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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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타지 않으면 썩는다》
2014년 02월 08일 01시 08분  조회:5583  추천:19  작성자: 박문희


《생명은 타지 않으면 썩는다》


―문학평론가 최삼룡선생을 만나다
 

 

 

서재의 풍경

 

일전 최삼룡평론가 댁으로 찾아갔던 필자는 방들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었다. 서재 한칸은 물론 세벽이 책으로 차넘쳤고 큰 객실 한쪽 벽은 서가로 되였으며 화장실로 들어가는 공간 역시 서가로 돼있었다. 그뿐이 아니였다. 서재에 다 들이지 못한 책들은 아직 창고에 박스채로 그냥 쌓여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책이 곧 재부다.

 

서재. 벽을 빙 둘러싸고 방바닥으로부터 천정까지 촘촘히 꽂혀있는 책들, 서재와 객실 창문 가까이에 놓여있는 두대의 컴퓨터 그리고 테이블과 문턱 혹은 구들 복판에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잡지와 신문과 글의 초고를 타자한 종이들, 원고지 갈피갈피에 정성껏 가위질하여 풀로 붙인 옛 자료들과 가쯘하게 묶은 옛 자료 복사본들―《싹트는 大地》,《滿洲詩人集》,《滿洲朝鮮詩人輯》,《滿洲朝鮮文藝選》,《北鄕》,《半島史話와 樂土滿洲》, 《颱風》,《北陸의 敍情》등등, 그중 복사해온 《滿鮮日報(만선일보)》복사본은 아예 통째로 쌓여있다. 최삼룡선생의 서재는 말그대로 서산문해(書山文海)다.

 

지금 최삼룡선생의 서재에는 사전류만 해도 100여종, 중국의 여느 도서관이나 문학가들에게서 찾아볼수 없는 귀중한 사전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조선족의 대표적인 작가, 시인들 례컨대 김학철이면 김학철, 조룡남이면 조룡남, 그들의 대표작품집을 포함해 거의 없는것이 없다.

 

현장평론가, 문학사가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소장 겸《문학과 예술》주필로 재직할 당시 최삼룡선생은 조선족문단에서 왕성한 정력으로 현장평론가로서의 평론활동에 종사했다. 특히 작가들로부터 탈고하는 원고를 놓고 평론해달라는 청탁이 자주 온다. 고 김성휘시인이 일찍 1980년대에 1만 5000행이 되는 장편서사시 《사랑이 무엇이길래》를 투고전에 보내왔을 때에도, 고 김운룡소설가가 100만자에 달하는 장편소설《광야의 아리랑》을 투고전에 보내왔을 때에도 최선생은 작품을 읽은후 자기의 견해를 솔직하게 밝혀 수정건의를 했고 평론도 써서 책과 함께 발표했다.

 

문학평론에 있어 그는 다산작가이다. 금년(2013년)에 들어와서도 《장백산》 잡지에 3편, 《도라지》 잡지에 4편,《연변문학》 잡지에 2편,《송화강》 잡지에 3편,《예술세계》잡지에 1편, 《길림신문》에 1편의 평론을 게재했고 그 외 여러가지 학술모임에서 발표했거나 이미 편집부에 교부되여 발표를 대기중인 평문, 론문이 4~5편 된다.

 

“평론이란 워낙 시끄러운 일로 욕먹기를 밥먹듯 한다”고 최선생은 말한다. 개중에는 “청탁평론”이나 “어용평론”이 많아서 평론가로서의 이미지가 초라할뿐만 아니라 “평가를 높게 하나 낮게 하나 잘하나 못하나 덮어놓고 욕”이라는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워낙 좀 부실”하여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는 축”이여서 뒤에서 그 누가 잡아 죽이려 해도 그는 “남이야 뭐라든 항상 솔직한 마음으로 사람이나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애를 쓴다”고 자평한다. 례를 들어 2012년 자치주성립 6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대형 련속드라마 《장백산기슭의 나의 집(長白山下我的家)》이 한창 방송중에 있을 때 한 신문사에서 평론을 해달라는 간청이 와서 일주일 밤을 새우면서 써냈다. 그 평론은 간담회에서 발표되고 신문에도 게재되고 또 한어로 번역되여 나가기도 하였다. 그런데 반향이 별로였다. 정부에서 거금을 들여 제작했다는 프로그램에 부동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데다 글자체가 “청탁평론”이여서 말썽이 있으리라는것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하지만 작품을 함부로 비판할수도 없는 상황이고 또한 문제점을 제출하여도 통과될리 만무하거나 무작정 삭제가 불가피한 현실이라 최선생은 그저 허허 웃으면서 사는것이 이러할진저 하고 말았다.

 

당대 조선족문학 현장평론에서 뿐만 아니라 민간문학연구에서도 최삼룡선생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쌓았다. 1990년 8월 일본 오사카정법대학에서 개최한 국제학술회에서 발표한《재래설화변이고》로부터 1991년 고려대학 민족무화연구소에서 발표한 《백두산 설화의 의미》, 《송화강》잡지에 1년 련재한 《신민요연구》, 그리고 《구경전(狗耕田)형 민담의 비교연구》,《방리득보(放鯉得寶)형 민담연구》, 금년 8월 황구연연구회에서 발표한 론문 《황구연의 민담에서 사랑과 결혼》등 20여만자가 된다. 그는 “민간문학에 대한 연구는 우리 민족의 원초적인 의식과 신앙들이 깔려있어 참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최선생은 중국조선족문학사 연구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중국조선족의 첫 문학사로 조성일, 권철 주필의 《중국조선족문학사》가 1990년에 중국과 한국에서 각기 출판되였는데 이 책에서 최삼룡선생은 1966년부터 1986년까지 20년간의 중국 조선족문학사 부분을 집필했다. 퇴직후 21세기 들어 오상순 주필의 《중국조선족문학사》(2005년 출판)에서는 해방후의 시문학과 산문문학의 집필을 담당하였고 북경대학 조선문학연구소에서 편찬한《중국조선족문학사》(2004년 출판)에서는 중국 조선족 시문학사, 산문문학사 부분을 맡았다. 현재 최선생은 《중국조선족문학지도》라고 제목한 자기의 문학사를 집필중이다.

 

해방전 자료 발굴, 정리

 

1999년 4월 정년퇴직한 최삼룡선생은 주요한 정력과 시간을 해방전 조선족 문학자료의 발굴과 연구에 바치고있는데 그가 여기에 발을 들여놓은것은 정년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하는 《20세기 중국조선족 문학자료 전집》편찬진에 참가하여서부터이다.

 

그가 처음 편찬을 맡은 책은 친일문학권이였다. 최선생은 자기의 서재와 연변대학도서관을 뒤집듯이 들추어가며 2002년 책을 편찬해내고야 말았는데 사회적반향이 괜찮았다.

 

이 책의 출판은 최선생이 해방전 조선족문학연구에 보다 깊이 개입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그해 여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기회에 그는 꼬박 9일간 연세대 귀중도서관과 국회도선관에 들어가 자료발굴작업을 했다. 거기서 최선생은 친일문학자료를 많이 찾아냈을뿐아니라 해방전 만주조선인 문학작품도 숱해 접했다. 특히 시와 수필이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상태임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원래 권철교수 등은 컴퓨터작업이 없을 때라 육필작업만 가능했음으로 대표적인 작가들의 대표작외에 대부분 자료들을 베껴낼수가 없었던것이다.

 

최삼룡선생은 남들이 다 수확한 텅 빈 들에서 홀로 재료를 발굴하는 자기의 작업을 "이삭줍기"로 표현했다. 그런데 이런 "이삭줍기"는 말이 헐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스스로 경비를 팔아 려관을 잡고 교통비를 해결하고 도서관에 들어가 문을 닫을 때까지 작업을 하곤 했는데 어떤 날에는 복사료만 해도 한화로 10만원 나갔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이렇게  하기를 5~6차례, 그래도 리상규선생 같은 한국의 고마운 이들이 숙박료도 대주고 자가용으로 도서관문전까지 데려다주군 하여서 경제적으로 큰 무리가 없었다면서 항상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있다고 한다.

 

한국 도서관들에 보관되여 있는 신문, 잡지가 이미 낡았고 복사해온 글자들이 선명하지 않은데다가 전부 우리 글과 한자(正字 즉 번체자)가 혼용된 자료라 정리시 여러 모로 품이 많이 들었지만 최삼룡선생은 자료를 인용할 때 문헌의 가치에 손색이 갈세라 한자와 철자법과 띄여쓰기를 드팀없이 원본에 따랐다. 때로는 글자 하나를 복원하는데 하루가 걸렸고 시 한수를 복원하는데 사흘씩 걸렸다. 그래도 복원을 못하면 출판에 교부할 때 부득불 ◯이란 기호를 대용하는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삭줍기”에 기초하여 2003년 《세월에 묻힌 겨레의 기억》이라는 총제목밑에 《강경애와 간도》등 글을 《연변문학》에 1년간 12기에 거쳐 련재하였으며 2005년에는 《문학과 예술》잡지에 《문학기행》이라는 표제로 6편 련재하였다. 그리고 연변대학 조선(한국)어문학연구소와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간행한 해방전문학총서에 《현대시집성》,《항일문학》,《해방전민요》《종합산문(상, 하)》등 9권을 륙속 출판하였다.

 

2006년 3월 한국의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규명위원회》에서 최삼룡선생에게 만주조선인친일문학연구에 대한 정식요청이 왔다. 결과 반년간의 품을 들여 집필한 론문《재만조선인친일문학연구》가 유관자료집에 게재되였고 이 론문은 후에 한국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참고도서”로 삼았다는 감사의 말씀을 전해받았다. 이 론문 집필중 자연스럽게 묶어진《만주조선인친일문학작품집》은 2008년 보고사에 의해 출판되였고 2009년에는 한국문화체육부의 《2009년 대한민국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2010년 한국 보고사에서 또 최삼룡, 허경진 편찬《만주기행문》을 펴냈다. 이 책의 편찬에 동참한 한국 연세대 허경진교수는 이 책의 머리글에서 최삼룡선생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문학대계 30권을 편찬하면서 연변의 학자 여러분을 알게 되였는데 그 가운데 가장 열정적인 학자가 바로 최삼룡선생이였다. 그분은《조국조선민족문학대계》30권가운데 5권을 책임 편찬하였는데 대부분 본인이 여러해동안 수집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편찬하였다. 나는 중국조선민족문학학술대회를 5년째 주관했는데 해마다 그분의 열정적인 발표와 토론을 들으면서 함께 책을 쓰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선민족문학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해박한 지식, 방대한 자료 그리고 컴퓨터를 련상케하는 기억력이 부러웠다.”(최삼룡, 허경진 편찬 《만주기행문》보고사 2010년 5월 제1판 머리말에서)

 

2012년 민족출판사에서 최삼룡이 편찬한 《해방전아동문학(상, 하)》을 출간하였으며 이제 《해방전기행문》, 《해방전평론집》등 6권이 2013년 년내에 륙속 출간된다고 한다.

 

최선생은 암만 둘러봐도 20세기 우리의 문학을 수집, 정리하는 일은 자신들 세대 문인들이 해야 할 일이란다. 그래서 최선생은 계속 해방전 조선족문학에 관심을 두면서 수필집《만주조선문예선(滿洲朝鮮文藝選)》, 장편기행문 《백두산행기(白頭山行記)》, 력사문헌 《강북일기(江北日記)》,《간도개척사(間島開拓史)》 등 중국조선족력사문화와 관계되는 희귀본도서를 수집하느라 숱한 시간과 정력, 재력을 소모하였단다. 여러가지 여건의 미비로 이 책들의 출판은 아직 묘연(渺然)하지만 그는 볕을 볼날이 어느때든 반드시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문학과 인생

 

20세기 우리 중국조선족문학 수집, 연구, 편찬 작업을 지대한 흥취와 열정을 갖고 열심히 했고 그속에서 자기가 몰랐던 지난 시기 우리문화 공부도 많이 했다고 말하는 최선생은 그 과정을 일컬어 문학과 인생을 함께 향수하는 과정이였다고 갈파한다.

 

말썽 많은 해방전 만주조선인 친일문학을 연구하면서 최삼룡선생은 세월의 먼지속에 깊숙히 파묻힌 재료를 적잖이 발굴했다. 이를테면 박팔양과 김영팔의 친일행적이 그 생동한 례로 된다. 박팔양은 만주에 건너온 다음 어용신문사에서 부장으로 일했으며 만주협회총부 리사로도 있었는데 이는 해방전 만주 조선인의 정치직무에서 최고의 직위였다. 그리고 친일작품도 썼다. 김영팔은 만주에 온 다음 신경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있었고 협화회 문화부 부장으로 있기도 했으며 통화협화회에 임직하기도 했다. 그는 만주건국 10주년 기념으로 일본 욱일훈장을 수여받고 연길공원에 동상까지 세웠던 친일 주구 김동한을 기념하는 장막연극 《김동한》대본을 창작하고 공연에서 연출 겸 배우를 맡기도 했다. 그런데 이 반동연극의 작자가 바로 김영팔이라는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최선생이 밝혀냈다. 그리고 1941년에 《만선일보》 는 만주 조선문인들에게《大東亞戰爭과 文人들의 覺悟》라는 제목의 글을 쓸것을 강요하였는데 당시 이에 호응하여 만주 조선문인들이 쓴 같은 제목의 글 11편을 최삼룡선생은 모조리 발굴해냈다.

 

최삼룡선생은 이러한 재료의 발굴 연구 편찬과정은 참으로 문학과 인생의 참맛을 고루 맛보는 과정이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문학과 인생을 덤으로 누린 행운아라고 한다.

 

김학철문학 연구

 

“김학철선생의 문학은 중국 조선족문학의 정상이다.《격정시대》를 비롯해 그의 장, 중, 단편소설들은 20세기 우리 중국 조선족문학의 최고봉이며 그의 잡문, 수필, 회상기, 전기 등은 우리 중국 조선족 산문문학을 형태적으로 정착시키는데 절대적인 작용을 했다. 특히 그의 문학의 비판리성은 중국 조선족뿐만 아니라 20세기 중국 전체 지식인들을 견주어 봐도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김학철선생에 대한 최삼룡선생의 평가이다.

 

이미 김학철문학에 대한 글을 15만자 이상 발표했지만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고 갈라야 할 시비가 너무 많아 잠시 중단했다고 한다. 이제 가장 민감한 부분에 대한 집필에 손을 대야 하겠는데,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한다.

 

“《김학철론》으로 평론가로서의 내 인생의 마침표를 찍고싶다. 그러기에 잘 쓰고싶고 따라서 지금 함부로 쓰지를 못하고있다.”

 

“생명은 타지 않으면 썩는다.” 평론가 최선생의 좌우명이다. 오늘도 최삼룡선생은 고래희를 훨씬 넘긴 년세임에도 지칠줄 모르고 매일 10여시간씩 컴퓨터앞에서 꾸준히 작업해나가고 있다.  

<문학과예술> 2013년 제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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