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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장례풍속 >무형문화재 기본내용---성원정리
2012년 07월 15일 12시 47분  조회:3956  추천:2  작성자: 백화상조


조선족 전통 장례풍속 기본내용

 
조선족 전통 장례풍속은 크게 세가지 부분으로 나뉩니다:
1, 초상(初丧), 2, 안장(安葬), 3, 제사(祭祀).
 
첫번째 부분: 초상()
 
1-1속광(属纩):병자가 병이 위중하게 되면 정침에 옮기여 간호하며 병자가 림종하게 되면 가속에서는 병자의 곁을 지키면서 병자가 유언을 남기는 가를 주의깊게 살핍니다. 병자가 혼미에 빠지면 병자의 코밑에 솜 한쪼각 찢어놓고 살피는데 솜털이 움직이지 않으면 병자가 이미 사망했다고 판정합니다.
지금은 병자가 사망하면 의사가 진단하여 확인하며 사망이 확인되면 사망증명서를 제출합니다.
 
1-2수시(收屍)병자가 사망하면 친인으로 부터 손으로 고인의 얼굴을 가볍게 내리 쓸어 고인의 눈을 안연히 감겨 드립니다. 그다음 의사가 소독한 약솜으로 고인의 입, 코구멍, 귀구멍 그리고 홍문을 틀어 막고 얼굴에 면백을 씌웁니다. 조선족 전통가옥의 웃방의 서쪽벽 남쪽켠에 시상(屍床, 칠성판이라고도 하는데 길이 170cm, 너비 30cm인 널판자로 합니다. 널판자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구멍이 일곱개 뚫여져 있어 그런 이름을 가졌습니다.)을 놓고 고인의 유체를 그 우에 모십니다(머리를 남쪽으로 합니다). 그다음 이불로 유체를 덮고 그앞에 병풍이나 만장으로 유체를 가리웁니다. 병풍앞에 임시로 자그마한 령좌를 차려놓고 그우에 고인의 신위, 혹은 유상을 모셔놓고 그앞에 간단하게 술과 음식을 차려놓은 다음 초불을 달아 놓고 향을 피웁니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이 풍속이 여전히 보존되고 있는데 병자가 병원에서 사망했다면 시상은 놓지 않습니다.
 
1-3사자밥(使者饭)큰 쟁반우에 사자밥 세사발, 술 석잔, 초신 세짝과 엽전 세잎을 놓고 이 쟁반을 웃방문 밖의 마루에 놓아 두는데 그 뜻인즉 고인을 데리려 오는 세분의 명부사자를 위로해 주려는 것입니다. 사자밥 세사발은 하루에 한번씩 새밥으로 바꿉니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이 풍속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습니다.
 
1-4고복(皋復)혼을 부른다고도 하는데 생전에 고인과 관계가 비교적 좋은 남자가 구새목, 혹은 지붕우에 올라가 고인의 웃옷을 두손에 받혀들고(왼손으로 에리를, 오른손으로 중간을) 서북쪽 방향을 향하여 먼저 고인의 이름 혹은 시호를 부르고 “옥보-옥보-옥보-”(“復”을 길게 부르면 “보-옥”이 되는데 연변에 口傳되는 과정에서 왜전되였음, 다시 돌아 오라는 뜻)하고 웨칩니다. 소위 혼을 부르는 의미는 사람이 사망하게 되면 그 령혼이 사신의 부름을 받고 사람이 아직 숨이 완전히 지기전에 먼저 사람의 육체에서 탈리하여 집의 룡마루 서북쪽 상공에서 헤매고 있다고 하는데 그 령혼을 다시 불러들여 사람의 몸에 붙여 놓아 그 사람을 다시 소생시켜 보려는 최후의 노력을 상징합니다. 혼을 부른후 혼을 부른 옷을 종이에 싸서 고인의 머리밑에 베여 드립니다.
지금도 이 풍속은 여전히 성행합니다. 병자가 병원에서 사망했다면 병실이나 복도에서 창문을 열고 바깥에 대고 혼을 부릅니다. 혼을 부르지 않았다면 보통 고인한테 책임을 다하지 못한것으로 여깁니다.
 
1-5효복(孝服)혼을 부른후 고인이 여전히 소생하지 못한다면 상주(丧主)는 서둘러서 효복을 바꿔 입습니다. 고인의 장자, 혹은 장손이 상주로 되고 가속은 모두 상제(丧制)가 되며 기타의 친척은 모두 복인(服人)이 됩니다. 상주는 머리에 베천으로 만든 효관을 쓰고, 몸에는 베천으로 만든 효포를 입고, 허리에는 벼짚과 베천으로 꼬아 만든 요질를 두르고 발에는 초신을 신습니다.
지금은 효복이 없어졌습니다. 상주도 기타 상제나 복인과 마찬가지로 옷에 상장(丧章)을 다는것으로 효복을 대체 합니다.
 
1-6발상(发丧)상주가 효복을 바꿔 입은후 일동은 상주를 배동하여 령좌앞에서 곡을 시작하는데 곡소리로 동네에 초상이 났음을 알립니다. 상주와 호상이 상의하여 장례 기일을 결정하며 문서가 부고를 써서 각지의 친속과 친우들에게 통지하며 감댁이 장례비용과 물품을 관리합니다. 호상이 장례의 전반 사무를 장악하고 처리합니다. 장례는 일반적으로 삼일장, 오일장, 칠일장으로 하고 짝수일(双日)로 하지 않는데 사망이란 불길한 일이므로 쌍(双)으로 오지말기를 기원하는 심리일 것입니다. 이날부터 시작하여 출상하는 날까지 상가집에서는 불을 때지 않기 때문에(유체가 부패해 지는것을 공제하기 위해서 입니다) 옆집들에서 음식을 공급합니다.
지금 친인이 사망하면 부고는 기본상 전화로 전달됩니다. 삼일장도 이미 보기 힘들며 대부분 장례는 이튿날에 끝나고 당날로 끝나는 장례도 많습니다. 많은 전통 금기들이 지금은 기본상 없어졌습니다.
 
1-7애호(哀号)호곡(號哭)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족 장례와 제사에서는 고인의 가속과 친속에 따라 각기 부동한 두가지 호곡 규범이 있습니다. 고인의 가속, 즉 상제들이 곡을 할때에는 “애고! 애고!”하는 소리를 내고 고인의 친속, 즉 복인들이 곡을 할때에는 “어이! 어이!”하는 소리를 냅니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이 풍속이 여전히 보존되여 있습니다. 성진에서는 일반적으로 곡을 하는것을 제창하지 않습니다.
 
1-8수령(守灵) 효도관념에서는 부모가 사망하면 자손의 불효로서 그 죄가 심중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상주는 가장 초라한 효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죽물만 먹으며 한시도 령구옆을 떠나지 않으면서 자체로 벌을 받습니다. 밤에도 령구옆에서 밤을 새면서 자정에는 새벽전을 올리는데 친속과 친구들이 상주를 동무하여 함께 밤을 샙니다.
지금도 산촌에서는 이런 풍속이 여전히 보존되여 있습니다. 성진에서는 유체를 빈의관에 보관시킨후 따로 지키는 사람을 남기지 않으며 보통 자기집에 령좌를 차려놓고 밤새 지키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1-9소렴(小殓)렴습이라고도 하는데 습이란 유체를 목욕시키는 절차이고 렴이란 유체에 수의를 입히고 유체를 천으로 싸서 묶는 절차로서 마을의 나이 있는 분들이 책임지고 집행합니다. 집행인은 먼저 고인의 얼굴을 깨끗이 하고 몸을 더운물로 닦고 수의를 입히고 명모를 씌우고 악수를 끼우고 한태의 무명실을 헝클어서 남좌녀우로 고인의 손에 감아 놓으며 버선을 신기고 반함을 집행합니다. 수의는 일반적으로 특제한 것인데 고인이 생전에 아끼던 민족례복으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함이란 고인의 입에 쌀알을 넣는 절차인데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세번에 나누어 쌀알을 고인의 입안에 넣습니다. 쌀알을 넣을때 첫 숟가락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백석이요”, “천석이요”, “만석이요”하고 외칩니다. 그 다음 구슬 세알, 혹은 은전 세잎을 한잎씩 넣는데 차례로 “백량이요”, “천량이요”, “만량이요”하고 외칩니다 (지금은 보통 엽전으로 대체 하거나 혹은 넣지 않습니다). 반함을 하는 의미는 고인에게 명부에 가면서 써야할 식량과 로비를 충분히 마련해 보낸다는 뜻입니다. 반함이 끝나면 입을 다물구고 약솜편과 면백으로 얼굴을 싸고 다섯메터 좌우의 전폭 백포로 유체를 싸고 백포오리(绞带라고도 함)로 고인의 어깨부위, 허리부위, 발목부위 등 세곳을 각각 묶고(다섯곳 묶기도 하고 일곱곳 묶기도 하는데 묶을때 옭매지 않고 오리를 비틀어 묶습니다) 칠성판 우에 지금(地衾)을 펴고 그우에 렴습을 마친 유체를 모시고 그 우에 천금(天衾)을 덮습니다.
지금도 이 풍속은 여전히 성행하는데 조선족 상례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풍속의 하나입니다. 구체 절차는 경우에 따라 많이 조절하고 있습니다.
 
1-10대렴(大殓)바로 입관하는 절차입니다. 조선족 관은 장방형 립방체인데 길이가 180cm좌우, 너비 50cm좌우, 높이 40cm좌우로 합니다. 먼저 림시령좌를 치우고 유체를 옮기고 관을 그 자리에 놓습니다. 입관할때 먼저 관 바닥에 칠성판을 깔고 그우에 지금(地衾)을 펴고 그우에 동여놓은 유체를 넣고 자세를 조절한 다음 고인의 생전의 옷견지들과 아끼던 물건들로 공간을 채웁니다. 조건이 되는 지역에서는 봇나무 껍질로 유체를 싸는데 봇나무 껍질은 부패를 방지하는 공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 다음 입관한 유체우에 천금(天衾)을 덮고, 관 덮개를 덮고, 은정을 박아 봉관하고, 구의(柩衣)로 관을 쌉니다. 그리고  다시 병풍이나 만장을 당겨 놓아 령구를 가립니다.
지금도 토장을 실시하는 산촌 지역에서는 이 풍속이 의연히 보존되여 있습니다. 화장을 실시하는 성진에서는 이미 관이 필요없게 되였는데 빈의관 령구차에서 제공하는 유체 넣는 주머니로 관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1-11명정(铭旌)명정이란 말 그대로 고인의 공덕을 써 넣는 기발입니다. 명정의 재료는 전폭으로 두메터 길이 되는 붉은천으로 하는데 그 우에 흰글로 고인의 시호, 본관, 성씨등을 써 넣습니다. 남성의 시호는 일반적으로 “學生” (번체자 그대로 씁니다)이라고 쓰고 녀성의 시호는 일반적으로 “孺人”이라고 씁니다. 례를 들어 남성의 성이 金씨이고 본관이 金海이면 그의 명정에는 《學生金海金公之柩》라고 씁니다. 녀성의 경우에 만일 그의 성이 李씨이고 본관이 全州라면 그의 명정에는 《孺人全州李氏之柩》라고 씁니다. 명정을 써서 병풍에 걸어 놓는데 출상할때 기발을 만들어 령구앞에서 들고 길을 인도하며 하관할때 관우에 덮어서는 함께 묻습니다.
지금도 이 풍속은 의연히 성행하는데 명정의 규격상에서는 조절이 되여 있습니다. 화장을 실시하는 성진에서는 이미 명정을 기발로 쓰지 않습니다. 지금 쓰는 명정의 규격은 너비 30cm좌우로 하고 길이 150cm좌우로 하는데 쓰는 격식은 위와 같고 흰 석필이나 흰 분필로 써서는 이미 렴습을 끝낸 유체우에 덮었다가 함께 화장합니다.

1-12령좌(靈座)대렴이 끝난후 병풍앞에 령좌를 앉히고 그우에 신위 혹은 유상을 올리고 그 오른편에 혼백 (魂帛, 고인의 령혼이 배였다는 상징적 물건, 삼베천 혹은 백지를 접어서 만듭니다)을 놓습니다. 령좌앞에는 제사상을 차리고 제사상 앞에는 또 향로, 모사를 놓고 또 작은상 하나 놓아 조문하거나 제사 지낼때 술을 붓기 편리하도록 합니다.
지금도 이 풍속은 여전히 성행하는데 순서와 내용은 경우에 따라 많이 조절하고 있으며 혼백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1-13성복(成服)대렴이 끝나면 주부와 상제들이 상복을 바꿔 입는데 전통적으로 상복은 다섯종으로 나누고 복상기는 삼년부터 삼개월 까지 모두 여섯급으로 나눕니다. 그런데 중국 조선족들은 보통 상제와 복인으로만 나누는데 상제만 삼년 복상기를 규정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복인으로 취급하고 복상기가 따로 없습니다. 남자 상제들은 머리에 베천으로 만든 굴건과 상관을 쓰고, 몸에는 베천으로 만든 상복을 입고, 허리에는 벼짚과 베천오리로 꼬아만든 요질을 두르고 발에는 초신을 신습니다. 주부(主妇, 고인의 안해, 혹은 상주의 안해)와 녀자 상제들은 머리와 몸의 장신구들을 풀어내고 머리에 베천으로 만든 수질을 두르고, 몸에는 베천으로 만든 상복을 입고, 허리에는 벼짚과 베천오리로 꼬아만든 요질을 두르고, 발에는 초신을 신습니다. 복인들은 일률로 상장을 다는데 남자상에는 왼쪽에, 녀자상에는 오른쪽에, 남자들은 팔에, 녀자들은 머리에 답니다. 상복을 바꿔 입고 일동이 제사상 앞에서 한참 곡을 한후 성복제를 올립니다.
지금은 상복이 없어졌습니다. 상가에서는 상주이든 상제이든 복인이든 상관없이 일률로 상장을 다는데 남자상에는 왼쪽에, 녀자상에는 오른쪽에, 남자들은 팔에, 녀자들은 머리에 답니다. 장례에 참석하는 녀자손님들은 될수록 흰색의 민족 복장을 입고 남자손님들은 될수로 검은색 양복을 입습니다.
 
1-14조문(吊唁)성복제가 끝나면 조문객들을 접대하기 시작합니다. 남자 상제들은 모두 마당에 나가 상곤(상사에 쓰는 지팡이)을 짚고 조문객들을 맞이합니다. 부상일 경우에는 참대 지팡이, 모상일 경우에는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습니다. 조문객들이 뜰안에 들어서면 남자 상제들은 곧 소리내여 곡을 합니다. 조문객들은 일률로 정문으로 집안을 들어 가는데 조문객이 문앞에 도착하여 기침을 한번 하면 집안에서는 일동이 모두 일어서서 곡을 합니다. 이때 상주와 주부, 그리고 녀자 상제들은 웃방에 서서 곡을 하고 복인들은 아래 정지에 서서 곡을 합니다. 조문객은 집안에 들어선후 묵묵히 제사상 앞까지 걸어가서 고인의 신위 혹은 유상을 향하여 세번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는 상주와 가속을 상대로 한번 맞절을 하면서 안위의 말을 합니다. 조문객은 물러 가면서 부의금을 상가에 주는데 상가에서는 받은 부의금을 일일히《조객부》에 기록합니다.
지금 농촌 장례에서 조문하는 풍속이 기본상 변하지 않았지만 절차와 내용은 많이 조절되여 있습니다. 성진의 장례에서는 조문을 기본상 장의관 고별청에서 단체로 진행 하는데 절차는 국가에서 통용되는 고별식 절차를 기준합니다.
  
1-15상식전(上食奠)아침에 해뜨는걸 기준하여 조전을 올리면서 겸하여 조식도 올리며, 저녁에 해지는걸 기준하여 석전을 올리면서 겸하여 석식도 올립니다. 그 뜻인즉 생시와 마찬가지로 고인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제사상에 먼저 밥과 국, 반찬을 올리고 수저를 놓습니다. 곡소리 가운데서 집사가 밥두껑을 열고 제사상 앞에서 고인의 식사 시중을 드는 동작을 합니다. 그리고는 옆에 시립하고 서 있는데 그 뜻인즉 고인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양치물 한그릇 떠서 올리고 재배하고는 밥과 국, 반찬을 물립니다. 이것으로 그번 상식전은 끝납니다. 매번의 상식전 절차는 기본상 같습니다. 매번에 올리는 음식 종류는 고인이 생전에 즐기던 음식을 기준합니다.
지금 농촌에서는 여전히 이런 풍속들이 보존되여 있습니다. 성진에서도 이런 풍속들을 일부 보존하고 있기는 한데 극히 희소합니다.
 
1-16문상(聞喪)타지방에서 부모의 부고를 받았을 때 즉시 목을 놓아 곡을 하며 한참 곡을 한후에 그 연유를 물어보고는 계속 곡을 합니다. 만약 장례에 가지 못할 형편이면 본지방에서 날자를 맞추어 성복제를 지냅니다.
지금도 산촌에서는 이런 풍속이 보존되여 있습니다.
 
1-17분상(奔喪)타지방에서 부모의 부고를 받고 급히 부모의 장례에 가는것을 분상이라고 합니다. 목적지가 보이면 곧 곡을 시작하는데 곡을 하면서 상가로 달려가며 문앞에 가서는 소리를 더욱 높이고 집안으로 엎어질듯 달려 들어 갑니다. 이때 집안에서도 곡소리를 높여 화답하며 일동이 함께 령구앞에서 목을 놓아 통곡합니다.
지금도 산촌에서는 이런 풍속이 보존되여 있습니다.
 
두번째 부분 안장(安葬)
 
2-1굴광(掘圹)굴심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묘혈을 파는 절차로서 마을의 상조 치상조직에서 책임지고 해결합니다. 조선족은 자고로 음택의 풍수에 대하여 크게 중시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장지를 “山环水抱”의 양지쪽 비탈로 선택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북쪽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동남쪾은 하천에 안겨 있는 양지쪽 재혈부위에서 합당한 자리를 골라 墓穴로 하는데 풍수학 각도에서 왼쪽 산맥은 靑龍을 상징하고 오른쪽 산맥은 白虎를 상징하며 서북쪽에 둘러있는 산을 玄武라고 하고 동남쪽 개활지를 朱雀이라고 하며 주작을 가로질러 하천이 흐르는 것을 명당자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의 하나로 인정합니다. 장지가 결정되면 그 옆에 후토(작은 제단)를 만들고 술과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 산신에게 제를 지냅니다. 그다음 묘혈의 좌향을 정하고 굴심을 시작하는데 일반적으로 묘혈의 길이 중간 연장선이 맞은켠 동남방향으로 멀리 보이는 제일 높은 산봉우리와 일직선을 이루도록 합니다. 묘혈은 일반적으로 길이 2m, 너비 60cm, 깊이 80cm 좌우로 합니다.
지금 이 풍속이 산촌에서는 의연히 성행하는데 절차는 지방에 따라 많이 조절되고 있습니다.
 
2-2상여(丧舆)상여란 조선족 전통장례에서 쓰는 운구용 가마인데 香徒 혹은 灵輀라고도 합니다. 여덟사람이 메는것도 있고 열사람이 메는것도 있으며 또 스므사람이 메는것도 있는데 장례의 규모에 따라 결정합니다.
지금 연변의 산촌마을에 상여가 몇곳 보존되여 있기는 하지만 이제 얼마 가지 못하고 철저히 없어질 추세입니다. 대부분 산촌에서는 운구용 소수레로 대체 되였고 또 운구용 소형 동력차도 있습니다. 성진에서는 상여가 력사무대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 되였으며 지금은 전용 령구차로 대체 되였습니다.
 
2-3천구(迁柩)운관라고도 하는데 집안의 관을 메여 내와서 상여에 올려 놓는 절차입니다. 네명의 역사가 집안에 들어가면 부녀들은 모두 물러 가는데 두가닥의 헝겁띠를 관밑으로 빼내서 량옆에서 네사람이 각기 한쪽 끈씩 잡습니다. 축인이 축문을 읽습니다: “오늘 길진에 천관하오니 그리 알리옵니다!” 독축이 끝나면 네사람이 동시에 관을 들고 머리부분으로 부터 집을 나가는데 천구과정에 문턱을 딛거나 문틀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지금 산촌에서는 이런 풍속들이 여전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성진에서는 유체를 주머니에 넣어 담가로 들어다가 령구차에 실어서 장의관에 옮겨 갑니다.
 
2-4발인(发引):바로 출상하는 절차인데 조선족 전통 장례중의 가장 륭중한 의식입니다. 출상일 아침 조전을 끝내고 천구하여 관을 상여에 싣습니다. 그 다음 발인제를 지내면서 발인축문을 읽습니다: 《(靈輀旣駕,往卽幽宅,載陳遣禮,永久終天)령여가 곧 떠나가니 가시는 곳은 유택입니다. 보내시는 례를 올리오니 영구한 리별입니다.》 독축이 끝나면 상여군들이 소리를 맞추어 상여를 메고 일어납니다. 상여군들은 지휘자의 구령에 맞추어 상여를 두번 들썩여 놓는데 이것으로 고인이 가택과 동네분들과 작별인사를 함을 표시합니다. 그 다음 지휘자가 작은 구리종을 흔들면서 만가(향두가, 혹은 상여소리라고도 함)를 부르는데 상여군들은 이구동성으로 맞소리를 내면서 노래 절주에 맞추어 명정 기발을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전반로정에 만가소리는 그치지 않는데 그 가락이 참으로 슬프고 비감합니다.
조선족 상여행렬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순서로 걸어 갑니다:
제일앞: 명정(고인의 시호, 본관, 성씨를 써 넣은 큰 기발)
그다음: 요여(고인의 혼백과 명함을 담은 작은 가마)
그다음: 만장(고인을 추모하는 만사를 써 넣은 기발)
그다음: 공포(베천 오리를 달아 맨 기대, 길을 인도)
그다음: 상여(령구를 실은 큰 가마)
그다음: 가족(상주와 상제들이 곡을 하며 뒤따름.)
그다음: 조객(장례에 참석한 손님들이 묵묵히 뒤따름.)
마지막: 상차림(아낙네들이 상차림 보따리를 이고 뒤따름.)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로제(路祭)를 지내는데 보통 고인의 친구, 동업자, 혹은 제자들이 주도합니다. 상여를 내려놓고 간단한 제상을 차리고 만가를 읽은 다음 술을 붓고 재배하고 부의금을 냅니다. 로제가 끝나면 계속 길를 떠납니다.
만일 호상(로인이 장수하여 사망한 경우)이면 로정에서 다리를 지나거나 작은 언덕을 만나거나 하면 지휘자가 로비가 모자란다는 구실을 대고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나가지 않습니다. 이때면 가속이나 친속에서 달려나와 상여앞에 절을 하며 술과 돈으로 상여군들을 위로해 주어야 비로서 계속 나갑니다. 이 돈은 일부를 상여비용으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속에 돌려 부의금으로 합니다. 호상에서 장수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히 행운스러운 일이므로 오락분위기를 조성하여 축하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일부 산촌에서는 발인풍속이 어느정도 보전되여 있기는 하지만 절차는 크게 간소화 되였습니다. 성시에서는 발인의식이 일찍이 간단한 고별식으로 대체되여 있습니다.
 
2-5(挽歌)만가는 향두가, 혹은 상여소리라고도 하는데 상여를 메고 장지로 가는 과정에 선소리군과 상여군들이 부르는 로동가로서 호상에서 많이 부르고 액상에서는 보통 부르지 않습니다. 좀 느린 행진 절주로서 원래는 상여군들의 걸음을 맞추기 위하여 부르게 되였는데 기본형식은 선소리군이 작은 구리종을 흔들며 가락을 뽑으면 상여군들이 한결같이 소리내여 화답하는데 그 가락이 참으로 슬프고 비장합니다.
한수를 례로 적습니다;
소리군; 간다간다 나는간다. 이제가면 영별이다.
상여군; 에라! 헤라! 어허럼마 에헤라!
소리군; 여기떠나 어디가냐? 북망산천 내집이다.
상여군; 에라! 헤라! 어허럼마 에헤라!
……………………………….
소리군; 명년가서 청명추석, 제사술을 잊지마라.
상여군; 에라! 헤라! 어허럼마 에헤라!
……………………………….
지금 조선족 전통 만가도 조선족 전통상여와 마찬가지로 력사의 무대에서 기본상 사라졌습니다.
 
2-6안장(安葬)장지에 도착한후 상여에서 관을 내리우고 간단한 제사가 있은후 네사람이 헝겊띠로 관을 듭니다. 그러면 녀자 상제들이 관을 붙잡고 소리높여 통곡합니다. 관을 천천히 광에 넣는데 머리 부분이 서북쪽으로, 발 부분이 동남쪽으로 되게 하고 좌향을 바로 잡습니다. 주부가 공포로 관의 먼지를 닦습니다. 호상이 명정을 풀어 관을 덮습니다. 상주가 옷섶으로 새흙을 네번 나누어 받아서 광중의 네 변두리에 뿌려 넣는데 이것을 “사방토”라고 합니다. 그다음 모두들 일제히 삽을 날려 흙을 묻습니다. 그다음 봉분을 만드는데 형태는 반구모양으로 보기 좋게 하며 봉분의 동남변에 제단을 만들고 성분제를 지냅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흙을 묻으면서 소리를 뽑으며 달구질을 하는데 땅과 함께 평해지면 평토제를 지냅니다. 그리고는 다시 봉분을 만듭니다. 안장이 끝나면 후토를 잘 정리하는데 정해진 그 자리를 다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산촌에서는 이 풍속이 성행하고 있는데 그 절차와 내용은 많이 조절하고 있습니다.
 
2-7묘비(墓碑)묘비는 세우지 않을수도 있고 또 후에 날을 택하여 세울수도 있는데 보통 음력 구월구일 중양절 날로 택합니다. 특수 사정이 있으면 삼삼양춘, 오오단오, 칠칠칠석 등의 날로 택할수도 있습니다. 비문은 일반적으로 한문으로 내리 쓰며 통용격식은 중간에 큰 글로 “故 某某某 之墓”, 이렇게 쓰고 왼쪽에 작은글로 “某年某月某日生”, 이렇게 쓰며 오른쪽에 작은글로 “某年某月某日卒”, 이렇게 씁니다. 그리고 뒤면에 자손들의 이름을 쓸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이 풍속은 아주 성행하고 있는데 그 절차와 내용은 상당히 풍부해 졌습니다.
 
2-8반곡(返哭)안장을 끝내고 빈 상여를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곡을 하는것을 반곡이라고 하고, 혼백을 다시 집으로 모셔 가는것을 반혼이라고 합니다. 하산하여 집에 돌아 와서는 다시 령좌를 차리고 신주를 모시고 그뒤에 혼백을 모시고 일동이 한참 곡을 합니다. 상주가 재배하고 곡을 그칩니다.
지금은 이런 풍속이 없어져서 볼수가 없습니다.
 
2-9면례(缅礼)면례는 원래 돌아가신 부모를 안장하여 십여년이 지난후 길일을 택하여 낡은 묘를 파고 해골을 꺼내여 잘 정리한후 다시 묻는것을 말하는데 일종의 효행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면례가 기본상에서 개장, 혹은 이장과 동의어가 되였습니다. 속담에 “가난하면 이사가고 부유하면 묘를 옮긴다” 고 하였으니 생활에 여유가 있어서 부모의 묘소를 자기의 마음에 드는 명당자리에 옮겨 모시는 것도 일종 미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면례는 일반적으로 묘의 좌향에 근거하여 길일을 택하여 진행하는데 만약 원래자리가 풍수가 좀 못하다고 인정되면 다른곳에 장지를 정하고 묘혈을 파는데 절차는 초상때의 안장과 같습니다. 낡은묘를 팔때 먼저 파묘제를 지내고 파묘축을 읽습니다. 그다음 묘를 째고 해골을 꺼내 참대칼로 깨끗이 긁어서 사람 골격의 순서대로 칠성판에 놓는데 모자라는 작은 뼈는 버드나무 가지로 대체합니다. 그다음 전폭의 백포로 칠성판과 해골을 함께 감싸고 묶은 다음 새로운 관에 넣어(새관을 쓰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새 장지에 가져다가 묻는데 절차는 초상때의 안장과 같습니다.
지금도 이 풍속은 매우 성행하는데 절차와 내용은 지방에 따라 많이 조절되고 있습니다.
 
2-10합장(合葬)합장은 돌아가신 부모를 한자리 묘소에 함께 묻는것을 말하는데 보통 세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홀로 모시던 부모가 사망하면 먼저 사망한 부모의 묘를 째고 그 옆에 묻는 것이고, 둘째는 두곳의 부모의 묘중에서 한곳을 면례하여 가져다가 합장하는 것이며, 세째는 두곳의 부모의 묘를 모두 면례하여 다른곳에 가져다 합장하는 것입니다. 합장은 한개 묘혈에 두개 광을 파는데 두 광 사이에 일정한 두께의 벽을 두고 그 벽 중간에 통로를 내고 채색 사다리를 놓는 경우도 있는데 그 뜻인즉 두분 망령이 자주 래왕하게끔 편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 흙을 묻어 매장하는데 절차는 초상때의 안장과 같습니다.
지금도 이 풍속은 매우 성행하는데 절차와 내용은 지방에 따라 많이 조절되고 있습니다.
 
세번째 부분 제사(祭祀)
 
3-1분류(分类)제사란 제물을 차려놓고 초자연적인 신령이나 선조한테 례를 올려 그들에 대한 숭경을 표시하고 보우를 비는 활동입니다. 고대 동방사람들의 제사 대상은 일월성신, 나라강산, 선조선왕 등이였습니다. 유가사상이 보급되면서부터 선조와 사망한 부모가 조선족 제사의 주요한 대상으로 되였습니다.
조선족 제사는 모두 네가지 류형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1)상제(喪祭); 바로 장례기간과 그후 3년 탈상하기전의 제사활동을 말합니다. 례하면 성복제, 성분제, 우제, 졸곡, 소상, 대상 등입니다. 그외에도 부제, 담제, 길제 등이 있지만 중국 조선족 장례풍속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2)시제(); 동지에 시조의 제사를 지내고, 립춘에 고조이상 선조들의 제사를 지내며, 매계도 중간달(음력 二월、五월、八월、十一월)에 고조까지 선조들의 제사를 지냅니다. 오늘 시제라고 할수 있는 행사는 정월 초하루날의 차례를 들수 있고, 기타의 시제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3)기제(忌祭); 부모가 돌아가신 날을 기일이라고 하는데 소상과 대상을 포함하여 매년 이날에 지내는 제사가 곧 기제입니다. 지금 대상후의 기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4)묘제(墓祭); 원래는 청명, 단오, 추석, 중양에 산에 가서 묘자리가 있는 모든 선조와 부모의 묘를 다듬고 묘제사를 지냈습니다. 지금은 청명과 추석에만 산에 가서 묘제를 지냅니다. 그외에 사당제, 녜제, 년중절제 등이 있는데 우리 중국 조선족 장례풍속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금 조선족 제사풍속은 보존된것이 많지 못하며 순서와 내용은 지방에 따라 많이 조절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볼수 있는 기타의 제사들로는 또 생신제, 사갑제, 석물제 등이 있습니다.
 
3-2지방()지방은 나무로 만든 신주의 대용품입니다. 중국 조선족의 이민사에서 사당을 짓고 선조를 모신 대부호 가문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직 집에 자그마한 祠龛이나 丧门을 만들어 놓고 부모의 신위를 모시다가 제사가 되면 신주는 모두 지방으로 대체하였습니다.

류별에 따른 지방의 서식표

类   别 格    式
고조할아버지 顯高祖考 學生府君 神位
고조할머니 顯高祖妣 孺人 (本贯 姓)氏 神位
증조할아버지 顯曾祖考 學生府君 神位
증조할머니 顯曾祖妣 孺人 (本贯 姓)氏 神位
할아버지 顯祖考 學生府君 神位
할머니 顯祖妣 孺人 (本贯 姓)氏 神位
아버지 顯考 學生府君 神位
어머니 顯妣 孺人 (本贯 姓)氏 神位
남편 顯辟 學生府君 神位
안해 亡室 孺人 (本贯 姓)氏 神位
백부 顯伯父 學生府君 神位
백모 顯伯母 孺人 (本贯 姓)氏 神位
顯兄 學生府君 神位
형수 顯嫂 孺人 (本贯 姓)氏 神位
동생 亡弟 學生 (姓名) 神位
아들 亡子 秀才 (姓名) 之靈
父生前职称 顯考 (职称) 神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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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풍속은 회복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도리대로 말하면 지금의 신주는 모두 유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방이 필요없지만 전통문화를 보호하는 의미에서 지방을 리용한다면 그로서의 리유가 서는 것입니다. 전통적 지방의 서식에서는 남성의 지방에 성명을 쓰지 않지만 지금의 대다수 유가족에서는 고인의 성명을 지방에 써 넣을것을 요구하니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3-3제사상(祭桌)제사에서 먼저 령좌를 앉히는데 보통 북쪽(북쪽이 아니면 북쪽이라고 여깁니다)으로 하고 그우에 신주 혹은 지방을 모시고 그 앞에 제사상을 차립니다.
제상진설 원칙; 紅東白西, 生東熟西, 魚東肉西, 頭東尾西, 左脯右醯, 棗栗李枾.
제상진설 방법; 동쪽은 좌양이요, 서쪽은 우음이라, 생음식은 음이니 우편에 놓고, 익은음식은 양이니 좌편에 놓으며, 과실은 높으니 먼저 놓고 토종따위는 낮으니 후에 놓으며, 육산물은 우이니 먼저 놓고 해산물은 아래니 후에 놓으며, 습윤한건 음이니 우편에 놓고 건조한건 양이니 좌편에 놓습니다.
제상진설 분류; 신위앞 첫줄에는 밥과 국을 놓고, 숟가락, 저가락, 그리고 술잔을 놓으며, 두번째줄에는 반찬류를 놓고, 세번째 줄에는 어육류를, 네번째 줄에는 과일류를 놓습니다.
제물의 개수는 일률로 짝을 지우지 않고 단수로 합니다.
지금은 이 풍속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별로 없으며 절차와 내용은 지방에 따라 많이 조절하고 있습니다.
 
3-4제사순서(祭祀程序)
   진설(陳設)
    (1) 먼저 령좌를 앉히고 신주를 모십니다.
    (2) 령좌앞에 제사상을 진설합니다.
(3) 제사상앞에 모사, 향안 등을 놓습니다.
(4) 자손들이 제사상 왼편에 차례로 섭니다.
   강신(降神) 참신(參神)
(1) 일동이 곡을 시작합니다.
(2) 제주(장손)가 향안 앞에 꿇어 앉아 향을 피웁니다
(3) 제주가 손을 씻고 향안 앞에 꿇어 앉아 잔을 받듭니다.
(4) 집사가 술을 반잔쯤 따릅니다.
    (5) 제주가 세번 나누어 술을 모사에 붓습니다.
    (6) 제주가 삼배하고 물러납니다.
    (7) 집사가 문을 조금 열어 강신을 맞이합니다.
    (8) 제주이하 자손들이 함께 삼배하니 참신입니다. 
   초헌(初獻) 독축(讀祝)
    (1) 제주(초헌자)가 손을 씻고 꿇어 앉아 잔을 받듭니다.
    (2) 집사가 한잔술을 세번 나누어 따릅니다.
    (3) 제주는 반잔만 모사에 붓고 술잔을 신주옆에 놓습니다.
    (4) 집사가 메밥두껑을 열어 놓습니다.
(5) 제주는 조금 물러나 머리 숙이고 꿇어앉아 부복합니다.
    (6) 축관이 축판을 듭니다.
    (7) 제 자손들이 모두 꿇어 앉아 부복합니다.
    (8) 축관이 축을 읽습니다.
    (9) 축이 끝나 일동 일어나고 제주가 삼배하고 물러납니다.
    (10) 집사가 남은 반잔의 술을 모사에 붓습니다.
   아헌(亞獻)
    (1) 주부(아헌자)가 손을 씻고 꿇어 앉아 잔을 받듭니다.
    (2) 집사가 한잔술을 세번 나누어 따릅니다.
    (3) 주부는 모사에 술을 붓고 삼배하고 물러납니다.
   종헌(終獻)
    (1) 근친(종헌자)이 손을 씻고 꿇어 앉아 잔을 받듭니다.
    (2) 집사가 한잔술을 세번 나누어 따릅니다.
    (3) 근친이 모사에 술을 붓고 삼배하고 물러납니다.
   첨작()
    (1) 종헌이 끝난후 또 헌작자가 있으면 첨작이라 합니다.
    (2) 첨작은 많아서 석잔을 초과하지 않습니다.
    (3) 첨작자가 손을 씻고 꿇어 앉아 잔을 받듭니다.
    (4) 집사가 한잔술을 세번 나누어 따릅니다.
    (5) 첨작자가 모사에 술을 붓고 삼배하고 물러납니다.
   합문(閤門)유식(侑食)
    (1) 일동이 곡을 그칩니다.
(2) 메에 숟가락을 꽂고 반찬에 젓가락을 놓습니다.
    (3) 일동이 문밖에 나가 남녀가 서로 마주하고 섭니다.
    (4) 문을 닫고 아홉 숟가락 정도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계문(啓門) 진차(進茶)
    (1) 축관이 기침을 세 번하고 문을 엽니다.
    (2) 집사가 국을 내리고 숙주(냉수)를 올립니다.
    (3) 엄숙히 잠깐동안 묵도합니다.
   사신(辭神) 철찬(撤饌)
    (1) 집사가 수저를 내리고 반개를 덮고 물러납니다.
(2) 일동이 삼배하고 물러납니다.
(3) 신주를 내립니다.
(4) 제사상을 물리고 축문과 지방을 살읍니다.
지금 조선족 제사의 순서는 비교적 혼란합니다. 초헌, 아헌, 종헌의 구별과 제한이 없습니다. 정돈해야할 과제입니다.
 
3-5우제(虞祭)장례가 끝난후의 첫번째 제사인데 초우제, 재우제, 삼우제가 있습니다. 우제는 망령이 금방 신체를 잃고 몹시 불안해 하므로 련속 세번 제를 지내여 안신시킨다는 뜻입니다. 우제는 일반적으로 집에서 지내는데 초우제는 장일 당날에 산을 내린후 해가 지기전에 지냅니다. 초우제를 지내고 상가에서는 모두 상복을 벗습니다. 재우제는 장일후의 첫번째 柔日(乙、丁、己、辛、癸),즉 초우제의 이튿날, 혹은 사흩날에 지내고 삼우제는 재우제후의 첫번째 刚日 (甲、丙、戊、庚、壬)즉 재우의 이튿날에 지냅니다.
지금 장례후 한번 안신제 지내는 것은 보편 현상이지만 련속 세번 우제를 지내는 경우는 극히 드믑니다.
 
3-6안신제(安神祭)길림성 연변지구 조선족 장례풍속중의 안신제는 전통적인 우제와 조금 구별됩니다. 안신제는 장일 이튿날 다시 산에 올라 새 봉분앞에서 지내는데 재철로 기름떡 몇개를 구우면서 기름내를 피운다음(연변에서 왜정시기 향을 얻기 어려운 사정에서 기름내 피우는 것으로 대용하면서 기원했다고 함), 기름떡이 익으면 제단에 올려놓고 상주를 비롯하여 일동이 다 같이 세번 절을 합니다. 전통 안신제에서는 술을 붓지 않고 곡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 산촌에서는 이 풍속이 여전히 보존되여 있는데 절차와 내용은 많이 조절되고 있습니다.
성시의 장의관에서는 유가족들을 위하여 뒤울안에 많은 제단들을 만들어 놓았는데 유체를 화장한후 유가족과 손님들이 다 함께 소위의 안신제를 지냅니다. 고인의 띠에 해당되는 제단을 찾아 골회함, 혹은 유상을 신주로 하고 제단에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상주로 부터 가문의 순서에 따라 나와서 술을 붓고 삼배를 하며 손님들도 모두 나와서 술을 붓고 삼배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사가 끝난후 불을 피워 기름내를 피우면서 혼 부른 옷과 상장 등을 모두 살읍니다. 소위의 안신제가 끝난후 손님들을 모두 식당에 모셔 식사시키는 것으로 장례행사가 모두 끝납니다.
 
3-7소상(小祥)돐제가 바로 소상입니다. 사망일 전날 저녁 해지기전에 집에서 석전제를 지내고 사망일 자정에 새벽제를 지내고 사망일 낮에는 산소에 가서 산제를 지냅니다.
지금도 이 습속은 의연히 성행하며 절차는 경우에 따라 많이 조절하고 있습니다.
 
3-8대상(大祥)두돐제가 바로 대상인데 삼년제 라고도 합니다. 제사의 절차는 기본상 돐제때와 같습니다. 삼년제가 지나면 혼백을 태우거나 묻어 버리고 탈상합니다. 몽상을 벗었다고도 합니다.
지금도 이 습속은 여전히 성행하며 절차는 경우에 따라 많이 조절하고 있습니다.
 
3-9청명제(清明祭)매년 청명, 단오, 추석, 중양이면 산에 올라 묘를 다듬고 제를 지내는데 지금 단오와 중양에는 산에 가지 않습니다. 청명때에는 삽 한자루 가지고 가는데 묘소에 이르러 먼저 후토를 찾아서 산신에게 제를 지냅니다. 그 다음 삽으로 가볍게 봉분을 보수하고 다듬는데 속칭 가토라고도 합니다. 봉분을 잘 정리한다음 제단에 제물을 차려놓고 가문 순서에 따라 나와서 술을 붓고 삼배합니다. 제사가 끝난후 자리를 찾아 일동이 둘러 앉아서 제물을 음복하면서 덕담들을 나눕니다. 
지금 이 습속들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습니다. 성진에서 납골당에 골회함을 보관한 사람들은 이날 골회함을 찾아 내와서는 산비탈 공용 제단에 가서 제사 지내는데 절차들은 많이 조절하고 있습니다.
 
3-10추석제(秋夕祭)추석에는 낫 한자루 가지고 산에 가는데 봉분우에 자라난 풀들을 깨끗이 베여 버립니다. 이것을 속칭 벌초라고도 합니다. 제사 지내는 절차는 기본상 청명제때와 같습니다.
지금 이 습속들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데 절차들은 많이 조절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재료는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에서 작성한 《조선족 전통 장례풍속》 무형문화재 신청재료에 근거하여 번역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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