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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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에 모이다
2017년 12월 19일 15시 53분  조회:1208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파출소에 모이다
김영분
 
딸아이의 호적문제로 오래만에 고향땅을 밟게 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고향의 하늘을 보는 순간 말 못할 푸근함과 친근함이  온 몸을 감싸고 돌았다. 십여년만에 밟는 고향땅이여서 그런지 내디디는 매 발자국마다 의미있게 다가왔다. 가슴은 설레이다 못해 풍선처럼 둥둥 뜬거 같았다. 화려한 건축도 없고 세련된 양복맨들도 없었지만 편안한 그 느낌은 저녁까지 뛰여놀다가 맛있는 저녁을 해놓고 기다리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 향하는 어린 아이의 심정과 같았다.

당연지사처럼 소학교 때 코 흘리개 친구들과 만났다. 고향에 남아있는 그들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거의 30년을 못 본 친구도 있었다. 한국에서 건축일을 하다가 잠시 귀국하여 비자를 기다리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학교옆에서 민족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친구,그리고 학교선생님을 하고 있는 친구,애들 뒤바라지 하느라 고향에 눌러 앉아있는 친구,의사를 하고 있는 친구로 참으로 다양한 모습이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소박하면서도 열정적이였다. 푸근한 동네 인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은 외지에서 빡세게 살고 있는 나로 하여금 큰 부러움을 자아내게 하였다.

이튿날,기꺼이 동행을 해주는 친구와 함께 뻐스를 타고 살던 동네로 향했다.향 파출소에 가서 딸아이 이름을 정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동네로 향하는 뻐스는 옛적의 덜컹대던 뻐스가 아니라 크고 넓직한 관광뻐스로 변해 있었다. 시내를 한참 달구지처럼 늦장부리면서 손님을 끌어모으느라 천천히 달리더니 서서히 시골길로 들어섰다. 길 량옆의 백양나무는 아직도 푸르청청 서 있었다. 다만 길이 좁아보였다. 분명 내가 뻐스를 타고 중학교를 다니던 그 길이였는데 십여년 이 지나서 그런지 아주 좁아 보였다. 덜컹 거리는 길은 여전했다. 때는 여름이라 옥수수 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낑낑대면서 오르던 언덕도 한없이 작아보였다. 십여년 가까운 세월이 벌떡 몸을 일으켜 눈앞으로 다가온 듯 설레였다.

친구랑 둘이서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하느라니 옆좌석에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조선족이구만유.”
그제야 보니 의상이며 눌러쓴 모자며 조선족아저씨의 특유한 풍채가 엿보였다.
우리도 같이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아저씨. 안녕하십니까. 어찌된 일로 시골 가시는거예요?”
“파출소에 볼 일이 있어 가는거유.”
생각 밖으로 그 아저씨도 파출소에 간다는 것이였다.
“파출소가 아니면 그 한산한 동네에 갈 일이 머가 있겠슈,혹시 언니들도 파출소 가는거아니유.”
우리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척척박사가 따로 없었다.

그렇다. 내가 학교 졸업하고 고향을 다녀와도 친척들이 다 시내로 이사가서 살고 있는 바람에 시내에서만 머물렀지 동네까지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번 파출소에 볼 일이 없으면 아마도 정말 고향동네로 가는 뻐스 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초면이지만 같은 조선족이라는 리유로 이것 저것 얘기를 나누다나니 우리 동네랑 10키로 정도 떨어진 동네에 촌민이셨다. 우리 부모님이랑은 논뚝 물을 관리하면서 서로 아는 사이라고 하셨고 지금은 량주가 시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였다.
“우리 동네는 다 한족들이 들어와서 산다우. 조선족집은 한 호밖에 안 남았다니께.”
아저씨는 코 끝까지 떨어진 안경을 추스르며 서글픈 듯 쯧쯧 소리를 냈다.

하긴 우리 동네도 상황이 다를바는 없었다. 40여호였던 조선족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다 한국으로 연해도시로 진출하면서부터 아이들 로인들 할것 없이 거의 이사를 한것 같았다. 촌장 맡을 사람도 없어서 70넘은  로인을 시킨다니 할 말이 없는 것이였다.
어기영차 한시간 남짓이 달려서 뻐스는 향정부 소재지의 십자길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이전에 시내 한번 나가려면 반나절이 걸린 것 같은데 뚝딱하니 한시간만에 온것도 너무 신기했다. 내가 커버린 것인가 길이 갑자기 짧아 진것인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릴 때 설이 되여야 어쩌다 와 보던 향정부 거리였다. 각종 맛나는 음식이 즐비하게 늘어선 설 장날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듬성듬성 빨간색 건물이 몇개 들어서 있었다. 파출소에 도착하고 보니 자그마한 사무실 한 칸이 다였다. 젊은 청년이 뽀얀 피부를 하고 서글서글한 두눈으로 한대 밖에 없는 컴퓨터 앞에 서서 우리를 보면서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왔다.

여태 내가 살던 도시의 파출소는 으리으리 했다. 공무원들도 많았고 창구도 많았고 컴푸터며 프린트기며 사무집기가 즐비했었다. 고향의 향 파출소가 이렇게 간소할 줄은 정말 생각 밖이였다.
나는 여차여차 딸 아이의 호적에 이름이 출생증과 맞지 않아서 고치러 왔다고 했다. 미리 준비한 수많은 복사본을 같이 내밀면서 어렵게 한 걸음이니 꼭 잘 부탁한다고 곁들었더니 이것은 자기가 호적관리시스템 원인으로 고쳐줄수가 없고 여차여차 다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였다.

내 일이 끝나자 같이 뻐스를 타고 왔던 아저씨가 또 호적등본을 내밀었다. 아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손자 호적을 올리고 싶다는 것이였다. 추가로 아들과 호적을 가르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으니 고향에 아들 집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니 량주가 살던 집도 다 팔았고 아들은 연해도시에서 정착을 해서 살고 있으니 동네에 집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파출소 직원이 그러면 호적을 가를수가 없다면서 어떠한 상황하에서 호적을 가를수 있는지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설명이 끝날 때 쯤 되니 파출소로 야구모자를 쓴 남자와 파마를 버섯처럼 동실하게 한 아주머니가  들어섰다.얼핏 봐도 조선족이였다. 아들은 중년의 나이였고 준수한 얼굴은 금빛을 뿌린 것처럼 윤택이 반지르르 돌았으며 어머니는 고운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환갑이 지난듯 싶었다. 이 모자간이 파출소를 찾은 원인은 어머니가 여태 아들이 살고 있는 연해도시에서 아이를 돌봐주느라 십여년을 고향에 돌아와본적이 없다나니 제2대신분증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새롭게 신분증을 만들려니 이전의 신분증도 다 분실된 상황이였다. 파출소 직원은 무슨 원인으로 이렇게 오래 신분증을 만들지 않았는지 그리고 어디서 여태 살았는지 등 이런 증명을 떼오라고 하였다.
오전내내 파출소에는 한족들의 업무는 전무했고 다 외지에서 급히 고향으로 돌아와 호적문제로 찾아온 조선족들이 문턱을 넘나 들었다.

파출소 직원이 웃으면서 “너희들은 참 좋겠다. 다 좋은 곳에서 살고 있으니 너무 부럽다.”고 하였다. 자기는 학교졸업하고 고향으로 분배를 받다나니 시골에 오게 되였다고 기회가 되면 자기고 꼭 나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청년의 그 부럽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머쓱하니 웃었다.
우리의 애환을 알고 부러워 하는지. 그는 아마 파출소에 찾아온 윤택한 얼굴의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그리고 우리가 누릴 멋진 삶을 련상했을 것이다.

도시는 현란하지만 그 속의 우리는 어떠한가. 빙벽에 걸린 자일(등산때 쓰이는 로프)처럼 항상 팽팽하지 않았던가. 오뉴월에 해빛과 수분만 있으면 제멋대로 자라는 개버들처럼 우리는 항상 씩씩했지만 많은 걸 감수해야 했다. 비바람과 추위는 계절마다 찾아오지 않았던가.

고향은 다 파먹은 김치독과 같았다. 다시는 안 볼것 처럼 떠나왔지만 또 그 독에 맛있는 김치가 들어있기를 뒤돌아보며 간절히 비는 나를 발견하였다.
당겨진 활시위라면 뒤돌아봐서 멀 어쩌겠는가.
나그네는 가던 길을 간다고 했던가. 그래. 이 언니도 가던 길 가야지.
신발이 닳도록 가다보면 낙원이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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