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률
http://www.zoglo.net/blog/zhangjinglv 블로그홈 | 로그인
<< 3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문학 -> 발표된 작품 -> 칼럼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

[칼럼] 숭늉 그리고 그 화려한 승화 - 장경률
2019년 07월 11일 14시 12분  조회:1990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장경률   

숭늉 그리고 그 화려한 승화 
 
얼마전 연변지역의 유명한 항일전적지를 답사한 적이 있다. 당시 답사와 더불어 투숙했던 주인집에서 마련해준 풍성한 시골밥상도 지금까지 머리에 선하다. 
 
어스름이 깃들 무렵 하루일과를 원만하게 마치고 집주인과 함께 안주인이 잘 마련한 밥상을 마주했을 때의 그 기분은 상긋하다 못해 진정 둥둥 뜨는 것만 같았다. 시골 특유의 시래기 토종돼지갈비, 느타리나무버섯채, 개암버섯채, 산토끼탕에 통배추김치, 총각김치, 가을통무우치미 게다가 불군 지 몇해 되여 잔뜩 고아진 들죽에 오미자술이 주최가 되니 두말이면 잔소리다. 시가지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벌방에서도 하기 힘든 건강식, 자연식이라 거기에 넉넉한 시골인심이 바탕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뒤미처 들어오는 것이 숭늉이다. 낯설지 않지만 도시 가정에서는 하기 힘든 존재로 여겨지던 그 맛, 구수한 그 기장밥숭늉이 또한 일품이다.
 
민속학자의 말에 따르면 숭늉이란 한자어로 숙랭(熟凉)이 오랜 세월 내려오면서 변한 단어라고 한다. 그 뜻인즉 그대로 ‘찬물을 익힌 것’ 다시 말하면 밥을 지어낸 솥에 찬물을 부어 만든 것이다. 숭늉을 조선반도에서는 고장마다 제나름인데 제주도사투리는 ‘누렁이 물’, 자강도사투리는 ‘당수’라고도 한다. 고대 당나라사람들이 즐겨 마신 차와 비슷하다고 한다.
 
한 민족백과사전에서도 “밥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한소끔 끓여 만든 음료.”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반탕(饭汤), 취탕(炊汤)이라고도 한다. 이 숭늉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임원경제지》에서 숭늉을 숙수(熟水)라 하였고, 《계림유사 (鷄林類事)》에 “숙수를 이근몰(泥根没: 익은 물)이라 한다.”는 표현이 나오므로 고려 초나 중엽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른 고서들에서도 숭늉에 대한 기재가 많은 바 종합해보면 오늘날 같은 밥짓기의 시작은 청동기가 유입되면서 시작되였고 철기시대부터 무쇠솥이 사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여있다. 그 방법은 대동소이한데 거지반 밥을 짓고 난 솥바닥에 밥알이 눌어붙은 것이 누룽지고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인 것이 숭늉이라고 불렀다. 예로부터 조선반도는 자연수(自然水)가 좋아 조선시대부터는 차(茶)보다 숭늉이 보편화되였다. 바늘 가는 데 실이 따라가듯이 누룽지에는 숭늉이 따르는데 조선시대 광해군때 시인 박인로의 〈숭늉〉시조에 “서홉밥닷홉죽에 연기도 하도 할사 설 데인 숭늉에 빈 배속일 뿐이로다.”
 
이런 곱돌솥이나 그러잖으면 무쇠솥에 장작불을 지펴 만든 누룽지는 바삭하고 고소한 감칠맛을 내는 저칼로리 영양식이며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 지금의 과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 허준(许俊)의 《동의보감(东医宝鉴)》(1613년)에는 ‘취건반(炊干饭)’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있다.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못하거나 넘어가도 위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이내 토하는 병증으로 오래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는 병은 누룽지로 치료한다.”
 
그 외에도 “여러 해가 된 누룽지를 강물에 달여서 아무 때나 마신다.”고 하여 누룽지가 약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누룽지는 군것질에 굶주린 어린아이들의 간식이였으며 과거를 치르기 위해 상경하거나 장사길을 떠날 때, 먼길을 갈 때 함께하는 휴대식량이였다. 이러한 누룽지를 강밥 또는 깡밥이라고도 하는데 단단히 만들어놓은 밥이란 뜻인 강반(强饭)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처럼 누룽지로 만든 숭늉은 우리 고유의 음료로서 밥 짓는 법과 관계가 깊다. 중국의 밥짓기는 처음에 물을 풍부하게 넣어서 충분히 끓어오르면 물을 퍼내고 약한 불로 뜸을 들이거나 다시 찌므로 숭늉이 발달하지 못하였다.
 
일본에서는 같은 방법으로 밥을 짓지만 숭늉을 먹지 않는다. 이것은 부엌구조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의 부엌구조는 부뚜막 아궁이와 온돌이 일체가 되여있고 솥은 고정식이므로 솥을 씻기가 힘들다. 따라서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이면 숭늉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솥을 씻는 방법도 되기 때문에 발달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밥을 먹고 숭늉을 마시거나 숭늉에 밥을 말아먹으면 식사의 순서가 끝나는 식문화를 형성하게 되였다. 조선반도에서는 조선시대로 오면서 숭유억불사조와 함께 차문화가 쇠퇴되면서 숭늉문화가 더욱 발달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우리 민족이 밥이나 죽, 별미 음식을 만드는 솥으로는 곱돌이 주재료이다. 그제날 곱돌은 조선반도의 남단 전라북도 장수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이 품질이 제일 좋았다고 한다. 그 방법은 곱돌을 쪼아 솥의 형태로 만든 뒤 안을 파서 만드는데 이런 곱돌솥은 열이 빠르게 전도되지 않는 반면 밥을 지으면 뜸이 고르게 들고 잘 타지 않아 밥맛이 아주 좋으며 쉽게 식지도 않는다. 옛날 어머니들은 밥을 지을 때 일정한 분량의 물과 쌀을 가마솥에 넣고 끓이다가 여분의 물이 없어질 때까지 뜸을 충분히 들인다. 가마솥에 수분이 남아있는 동안은 아무리 가열하여도 100℃ 이상이 되지 않으나 뜸을 들이는 과정에서 솥바닥은 수분이 없어져서 220∼250℃까지 올라간다. 이 온도에서 3, 4분간이 되면 밥알에 갈변이 일어나고 갈변한 누룽지 부분에서 전분이 분해하여 포도당과 구수한 냄새의 성분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물을 붓고 푹 끓이면 구수하고 푸근한 맛의 숭늉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누룽지와 숭늉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독특한 맛의 음식이며 음료이다.
 
지난 30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지금처럼 전기밥솥이나 가스레인지나 오븐이 없던 시절, 시골농촌에서는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하였다. 그때 장작으로 불을 피워 밥을 해 먹는데 밥 한공기에 김치 한두가지, 간장종지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였지만 마지막에는 항상 구수한 숭늉이 있어 행복했다. 밥을 거의 먹어갈 때쯤 어머니가 주시는 숭늉 한그릇은 모락모락 피여나는 김에 섞인 구수한 냄새가 코는 물론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푸근하게 만드는 맛이였다. 지금은 전기밥솥에 밥을 하거나 그것도 귀찮아서 인스턴트 밥을 사 먹기에 옛날처럼 구수한 누룽지를 맛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쇠솥이 없어지고 양은솥이 나오면서부터 누룽지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애쓰게 되였다. 그리고 전기밥솥의 보급으로 누룽지가 생기지 않게 되면서 숭늉을 마시는 풍속이 점차 사라지게 되였다. 요즈음에는 숭늉 대신에 보리차를 끓여서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어떻게 변신하거나 다르게 만들어도 슝늉의 그 고유한 진가, 그 참맛에는 비교가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부 식당에서는 일부러 커다란 가마솥을 가게 앞에 걸어놓고 구수한 숭늉냄새로 손님들을 유인하기도 한다.
 
오늘날 누룽지와 거기서 파생되여 나온 슝늉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변신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누룽지의 구수한 맛의 매력은 잊혀지지 않는가 보다. 전기밥솥 기능에도 누룽지를 만드는 기능이 더해지고 있으며 누룽지과자가 상품으로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아침을 거르는 일이 많은데 누룽지를 끓여 숭늉을 마시면 속이 든든하고 편하다. 이렇듯 가난을 상징했던 누룽지는 이제는 현대인의 웰빙식품, 다이어트 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처럼 누룽지와 숭늉이 오늘날 화려한 승화를 하고 있어 한결 반갑다. 우리 민족 자치주 수부 연길에만 하여도 백년돌솥밥, 부산돌솥밥, ABC돌솥밥 등 돌솥밥집들이 수십호, 연길뿐만 아니라 룡정, 화룡, 훈춘 등 8개 시와 현에 숱한 분점도 두고서 서로 치렬한 경쟁을 벌리고 있다. 그리고 북경이나 상해, 광주, 청도, 위해 등 우리 민족이 많이 산재한 대도시의 집거구에는 거의 모두 돌솥밥집들이 있다. 그리고 식후의 후식으로 구수한  누룽지와 숭늉이 료리와 만나면서 형식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동시에 선조들의 령혼과 삶의 지혜와 슬기가 슴배인 이 음식문화유산을 이어간다는 당찬 호기도 선명하게 엿보여 더더욱 흡족하다.
 
물론 진부하고 고루한 민족적 편견은 버려야 한다. 하지만 사회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음식문화를 통한 우리 민족의 전통, 민족의 정신, 민족의 문화유산은 그 어떤 형식으로든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더더욱 높은 차원에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5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5 북경동계올림픽의 시대적 의미 2021-11-18 0 878
84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2021-08-30 0 972
83 인간 중심에 한점 소홀함 없이 2021-03-26 0 1164
82 흰 소 정 신 2021-02-26 0 1166
81 아버지의 어깨도 무겁다 2020-05-11 0 1817
80 ‘엄부자모(严父慈母)’가 그립다 2019-11-21 0 2054
79 [칼럼] 숭늉 그리고 그 화려한 승화 - 장경률 2019-07-11 0 1990
78 동전 한잎이 삶의 철리 선사 2019-02-14 0 2195
77 정음정보기술 표준화 이대로 괜찮을가 2018-12-11 0 2150
76 미수 졸수 백수 2018-08-30 0 2204
75 홍과 송 2018-08-06 0 2051
74 대필고금담 2018-06-07 2 1893
73 청춘도 아프다 2018-05-10 0 2473
72 종이신문의 매력 2018-04-03 0 3425
71 장인정신, 영원한 직업정신 2018-03-15 0 1999
70 올림픽성화가 주는 계시 2018-02-08 0 2259
69 타인의 시간을 훔치지 말자 2018-01-19 0 2693
68 독에 든 쥐의 탐욕 2017-11-23 0 2156
67 예순이 되여 50대 돌아 보기 2017-10-12 0 2297
66 서향만리 2017-09-14 0 2562
‹처음  이전 1 2 3 4 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