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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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고원》학습필기-2
2019년 10월 06일 11시 55분  조회:193  추천:0  작성자: 박문희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천개의 고원》서론부분인 <리좀>의 마지막 단락은 이렇다.---

"리좀은 시작하지도 않고 끝나지도 않는다. 리좀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고, 사이-존재이고 간주곡이다. 나무는 혈통관계이지만 리좀은 결연관계이며 오직 결연관계일 뿐이다. 나무는 '이다'라는 동사를 부과하지만, 리좀은 '그리고...그리고...'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그것은 중간에서 떠나고 중간을 통하고 들어가고 나오되 시작하고 끝나지 않는 것이다...그것은 하나와 다른 하나를 휩쓸어 가는 수직 방향, 횡단운동을 가리킨다. 그것은 출발점도 끝도 없는 시냇물이며, 양쪽 둑을 갉아내고 중간에서 속도를 낸다."

40여 페지에 달하는 서론부분에 머리가 아프고 아찔할 정도로 수많은 개념이 등장하는데(례컨대 수목형 체계, 리좀형 체계 등 외에도 분절선, 분할선, 선, 지층, 령토성, 절편성, 도주선, 탈령토화운동, 탈지층화운동, 기계적배치물, 다양체, 고른 판, 기관 없는 몸체, 문학기계, 전쟁기계, 사랑기계, 혁명기계, 어린뿌리체계 등 매우 다양함) 그러나 리좀형 체계와 수목형 체계에 대한 묘사만큼은 머리가 시원해지도록 나에게 생동한 이미지를 안겨준 것 같다.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樹木的 體系’란 위계적(位階的)인 체계로서, 의미화와 주체화의 중심을 포함하며, 조직된 기억과 같은 중심적 자동장치를 갖고 있다. 위계(位階)란 벼슬의 품계나, 지위나 계층의 등급을 일컫는다. 이처럼 위계적인 체계에서 하나의 개체는 오직 하나의 상위이웃을 가질 뿐이다. 분류학에서 호랑이는 고양이라는 상위이웃을 가질 뿐이고, 고양이는 개라는 상위이웃을 가질 뿐이다. n명이 발포하게 하는데 오직 한명의 장군이 필요한 그런 관계, 그것이 바로 중심화 된 수목적 체계의 특징이다.

그러나 리좀은 탈중심화와 비 위계질서를 본질로 하는 다양체이다. 리좀은 나무나 뿌리와 같은 것으로 표상되는 사유의 재현모델을 따르는 기존의 담론과 제도들에 구현된 규범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생성으로 나아간다.

n명의 사람 가운데 오직 하나의 공통된 친구를 제거하는 것, 독재자를 제거하는 것, 혹은 수목형 체계에서 오직 하나의 중심인 1을 제거하는 것, 이를 저자들은 n-1이라고 표시한다. 요컨대 n-1, 혹은 중심의 제거, 바로 이것이 수목적 체계와 대비되는 리좀적 체계를 정의하는 명제다. 이런 점에서 리좀이란 非 體系가 아니라 非 中心化된 체계요, 각각의 부분들이 중심으로 귀속되는 상위의 이웃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이웃과 만나고 접속하는 체계고, 그 자체로 유의미한 다양한 집결지를 가질 수 있는 체계며, 그런 만큼 여러 방향으로 열린 체계고, 접속되는 항들이 늘거나 줄어듦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는 가변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리좀과 나무의 이항대립은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사본과 지도, 무리와 군중, 분자와 그램분자, 소수와 다수, 유목주의와 정주주의, 전쟁기계와 국가장치, 매끄러운 판과 홈 패인 판과 같은 ‘천 개의 고원’의 가장 중요한 중추적인 개념들로 변주되고 넓혀진다. 이것들은 수없이 많은 창조적인 연결접속들로 이어지고 이것들 속에서 다시 다양한 변이들을 만들어낸다.

이와 같이 脫 중심화와 非 위계질서를 본질로 하는 다양체(多元體)로서의 리좀은 기존의 규범적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생성을 이룩한다. 불파불립(不破不立)-파괴가 없이는 건설도 없다는 성어를 련상시키는 부분이다.

그러나 리좀은 파괴를 앞세우는 것만으로 새로운 생성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리좀은 또한 활짝 열려있는 상태에서의 무수한 ‘창조적 련결접속’으로 ‘다양한 변이들’을 생성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낡은 질서 파괴’와 ‘창조적 련결접속’ 수단을 동시에 구사하여 새로운 생성을 도모하고 다양한 변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중심화된 수목적 체계의 위계질서하에서는 창조적 련결접속이 허용되지 않으며 따라서 새로운 생성이나 다양한 변이들이 만들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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