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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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늪
2013년 11월 21일 14시 33분  조회:743  추천:0  작성자: 전춘식
아동소설
 
고요한 늪
 
우 영
 
내가 이 자그마한 현성으로 이사온지는 오래지 않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에 편리하도록 공기가 맑고 경치가 일품인 시내의 동쪽 변두리에 일부러 집을 잡았다. 이곳에는 쏟아지는 해빛에 거울면같이 번뜩이는 손거울모양의 늪이 있었던것이다.

매일 이맘때면 나는 화구들을 걷어갖고 늪가로 나가군 한다. 내가 매일 그리는 그림들은 거개가 자연에 속하는것들이였다. 옥으로 빚어서 걸어놓은듯한 하늘과 그리고 목화를 흐트러놓은듯한 구름송이들, 그외에도 화초들이며 꽃들이며가 나의 눈속으로 빨려들어 모델로 되여주군 한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 내가 그리는 그림에는 변화가 일게 되였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었는데 새로운 환경이 나더러 초상화를 그리는데로 취미를 바꾸게 한것이다.

나는 늪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댕그렁히 올라앉은 낡아버린 한 판자집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나는 지금 그 판자집 문이 열리기만 내심 기다리고있는터이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원래의 시간보다 5분간이나 넘쳤는데도 그 문은 열리지 아니하고 꾹 닫긴대로이다. 초조하고 불안스럽기만 하다.

(혹시 의외의 일이라도 생긴게 아닐가?)

하지만 나는 애써 자신을 달래여본다. 의외의 일이란 절대로 있을수 없으니 내 계흭대로 일은 꼭 잘 되여나갈거라는 믿음부터 앞세운다.

바로 이때다. 그 판자집문이 서서히 열리더니 휠체어가 사르르 미끄럼쳐 나온다. 그 휠체어에는 유백색의 원피스를 무릎팍까지 내리드리운 여라문살되여 보이는 한 처녀애가 그린듯이 앉아있다. 휠체어는 곧추 늪가로 굴러오더니 면바로 나의 맞은켠에 와서 멈춰선다.

그제야 나는 미처 차려놓지 못한 화구를 바삐 꺼내느라 부산을 피운다. 손이 닿는대로 갤판에 에노구를 쭉쭉 짜놓는다.

나는 유심히 그애의 얼굴을 뜯어보며 바지런히 화필을 놀린다. 머리우에는 태양모를 살짝 얹었는데 이마 절반을 가리운 곱실곱실한 머리가 어깨우로 파도쳐 흘러내리고있다. 그 머리결을 따라 두가닥 은빛 댕기가 바람에 나붓거리고있다. 이마 아래에는 한쌍의 눈이 자리를 잡았는데 살풋이 감고있는건지 다소곳이 내리깔고 수면을 내려다보고있는지를 똑똑히 가려볼수가 없다. 유난히 길다란 속눈섭이 눈동자를 거의 다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의 눈으로 용케도 그 속눈섭뒤에 숨겨진 맑다못해 투명한 한쌍의 눈을 보이는듯이 종이에 올릴수 있었다. 연후에는 계속하여 눈정신을 가다듬어 오똑 솟은 코마루와 그리고 조용히 꼭 닫겨진 죄꼬만 입을 그려넣었다. 하지만 보동보동하여 다치면 당금 톡 하고 익어 터질듯한 그애의 량볼만은 수십번이나 지우고 그리고 하며 애를 떼였지만 좀체로 맘과 같이 나와주질 않는다.

나는 아예 필을 휙 던져버리고는 무심코 턱을 고이고 앉아 시름없이 그애를 뜯어보기 시작한다. 천사보다 더 천사다운 이 처녀애를 화판에 그대로 옮겨오지 못하는것이 안스럽기만 하다. 그 처녀애는 마치도 내가 자기를 모델로 삼고있다는걸 눈치라도 챈듯이 까닥 미동을 않고 있다. 그 무슨 깊은 사색에 잠겨있는듯 아니면 잔뜩 속상하여 수심에 깊이 빠져있는듯.

나는 휠체어에 비스듬히 기대여진 쌍지팽이를 보면서 나름대로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저 천사는 태여나서부터 불구의 몸이였을가? 아니면 혹시 어느날 느닷없이 교통사고라도 당하여 저렇게 된걸가?)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애의 얼굴에 비낀 슬픔이 한눈에 뚜렷이 보여온다. 아무렴, 저렇게 어린 나이에 저런 모진 불행을 당하였으니 어찌 괴롭지 않고 슬프지 않으랴. 친구마저 곁에 없이 저렇게 홀로 앉아 하루해를 보내자니 얼마나 지루하고 또한 외로울가?

문득 내가 그애의 친구로 되여줄수 있지 않을가 하는 깨달음이 맞혀왔다. 부랴부랴 화구들을 거두고나서 곧추 그애를 향해 저벅저벅 걸음을 놓는다. 그애 가까이로 다가갔는데도 그애는 머리도 돌리잖는다. 원래의 자세대로 눈 한번 깜박 안하고 물속을 들여다보고있다.

(이 물속에 애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그 무엇이라도 있는걸가? 아니야, 애는 틀림없이 자기의 이쁜 모습을 물에 비추어보는거겠지.)
정작 그애를 마주하게 되자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더듬증에 걸린 사람처럼 입만 쩝쩝 다신다. 자칫 말을 잘못 번지였다간 도리여 상대를 더욱 괴롭힐수 있기때문이다. 허니 천만 신중할밖에 없다. 이 말 저 말 고르다가 살가운 말투로 조심스레 묻는다.

"얘야, 네가 심심해 하는것 같은데 내가 어디 친구로 되여줄가?"

그애는 사뭇 의아스러워 하는 눈길로 나를 쓸어보더니 변화라곤 없는 담담한 표정이다.

"아저씨는 그림을 그리시는 화가이죠? 일이 많을텐데 언제 저랑 함께 놀 사이가 다 있겠나요?"

"그런건 다 괜찮아. 오늘은 하던 일을 미루어버리고 너랑 놀아주려는데 너 날 친구로 받아줄수 있겠니?"

"아저씨는 제가 불쌍해보인거죠? 그렇죠?"

흑보석같이 초롱초롱한 눈이 정면으로 내 눈을 바라보고있었다. 아니, 내속마음까지 속속들이 꿰뚫어보고있는듯 했다. 마치도 어디서든지 자기의 말이 옳았다는걸 증명이라도 해내려는듯이.

나는 금시 벙어리가 되여버렸다. 내가 어느 말에서 꼭 실수를 저지른것만 같아 등에서 식은땀이 쫙 내돋는다. 변명거리를 찾느라고 허둥대는데 그애가 뜻밖에도 코를 달아매며 배시시 웃어보이질 않겠는가. 그 웃음이 뭘 뜻하는지 미처 어림짐작을 하기도 전에 처녀애는 수면을 가르키며 해석을 해오는것이였다.

"나한테는 지금 다른 친구가 필요없어요. 봐요, 쟁글거리는 해님이 물에 내려 나랑 함께 놀고있잖아요? 해님이 방글방글 웃으면 나도 따라서 방글방글, 내가 새물새물 웃으면 또 해님도 날 따라 새물새물. 우린 웃기를 좋아하는 쌍둥이 친구래요. 어때요? 아저씨도 부럽지요?"

나는 그만에 할말을 잃고말았다. 내 짐작은 빗나가도 한참이였다. 쌍지팽이나 휠체어만 보고서 나름대로 그애의 속내를 가볍게 진단해버린 자신이 보잘것 없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 대단하구나, 처녀애야, 그렇게라도 불우한 현실을 이겨내는거야.)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속으로 그애가 늘 오늘처럼 유쾌하게 보낼수 있기만을 내심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나의 바램은 또 한번 빗나갔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번 만남이 있은 며칠후 나는 늪가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울고있는 그 처녀애와 맞닥뜨리게 된것이였다.

(아무리 쇠같이 강한 아이라 하여도 필경은 애여린 불구의 몸이 아닌가?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했으니 저런 경우에 띄이고 보면 심리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여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속이 풀릴것 같지 않았다. 내가 건네일 말들이 그애한테 구경 얼마만큼의 위안이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지난번의 교훈을 살려 이번에는 각별히 신경을 조인다. 화구들을 이리로 저리로 옮기면서 그림으로 그릴만한 대상물을 찾는척 꾸며보인다. 그러면서 은근 슬쩍 그애한테로 접근해간다. 했지만 그애는 오도카니 앉아서 나의 움직임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여오질 않는다. 그애의 주의력을 끌려면 방법을 대여야 했다. 돌멩이 하나를 주어서 물속에 "철벙!"던졌다. 동그란 파문이 사처로 퍼져간다. 그제야 그애는 약간 놀라는듯한 눈매로 내쪽을 흘깃 건너다본다. 어줍은 표정을 보여오더니 급급히 눈가에 맺힌 이슬을 훔치는것이였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눈물로 얼룩이 간 얼굴을 가리우고있었다.

"얘야, 너한테 꼭 무슨 번민거리라도 생겼나보지? 네가 이 아저씨를 믿는다면 나한테 속시원히 터놓아봐. 내가 도울수 있는데까지 돕고싶구나."

그애는 입술을 옴찔거릴뿐 응답이 없다.

내쪽에서 진심이 되여 나선다면 어지간히는 따라주려니 여겼댔는데 반응은 예상밖이다. 고마워할 대신 되려 눈에 동그란 물음표를 띄우며 물어온다.

"아저씨는 참 좋은 분이셔요. 그 말씀에 마음이 훈훈해나요. 근데 방금전에 아저씨는 왜서 돌멩이를 물에 던져 내 기분을 잡치게... "
"아차, 거참 안됐구나. 사실은 네 주의력을 끌려구 그랬던거야. 네가 슬피 울고있는걸 보니 그저 스칠수가 없어서...그 아픈 마음을 다독이여주고 싶었구나."

"잉-아저씬 아마도 오해를 한것 같네요. 누가 슬피 울었다고 그래요?"

분명 눈물을 떨구는걸 보았는데 아닌보살이다. 그럼 이건 또 웬 감투끈이람? 어정쩡해서 멀커니 그애 표정만 살피는데 그애가 소리내여 깨드득 웃질 않겠는가. 그럴수록 미궁에 들어서기라도 한듯 더욱 멍청해진다.

(울던 애가 웃다니 제쪽에서 오히려 나를 위안이라도 하려는 심사일가?)

내 의혹을 풀어주려는듯 그애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아저씨는 저에 대해 무척 궁금하시죠? 전 태여나자부터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불구였어요. 학교문에도 못가보았지만 전 글을 읽을줄도 쓸줄도 안다구요. 전에 한 남자애가 이 부근에 살았댔지요. 그애가 나한테 글을 배워줬거든요. 녀자애들처럼 말쑥하게 생긴 애였는데 목소리마저 은구슬을 굴리듯 듣기 좋았어요. 그애는 나를 즐겁게 해주느라고 이 늪에 나와선 물수제비놀이도 함께 놀아주고 또 종이배랑 띄우며 '돼지의 꿈'이라는 노래를 배워주기도 하였댔어요. 간혹 가다가 내 치마에 물을 뿌리여 흠뻑 적셔놓기도 하였는데 그때면 난 물총으로 사정없이 쏴쏴-그애한테 물벼락을 안기거든요. 그 물총은 물론 그애가 사준거였어요. 근데 그애는 이태전에 이 고장을 떠나 먼데로 이사를 갔지뭐예요. 방금전에도 이런 일들을 돌이키면서 너무너무 행복해서 울었던거예요. 때때로는 그애가 그리워져서 울 때도 있긴 하지만요..."

머리속이 멍해졌다. 나는 아무말도 못한채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였다. 눈부신 태양은 저 높은 하늘에 떠서 대지에 골고루 금가루를 뿌려주고있었다. 해님과 "웃기를 잘하는 쌍둥이 형제"라던 그애 말이 상기되여왔다. 하다면 이 처녀애의 마음속에도 하나의 밝은 태양이 간직되여 있는것이 아닐가?!

솔솔 바람이 불어와 수면을 간질러 고기비늘 같은 잔물결을 일으키고있다. 물고기들이 꼬리치며 노는 모습이 언뜰언뜰 보여온다. 나무들도 너울거리며 환회를 전해오고있다. 때를 같이 하여 어데선가 새들이 도레미파쏘라시를 뽑으며 발성련습을 하는 소리와 연한 풀들의 반갑다고 인사하는 소리가 어우러져 내귀전으로 흘러든다. 여태껏 단 한번도 본적 없었던 장면들과 단 한번도 들어본적 없었던 아름다운 선률에 나는 또 한번 멍청이가 되여 우두커니 제자리에 머물러있었다...

꼬박 반년이란 시간의 품을 들여서야 나는 비로소 그 처녀애를 담은 초상화를 완성하게 되였다. 비록 부족한 부분이 많은 그림이였지만 그 그림은 내가 제일 오랜 시간을 끌면서 제일 알심들여 그린 제일 소중한 그림인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후날 나는 더는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수준으로 말해도 원래의 초상화를 뛰여넘을 자신이 없었던것이다. 지금도 내 방의 벽중심에는 단 한폭으로 끝을 맺은 그 초상화가 반듯이 모셔져있다. 이 그림이 걸린후로부터 방안에는 이상이 생겼다. 밝음도가 훨씬 높아진것이다. 맑은 날 흐린 날 할것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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