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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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그가 가는 곳
2019년 07월 18일 09시 58분  조회:508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그가 가는 곳

허련순

 

1.

녀자는 딱히 갈 곳이 있어서 집을 나온 것은 아니였다. 다만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절박함에 떠밀렸을 뿐이다. 뚜렷한 목적이나 확실한 의지 같은 것은 결코 없었다. 술을 마셨을 때 갑자기 욱- 하고 가파르게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나 갱년기에 찾아오는 걷잡을 수 없이 후끈 달아오르는 열기 비슷한 그런 순간적인 기분이였다고나 할가.   

남자가 귀가한 시간은 새벽 녘이였다. 핸드폰까지 꺼놓고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 시간에 집에 오는 것인지. 남자는 가타부타 설명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자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리유는 오직 하나였다. 결혼 전에 남자가 꽤나 어설픈 것을 가훈이랍시고 꺼낸 적이 있다.

“말하지 않는 것은 묻지 않으며 묻지 않으면 스스로 말한다.”

녀자가 픽 웃었다. 하지만 남자는 정색한 표정으로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집안을 여태까지 지탱시켜준 힘이라고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얼마나 비밀이 많은 집안이면 저런 가훈이 다 나왔을가 싶었지만 곰곰히 음미해보면 믿음과 인내를 강조하는 묘한 뉘앙스가 있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녀자는 흔쾌히 남자가 건의한 가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을 묻지 않으며 묻지 않으면 스스로 말한다”는 가훈이 신혼초부터 턱하니 벽에 걸리게 됐다.

남자가 들어온 기척을 알아차리고도 녀자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자는 척했다. 눈을 떠버리면 참지 못하고 왜 이리 늦었느냐고 기어이 물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하지 않는 것을 물었다간 남자와 크게 싸움이 번질 수도 있다. 질질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샤와실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아 아마도 샤와를 하려는 모양이였다. 쏴- 하고 샤와기에서 쏟아져내리는 물소리가 안방까지 질펀하게 들려왔다. 생각보다 물이 많이 차거웠던지 남자가 얼음구덩이에 빠진듯 소스라치며 헉헉 흐느꼈다. 조금 후 빠른 손놀림으로 온몸에 비누칠하는 소리가 매끄럽게 철버덕거렸다. 평소에는 한번의 비누칠로 끝났는데 웬 일인지 세번 네번을 덧칠하며 오래오래 씻었다. 꼼꼼하게 씻어내야 할 리유라도 생긴 것일가? 남자는 가죽이라도 벗겨내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심상치 않았고 예감이 좋지 않았다. 조심스럽던 발밑에서 부지중 뿌지직 균렬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실금 몇가닥이 그녀의 가슴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상처자리를 낸다. 녀자는 이를 악물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되였다고 벌써부터 외박이야? 나쁜 놈 같으니라구!

멎을듯 멎지 않고 끊임없이 질척거리던 물소리가 드디여 멎고 살갗을 쥐여짜듯 빠드득 빠드득 살을 털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샤와가 끝난 모양이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어디서 자야 하나 고민하는 모양이였다. 남자는 마치 길을 잃은 사람 같았다. 마침내 물기가 있는 발이 저겨딛는 소리가 안방 쪽으로 둠칫둠칫 다가왔다. 문 앞에서 잠간 주저하는가 싶더니 도둑고양이처럼 살그머니 안방문을 열고 동정을 살폈다. 녀자가 미동도 없자 그제야 게걸음으로 침대 옆에 다가오더니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봤다. 채 가시지 않은 몸의 열기와 함께 체리 샴푸와 오렌지 바디클린저 향이 은은히 풍겨왔다.

그것은 익숙함이였다. 두 사람은 짧지만 냄새를 공유하는 관계였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과 같은 냄새를 지닌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녀자는 괜스레 코끝이 찡해났다. 당연히 남자가 곁에 와 누울 줄 알았다. 만약 그랬다면 기꺼이 옆자리를 내여주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온몸으로 남자를 받아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뒤걸음으로 조심조심 이불장 있는 데로 물러서더니 담요 한장을 내려 옆구리에 끼고는 들어올 때처럼 조츰조츰 문께로 향했다. 발끝에 아직도 물기가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바닥에 짝짝 들러붙는 소리가 류달리 끈적끈적하고 찰졌다. 녀자가 어둠 속에서 신경질적으로 발끈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어딜 가요?”

막 문턱을 넘어서려던 남자가 흠칫하며 우두망찰 굳어져버렸다. 남자는 두서없이 소삽하게 얼버무렸다.

“어? 안 잤어?… 자는 줄 알았어…”

“금방 깼어요…”

잠에서 깼다고 말하면 남자가 도로 자기 곁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녀자는 몸을 움직여서 침대 한쪽을 남자에게 비워주었다. 그런데 남자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였다.

“오늘은 거실 쏘파에서 자고 싶어…”

“왜 좋은 침대를 제쳐두고 쏘파에서 자요?”

“그냥… 더워서…”

“겨울인데도 더워요?”

“오, 샤워를 했더니…”

“…하지만…”

녀자는 멋쩍은듯 말을 멈추었다가 수줍게 이어갔다.

“…우린 아직 신혼이잖아요.”

“알…어.”

“그런데 왜 벌써부터 각방을 쓰려고 해요?”

“…가끔씩 남자들은 그럴 때가 있어.”

“그럴 때는 어떤 땐데요?”

녀자가 바투 묻자 남자가 버럭 화를 냈다.

“왜 따져? 지금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거야?”

“의심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묻고 있는 거예요.”

“도대체 뭘 알고 싶은데?”

“당신이 숨기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요!”

“묻지 않기로 했잖아! 잊었어?”

남자가 짜증스러워하며 쏘파에 담요를 소리나게 던졌다. 말도 안되는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가훈이 어김없이 지켜지기를 바라다니! 녀자는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러려고 그런 가훈을 만든 거예요?”

“그런 가훈이라니! 우리 집안 가훈을 우습게 보는 거야 뭐야?”

“비밀 같은 것을 감추려고 만든 거라면 취소예요.”

“마음대로 해!”

남자가 벌러덩 쏘파에 들어눕더니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더 이상 말 섞지 않겠다는 선언이였다. 똥 묻은 개가 짖는다더니 남자는 적반하장이였다. 녀자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상황에서 계속 따져보았자 뻔하다. 더 크게 싸우거나 남자가 더 멀리 도망가버리거나 둘중 하나일 것이다. 녀자는 자신이 참고 넘어감으로써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다고 혼란이 멈출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녀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남자가 샤와실에서 거듭 비누칠을 해가면서 빡빡 씻어내려고 했던 것은 구경 무엇이였을가. 혹시 다른 녀자의 흔적이였을가. 아니면 안해인 그녀의 흔적이였을가. 의심의 끝을 물고 알 수 없는 분노가 관자놀이를 휘젓고 지나갔다. 하지만 녀자는 참으려고 안깐힘을 썼다. 결혼 전날 엄마가 간곡하게 당부하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속 터지는 일이 많다. 남자들이란 해주는 만큼 속을 썩이지. 잘못하고도 되려 제쪽에서 큰소리를 치거든. 지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겠지. 진실을 가려내려고 한평생 네 아버지와 싸웠지만 아직도 부부의 진실이 뭔지 모르겠어… 매번 싸우고 나면 후회했어… 싸우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러는 게 훨씬 현명한데 그게 잘 안되더라. 너는 현명하니 잘할 거야.”

지혜롭게 참으면서 살라는 소리를 딸한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 참자. 일단 싸움은 피하고 보자. 하지만 한두번이지 그 이상은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녀자의 바람과는 달리 남자는 토요일마다 새벽에 들어왔고 꼼꼼하게 샤워를 마친 후 쏘파에서 자면서 녀자의 침대 근처에 얼씬하지도 않았다. 벌써 일곱번째다. 마치 사십구제를 지내는 사람 같았다. 사십구제는 불교에서 장례를 치르고 일곱째 되는 날을 택하여 49일 동안 7일을 절에 가서 제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집안에 상을 당한 사람도 없는데 누구를 위해 제를 지내겠는가. 

도대체 남자는 새벽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오는 것일가? 녀자의 의심은 커져만 갔다. 남자는 유난히 친구를 좋아했다. 단 하루라도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금단 증세를 보일 정도였다.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면 한밤중이라도 친구들을 불러냈고 심지어는 부부가 간만에 외식하는 자리에도 친구들을 불러내여 동석했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남자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였다. 밤중에 불리워 나오거나 남의 부부 사이에 끼워 식사를 하는 것이 좋기만 하겠는가. 그들은 눈쌀을 찌프리거나 끊임없이 하품을 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썩 달갑지 않음을 나타내군 했다. 남자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늦은 시간까지 지루하게 친구들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혹여 중간에 누가 먼저 자리를 뜨면 기어이 쫓아가서 데려오군 하였다. 

녀자는 남편의 절친인 송을 찾아갔다. 도대체 남자랑 매주 토요일 새벽까지 무엇을 하는지 묻고 싶었다. 남자에게 송은 그림자 같은 사람이였으니 둘이 무조건 함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송은 토요일에는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거나 수영장에 간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남자의 토요일 외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녀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편이 친구를 부르는 자리에 송이 빠질 때는 없었다. 그가 있는 자리에 다른 친구들이 없을 때는 있어도 다른 친구들이 있고 그가 없는 자리는 분명 한번도 없었다. 송이 동석을 안했다면 이건 분명 남자가 혼자 있었다는 소리다. 홀로 그 새벽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 것일가?

 

2.

정작 집을 나오고 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녀자는 사거리에서 한참이나 멍하니 서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집을 나온 것일가? 갈 곳이 없음을 깨달은 순간 녀자는 깊은 한기를 느꼈다. 감기가 올 것처럼 목이 잠기고 기침이 터져나왔다. 문뜩 남자가 있을 만한 곳을 알 것 같았다. 감기가 올 때마다 안마원을 찾는다던 남자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녀자는 발길을 다그쳤다. 비로소 목적지를 찾은 것이다.

그녀가 향한 곳은 네온싸인이 명멸하는 도시 중심가였다. 한밤중인데도 거리에는 사람들과 차들이 북적거렸다. 밤의 유혹에 빠지면 하루 밤을 밖에서 보내기는 너무 짧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자는 ‘참안마원’이라고 쓴 건물 앞에 마주섰다. 왠지 그 곳에 남자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남자와 친구들이 ‘참안마원’에 대해 롱을 주고받았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이름이 익숙할 리가 없다. 안마원 입구에서 고객을 안내하던 젊은 남자가 그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애되고 풋풋한 데다가 잘 생기기까지 한 젊은이였다.

“어서 오세요!”

남자가 구십도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자 녀자는 황망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 나는 그래서 온 게 아닌데…”

“기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한번 받아보세요. 인생이 확- 달라보이실 겁니다.”

젊은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해맑게 웃었다. 눈빛이 맑고 선했다. 녀자는 그런 눈빛에 약한 편이다. 녀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여 안으로 들어갔다. 혹여 여기 어느 곳엔가 숨어있을 남편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했다.

붉은색의 카페트를 깐 복도가 녀인의 라체처럼 길게 드러누워있었다. 그 량쪽으로 유리문을 한 룸들이 정렬되여있었다. 젊은 남자를 따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서 녀자는 목을 빼들고 유리문 너머를 유심히 살폈다. 어둑스레한 조명등 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안마복을 입고 엎드려 안마를 받고 있었다. 얼핏 보기엔 이 사람이 저 사람 같아 보이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아 보였다. 얼굴을 확인하지 않는 한 남편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갑자기 안쪽에서 녀자아이의 바스러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져나왔다. 그 소리가 가슴을 절단하듯 절실하고 처절하여 공포스러웠다. 어른들만 오는 이 곳에서 어린 아이의 비명은 난데없었다. 삽시간에 복도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로 웅성거렸다. 남자 직원이 몸부림을 치는 여섯살 쯤 되여보이는 녀자아이를 안고 카운터 쪽으로 급히 뛰여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린 아이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가? 구경을 나온 사람들 중 일부는 카운터로 쫓아가고 일부는 아이가 나왔던 방 쪽으로 몰려갔다. 머리가 산발이 된 녀자가 그 곳에서 뛰여나오면서 아이를 불렀다.

“소서야!”

안마사 유니품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 이 곳 안마사인 모양이였다. 정신없이 카운터로 뛰여가고 있는 그녀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여러 사람들이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척 보면 모르겠어요?”

한 중년녀인이 입을 비쭉거렸다. 그 녀자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줄레줄레 녀자를 둘러쌌다.

“대체 무슨 일이요? 누가 저 아이한테 못된 짓을 한 거 아니요?”

성질 급한 사람들이 중구난방 떠들어댔다. 녀자가 손을 홱 내저었다.

“안마를 받던 남자가 제 엄마한테 그 짓을 하는 것을 보고 아이가 놀란 거지요.”

“설마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것을 몰라요? 저 녀자는 돈만 주면 룸 안에서도 그 짓을 해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중년녀자가 가슴을 치며 장담했다. 안마원에 자주 오는 손님이라면 당연히 안마사들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장악하게 된다. 그녀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그 사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아이까지 데리고 와서 그런 짓을… 에미 될 자격도 없는 녀자네요.”

“아이가 있는 앞에서 달려든 그 놈이 죽일 놈일세.”

아이러니하게도 녀자들은 이런 곳에 아이를 데리고 온 녀자를 욕했고 남자들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이 엄마에게 그런 짓을 한 남자를 욕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도 불확실한 사실을 두고 중구난방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변해버린 세상을 탄식하면서 하나 둘씩 룸으로 돌아가버렸다. 복도는 순식간에 홍수에 할퀸 벌처럼 한산해졌다. 그 가운데 그녀만 홍수에 밀려난 키조개처럼 남았다. 녀자는 아이 앞에서 애 엄마를 범했다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남편을 찾고 있는 일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이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선 채로 몇번이고 후둑후둑 몸을 떨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서있었지만 남자는 룸에서 나올 기미가 전혀 없었다. 녀자는 조심조심 룸안을 들여다보았다. 한 남자가 문을 등지고 제일 안쪽 침대에 누워있었다. 유리문을 살며시 밀고 녀자가 침착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녀자는 발소리를 죽여가면서 천천히 남자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새벽에 돌아온 남자가 그녀의 침대 곁으로 다가오던 그 때처럼 말이다. 가까이 가보니 남자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 엎드려있었다. 순간 녀자는 가슴이 쿵닥쿵닥 뛰였다. 엎드려있는 뒤통수가 남편과 너무 닮았다. 남편은 엎드려 자기를 좋아한다. 그녀도 어렸을 때는 엎드려 자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엎드려 자면 엄마가 일찍 죽는다던 말을 들은 후 그 버릇을 뚝 뗐다. 남편한테 그 말을 해주었지만 남자는 피, 거짓말이야,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항상 엎드려 잤다. 그 자세가 편하단다.

그 때 남자가 부스럭거리면서 그녀 쪽으로 돌아누웠다. 붉은 조명 아래서 남자의 얼굴은 피빛으로 번들거려 괴기스러웠다. 녀자는 미처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제풀에 놀라 아악! 소리를 지르며 성능 좋은 스프링처럼 단숨에 밖으로 튕겨나오고 말았다. 남자가 뒤쫓아나올 것만 같아 정신 없이 긴 복도를 달려 안마원 밖으로 뛰여나오는데 처음에 안내했던 청년이 문밖까지 쫓아나오면서 왜 그냥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녀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곳을 한참이나 벗어나서야 겨우 멈춰서서 천천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눈을 펀히 뜨고서도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가 남편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못했다. 너무 긴장했던 탓일가? 아니면 확인할 용기가 없었던 것일가? 아니면 애초에 확인할 마음이 없었던 것일가. 녀자는 그저 두려운 마음 뿐이였다. 그 남자가 남편일가봐 두려웠고 남편이 아닐가봐 두려웠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녀자는 남편이 귀가하지 않은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습관처럼 신발장을 열고 남편의 구두부터 확인했다. 역시 남편은 여직 돌아오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안마원에서 울던 녀자아이의 비명이 환청처럼 끊임없이 귀가에서 맴돌았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 길게 엎드려있던 남자의 모습이 가슴을 윽박지르면서 달려왔다. 녀자는 몸을 뒤집어 엎드렸다. 조금 안정이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불안할 때면 항상 엎드려서 잤던 것 같다. 남자도 그래서 엎드려 자는 것일가? 불안하여 그 불안을 잠재우고 싶은 그는 도대체 누구일가? 녀자가 알고 싶은 그는 도대체 누구일가? 녀자아이 앞에서 그 아이 엄마를 범한 남자일가? 아니면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자신의 남자일가? 안마원에서 엎드려 자던 남자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녀자는 자신의 남자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3.

이튿날 녀자는 모교를 찾아갔다. 처음 남자를 만났던 곳에서 다시 남자를 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녀와 남자는 모 대학의 선후배 사이였다. 우연히 캠퍼스에서 맞닥뜨린 후 남자가 사귀자고 저돌적으로 밀고 다가왔다. 하지만 별로 마음이 당기우지 않았던 녀자는 졸업하자 마자 류학을 가버렸다. 남자는 집요하게 외국까지 쫓아가서 구애를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보다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되여 짧은 만남 끝에 녀자는 결혼을 승낙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지만 인생이 실패를 하려면 뭔들 못하겠는가.   

녀자는 모교에서 부교수로 부임한 남편의 동기를 만나 기막힌 사연을 얻어들었다. 재학 시절 남편은 사랑하는 녀자가 있었고 당시 그 녀자와 살림까지 차렸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애까지 지운 적이 있단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결혼까지 골인한 자신에 녀자는 망연자실하였다. 선배가 한마디 더 얹었다.

“우리는 그 때 다들 안타까워했어. 네가 왜 그런 바람둥이랑 결혼하는지…”

녀자는 티끌 같은 목소리로 되뇌였다.

“그 때 저한테 귀띔이라도 해주지… 왜 말해주지 않았어요?”

“우리가 알았을 때는 니들이 이미 결혼한 뒤였거든.”

녀자는 충격으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되돌릴 수 없는 이 현실을 어이할가. 억울함과 분노를 넘어 부끄러움과 막막함이 모든 세포를 잠식했다. 함부로 어설프게 헤집거나 건드리는 게 두려워 지그시 응시만 했던 남자의 비릿한 삶의 실체에 직면하여 더 이상 그 자리에 서있을 수 없었다. 다친 본능을 주체할 수 없어 녀자는 파들거리며 한때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꿈틀거렸던 캠퍼스를 벗어났다. 삶을 약화시키는 무시무시한 혼란과 자책으로 이미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마침 곧 출발하려고 시동을 거는 뻐스가 있어 녀자는 무작정 올라탔다. 어디로 가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이처럼 완벽하게 속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남자를 망가뜨리기 위해서라면 이제 기꺼이 망가지리라. 남자에게서 받은 배신과 상처를 그대로 되갚아주기 전에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현재보다 더 아프고 처절하도록 오징어다리를 씹듯 잘근잘근 풀이 나게 씹어줄 것이다. 녀자는 남자가 가는 곳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틀림없이 한때 살림까지 차렸다는 녀자한테로 갔을 것이다.

집에 돌아온 녀자는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남자가 돌아올 시간이 두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녀자는 남자의 컴퓨터를 켜고 그의 메일함을 열었다. 그녀에게 오픈한 계정에는 이상한 편지가 없었다. 남편이 숨겨둔 계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시간 가량 애를 써서야 비로소 남자의 비밀번호를 찾아냈다.

메일함에는 선이라는 이름으로 온 메일이 읽지 않은 상태로 여러통 들어있었다. 녀자는 메일을 휴지통에 옮기고 읽기 시작했다. 이러면 상대방은 이쪽에서 편지를 읽은 흔적을 알아채지 못한다. 편지내용을 보니 남자는 결혼한 후에도 그 녀자와 련락을 주고받은 것이 분명했다. 남자는 아직 자신의 과거의 찌꺼기들을 제대로 닦아내지 못한 모양이였다. 녀자는 불에 구워내듯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들의 관계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였기 때문이였다. 선이라는 녀자는 남자의 안해 자리를 차지한 그녀에게 미움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물론 그녀가 모르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기는 하나 그녀에게 상당히 공격적이였다.

“그 녀자 어때? 재밌어? 살림은 할 줄 알아? 어리다고 다 좋은 건 아니야.”

그런 글을 보고 있자니 수치심과 모욕감에 모닥불을 뒤집어쓴 듯했다. 자신이 마치도 누구든 헐뜯을 수 있게 거리바닥에 버려진 헌신짝이 된 듯했다. 기필코 그와 그의 옛 동거녀를 아작을 낼 것이다. 하지만 녀자는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이들을 응징하는 데는 더 고명한 방법과 지혜가 있어야 했다. 절대 서뿔리 행동할 수 없었다. 절치부심한 끝에 녀자는 남자의 계정으로 선이란 녀자에게 이번 주 토요일 오후 7시에 시대광장에 위치한 ‘참안마원’에서 만나자는 이메일을 보냈다.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틀림없이 그 자리에 나올 것이다. 이 방법이야말로 불륜현장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녀자는 잔인하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남편이 들어오기 전에 얼른 컴퓨터를 닫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듯이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토요일, 녀자는 약속시간보다 한시간 앞당겨 만남의 장소로 갔다. 마침 ‘참안마원’ 맞은켠에 스타박스가 있었다. 녀자는 안마원 정문이 잘 보이는 쪽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7시가 될 무렵 한 녀인이 안마원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서성거리면서 자주 시간을 확인했다. 늘씬하게 쭉 빠진 데다가 짙은 화장 때문인지 아주 요염해보였다. 선이란 녀자인가? 커피를 마시다 말고 핸드폰으로 녀자를 사진에 담으려고 하는 찰나에 그녀가 어딘가를 향해 번쩍 손을 들었다. 약속한 사람이 오는 모양이였다. 한 남자가 뛰여오더니 가볍게 그녀를 포옹하였다. 녀자는 놀라서 하마트면 커피잔을 넘어뜨릴 번했다. 녀자의 허리를 안고 안마원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는 남편이 아니였다. 근거를 잡으려고 이곳에 죽치고 있는 사람 같지 않게 녀자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 뒤로 여러명의 사람들이 ‘참안마원’으로 들어갔다. 혼자 오는 남자들은 많아도 혼자 오는 녀자는 거의 없었다. 녀자들은 대개 남자와 같이 오지 않으면 녀자들끼리 무리를 지어 왔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도 남편과 선이란 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메일을 확인했으면 꼭 왔을 텐데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일가? 이상했다. 남편의 메일함을 확인해 보니 선이란 녀자가 아직 이메일을 읽지 않았다. 왜 읽지 않은 것일가?

선이를 만난 것이 아니라면 남편은 어디로 간 것일가? 분명 원래 다니던 곳으로 갔을 것이다…그런데 그 곳이 대체 어디란 말인가? …

새벽이 되여 남자가 돌아왔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오랜 시간을 공 들여 꼼꼼하게 샤와를 하고는 담요를 들고 거실 쏘파로 갔다. 녀자는 따져묻지 않았다. 이런 일은 빼도박도 못하는 확증을 손에 넣기 전에는 절대 이발을 드러내면 안된다. 

녀자는 남자가 곁을 비울 때마다 수시로 핸드폰으로 남자의 이메일을 체크했다. 그런데 선이란 녀자로부터 한통의 메일도 오지 않았다. 남자가 그녀한테 메일을 보낸 흔적도 없었다. 그들이 혹시 녀자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눈치를 챈 것일가? 전에는 가담가담 이메일을 통하더니 최근 들어 아예 딱 끊은 것을 보면 십중팔구 눈치를 챘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그녀를 따돌리고 은밀하게 제3의 장소에서 만나고 있을 것이다. 복수하고 싶지만 복수할 방법이 없었다. 억누르고 있던 마음이 한순간에 부서져내리고 그 부서진 쪼각들이 헐거워진 틀이처럼 수시로 덜거덕거렸다. 녀자는 절망했다. 남자를 버리는 것으로 그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끝나버리는 것은 그녀 자신에 대한 례의가 아니였다. 녀자는 자신한테 공평한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애시당초 존재할 수 없었다. 이미 원상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처를 받았다. 어떤 결과이든 그녀한테는 일방적인 상처일 뿐이였다.

상처를 받은 만큼 도로 갚아줄 수 없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였다. 왜 그는 되고 나는 안되는가? 녀자는 한없이 억울했다. 세상의 어디에도 공평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였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이리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단 말인가? 무수한 새떼가 뇌수를 파먹듯 텅 빈 머리 속에는 바람소리만 들릴 뿐이였다.

 

4.

녀자는 다시 집을 나섰다. 남자가 간 곳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아픔을 그에게 갚아줄 방도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가 찾아간 곳은 송의 사무실이였다. 계획하고 온 것은 아니였다. 그냥 갈 곳이 없어서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토요일이라 당연히 사무실에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송한테 전화를 하였다.

웬 일로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함께 한다던 송이 이날 따라 마치 녀자와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무실에 나와있었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가? 그녀의 전화를 받고 송이 급히 건물 로비까지 내려왔다.

“커피숍으로 갈가요?”

송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녀자한테 깍듯하게 례의를 갖추었다. 

녀자는 망설였다. 남편의 친구와 같이 커피숍으로 가는 것이 왠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송이 바로 말을 바꾸었다.

“괜찮으시다면 저의 사무실로 올라가시던지요…”

그는 눈치가 빨랐다. 그녀가 무엇을 꺼리는지 금시 알아차린 것이다. 녀자는 커피숍보다 사무실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이란 말 그대로 사무를 보는 곳이 아닌가. 누가 봐도 꺼리낄 것이 없다. 녀자는 남자를 따라 17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넓다란 테이블 우에는 설계도면들이 펼쳐져있었다. 설계작업을 하고 있던 중이였던 모양이다.

“미안해요. 일하는데 방해를 한 것 같네요.”

“아니, 아닙니다.”

송이 서둘러 설계도면을 둘둘 말아 한켠에 밀어놓고 그녀한테 의자를 내여주었다. 그가 급히 커피를 내오는 사이에 녀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지척에서 보이는 전망 좋은 사무실이였다. 톤 다운된 원색으로 모던하고 심플하게 꾸며진 사무실 한켠에 꽤나 값져보이는 패브릭 수입 쏘파가 놓여있었다. 녀자는 조용히 쏘파로 옮겨앉았다.

남편의 절친 사무실에서 남편에게 복수를 할 방법을 찾으려는 자신이 무모하고 어리석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송을 찾은 것이다. 단 한번도 둘이서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가끔 눈빛만 부딪쳤던 것 뿐이다. 송의 눈빛은 언제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녀의 편을 들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송이 커피잔을 들고 그녀한테로 다가왔다. 커피잔을 받으려고 급히 일어나던 녀자가 한쪽으로 몸을 기우뚱했다. 송이 급히 피하느라 했지만 녀자의 손에 커피를 쏟고 말았다. 녀자의 손등이 순식간에 빨갛게 부풀어올랐다. 송이 급히 녀자를 이끌고 싱크대로 가서 녀자의 손등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는 급히 밖으로 뛰여나갔다. 십분도 채 안되여 송이 화상연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약국에 갔다온 모양이다.

녀자의 손등에 연고를 바르고 송이 열심히 입김을 불었다. 그의 입김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시원하면서도 간지러웠다. 순간 녀자는 송을 유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을 유혹하는 것은 남편에게 가장 잔인한 복수가 될 것이다. 안해와 절친의 배신이라니. 이보다 더 완벽한 복수와 일탈은 없다. 녀자는 짜릿함에 온몸을 떨었다. 송이 소스라쳤다.

“많이 아파요?”

“네, 너무 아파요.”

“죄송합니다. 병원에 가야 되는 게 아닌가요?”

“손이 아픈 게 아니라 …”

송이 아스란히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기가 아픕니다.”

녀자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제야 송이 크게 숨을 내그었다.

“남편 때문에 상심이 큰 줄 압니다.”

“절 도와주세요.”

녀자가 송의 두 손을 덥썩 잡았다.

“제가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가요?”

녀자가 두 팔을 활짝 벌려 송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가 아연실색했다.

“왜 이러십니까?”

“제가 복수하도록 도와주세요! 제발 절 뿌리치지 말아주세요…”

송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굳어진 채 녀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쩌면 오래도록 은근히 바랐던 일인지도 모른다. 남자는 온몸의 모든 세포가 활짝 열린 채 그녀를 받아들이고 싶어 안달하고 있었다. 시나브로 비약을 준비하는 나비처럼 그의 몸이 서서히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비가 높이 날기 위해서는 적당히 몸을 덥혀야 하듯이 송 역시 그런 과정이 필요했던 것일가? 송이 갑자기 서두르며 녀자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무아지경의 경지에서 두 사람은 잠시 주위를 잊은 듯했다. 이것이 복수인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서로 이날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 두 사람은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미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랑합니다!”

남자가 문뜩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뜻밖이였다. 녀자는 이런 것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아무 준비도 없이 그냥 순간적으로 부딪친 감정이 사랑일 수 있단 말인가? 남자들이란 다 이렇게 쉬운 존재인가? 하지만 크게 나쁘지도 않았다. 일단은 그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송의 말이 진심인지 그냥 하는 소리인지는 상관 없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남편과의 감정보다 더 신뢰가 가고 더 의지가 되며 더 달콤하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뿐이다. 사랑이란 가질 수 없는 것, 다가오지 않는 것, 품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이 아닐가? 녀자는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였다. 적어도 그 순간에 자신도 송과 같은 생각을 했으니깐…

폭풍우가 지나가자 두 사람은 서로 낯선 사람인듯 다른 곳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송이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방황이 끝나면… 분명히 제자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 놈 말입니다.”

송이 남자를 위해 변명을 하는 것을 보니 금방 있었던 일이 미안했던 모양이였다. 아니,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비겁해보였다. 녀자는 송과 가까워졌다고 느꼈고 앞으로 더 자유롭게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송은 오히려 멀어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작은 구름조각을 붙잡고 있는 것과 같은 표정을 짓고 심술궂게 대답했다. 

“그가 돌아와도 소용없어요.”

“왜요? 돌아오기를 바란 것이 아니였어요?”

“제가 먼저 그를 버릴려구요!”

송이 탄식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친구도 많이 외롭고 불쌍한 놈입니다…”

남자가 방황하는 것은 어릴 적에 받은 상처가 깊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송이 설명했다.

남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번씩 결혼에 실패하고 재혼으로 만난 사이다. 결혼 당시 어머니한테는 전남편의 소생인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었다. 아버지도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데리고 재혼했다. 준이는 두 사람이 결혼 후 낳은 유일한 자식이다. 가장 많이 사랑을 받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배 다르고 성이 다른 네 아이들이 싸우거나 말썽을 일으킬 때마다 시어미 역정에 개 옆구리를 찬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쩍하면 막내인 준이한테 분풀이를 했다. 상대방이 데리고 들어온 자식을 욕하고 때리면 구설수에 오르고 마을에서 손가락질 당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친자식인 준이한테는 함부로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였던 모양이다. 넉넉한 형편도 아닌 데다가 서로 적대감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한지붕 아래서 살다 보니 집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항상 다섯 폭탄을 탑재하고 있는 형국이여서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랐다. 막내를 미워서 때렸겠는가. 그를 때리고 야단침으로써 집안의 시끄러움을 제거하려 했거나 고달픈 삶에 대한 자신들의 분풀이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형제들 역시 심기가 불편할 때마다 준이한테 풀기가 일쑤였다. 이런 이률배반적인 갈등 속에서 준이는 자신에게만 가해지는 폭력과 불평등을 겪으며 점차 부모에 대한 원망이 컸고 형제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늘 혼자이고 외로웠다. 그래서 친구를 많이 사귀였고 친구가 없으면 하루도 견디기 힘들어했는지도 모른다.

“준이는 아직도 자신을 찾지 못해서 저리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죠.”

송의 말을 들으면서 잠간이지만 녀자는 마중물처럼 눈물이 고였다.

“그런 소리 여직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녀자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처음으로 남자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신이 남자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오래도록 기다리며 방황한 것처럼 어쩌면 남자 역시 그녀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에게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에 남자의 방황을 부추긴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녀자는 간다는 말도 없이 송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누구에게나 시시각각 거부하는 순간과 받아들여지는 순간은 찾아온다. 자신의 껍데기를 평생 이고 다니는 달팽이처럼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늘 짊어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녀자는 남자가 그 자신을 찾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5.

녀자는 돌아오는 길에 꽃집에 들려 남자가 좋아하는 금잔화 한묶음을 샀다. 남편은 금잔화에 대한 전설 때문에 이 꽃을 좋아했다. 태양의 신을 사랑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늘 태양이 있는 하늘을 좋아했고 태양이 없는 밤을 슬퍼했다. 태양의 신도 소년을 뜨겁게 사랑했다. 그러자 구름의 신이 둘의 사랑을 질투하여 태양의 신을 여드레 동안이나 구름 속에 가두어두었다. 소년은 태양의 신이 없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만다. 태양의 신은 죽은 소년을 애도하고 둘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소년을 금잔화로 환생시켰다. 금잔화가 언제나 태양을 향해 아름답게 피는 것은 태양과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증거다.

귀가한 남자가 이윽히 금잔화 옆에 서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금잔화가 그렇게나 좋아요?”

“금잔화에 감동한 게 아니야.”

남자가 쑥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왜 그 앞에 넋 나간듯 서있어요?”

“금잔화를 사온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있었어…”

남자가 고개를 깊이 떨어뜨리며 혼자소리처럼 작게 말했다.

“미안해!”

“뭐가요?”

“그냥…다…”

녀자는 남자가 토요일마다 새벽에 돌아오는 비밀을 털어놓기를 바랐다. 그런데 남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고 있었다. 

“확신이 없었어… 그래서 많이 방황했던 것 같아.”

“확신이 없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알아.”

“뭘 알아요?”

“당신이 내 뒤를 쫓고 있다는 걸.”

“그럼 메일 열어본 것도 알았겠네요.”

“물론이지. 오늘 송을 만난 것까지 다 알어.”

“어떻게…”

녀자가 깜짝 소스라쳤다. 혹시 그와 스킨십을 나눈 것까지 보고 있은 것은 아닌지… 가슴이 쿵닥거렸다.

“놀랄 것 없어. 송이 전화가 왔더군. 당신을 만났다고…”

“송이 뭐라고 했는데요?”

“당신을 외롭게 하지 말라구… 경고한다구… 개자식 제가 뭔데 나한테 협박을 해?”

입으로는 욕을 했지만 표정에는 악의가 없었다. 송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였다. 녀자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자가 얼굴을 들더니 녀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래일 시간을 좀 비워줘.”

“래일은 토요일인데요. 괜찮아요?”

“알아.”

대답을 하는 남자의 표정이 덤덤했다.

“그런데 왜요?”

“함께 갈 데가 있어.”

“어딘데요?”

“가보면 알아.”

그런데 왜 하필이면 토요일인가?

너무도 뜻밖이다. 혹시 그동안 자신이 다녔던 그 비밀 아지트로 데리고 가려는 것은 아닐가? 천만에. 그토록 쉽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사람이 아니다. 그 곳이 선이와의 사랑의 보금자리거나 아니면 단말마적인 비명을 지르게 한 소녀의 어머니를 범했던 장소라면 그 어느 쪽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은가? 어쩌면 의미를 두지 않은 단순한 외출이거나 친구들과의 모임일지도 모른다.

밤새 눈이 내렸던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갓 태여난 아기의 배내저고리 같이 하얀 눈들이 대지를 살포시 감싸안고 있었다. 깨끗하고도 고요한 경이로움이 오로라처럼 반짝이며 가슴을 적시고 흘러갔다.

“아, 너무  아름다워요!”

녀자가 감탄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남자가 되돌아왔다.

“눈이 오니까 참 보기 좋지?”

“그러게요.”

“뻐스를 타고 가는 게 어때?”

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눈이 오는 날에는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리용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녀자는 말없이 남자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발밑에서 빠지직 빠지직 새 눈 밟는 소리가 신기로웠다.

두 사람은 도심을 벗어나 온통 은백색으로 뒤덮인 수림을 지나 작은 시골마을 역에서 내렸다. 십분 가량 걸어가자 우거진 소나무숲 속에서 빨간색 벽돌에 파란 기와를 얹은 건물이 보였다. 건물 앞에서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잠간 녀자를 건너다보았다.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주저하는 것 같았다. 잠간이였지만 녀자는 남자가 자신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녀자가 앞질러 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체념한듯 남자가 희미하게 대답했다.

“의료원이야! ”

남자가 앞에서 걷고 녀자가 뒤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 긴 코리도를 지난 후 맨 마지막 방 앞에서 남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창문으로 하얀 해살이 들어와 눈이 부셨다. 해살 아래에 한 남자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코와 입에 산소호스가 꽂혀있었다. 남자가 침대 옆에 다가서서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전에 녀자의 침대 옆에서 그녀를 내려보듯이 말이다.

“이 분은 누구세요?”

녀자가 귀속말로 물었다.

“형이야!”

“형? 무슨 형?”

녀자는 깜짝 놀랐다. 남자에게 이복 형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형에 대하여 한번도 말해준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아들이야!”

“그게 무슨…?”

“아버지가 데리고 온 아들!”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할 때 데리고 온 아들이란 소리다. 여직 그런 이야기를 숨겨왔던 사람답지 않게 남자는 형이란 존재에 대하여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 분이 왜 여기 이러고 있어요?”

“차사고로 식물인이 되였어. 지은 죄가 많으니 벌을 받은 거지 뭐.”

남자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녀자가 날카롭게 흘겼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면전에서 할 수 있느냐고 질책하는 듯했다.

“동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는 인간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자의 눈빛은 흐릿했다. 남자가 녀자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눈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푸른 잎을 드러낸 소나무 가지들에 이름 모를 하얀 새들이 앉아있는듯 듬성듬성 아기손 만큼한 눈송이들이 남아있었다. 정원을 거닐면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어릴 때 형 때문에 물에 빠져서 죽을 번했던 적이 있었어…”

남자가 녀자한테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었다. 처음 있는 일이였다.

“강가에 목욕하러 갔다가 헤염을 칠 줄 모르는 나를 형이 강제로 물에 밀어넣은 적이 있어. 나중에 물에서 건져주기는 했지만 나는 이미 혼수상태였어. 그 일로 형은 아버지한테 죽도록 얻어맞았지… 그 길로 형은 집을 나갔어. 그 때 그의 나이가 열입곱이였거든. 형이 집을 나가고 나서 아버지는 나를 멀리했어. 집을 나간 아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랬을 테지. 나는 오래동안 아버지를 원망했어. 아버지에게 진정한 아들은 형 뿐이라고 말이야. 그 일이 있고 나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주 싸웠어. 아버지는 형이 집을 나간 것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는 애초에 형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라고 했어…”

말을 하다 말고 남자가 감정이 북받치는듯 눈을 슴뻑였다. 형의 가출에서 단 한번도 자유롭지 못했던 그다. 형이 잘못되면 자신의 탓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어린 시절부터 늘 불안했고 두려웠다. 그에게 자신이란 있을 수 없었다. 깨여있는 시간 뿐만 아니라 잠든 시간에도 형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울 때마다 형과 그의 잘잘못못을 놓고 론쟁을 벌였다. 그들의 싸움은 거의 매일 일어났다. 싸우지 않은 날이 어쩌다 한두번 있기는 했지만 그런 날의 괴괴함은 그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같은 낯설고 익숙치 않음에 그는 집에 붙어있지 못하고 강역이나 들판으로 들개처럼 돌아다녔다. 항상 형처럼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었지만 담이 작았던 건지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절실함 때문이였던지 그는 결국 집을 떠나지 못했다. 형이 돌아오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될 것이고 집안의 평화도 찾아오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가 결혼을 한 후에도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결혼하는 날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우시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남자는 자신의 결혼 자체가 아버지한테는 상처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러다가 얼마전, 아버지가 그의 회사를 찾아와 형이 돌아왔다고 하였다. 

소용돌이처럼 마음을 휘젓고 지나가는 감정은 희열이나 기쁨과 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였다. 원망과 미움이 희열과 혼재하여 어떤 것이 진실한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했던 것은 자신의 지난 세월을 송두리채 빼앗아가버린 형의 책임을 따지고 자신을 돌려받고 싶다는 생각 뿐이였다. 그렇게라도 한다면 그동안의 세월이 덜 억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따라가서 형을 만난 곳은 뜻밖에도 병원이였다. 차사고를 당하여 머리를 다친 형은 이미 뇌사상태였다. 남자는 형의 앞날을 미리 알고 있은 사람처럼 담담했다.

“왜, 놀라지 않니?”

아버지가 크게 놀랐다.

“형 때문에 아버지는 저를 멀리했어요. 제가 형이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마지막 길이야… 간신히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어. 의사들은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어.”

“잘됐네요!”

남자가 잔인하게 웃었다. 아버지는 억이 막힌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형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다쳤으면 저러랴 싶어 긴 한숨만 내쉬였다. 

“여긴 저한테 맡기고 아버진 집에 들어가세요.”

그의 말에 아버지가 놀란 눈을 부릅떴다.

“네가 형과 같이 있는다고?”

“왜요? 제가 혹시 형을 해치기라도 할가봐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진데 더 이상 해칠 일도 없잖아요.”

비칠거리며 병실을 나서는 아버지의 뒤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형보다 아버지가 먼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그 뒤로 남자는 매주 토요일이면 형 곁에서 밤을 지샜다. 그러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산소호흡기를 떼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수시로 참으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그런 마음은 도대체 형이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인지 아니면 어서 죽기를 기다리는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왜 그랬어요?”

녀자가 그에게 물었다.

“뭘?”

“형 곁에 있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왜 그랬어요?”

“…처음에는 형과 채 하지 못한 말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거든. 왜 그 때 나한테 그리 잔인했었냐구? 왜 내 목숨을 가지고 장난쳤냐구? 물었어. 그런데 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더라…”

녀자가 남자의 손을 잡았다. 손이 얼음장처럼 차거웠다.

“당신이 왜 형을 놓지 않는지 전 알 것 같아요.”

“왜라고 생각해?”

남자가 우울하게 물었다.

“아버지의 아들로 살았던 형이 부러워서일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지… 형은 밖에서 살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니깐.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의 아들로 산 적이 없었어. 형이 돌아오면 아버지의 마음이 나한테로 돌아올 것이라고 여겼던 적이 있어… 그래서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거든. 지금은 비록 산소호흡기에 의지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이곳에 오면 왠지 나는 마음이 편안해져… 저기 누워있는 형이 오래동안 방황을 하고 돌아온 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그런 말을 왜 나한테 하지 않았어요?”

녀자가 남자를 나무랐다.

“말을 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적어도 오해는 하지 않았을 거잖아요?”

남자가 고개를 깊게 꺾고 발끝을 내려다봤다.

“용기가 없었어. 잡초처럼 살아온 내 과거에 자신이 없었거든. 어쩌면 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몰라.”

녀자는 가슴 끝이 시리고 아렸다. 아픔에서 그를 조금이라도 끌어내고 싶었다. 녀자가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며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이 너무 예뻐요!”

민들레 홀씨 같은 하얀 눈이 푸슬푸슬 날리고 있었다. 

그 때 간호사가 재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환자가 운명을 하려나봐요.”

두 사람은 다급히 병실로 돌아갔다.

형이 아주 짧은 간격으로 발작하듯 숨을 톺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흐느낌처럼 긴 숨을 몰아내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왜 이러죠?”

“운명했어요. 사람의 몸에서 생명이 가장 마지막에 꺼지는 곳이 귀예요. 숨이 떨어지고 나서도 3분간은 귀가 열려있으니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세요.”

남자가 급히 형의 침대에 다가갔다. 그는 상반신을 깊숙이 숙여 형의 귀가에 대고 절규하듯 소리쳤다.

“형! 우리 곁으로 돌아와줘서 고마워!… 잘 가!”

출처:<장백산>2017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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