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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맛
2010년 01월 19일 14시 21분  조회:1036  추천:0  작성자: 김태현

단편소설

 

천년의

 

 

(1)

 

 

혜숙아, 뭘하고 있냐? 후딱 일어나지 않고. 그렇게 꾸물대다간 어느 천년에

아침상을 물리기 바쁘게 장모는 딸 혜숙이를 들볶기 시작했다.

장모님께서는 하시려고?

어제 동무가 두부를 즐겨 자신다고 말씀했더니 오늘은 기어이 초두부를 앗는다면서 저렇게 부산떨어요.

나의 물음에 혜숙이는 잔잔하게) 웃었다.

장모는 언제 준비하셨는지 벌써 손매돌 두짝을 부엌에 이미 엎어놓은 가마뚜껑우에 올려놓고 쭈크리고 앉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반질반질 묻은 나무손잡이를 잡고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장모가 - 돌리는 매돌을 신기하게 지켜보았다.

매돌은 윙윙 소리까지 내며 부드럽게 돌아갔다.

   장모님은 왼손에 길죽한 나무숟가락으로 돌아가는 매돌의 입구에 수시로 물에 불려 커다랗게 퍼진 누런 콩을 한술한술 떠넣었다. 그런데 콩알 한알도 곁에 흘리지 않고 너무나 정확하게 매돌의 입구로 들어갔다.

얼마 안되여 하얀 콩비지가 돌아가는 매돌의 두쪽사이를 타고 엎어놓은 가마뚜껑우에 줄줄 흘러내렸다.

장모는 량손으로 엇바꿔가며 돌리던 매돌을 멈추고 이번에는 앞끝이 반달처럼 휘여들어 무지러나간 길다란 알루미늄국자를 들고 가마뚜껑우에 흘러넘치는 콩비지를 곁에 놓인 함지에 퍼담았다. 그리고는 량손을 바꿔가며 매돌을 힘차게 돌렸다.

장모의 백발의 머리카락속에서 젓가락만큼 굵은 유난히 하얀 은비녀가 장모님이 좌우로 몸을 기울일 때마다 반짝반짝 찬연하게 은빛을 뿌렸다

부엌아궁이에서도 탁-탁 장작이 타면서 내는 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왔다

 

 

(2)

 

 

경상남도 합천에 태를 묻은 할머니는 가끔 집에 드는 나그네들을 대접한다고 손매돌을 돌려 김이 서린 부엌에서 두부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증조할아버지와 함께 힘들게 려인숙을 운영하면서 두부를 만든 증조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씩 들려주었다. 증조할머니가 만든 순두부가 참으로 맛이 있었다고

그러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시는 증조할머니의 두부사연을 들어보지 못했다.

소학교에 다닐 때에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콩을 사발에 담아가지고 한족 사람들이 만드는 두부방 가서 사발에 두개의 커다란 두부모를 가공비 5전씩 주고 바꿔먹었다.

두부는 언제나 비지가 냄새만 났다. 그런 냄새나는 두부라도 시절에는 귀한 음식이였다.

 

가마가 넘칠듯 콩물이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장모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콩갈음이 가마전을 넘길세라 양철로 만든 쇠바가지를 들고 조심스레 휘젓더니 어느새 푹푹 떠서는 가마목 함지에 준비해놓은 새하얀 헝겁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주머니아구리를 비틀어쥐고 지긋이 내리눌렀다. 새하얀 헝겁주머니의 면직사이로 뽀얀 우유같은 콩물이 뿌지직뿌지직 소리를 내며 솟아나왔다

콩물이 다시 가마에서 달여질무렵은 서산의 해가 바야흐로 넘어가는 저녁무렵이다.

혜숙아, 날래 양념장을 치거라! 파랑, 고추가루랑 듬뿍 넣고

   쇠바가지를 들고 콩물을 휘저으며 성에꽃마냥 연한 두부발이 엉키는것을 들여다보시던 장모님께서 딸에게 분부내렸다.

장모는 옛날 닭곰 쓰던 뚝배기에 초두부를 넘쳐나게 담았다.

어려워말고 많이 들게

땀에 젖은 장모의 얼굴에는 행복 같은 미소가 어린다.

나는 체면을 접고 대뜸 초두부 그릇에 숫가락을 박았다. 그리고는 무작정 한술 떠서 입안에 넣었다. 따끈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잠간새에 초두부 그릇을 감추듯 먹었다.

내가 다시 그릇을 받으니 장모님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시뻘건 팔뚝으로 쓱쓱 닦으며 입이 미여지게 웃었다.

그래야지. 음식은 만든 사람의 성의를 살피는게야. 그래 많이 들게. 아무렴, 이런 눅거리 두부야  못해주겠나?

나는 혜숙이와 약혼말을 떼고 처음으로 두만강 변두리에 자리잡은 길지촌 혜숙이네 집으로 놀러갔다가 농가에서 초두부를 앗는것을 생동하게 보게 되였고 그처럼 맛있게 먹었다.

 

 

(3)

 

 

점심밥을 먹고 오후 일찍이 외손녀를 앞세우고 들미나리 캐러 나섰던 장모님께서  되돌아와 혜숙이를 불렀다.

혜숙아. 오늘이 스므이틀이다. 그래 콩을 물에 불궈놓았느냐? 래일 새벽에 퍼뜩 초두부를 앗을거면 서둘러야 하느니라.

엄마도 , 초두부가 그리 좋다고 자꾸만

혜숙이의 못마땅해하는 말에 장모님께서는 눈을 흘겼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이년은 아직 멀었어. 그게 초두부가 음식 같냐?

음식이 아니면 먼가요?

철없은것아, 당장 시집갈 년이 그리도 철이 없구서야.

이런 말을 남기고 미나리 캐러 가셨던 장모님은 저녁편에야 절뚝거리면서 들어섰다.

아재, 외할머니가 제방뚝에서 굴렀어요.

저녁상을 갖추는데 장모님을 따라갔던 조카애가 밥상앞에서 종알거렸다

요년이 주둥아릴

장모님이 떠듬거리는 외손녀의 머리를 살짝 튕기며 어색하게 웃었다.

, 돌에 걸채여 넘어졌었네

아임다. 제방뚝에서 구불었슴다.

조카애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정색해서 종알거렸다.

괜찮네. 발목뼈가

이튿날 풍성한 생일상에는 장모가 손수 앗은 초두부까지 뚝배기에 수북하게 담겨있었다.

그러나 장모님은 그날 내내 접지른 상한 발목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정말이지 발목으로 어떻게 새벽 초두부를 앗았는지 생각조차 수가 없었다.

촌위생소의 의사를 모셔왔더니 넘어질 무릅뼈가 돌에 쫒기여 상한것 같다고 하였다. 장모님은 시내의 병원에 가서 x 사진을 찍으라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장모님은 그때부터 20세기가 저므는 그해 세상을 때까지 불편한 오른 다리를 힘들게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4)

 

 

이듬해 정월 초이틑날에 결혼식을 올리고 그해가 막가는 그믐날 나는 혜숙이와 함께 장모한테로 음력설 쇠러 가게 되였다.

에그에그 추운데 어찌들 왔냐?

장모님은 바람막이도 없는 길가의 뻐스역까지 마중나와 있었다.

장모님은 뻐스에서 내리는 혜숙이를 밀어놓고 뒤에 나의 두손부터 잡았다. 하지만 장모님의 두손은 이미 얼음장 같이 차가워져 있었다.

장모님두 추운 날씨에 마중은 나오시며

나는 외투를 벗어 우들우들 떨고있는 장모님의 등굽은 몸우에 씌워드렸다.

저녁에 혜숙이가 설빔으로 내놓은 벌을 두고 장모님의 치하가 그칠새 없었다.

에그그 사람 사위, 옷은 해가지고 옷은

장모님은 옷을 곱게 개여 농속에 깊숙히 넣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입고플 혜숙아, 얼른 헛간에서 콩을 내다가 물에 불궈놓아라. 래일 초두부를 앗게.

장모님은 농문에 노란 쇠까지 찔러놓고는 설겆이를 하고있는 혜숙이를 급히 불렀다.

아이참, 엄마두. 동무가 아무리 두부를 좋아한다고 설날까지도 두부를 앗겠수? 사위가 고우니 이젠 로망이지 않수?

   혜숙이가 헛간으로 나가려는 장모님의 옷자락을 잡고 웃으면서 말렸다.

왜 설날에 두부를 앗지 말라는 법 있다냐?

장모의 고집은 누구도 못 꺾는다.

(설날 아침 밥상에는 산해진미가 올랐다.

삶은 통닭은 물론 새파란 들미나리까지 올라 연연하게 입맛을 돋구었다.

미나리는 내가 가슬(가을) 꺾어서 김치움에 보관해두었던거네. 사람은 이걸 생것채로 고추장에 묻혀먹었었지?

장모는 미나리를 그릇채로 나의 앞에 밀어놓고는 삶은 닭의 날개를 찢었다.

그리고는 찢은 닭의 날개를 나의 밥그릇에 놓으며 푸념같이 중얼거렸다.

새해에는 훨훨 날아야지 그리고 그리고 사람을 사람을 아끼라구!

장모는 내가 닭의 날개살을 뜯는것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6)

 

 

그믐날, 불현듯 초두부가 먹고싶었다.

장모님께서 부엌의 엎어놓은 가마뚜껑우에 손매돌을 올려놓고 물에 불궜던 콩을 갈아 손수 앗아주던 초두부가 별스레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그러나 장모님의 뜨거운 향기가 피여오르던 초두부는 어디에도 없다.

시장통 음식매대에서도 장모님의 향기가 피여오르는 추억의 초두부는 찾을수가 없었다.

여보, 우리 오늘 초두부를 앗아먹을가? 오늘따라 초두부가 이처럼 먹고프지?

? 그믐날에 생뚱같은 초두부예요?

글쎄, 왠지 장모님께서 앗아주던 초두부가 불현듯 생각나서?

혜숙이는 나의 말에 힘없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눈물을 흘렸다.

재작년 장모님의 제사를 마치고 모두들 제사날을 고치자고 합의를 보았었다. 장모님께서 음력으로 정월 초이튿날에 돌아가시다보니 음력설이 장모님의 제사날로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작년에도 음력설날에 장모님의 제사상을 차렸다.

해마다 설날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나는 늘쌍 안해인 혜숙이에게 장모님의 사랑은 바로 돌아가신 장모님의  딸자식에게서 향기로 피여난다고 말했다.

나는 장모님의 초두부맛을 영원히 잊을수가 없다.

비록 혜숙이와 첫선을 보고 장모님에게서 받은 대접이였지만 나는 손매돌로 콩을 갈아 농가집에서 손수 앗는 초두부는 그때가 처음이였다.

나는 지금도 초두부의 첫 맛을 잊지 못한다

초두부는 음식이 아니라 장모님의 정이였다. 그 정은 다시 향기가 되여 천년의 맛으로 되였다.

나는 아지랑이처럼 피여오르는 천년의 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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