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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호호 할머니
2014년 09월 15일 08시 28분  조회:1573  추천:0  작성자: suseonjae
내 사랑 호호 할머니
 
 
 
 
달님은 정월 대보름을 막 넘긴 것이 아쉬운 듯
아직은 동그랗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혼자 수선을 피우며 해 먹는 것이 귀찮기도 해서
민숭민숭한 보름을 지내고 보니
해마다 어김없이 갖은 산나물과 찰진 오곡밥을 지어 주시던
할머니의 사랑이 그립습니다.


조미료를 넣지 않고 담백하게 조물조물 무쳐 주신 산나물 반찬과
기름기 좌르르 흐르는 구수한 오곡밥.
피부병 없이 무탈하려면 비린 생선을 먹으라시며 노릇하게 구워 주신 청어구이.
호두랑 밤으로 부럼을 깨게 하셨고,
귀밝이술로 직접 담은 포도주를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조금씩 마시게 하셨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먹거리를 미리 다듬고 손질해 두셨다가
특별한 날이 되면 정성껏 만들어 주셨지요.
막상 엄마의 자리가 되어 아이들의 점심과 저녁식사
모두 학교에서 급식으로 해결하니
한편으로 편하기도 하지만 슬며시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그때는 철도 없이 할머니가 해 주신 것은
촌스럽다고 타박 했었는데….
이젠 할머니의 손맛이 그립고 감사합니다.

 
자그마한 체구와 조용하면서
자분자분 재미있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해주시던 할머니.
유난히도 하얗게 세어진 머리카락 때문에
‘하얀 할머니 집’으로 불리기도 해서
초행길 친척들이 우리 집을 쉬 찾아올 수 있었지요.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시집 오셔서
시조부님으로부터 글을 배우셨다는 할머니는
틈틈이 무슨 경전 같은 것을 열심히 읽곤 하셨습니다.

 
이른 새벽 한결같이 정갈하게 단장하시고
하늘을 향해 정성으로 기도를 올리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는 원래 할머니들은 자식 잘 되라고 다들 그러시나 보다 했었지요.
배앓이를 할 때면 어김없이 약손이 되어 배를 슥슥 문질러 주시면
정말 감쪽같이 다 나았습니다.
누구나의 할머니처럼 그렇게 손녀에게 사랑을 녹여 주시던 할머니.
그런데 그런 할머니에게 대못을 박는 짓을 하고야 말았네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해 칠월 칠석 무렵.
병석에 오래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묻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 사이 할머니는 우리의 추억이 담긴 가족사진들을
모두 태워 버리셨습니다.

 
어머니의 긴 투병기간 동안
나름대로 '착한아이 강박증'에 힘들었던 감정이
서운함을 빌미로 폭발하듯이 할머니에게로 풀려 나갔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죽기를 기다렸냐고.
뜻밖의 나의 행동에 죄인처럼 절규를 듣고 계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내가 먼저 죽어야지 젊은 것이….”
하는 죄 아닌 죄책감으로 힘들어 하셨는데
철도 없이 내 감정만 표현하고야 말았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사람 마음대로가 아님을 알면서도…. 
할머니는 그 후로 며칠을 앓으셨고
신념과도 같이 하늘을 향해 올리시던 간절한 기도마저도 며칠 동안 쉬셨습니다.
그 날 이후로도 삭아 버린 사춘기를 보내면서
늘상 마음씨 고운 할머니께 성질을 풀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할머니의 가슴에 박은 대못이 부메랑이 되어서
나의 가슴에 되돌아와 박혔나 봅니다.
이제야 부끄러움을 넘어서 가슴이 절절해집니다.
기억 속에 머문 할머니의 모습을 차분하게 떠올리며 그려봅니다.

 
 
새하얀 머리카락 
뽀얀 얼굴
총명한 눈빛
누구에게나 귀엽게 웃으시던 모습
내 사랑 호호 할머니


 
언제나 저에게 관대하셨듯이 지난날을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지상에서 인연이 되어 베풀어 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을 놓고 가벼이, 가벼이 높이 오르시기를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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