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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수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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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호특집】(5) 사신과 악수할번 했었네(신철호)
2008년 01월 12일 18시 52분  조회:4555  추천:106  작성자: 두만강수석회

【탐석기】


                        사신과
악수할번 했었네

 

  2006 6 8일에 본인 소속의 두만강수석회에서는 연변박물관에서 1 연변두만강수석전시회를 가졌다. 그때의 성황을 예쁜 강정숙기자가 능란한 필치로 9일지연변일보문화면에수석-령적인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대문짝 같이 써서 올려놓았으니 또다시 뭐라고 구구히 혀를 팔락거리는것은 로반앞에서 도끼를 다루는것과 별다름이 없다.

그뒤 2~3일이 지나서 일찍 연변에 와서 장애인돕기 자선사업을 수년간 해온적이 있은 한국의 김부식선생이 어떻게 곤명에서 소식을 듣고 전위해서 늦은 걸음으로 찾아왔다. 그는 오른 다리가 심하게 불편한 몸이지만도 미술, 음악 등에 조예가 깊을뿐만아니라 시창작에서도 장끼가 있어 어떤 문학상을 경력까지 있다. 더구나 수석에 대한 흥취가 극히 농후하여 연변에 있을 자가용을 끌고 연변의 산천을 샅샅이 누비며 수석문화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이곳에다이상야릇한풍조를 파종해놓았으니 두만강수석회의 고문님인 김대현선생이나 초대회장 리흥국선생이나 후일 알고보니깐 다들 원체 수석에 취미가 있던차에 김부식선생과 서로 의기투합하여 수석소장이니 수석탐지니 하는이상야릇한풍조에 더욱 깊게 빨려들어갔던것이다.

김부식선생이 오니 공동언어가 더욱 풍푸해져 문안인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탐석이야기가 쏟아져나왔고 계획도 바로 제정되였다. 날자는 6 16, 그대로 소뿔도 단김에 뽑으라 했으니 아무튼 시도 때도 없이 탐석이야기만 나오면 곧추 신들리는것이 수석회 성원들의 하나같은정서병이다. 물론 이런 병명이 의학에서 사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정된 탐석지는 왕청현 배초구경내에 있는 만천성저수지 아래이다. 가야하는 연변에서 두만강 다음으로 강인데 배초구에서 남쪽으로 10여리 떨어진 곳에 땜을 쌓아 가야하를 막고 저수지를 만들어 이름이 만천성이다. 탐석하려면 왕청쪽으로보다도 도문시의 석현진쪽으로 가는편이 지름길인데 연길에서 버스를 타면 석현까지 한시간 미달이며 석현진에서 택시 타고 삼도구촌의 뒤골짜기까지 25분정도 가면 목적지이다. 발전때문에 땜으로부터 10여리 되게 내쳐 산굴을 뚫고 물길을 돌려놓은통에 물이 줄어든 강곬에는 도처에 돌밭들이 드러나있었다. 두만강보다 오석의 질이 좋고 돌의 변화가 다양한것이 특징인데다가 아주 오지중의 오지라 처녀지나 진배없다.

흥분에 젖어들어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간을 언뜻언뜻 보내는 사이에 목적지에 이르고보니 시침이 9 반쪽에 다리를 드리우고있는중이였다. 김대현, 김봉세, 김부식, 김학송, 리광인, 석문주, 본인 등이 돌밭에 이르자 석신제같은것은 망각하고 제마끔 배낭들에서 갈구리니 못뽑이니 쇠막대니 하는 가관의 도구들을 꺼내들고 분주히 탐석에 달라붙었다.

본인에게는 처음 발을 들여놔보는 돌밭인만큼 어구부터 벌써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수만원어치에 달하는 명석이 곧바로 한메터 눈앞에 묻혀있으면서 나의 발견만을 기다리고있는듯싶어 남이야 어찌하든지 곁눈도 아니 팔고 열심히 돌밭을 뒤지는데 10시부터 강옆길에서 체격이 그닥잖은 승용차가 을씨년스러운 싸이렌소리를 귀찮게 울려대며 자주 오르내리잖겠는가. 더위먹은 황소 달보고도 헐떡거린다고 괜히 호림방화검사차인줄로 오인하고 피우던 담뱃불만 자주 끄느라 아깝게도 여러 개비를 멋없이 랑비를 했다. 싸이렌소리는 실상 12시부터 수문을 여니 조심들 하라는 고시인데 시내사람들에게야 그런 소리가 소방차나 구급차 또는 경찰차, 군용차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으니 물을 뽑는다는 뜻을 사람들중에서 뉜들 알아들으랴. 황차 수석에 넋을 바친 상황이라 포탄이 터진다 해도 기울일 사람이 있을것 같잖았다.

오전에는 수석이 웬만해서는 현신하지 않는법이라 소품따위들을 둬개 줏고보니 점심때가 다되였다. 12시를 몇분 앞두고 갖추어온 음식들을 꺼내들고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데 김부식선생과 리광인선생이 북면해 앉고 김대현선생과 김봉세선생이 서면해 앉고 김학송선생과 본인이 남면해 앉고 석문주선생이 동면해 앉아 김봉세선생이 갖고온 포도주를 돌려마셨다.

 술이 금방 한순배 돌았는데쏴쏴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강한 비린 냄새가 불시에 코를 자극해왔다. 북면해 앉은 김부식선생이물이야, ……”하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얼버무리는 소리를 내뱉았다. 돌아보니 20메터되나마한 뒤까지 강곬이 마구 시꺼멓다못해 흡사 먹물을 터쳐놓은듯 했다.

뛰여라, 뛰여

란리판에 존경어가 먼저 머릿속에서 도망가버렸다. 리광인선생이 늘여놓은 밥그릇을 잽싸게 싸안고 4~5메터밖에 있는 기슭우로 뛰여오른후 다들 배낭이니 도구니 주은 돌들이니 닥치는대로 안고 저마끔 기슭우로 뛰여올랐는데 짧은 거리인데도 무릎아래 가랑이가 이미 젖어버렸다. 식사때 뒤에 기대고 앉았던 한키 높이의 집채같은 바위가 그뒤 10분도 못되여 서서히 물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홍수가 아니라 해일이야, 해일이야. 그저 물란리가 아니지. 허참 난생에 처음 당해봐.”

밑으로는 아름드리 돌들을 굴리고 우로는 뿌리채로 빠친 통나무들을 끌고 도도히 흐르는 감탕빛 강물을 보며 김대현선생이 혀를 차기만 했다.

허참 모짝 물귀신이 될번했구나.”

리광인선생도 담이 어지간히 떨어졌던 모양이였다.

흉흉하게 사품치며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모두들 얼굴이 나간듯 굳어져버렸다. 문자 그대로 망연자실이다. 본인도 어려서 큰물이 지는것을 한두번 겪은바가 아니다. 비록 어른들의 손목을 붙잡고 발치에서 구경했었지만도 어른들이 예전에 불난 뒤끝은 있어도 뒤끝은 없다고 자주 하던 말뜻이 무슨 뜻인지 알만했다.

진정을 한후 다시 점심상을 차려보니 김대현선생이 모처럼 열심히 담궈온 약주 한병이 냄새도 못피워보고 수장되였고 사모님이 정성껏 갖춰보낸 고추장이 고스란히 통에 담긴채로 하백의 수라상으로 진상갔으매 본인의 밥곽덮개 두개가 리광인선생의 손에 미처 걸리지 못하고 물에 떠내려갔다. 그런대로 나머지 밥과 석문주선생이 갖고온 찰떡으로 뒤맛이 텁텁하기 그지없는 스산한 점심요기를 대충 끝냈다. 없는 입맛을 다시며 손을 씻자고 물가에 와보니 글쎄 밥곽덮개 두개가 고스란히 붙어서 풀대에 걸려 눈앞에서 하느작거리지 않겠는가. 그놈들도 아마 살아도 같이, 죽어도 같이라는 공생동사의 원리를 터득한 모양이였다. 실은 급히 터진 물이라 가운데는 빠르고 기슭이 느린 관계로 둘이 손잡고 기어코 주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온것이였다.

석신제를 지냈어야 하는데……”

아침에 책상에다 축문을 두고왔지, 귀신은 경문에 막힌다했는데.”

대충 배를 불리니본질들이 드러나 김학송선생과 리광인선생사이에서 한담들이 슬슬 풀려나왔다.

오후의 탐석계획이 약주와 고추장통을 따라간 바람에 한시가 되니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귀로에 오른수밖에 없었다. 오던길은 지름길이였으나 강너머로 멀거니 바라만 볼수밖에 없었다. 쫓던 지붕 쳐다보듯 한다는 말이 나같이 김빠진 사람에게 과연 적중하였다.

설상가상으로 귀로라고 찾아접어드니 촉나라로 가는 길이였다. 구석기시대 원시인들이나 다녔을법한 구불구불한 산중턱길인데 년전의 가랑잎들이 저들 령지인듯 거리낌없이 무릎치게 길을 덮었고 어떤 골짜기에는 눈들이 녹지 않은채 청석판처럼 누워있었다. 김부식선생은 원체 불편한 몸이라서 모두들 걱정하여 한마장쯤 가다다 다리쉼을 하곤 하다보니 본래 기껏 싫은 귀로가 처지지가만 했다. 앉아쉬는 모습들을 버릇없이 형용한다면 어김없는 락태한 고양이 상이였다. 그래도 마음들만 한창 커가는 가둑나무잎마냥 파랳다.

복수를 해야지.”

물도 벼루기 뜀이여, 사날 지나면 줄겠지 .”

다음 토요일에 기어이 와봐야겠소.”

칠팔리 되나마나한 길을 산길로 걷다보니 십리나 되게 한시간반을 허비하면서 걸어서야 도문에서 왕청을 가는 포장도로로 나왔다.

그후 며칠 지나 김대현, 김봉세, 리광인 세분 선생이 복수의 일념들을 안고 왔다가 물이 한치도 줄지 않아 헛걸음을 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밸김에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도문의 신기동에 가서 하루해를 보냈단다나, 한강서 뺨맞고 서빙고서 흘기기였다. 신기동은 돌밭이 크지만 소문 난지 오랜 산지라 연길과 도문에 있는 수석인들의 무차별련합토벌 당해 지금은 거의 고갈상태이다.

그럭저럭 여름이 자리를 털고 물러가고 학수고대한 “10.1”련휴가 드디여 속시원한 복수의 기회로 찾아왔다. 5일과 8일에 두번 거쳐 봉창에 정신들을 빼앗겼던 보람으로 큰물 뒤에 면모가 일신한 돌밭에서 저마끔의 수확을 거뒀다. 언제나 돌밭에 들어서면 눈이 완전히 투시경으로 되고마는 김봉세선생이 값가는 산수석을 주었고 본인은 랑아산을 닮은 소품석 하나와 누워있는 짐승같은 물형석 하나를 얻었다. 물론 수수한 성과작들은 언급하지 않고 하는 말이다.

장마끝이란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몸서리치는 일이다. 하지만 수석인들에게 있어서 장마끝은 노다지를 캐기에 가장 안성맞춤이다. 돌에 묻은 물때가 모짝 벗겨져 색상이나 형태를 구분하기가 좋고 돌들이 나타나 수석자원을 무진하게 보충해주기때문이다. 그러니 매번 두만강이나 가야하에 탐석가서는 한다는 소리가 농민들에게 얻어맞기가 십상인한번 큰물이나 져야 할텐데.” 또는소낙비가 사날 끊지 말고 퍼부었으면 속시원하겠는데.”하는 타령들이다.

하나님이시여, 불쌍한수석미치광이들의 간절한 념원을 삼가 가슴 깊이 아로새기고 명년부터 민생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홍수를 해마다 세번씩만 터쳐줍시사, 돈수재배하나이다.

 

                                                            (2006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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