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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전통상례풍속 해석--안장편
2013년 06월 25일 12시 38분  조회:5664  추천:1  작성자: 玄盛元


현성원(무형문화재<조선족 장례풍속>대표전승인)


두번째 부분 안장(安葬)
 

굴광
(掘圹)굴심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묘혈을 파는 절차로서 전통적으로 마을의 喪與契 치상조직에서 책임지고 해결하였습니다.
우리민족은 주로 고려때 부터 역술풍수에 대하여 독특한 체계를 갖추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고려에서는 道詵국사가 풍수주맥을 이루고 있었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그 주맥을 無學대사가 계승, 발전시키게 되였습니다. 조선태조 이성계의 전주 이씨 가족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이성계의 고조부 穆祖가 그의 부친 陽茂장군이 사망하자 산소를 쓸 명당자리를 찾아 고려팔도를 돌아 다니던 중, 강원도 한지방에서 한 도승의 혼자 하는 말에서 계시를 받고, 5대안에 가문에서 대왕이 나올수 있다는 명당자리를 발견하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소 백마리로 開土祭를 지내고, 금으로 만든 관을 써야 한다는 부가 조건이 있었습니다. 목조는 어려운 살림 형편에서도 지혜를 발휘하여, 白牛(흰소) 한마리를 얻어서 百牛(백마리 소)를 상징시켜 잡아서는 開土祭를 지냈고, 금빛나는 귀리짚으로 관을 엮어서는 금관을 상징시켜 부친을 모시고 그곳에 정중히 묻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오늘 한국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에 있는 준경묘(濬慶墓)입니다. 그때로 부터 제 5대에 와서 전주 이씨 가문에는 과연 이성계라는 비범한 인물이 나타나 고려의 최고 장군자리까지 올랐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조선을 세우고 태조가 되였던 것입니다. 그후 이씨 조선은 27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518년간 유지되였습니다.
오늘에 와서도 한국에서는 중대한 선거에 즈음하여 일부 候選人들이 풍수인을 내세워 명당자리를 찾아서는 부모나 조상의 묘를 이장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민족은 지금도 음택의 풍수를 상당히 중시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민족 장례풍속에서 장지 선택에는 엄격한 풍수학적 표준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장지를 “山环水抱”의 양지쪽 비탈로 선택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북쪽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山环), 동남쪾은 하천에 안겨 있는(水抱) 양지쪽 룡맥부위에서 합당한 자리를 골라 墓穴로 합니다. 풍수학 각도에서 묘의 왼쪽 산맥을 靑龍이라고 하는데 官運을 상징하고, 묘의 오른쪽 산맥은 白虎라고 하는데 財運을 상징하며, 묘의 서북쪽, 즉 묘뒤에 둘러있는 산을 玄武라고 하는데 陰德을 상장하고, 묘의 동남쪽, 즉 묘앞의 개활지역을 朱雀이라고 하는데 人爲, 즉 사람의 노력을 상징하며, 주작을 가로질러 하천이 흐르는 것을 명당자리의 가장 중요한 필수조건으로 인정하는데, 그것은 물은 천지의 氣를 고착시키는 공능이 있고, 생명력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장지가 결정되면 그 옆에 후토(산신에게 제 지내는 제단)를 만들고 술과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 먼저 산신에게 제를 지냅니다. 그 다음 묘혈의 좌향을 정하고 굴심을 시작하는데, 일반적으로 묘혈의 길이 중간 연장선이 맞은켠 동남방향으로 멀리 보이는 제일 높은 산봉우리와 일직선을 이루도록 합니다. 묘혈은 일반적으로 길이 2m, 너비 60cm, 깊이 80cm 좌우로 합니다.
 

상여
(丧舆)상여는 장례에서 쓰는 運柩 공구로서, 중국의 옛 문헌 《禮記雜記》에서는 柩輿, 喪車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고, 주희의 《家禮》에서는 靈車로 기록되여 있으며, 우리민족의 《四禮便覽》, 《喪禮備要》등에서 처음으로 喪輿라고 기록되여 있습니다. 李縡《四禮便覽》에 따르면, “大與는 가난한 사람들이 구하기 힘들므로 喪與를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쓰여 있습니다. 《世宗實錄》, 《純宗國葬錄》에 따르면 大與는 국장에 사용되는 기구였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알수 있는바, 喪與란 기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大與를 소형화한 小與인 셈입니다. 그런데 《世宗實綠》에서도 大與로 기록되여 있는걸로 미루어 보아, 喪與는 조선중기 이후에 와서야 산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화혁명 이전까지 중국의 조선족들은 그래도 기본상에서 조선반도에서 가지고 들어온 전통 장례제도를 실행하였는데, 마을마다 丧舆契와 같은 민간 상조 조직들이 있었으며, 집체로 자금을 내여 丧舆를 만들어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편벽한 곳에 상두막을 지어놓고 보관하였으며, 도감을 한 사람 선발하여 마을의 장례행사를 관리하게 함으로써, 일단 마을에서 사람이 죽게되면 굴심을 할 사람과 상여, 그리고 상여를 멜 사람들까지 통일적으로 배치하였습니다.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좌상어른은 마을에서 진행되는 매 차례의 장례의식을 엄격히 감독하였으며, 집집의 제사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지도하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풍을 다스리고, 족풍을 단정히 하고, 민족의 우량한 전통이 대대로 전해지도록 보증 하였습니다.
우리민족은 종래로 장례를 한 가정의 사사로운 일로 여긴것이 아니라, 마을을 단위로 하는 한 공동체의 공동한 대사로 여기고 공동히 협조하여 처리하였습니다.
우리민족 상여문화에서는 우리민족 전통 생사관이 집중적으로 표현되는데, 아래에 여섯개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 상여결구, 둘째; 꼭두각시, 세째; 채색그림, 넷째; 상여놀이, 다섯째; 상여행렬, 여섯째; 상여소리 등입니다.

 
첫째; 상여결구:
아래에 상여의 상관 문제에 대하여 길림성 룡정민속박물관에 수장된 조선족 상여를 모델로 설명을 드립니다.
조선족 상여의 주체는 목제 구조로서, 제조 공예상 쇠못을 쓰지 않으며, 기본상에서 무음식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1,상여틀; 굵기가 6×18㎝이고, 길이가 5m인 두개의 방목으로 너비가 60㎝의 담가 모양의 틀을 짭니다. 상여틀 밑에 다섯개, 혹은 여섯개의 멜채를 같은 거리로 가로 놓는데, 매 멜채의 길이는 2m좌우입니다. 출상할때 관을 상여틀 중간에 올려 놓고, 매 멜채의 량쪽 말단에 붉은 천띠를 매여 전체 멜채를 련결하며, 상여꾼들이 상여를 멜대 붉은 천띠를 어깨에 올려놓고 두손으로 앞의 멜채를 잡습니다. 한개 멜채 량옆에 상여꾼을 각기 한명씩 둘수도 있고 두명씩 둘수도 있습니다.
2,운각; 운각이란 관을 보호하는 장치로서, 상여틀 위의 관의 네변에 각기 높이 60㎝의 기둥을 세우고, 규격이 250×60㎝인 네모틀을 받들게 하며, 네모틀 앞뒤에 각기 반경이 50㎝인 반원형 나무판자를 고정시켜 룡수판과 룡미판으로 하며, 앞뒤 룡수판과 룡미판을 세개의 나무오리로 련결시켜 고정시키고, 그위에 천, 혹은 나무 합판으로 덮어 운각지붕으로 하며, 운각지붕 중간에 두마리의 운룡이 머리를 앞뒤로 서로 몸체를 꼬고있는 조각을 고정시켜 놓습니다.
3,陽蓋帳; 양개장은 천으로 하는데, 색갈은 임의로 선택할수 있고, 양식은 임의로 장식할수 있으며, 3m길이에 1.5m너비로 하며, 운각의 앞뒤에 각기 X형으로 대나무 오리를 고정시키고 그위에 양개장을 펼쳐서 고정시킵니다. 상여의 양개장은 해볓과 비물을 막는 작용을 하며, 또 가마의 화개처럼 고귀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조선족 상여의 결구를 놓고 볼때 의심할바 없이 고대 왕공귀족들이 출행할때 쓰는 가마를 모방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마는 앉음식이지만 상여는 누움식이므로 규모상 상여는 가마보다 크고 깁니다. 사람들은 상여를 특별히 화려하게 장식하는데, 서민으로서 한평생 고생만 하면서, 평소에는 가마에 앉아 볼 형편이 못 되였지만, 죽어서 나마 한번 가마에 모시여 귀족의 신분으로 저승에 보냄으로써, 청빈하게 죽은 망혼을 위로해 주려는 뜻도 있습니다.
 

둘째
; 꼭두각시:
조선족 상여에는 여러개의 꼭두각시를 달아 놓았는데, 조선족 전통 나무인형 조각예술이 바로 이 꼭두각시에서 기원하였다고 합니다.
상여 꼭두각시의 작용은 주로 두개 부류로 나눌수 있습니다;
1,상징성, 례하면 염라왕, 신선, 운룡…등입니다.
2,실용성, 례하면 새모양의 걸개…등입니다.
상여 꼭두각시의 형태는 주로 세개 부류로 나눌수 있습니다;
1,인물형; 례하면 염라왕, 명부사자, 악공, 시중꾼 동자…등입니다.
2,동물형; 례하면 운룡, 봉황, 천학, 神鳥…등입니다.
3,식물형; 례하면 목란꽃, 국화꽃, 매화꽃, 련꽃…등입니다.
조선족 상여 꼭두각시는 주로 네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저승길을 인도하여 망령이 기로에 잘못 들어서는 것을 방지,
2,망령을 보호하여 사악한 기운의 침습을 방지,
3,망령을 안무하여 공포심리와 불온정 정서를 극복.
4,망령을 시중들어 순리롭게 황천 목적지까지 도착.
우리의 선인들은 사람이 죽어도 령혼은 살아 있다고 믿었으며, 사망이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고, 저승이란 령혼들이 모여 사는 다른 형태의 세계라고 인정하였습니다.
 



세째
; 채색그림:
조선족 상여 운각의 네면에는 다채로운 채색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주요하게 목란꽃, 국화꽃, 매화꽃, 련꽃 등 四君子 꽃도안입니다. 이것으로 사람이 죽은 후에 더욱 고귀해 지고, 더욱 행복해 지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조선족 상여 룡수판에는 일반적으로 룡머리 도안이 그려져 있고, 룡미판에는 일반적으로 어룡, 혹은 학의 도안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떤 어룡 도안에는 “魚化龍”이란 글이 씌여져 있는데, 중국《后汉书-李膺传-登龙门》에 기재된 잉어가 룡문을 뛰여 넘고 룡으로 되였다는 전설을 뜻하는듯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인들은 죽어서라도 출세하고 번신할것을 꿈꾸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조선족 전통 리념상에서 학은 장수를 상징하는 길조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상징하는 조선족 상여에도 학의 도안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선인들이 죽음을 일종의 장수, 혹은 영구한 장수로 인정하였다는 것으로 추정할수 있습니다.
 

넷째
; 상여놀이:
1,상례놀이 역사;
  장례식 때 歌舞를 행하는 풍습은 일찍이 《隨書-高句麗傳》에 기재되여 있는데 "初終哭泣 葬則鼓舞作樂以送之(초종때에는 울며 곡하고, 출상때에는 북치고 춤추며 노래하면서 죽은이를 떠나 보낸다)" 고 하였습니다. 또 이같은 역사서의 기록뿐만 아니라 통구의 무용총(舞踊塚)이나 안악3호분 벽화의 악대행렬도와 무악도(舞樂圖), 그리고 팔청리(八淸里) 벽화고분의 잡기도 등에서도 장례의식에 가무나 잡기, 주악으로써 장송(葬送)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도 문무왕 13년(673년) 김유신을 장사지낼 때 군악고취(軍樂鼓吹) 100명을 보내 주악하며, 금산원(金山原)에 장사지냈다고 합니다. 또 일본서기에도 가무로써 장례의식을 행하였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가무가 죽은 사람에 대한 장송의례로서 쓰여진 것은 유교식 상례 이전부터 자리잡혀 있었습니다. 이같은 유습은 조선시대까지도 계속되여 당시 유학자들의 논란이 되어 왔던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성종(成宗) 5년(1474년) 정월조에는, 성악(聲樂)과 배우백희(排優百戱)로써 이른바 시체놀이(娛尸)하는 삼남지방의 풍속을 예조에서 논단할 것을 상계(上啓)하고 있고, 성종 20년(1489)에는 부녀의 장례에 시체놀이(娛尸)하지 못하도록 금하는 유시를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례에서 시체놀이(娛尸)하는 풍습은 전형적인 유교사회로 일컬어지던 조선중기까지도 계속 유지되였습니다. 민간에서는 이러한 풍습이 상여놀이로 발전하여 전해지면서, 각 지방마다 장례가 있게되면 나름대로 상여로 놀이를 벌렸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해마다 지방에 따라 상여축제가 열리는데, 이미 전통적인 문화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각 팀에서는 특제한 상여를 메고 집체적으로 여러가지 정채로운 기교를 표현함으로써 죽음의 공포의식에서 벗어나, 죽음의 례사로움과 오락성, 그리고 죽음과 생활과의 불가분리성을 강조합니다.
죽음에 대한 존중은 기실 삶에 대한 중시로 되며,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로 됩니다. 사망한 부모님들을 미안하게 저승으로 보내신 분들, 그러시고 서도 자기의 소위 찬란하고 가치있는 삶을 꿈 꾸신다면, 어서 깨달으시고 부모님들 망령앞에 진심으로 참회해야 할것입니다. 그래야만 자식들의 리해와 존중, 그리고 자신과 자식들 사업의 발전을 얻을수 있습니다. 자식이란 기실 부모와 조상들이 당신에게 베푸시는 음덕의 충실한 집행자입니다. 문화적 관점에서 부모와 조상들이 구천에서 당신에게 내리시는 벌책과 은혜는 대체로 자식들을 통하여 실현되는 것입니다.
 

2,
상여놀이 내용;
옛날에는 호상(好喪)시에 이른바 “상여놀이”라 하여, 출상 전날 밤에 상주의 친구들이 빈 상여를 메고 “상여소리”를 하면서,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동리를 돌아다니는 놀이가 있었습니다.
출상 전날 밤에는 또 동리사람들이 모여서 오락을 벌리기도 하였는데, 이는 비통해 하는 상주를 웃기기 위하여, 주로 재담이나 노래, 그리고 우스운 병신춤을 추기도 하였습니다.
상여놀이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랐습니다. 례로서 황해도에서는 북과 장구를 치면서 상여를 메고 망자의 아들 딸의 집 등을 돌고,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는 아들 딸, 친척, 친구의 집 등을 도는데, 골목길에 횃불을 달아 놓아 골목길을 훤히 밟게 합니다. 그런데 상여가 공동우물을 지날 때에는 우물을 덮고 지나가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을을 돌아다닐 때 상여 뒤를 따라가던 유족들은, 자기 집에 다가가면 미리 가서 상여를 맞이하고, 제물을 차려놓고, 곡을 하며, 상여꾼에게 술을 대접합니다. 경상도에서는 집밖에 넓은 터나, 집 마당에서 북을 치고 〈상여소리〉를 하는가 하면, 전라도에서는 상여꾼들이 출상연습을 겸해서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놀이에서 〈상여소리〉는 대체적으로 죽은 이의 인품이나, 성격, 공덕 등을 나타내거나 망자의 유언을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상여놀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사람에게 볏짚을 씌워 말이 되게 하고, 상주를 태워 돌아 다니다가 친구들이 번갈아 가며 상주를 희롱하는 연기를 하기도 하고, 웃기는 등, 노래와 재담과 춤으로 여흥을 합니다. 례로서 “진도다시래기” 경우, 첫째과장에는 가상제(假喪制)가 상제 앞에서 희롱하고 웃기는 놀이를 하고, 둘째과장에서는 소경인 거사와 중, 사당의 삼각관계에 얽힌 이야기를 풍자한 놀이를 하고, 셋째과장에서는 “상여소리”와 북춤, 그리고 허튼춤을 마구 춤니다.
총적으로 이와 같은 마을에서의 상여놀이는, 유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通過儀禮)였다고 할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마을사람들의 공동체적 삶의 의지가 담겨있는 예능이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다섯째
; 상여행렬:
상여행렬이란 바로 발인행렬이며, 전통적인 출상대오입니다. 상여행렬이 출발하기전에 먼저 발인의식을 진행하는데, 조선족 전통 장례의식에서 가장 륭중한 의식입니다. 출상일 아침에 조전을 끝내고, 관을 천구하여 상여에 싣습니다. 그다음 상여 운각을 올려 놓고, 양장을 펼쳐 고정합니다. 상여앞에 병풍을 펼쳐놓고, 그 앞에 간단히 제사상 차려놓고, 발인제를 지냅니다. 상주가 술을 붓고 세번 절을 끝내면 축인이 발인축문을 랑독합니다;”靈輀旣駕,往卽幽宅,載陳遣禮,永決終天(령여가 곧 떠나시니, 가시는 곳은 유택입니다. 보내시는 례의 올리오니, 하늘끝에 영결입니다.)” 발인축문이 끝나면 상여꾼들이 구령에 맞추어 상여를 메고 일어섭니다. 상여꾼들은 또 구령에 따라 먼저 상여를 세번 가볍게 들석여 놓는데, 망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올리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상징합니다. 그 다음 지휘자가 작은 구리종을 흔들며 구슬픈 목청으로 상여소리를 뽑는데, 상여꾼들은 한소리로 화답하며 걸음을 뗍니다.
조선족 상여행렬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순서로 걸어 갑니다:
제일앞: 명정(铭旌-고인의 시호, 본관, 성씨를 써 넣은 붉은 기발)
그다음: 요여(腰舆-령여, 고인의 혼백과 명함을 담은 작은 가마)
그다음: 만장(挽幛-고인을 추모하는 만사를 써 넣은 여러 색갈의 기발)
그다음: 공포(功布-긴 베천 오리를 달아 맨 기대, 길을 인도)
그다음: 상여(丧舆-령구를 실은 큰 가마)
그다음: 가족(家属-상주와 상제들이 곡을 하며 뒤따름.)
그다음: 조객(唁客-장례에 참석한 손님들이 묵묵히 뒤따름.)
마지막: 상차림(祭物-아낙네들이 상차림 보따리를 이고 뒤따름.)
일부 지방에서는 요여의 앞뒤에 각기 운삽(雲翣)과 불삽(黻翣)을 든 저승무사를 안배하는데, 그들은, 뿔이 난 도깨비 탈을 쓰고 저승길을 방해하는 악귀를 쫓거나 잡아 죽이는 춤을 추면서 망자의 혼백을 장지까지 호송합니다.
상여가 마을 어구에 이르면 로제를 지냅니다. 로제는 보통 망자의 친구, 제자, 동업자들이 주도 하는데, 상여를 내리고, 간단한 제상을 차리고, 만사를 읽은 다음, 술을 붓고 삼배 한후 부의금을 냅니다. 로제가 끝나면 상여는 다시 출발합니다.
만일 호상(好喪-망자가 장수한 노인)일 경우에는 오락의 분위기가 비교적 짙은데, 상여가 굽이돌이, 올리막 길, 다리, 큰나무 등을 만나게 되면 지휘자는 상여소리로 저승길 로비가 모자란다고 노래 하면서,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앞으로 나가질 않습니다. 그러면 상주는 황망히 상여 앞에 달려 나와 상여꾼들에게 절을 하면서 술과 돈으로 상여꾼들을 위로 합니다. 이때의 상여꾼들은 저승에서 고용한 役士의 신분이므로 神에 해당합니다. 상주의 위로를 받고 상여는 다시 출발하는데, 그 돈은 보통 사후에 상여 사용비로 “丧舆契” 장부에 기록됩니다.
 

여섯째
; 상여소리:
상여소리는 향두가(香徒歌), 혹은 만가(挽歌)라고도 하는데 상여를 메고 장지로 가는 과정에 선소리꾼과 상여꾼들이 부르는 로동가로서 호상에서 많이 부르고 액상에서는 보통 부르지 않습니다. 좀 느린 행진 절주로서 원래는 상여꾼들의 걸음을 맞추기 위하여 부르게 되였는데, 과거 저목장에서 목도꾼들이 큰 나무를 메여 나르며 부르던 목도소리와 그 목적이 같습니다. 상여소리 부르는 기본형식은 선소리꾼이 작은 구리종을 흔들며 가락을 뽑으면 상여꾼들이 한결같이 소리내여 화답하는데 그 가락이 참으로 구슬프고 비장합니다.
아래에 두수의 상여소리를 례로 적습니다;
(선소리꾼이 한 소절씩 부르면
상여꾼들이 《에요!데요! 어럼마!데에요!》로 화답합니다.)
 
北邙山이 머다더니 門前山과 통했고나
黃泉길은 험악하야 많은사람 옹위하에
난생처음 가마타고 마지막길 떠났니라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진다 서러마라
명년삼월 돌아오면 너는다시 피련마는
우리인생 한번가면 다신오질 못한단다.
 
銘旌功布 앞을서니 황천길이 분명코나
앞동산에 두견새야 네가나를 불렀느냐
뒷동산에 접둥새야 너도나를 기다리냐
두견접둥 우지마라 내가지금 가고있다.
 
인제가면 언제올가 돌아올날 기약하자
東方花開 春風時에 꽃이피면 다시올가
말머리에 뿔이나면 구실삼고 다시올가
까마구가 희어지면 어물넘쩍 다시올가
석돌에다 진주심어 싹이나면 다시올가
쪼약돌을 모아모아 높다랗게 광산되야
정을맞아 차에실려 덜렁덜렁 돌아올가
평풍안에 그린장닭 두나래를 활활치며
나를잡아 잡수시오 말을하면 돌아올가.

북망산천 도착하면 사토집을 짛어놓고
송죽으로 울을삼고 두견접동 벗이되야
바람소리 들으면서 쓸쓸함을 달래이며
저하늘의 별과함께 해와달을 보내리라.

자손들이 늘어서서 평토제사 지낼적에
魚東肉西 左脯右醯 삼색과실 채려놓고
꼽싹꼽싹 절을하며 放聲大哭 측은타만
에라인젠 그만해라 나도갈길 급하니라.

어화둥둥 식구들아 저화둥둥 벗님네들
살아생전 많이먹고 늙기전에 많이놀며
부모자식 어루면서 재미있게 잘사시오.

 
상여소리 [진도만가]
(선소리꾼이 한 소절씩 부르면
상여꾼들은 《애-애-애-애- 애애애 애애야!》로 화답합니다.)
 
삼천갑자 동방삭은 삼천갑자 살았는데,
요네나는 어찌하여 두갑자도 못사느냐?
 
어렸을때 들었니라 노인들이 하는말이
사람죽어 묻힌다는 북망산이 머다더니,
어느결에 닿았느냐 북망산이 눈앞이다.
 
흰구름도 돌아가고 날짐승도 피해가는
으슬으슬 저승길을 무서워서 어찌갈까?
 
못가겠네 못가겠네 무서워서 못가겠네
한번가면 다시못올 저승길을 못가겠네.
 
염라대왕 부르시니 어느어명 거역할가
내차라리 갈바에는 당당하게 가야하지.
 
비단금포 수의입고 금의환향 금띠띠고
육진삼베 몸에감고 일곱매로 동여서는
오동관에 편히누워 꽃상여에 들려서는
명정공포 앞세우고 진도만가 들으면서
흥얼흥얼 이승떠나 조상동네 찾아갑제
명년가서 청명추석 제사술랑 잊지마소.
 
 
안장
(安葬)장지에 도착한후 상여에서 관을 내리우고, 간단한 제사가 있은후 네사람이 헝겊띠로 관을 듭니다. 그러면 녀자 상제들이 관을 붙잡고 소리높여 통곡합니다. 관을 천천히 이미 파 놓은 광에 넣는데, 머리 부분이 서북쪽으로, 발 부분이 동남쪽으로 되게 하고, 좌향을 바로 잡습니다. 주부가 공포로 관위의 흙과 먼지를 닦습니다. 호상이 명정을 풀어 관을 덮습니다. 상주가 옷섶으로 새흙을 세번 나누어 받아서 광중에 골고루 뿌려 넣는데, 이것을 “사방토”라고 합니다. 그 다음 모두들 일제히 삽을 날려 흙을 묻습니다. 그다음 봉분을 만드는데, 형태는 반구모양으로 보기 좋게 하며, 봉분의 동남변에 제단을 만들고 성분제를 지냅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흙을 묻으면서 소리를 뽑으며 달구질을 하는데, 땅과 수평으로 평해지면 평토제를 지냅니다. 그리고는 다시 봉분을 만듭니다. 안장이 끝나면 후토를 잘 정리하는데, 정해진 그 자리를 다시 움직이지 않습니다.
 

반곡
(返哭)반혼(返魂)안장을 끝내고 빈 상여를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곡을 하는것을 返哭이라고 하고, 혼백을 다시 집으로 모셔 가는것을 返魂이라고 합니다. 하산하여 집에 돌아 와서는 다시 령좌를 차리고 신주를 모시고 그 뒤에 혼백을 모시고 일동이 한참 곡을 합니다. 상주가 삼배하고 곡을 그칩니다. 이것을 卒哭이가고 합니다. 혼백은 집에 자그마한 祠龛이나 丧门을 만들어 놓고 모시다가, 삼년제를 지내고 탈상한 후에 묻거나 살음니다.
 

면례
(缅礼)우리민족은 전통적으로 사람의 령기는 뼈에 슴배여 있다는 관념이 있었는데, 그리하여 부모가 사망 하였어도, 그들의 뼈만 잘 건사 한다면 능히 저승의 부모들과 감응교류를 할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緬禮란 원래 장례를 다시 지낸다는 뜻으로서, 돌아가신 부모를 안장하여 십여년이 지난후 길일을 택하여 낡은 묘를 째고 해골을 꺼내여 그 색갈과 해화정도를 살펴보아 그 색갈이 노랗고 해화가 잘 되였다면 잘 정리한후 다시 그자리에 묻고 다시 장례 지내는 것을 말하며, 만일 해골의 색갈이 검고 해화가 잘 되지 않았다면 산자리가 나쁘다고 인정되여 다른곳에 자리를 선택하여 묻는데, 遷墳, 혹은 移葬이라고 하였으며, 풍수지리에 따른 일종의 효행이였습니다.
지금은 도로나 기타건설의 수요에 의하여 移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담에 “가난하면 이사 가고 부유하면 묘를 옮긴다(穷搬家,富迁坟。)”고 하였으니, 형편이 허락 되시면, 좋은 명당자리를 찾아 부모님들을 옮겨 모시는것도 아름다운 소행이라 하겠습니다.
면례는 일반적으로 묘의 좌향에 근거하여 길일을 택하여 진행합니다.
면례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순서: 면례하여 새롭게 산소를 쓸 경우에는 먼저 새로운 산자리를 정하고 굴심을 하는데, 절차는 장례때와 같습니다. 면례하여 화장할 경우에는 빈의관에 련계하여 할수도 있고, 또 자체로 태울수도 있습니다.
두번째 순서: 낡은 산소를 찾아 먼저 후토에 제를 지냅니다. 이것은 땅을 파 헤치고 초목을 베기 전에 먼저 산신한테 인사하고 허가를 받는다는 상징적 절차입니다,
세번째 순서: 무덤앞에서 간단히 제를 올리고, 축인이 파묘축을 읽습니다. 면례에서 파묘축은 필수입니다.
네번째 순서: 가속에서 상주나 대표인이 먼저 세삽을 뜹니다. 그다음 역공들이 삽으로 무덤을 헤치고 관의 천개널을 뗍니다.
다섯번째 순서: 한 사람이 광안에 들어가 적토를 청리하고, 해골을 골라 주어 올리면, 우에서 한사람이 그것을 받아서 칠성판 우에 사람 골격의 순서에 따라 놓습니다. 만약 시체가 완전히 해화되지 않았다면 참대칼로 뼈에 붙은 썩은 살을 깨끗이 긁어 냅니다. 칠성판은 두께 2㎝의 널판자로 180㎝×30㎝의 규격이면 충분합니다. 화장할시에는 종이합판으로 대신할수도 있습니다.
여섯번째 순서: 해골을 점검해 보고 모자라는 부분은 버드나무 가지로 대체합니다. 그 다음 백포로 칠성판과 해골을 함께 감쌉니다.
일을 끝내고 헤친 무덤자리에 흙을 세삽 넣어 줍니다.
낡은 묘비는 낡은 묘광에 넣어 묻어 버리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일곱번째 순서: 새롭게 산소를 쓰는 경우, 해골을 감싼 칠성판을 광에 묻고 봉분을 만들고 성분제를 지내는데, 기본 절차는 장례때와 같습니다.
화장하는 경우, 보통 골회를 받아서 산이나 강물에 뿌리여 처리한후, 안신제를 지냅니다.
 

합장
(合葬)보통 음양학설에서는 “以南爲陽, 以北爲陰, 陽以東始, 陰以西高, 男左女右…”등을 기본원칙으로 합니다. 그런데 우리민족 저승문화에서는 “陰以西貴” 기본원칙에 근거하여, 또 “西高東皐, 西貴東卑, 西考東妣, 西男東女, 右男左女” 등 구체원칙들이 만들어 졌습니다.
해가 남쪽에 치우쳐 있으므로 남쪽이 陽이 되고, 북쪽이 陰이 되는 것이며, 天上의 日月은 동쪽을 시작으로 하고, 地上의 江河는 서쪽을 시작으로 하므로, 陽界에서는 동을 爲首로 하는 것이고, 陰界에서는 서쪽을 爲上, 爲貴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민족 이념상의 저승세계 중심도 저 멀리 서북쪽 하늘 가에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민족 사당에서는 령좌를 앉힐때에 반드시 북쪽켠에 남향으로 설치하며, 조상들의 위패는 서쪽을 高位로 하여 동쪽으로 내려가며 차례로 모시며, 조부 조모의 경우, 조부를 서쪽에, 조모를 동쪽에 모십니다. 평소 제사상 차리고, 紙榜 쓰는 방법도 기본적으로 이 원칙에 기준합니다.
합장은 돌아가신 부모(顯考妣)를 한자리 묘소에 함께 묻는것을 말하는데, 전통적으로는 우리민족 저승문화의 “西高東皐, 西考東妣” 원칙에 근거하여, 현고비들의 머리를 모두 북쪽을 향하게 하고, 현고를 서쪽에, 현비를 동쪽에 모셨습니다. 이렇게 되여 우리민족의 오래된 합장묘는 보편적으로 ”男右女左”가 된 것입니다.
오늘에 와서 사망한 부모님들의 골회함을 합장 할시에 구경 어느 원칙을 따르는 것이 정확하냐? 하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전통원칙이냐? 혹은 자유원칙이냐? 하는 문제만 존재하며, 전통원칙이든 자유원칙이든 중요한것은, 늦어서 나마 이미 사망한 부모님들에게 성의를 다 하여, 아래 자손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합장에는 보통 세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홀로 모시던 부모가 사망하면 먼저 사망한 부모의 묘를 째고 그 옆에 묻는 것이고, 둘째는 두곳의 부모의 묘중에서 한곳을 면례하여 가져다가 합장하는 것이며, 세째는 두곳의 부모의 묘를 모두 면례하여 다른곳에 가져다 합장하는 것입니다.
합장은 한개 묘혈에 두개 광을 파는데, 두 광 사이에 일정한 두께의 벽을 두고 그 벽 중간에 통로를 내고 채색 사다리를 놓는데, 그 뜻인즉 두분 망령이 자주 래왕하게끔 편리하게 한다는 자손들의 지극한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그다음 흙을 묻어 매장하는데 절차는 초상때의 안장과 같습니다.
돌아가신 두 부모님의 골회함을 릉묘에 합장할 경우에도, 위의 방법을 참작하여 조절하며 행하시면 되겠습니다.
합장을 끝내고 성분제 지낼때는 합장축을 읽습니다.

   죽음에 대한 존중은 기실 삶에 대한 중시로 되며,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로 됩니다. 사망한 부모님들을 미안하게 저승으로 보내신 분들, 그러시고 서도 자기의 소위 찬란하고 가치있는 삶을 꿈 꾸신다면, 어서 깨달으시고 부모님들 망령앞에 진심으로 참회해야 할것입니다. 그래야만 자식들의 리해와 존중, 그리고 자신과 자식들 사업의 발전을 얻을수 있습니다. 자식이란 기실 부모와 조상들이 당신에게 베푸시는 음덕의 충실한 집행자입니다. 문화적 관점에서 부모와 조상들이 구천에서 당신에게 내리시는 벌책과 은혜는 대체로 자식들을 통하여 실현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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