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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반 타의반' '몽니'…정계를 움직였던 김종필 어록
2018년 06월 24일 08시 22분  조회:185  추천:0  작성자: 말(話)
한국 현대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오랜 정치 연륜에서 비롯된 은유적 화법을 구사했고, 수많은 일화도 남겼다. 김 전 총리의 말은 당대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고, 시대의 정치 현실을 한마디로 꼬집은 명언은 정계를 움직이기도 했다.
 
김종필 전 총리가 지난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 예방 당시 자택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이덕훈 기자
김 전 총리의 대표적 명언은 “자의 반 타의 반”이다. 지금은 일상 생활용어로도 많이 사용되는 이 말은 김 전 총리가 1963년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반대파의 공격을 받고 물러나면서 남긴 말이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에게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라”며 김 전 총리가 사용한 ‘몽니(심술궂게 욕심부리는 성질)’라는 순우리말도 유명하다. 김 전 총리는 당시 “하다가 안 될 때는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후 정계에서는 몽니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됐다.

1980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서울의 봄’이 왔지만 김 전 총리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이라는 고사를 빌어 당시의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의 불길함을 표출했다. 서울의 봄은 6개월 만에 끝났고, 김 전 총리도 정치행위가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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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남겼던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는 말도 회자되는 말이다. 당시 일본과의 비밀 협상 사실이 김 전 총리 주도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적 반발이 일었지만, 그는 자신을 ‘이완용’에 비유하며 한·일 국교 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1964년 3월 28일, 한일회담의 막후 지원 활동을 벌이다 귀국한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이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항상 ‘2인자’의 위치에서 정계를 막후 조정했던 김 전 총리는 1990년 3당 합당 이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언급하며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1980년 신군부 2인자였던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총리를 찾아가 2인자로서의 노하우를 물었을 때도 “같이 걸을 때조차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한 걸음 물러나서 걷는 것”이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권의 맹주로 그는 이른바 ‘충청도 핫바지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1995년 지방선거 유세에서 “경상도 사람들은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 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라고 했다. “지역감정을 부추겼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김 전 총리가 남긴 핫바지론은 이후 충청권 인사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충청 대망론’의 씨앗이 됐다는 의견도 있다.

골프 애호가였던 김 전 총리는 1961년 5·16 이후 “사치스러운 골프를 치게 해선 안 된다”는 일부 의견에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수백 개의 골프장이 들어설 것이고 골프가 생활화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고, 골프장은 유지됐다. 김 전 총리는 골프를 치며 정치권의 많은 인사들과 어울리는 ‘정치 9단’의 면모도 과시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 중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골프 실력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김 전 총리는 후배 정치인들에게 ‘손때를 묻혀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공천에만 신경 쓸게 아니라 지역구에서 유권자들과 악수하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행보나 정치적 상황 등을 암시하는 서예작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1997년 자신의 대선 후원 조직 회보에 신년휘호로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글귀를 보냈다. ‘병아리가 건강하게 부화하고자 알 속에서 나갈 때가 됐음을 알리면 어미 닭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밖에서 알을 쪼아 껍데기를 깨 줘야 한다’는 말로, 모든 일은 시기가 적절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당시 대선 정국에서 적절한 시기의 결단이 필요함을 나타낸 것으로, 이후 김 전 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정권 교체를 이뤘다.
 
1987년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대통령 입후보자 포스터를 직원들이 검토하고 있다./조선일보DB
다음은 고인이 생전에 남긴 어록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1963년, 일본과의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한 뒤)

▲자의 반 타의 반(1963년,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반대파의 공격을 받고 물러나며)

▲춘래불사춘(1980년, 서울의 봄으로 찾아온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기를 우려하며)

▲파국 직전의 조국을 구하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5·16 혁명과 1963년 공화당 창당이라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됐다(1987년, 저서 ‘새 역사의 고동’ 中)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1990년, 3당 합당 이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언급하며)

▲있는 복이나 빼앗아가지 마시라(1995년, 민자당 대표 시절 민주계의 대표 퇴진론을 거론하는 세배객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하자)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 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1995년, 지방선거 천안역 지원유세)

▲줄탁동기(1997년, 자신의 대선 후원조직인 ‘민족중흥회’ 회보에 사용한 신년휘호. 모든 일은 시기가 적절히 맞아야 한다는 뜻)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1997년, 자민련 중앙위원회 운영위에서)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금슬금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1998년, 총리 서리 당시 ‘서리’ 꼬리가 언제 떨어질 것 같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못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오늘날 사람답게 사는 것은 박 대통령이 기반을 굳건히 다져 그 위에서 마음대로 떠들고 춤추고 있는 것이라고(2005년, 박정희 전 대통령 26주기 추도식에서)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2011년,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조선일보 2018.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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