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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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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해후(邂逅)
2021년 09월 17일 21시 36분  조회:1299  추천:1  작성자: 살구나무
<도라지> 2021년 5호

단편소설

해후(邂逅)

박명선

도꾜에는 겨울이라도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지만 동북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에는 고향처럼 하얀 눈이 내린다.
폭설이 퍼붓는 어느 날,준이는 아오바구 오오마찌(青葉区大町)의 크고작은 거리며 골목들을 샅샅이 훑으며 돌아다녔다.발신인 주소는 씌여있지 않았지만 편지봉투 뒤면에 아오바구 오오마찌라는 우편국 날인이 찍혀있었던 것이다.불고기점들에도 들어가 중국에서 온 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가고 문의해보았다.한나절이나 헤매던 끝에 경찰서를 찾아가려다가 현지한테 불길한 일이라도 생길가 봐 길옆 어느 뻐스정류소 걸상에 털썩 주저앉아 펑펑 쏟아져내리는 눈송이들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지금 현지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가?
준이와 현지는 북경에서 처음 만났다.
××공업대학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미쯔비시(三菱)중공업회사에 취직한 준이가 한주일 휴가기간에 고향에 놀러왔다가 일본에 돌아가려고 저녁 비행기로 북경에 도착하여 공항에서 가까운 수도공항호텔에서 체크인을 마쳤을 때 일본에서 류학하고 있던 현지도 고향에 놀러오면서 호텔에 들어섰다.
캐리어를 밀고 카운터에 다가선 현지를 보고 준이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문화서점에서 일하던 분 맞죠?"
현지는 자기를 알아본 준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저를 어떻게 아세요?"
"이전에 문화서점에 많이 다녔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류학 가려고 일본어를 배우던 외국어학원 서쪽에 문화서점이 있었는데 예쁜 처녀점원을 보아두고 자주 드나들다가 남자친구가 있어보이기에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던 준이였다. 
"그러고 보니 많이 보던 분 같네요.헌데 북경에 출장 나오셨어요?"
"아니,일본에 돌아가려구요."
일본이라는 말에 현지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띄웠다.
"일본에서 오셨어요?저는 류학생인데요.방금 전에 일본에서 온 비행기를 내렸어요."
"그런가요?"
준이는 명함장을 현지에게 건네주면서 크리스마스이브날인데 저녁식사라도 같이 할가고 물었다.
명함장과 성실하고 정직해보이는 준이를 번갈아보던 현지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새해에 들어선 어느 날,준이가 퇴근해서 집문을 열려고 하는데 현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왔어요?"
"네,금방 집에 들어왔어요."
"그럼 오지역에서 만나요."
현지는 오지(王子)에서 살고 있었고 준이는 오까찌마찌(御徒町)에서 살고 있었다.
준이는 정신없이 전철역으로 달려갔다.오지까지는 게이힌도호꾸센(京浜東北線)으로 일곱 정거장 가야 했다.전차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오는 준이에게 현지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현지한테 뛰여간 준이는 사람들이 보는 것 같아 꼭 쥐고 있던 현지의 두 손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저녁을 먹어야죠.”
둘은 전철역 신호등 건너편에 있는 중화료리점에 들어갔다.준이는 료리 몇가지와 맥주를 주문했다.현지가 맥주를 마시는 걸 알고 있었다.그날 저녁 수도공항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북경올림픽대회 개막식이 열리게 된다는 새둥지(鸟巢) 부근에 와서 주위를 거닐다가 북경오리점에서 맥주를 같이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었던 것이다.준이보다 세살 어리고 아직 결혼 전인 현지는 도꾜 ××일본어학교에 류학 왔는데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중국에 한번 와보고 싶었다는 것이였다.
처음에는 북경에서 만났고 두번째는 도꾜에서 다시 만났다.이런 걸 인연이라는 걸가?연분이라는 걸가?일본에서 한고향 조선족 처녀를 만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부모님들도 같은 조선족과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잖은가?
준이는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흐뭇하고 저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아직 녀자친구가 없는 준이도 예쁘고 마음씨도 착해보이는 현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말저말 나누다가 준이는 궁금한 듯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이젠 스물네살인데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나이는 아니잖아요.비자는 3월 말까지예요.비자 때문에 근심되고 무섭기도 하지만 비자가 만료되면 불법으로 있으려고 해요."
불법으로 있으면 안 되지,하고 말하려다가 준이는 결단을 내린 듯한 현지의 표정을 읽고 잠자코 있었다.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나이가 아니라는 현지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였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불법으로 있다가 경찰에 잡히기나 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몰려왔다.
어떻게 하면 좋담?
불쑥 한가지 생각이 뇌리를 쳐왔다.
결혼?
결혼하면 현지도 가족체재비자로 넘을 수 있잖은가?헌데 석달 사이에 일본에서 결혼수속을 밟아야 할 일을 생각하니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파났다.결혼서류들은 어떻게 작성하고 결혼식은 또 어디서 올린단 말인가?그렇다고 금방 일본에 왔는데 다시 중국에 돌아갈 수도 없잖은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무슨 방법이 없나 생각해봤어요."
현지의 얼굴에 처음 보는 수심 같은 것이 어려있었다.
"북경에선 처음이여서 말씀드리지 않았어요.이제 일자리도 다시 구해야 해요."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가요?"
준이는 자신의 무능함이 부끄러웠다.
"시험 볼 수 있는 대학들도 아직 있으니깐 부담 갖지 마세요.저도 좀더 깊게 생각해볼게요."
둘은 한참 마시다가 중화료리점을 나왔다.
그러던 사흘이 지난 저녁이였다.
아홉시가 넘어서야 퇴근준비를 하던 준이는 현지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제부터 학교는 가지 않기로 했어요.대학도 포기했어요.저 지금 센다이에 있어요."
"네?방금 뭐라 했죠?센다이라구요?"
준이는 조금 당황해났다.
"네,오늘 센다이에 왔어요.좋은 일자리가 생겨서요.저의 근심은 하지 마세요..."
전화기에서 현지의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현지씨.”
현지가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으로 현지를 보던 순간을 생각하니 준이는 가슴이 꺽 막혀오는 것 같았다.어떻게 만난 인연인데 그저 이렇게 헤여지다니?
현지한테 전화를 했지만 휴대폰은 이미 꺼져있었다.
새로운 업무에 바삐 보내다 나니 사흘간은 현지한테 전화를 할 시간도 없었다.오늘 아침에라도 전화를 해야 했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가?
한편,휴대폰을 꺼버리고 친구 집에 들어와 잠자리에 누운 현지도 이리뒤척 저리뒤척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요며칠은 준이와 같은 우수한 남자를 만난 것이 나한테는 너무 과분하지 않나,준이에게 보따리를 짊어지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준이를 다시 만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이제 비자를 연장하려면 대학에 입학해야 했다.레스토랑 주방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을 이제 학비로 내자니 진짜 아까웠다.류학이고 뭐고 돈 벌러 일본에 온 게 아닌가.학업을 포기하고 지금 아르바이트에만 열중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았다.수입이 많은 풍속점에서 몸을 파는 류학생들도 있다고 들었지만 그따위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사흘간 고뇌하면서 이곳저곳에 있는 친구들한테 일자리를 문의했더니 어제 오후 센다이에 있는 친구한테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불고기점 주방아르바이트를 소개할 수 있다며 잘 생각해보라는 련락이 왔다.한동네에 살던 고중 동창생인데 금년 봄에 동북대학을 졸업하는 친구였다.친구들 중에서 일본어학교에 류학 왔다가 유일하게 대학에 입학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런데 센다이에 가면 어쩌나?이러면 내가 뺑소니 치는 격이 되고 준이와는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병환에 계시는 어머니와 고중 2학년생인 남동생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내가 도꾜에 그냥 있으면 준이한테는 부담 밖에 되지 않는다.준이는 꼭 나보다 더 좋은 녀자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센다이로 가는 신깐센에 앉아 차창으로 스쳐지나는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준이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던 현지는 뜨거운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준이씨,미안해요.저도 사랑해요.
동북대학을 비롯한 10여개 대학들이 있고 멋진 항구도 있으며 중국 동북처럼 사계절이 선명한 일본 동북지방의 중심도시인 센다이.
센다이에 온 현지는 친구의 소개로 불고기점에서 오전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단 하루도 준이를 잊은 적이 없었다.준이가 나 때문에 괜히 고민하면서 출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아닐가 근심되기도 했다.
열흘이 지난 어느 날,현지는 친구가 학교에 나가자 용기를 내서 필을 들었다.지금 친구 집에 잠시 머물고 있고 불고기점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국인 녀사장님도 중국 조선족이라고 살뜰히 대해주기에 근심 말라고,이젠 그만 나를 잊고 좋은 녀자를 만나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눈물을 흘리며 써내려갔다.준이의 명함장 회사 주소 대로 수신인 주소와 이름을 쓰고 나서 다시 발신인 주소를 쓰려다가 멈칫했다.
집 주소 대로 썼다가 혹시 준이가 찾아오면 어쩌나?
집 부근 패밀리마트와 가게 부근에도 우체통이 있었지만 센다이에 온 이튿날 친구와 같이 새 휴대폰번호를 사러 오오마찌에 가면서 보았던 우편국이 생각났다.현지는 반시간이나 걸어서 오오마찌우편국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다시 전철역으로 향했다.가게는 한 정거장 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이튿날 금요일 오전,준이가 휴식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발신인 주소가 씌여있지 않는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를 읽고 준이는 래일 센다이로 찾아가기로 결심을 내렸다.
시속 300키로로 내달리는 도호꾸신깐센(東北新幹線),도꾜에서 센다이까지는 한시간 반이 걸렸다...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뻐스정류소라 준이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젠 도꾜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면 고향처럼 하얀 눈이 내리는 이 아름다운 거리를 현지와 같이 거닐었으면 얼마나 좋을가?
신호등을 건너 도로표식 대로 오른쪽으로 굽어들어 전철역 방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준이는 오뎅(おでん)이라는 간판을 보고 그제서야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동북 센다이에 와서 뜨끈뜨끈한 오뎅을 먹고 싶었다.시계를 보니 오후 네시였다.시간은 충분했지만 현지도 찾지 못한 마당에 혼자서 오뎅을 먹는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못난 짓으로 생각되였다.전철역에서 도시락을 사가지고 신깐센에 오르면 되기에 음식점을 스쳐지나버렸다.
그때였다.
헤어솝으로 보이는 저 앞치 가게에서 두 녀인이 나오더니 마주오고 있었다.
“사장님 헤어스타일 정말 예뻐요.”
“저녁에 카운터를 잘 봐주세요.”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였다.
준이는 눈이 휘둥그래서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두 녀인이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자 웃으며 물었다.
“안녕하세요.한국인이세요?”
“네,한국서 오셨어요?”
머리를 화려하게 치장한,사장님으로 보이는 30대 중반 녀인이 웃으면서 묻기에 준이는 중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럼 중국 조선족이군요.반가워요.여기에 살고 계세요?”
“도꾜에 살고 있는데 회사 일로 출장 나왔습니다.”
“그래요?지금 좀 바빠서요.미안해요.그럼...”
사장님이 허리를 약간 굽혀 인사하고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녀인과 뭔가를 소곤거리면서 골목 안에 세워놓은 하얀색 승용차로 다가가는 것이였다.
혹시 불고기점 사장님이 아니신가고,중국에서 온 현지를 아시는가고 물어보려 했는데 무슨 일이 바쁠가?불고기점 사장님이 아니겠지.어느 노래방이나 술집 사장님이겠지.사장님 옆의 녀인도 한국인일가?
오늘 센다이에 와서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하고 그저 헛탕만 치고 돌아가는구나!
준이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다시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같은 시각.
현지는 불고기점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다.설겆이를 마치고 나서 저녁준비를 하려고 남새들을 한창 다듬고 있는데 카운터 유니폼을 입은 친구가 주방에 들어와서 주방장과 종업원들에게 인사를 하기에 일손을 멈추었다.
3년 전부터 이 가게의 홀서빙을 해왔다는 친구는 주방장과 종업원들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장님의 총애도 받고 있었다.졸업을 앞둔 터라 가끔씩 가게에 와서 홀서빙을 하기도 하고 카운터를 봐주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가게에 나온다는 말도 없던 친구가 왜 가게에 나왔을가?
현지는 옆에 다가온 친구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
“넌 왜 왔니?”
“아까 사장님이 전화 왔더라.그럼 수고해.”
오후 세시 쯤에 사장님이 볼일이 있다며 가게를 나갔었다.
친구가 주방을 나가자 현지는 다시 일손을 다그쳤다.둬시간이 지나 화장실에 가면서 가게를 둘러보았더니 거의 만석인 좌석들에서 손님들이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고 일본인 알바생들이 분주히 홀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는 카운터에 서있었다.
퇴근해서 같이 집에 들어온 현지는 친구에게 물었다.
“사장님이 오늘 저녁에 나오지 않았더구나.무슨 일로 너한테 전화 왔더니?”
“오늘 저녁에 남동생이 녀자친구를 데리고 어머니 집에 인사하러 온다면서 카운터를 봐달라고 전화 왔더라.지금 어딘가고 묻기에 졸업론문 때문에 서점에서 참고서적을 보다가 집에 가는 길인데 사장님 집 부근이라고 했더니 가게에 있는 줄로 알았던 사장님이 자기도 지금 집 부근 헤어솝에 있다면서 들어오라더라.한국인이 운영하는 그 헤어솝에는 사장님과 두번 간 적이 있다.그래서 헤어솝에 들렸다가 사장님과 같이 나왔다.사장님이 승용차로 나를 가게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래?”
“아,이제야 생각나는구나.사장님과 같이 헤어솝을 금방 나왔을 때 어떤 남자가 우리가 한국어로 얘기를 주고받는 걸 듣고 사장님께 인사를 올리더라.사장님이 여기에 살고 있는가고 묻자 도꾜에 살고 있는데 회사 일로 출장 나왔다더라.조선족 남자더구나.”
“조선족 남자?”
“응,나도 인사를 하려 했는데 사장님이 자리를 뜨기에 인사는 하지 못했다.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토요일에 도꾜에서 센다이에 출장 나왔다는 게 좀 이상하구나.”
현지는 친구에게 바투 물었다.
“어떻게 생긴 남자더니?”
“훤칠한 키에 허여멀쑥하게 생긴 미남자더라.키는 175센치 좌우이고 짙은 눈섭에 부리부리한 쌍겹눈이더라.”
“...”
크게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 말도 없는 현지를 친구가 의아스레 쳐다보았다.
“너 왜 그래?그 남자를 아니?”
“아,아니.내가 그 남자를 어떻게 알겠니?”
현지는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며 준이를 한참 생각하다가 랭장고에서 쥬스를 꺼내가지고 방에 다시 들어왔다.
“현지야.오늘은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
“그래,친구지간에 할 말은 해야지.”
현지는 친구에게 쥬스를 따라주었다.
“네가 여기에 올 때는 일본어학교가 겨울방학이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라고 했잖아.그리고 비자는 3월 말까지이고 여기서 대학시험도 보겠다고 했는데 요즘 너의 눈치를 가만히 살펴보니 대학시험도 보지 않고 비자가 만료되면 불법으로 있을 것 같더구나.너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니?”
친구의 말이 불법으로 있을 생각이라면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는 말로 들려왔다.
못된 계집애 같으니라구!
“요즘 고민중이다.너한테 페는 끼치지 않을 테니깐 근심 말거라.”
“헌데 방금 전엔 왜 바삐 화장실에 들어갔니?”
“너 참,화장실이 바빠서 들어간 거지뭐.”
“화장실이 바쁘긴?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더구나.너 남자친구 있지?여기에 온 날 저녁에 남자친구한테 전화를 하고 집에 들어와 밤 늦도록 못 잔 게 아니니?오늘 내가 만난 그 남자 맞지?”
머리회전이 빠르고 센스가 뛰여난 친구였다.
“사귀던 남자가 있은 건 맞는데 그날 저녁에 밖에 나가서 헤여지자고 전화를 한 거다.너의 말을 듣고 나도 처음엔 그 남자인가 해서 놀랐지 뭐야.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가 다시 생각해보니 아니더구나.휴대폰번호도 바꿨고 집 주소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오겠니?안 그래?그리고 이젠 열흘도 넘었잖아.오늘은 이만 하자.너 일찍 자려무나.나도 오늘은 일찍 자고 싶다.”
“그럼 우리 누워서 얘기 나누자.오늘은 같이 자자.나 샤워할 테니 잠간만 기다려라.”
친구가 욕실에 들어가자 현지는 침대에 누워 준이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친구 말 대로라면 준이가 틀림없었다.어제 편지를 받고 토요일인 오늘 센다이에 찾아올 수도 있었다.발신인 주소를 쓰지 않았으니 집을 찾아올 수는 없었다.가게도 찾아올 수 없었다.사장님과 친구를 만났다는 헤어솝은 오오마찌에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폭설이 퍼붓는 오늘 준이가 나를 찾으려고 그 번화한 오오마찌를 돌아다녔단 말인가?내가 편지를 잘못 보낸 게 아닌가?지금 준이는 어디에 있을가?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온 친구가 옆에 누웠다.
“넌 아버지를 일찍 여의다 나니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생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어머니는 그냥 시름시름 앓고 계신다고 했지?남동생은 금년에 대학입시니?”
“명년에 대학입시인데 공부를 잘하고 있다.이번에 고향에 갔을 때 담임선생님을 만났는데 중점대학은 문제없을 거라고 하더라.”
“중점대학에 입학하면 정말 좋지.졸업하면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구.”
“너 졸업하면 취직하고 싶다고 했는데 회사는 찾았니?”
“다음 주에 어느 회사 면접을 보기로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넌 면접에 꼭 합격할 거야.”
“고마워.헌데 너 아까부터 나를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니?”
현지는 잠간 침묵에 잠겨있었다. 오늘은 친구를 괘씸하게 생각했는데 친구는 진정으로 나를 위해서였다.좋은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불법체류의 길에 들어서려는 나를 되돌아서게끔 일깨워준 친구가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가!그리고 준이가 오늘 찾아온 것도 친구한테서 알게 되였잖은가!
친구가 무슨 대답이 나올가 기다리는 것 같아 현지는 낮은 소리로 침묵을 깼다.
“아니야.나 대학시험을 잘 생각해볼게.”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깐 잘 생각해봐.나도 여기서 대학들을 알아볼게.그리고 아까 그 일인데 그 남자가 너를 좋아하기에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닐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구나.나라면 그 남자를 놓치지 않겠다.너 래일 전화해보렴.”
“그 남자 아니라니깐.피곤하니 난 자겠다.잘 자.”
창문 쪽으로 돌아누운 현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도꾜에 돌아온 준이는 전차를 갈아타고 대학 선배님 집에 가려고 고단다(五反田)역에서 내렸다.신깐센에 오르려고 할 때 선배님한테서 토요일인데 저녁에 술 한잔 하자며 집에 놀러오라는 전화가 걸려왔었다.선배님은 지금 도꾜 모 대학 박사과정 재학중인데 부인이 다섯살 난 아들을 데리고 며칠 전에 중국에 놀러갔다는 것이였다.
맥주를 사가지고 선배님 집에 들어서니 선배님이 상냥하고 인자해보이는 30대 초반 남자를 소개했다.
“도꾜 ××회사 강사장님이시다.여기는 저의 대학 후배인데 미쯔비시에 근무해요.”
준이는 허리 굽혀 인사를 올렸다.
“리준입니다.반갑습니다.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영화배우 같은 분이시군.반가워요.어서 앉으세요.미쯔비시에 언제 취직했어요?”
“작년에 취직했습니다.”
“강사장님은 나의 대학원 동창생인데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3년 전에 간다(神田)에 IT회사를 차렸어.고향은 심양이야.”
간다는 준이가 살고 있는 오까찌마찌에서 두 정거장 거리였다.준이는 무릎을 꿇고 강사장님과 선배님 술잔에 맥주를 따랐다.강사장님이 준이의 술잔에 맥주를 따라주었다.
“편히 앉으세요.자,한잔 합시다.”
강사장님이 준이와 술잔을 부딪치고 맥주를 굽내자 준이도 잔을 비웠다.센다이에 부질없이 갔다온 오늘은 실컷 마시고 싶었다.
“연변과 길림 그리고 할빈 조선족들과는 달리 우리 심양 조선족들은 평안도 말투를 사용해요.나의 말이 듣기 이상하잖아요?”
“아닙니다.심양에서 온 대학 동창생과 사이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래요?난 네살 난 딸애가 있어요.준이씨는요?”
“저는 결혼 전입니다.실례이지만 부인님도 조선족인가요?”
“그래요.대련 조선족인데 중앙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아사히은행에 근무해요.우리 조선족들이 어디서 살든 모두 잘 살아야죠.남들이 비웃지 않도록 떳떳하게 말이예요.이번엔 내가 한잔 따르지요.”
강사장님의 모습이 참말로 름름하고 당당해보였다.
“자,우리 민족을 위하여!”
강사장님이 술잔을 추켜들었다.
“우리 민족을 위하여!”
선배님이 높이 웨치자 준이도 따라 웨쳤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다른 술상 분위기였다.
이번엔 선배님이 맥주를 따랐다.
“강사장님은 일본에 오기 전에 대련에서 교원을 하면서 무역회사도 차렸었어.나와 강사장님은 일본에 와서 사이가 제일 가까웠어.강사장님의 회사는 유한회사가 아닌 주식회사야.직원들도 많아.일본인 십여명에 싱가포르에서 온 외국인 그리고 상해에서 온 중국인과 한국인 녀비서가 있어.”
“그런가요?정말 대단하십니다.”
선배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도 이제 강사장님 회사에 취직하려고 한다.”
“선배님의 말을 롱담으로 들으세요.”
강사장님이 껄껄 웃었다.
둬시간 재미있게 마시다가 준이는 강사장님과 같이 선배님 집을 나왔다.
이튿날 아침. 현지는 아침상을 차려놓고 친구와 밥상에 마주앉았다.
“너처럼 장학금도 있고 학비도 싼 국립대학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다음 달까지 시험 볼 수 있는 사립대학들에는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센다이보다 도꾜에 대학들이 많기에 도꾜에 돌아가려고 한다.”
“너 여기서 대학시험 보겠다고 했잖아.아,그 남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구나.”
“아니야.사실은 일본어학교가 래일부터 개학이다.지금까지 출석률은 낮지 않았지만 출석률이 높아야 비자를 연장할 수 있잖아.그리고 작년 12월 초에 도꾜 몇개 대학들에 입학원서를 제출했어.그 대학들의 시험을 보기 위해서야.”
“그건 좋은데 돌아가겠다고 하니 서운하구나.내가 엊저녁에 하고 싶은 말을 꺼내서 네가 간다고 생각하니 너한테 미안하기 그지없구나.”
“나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말라.일자리도 선뜻이 소개해주고 작은 원룸이지만 불편하다는 티 내지 않은 너한테 고마울 뿐이다.”
“난 지금까지 여기서 친구도 없이 홀로 보내왔어.네가 가면 난 또 어떻게 보내야 하니?”
친구가 눈물이 글썽해있었다.현지는 잠간 뜸을 들이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그만두겠다고 사장님께 얘기하려 한다.너도 사장님께 잘 말해주렴.”
“그럼 언제 도꾜에 가려구?”
“오늘 가련다.”
“뭐?...”
친구가 멍하니 현지를 쳐다보았다.
오전 아홉시 반에 현지가 가게에 들어서니 기다렸다는 듯이 홀에 서있던 사장님이 카운터에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영미한테서 들었어요.”
친구 이름이 영미였다.
현지는 좋은 친구가 있어 여기에 왔는데 여기 대학들의 학비가 생각보다 비싸고 도꾜 몇개 대학들의 시험이 다가오기에 도꾜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면접할 때와 달리 오늘 그만두게 되여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괜찮아요.그럼 대학시험 잘 봐요.”
사장님이 계산대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현지에게 건네주었다.
“로임이예요.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보너스 겸 왕복 교통비로 2만엔 더 넣었어요.”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현지는 사장님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가게를 나왔다.
열흘 남짓 아르바이트를 한 가게였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가게였고 다른 가게 사장님들과는 완연히 다른 한국인 녀사장님이였다.친구가 이 가게에서 줄곧 아르바이트를 해온 리유도 알만 했다.
집에 들어서자 친구가 현지를 부둥켜안았다.다가올 리별을 앞두고 둘은 어린애들처럼 엉엉 목놓아 울었다.고향이 그립고 아무리 힘들었어도 이렇듯 서럽게 운 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한참 후,친구가 현지의 어깨를 다독였다.
“좋은 소식 기다릴게.힘내.”
“고마워.나 잘할게.”
센다이역에서 친구와 헤여져 신깐센에 오른 현지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오늘 도꾜에 돌아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달 방세는 중국에 가기 전날 집주인 은행구좌에 입금했었다.집주인한테 집을 나가겠다는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였다.그렇지 않으면 오늘 어디에 있는단 말인가.그래도 들어갈 집이 있으니 한시름이 놓였다.래일 개학이기에 학교에 나가야 한다.작년에 입학원서를 제출한 여러 대학들의 시험준비도 해야 한다.헌데 준이한테 전화를 해야 하는가?
도꾜에 도착하여 전차를 갈아타고 집에 들어오니 오후 두시였다.현지는 트렁크를 정리하려다가 피곤기가 몰려와 그대로 잠자리에 누웠다.
얼마나 잤을가,현지는 집전화벨소리에 잠에서 깨여났다.
“오랜만이다.너 휴대폰은 왜 안 돼?중국에 갔다가 언제 왔나?”
재작년에 어느 일본어학교에 류학 왔다가 지금 불법체류하고 있는 친구였다.
“며칠 전에 왔다.”
“오늘 저녁에 아까사까(赤坂)에 가자.일본 남자들과 저녁도 같이 먹고 노래방에도 같이 가자.”
“지금 밖에 나가야 한다.미안하다.이만 끊는다.”
현지는 수화기를 덜컥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아무리 친구라 해도 이젠 갈 길이 다르잖은가.
네시를 넘긴 시간이였다.점심을 거른 탓에 배가 고팠다.랭장고를 열어보니 닭알 몇알과 중국에서 가져온 된장 밖에 없었다.슈퍼에서 감자를 사가지고 와서 장국이나 끓여먹고 싶었다.주방에 들어가 먼저 밥을 지어놓으려다가 쌀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쌀도 사야 했다.쌀은 전철역 앞 마트에 가서 사군 했다.마트는 중화료리점 건너편에 있었다.문득 중화료리점에 같이 들어갔던 준이가 생각났다.
현지는 방에 들어와 침대 우에 올려놓은 휴대폰을 손에 들고 창문가에 다가섰다.
준이한테 전화를 하는 게 옳은가?어제 센다이에 찾아온 걸 뻔히 알면서도,오늘 도꾜에 돌아와서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례의에 어긋나는,결례를 저지르는 행위가 아닌가?
오늘 차라리 이젠 다른 녀자를 만나라고 마지막으로 전화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현지는 가볍게 떨리는 손으로 준이의 휴대폰번호를 누르고 통화버튼을 터치했다.
“모시모시.”
“저예요.”
“현지씨?”
준이의 놀라워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현지는 가슴이 찌르르 저려왔다.
“네,오늘 도꾜에 돌아왔어요.래일부터 일본어학교가 개학이여서요.”
“그래요?그럼 만나서 얘기해요.저...니시닛뽀리(西日暮里)역에서 만나요.”
준이가 전화를 끊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해있고 한국 음식가게들도 많은 니시닛뽀리는 오지와 오까찌마찌 중간역에 있었다.
창문가에 서있던 현지는 전화에서 하지 못한 말을 해야 하는가 궁리하면서 집문을 나섰고,베란다 빨래줄에 빨래를 널다가 현지의 전화를 받은 준이는 현지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면서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나는 것인가?다시 만날 이 날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왔던가?
준이는 개찰구를 나온 현지를 꼭 끌어안고 싶었다.꿈인지 생시인지 눈앞에 있는 준이를 마주보며 현지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다시 만나니 정말 반갑군요.”
전철역 출구를 나와서 준이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한국 음식점들이 많기에 여기서 만나자고 했어요.뭘 먹고 싶어요?다섯시가 넘었는데 저녁을 먹으면서 얘기 나눠야죠.”
준이를 다시 만나고 보니 이젠 다른 녀자를 만나라는 말은 입밖에 꺼낼 수가 없었다.준이가 정말 멋지고 훌륭한 남자로 보였다.친구 말 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이제 대학에 입학하고 비자를 연장하면 되잖은가.
현지는 잠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오뎅 먹을가요?”
“오뎅?하하,오뎅은 센다이 오뎅이 맛있잖아요?”
“센다이에 간 날 친구가 먹자는 걸 나중에 먹자고 했어요.”
“그래요?아오바구 오오마찌의 어느 오뎅집이 맛있어보였는데 다시 갈 수도 없군요.”
“그건 무슨 말씀인가요?”
모르쇠를 놓는 자기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려는지 준이가 말없이 쳐다보기에 현지는 얼굴을 붉히며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왜 그래요?”
“저...혹시 어제 오후에 오오마찌 어느 헤어솝 앞에서 두 녀자를 만나지 않았어요?”
“그건 어떻게 알아요?”
“다름 아닌 불고기점 사장님과 저의 친구였어요.친구한테서 들었어요.”
“네?그런 일이였군요.어제는 내가 현지씨를 찾으러 센다이에 가고 오늘은 현지씨가 나를 만나러 도꾜에 왔군요.”
“일본어학교가 래일부터 개학이여서 왔다고 말했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현지는 오늘 준이를 잘 만났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갑자기 꼬르륵 하고 배속에서 소리가 났다.방금 전에 얼굴이 화끈 뜨거워났는데 이번엔 이런 망신까지 다 하다니?다행히 소리가 낮아서인지 준이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작년에 회사 직원들과 같이 갔던 육회집 옆에 오뎅집이 있더군요.그럼 거기로 가요.”
현지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겨놓으면서 준이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유끼노후루마찌오(雪の降る街を)...”
“일본노래네요.”
“어제 센다이에 큰눈이 내렸죠.현지씨와 눈 내리는 거리를 손 잡고 걸었으면 했어요.오늘 도꾜에 눈은 내리지 않지만 이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현지는 곱게 웃으며 준이를 말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오뎅집에서 둘은 술잔을 부딪쳤다.
오늘 오뎅이 참말로 맛있었다.오늘처럼 오뎅이 맛있을 수가 없었다.현지와 같이 먹으니 이보다 맛있는 음식이 이 세상에 더 없을 것 같았다.어제 오뎅집에 들어갔더라면 오늘이 있었을가!
준이는 현지와 얘기를 나누면서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일본어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출석률 같은 건 모르지만 래일부터 매일 학교에 가요.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면 학비는 근심 말아요.”
“아니예요.그러면 제가 미안하죠.”
“미안할 게 없어요.현지씨를 사랑하니깐요.”
“저를 진짜 사랑해요?”
현지는 자기를 진짜 사랑하는가고 묻고 싶었다.
“네,사랑해요.영원히 사랑할게요.”
“저보다 더 좋은 녀자들이 많잖아요.부모님들이 저를 동의하겠어요?”
“부모님들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근심 말아요.”
“고마워요.”
이튿날부터 현지는 매일 학교에 다녔다.고중을 졸업한 지 5년이 되였지만 다들 수월하다고 말하는 외국인류학생대학시험도 보지 못할가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하면서 여러 대학들의 시험을 보았다.
찬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오는 어느 날,현지는 어느 대학 시험장에 들어갔다가 답안을 채 쓰지 못하고 시험장을 나왔다.풀기 어려운 고중수학시험이였던 것이다.대학시험은 생각 외로 만만치가 않았다.1월 말과 2월 초에 본 세개 대학도 어떻게 될지 알 바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가?이제 시험 볼 수 있는 대학은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이러다가 어느 대학에도 입학하지 못하면 어쩐단 말인가?작년에 선생님들의 권고에 여러 대학에 입학원서를 제출하면서 괜한 돈을 팔지 않았는가?이제 비자를 연장하지 못하면 중국에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불법체류를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이번엔 누구도 모르는 오사까나 교또 아니면 후꾸오까 쪽으로 멀리 도망가버리고 싶었다.그러면 어렵사리 다시 만난 준이는 또 어쩐단 말인가?
헛갈리는 심정을 가까스로 달래며 아빠트 계단을 올라왔을 때 집 우체통에 1월 말에 시험 본 대학 편지봉투가 들어있었다.
현지는 집에 들어와 편지봉투를 뜯었다.
이게 뭔가!
입학허가서였다.
아,대학에 입학했구나!
대학에 입학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현지는 눈물을 훔치고 학비내역을 보았다.학비입금은 다음 달 초까지였다.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조금 모자랐다.그렇다고 준이한테 학비에 관한 말은 할 수 없었다.준이한테 이 대학은 아직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모레 시험 보는 대학은 이 대학처럼 학비가 비싸지 않았다.이미 시험 본 대학들의 입학허가서도 기다려볼 판이였다.
현지는 입학허가서를 책가방에 정히 넣어두고 모레 시험준비를 하려고 다시 책상에 마주앉았다.
한편,준이는 현지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가,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가 근심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던 현지가 마지막 대학시험을 보는 날 점심 휴식시간이였다.
현지를 생각하면서 회사 근처를 산보하던 준이는 선배님 집에서 만났던 강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한국인 녀직원이 남편 따라 나고야(名古屋)에 가게 되는데 비서직으로 입사할 수 있는 한국 녀성 아니면 조선족 녀성을 소개할 수 없는가며 회사에서 비자연장도 해줄 수 있다는 것이였다.그날 저녁 선배님 집에서 강사장님이 녀자친구는 있겠죠,하고 묻기에 아직 없다고 대답하기도 무엇해서 한고향 조선족이고 지금 일본어학교에 다니는 녀자친구가 있는데 대학입시준비를 하고 있다고 능청스레 대답했었다.
혹시?
준이는 아는 한국 녀성은 대학원 동창생 밖에 없고 지금 전자회사에 근무한다고 말하고 나서 어떤 조선족 녀성을 수요하는가고 물었다.일본어학교를 다니는 조선족 학생도 괜찮다며 녀자친구는 지금 대학입시준비를 하고 있는가고 묻기에 오늘도 대학시험을 보는데 취직준비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그랬더니 래일 오전 아홉시에 녀자친구를 회사에 면접하러 보내줄 수 없는가는 것이였다.
과연 강사장님이 현지를 비서직으로 입사시키려는 것이였구나!
그런데 현지가 비서직을 해낼 수 있을가?비서직 같은 건 배우면서 얼마든지 해낼 수도 있잖은가!
“감사합니다.그럼 래일 강사장님 회사에 보내겠습니다.잘 부탁드립니다.”
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준이와 현지는 조용한 스시점에서 만났다.
“시험 잘 봤어요?오늘이 마지막 시험이라 했죠?”
“네,이젠 시험 다 봤어요.수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그래요?입학허가서가 내려온 대학은 없어요?”
현지는 아직 없다고 대답하려다가 책가방 안에서 그저께 입학허가서를 꺼냈다.입학허가서와 학비내역을 보던 준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괜찮은 대학이지만 학비가 너무 비싸군요.시험이 끝났는데 맥주나 마시죠.”
현지는 혼자서 맥주를 마시는 준이를 의아쩍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학비가 비싸도 왜서 축하한다는 말은 고사하고 수고했다는 말도 없을가?혹시 학비 때문에 마음이 변한 게 아닐가?
준이가 정색을 하고 현지에게 물었다.
“무엇때문에 학비가 비싼 사립대학에 들어가려고 해요?”
현지는 그만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내가 사립대학들의 시험을 보는 걸 번연히 알면서 오늘은 왜서 이렇게 나올가,내가 왜서 그 어려운 대학시험을 보기 위해 오늘까지 밤낮없이 참고서적들을 뒤적이며 고생해왔을가 생각하니 서러움이 앞서면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올랐다.학비는 절로 해결할 테니 근심 말라고 말하려다가 내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대답했다.
“학비가 비싸도 경제학과를 배우고 싶어서요.”
“경제학과를 배워서 뭘 하려구요?”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졸업하면 좋은 회사에 취직하려구요.”
“한가지 더 물어볼게요.학비를 기한내에 입금할 수 있어요?”
역시 학비 때문이구나!
현지는 래일부터 아르바이트를 구해보겠다고 말하려다가 바꿔 말했다.
“네,학비입금은 문제없어요.”
준이가 하하 하고 소리내여 웃었다.
“롱담해서 미안해요.래일 오전에 어느 회사 면접을 봐요.”
“네?아까부터 롱담이였어요?놀랐잖아요.방금 면접 보라고 하셨어요?제가 어떻게 회사 면접을 다 봐요?제가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거야 현지씨 수평에 달린 거죠.”
현지는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일본에서 취직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어요.헌데 무슨 회사예요?왜 이제서야 말하세요?”
“오늘 점심에 전화 왔더군요.”
준이는 강사장님 회사와 오늘 점심 통화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했다.
“강사장님 참 고마운 분이시군요.”
“센다이에 갔다온 날 저녁에 선배님 집에서 강사장님을 처음 만났어요.강사장님이 녀자친구가 있는가고 묻기에 일본어학교를 다니는데 지금 대학입시준비를 하고 있다고 술김에 대답했어요.오늘 점심에 전화 왔을 때는 취직준비도 하고 있다고 말했어요.제가 그 말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요.저 강사장님 회사에서 비서직을 할 수 있어요.준이씨한테 미안하지 않도록 래일 면접 잘 볼게요.”
준이의 술잔에 맥주를 따르고 현지가 잔을 들었다.
“건배해요.오늘은 저도 마시고 싶어요.”
얼굴도 예쁘장하고 목소리도 고운 현지가 비서직 면접에는 통과될 거라고,대학입학허가서도 있기에 강사장님도 흔쾌히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준이는 웃으며 현지와 술잔을 마주쳤다.
이튿날 저녁,강사장님과 부인님 그리고 선배님과 같이 시나가와(品川) 어느 불고기점에서 식사를 하고 밖에 나온 준이와 현지는 강사장님께 다시 인사를 올렸다.
“강사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사장님 정말 고마워요.”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조선족들이 일본에서 서로 힘을 합쳐 잘 살아야죠.”
부인님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준이와 현지한테 한발 다가섰다.
“두 분 정말 잘 어울려요.천상배필이네요.”
“우리 가요.”
강사장님이 부인님과 같이 택시를 타고 먼저 자리를 떴다.
“준이와 같이 이제 우리 집에도 놀러오세요.저도 일이 있어 가봐야겠어요.”
선배님이 손을 흔들어보이고는 뒤돌아섰다.
“오늘 면접에 합격되니 정말 기뻐요.”
사람들이 보건 말건 준이는 현지를 꼭 끌어안았다.
“현지씨를 다시 만나지 못하는 줄로 알았어요.편지를 받고 센다이에 찾아갔지요.현지씨가 도꾜에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고 대학시험을 보겠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어요.그동안 현지씨 정말 고생 많았어요.수고했어요.취직 축하해요.”
“준이씨 고마워요.사랑해요.”
“저도 사랑해요.현지씨가 걸어온 길이 어쩌면 굴곡적인 곡선 같군요.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성공했다고 말해야겠죠.”
“지나온 날들이 정말 꿈만 같아요.오늘이 있은 건 준이씨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예요.”
“이젠 대학생이 아닌 월급 받는 회사 직원이 되였군요.오늘은 참 좋은 날이군요.우리 좀 걷죠.”
한쌍의 련인이 화려한 네온불빛이 명멸하는 밤거리를 나란히 거닐며 앞날을 약속하고 있었다...


박명선 
길림성 룡정시 출생.1987년 연변대학 일본어학부 졸업.요코하마국립대학 교육학 석사과정 졸업.일본류학시절 칼럼 <외국사람이 본 일본>을 마이니치신문에  발표.한국 ‘문학의 강’ 단편소설부문 신인문학상 수상.연변작가협회 소설분과 회원.중단편소설 다수 발표.현재 광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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