.
이미 결혼을 할 나이도 지난 지 오래였습니다.
그 동안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젊어서는 얼굴 때문에 시집을 오려 하는 사람이 없었고,
부유해진 지금에 와서는 서한이라는 사람이 아닌,
그가 가진 재산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눈에 빤히 보였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권세를 누려 보는 것은 행복을 주지 않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벼슬자리를 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치니 말이야."


왜란 후의 혼란함 속이라서 서한은 작은 벼슬을 돈으로 살수가 있었습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벼슬은 한계가 있었지만 오래지 않아 서한은 알 수 있었습니다.
벼슬을 하는 이들 역시 끝이 없이 권세를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권세도 돈과 마찬가지로 추구할수록 갈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마찬가지구나."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이와 같았습니다.
돈, 권력, 명예, 향락……
누려도 누려도 끝이 없고 진정 갈증을 풀어주지는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서한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힌 자신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며칠을 궁리 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생각 끝에 서한은 옆 고을에서 알려진 노인을 찾아 가기로 했습니다.
자운 선생이라는 분이었는데 방안에서 글만 읽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으나
마을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그때 그때 현명한 해결책을 내놓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자운 선생이라고 불리는 분의 집은 허름한 오두막이었습니다.
서한은 약간 실망을 했습니다.
이렇게 촌구석에서 허름하게 사는 사람이
자신이 10여년간 찾아온 문제의 해답을 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동네의 촌노가 어쩌다가 조금 알려진 것이 아닐까?


그래도 먼 길을 온 김에 한번 만나는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서한은 싸리문 밖에서 목청을 높여 불렀습니다.


"계십니까?
"… …"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안계세요?


안에 인기척이 있는 것 같기도 했으나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거나, 무슨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대답을 하지 않을 리가 없었습니다.
무덥지근한 여름날에 밖에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기에 서한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서한은 계속 자신의 문제에 대해 혼자 궁리를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대답은 나오질 않고 답답함만 더해갔습니다.
머리 속에 다시 자운 선생이 떠 올랐습니다.


'가 봐야 손해날 것은 없지 않겠는가.
혹시 또 모르고……'


서한은 며칠 뒤 자운 선생의 집으로 다시 출발했습니다.
주머니에는 엽전을 두둑이 챙겼습니다.


"도움을 받으려 하는데 어려운 살림에 보탬이라도 주는 게 좋겠지……"


자운 선생의 집 앞에 도착한 서한은 며칠 전과는 다른 점을 발견 했습니다.
싸리문의 가슴 정도 높이에 가로로 막대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것을 걸어 놓았지?
사람들이 드나들려면 불편할 텐데……"


서한은 자운 선생을 부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가슴 높이에 걸린 막대는 담을 넘어간다면 모를까
허리를 숙이지 않고는 들어갈 수가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서한은 막대의 의미를 알아챘습니다.
그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고개를 뻣뻣이 들며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세가 되어먹지 못했어."


그는 그 길로 자신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창고에서 쌀 한 가마니를 꺼내 직접 지게에 지었습니다.


머슴들이 이상히 여기고 만류했습니다.
"이리 주십시오, 주인 어른.
저희들이 지고 가겠습니다요~"


"아니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다."


서한은 땀을 뻘뻘 흘리며 쌀을 지고 갔습니다.
자운 선생의 싸리문 앞에 도착한 서한은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말했습니다.


"계십니까?
저는 두천골의 서한이라고 합니다~"


안에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서한이 생각했던 바가 옳았던 것이었습니다.


"들어오시게~"
"예."


서한은 허리를 숙여 싸리문을 지나가며 생각했습니다.
'역시 소문대로 보통 분이 아니셨구나.'


문을 열자 깨끗이 정돈된 방안에 단정히 앉아있는 어른이 보였습니다.
지긋한 연세의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기품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앉게"


서한은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잠시 서한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자운 선생이 웃으며 말을 했습니다.


"머리가 트여서 말도 잘 알아듣고 실천도 할 줄 아는군.
그런 영리한 사람이 무슨 문제가 있길레 찾아왔는가?


서한은 지난 10여년동안 자신이 추구해온 바에 대해 모두 말씀을 드렸습니다.


"청년 시절에 문득 돌아보니, 저는 어려서부터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 역시 그렇게 고달프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행복을 찾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그 동안 행복을 찾기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이 없고,
찾아 보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모든 것이 영원하지 못하고 허망함을 느꼈습니다.
어찌해야 행복을 찾을 수 있을른지요?
이렇게 찾아 헤매며 나이를 먹어갈수록,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짧아질 텐데,
힘들게 찾아 다니는 것이 의미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운 선생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걱정 말고 계속 찾아보시게.
비록 그것을 누릴 시간이 촌각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자네가 바친 모든 노력을 보상하고도 남을 걸세."


"그러면, 어찌해야 행복을 찾을 수 있을른지요?


"흠…… 행복이라……"


잠시 생각에 잠기던 자운 선생은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찾아보게."
"가장 귀한 것을 찾는다면 행복해지는지요?
"그 후는 그때 가서 얘기함세."


서한은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습니다.
'내가 설령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찾는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자운 선생이 세상에 계시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을 대놓고 표현했다가는 언짢아 할까봐 말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 주저하는 빛이 나타나자
자운 선생은 서한의 마음을 알아 차린 듯 웃었습니다.


"허허, 이 사람. 내 명이 그리 짧을 것 같은가?
하지만 정히 염려가 된다면 방법을 일러 주겠네."


자운 선생은 붓을 들어 무어라고 종이에 쓰더니 그것을 조그만 비단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돌아가면 바느질을 해서 봉하고, 자네가 가장 귀한 것을 찾았을 때 내가 없거든, 그때 열어보게.
미리 보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마니 주의하도록 하고."


서한은 비단 주머니를 받아 들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에 집으로 향했습니다.


'궁금하면 약간 귀띔을 해주지…… 일(一)로 시작한다네…… 하지만 미리 열어서는 안돼!


장난기 있던 자운 선생의 말을 생각하니 주머니 안이 몹시도 궁금하고 손이 근질거렸습니다.


'이 안에 행복의 비결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미리 보고 나서 찾는다면 혹, 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는 살짝 꺼내어 보고 싶은 유혹을 느꼈습니다.


'아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자운 선생님께서 먼저 알려주시지 않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서한은 자운 선생의 말을 따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걸으면서 계속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일까?
알 수만 있다면 당장에 내 모든 재산을 털어서라도 살 텐데……

아니다, 아무리 비싸다 하더라도 돈을 주고 쉽게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귀하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마다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를 텐데,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노력을 들여 구할 수 있는 귀한 것이 무엇일까……
진주?
비단?
서화?
산삼……
그래! 산삼을 캐 보자.


산삼은 아무나 캘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다.
올바른 마음과 정성이 하늘에 닿을 때 산신령께서 점지해 주시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돈으로 사는 것과는 다른 가치가 있을 것이다.'


서한은 집에 도착한 즉시 짐을 꾸려 길을 떠났습니다.
마음속에는 자운 선생의 싸리문에서 배운 교훈을 깊이 새겨
아이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행동했습니다.
선배 심마니에게서 심마니의 법도를 어느 정도 배운 후에,
그는 홀로 깊은 산골을 찾아 다녔습니다.


이산 저산 찾아 다니던 서한은 지리산 중턱에 자리를 잡아 움막을 짓고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목욕재계 한 후,
그릇에 맑은 물을 떠올려 향을 피워놓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소서.'


서한은 매일 아침 동 틀 무렵에 움막을 나가 해가 지기 전에 움막으로 돌아왔습니다.
깊은 산중을 헤치며 돌아다니다 보면 풀에 베이는 것은 다반사였고,
비탈에서 구르는 일도 있었습니다.
산짐승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다치면 아무도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기에 몸을 잘 다루어야 했습니다.
어쩌다 멀리 나가서 해가 지면 짐승을 피해 나무에 올라가서 자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다른 심마니들은 보통 1년에 한 두 번은 산삼을 캐는데,
이상하게도 그에게는 3년이 지나도록 작은 산삼 한 뿌리조차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나는 심을 캘 자격이 없는 것일까?


서한은 의기 소침해졌습니다.
그 동안 새벽마다 정성껏 목욕재계 후 기도를 하며 나름대로 공을 들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냐, 그렇게 쉽게 얻어진다면 그것 역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좀 더 정성을 들여보자. 내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이 정성을 그냥 지나치실 리 없어.'


서한은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새벽의 기도를 더욱 간절하게 올렸습니다.
하루 하루 흐트러지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모아 살아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도를 할 때 떠오르는 잡념들이 조금씩 줄어갔습니다.
일과를 마치면 무사히 하루를 보낸 것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산삼은 영물이라고 한다.
욕심으로 찾으면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사람의 때가 타면 하룻밤 사이에 말라 죽는다고도 하지.
설령 산삼을 찾더라도 그것을 캐는 나의 조건이 그에 합당하지 않으면 안될 테니
항상 마음 가짐을 정갈히 해야 할 것이다.'


서한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기로 했습니다.
매일을 기도와 비움으로 살아가니 점차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어느덧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역시 아무런 성과가 없었으나 그냥 그로 족했습니다.
산삼을 캐야겠다는 욕심을 버리니 그저 편안했습니다.
산이 좋았고, 자연과 함께 사는 것도 좋았습니다.
서한은 어느새 머리가 희끗한 산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서한은 생각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
굳이 산삼을 캘 필요도 없겠지.'


서한은 이제 산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정성껏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10여년 동안 머물렀던 정든 산을 떠나며 산신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함이었습니다.


'10여년간 소생을 받아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초겨울의 찬바람에 더욱 빛나는 듯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고향 쪽으로 산을 넘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습니다.


'돌아가면 자운 선생님께 한 번 들러볼까?
아직 살아 계실까?
자운 선생에게 찾아간 덕에
지금처럼 마음의 편안함을 얻게 된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내려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소변을 보기 위해 옆길로 풀을 헤치고 가던 서한의 눈에 조그만 열매가 눈에 띄었습니다.
빨간색의 망울 대여섯 개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달(산삼의 열매)이닷!

'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가서 보니 다섯 개의 잎과 조그만 빨간 열매들…
바로 산삼이었습니다.
한 뿌리 만이 아니었습니다.
여기 저기 산삼 열매가 눈에 띄었습니다.


"시임~봤다아…… 시임~봤다아~"


서한이 기쁨에 외치는 소리는 온 산에서 메아리 쳤습니다.
10년간의 정성을 하늘이 알아주셨다는 기쁨에 목소리는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한참 후, 마음을 가다듬은 서한은 돌을 모아다가 제단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혹이라도 불경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한 개 한 개 정성스럽게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하늘에, 산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 그는 조심스럽게 산삼을 돋우기 시작했습니다.
흙이 걷히며 서서히 몸통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 두 개만한 굵기였습니다.


'이렇게 굵다니…… 오래 묵은 것이 틀림없어……'
꿀꺽.


서한은 조심스레 흙을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산삼은 미(尾, 잔뿌리)의 보존 상태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지므로 다치지 않도록 캐내는데
무척 많은 시간이 걸리고 주의를 필요로 했습니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올랐다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산삼의 미가 거의 드러난 것을 본 서한은 헛바람을 들이켰습니다.


"허, 미의 길이로 보니 100년은 넘게 묵은 망초로구나!

그는 망초를 찾았을 때의 심마니들의 관습대로 왼발로 땅을 세 번 툭툭 쳐서 산신에게 알렸습니다.
머리카락 만한 미도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한 뿌리를 다 캐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습니다.


서한은 캐낸 삼을 흙과 바위 이끼로 덮어 마르지 않도록 한 후 다시 부러지지 않도록
굴피나무 껍질로 덮어 묶었습니다.
꼬박 이틀이 지나서야 서한은 세 뿌리의 산삼을 캘 수 있었습니다.
심마니들이 평생 동안 한 개도 찾기 어려운 망초였습니다.


'이 많은 것을 언제 다 캘 수 있을까?


주변에 보이는 모든 산삼을 캐 가려 하던 서한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욕심을 비웠기에 하늘이 나에게 산삼을 점지해 주신 것이다.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가 없지 않은가?
진정 산삼을 필요로 할 다음의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남겨 놓아야 할 것이다.'


서한은 주변을 잘 정리 해 놓고 길을 떠났습니다.
행여나 욕심이 생기지 않도록 자신도 다시는 찾을 수 없게 주변을 위장해 놓았습니다.
망초가 세 뿌리나 들은 등짐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둥둥 떠서 날아가는 듯 했습니다.


이제 자운 선생을 만나 뵈면 자신이 20년간을 구해온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자운 선생이 건네준 비단 주머니를 열어보고 싶은 생각이 그득했으나 먼저 만나 뵈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습니다.


'부지런히 걷자……'
아직 오전이었지만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당도하려면 빨리 걸어야 했습니다.
한참을 걷던 서한은 문득 멈추어 섰습니다.
저쪽에 올려다 보이는 낭떠러지의 바위 위에 사람의 모습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위험할 텐데……'


낭떠러지 끝에 있는 사람의 그림자는 한참을 보고 있어도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이런 산중에 낭떠러지 끝에서 무엇을 하고 있길래?


궁금해진 서한은 그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한시진(한 시간)이 지나서야 뒷길로 해서 낭떠러지 위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서한이 도착할 때 까지도 그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보시오.'
부르려고 하던 서한은 말을 삼켰습니다.
반듯하게 앉아있는 뒷모습이 왠지 범상치 않았습니다.
서한은 앉아있는 사람의 옆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리로 조용히 다가갔습니다.
눈을 감고 다리를 포개어 앉아 있는 모습이 수행을 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습니다.
편안히 이완된 얼굴 표정으로 보아 삼매에 빠진 듯 했습니다.


목까지 내려온 수염과 이마에 두른 하얀 천이 긴 머리와 어울려 도인의 풍모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서한은 그에게서 예전에 자운 선생에게서 느꼈던 알 수 없는 기품이 풍겨 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존경심이 느껴졌습니다.
세상을 깨우친 사람에게서 나오는 달관의 느낌……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더 있다간 자신이 방해가 될까 보아 조용히 물러나오려던 서한의 눈에 수행자의 얼굴과
소매에 드러난 팔이 깡말라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서한은 산중에서 먹을 것도 시원치 않을 텐데
그가 제대로 수행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문득 자신의 봇짐에 들어있는 산삼이 생각났습니다.


'그렇지만 10여년 만에 찾은 것인데……'


서한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냐, 욕심을 버려야 한다.
어차피 누군가는 먹게 될 산삼, 기왕이면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분이 드시면
좋지 않겠는가.
이분 역시 자운 선생님께서 내게 그랬듯이 방황하는 영혼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시지 않겠는가……
나는 두 뿌리만 가지고 있어도 족하니.'


서한은 조심스럽게 굴피나무 껍질에 싸인 산삼 한 뿌리를 수행자의 옆에 놓고 돌아섰습니다.
고향을 향해 다시 출발하는 그의 발걸음이 더욱 가벼웠습니다.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을 했다는 보람으로 뿌듯했습니다.


부지런히 재촉해서 몇 고개 넘자 저녁 무렵 마을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10여년간 혼자서 살다가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니 좀 어색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따뜻한 방에서 편안하게 쉴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심마니의 일이 끝났음에도 서한은 일찍 일어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습관은 꼭 심마니일 때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 마을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마을 입구의 한 초가에서 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우는 소리였습니다.


'왜들 저렇게 울고 있을까?


궁금해진 서한은 담 위로 넘겨다 바라보았습니다.


"어엉~ 아부지~"


마당에 피워놓은 불 옆에 이불에 덮인 한 남자가 누워있고 옆에는 아내인 듯한 여인과
아이 넷이 둘러싸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남자의 팔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환자인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서한은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아 글쎄, 저 사람이 밤 늦게까지 동네 논일을 돕고 오다가 발이 미끄러져 저수지에 빠졌다지 뭔가.
둑이 높아서 얼음물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오늘 아침에야 발견이 되었어.
의원이 왔었는데 한기가 너무 많이 침범을 해서 손을 쓸 도리가 없다더군."


말을 듣자마자 서한은 자신의 등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영약인 산삼이면 고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이미 여분의 산삼은 주고 오지 않았는가……
세상에 아픈 사람이 천지인데 볼 때마다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어서 떠나자.'


서한은 집을 지나쳐 걸어갔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하는 그의 귀에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부지~이~"


천진 난만한 아이들의 눈이 떠올랐습니다.
서한의 마음이 갈등으로 뒤덮였습니다.


'아버지가 없다면 저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불행한 삶을 살게 될까…… 저 아이들의 미래는……
이런 상황을 그냥 지나치고서도 내가 산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정녕 하늘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는 마음으로 더 이상 하늘에 진실한 기도를 올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서한은 결심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이 산삼을 먹여 보시지요."
"네?


울고 있던 여인의 부운 눈이 커졌습니다.


"오래 묵은 것이라 효과가 높을 것입니다."
"어찌 이렇게 귀한 것을 저희에게……


여인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습니다.
서한은 너털 웃음을 지었습니다.


"허허, 인연이라고나 할까요? 어서 먹이시지요.
생으로 잎까지 먹이시는 게 좋습니다."

금속성의 칼이 산삼에 닿으면 효험이 떨어지므로 서한이 가지고 있던 대나무 칼로 산삼을
이겨서 남자의 입에 넣었습니다.
잠시 후, 산삼을 삼킨 남자의 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몸에 붉은 반점들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삼꽃이라고 몸의 혈행(血行: 피의 흐름)이 좋아져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될 것입니다.


효험을 위해 앞으로 다섯 시진은 아무것도 먹이지 마시고 이틀간 목욕을 삼가세요."


아이들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여인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정말 고맙구먼유~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제가 좋아서 한 일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아이들이 잘 자라서 세상에 보탬이 될 재목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어르신은 하늘이 내려 주신 분이시구먼유~"


"허허, 당치 않은 말씀을…… 저는 심마니에 불과할 뿐입니다."


길을 떠나는 서한의 마음 역시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걸으면서 계속 여인의 말이 머리 속에 맴돌았습니다.


'하늘이 내려 주신 분이시구먼유~'


'하늘이 내리신 사람이라니,
난 단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자 할 따름인걸,
하늘이 내리신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하며 걷던 서한은 문득 이젠 산삼이 한 뿌리 밖에 남지 않았음을 기억해 냈습니다.


'이거 안되겠군.
남을 돕는 것도 좋지만 나도 20년 동안 찾아온 행복의 열쇠인데……'



하지만 또 곤경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겠다.'


서한은 산길을 통해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느새 눈이 내려 산길을 걷기에는 많이 불편했습니다.
서한은 낮에는 인가를 피해서 산으로 다니고,
밤에는 인근 마을의 주막에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며칠 후, 새벽에 길을 떠난 서한은 해가 뜰 무렵 산기슭에 도착했습니다.


'이 산맥만 넘으면 고향이구나.'


서한은 앞에 있는 커다란 산줄기를 바라보며 감상에 잠겼습니다.
20년간 찾아온 결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서 가자.'


서한은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눈이 얼어 미끄러운 산길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산 중턱쯤 올라갔을 무렵이었습니다.


위쪽에서 사람 네 명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좀 험상궂은 인상의 거한들이었습니다.
서한은 불필요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길옆으로 비켜서서 올라갔습니다.
내려오는 거한들은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옆을 지나칠 때, 그들이 갑자기 서한을 휙 둘러싸는 것이었습니다.


서한은 직감적으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등짐에 있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산삼이 생각났습니다.
앞을 막아선 턱수염의 사내가 말했습니다.


"이보쇼 형씨, 우리가 먹고 살 일이 좀 막막해서 말인데, 좀 도와 주셔야 겠수다~"


서한의 머리 속에는 한가지 생각만이 맴돌았습니다.


'이것 만은 절대 안 된다.
20년간의 내 모든 것이 걸려있는 것이다.
절대 안돼'


"왜 대답이 없는 거요"


뒤의 사람이 서한의 등짐을 잡는 순간, 서한은 옆 사람을 벌컥 밀치고 뛰어갔습니다.


"잡아랏!


서한은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달렸습니다.
산적들이 금방이라도 뛰어와 자신이 뒷덜미를 낚아 챌 것만 같았습니다.
허억, 허억……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이 두근거렸습니다.
손으로 눈이 덮인 나뭇가지들을 움켜잡으며 경사 길을 기어올랐습니다.
손이 시려운 줄도 몰랐습니다.


"저놈을 잡아~"


산적들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0년간을 산에서 단련해온 몸인지라 겨우 산적들의 추격을 떼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혹이라도 눈 위의 발자국을 보고 뒤따라 올까 두려워
서한은 부지런히 걸어서 골짜기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다행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발자국이 흐려지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나무에 기대어 숨을 몰아 쉬었습니다.


'위험했었다. 내리는 눈 덕분에 산적을 피할 수 있었다. 살았다.'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반 평생을 바쳐 찾아온 것이 한 순간에 날아갈 뻔 했지 않은가'
"휴우"


이마에 흐르던 땀이 식자 출발할 준비를 하던 서한은 가슴이 또 한번 철렁했습니다.


'헉, 길을 잃었다!


추격을 피해 이리 저리 깊은 곳으로 들어오느라 미처 지리를 보아 둘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내리는 눈에 발자국이 지워져서 왔던 길을 찾을 방도도 없었습니다.


'눈 때문에 길을 잃다니'


서한은 문득 눈에 대한 고마움이 금새 서운함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참으로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구나.
내리는 눈은 하나인데 어찌 인간이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둘로 보는가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다, 그대로 받아들이자'
어서 사냥꾼의 움막이라도 찾아야 했습니다.
서한은 어림으로 방향을 잡아 걸었습니다.
바람이 불며 눈발이 더욱 세차졌습니다.
방금 온 길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등짐에 있는 여분의 솜옷을 꺼내 둘렀으나 별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해…'


서한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밤을 새워 걸어도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도무지 인가가 나타날 기미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잠이 들면 죽는다. 쉬면 안 된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촉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이틀이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눈길을 헤매었습니다.
서한은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생각했습니다.


'산삼을 먹을까?
아냐, 조금만 견디면 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것만은…이걸 먹으면 20년간의 노력이 허사가 되어버려, 조금만 견디자,'


부러진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며 한걸음, 한걸음 옮겼습니다.
날이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서한의 몸은 점점 굳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팔다리가 말을 안 들었습니다.
지팡이를 잡고 있는 손의 느낌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은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살려면…… 먹어야 해…… 살려면……'


서한은 굳어진 손을 덜덜 떨면서 등짐을 풀려 했습니다.


'흐윽……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아……'


손가락이 얼어서 움직이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서한의 머리에, 어깨에 눈은 쌓여갔습니다.


털썩.


자리에 쓰러져 버린 서한은 더 이상 움직일 기력이 없었습니다.


'졸립구나.'


모든 것이 희미해져 갔습니다.
뿌옇게 흐려진 눈앞에 뭔가가 오락가락 하는 것 같았습니다.
꺼져가는 의식 중에 자신의 몸을 덮는 포근한 무엇인가가 느껴졌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누군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눈을 가늘게 뜨니 자신을 부르고 있는 한 청년이 보였습니다.



"이런 곳에서 주무시면 어떻게 해요!
살아계신 게 다행이네.
술이라도 드셨나?


서한은 겨우 입을 열고 말했습니다.


"이틀간 길을 잃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네."
"아니, 마을을 눈 앞에 두고 못 찾으셨단 말이예요?


서한은 고개를 돌려 청년이 가리키는 쪽을 보았습니다.
저쪽에 조그맣게 마을이 보였습니다.


'여긴, 내가 쓰러졌던 곳이 아닌데……'


"이 발자국을 보세요. 어제 사냥꾼이 저쪽 산 근방에서 호랑이를 보았다는데.
운도 참 좋으세요, 이 눈보라에 주무시고도 살아남질 않나."


청년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켜서 보니 주변에 커다란 짐승의 발자국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묘하게도 서한의 주위의 눈은 녹아있었습니다.
서한은 의식을 잃기 전 보았던 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예전에 어딘가에서 들었던 문구가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자는 금수들도 보호를 한다'
'산군(山君: 호랑이)께서 나를 하늘의 도우심이다.'


서한은 송구스러움에 그저 깊이 감사를 드릴 따름이었습니다.


"이틀이나 굶으셨다면 무척 시장하실 텐데…… 제가 가진 감자라도 드릴까요?


서한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 느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청년이 굵은 감자를 건네주었습니다.
방금 삶아 온 듯 따스했습니다.
서한은 감자를 베어 물었습니다.
구수한 향기가 코끝에 스며들었습니다.


'맛있다. 너무 맛있다.'


서한은 허겁지겁 감자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목에 걸려요, 천천히 드세요."


청년이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맛이 있을 수가……'
"앗!


정신 없이 먹던 서한은 갑자기 탄성과 함께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머리 속에 뭔가가 번쩍했습니다.
잠시 넋이 나간 듯 앉아있던 서한의 뺨 위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제야 알았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20년 동안 찾아왔던 것"


입가에는 미소가 흘러나왔습니다.


허허.


행복이 감자 한 알에 있었다니
환자에게 귀한 것은 산삼이요,
주린 자에게 귀한 것은 감자 한 알이니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어찌 물(物)에 있단 말인가
그것을 베푸는 마음 한 조각에 있는 것을
나를 산적으로부터 살린 것도 눈이요,
추위 속에 죽게 할 뻔한 것도 눈이니,
좋고 나쁨이 어찌 사물에 있겠는가


마음 한 조각에서 나오는 것을



자운 선생의 비단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서한은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날, 청년의 집에서 기력을 회복한 서한은 떠날 차비를 했습니다.
그는 등짐에서 마지막 산삼 한 뿌리를 꺼내어 청년에게 건넸습니다.


"이게 뭐예요?


눈이 휘둥그래진 청년이 물었습니다.


"이걸 아버님이 드시면 지병이 나아질걸세.
겨울에 약초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마침 내가 갖고 있어 다행이야."
"아니, 이렇게 귀한걸……
"나는 자네에게 더 귀한 것을 받았는 걸"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청년에게 인사를 하고 서한은 고향을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비단 주머니를 벼랑에서 던져 버렸습니다.
이젠 더 바랄 것도, 궁금한 것도 없었습니다.
'내가 받은 한 알의 감자를 세상에 나누어 주리라.'


고향에 돌아온 서한은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검소하게 여생을 보냈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백발이 성성해진 서한은 어느 날 저녁, 오랫동안 자신을 따른 하인을 불렀습니다.


"내가 죽거든 이 집은 네가 갖고 남은 논밭은 그 동안 수고해준 소작인들에게 주어라."


다음날 아침, 서한은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평화로운 얼굴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 서한의 임종을 슬퍼하였습니다.
한편, 몸을 벗은 서한의 영혼은 높이높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 떠오르는 것일까?


그다지 두렵지는 않고 덤덤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대로 되리라.


한참을 올라가자 구름 위에 있는 커다란 기와집이 나타났습니다.
문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그를 맞아 주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 곳에서는 자신 이외의 어떤 것도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영원한 평화를 누리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한은 왠지 이곳이 내키질 않았습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곳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자 몸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떠오르자 아까보다 더욱 큰 기와집이 나타났습니다.
으리으리한 저택이었습니다.
문 앞에는 백색 옷을 입은 사람이 그를 맞아 주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 곳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며 영원토록 즐겁게 사실 수 있습니다."


서한은 이곳 역시 내키질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도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아닌 것 같군요."


그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점점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나타나는 것은 거대한 궁전이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솟은 웅장한 건물이었습니다.


자신을 맞으러 걸어오는 사람은 몸에서 환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네.
이곳이 자네가 있어야 할 곳이지."


서한은 공손히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알고 있는가?


미색의 후광이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이 물었습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하늘의 뜻을 따르려 노력한 때문이 아니었는지요?


"자네가 속(俗)에서 세가지를 실천하고, 두 가지 큰 공덕을 베풀었으며 한가지 진실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지."
"… …?


"자네는 온갖 정성을 다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구하고자 했으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늘을 섬겼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세상에 베풀기 위해 노력했네.
이 세가지를 겸손으로 실천했네.


도인에게 보시를 하여 세상에 진리를 펴는 일을 간접적으로 도운 것이 첫 번째 큰 공덕이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어 그들의 가능성을 일깨운 것이 두 번째 큰 공덕일세.
그리고,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한가지의 깨달음으로 이곳에 올 수가 있었던 거지.
이곳에서 자네는 세상을 비추며 만물에 희망을 주는 일을 하게 될 걸세."


어느새 서한의 몸에서도 환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어스름해질 무렵, 산기슭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덕남아, 이것 봐!


한 소년이 벼랑 아래서 비단 주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와, 비단 주머니야.
귀한 게 들어있겠다, 빨리 열어봐, 복동아!


덕남이가 재촉을 했습니다.
두 소년은 눈을 반짝이며 비단 주머니를 열었습니다.
주머니 안에서 한 장의 종이가 나왔습니다.


"이게 뭐야?
네가 읽어봐, 넌 서당에 다니잖아"


복동이는 더듬더듬 읽었습니다.
"조(造)… 심(心)… 유(唯)… 체(切)… 일(一)… ?
"무슨 뜻이야?
"모르겠는걸"


복남이가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습니다.
"아무튼 비단 주머니에 들어있는걸 봐서 귀한 글 일꺼야. 잘 간수하자."


"그래, 더 어두워지기 전에 그만 들어가자"


소년들은 즐겁게 어깨동무를 하며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밤 하늘에는 새로운 별 하나가 반짝거리며 빛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1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0 몸과 마음 2015-03-19 0 1719
49 부부관계 2015-03-16 1 1861
48 자신의 길을 가다 2015-03-12 0 1812
47 감사하는 이유 2014-11-19 0 1649
46 이화에 월백하고 2014-11-10 0 1650
45 내 삶의 카모메 식당 2014-11-07 0 1545
44 어디 아프세요? 2014-11-03 1 1633
43 사랑의 춤 2014-10-30 0 1494
42 첫 자전거 여행 2014-10-26 0 1505
41 행복을 굽는 매장 2014-10-23 0 1613
40 요령부득 이 선생 2014-10-21 0 1483
39 엄마처럼 안 살 거야 2014-10-14 0 1485
38 아빠의 꿈 2014-10-08 0 1609
37 내 딸 천지수는요 2014-10-03 0 1420
36 한나절의 사랑 2014-09-21 0 1631
35 내 사랑 호호 할머니 2014-09-15 0 1573
34 바보엄마 2014-09-11 0 1699
33 성탄선물 2014-08-31 0 1472
32 딸의 결혼식 2014-08-25 0 1690
‹처음  이전 1 2 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