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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할머니의 유산
2020년 06월 12일 09시 04분  조회:198  추천:0  작성자: 오기활


                            필자 전복선 
해마다 청명이면 나는 조상님들의 산소에 가지 못하는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기분이 착잡하기만 하다. 게다가 간밤에 밤새도록 내린 궂은비가 마침 하늘에 계시는 조상님들의 눈물처럼 생각되여 청명이면 누구보다도 할머니가 각별히 그립다.
아마 내가 예닐곱살쯤 되던 해 청명이였을것이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앞마당 터밭에서 마늘을 심다가 제사 상차림을 들고 산소에 가는 동네분들을 보고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때엔 생활이 하도 가난한 때라 혹시라도 산소에 가야 만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할머니에게 “우리도 저 사람들처럼 맛있는 음식을 해가지고 산소에 갔으면 얼마나 좋겠어요.”라고 철없이 말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나중에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죽어서 저 뒤산에 묻히면 너희들도 저 사람들처럼 제사상 음식을 챙겨들고 산소에 갈게다. 그 때에 너도 해마다 청명이면 날 보러 올거지?” 하며 웃으시였다.
그 때 나는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 잘 모르면서도 약속을 하듯이 해마다 청명이면 할머니를 보러 꼭꼭 산소에 가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 그 때 내가 할머니와 주고 받았던 그 얘기와 약속이 내 가슴을 아프게 파고 든다.
할머니 최금순은 18세 꽃나이에 할아버지와 결혼하셨다.
결혼 첫날, 할아버지 얼굴을 처음 봤을 때 할머니는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밤새껏 바자굽에 나가 달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죽이며 우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홍역 후유증으로 얼굴이 울퉁불퉁한 곰보로 되여 가까이에서 보면 거의 흉할 정도였다.
이팔청춘 꽃나이에 할머니는 얼굴이 예쁘고 손재간이 뛰여나 동네방네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할머니는 동그스름한 얼굴에 버들잎 같은 입술,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 그리고 항상 웃는 듯한 실눈을 갖고 있었다. 행인들은 저 멀리서 할머니가 오시면 보고 또 보면서 할머니가 지나간 뒤에도 머리를 돌려 한참씩이나 뒤모습을 돌아보군 했단다.
 
                                                                 최금순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가 비단결 같은 마음이여서 결혼 후 한번도 소리 내여 다툰적이 없었고 할머니는 한평생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행복하게 산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할가, 두분은 결혼한 후로 두분 만의 사랑과 금슬이 넘쳐서인지 열두 자식을 낳으셨는데 열한 자식은 알지도 못할 병으로 요절되고 요행 외독자로 아버지(전원상) 한분 만을 겨우 키워냈다 한다.
나는 어릴 때 할머니로부터 자식을 잃은 슬픈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철없는 나이여서 할머니의 마음속에 깊이 묻힌 아픈 상처를 가늠할 수 없었고 할머니에게 아무런 위로의 말도 올리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나를 낳아준 어머니보다도 나를 금이야 옥이야 하며 애지중지 키워준 할머니에게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혜롭게 살림살이를 하는 것도 할머니에게서 더 많이 배웠다.
할머니는 사리가 밝고 마음이 착하셔서 동네분들을 돕는 것을 락으로 생각하셨다. 무엇보다 바느질 솜씨가 각별히 뛰여난데서 동네 이웃들의 옷이랑 예쁘게 지어 드리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다.
그 때 할머니가 희미한 전등불빛 아래서 어린 나한테 한뜸한뜸 배워준 바느질 솜씨 덕에 어른이 된 지금 옆사람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써먹고 있다.
할머니는 삼베천도 아주 깔끔하게 잘 짜셨다.
할아버지가 봄철에 심은 삼을 가을철에 베여 오시면 할머니는 그것을 가마에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다시 오리오리 실을 뽑아서 삼베천을 짜셨다. 삼껍질을 벗길 때면 저녁을 먹고 온집식구가 마루에 몰려 앉아서 어른들의 구수한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웃고 떠들며 밤을 새웠다. 그 때 헐망한 초가집에서 생활했지만 화목하고 행복하게 보낸지라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할머니는 가지각색의 음식도 잘 하셨는데 특히는 증편을 빚는 솜씨가 뛰여났다.
동네 잔치상에 증편이 필수로 올랐는데 증편을 빚는 일은 무조건 우리 할머니의 몫이였다.
증편은 발효가 잘 되지 않으면 보송보송하게 부풀어나지 않아서 만들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쌀가루 발효는 온도가 너무 높거나 너무 낮아도 안되고 시간도 적당하게 잘 맞추어야 한다. 보리싹을 물에 풀어 수분을 적당하게 맞추어 잘 이긴 쌀가루에 고루고루 섞은 다음 따뜻한 가마목에 놓고 이불을 덮어서 6시간 정도 발효시켜야 하는데 할머니는 냄새를 맡고 발효완성도를 짐작하시고 판단했는데 그야말로 프로급이였다.
할머니가 만든 증편에 예쁜 연지를 찍는 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였다. 나는 가는 나무가지를 십자형으로 쪼개서 염색물을 묻혀서 동실하게 부푼 증편우에 찍었는데 매번 증편을 할 때마다 연지를 찍으려고 가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언제나 가마뚜껑을 열겠는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군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사랑에 넘치는 눈길로 나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시군 했다.
증편 외에도 할머니는 오그랑죽, 호박죽, 설기떡, 찰떡, 기름떡, 옥수수잎떡, 떡국 등 다양한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을 잘 만드셨는데 할머니는 색다른 음식을 하실 때면 나에게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기 쉽게 가르쳐 주셨으며 늘 나의 음식 솜씨를 자랑하셨다.
우리 집에는 떡 방아가 있었는데 매번 떡을 할 때마다 나와 오빠가 숨을 할딱거리며 방아를 찧었다. 할머니는 방아돌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무 막대기로 방아돌의 쌀가루를 골고루 휘저어 주셨다. 방아를 찧을 때 맥이 풀려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기도 했는데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의 동년시절은 너무나 가난해서 1년에 추석과 설에만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생선은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다.
그 때 요행 생선이 생기면 아껴 먹느라고 소금에 푹 절여서 밥알만큼씩 먹었는데 생선을 특별히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생선반찬이 있으면 뼈까지 꼭꼭 씹으시면서 “바다물고기는 썩어도 맛있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선을 먹을 때마다 메아리처럼 귀가에서 울린다.
할머니는 어려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셨기에 글에는 눈뜬 소경이였다.
그 때 생산대에 로인독보조가 있었는데 로인들에게 글자를 가르쳐 드렸다. 할머니는 저녁에 독보조에서 낸 숙제를 할 때면 늘 나에게 물으셨는데 나는 그 때마다 제법 선생인 듯 우쭐했다.
동네분들에게서 귀동냥으로 들었는데 보도원 선생님이 “원상(아버지 이름)이네 집 애들은 할머니를 닮아서 공부를 잘하는 것 같아요. 원상의 어머님은 독보조 로인들중에서 년세도 가장 많으신데도 숙제를 제일 잘해요. 그 년세에 당의 기본로선이랑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암송해 오십니다.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라고 할머니를 칭찬하더란다.
할머니는 년세가 드셔서 무릎 관절도 아프고 허리도 휘였지만 주말마다 독보조에 가시는 일만은 한번도 빼놓지 않으셨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헐떡이는 모습을 보기가 안쓰러워서 동생과 함께 할머니를 밀차에 앉히고 독보조 문앞까지 모셔다 드리기도 했다.
“우리 부모는 녀자는 공부해서 쓸 데 없다면서 아들만 공부시켰다. 그래서 우리 사남매중 남동생만 학교에 다녔고 우리 세 녀자들은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나도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 마당에 가서 창문 너머로 강의하는 소리를 엿듣기도 했다. 그 때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을 맘속으로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지금 너희들은 얼마나 행복하냐! 세상이 좋아서 공짜로 공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할매를 보더라도 너들 열심히 공부해서 꼭 대학에 붙어야 한다.”
할머니의 가슴 시린 말씀은 우리 형제가 열심히 공부하게 된 동력이 되였다.
우리 4남매를 대학공부 시키려고 어머니(오인옥)는 생산대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한편 사시장철 두부장사를 하셨다.
할머니는 매일 새벽 3시에 어머니와 함께 일어나서 콩 갈고 콩물을 짜고 부엌에서 한시간 남짓이 손풍구를 돌렸다.
할머니는 우리 4남매를 모두 업어 키우셨고 손주들의 뒤바라지 하시느라 고생한데서 늘그막에 허리가 거의 90도로 휘였다. 손주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74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헤여지던 그 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986년 2월말, 개학날이 되여 집을 떠나려고 하는데 할머니는 나무 지팡이에 의지하여 내 손을 꼭 잡고 수염수염 논두렁까지 기어코 나오셨다.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는 이슬 맺힌 눈으로 그윽히 바라보시더니 뼈밖에 남지 않은 갸냘픈 몸을 내 몸에 기댄 채 한참 락루하셨다. “늙은이들의 일은 누구도 모른다. 이게 너를 보는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네 손을 놓고 싶지 않구나. 시간이 늦겠다. 이젠 그만 가보거라. 공부 꼭 잘해야⋯”라고 하시면서 말끝을 맺지 못하셨다.
나는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 얼굴을 닦아 드리면서 “할머니 여름방학이 되면 또 올겁니다. 그 때까지 건강하셔야 돼요”라고 위로했다.
눈물고인 할머니의 그 애달픈 눈빛, 허물어지듯 논두렁이에 주저앉아 나의 뒤모습을 응시하며 손짓하시던 할머니,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추운 겨울날에 조각상처럼 오래오래 그 자리에 앉아서 백발을 흗날리시면서 뻐스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손을 젓던 할머니⋯
하늘이 무심키로 그 날이 할머니와의 마지막 작별이 될 줄이야!
나는 고향에 가면 할머니가 앉아 계셨던 그 논두렁을 보면서 손녀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선히 떠오른다.
생전에 할머니는 딸 자식이 없는 것을 몹시 서운해 하셨다.
할머니는 딸이 없어서 어디에 놀러다닐 데도 없고 속이 타도 시원히 털어놓을 데도 없다는 말씀을 몇번이나 하셨다. 그래서 특별히 손녀인 나한테 정이 많으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어머니보다도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꿈이였다. 할머니가 좋아 하시는 생선도 실컷 사드리고 할머니가 맛보지 못하셨던 귤이랑, 복숭아랑 바나나랑 사드리면서 할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나의 꿈이였다. 그런데 할머니는 나의 대학졸업도 지켜보지 못하고 총총히 떠나셨다. 손녀가 번 돈을 일전도 써보지 못하고 손녀가 해 드리는 반찬 한번도 드시지 못하고 산더미 같은 가난에 짓눌리시다가 하늘나라에 가셨다.
나의 할머니 최금순은 나에게 땅이나 집 같은 재물보다도 훨씬 값진 유산으로 ‘강한 생활력, 알뜰한 살림살이, 긍정적이고 남을 돕는 것을 락으로 하는 옳바른 삶’을 유산처럼 남기셨다. 할머니는 ‘가난뱅이 마음의 부자’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도 어언 34년 세월이 흘렀다. 할머니가 후세에 남겨주신 유산은 나의 생활의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슴배였고 할머니의 유산을 광동이라는 타향에서도 굳건히 지켜가며 해외에서 공부하는 딸에게도 전수하고 있는 나다.
하늘 나라에 계시는 할머니 사랑합니
/전복선
길림신문 ]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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