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두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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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지의 국경절(수필)
2018년 05월 07일 16시 07분  조회:664  추천:0  작성자: 허두남
수필
원경지의 국경절
    허두남
나는 지금까지 인상깊게 보낸 국경절들이 많지만 제일 잊혀지지 않는것은 원경지 오두막에서 맞이했던1973년 국경절이다.
그날 신새벽, 감자 캐러 간 우리 생산대의7,8명 청년들은 오두막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깼다.
와지끈ㅡ
뚝!
쿵!
골짜기 건너편이면 림장이였기에 우리는 림업공들이 날 밝기전부터 나무를 베는줄로 알았다.
그런데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자니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여럿이 힘을 모아 간신히 문을 여니 이게 웬일이람? 밤새 눈이 어찌나 많이 내렸는지 문 아래부분이 한자가웃이나 눈에 묻혀 있었다.
림업공들이 나무를 벤것이 아니라 눈에 나무가 넘어진것이였다. 눈이 나무에 쌓이고 녹고 매달리면서 나무가 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가지 부러지고 중등이 꺾어지고 뿌리 뽑히면서 쓰러진것이였다. 여기저기에 송두리채 넘어진 아름드리나무들이 눈에 가지를 처박고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쩍 짜개지면서 중등이 부러진 나무들, 부러져내린 나무가지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 가벼운 눈송이의 힘이 이처럼 엄청나다니?
무서운 파괴자인 홍수에 집재료가 떠내려오고 수박이 떠내려오고 산 돼지새끼가 떠내려오는것을 보면서 이상하게 장쾌한 기분을 느끼던 때처럼 나는 자연의 어마어마한  힘에 경탄을 련발했다.
감자를 채 캐지 못했는데 깊은 눈에 밭이 묻혔으니 실은 불이 발등에 떨어진것이 였다. 헌데 그것보다 못지 않게 우리들 눈살을 찌프리게 하는 일은 술도 안주도 장만하지 못했는데 국경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는 걱정이였다.
그때는 술이 금보다 귀했다. 명절 같은 때라야 매집에 쥐꼬리배급으로 내주었는데 술이 귀하다보니 남정네가 없고 술 마실 사람이 없는 집에서도 제앞에 차려진 몫을 내놓지 않고 타갔다. 육류도 명절같은 때 공소부에 오는 언 고기를 몇근씩 사서 맛이나 잃어지지 않을 정도로 입에 바르는게 고작이였다. (돼지는 키워서 수구참에 바쳐야 했다.)
생산대에 돌아가야 보잘것없는 몫의 술과 고기를 가져올수 있다. 그런데 큰눈에 골짜기길이 싹 묻혀버렸는데 어떻게 간단말인가?
모두가 어깨가 축 처져있을 때 여름내 원경지를 지켜온 조기선령감이 피우던 담배를 훌 내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마을에 갔다오겠네.”
“길이 종적이 없이 됐는데 어떻게 가요?”
김대장의 걱정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기도 했다.
“자주 다니던 길이라 괜찮을거네.”
조령감은 아침을 대충 먹고 무릎을 넘는 숫눈을 헤차면서 골어귀로 내려가는 길에 들어섰다. 십리가량 내려가면 현성에서 향(그때는 공사라고 했다.)소재지로 오가는 뻐스길이 있다. 골어귀에서 뻐스를 잡으면 마을까지는 70리쯤 된다. 뻐스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씩 다니니 오전 뻐스를 타야 오후 뻐스로 돌아올수 있기에 일찍 떠나야 하는것이다.
순탄하게 다녀와도 오후에야 올수 있었지만 우리는 오전부터 밖에 나와 이야기하면서 조령감의 모습이 나타나기만 바랐다.
보리저녁때가 되여도 조령감이 돌아오지 않자 우리의 바람은 근심으로 번져졌다. 혹시 눈에 빠져 골어귀까지 못간게나 아닐가? 김대장은 늙은이를 홀로 보낸것을 후회했다. 저녁해가 나무우둠지새로 가라앉아도 땅거미가 어둑어둑 오두막앞으로 기여들어도 조령감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술과 고기를 사오기를 바라던 마음 대신 그저 무사히 돌아왔으면 하면 마음이 되였다. 우리의 근심은 저녁어둠과 더불어 점점 짙어갔다. 원경지에서 골어귀까지는 아름드리 나무가 꽉 박아서고 곰도 출몰하는 곳이다. 곰이라도 만났으면 어쩌나 하는 나쁜 생각이 갈마들었다.
우리는 누구도 집안에 들어가지  않고 진대나무통에 줄느런히 걸터앉아 골어귀켠만 목빠지게 바라봤다.
“산마루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산마루켠으로 머리를 돌렸다. 아닌게 아니라 산꼭대기에서 가느다란 사람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여긴 치벽한 곳인데 누가 이 눈에 산꼭대기로 올라갔담? 밤중이 될떼까지 왜 산에 있을가? 혹시 조령감이 길을 잃고 산꼭대기로 올라간건 아닐가?
귀를 강구고 귀담아 듣던 김대장이 무릎을 탁 쳤다.
“산꼭대기에서 나는 소리 아니라 산아래켠에서 나는 소리다.”
다시 자세히 들으니 산아래켠에서 난 소리가 산마루켠에 부딪쳐서 되울려오는것이였다.
모든것이 똑똑해졌다. 조령감이 산애래에서 올라오지 못해 소리치고있다.
눈빛이 깔렸지만 별 하나 없는 흐린 밤이라 우리는 저마다 오두막 바깥벽에 걸어두 었던 봋에다 불을 붙여 들고 산아래로 달려내려갔다.
체소한 조령감은 골짜기중간쯤에서 눈에 빠져 올라오지 못하고있었다. 눈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어깨에 멘 불룩한 가방만은 꽉 부둥켜안고있었다…
허벅다리까지 잠기는 눈을 헤치면서 간신히 골어귀까지 내려간 조령감은 골어귀에서 한나절이나 뻐스를 기다리다가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큰 눈에 뻐스가 통하지 못하리란것을  예상못한것이였다. 70리나 떨어진 생산대까지  걸어갈수도 없는 일. 생각끝에 제일 가까이에 있는 차창대대 공소부에 찾아가서 딱한 사정을 말하면서 술 몇근 팔수 없는가 청을 넣어 보았으나 씨도 먹히지 않았다. 공소부에서 돌아나오다가 때마침 전날 하방을 내려왔던 공사당위서기를 만나자 당위서기의 팔을 꼭 붙잡고 다시 공소부를 찾아갔다. 당위서기가 말해주어서야 술 몇근에 돼지고기 몇근을 얻게 되였다. 조령감은 기쁜김에 선자리에서 강술 몇모금 했는데 눈길을 헤치면서 골안으로 들어오다가 술기운이 퍼져 더는 걸을수 없었던것이다.
우리는 얼굴이 긁히고 기진맥진한 조령감에게 죄송한 마음보다도 술과 고기를 얻었다는 기쁨에 기분이 날아갈듯 했다. 마치 축구경기중 우리편이 부상당하면서 패널티킥을 얻었을 때 다친 사람에 대한 념려보다 꼴 넣을 기회를 얻었다고 기뻐하는 심정과 같다고 할가?
온 나절 꼬박 굶었던 우리는 배속에서 꼬르륵 타령을 불러댄지도 오랜지라 다그쳐 고기를 씻어 솥에 앉히고 불을 지폈다. 고기 삶는 냄새가 집안에 떠돌자 모두의 얼굴은 아이들처럼 밝아졌다.
그날 저녁 우리는 일생에서 제일 잊혀지지 않는 술을 마셨고 그 어떤 산해진미와도 비길수 없는 감자돼지고기볶음채를 감식했다.
그뒤 며칠동안 고랑도 알리지 않는 눈밭에서 벌건 손으로 눈무지를 헤쳤고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밭에서 한알이 감자라도 더 찾느라 흙참봉이 되여 앉아뭉갰지만 그때의 일은 그런 고생스럽던것들을 넘어서 가슴속에 애틋한 그리움으로 일렁거린다. 그해 따라 첫눈이 전에 없이 일찍이 전에 없이 많이 내렸던것이 잊혀지지 않아서일가? 처음으로 산에서 눈에 갇혀 국경절을 맞았던것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서일가? 아니면 술도 안주도 없어 국경절을 쫄쫄 굶으면서 지낼번하다가 기분 좋게 보낸것이 지워지지 않는 짙은 감격으로 남아서일가?
강산이 네번 변하고도 다시 절반 변했건만 매년 첫눈이 내릴때마다 국경절이 돌아올 때마다 그때의 일은 늘 달콤한 감회속에 추억의 등불을 밝혀주군 한다.
세월이 가도 그날이 잊혀지지 않고 그토록 그리워나것은 펄떡펄떡 뛰던 내 인생의 아침나절을 담고있는 고향에 대한 절절한 향수때문이기도 하지만 고향의 후더운 인심이 그리워서이며 그때의 사람냄새가 사무치게 그리워서이다..
아 잊지 못할 1973년의 국경절이여! 그해의 첫눈이여! 경흥골 원경지의 오두막집이여! 
                                                                                              201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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