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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철【南熙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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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음악연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2017년 11월 02일 08시 15분  조회:1083  추천:0  작성자: 남희철
중국조선족력사상한선에 관한 나의 견해(1)

중국조선족음악연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남희철

 
 
연변동북아예술연구회 김성희 회장을 비롯한 여러 회원들이 본 세미나를 조직해준데 대해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론문을 써주신 여러 교수님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아울러 학술세미나에 참석해주신 여러 래빈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나는 이번 모임이 나의 음악연구 3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덕담의 자리가 아니라 중국조선족음악연구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조선족의 력사상한선을 “100여년”으로 보는 전통의 학설과 “360여년”으로 보는 새로운 견해가 팽배하게 맞서고 있었다. “100여년 설”은 19세기중엽이후 특히 1860년~1870년 사이에 혹심한 자연재해로 조선북부의 가난한 농민들이 중국경내에 범월잠입(犯越潛入)하던 때를 이주시기의 상한선으로 본다. 반면에 “360여년 설”은 항금원명(抗金援明)이 실패한 1620년에 조선군대 수천명이 중국에 억류된 때를 이주시기의 상한선으로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번 론쟁은 “항금원명”에 동원되여 온 사람들의 후손이 료녕성과 하북성에 살고 있다는 것과 후손들의 일부가 호적을 조선족으로 정정했다는 것을 근거로 “360여년 설”이 승리하게 된다. 불변의 사실이 웅변을 이긴 것이다.
 
약10년 전, 화룡시에서 “진달래축제”를 만들기 위한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이 있었다. 그 번 회의에서 내가 “진달래는 자치주주화이기에 화룡시에서 진달래축제를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 같다. 화룡시에서 축제를 만들자면 화룡시 만의 무엇을 브랜드로 육성해야할 것이다. 화룡시에는 발해의 ‘정효공주묘‘가 있다. 이것은 남이 가져가지 못할 문화유산이다. 이것을 리용해서 정효공주미인선발대회, 정효공주행차 등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발해”의 “발”자도 꺼내지 못하는 판국이라 나의 건의를 받아들이기 만무했다. 

지난해 나는 ⟪도라지음악의 력사상한선과 변천과정연구⟫라는 글을 써서 국내에 투고한 적이 있다. 출판부문의 이야기로는 “‘고구려’자만 들어가면 상급의 허가가 있어야하기에 조만해서 출판하지 않는다”며 거절하는 것이였다. 하는 수없이 이글은 『한국음악사학보』에 발표하게 되었다.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의 령토가 현재의 중국에 일부분 또는 전체가 속해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것을 현재 중국의 역사에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지사일 것이고, 이들 고대 지역(또는 나라)들에 우리민족의 선인들이 산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중국조선족의 력사범주에 포함시키는 것 또한 당연지사일 것이다.
 
중국조선족은 과경민족으로 조상들이 살다간 옛 고향에 다시 돌아와서 살게 된 것이다. 그들의 선인들은 현재 중국에 속해있는 일부분 또는 전체의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에서 살다가 후기신라와 후삼국을 거쳐 고려인으로 되였으며, 1619년에 다시 중국에 와서 오늘날의 중국조선족으로 살고 있다. 때문에 중국조선족의 력사는 고대사와 근대(현대)사로 구분됨이 마땅할 것이고, 중국 땅에 속한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에 대한 연구 역시 조선족의 참여가 바람직하며, 이들 지역(또는 나라)의 력사·문화도 조선족이 -다른 민족과 함께-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내가 『조선민족전통음악사』를 강의하면서 ‘력사공유’란 말을 늘 사용해왔다. 고구려는 조선민족의 선인과 다른 민족의 선인이 혼재한 지역(또는 국가)이고, 고구려의 멸망이 당·라 련합작전에 의한 것이며, 고구려가 패망한 후 령토·인구·문화는 2분되여 당나라와 신라가 각각 차지하게 되었다. 때문에 고구려라는 지역(또는 나라)의 력사를 오늘의 조선사(또는 한국사)에서 거론될 뿐만 아니라 중국사에서도 거론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중국조선족의 선인이 현재의 중국 땅에 살았고 중국조선족 또한 중국국민으로 당당하게 살고 있는 데야 뭘 더 말하겠는가? 
 
중국조선족의 음악사만보더라도 고대에로 시야를 넓힌다면 조선음악사(또는 한국음악사)에서 연구되어온 고조선·고구려·발해음악뿐만 아니라 중국내지로 전파된 고구려·발해음악, 일본에로 전파된 고구려·발해음악이 새롭게 안겨올 것이다. 
 
아시다시피 조선음악사(또는 한국음악사)에서 악곡을 기록한 문헌은 중세조선의 세종대왕 때인 1447년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기원전37년~668년의 고구려악곡과 698년~926년의 발해악곡을 기록한 문헌은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1171년에 일본의 후지와라 노 모로나가(藤原師長)가 편찬한 『인지요록』에 적어도 17수에 달하는 고구려악곡과 발해악곡이 있다. 이 《인지요록》에 대해서는 일본의 음악학자 하야시겐조(林謙三), 영국의 음악학자 엘 픽컨(LㆍPicken), 중국의 음악학자 엽동(葉棟)·김건민(金建民)의 연구 성과가 있다. 우리가 만약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음악을 전면적으로 조사한다면 관련 문헌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지난 세기 80년대에 사학계에서 중국조선족의 력사상한선을 100여년으로 보는 것과 360여년으로 보는 것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듯이 21세기 10년대에 400년 설과 수천 년 설이 격돌해야할 필요성이 있어 보이고 특히 중국조선족음악사학계에서도 이와 같은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어야한다고 본다. 
이번 학술세미나가 진정으로 중국조선족음악연구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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