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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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줌마
2018년 01월 25일 13시 05분  조회:286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서울아줌마
김영분
 
십여년전 스무살의 나이에 나는 개혁개방의 물살을 타고 하해(下海)라는 거창한 테마를 거머쥐고 청도라는 곳에 왔다. 한국회사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청양에 발을 붙혔다. 여러 회사를 거쳐 초보자 딱지를 떼고 경력을 조금 쌓은 후 금속체인 회사에서 꾸준히 출납으로 일을 하였다.

여느 한국상사들과 달리 이 회사의 부장은 아주 인성이 두드러졌다. 차후 나의 인생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회사 구조는 아주 간단했다. 동사장은 형인데 한국에 상주하고 동생인 부장이 청도회사를 맡아서 운영을 했다. 그 밑으로 내가 말이 출납이지만 통역에 인사관리며 현장지시까지 맡아 했다. 후에는 성이 차지 않아 외주 발주까지 덤으로 받아 안았다.그리고 공장장, 대리, 자재관리, 현장기술자 등 한국인과 조선족이 어우러져 열명 정도 되는 회사 핵심인물들이 타향에서 조선족 아줌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과 구수한 된장찌게를  먹으며 50명정도 되는 한족 외지직원들을 데리고 금속 체인을 만들면서 오붓한 가정식 회사를 운영해 나갔다.
부장은 아주 깐깐한 사람이였다. 서른살 쯤 되는 결혼도 안한 청년이였지만 그 나이에 걸맞지 않게 살림을 똑 소리나게 잘 하였다. 식당아주머니 식비를 한주일에 300원을 쳐주었다. 한국에서 공무원 일을 하다가 사직하고 형 회사를 관리하기 위해 중국까지 와서 그러는지 되지도 않는 니디워디 중국말로 시장을 잘도 다녔다. 그래서 채소 값이며 기름 값 등 물가를 손금보듯 꿰뚫고 있었다.

보통은 식당아주머니들이 식비에서 자기 용돈을 조금 남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부장이 시장의 물가를 너무도 꿰뚫고 있어서 우리 회사에서는 좀처럼 식비를 올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적은 식비에서  휴지조각이라도  살려고  용돈을 남긴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그래서 회사 식당아줌마들이 자주 바뀌였는데 면접을 지나가는 주마등처럼 자주 봤던지라 청양시장에 우리 회사 부장이 어지간한 깍쟁이가 아니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후에 면접하러 온 아줌마 한분이 그러는데 시장 아줌마들이 우리 부장을 “서울아줌마”라고 부르고 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우리도 재미있다고 뒤에서는 부장을 다 “서울아줌마”라고 불렀다.
“서울아줌마”라고 불리기까지 물샐 틈 없이 깐깐하고 깍쟁이같은 부장이였지만 직원들은 꾸준히 회사자리를 지키면서 열성적으로 일을 했다.

왜 그랬을까? 바로 부장은 인간적이면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한국 회사들은 툭하면 철야를 하면서 과부하로 일을 하던 때였다. 한국 상사들도 갓 중국에 들어와서 리념과 인식 차이로 조급증이 폭팔하던 시기였다. 걸핏하면 중국직원들에게 바보스럽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리해를 할수 없다니 하면서 폄하를 하는 상사들이 많던 시기였는데 우리 회사 부장은 전혀 그런 면이 없었다. 되려 유모아가 넘치고 따뜻한 말로 직원들을 대해줬다.
종종 가족의 안부도 물어봐주고 생일이면 꼭꼭 축하를 해주었다. 현장에 들어가면 한족직원들 어깨도 툭툭 쳐주고 아침은 잘 먹었냐는둥 일은 어렵지 않는지 등 인사를 했다. 사무실 조선족직원들과는 말이 통해서 하루종일 재미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군대에 있었던 일이며 공무원 일을 할 때 일을 얘기해주었는데 그때는 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우습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원인이 하나 있었는데 칼퇴근을 시키는 것이였다. 점심시간에 사무실 전화벨이 울려도 되려 직원들에게 밥을 편히 다  먹고 가서 받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 회사는 점심도 안 먹고 일을 하냐고 자기는 우리 직원들 점심시간에 일 시키는 사람이 제일 꼴불견이라고 편을 들어주었다. 다른 회사는 철야작업을 하면서 물량을 맞추어도 우리는 매일 저녁 여덟시반까지 일을 하고 칼 퇴근을 시켰고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다섯시에 꼭 퇴근을 시켰다. 지금이야 출근시간이 많이 짧아졌지만 십여년전 청양에서 이 룰을 지킨 회사는 정말 내가 다닌 우리 회사밖에 없는 걸로 장담할수 있다.

그래서인지 새도 나무가지를 가려 앉는다고 봉급이 타사에 비해 평균치에 약간 미달을 했지만 직원들은 한번 회사입사를 하면 다른데로 옮겨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덕에 자주 바뀌던 회사식당 아줌마도 아릿다운 아줌마 한분이 자리를 오래 지켜주게 되어 우리는 깔끔하고 맛나는 밥상을 몇년간 무난히 마주할수 있었다. 아줌마는 부장을 깍쟁이라고 우리 앞에서 흉을 곱게 보면서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고 빨래도 안 시킨다고 아주 정직하고 예의바른 청년이라고 곱씹었다.

결재도 어김없이 제 날자를 지켰다. 다른 회사들은 결재를 잘 해주지 않아서 거래업체들이 동동 발을 구르며 눈쌀 찌푸리면서 납품을 했지만 우리는 달말에 거래명세서를 꼭꼭 정리해서 거래처에 돌리고 다음달 20일은 무조건 전화를 해서 결재 받아가라고 알렸다. 그러니 거래처들은 우리가 주문을 하면 한걸음에 달려와 납품을 했으며 회사에 들려서는 한번이라도 출납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인사를 더 하고 가는 것이였다. 혹간은 고향의 특산품을 가져다주는 업체도 적지 않았다.

결재를 흐트럼 없이 해주는 대신 부장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납품업체 사장들을 불러 들여 가격흥정을 하는 것이였다. 소금을 많이 먹으면 물을 켠다고 납품업체들은 당연히 다른 회사보다 싼 가격에 원재료를 납품하겠다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흩어지지 않는 연회는 없듯이 나도 어느덧 이 회사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고나니 서른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남편이 자체 회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나는 부득이 사직을 하고 남편을 도울수 밖에 없었다.

사직을 하려고 하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사직서를 제출하려는 날 회사에서 개추렴을 했다.  보신탕을 맛있게 얻어먹고 사직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할 말이 있다고 독대를 하니 난데없이 부장이 개다리 한짝을 곱게 포장해서 집에 부모님 갖다 드리라는 것이였다. 보신탕에 개다리까지 넙쩍 받아쥔 마당에 사직하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서 그날은 그냥 집으로 왔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 온 느낌이였다.
그 개다리 여운 때문에 한달이 지난 뒤에야 비장하게 결심하고 부장을 찾아갔다.말은 쉬워도 하기는 어렵다고 억지로 사직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부장의 한 쪽 팔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던 나였기에 못내 서운해 하셨다. 정말이지 눈물이 났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어느 새 지지고 볶으며 같이 해온 세월 동안 고운 정 미운 정 다 쌓여서 가족이 된 느낌이였다. 정이 든다는 것은 지진처럼 강렬하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산들바람처럼 살금살금 찾아 온 것이다. 그래도 자기발전을 위해 떠나 간다고 하니 등을 두드려주면서 격려해주었다. 어려우면 꼭 찾아오라고 연신 부탁했다.

사직하고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면서 지내는 옛 상사이다.
깍쟁이였지만 푸근했던 상사, 타인을 존중해주고 원칙을 지켰던 스승, 부장은 사회에 갓 발을 디딘 나에게 몸소 인생을 잘 경영해나가는 큰 도리를 깨우쳐주었다.친절한 태도로 다른 사람에게 끼친 행복은 리자까지 붙어서 되돌아오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는 향후 나의 대인관계 속에 깊이 스며들어왔다.

“서울아줌마”는 나에게 있어서 오늘도 닮으려고 노력을 멈추지 않는 훌륭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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