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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 자의 고별식
2019년 07월 18일 09시 56분  조회:299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산 자의 고별식

허련순

 

제나름, 망자 고별식은 사후에만 치르는 것인 줄로 알고 있었다. 산 자들이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하여 행하는 장례식이 바로 고별식이 아닌가? 그러니 사후에 고별식을 치르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산 사람을 놓고 장례식을 치를 수는 없지 않는가? 바보거나 혹 남다른 뇌구조를 가졌다면 모를가, 세상에 일관된 상식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럽게 이를 화제로 삼는 것이 어리석은 일은 아닌지 살짝 고민스럽지만 이 또한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일전에 미국에 사는 한 지인으로부터 그가 포트로더데일 싸우스웨스트 렌치스에 있는 ‘선교치유센터’에서 백여명의 친지들을 모시고  ‘미리 하는 고별식’을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고령이기는 하나 아직 퍼렇게 살아계신 분이 고별식이라니, 한동안 내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고… 별식이라니요? … 혹시 장례식 말씀하십니까? …”

다시 물어보기에도 민망하고 딱한 일이였다. 그래서 저도 몰래 말을 더듬었다. 살아있는 분을 놓고 장례식을 운운하다니. 송구하고 황송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 엄청난 사건을 전해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묵묵히 있는 것도 무례일듯 싶어 가까스로 뱉어낸 말이다. 하지만 그 쪽 반응은 오히려 담담했다.

“네. 장례식 맞습니다. 제가 80돐 생일을 맞으면서 생일파티 겸 마지막 고별식을 미리 치렀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왠지 가슴에 총을 맞은듯 먹먹해났다. 경이로움과 처연함, 그리고 짠한 슬픔과 이름할 수 없는 쓸쓸함까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찬사를 드려야 할지 아니면 위로를 드려야 할지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이런 경우에는 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것일가? 무슨 말이든 이어나가야 하는데 나는 그저 방아개비 더듬이 더듬듯  “어떻게… 어떻게…”라는 말만 곱씹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 말조차 비정해보여서 쉽게 입밖에 낼 수 없었다. 얼 빠진 듯한 내 모습이 딱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그 분이 위로를 건넸다.

 “허작가님, 놀랄 것 전혀 없습니다. 제가 처음도 아닙니다. ‘미리 치른 장례식’의 전례를 보면 3년 전에 카나다 동포 의사 이재락박사가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생전에 미리 장례식을 치렀고 또 미국인으로는 1938년 테네시 시골의 펠릭스 브리질씨가 당시 73세였는데 건강한 몸으로 ‘미리 하는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7년 후에 사망했지요. 북미에서는 이미 두차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세번째인 셈이죠.”

하지만 나는 오래동안 가슴이 떨렸다. 이런 상황을 뭐라 하면 좋은 것일가? 죽음에 대한 초탈이라 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일가? 아니면 삶에 대한 초탈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일가? 혼란스러웠다.

 

‘미리 하는 장례식’을 올린 이 지인이 바로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김영랑시인의 아들인 김현철선생이다. 그는 한국 MBC 서울본사 기자, 한겨레 동아 중앙 마이애미 지국장을 력임하고 1974년에 미국에 이주하여 미국 동포신문을 창간한 발행인 겸 편집인이다. ‘’

나는 2014년 겨울 한국의 저명한 평론가 임헌영선생의 소개로 김현철선생을 알게 되였다. 당시 김현철선생께서는 《김영랑시집》을 중국어로 번역출간하려고 추진하던 중이였는데 중국에 일면식도 없는 상황이라 내가 나서서 그 일을 돕게 되였다.

‘북도에는 김소월, 남도에는 김영랑’이라고 할 만큼 김영랑시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그의 시는 자연을 통한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인간 내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가 대부분이다. 김영랑선생의 시에 대한 리해를 돕기 위하여 김현철선생께서 서울에 있는 누이에게 부탁하여 《김영랑시선집》과 본인이 저술한 《아버지에 대한 회억》 등 3권의 책을 부쳐왔다.

덕분에 나는 김영랑시인의 시를 체계적으로 읽는 호사를 누리게 되였다. 그것은 일종의 향수요, 즐거움이였다. 나는 김영랑시인의 시가 가지고 있는 상징과 응축의 묘미에 깊이 매료되였다. 그것은 은혜였다. 김영랑선생의 시에 대한 공감으로 나는 김현철선생과 이메일로 많은 시간을 문학에 대하여 아낌없이 담론할 수 있었다. 같은 문학인이라 그런지 통하는 데가 많아 토론은 항상 즐겁고 유익했다. 최근 나는 집필하고 있는 장편소설 《춤추는 꼭두》에 대하여 고언을 청해 듣기도 하였다. 오랜 시간 미국에서 언론인의 삶을 살았던 분이라 사유가 자유롭고 신선하여 그의 고견을 듣는 것은 작가인 나에게 더없는 행운이였다. 특히 작가의 문제의식이나 사회의식에 대한 김현철선생의 관점은 이번 소설의 구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럴 즈음에 김현철선생으로부터 ‘미리 하는 고별식’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나로서는 너무 충격적이였고 생소하고 낯설었다. 한편 궁금하기도 하였다. 산 사람의 장례식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가? 진짜처럼 빈소를 설치하고 장송곡을 울리는 걸가?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김현철선생께서 설명을 보태셨다.

“장송곡은 당연히 울렸죠. 망자와의 고별식인데 장송곡이 없어서야 되겠어요?”

그는 마치 가벼운 일상을 말하듯 엷게 웃기까지 했다. 아, 나는 비명처럼 짧게 탄식을 뱉었다. 아무리 절차에 따라 하는 것이라 해도 그렇지, 산 사람 앞에서 장송곡을 울리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일이라 생각되였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장송곡 자체가 잔인한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죽음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 때문에 그리 느껴졌을 수도 있다. 

80돐 생일 축하 파티가 끝나고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의 주제곡인 <장송곡The Funeral>이 은은히 장내에 흐르면서 고별파티가 시작되자 이날의 주인공인 김현철선생께서 고별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인사말을 건네는 순서가 되였다.

“팔순이 되니 전보다 죽음이 가까워져서인지 자주 죽음에 관해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죽음이라는 단어는 ‘모든 게 다 끝났다, 이제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령혼이 몸을 떠나서 본래 왔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도 있으니 ‘죽었다’ 보다는 ‘돌아갔다’로 표현함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역겨운 시신을 조문객들에게 보여주어 불쾌감을 주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더우기 사후 장례식에 누가 다녀갔는지, 또 누군가가 읊은 조사가 어떤 내용인지, 정작 당사자인 망자 본인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후 장례식은 아무 의미도 없기에 죽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소박한 식사를 하고 담소도 나누면서 정감 넘치는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더구나 장례식 때 조의금을 챙기고 조화를 받고 번거로운 장례의식 절차를 거치는 것 또한 적성에 맞지 않으며 지금은 아주 건강하지만 90세까지 산다는 자신이 없어서 팔순잔치 때 마지막 파티를 겸하기로 했다고 이날 파티를 열게 된 리유를 밝혔다.

인사말을 마치고 김현철선생은 천상병시인의 <귀천>을 읊었고 이어 가곡 <리별의 노래>를 부인과 함께 열창했다.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가 부르셔야 할 노래를 대신 부른다”면서 프랑크 씨나트라의 그 유명한 <마이웨이(나의 길)>를 불렀다. 장송곡에 이어 <마이웨이>까지 울려퍼지자 고별식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였다. 어떤 이들은 손수건으로 슬쩍슬쩍 눈물을 훔치면서 속으로 울음을 토해냈고 어떤 이들은 아예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여 흑흑 흐느꼈다. 살아있는 사람의 죽음이 시사하는 의미는 비통 뿐만이 아니였다. 삶에 대한 애틋함을 더 애틋하게 하고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더 각인시켜주었다.

 

자, 이제 마지막이 가까워졌네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맞이하게 되였어

친구, 분명히 말해두고픈 게 있네

내가 확신했던 내 삶의 방식을 얘기하려고 하네

난 내 인생을 충실히 살아왔고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어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난 내 방식대로 삶을 살았다는 거지

 

사랑했고, 웃었고, 울었지

고생도 했고, 쉬염쉬염한 적도 있었지

이제 눈물이 말라가면서

난 그 모든 게 재미있어보이는 거야

그 모든 것을 내가 다 거쳐왔다는 것이

그리고, 이렇게 말해도 될가

난 당당하게 내 방식대로 해왔어…

 

<마이웨이>는 마치 평생 비리와 타협하지 않고 ‘언론인의 정조’를 오롯이 지켜온 김현철 전 언론인의 지난날을 말해주는 듯 구구절절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후벼팠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가 있을가. 죽음을 삶으로 살아냈으며 죽음을 아름다운 삶으로 완성시킨 김현철선생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죽음이란 결국 삶을 죽는 것이다. 그러니 삶이 없는 사람은 죽을 것도 없게 된다. 죽음이 없어 좋은 것일가? 천만에! 세상에 죽을 것이 없는 자 만큼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은 없다. 죽음을 미리 추모하고 삶을 리별할 수 있는 사람은 죽을 수 있는 삶이 있는 사람들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이들은 죽음을 알고 죽음을 초탈한 사람들이다. 죽음을 안다는 것은 결국 삶을 잘 살았다는 증거다.

솔직히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신조차도 죽음 앞에선 통곡을 한다. 항아리 그림인 〈멤논의 죽음을 슬퍼하는 에오스〉는 죽음 앞에 애통해하는 신의 눈물을 보여준 증거다. 이 그림은 새벽의 녀신인 에오스(Eos)가 인간과 사랑하여 낳은 아들인 멤논이 트로이전쟁에 참전했다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하자 슬픔에 겨워 통곡하는 장면을 그렸다. 신화에 의하면 새벽에 내리는 이슬은 에오스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여 새벽마다 흘리는 눈물이라고 전해진다. 

인간은 물론이고 신조차도 슬퍼하는 죽음을 처연하게 대면하고저 한 ‘미리 하는 고별식’을 대면하여 재삼 죽음을 두려움 없이 즐겁게 맞이하고저 했던 소크라테스를 떠올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듯 싶다. 아테네정부의 잘못된 기소로 독약을 받고 죽음을 맞게 된 소크라테스는 곧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닭 한마리를 빚졌다”는 유명한 유머를 남겼다. 아스클레오피스는 그리스의 의술의 신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앓던 병이 치료되면 감사의 표시로 의술의 신 아스클레오피스한테 닭 한마리를 바치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다면 독약을 마시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는 왜 죽는 순간에 아스클레오피스한테 닭을 빚졌다고 했을가? 혹시 자신의 죽음을, 비록 억울한 죽음이긴 하지만 병과 고통에서부터 치유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일가? 이승의 삶이 육체의 구속이였다면 저승에로의 죽음은 어쩌면 령혼의 자유이며 해방일 수도 있다. 살아있는 동안 죽음에 대한 수많은 명언을 남기며 누구보다도 죽음과 가까이한 소크라테스라면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라고 본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본질은 혼魂에 있다고 보았다. 신체는 물론이거니와 혼과 신체가 섞인 것조차 인간을 설명할 수 없으며 오직 순수하고 독립적인 혼만이 인간을 규정한다고 보았다. 어찌됐든 죽음을 앞두고 남긴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한마디는 난해한 오묘함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회자화되고 있다.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소크라테스다운 풍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죽음을 태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인간 본연에 대한 리해, 특히 령혼과 육체의 관계를 리해하는 깊이와 밀접하게 련관되여있지 않을가 싶다. 만약 죽음이 전혀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면 정녕 그렇다면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리유는 전혀 없다. 우리는 우리가 태여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결국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잖는가. ‘살아서 미리 하는 고별식’을 치른 김현철선생도 죽음은 육체의 사멸일 뿐 령혼은 왔던 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 인식했기에 죽음을 두려움이 아니라 축복 속에서 맛볼 수 있었던 게 아닐가.

처음엔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어쩌면 ‘살아서 하는 고별식’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가장 큰 례의이고 축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것은 몰라도 죽음을 끌어안고 하고 싶은 말을 채 하지 못한 사무침에 땅을 치는 일은 없을 테니 얼마나 좋은가. 미리 할 말을 다했으니 산 자와 죽은 자의 사이에 서로 빚은 없을 듯 싶다. 빚이 없이 가볍게 갈 수만 있다면 떠나는 이나 남아있는 이나 이보다 더 좋은 리별이 더 있을가. 이것은 사람이 살아서 인간의 권리로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마지막 례의이고 또한 자기 죽음에 대한 신고식이 된다는 의미로 더없이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출처:<장백산>2017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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