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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기의 '리수진' 김수철 전"(련재 27)
2020년 12월 30일 09시 50분  조회:187  추천:0  작성자: 오기활
                제 3 부 ; 신문잡지로 읽는 김수철
2, 자연의 대문을 열어가는 사람(1)
첫눈이 내린다. 목화송이 같은 소담한 함박눈이 너울너울 춤추며 수줍은듯 살며시 대지에 안긴다. 허나 여기ㅡ춘성의 전등불 눈부신 한 회장에는 철 아닌 따사라운 봄빛이 무르 녹는다. 당중앙에서 마련하여 주신 과학의 새봄을 맞아 길림성식물학회학술론문발표회에 참가한 과학공작자들의 얼굴마다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였다. 아. 그얼마나 애타게 바라던 학술론문발표회인가, 사회자의 소개에 이어 60고개를 바라보는 한 조선족과학공작자가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온건한 걸음으로 연단에 오른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얼굴엔 굵은 주름살이 잡혔으나 중등키에 균형잡힌 강단있는 몸매, 탐구적 예지로 빛나는 두 눈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그는“마가목의 현미경 감별 연구” 등 세편의 론문을 한조목 한조목 천천히 읽다가는 높은 정밀도로 그려진 쾌도를 짚어가며 조리 있고도 투철하게 해석한다. 식물연구에서의 그의 독창적인 견해와 투철한 분석은 장내가 떠나 갈듯한 한차례 또 한차례 박수를 받는다. 론문발표가 끝나기 바쁘게 과학공작자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연단 앞에 모여든다. 그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그의 성공적인 론문발표를 진심으로 축하 한다.
그가 바로 길림성식물학회의 유일한 조선족리사이며 연변농학원 농학계식물학교연실주임인 김수철선생이다. 변강의 이름없던 한 보통교원이 어떻게 이런 파문을 일으키게 되였겠는가, 그 비결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독자들이여! 우리 함께 그가 걸어온 근 30년간 비범한 로정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자.
 
1
연변산촌의 그윽한 청취를 자아 내는 7월의 용신감자골.
명주필 같은 아침 안개가 꿈자리를 툭툭 털고 기염기염 일어나더니 아담하게 자리잡은 마을을 어루만지며 버들방천을 야산으로 고요히 헤염쳐 간다.
수탉이 홰치는 소리에 잇달아 통나무굴뚝들에선 흰연기가 련이어 머리를 풀며 하늘로 타래쳐 오른다. 이윽고 마을 웃 쪽에 자리잡은 오통집 정지문이 열리다.
“오늘만이라도 좀 쉬여요, 온 밤 앓음소리로 날을 밝히시고도…”
녀인의 애원에 가까운 말소리다.
“괜찮소. 새벽에 뜬 뜸이 효과를 보는 것 같소”
김선생은 신끈을 단단히 졸리고 나서 채집통을 둘려멘다.
“말씀이 휴양이지…”
안해의 목소리는 푹 젖었다.
“허허, 여보 엊저녁 서쪽골집 아바이 말씀을 못 들었소? 양목산꼭대기에서 화태닥나무를 본적이 있다고. 그럼 내 오늘만 갔다오지.”
김선생은 화기 있게 말하며 어느새 성큼 사립문을 나섰다.
“아버지, 밥!”
둘째 아들녀석이 깡충깡충 뛰여오며 고사리손으로 밥보자기를 내민다.
김선생은 그의 머리를 정답게 쓰다듬으며 사람좋은 웃음을 머금고 안해에게 고개를 끄떡해 보였다.
들에 나서니 간밤의 고통이 씻은듯 가셔지고 정신이 한결 말쑥해 진다. 길가에서 방긋방긋 웃는 각 가지 들꽃, 록음방초 우거진 버들방천밑으로 자갈을 굴리며 돌돌 흐르는 맑은 내물, 아름다운 목소리로 서로 내기하며 노래부르는 산새들…
아, 대자연은 그얼마나 청신하고 황홀한가.
한식경이나 걸어 양목산기슭에 이른 그는 왕모래알을 굴리며 퐁퐁용솟는 샘터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목이나 추겨야지.” 그는 채집통을 옆에놓고 무릎을 끓은 다음 두손으로 바가지를 만들어 샘물을 떠선 꿀꺽꿀꺽 마셨다. 뼈속까지 찡 저려들게 시원하다. 채집통을 다시 메려고 멜끈을 들자 시야에 확 안겨드는 끈에 씌여진“1950”년이란 글발!
“허허, 너도 나를 따라 벌써 10년을 일했구나.” 이렇게 입속말로 되뇌이는 그의 머리속으로 지나온 일들이 조수처럼 밀려 든다.
 20여세의 혈기 왕성한 청년으로서 그가 식물학계에 들어선 것은 1950년도였다. 식민지반식민지반봉건의치욕스런 모자를 벗어 동댕이친 새중국은 갓 돌이 지났다. 그 당시 중국에는 계통적인 식물학 교재가 없었고 연변의 식물학분야는 거의 공백이였다. 비록 대학을 일년간 다니다가 생활난으로 중퇴하여 기초가 박약한 그였으나 이런 현실에 직면한 청춘의 가슴속에서는 애국의 열정과 민족적자존심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4천 년의 찬란한 문화로 빛나온 조국이다. 근로용감, 슬기와 지혜로 세상에 이름 떨친 중화민족이다. 근 백년래 뒤떨어진 조국의 과학사업을 위해 내가 맡은 식물분야에 이 자그마한 존재나마 깡그리 바쳐 가리라.”
사람들의 사회적실천만이 외계에 대한 인식의 준확성을 검증하는 기준이다.
그렇다. 지식을 얻으려면 현실을 변혁시키는 실천에 참가 해야 한다. 이때로부터 그는 채집통을 메고 나섰다. 교학후의 여가에 일요일과 명절날에 그리고 여름방학에 들로 야산으로 심산속으로 식물을 찾아 부지런히 다녔다. 도대체 연변에는 어떤 분류의 식물들이 어디에 분포되여 있는가. 발견되지 않은 식물들은 어떤 것들인가. 쉼 없는 노력은 헛되지 않아 정성들여 채집하고 자체로 만든 식물표본들은 점점 가지수가 늘어갔다. 텅비였떤 식물표본실은 날이가고 해가감에 따라 점점 이채를 돋히였다.
인간은 모든 것을 일일이 직접 체험할수 없다. 사실상 많은 지식은 간접적경험에서 오는바 그것은 옛날부터 내려온지식과 외국에서 온 지식이다. 하여 그는 외국어학습에 검질기게 달라붙었다. 푸름한 새벽에, 출근길에, 퇴근길에, 식물채집의 길에 꼭꼭 단어와 문법카드를 가지고 다니며 잠시적 지구전을 벌리였다. 몇 년간의 고심한 노력으로 마침내 일어와 로어를 능숙하게 장악하였다. 시야갸 넓어지고 지식면도 넓어졌다.
하지만 그의 신체는 철로 빚어진 것이 아니였다.  밤에 낮을 이어가며 과학에로 돌진하는 그에게 의학은 신결핵이란 치명적인 언도를 내렸다.
조직에서는 그를 관심하여 여기 산촌으로 반년간 휴양을 보냈던 것이다. 허나 병마는 한 공산당원의 굳센 의지와 드팀없는 신념을 꺽을수 없었다. 식물학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산촌이란 얼마 나넓고 풍부한 실험실을 펼쳐주는 것인가, 이 얼마나 얻기힘든 훌륭한 기회인가,
이 반년간 그는 하루의 휴식도 없이 성한사람처럼 용신의 산과 들을 메주밟듯 넘나들며 1000여가지의 식물을 정성들여 채집해선 표본을 만들었다.
“푸르르릉ㅡ“ 멀지않은 숲속에서 장꿩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 오른다..
회억에서 깨여난 그는 지팽이 하나를 꺽어쥐고 왼손으로 해빛을 가리우며 해발 천 여메터나 되는 산꼭대기를 쳐다보았다. 어떻게하나 기어코 올라가야 할 봉우리. 그의 두 눈에는 굴할수 없는 의지의 빛이 번뜩이였다.
산은 기슭부터 순순히 길을 내 주지 않는다. 노박덩굴, 다래덩굴이 그물처럼 꽉 늘어서 여간 성가시게 굴지 않는다. 낫으로 덩굴을 끊이며 손으로 덩굴을 헤치며 한걸음 한걸음 톱아오른다. 한참 올라가노라니 또 가시나무숲이 앞을 막으며 낯이고 손이고 사정없이 찌른다. 간신히 숲을 헤치고 중턱에 오르니 가둑나무가 삼대처럼 꽉 박아들어 섰다. 난생청음 사람을 만났는지 등에 떼가 왕왕기를쓰며 달려든다. 예리한 침을 몸에 들이박고는 생사결단 하며 피를 빨아 먹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를 악물고 앞의 나무를 틀어 쥐고는 몸을 앞으로 썩 주며 오르고 또 오른다. 병든 몸은 악렬한 자연환경에 점점 적응되지 않는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 처럼 아프고 목에는 불이 펄펄이는 것 같다. 아름드리 가문비나무에 몸을 기대고 앉아 한참 숨을 돌린다. 온몸은 점점 땅속에 잦아드는 것 같다. 안된다. 계속 이렇게 있는다면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 지팽이에 의해 모지름을 쓰며 욱 일어난 그는 채집통을 우로 추스리고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봉우리로 톱아 오른다… 흰구름을 허리에 두른 산봉우리에 올랐을 때 불덩이 같은 해가 중천에서 그를 향해 환히 웃고 있었다.
운동장처럼 휘넓은 산마루다. 동쪽에서 서쪽에로 남쪽에서 북쪽에로 침엽림의 매 한치의 땅, 매 하나의 초목이라도 스쳐지나 갈세라 눈을 꼭꼭 박아가며 찾고 또 찾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아, 순간 그의 두눈은 유난히 빛났다. 눈앞에 안겨오는 빨간열매, 미풍에 하늘하늘 춤을 추는 푸른잎사귀ㅡ화태닥나무다! 쓰러질듯 비칠거리며 다가가서 조심스레 쓰다듬는 떨리는 손, 그의 얼굴엔 기쁨의 물결이 넘실 거린다. …
불타는 락조가 산천가에 비꼈다. 동구밖 길옆에 뿌리박 은아름드리 백양나무에도 저녁노을은 곱게 물들었다. 그는 병마와 피로에 시달릴대로 시달린 몸을 백양나무에 맡긴채 잠시 눈을 붙인다.
“아버지!” 어디선가 웅석섞인 목소리가 귀전에 날아든다. 눈을 뜨는 순간 둘째아들녀석이 품에 확 안겨들며 채집동을 달라고 조른다.
“응, 그래 고운열매보여 줄가.” 하며 그는 채집통을 벗는다.
“얼마나 고생…” 어느새 마중왔는지 뒤에 섰던 안해가 채집통을 받아메며 일굴을 외로 돌리더니 옷고름을 눈굽에 가져간다.
“고생한 보람이 있소.” 희열이 어린 얼굴로 안해를 보며 아들의 손목을 잡은 그는 허리를 지그시 누르며 집으로 향한다.
식물을 채집하기도 힘들거니와 표본을 만들기도 여간 조심해야 한다. 잎사귀 하나라도 떨어질세라 뿌리 한 오리라도 상할세라 종이와 종이사이에 잘 끼워서는 구들에 차례로 펴 놓는다. 다음 이불을 덮고 조심조심 밟아서 압착 시킨후 10일 가량 잘 말리운다. 그리고는 표본지 우에 펴놓고 반창고오리들로 잘 고정시킨다. 식물의 유산으로 세세대대물려 줄 표본이니 말이다.
비좁은 외통 집안이다. 정성들여 말리우는 식물표본들이 구들에 편 이불속에서 혼곤히 잠을 잔다. 안해는 그것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옆에 쌓아 놓으며 밥상을 차린다.
“어서 식사하세요.”
그는 안해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화태닥나무를 종이사이에 잘 끼우고는 이불을 덮어준다.
“자, 둘째야 살랑살랑 밟아보지.”
둘째아들녀석은 죄꼬만 발로 이불을 자근자근 잘도 밟는다.
“식사하세요.” 안해는 눈을 곱게 흘기며 채촉한다.
“그래그래.” 그제야 그는 앉은걸음으로 밥상에 마주 않는다.
벽에 빈틈없이 걸려있는 식물표본들, 구들에 두툼히 쌓인 식물표본들, 시렁우에 빼곡이 자리잡은 유리병식물표본들을 둘러보며 밥술을 드는 그의 얼굴에는 병색과 피로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밝은 미소가피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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