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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세상의 이치

요령부득 이 선생
2014년 10월 21일 11시 33분  조회:1484  추천:0  작성자: suseonjae
요령부득 이 선생
 
 
 
 
 
“아가씨, 금강산이나 설악산 봤어요?
거기 바위들이 바둑알이나 보도블록처럼 반듯반듯하니 똑같이 생겼습디까?”
“아니요.”
“거기 바위들과 산세가 다 그렇게 똑같이 네모 반듯하다면 사람들이 구경하러 가겠어요?”
“….”
“사람 얼굴이나 치아들도 마찬가지예요.
크게 생명이나 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거예요.
다 조금씩 비뚤어지고 다르게 생겨야 의미가 있어요.
생니 발치하고 교정하는 것이 문제들이 없고 괜찮은 걸로 아는데
그게 우리 뼈를 뽑고 흔드는 거예요. 인위적으로.” 

 
선량하고 서민적으로 보이는 그녀는 입에 힘을 안 주면 입이 안 다물어질 정도였다.
한눈에도 심한 뻐드렁 앞니였다.
그리고 말할 때나 웃을 때 반드시 입을 가렸다.
환자 대기실에서 그 광경을 보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와! 저 정도면 앞으로 넘어져도 코는 안 다치겠구나.
입이 먼저 땅에 닿을 테니.
시집가기도 힘들겠다.
키스하기도 어려워. 쯧쯧…’ 

 
그렇게 심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 치과의사는 하늘을 우러러 필요 이상의 진료행위는
절대로 환자에게 권하지도 시술하지도 않았다.
바로 그 의사선생님,
바로 울 아버지 되시는 분의 가치관 때문에
키스하기도 어려운 그 아가씨는 결국 우리 병원에서 교정치료를 받지 못했다.
아마 어려운 형편에 긴 시간 모은 적금을 가지고
더 비싸고 얼른 손님을 받는 딴 치과로 직행했으리라. 

 
 
동그란 얼굴과는 달리 아버진 손이 섬세하고 길었다.
다소 저렴하고 솜씨가 섬세하다는 소문도 났다.
그리고 한창 나이 때에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특히 수입이 짭짤한 교정, 치아미백 같은 미용 목적의 치과 진료엔
이런 대화와 앞 풍경 같은 실랑이가 흔했다.

 
“아 참 글쎄, 내 말 듣고 웬만하면 하지 마세요.”
그리하여 급기야 정직, 자연주의, 요령부득 이 치과의 병원 자리는
수세식 화장실도 없는 오래된 건물 한편에서 내내 사글세였다. 
그랬어도 성장기에 우리 집이 가난했던 기억은 나에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 집안 살림과 자녀 교육비를 꾸려야 했던
자연주의 이 치과 사모님 즉, 울 엄마는 항상 돈에 쪼들렸다.
게다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최고 부잣집 아이들이 득실득실한 사립 특목고에
내가 합격하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그 학교는 촌지조차도 단위 수가 틀렸다. 

 
엄마는 더욱더 “돈! 돈!!!” 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고
니 밑으로 집안 돈이 다 들어간다는 소릴
난 밥보다 더 자주 먹고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였는지 난 그다지 물욕이 없는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가난한 집 아이들보다 더 돈에 짜증이 나 있었고
우리 집 경제 파탄범이란 자책감에다 모난 자존심만 뾰족해 있었다.

 
아마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고등학생에겐 적지 않은 용돈을 내미는 아버지 손을 뜨악하게 바라보면서
“아, 쓸 만큼 아직 있다니까요.” 하고 몇 차례나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받으면서 “고맙습니다.” 라고 깍듯하게 말한 것은….

 
그때 아버지가 서운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 용돈을 주면 고마운 아버지고,
줄 수 없는 아버진 고마운 아버지가 아닌 거냐?
가족은 그냥 있어주는 것으로 고마운 거지
무얼 주었다고 고맙고 줄 수 없으면 안 고맙고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모 자식 간에는 그렇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땐 난 잘 몰랐다.
고맙다고 이야기한 것이 왜 그리 아버지를 서운하게 했는지….
하지만 그때도 무언가 가슴을 훅 후려치면서
덜컹하니 내려앉는 무엇인가가 있긴 있었다.  

 
난 아직도 그때의 아버지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버지는 기분 좋은 사람에게서 들어 온 수입 중에서
빳빳한 새 지폐 신권만을 골라서 내 용돈을 따로 준비하셨다.
그리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정 경제 파탄범인 나는
부담스럽게 생각하며 그것을 받았다.

 
십수 년 후 나도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먹고 사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도 도제 제도 같은 전통이 남아있는 이쪽 바닥은
제자의 수가 수입과 세력의 척도다.


어떤 능력 좋은 이들은 사립학교들의 가정환경 조사서까지 뒤진다.
그리고 나선 성적 좋은 부잣집 아이들을 제자로 만들려고
아이의 적성과 관심은 생각지도 않고 학부모들에게 허황된 풀무질을 해댄다.


그럴 때 난 이렇게 말했다.
“글쎄, 웬만하면 전공시키지 마세요.
정말 자신이 하고 싶다고 몸부림치기 전에는.” 
그리고 피식 혼자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그러면서 점점 세월이 흘러 그때의 아버지의 나이와 비슷해져 가면서
새삼스레 느껴지는 것들이 생겼다.
당연한 ‘나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일에
누군가에게 깍듯하게 ‘고맙다’ 인사를 받으면서 나도 그 서운함을 맛 본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그저 깍듯한 인사 안에는 친구도 가족도 없고
‘나, 이 정도로 예의바른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는 손님밖엔 없음을…. 

 
그때 내가 받았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두둑한 용돈이 아니라
기가 세고 똑똑하기까지 한 부잣집 아이들 사이에서
기 죽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난 그때 고맙다는 형식 대신 구김살 없이 방끗 웃으면서
아빠의 주머니를 더 강탈하는 효도를 해 드렸어야 했다. 
“역시 울 아빠 최고!!
근데 아버지~~~ 용돈 줄 토끼 없으면 돈 벌 재미도 없죠?
조금만 더요. 예?” 이러면서 말이다. 

 
아이를 마음으로 기르는 것 같은 정말 중요한 일엔
고맙다는 말도 부피가 너무 얇다. 
이 중요한 공부를 그때 아버지가 이미 시켜주신 듯싶다. 

 
이제 아버지가 의사가운 대신 입게 된 환자복엔
내가 애교부리며 강탈할 수 있는 주머니는 없다.
그 자존심만 강한 헛똑똑이 아버지는 현재 치매에 반신불수로 누워 계신다. 

 
이제 이분이 이렇게 가시고 나면
나한테 무조건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지구상엔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
그러기에 더욱더 고맙단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 한 분 뿐인 정직, 자연주의,
요령부득 이 선생님을 다시 한 번 섭섭하게 해드릴 순 없다.
그래서 난 오늘 먼 산 바라보며 이렇게 혼잣말 한다. 
‘설악산아, 금강산아, 기암괴석에 삐뚤빼뚤 반듯하지 않아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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