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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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
2019년 07월 19일 10시 05분  조회:634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소설 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

조광명

 

 

소설 하나. 똥별 거미- 평범한 아침, 픽션과 논픽션과 시와 노래에 관하여

지극히 평범한 아침이였다. 온 밤 산 너머 동굴 속에 똬리를틀고 앉아 정염으로 몸을 불태우다가  더는참을 수 없어 뜨거운 불덩이 토하려고 나온 뱀처럼 어느새 벌써 산등성이를 스르륵 기여넘은 태양은 ‘이 도시엔 도심 속에 산이 있어서 대부분 곳에서머리만 들면 산을 볼 수 있다’ 뜨거운 혀를 날름거려 짙푸른 나무잎들을 콕콕 찌르며 희롱하고 있고 나무잎들은 해빛의 롱락질이 즐겁기만 하다는듯지레 농염하게 물오른 몸뚱이를 그대로 내맡기고 앗 뜨거, 앗 뜨거, 짙푸른신음을 느침처럼 흥건하게 흘리고 있었다. 빛과 잎이 한데 뒤엉켜 아침부터 뜨거운 헐떡거림이 연출되는 맞은켠산등성이의 질펀한 풍경을 베란다 창문유리 너머로 내다보다가 나는 식탁 앞에 나앉았다. 녀자의 손가방에서 방금꺼낸 작은 손거울이 반사하는 빛화살 같은 것이 맞은켠 건물에서 한줄기 곧게 뻗어나와 베란다 미닫이 샤시문을 통과해서 들어와서 아침 식탁 원목 다리에동그란 빛살 도장을 암팡지게 찍어놓고 있었다. 그 빛줄기 속으로 다리 맨살을 들이밀면 그대로 다리에 나있는체모가 그을러 연기가 피여오를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실내엔에어컨이 령상 24도를 유지하며 빵빵 돌아가고 있으니까. 시원하다. 멀리 할빈에 있는 친구의 위챗은 령하의 추위를 자랑하고 미지근한 난방 공급을 원망하고 있는데 여기는 아직 뜨거운불볕더위가 기승이고 에어컨 랭방 타령이다.

슈퍼에서 산 믿을 수 없는 요구르트가 아닌, 집에서 가열기구로직접 만든 믿을 만한 자작 요구르트를 한스푼 퍼서 입에 넣는다. 맛을 내느라 요구르트에 섞은 꿀은 장인어른이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순박한 양봉농장 주인에게서 직접 사서 들고 온 무공해 천연 야생꿀이다. 찜통으로속까지 익혀 쪄낸 빨간 도마도 하나가 접시에 담겨 올라온다. 두개를 삶아서 함께 먹자고 하는데 안해는 삶은도마도를 먹지 않는다. 암도 예방하고 건강에 좋다잖아. 난 암걱정을할 나이가 되여서 도마도를 챙겨먹는데 안해는 입맛에 맞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아직 젊어서 건강 앞에 건방지다. 그 건방짐을 꺾을 힘은 내게 있는 게 아니라 세월에게 있다. 세월이 십년 쯤더 지나면 스스로 알아서 건강을 챙기게 될 것이다. 그냥 딱 내 것 하나만 삶는다. 도마도 하나를 익히려고… 가스가 아깝다. 

입에 넣자마자 그대로 넘구어버리는 요구르트의 감기는 뒤끝이 말 그대로 달짝지근 꿀맛이다. 속까지 익은 도마도를 우물우물 제대로 씹지도 않고 넘긴다. 위에 부담이 가지않는 가벼운 식사에 천년을 살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백년도 못 사는 인생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천에서백을 빼고 구백을 허망 날리는 계산 같은 건 해보지도 않는다. 

새벽 꿈에 형님이 보여서 잠에서 깬 후 약간 걱정이 생겼었다. 60이다되여가는 형님이 꿈에 보였다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징조였다. 혹시 형님의 건강에 이상이 온 게 아닐가 하는걱정이 은근히 생겼다. 전화를 해볼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형제간이라하지만 왜 별로 할 말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냥 걱정이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아까 잠에서 깨여 지금 아침식사 시간까지 형님에게서 혹은 형수에게서 혹은 형님네 가까이 한동네에 살고 있는 조카딸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는다는 건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뜻일 게다. 형제니까 뭐 꿈에 보일 수도 있는 거지.

안해가 계란후라이가 담긴 접시를 내  앞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 오늘 오전에 직원 하나 면접 보기로 했어요. 같은 값이면 일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뽑았어야 하는데 일어를 할 줄 모르는 직원을 뽑았더니 매우 비효률적이예요. 딴딴이 내 업무를 서포트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걔 업무 뒤시중을 들어줘야 한다니깐요. 걔뒤치닥거리 해주다 나면 내 할 일 바로 못해요. 일어 잘하는 직원을 새로 한명 더 뽑고 딴딴은 그냥 간단한재고관리나 시키든지 오더관리에선 손을 떼게 해야 되겠어요.

하들하들 감칠맛 도는 후라이다.

- 응, 좋은 생각이야.

요구르트와 익힌 도마도와 계란후라이.  다이어트 건강식이다. 그래도 내배는 들어가지 않고 점점 더 나온다. 내 배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궁금하다. 배가죽이유리처럼 투명하다면 그 안에 도대체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무브먼트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시계가 있듯이 투명한 배가죽 너머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배속의 내용물들. 그러면 나의 식욕은 더러 줄어들 수있을가. 이루는 일 없이, 눈에 띄게 하는 일 없이 식욕만 늘어난다.

올 들어 내 배속에 들어간 요구르트만 해도 십리터는 넘을 것이다. 여보, 슈퍼에서 수입제 요구르트 1리터에 얼마씩 하지? 묻고픈걸 묻지 않았다. 아무튼 맛있는 요구르트다. 혁명을 사랑하는 자의 아침에는요구르트와 빵이 있다고 했다. 아니 뭐, 빵과 우유 어쩌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빵이면 어떻고 도마도면 어떠하며 우유면 어떻고 요구르트면 어떠할 것인가. 그말을 할 때 아마 모택동은 짚신을 신고 있었을 것이다. 이마가 벗겨지고 수염을 기른 레닌이 이 말을 했던가…상관없다. 아무튼 혁명도사가 한 말이여서 빵맛이 무엇이고 우유맛이 무엇인지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문구다. 근데 왜 짚신 신은 모택동의 형상이 떠올랐을가. 수염을 기른 주은래는 분명짚신을 신고 있었다. 중국공산당 혁명승리 선전화보에서 보았던 기억이 분명 있다.레닌은 천으로 된 신발도 신지 않고 가죽구두만을 신었을 것이다. 로씨야, 아니 쏘련이 아닌가. 사회주의경제 먼저 훌쩍 자본주의경제가 발전했던 모택동은천으로 된 신발과 짚신을 엇바꾸어 신었을 것 같다. 모택동은 쌀이 흔한 집안에서 태여났다. 짚신 엮기 좋은 벼짚도 흔했을 것이다. 짚신도 흔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 집에 있을 때, 혁명의길에 오르기 전에는 절대로 짚신을 신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유한 집안이였으니까.천으로 누빈 신발을 신었을 것이다. 장정길에는 짚신을 신기도 했을 것이다. 전사들 먼저 솔선수범으로 짚신을 신었을 것이다. 그만큼 홍군은 가난했고 혁명은간고했다. 물론 혁명이 승리하여 대국의 령수가 된 다음에는 가죽구두도 신었을 것이다.

가죽구두를 오래 신으면 발에 무좀이 생기기 쉽고 짚신을 신은 발에는 절대 무좀이 생기는 일은 없을것이다. 사실 뜨거운 남방의 도시에서 구두를 신으면 무좀에 걸리기 쉽다. 어떤땐 발이 간지러울 때도 있다. 무좀인가. 시인, 무좀에 걸리다. 혹은 소설가, 무좀에걸리다. 이런 소설제목이라면 꽤 재밌는 제목이지 않겠는가. 독자들의고약한 호기심을 꼬드길 수 있는 미끼 제목이 될 것 같다. 무좀으로 소설 한편 써본다꼬? 그러나 무좀에 대해서 전혀 연구해본 바가 없다. 나는 무좀에 걸린 시인일 수도, 무좀에 걸린 소설가일 수도 있겠다. 대안은 짚신 신는 거. 짚신을 신고 광주거리를 활보해볼가. SNS에 빨간 스타로 데뷔할 지 모른다.

 

광주탑 버전:올 빠리 패션무대를 황홀하게 장식했던 아마니 코트에 루이비통 가죽가방 들고 짚신을 신고 아시아 최고를 자랑하는 광주 타워에 오른다. 타워 정상에서 짚신을 벗어 타워 아래로 활 내던진다. 짚신은 광주 타워 아래흐르는 주강에 두마리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앉아 사랑하는 련인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배처럼 둥둥 주강 우에 떠내려간다.

강물은 내 추억을 싣고… 라는 내레이션이아득한 울림으로 멀어져간다.

 

쌍둥이빌딩 버전: 나뽈레옹 양복차림에 오드리 햅번을 사랑했던 남자의 중절모자를 쓰고 짚신을 신고 자본의 힘으로 우뚝 솟은 아시아 최고높이의 쌍둥이 빌딩을 드나든다. 내 짚신 옆으로 영화필림이 빨리 돌아가듯 총망히 오가는 화려한 하이힐들과먼지 한톨 묻지 않은 반짝이는 신사 구두들.

흐르는 자막.영원한 가치는 바뀌지 않는다. 

 

중산기념당 버전: 호주머니 네개 단 중산복에 개화장 짚고 짚신을 신고 중산기념당을 방문한다. 손중산이신었던 구두를 전시한 옆에 내가 신었던 짚신을 벗어서 놓는다. 아직 살아있는 내가 신었던 짚신은 죽은 지몇십년 되는 손중산이 신었던 구두보다 더 관람객들의 관심을 끄는 력사 유물이 된다.

역시 자막. 력사를읽을 때 당신은 어느 신발을 신을 것인가

 

끝없다. 짚신 신고 광주 핫플레이스 다 찍고 다니려면. 다 누비고 다닐 필요 없이 대충 이 정도 컨셉이라도 충분하다. 광주가 아니라전 중국 인터넷을 화끈 달구는 스타로 금방 데뷔할 것이다. 중국 정부가 차단한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갈지모른다. 비욘세가 울고 갈 스타로 데뷔할지 모른다. 비욘세가 오르는무대에 짚신을 신은 백댄서들을 세우면 더 멋있을 것이다. 디지털시대 짚신 신은 아날로그 스타. 그 다음엔…

당연히

짚신 장사

해야지.

스타가 뭔데? 스타는 상품이다. 그가치가 한껏 부풀려진 거품 상품이다. 거품이 사라지기 전에 스타를 팔아 자본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별은 별일 뿐이라구. 반짝인다구 돈이 아니라구. 팔아서 돈으로 만들어야 한다구. 빨깍빨깍 새 돈이 아니고 때묻고 구겨진 것이라두 괜찮다구. 돈, 좋은 거잖아. 비단장사 왕서방 아닌, 짚신장사조서방이 되여본다꼬? 해본다꼬?

부자가 되는 건 금방이다. 만약 잘 팔리지 않으면… 넌 그게문제야. 왜 걱정부터 앞세우냐고. 안 팔리면 그냥 안 팔린 짚신 우에누워 자면 되잖아? 시몬스침대를 릉가하는 안락함-짚신침대. 이 컨셉트를 떠올리면 되잖아? 달리는 짚신, 달리는침상. 재밌을 것 같다. 이게 더 돈장사 될 것 같다. 이왕 하는 바엔 크게, 하나씩 팔 게 아니라백개 천개를 한데 묶은 패키지 침대상품으로팔아야 한다. 짚신 침대를 팔아야 한다. 침대 하나면 짚신 천컬레가팔리는 셈이다. 침대가 잘 팔리지 않으면 침대 우의 사랑을 함께 팔면 된다. 짚신침대 우의 사랑은 짚에 찔려 따끔따끔 아플 것이다. 무릎이 까져서 피가 흐를 수도 있다. 그러나 장렬하지 않은가. 피 흘리는 사랑의 처절한 몸부림. 사랑은 피보다 진하다. 사랑은 피로 물들여야 한다.피맛을 본 사랑은 더욱 황홀하고 소중하다. 사랑의 가치는 무한하다.돈이 벌어지지 않을 땐 이런 허황한 환상이라도 해봐야 한다.

방금 식탁에 마주앉기 전에 몇천키로  밖의 후배가 위챗으로 사진 한장을 보내왔다.유리상자 안에 갇혀있는(혹은 모셔져 있는) 짚신을 찍은것이였다. 어느 박물관에서 핸드폰 버튼을 눌러 찍은 것 같았다. 후배또래의 세대에겐 신기한 박물일 수도 있었다. 어, 이런 걸 발에 신어? 발 껍질 다 까질 것 같은데. 그래, 당연히까지지. 홍군은 그런 신발을 신고 2만 5천리를걸었다. 너희 세대는 그런 걸 모르지. 나는 어릴 때 그런 짚신을 신어본적이 있다.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가 아니라, 혁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솜씨좋은 옆집 할아버지가 하도 심심했던지 벼짚으로 신발을 만들어 내 발에 신겨보았던 것이다. 까칠까칠하고 뾰족한 짚오리에 발등이 찔려서 아팠다. 나는 한번 신어본 그 짚신을벗어서 지붕 우로 휘익 날려보냈다. 시집 가라  멀리 가라, 낡은 신발은 가고 새신발은 오라… 하고 혼을 부르듯 세번씩이나 웨쳤다. 이갈이를 할 때 이발이 빠지면 엄마가 나더러 이발을 짚이영을얹은 지붕 우로 올리던지게 했다. 낡은 이발은 가고 새 이발은 오라 하고 웨치게 했다. 내 이발과 짚신은 지붕 우에서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을가. 신나게 놀았을 것이다.

버린 것들은 소중하다. 그래서 기억에 아직 남아있을 것이다.

후배녀석도 참, 마른 짚신으로 아침 인사 한번 깔깔하게 하는군.

짚신 너무 말랐어. 물 좀 뿌려주세요. 마른 짚신은 물 좀 먹여줘야 녀자처럼 부드러워지거덩.

나는 위챗에 탁 탁 탁 타이핑했다. 오른손 식지 하나로.

요즘 물값도 벌지 못하거든요. 아 그리고 부드럽지 못하고 도끼날보다더 서슬 푸르고 강한 녀자도 많답니다.

지금 막 생수 한박스 광속택배로 보냈으니까 당장 문을 열고 받아요. 물많이 먹어, 물 먹고 힘 내.

가뭄에 단비, 고맙습니다. 구제하는김에 쌀까지…

쌀 먹으면 살쪄. 물만 먹어. 물배채워.

물로 흘러오소서. 선배님 출렁이는 물배 우에 마른 짚신배 띄우리다.

녀석도 이 아침 조금 한가한 모양이다. 날아오는 멘트 속도가 빠르다. 식사와위챗 채팅이 다 맛있다. 이번엔 좀 길게 적어보낸다.

 

아침 모자는 채양이 떨어져나가고 

저녁 옷자락은 때가 꼬질꼬질,

대낮 짚신 바닥엔 구멍이 나서

온 하루 발바닥이 땅바닥에 키스한다네.

 

짚신신발에 가장 잘 어울리는, 30여년 전 TV 브라운관을 달구었던 핫캐릭터계공济公의 형상이 떠올라 적은 것이다. 다른말 대꾸 없이 후배가 ㅎㅎㅎ 모음이 딸리지 않은 자음 웃음소리만 보내왔다. 내 유머에서 계공의 모습을 제대로읽어내지 못한 게 뻔하다. 그래서 그냥 웃는 시늉을 하는 거다.

나도 모음이 삭제된 웃음을 “ㅋㅋㅋ” 보낸다. 무식이 앞에 유식이 노릇 할 필요 없다.

위챗에서 항상 “ㄹㄹㄹ” 혹은 “ㄷㄷㄷ” 하고 이상하게 웃는 친구가 있다.  “ㄹㄹㄹ” 혹은 “ㄷㄷㄷ”가 어떤 웃음소리인지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대로 친구를 모방해서 “ㄹㄹㄹ”, “ㄷㄷㄷ” 웃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웃음소리가 나가주지 않았다. 그래서 “ㅈㄹ” 하고 적어보냈었다. “ㅈㄹ”가 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여기에 그 발음을 다는 적지말자. 위챗은 지금 한창 줄인말 시대라 하지 않는가. 모음삭제도 일종의줄임현상이다. 어느 교수가 언어사용의 규범화를 강조하며 내 어느 수필 속 모음 없는 웃음소리의 문자화 표현을걱정하는 어투로 따끔히 꼬집어준 적이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음으로만웃는 시대인 걸. 그래서 언어표준사전은 항상 시대에 뒤떨어진 박물 같은 거다. 교수들의강의내용이 항상 박물관 설명문처럼 따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곰팡이 냄새로 퀴퀴하듯. 짚신 신발 아닌 회색양말을 신고 깊은 수렁 같이 질척이는 혁명의 장정길 아닌 반들반들한 타일바닥을 딛고 나는 지금세월에도 짚신을 엮을 줄 아는 사람 있나보네 하고생각한다. 살아있는 인간문화재의 마지막 솜씨일지 모른다. 혁명엔 더필요 없는 솜씨이겠지만 한세대의 기억을 위해선 소중한 자산이다. 짚신보존연구회 같은 게 이미 설립되여있는지도모를 일이다.

짚신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저 너른 하늘에 넘치는 뜨거운 태양빛과 태양열을 담는 그릇을 만들어빛과 열을 파는 장사를 하면 진짜 더 대박일 건데. 태양에너지팩을 만드는 거다.그 태양에너지팩에 그냥 공짜 태양빛을 물 담듯 공기 담듯 척척 퍼담는 거다.  태양이라는 블랙홀은 퍼도 퍼도 줄어들 줄 모르고 그냥 그만한 거대한 에너지자원이다. 그걸 그릇 용량에 따라 다양한 가격정책을 만들어 도매하고 소매하는 거다. 달리는 차에 그걸 부착하면 휘발유 필요없이 그대로 빵빵 신나게 달린다. 환경도보호되고… 집 천정에 매달면 그대로 환한 등불이 된다.

이렇게 대박 아이템을 하루 아침에 두 세가지씩이나 떠올리는데 돈은 벌어지지 않는다. 아직 내 돈이 세상 어느 구석에 숨어있는지 찾안해지 못했다. 돈 보는 눈은따로 있다고 했다. 돈 벌 놈이면 글쟁이가 되었겠냐  하고 속으로 가난한 스스로에게 피씩 썩은 미소를 날린다.

아차, 오늘이 친구가 어느 문학상 시상식에 수상자의 신분으로서는 날이라는 것이 떠오른다. 상 타러 간다고 어제부터 요란히 위챗을 장식하던 친구다. 그렇게 위챗동네 요란하게 수상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친구야말로 진짜 문학을 사랑하는 놈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난 왜 예전에 상을 탔을 때 별로 남들 앞에 자랑 같은 걸 하고프지 않았을가. 주니까받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냥 받았던 것 같다. 얇은 상금 봉투는 아쉽지만 얇은 대로 챙기고 멋있게 만든상패 같은 건 그냥 다 버렸던 것 같다. 돈 주고 만든 상패, 필요하면돈 주고 다시 더 이쁘게 제작하면 된다. 그걸 무겁게 집으로 들고 가고 좁은 집안에 자리를 차지하게 모셔둘필요가 없다. 상 타려고 글을 쓴 게 아니잖는가. 글에 어떤 내용을썼던지도 생각나지 않는데 그 글로 탄 상패를 박물관에 박물 모시듯 집에다 모셔선 어쩔 건가. 상패가 다시필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리력서에 무거운 상패가 들어갈 것도 아니고. 상패같은 거로 자기에게 최면을 걸 일은 없다. 과거를 모셔둘 일은 없다. 이미탄 상보다 아직 타야 할 상이 더 남아있을 거다. 래일도 나는 글을 쓸 것이니까.상 같은 거 생각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부지런히 쓰다 나면 어느 순간 상은 저절로 차례지게 되여있다.  외로운 문학인의 길이지만 글은 작가를 속이지 않는다. 작가를 작가 대우해주는 건 그 작가의 글이다. 그 외의 것은 다 헛것이다.

친구에게 개톡을 날린다. 오늘 시상대에서 가장 빛나는 별똥이되거래이.

별이 아닌 별똥이라는 표현에 키들키들 웃을 친구의 모습이 련상된다. 똥이라는표현도 별과 함께 나란히 하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이 되는가. 별똥, 별보다아름답게 안겨오지 않는가. 거꾸로 똥별이라고 적어도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이 될 것 같다. 똥별, 별똥 못지 않게 입에 착 감긴다. 느낌좋은 단어다. 그런데, 사전엔 아마 똥별이란 단어가 아직 올라있지 않겠지싶다. 아직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생경한 단어, 완전 새 단어, 팔팔 끓는 물에 갓 쪄낸 두부 같이 따끈따끈한. 내가 올려버려?

출판사에서 우리 말 사전 편집을 하고 있는 친구다. 사전편집을하다가 좋은 단어를 만나면 그대로 참지 못하고 내게 날려보내오거나 드문드문 듣보잡 생뚱맞은 단어를 날려와 유식을 뽐내군 하는 친구다. 나는 그 친구를 살아있는 사전이라고 불러준다. 그 친구더러 슬쩍 사전 속에똥별이란 단어를 끼워넣으라고 꼬드겨볼가. 수만개 단어가 들어가는 사전에 슬쩍 새로운 단어 하나 끼워넣는다고그걸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출판사에 없을 것이다. 그 친구가 최종 교열을 본다고 했으니까. 똥별. 그렇게 그 사전에 들어가서 출판되면 그건 당당한 우리 말 표준단어가되는 거다. 표준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다. 똥별은 그렇게 후대에 길이길이반짝이는 단어가 될 것이다. 재밌을 것 같다. 똥별의 뜻을 어떻게 해석해줄가.

꿈보다 해몽이라 했다. 단어보다 해석이 멋있어야 한다. 뭐, 단어의 뜻은 친구더러 알아서 맘대로 버무려넣으라고 하면 되지 머. 하다못해, 별들이 총총한 밤 엉치를 별하늘 향해서 들고 눈 똥- 이런 식으로 해석해도 멋있지 않겠는가. 아니다, 엉덩이를하늘로 들고 똥 눌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 지구는 둥글다 했다. 그뜻은 우리가 머리를 쳐들고 보는 하늘만 하늘인 것이 아니라 우리를 중심 원점으로 해서 우리 주변에 원형으로 구형으로 어디나 우리를 감싸고 있는우주 전체가 다 하늘이 된다는 뜻이 아닐가. 그러면 내가 앉아서 눈 똥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는 하늘의별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주로 우주 속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똥, 똥이추락하는 속도는 별의 운행속도가 될 것이고 어쩜 가장 황홀한 황금색 별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하늘에서 황금색 별을 찾아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우주의 유일한 황금색 별-똥별.  이건참 기가 막힌 우주론적인 사유방식이다. 천체론적인 발상이다. 내가 별자리볼 줄은 몰라도 똥별같은 소리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줄 지금 막 발견하고 너무 대견스럽다.

우린 항상 그런 식이다. 니 밥 먹었나 인사보다도 목구멍에기름칠 좀 했냐 하고 묻는 것이 우리 사이엔 더 어울린다. 항상 우리는 그렇게 서로 둘만 빼딱해서 좋았다. 진지함보다 시시함이 가벼워서 좋은 것이다.

나의 아침식탁엔 어느새 깨끗이 비워진 접시만 남았다.

- 눈이 깔깔하다고 자기 전에 핫팩을 눈에 붙이군 하면서도식사하면서까지 휴대폰 손에 들고 있어요?

핫팩은 사랑스런 어느 문학후배가 내 시력을 걱정해 보내온 것이다. 자극이심한 한약재로 만들었는지 눈두덩에 올려놓으면 눈껍질이 바늘로 찌르는 듯 따끔따끔 해나고 약냄새도 심하게 고약하지만 그러나 후배의 마음이 고마워서따가운 것도 참으며 저녁마다 열심히 눈에 붙인다. 사용설명서에 적은 권장 부착 시간 20분을 채 마치기 전에 항상 잠들어버리군 한다. 수면제 대용 핫팩으로 팔면더 대박날 아이템이다.

- 아, 오늘 냄이 그친구 연문 문학상 타는 날이야. 축하 멘트 한마디 날려줬어.

- 당신 오늘 다른 외근 계획 없으면 나 대신 면접을 봐줘요. 난 오전에 세라톤호텔에 가서 사람을 만나 상담하기로 약속이 잡혀있어요. 

- 오케이.

안해가 부탁하지 않아도 면접은 항상 내 몫이였다. 사람 보는눈은 나이와 정비례한다. 첫 대면에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내가 안해보다 나았다. 

안해가 달랑 계란후라이 하나만 얹어 놓은 접시를 들고 내 앞에 마주앉는다. 저녁 식사량은 내 식사량보다 작지 않은데, 아침 위는 너무 작다. 그런 안해 눈가의 주름살이 눈에 밟혔다. 세월은 곱던 내 녀자의 눈가도 비껴가주지않는구나. 그렇게 가늘던 허리에 나이살이 붙어서 저녁에 뒤에서 안으면 아래배에 뭉친 살집이 몽실몽실 손에잡히듯 눈가의 주름살도 지극히 정상적인 년륜의 기록이겠지만 조금 안스럽다. 못난 남편 만나서 고생하는 것같아서.

- 녀자들 눈에 바르는 영양크림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거랑 사서 바르고 그래.

- 바르는 게 그래요. 별로효과 없어. 괜찮아, 정상이지 머. 이나이에.

오히려 녀자가 태평이다. 하긴 뭐 그 나이에 눈가에 주름이없으면 비정상이지. 내 머리에 어느 날부터 흰개미처럼 기여오르기 시작해 죽죽 흰색을 회칠하기 시작한 세월의심술을 난들 어쩔 수 있었던가. 반백의 나이에 머리가 반백이다.

난 식탁 앞에서 일어섰다.

내가 후루룩 우물우물 한입에 삼켜버릴계란후라이를 안해는 먹네마네 몇분은 억지로 씹어서 삼킬 것이다. 그 사이 나는 구레나룻과 코수염과 턱수염을차례로 깎고 손에 하드 쓰리 레벨의 젤을 묻혀 헤어스타일을 좀 후레쉬하게 만든다. 막 헝클어뜨려 질서없이마구 당겨 세우는 스타일로.

유치원 아이들이 할머니, 할어버지,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가까운 동네 유치원으로 향하고 있다. 노란 경고등을 지붕 우에 네개씩이나 달고 반짝이는 노란색 스쿨뻐스가 여러대 동네 앞에 멈춰서 있었다. 영남신세계라고 이 도시에선 꽤 큰 동네이다. 가로세로 동네 안을 지나는 도로에교통신호등이 네개나 있다. 큰 동네인 만큼 애들도 많다. 남방사람들은아이를 많이 낳는다. 기본이 두 셋은 낳는 것 같다. 번식욕과 종족유지욕혹은 가족번영욕이 무지 강한 사람들이다. 어린 아이들이 많아서 생기찬 동네다. 좋은때지, 좋은 때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슬로우리 슬로우리…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최대한으로 죽여 동네 유치원 앞 그리고 동네 초등학교 앞에 너무 과장되게높게 만들어져있는 네개의 콘크리트 과속방지턱을 다 통과한 후 나는 오른발에 힘주어 엑셀을 밟았다. 차는 부르릉용을 쓰면서 토끼처럼 앞으로 튀였다.

운전할 때면 나는 푸른 들판을 질주하는 야생마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숲에서 뛰여나오는 토끼를련상하군 했다. 언젠가 어느 려행길 어느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그냥 허허벌판 사막한가운데 모래 웅뎅이를 파고 그 안에 등을 누이고 잠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었다. 너무 환장하게 밝은 달빛아래여서그보다도 너무 배고프고 목 마르고 추워서 숙면에 빠져들지 못하고 반수면 상태의 환각 속에 사막에 넘치는 하얀 밥그릇들과 밤하늘에 달처럼 주렁주렁매달린 하얀 박 같은 생수통들을 세여보다가  어떤본능적인 직감에 눈을 떴다. 환각이 아니였다. 정말 칠팔메터 되는 거리에커다란 흰 토끼 한마리가 앉아서 내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저걸 잡아먹어야 한다.혀끝이 쨍해나고 군침이 꼴깍 넘어갔다. 노아의 방주였다, 내지친 육신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나는 야외 려행 때마다 옆구리에 항상 차고 다니던 야외 생존용 비수를 슬그머니오른손에 들었다. 한번의 기회 밖에 없었다. 입 안엔 어느새 토끼고기향이머리가 어질어질하도록 차넘치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과 힘을 오른손에 다 집중해 비수를 날렸다. 교교한 달빛을 가르며 은빛이 번뜩였다. 순간 토끼가 날아올랐다. 기다렸다는듯. 날아가는 비수를 향해 솟구쳐 날아올랐다. 쌩, 비수가 날아가는 소리를 나는 분명 들었다.

그리고 딱!

기적이였다. 

토끼가 떨어졌다. 내 비수가 토끼를 맞힌 것이 아니라 토끼가몸을 솟구쳐 날아와서 면바로 내 단도 칼등에 목을 들이대는 걸 나는 똑똑히 보았다. 신화 속인 듯 너무나비현실적이게 환하던 달빛 아래 내 손을 벗어나 쌩하고 날아가던 번쩍이는 단도와 그 단도를 향해 쌩하고 날아와 탁 하고 부딪쳐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모래 우에 곤두박히던 토끼 한마리. 나는 토끼처럼 뛰쳐나가 그 토끼를 손에 들었다. 잠시 쇼크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는지 말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손안에 바둥대던 커다란 하얀 토끼. 나는 토끼가 캑캑 막혔던 숨을 토해내느라 기침을 깇는 소리를 분명 들으며 고개 들어 달빛 향해 킬킬 웃었다. 나를 살리려고 하늘이 보내온 토끼, 감사합니다. 하늘이시여…그 토끼의 절반이 그날 밤 내 배속으로 들어온 그 과정은 더 적지 말자. 

그 날 사용했던 비수를 거의 이십년이 되도록 아직도 나는 버리지 않고 건사하고 있다. 차가 속도를 올리며 튀여나갈 때마다 그 토끼가 떠오르지만 그 토끼 때문에 차가 토끼처럼 앞으로 튀여나간다는 비유가머리에 떠오른 건 아닐 것이다. 나는 내 머리 속에 언제든지 뛰쳐나가려고 하는 토끼 한마리가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든지 튀여나갈 것이다. 그러나 비수가 없는 곳을 향하여 토끼처럼 후닥닥~ 쌩~ 내 사무실 내 책상 옆에는 항상 트렁크가 준비되여있다. 언제든지 훌 떠날 수 있게. 떠나기 위해 멈춰있는 인생인 것처럼. 

-오늘 면접 볼 녀자애의 리력서를 지금 위챗으로 당신에게 보냈어요. 

마침 붉은 신호등이 켜져서 브레이크를밟고 스틱을 N에 밀어놓았다. 100초가 걸리는 빨간 신호등이다. 핸폰을 손에 들고 그 녀자애의 리력을 잠간 들여다보았다.

 

… …

외국어 수준:일어 일상 대화 정통, 비지니스 고급 일어 정통, 비지니스서류  등 일어 서류 작성과 번역 정통.

… …

 

나는 빙그레 웃었다.

- 꽤나 재밌는 친구네. 일어를정통했다고 썼네. 감히 외국어를 정통했다고 장담하는 걸 보면 굉장히 자신감 높은 친구일 거 같으네. 

- 그렇게 일어수준이 높으면 왜 작은 우리 회사에 리력서 넣었겠어요? 인재 채용 광고에 우리 회사 규모랑 주요 업무 내용에 대해서 거짓없이 다 상세하게 소개했는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적은 거겠지 뭐.

안해는 항상 이렇게 사람 좋게 해석한다.

아무 생각 없는 애를 왜 직원으로 뽑아줘야 하지?

나는 리력서에 적힌 정통이라는 두글자 때문에 머리 속으로 미리 오늘 면접 올 녀자애에게 마이너스점수를 주고 있었다.

- 오전 열시에 도착하겠대요. 당신휴대폰 번호를 줬으니까 련락이 올 거예요.

- 오케이.

오면 면접은 봐주는 거다. 알 게 뭔가, 정말 일어수준이 뛰여난 수준일지.

빨간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는 것과 동시에 스틱을 뒤로 당겼다. 1초만늦어도 뒤에서 빵빵 경적을 울려대는 게 이 도시의 자동차문화 수준이다. 경적을 울려대기 위해서 운전대를 잡은것처럼. 거부기도 운전대를 잡으면 토끼보다 더 성격 급해진다. 그러나벌써 밀리기 시작하는 아침 출근길에 토끼는 없고 거부기들만 잔뜩 늘어져서 엉금엉금 긴다. 거부기보다 더 늦은건 뭘가. 달팽이? 달팽이들의 세상에는 교통체증이 없을 것이다.

등에다 껍질을 업고 다니는 달팽이를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아직내 집이란 것이 없을 때 집을 등에 업고 다녀서 집걱정 필요 없는 달팽이가 부러워서 <달팽이집>이라는 시도 썼던 것 같다. 달팽이는 집걱정 없으니까 열심히 달릴 필요가없는 것이다. 집이 없는 자는 집값이 점점 천정을 향해 치솟는 이 시대에 자기 집을 마련하기 위해  토끼보다도 더 빨리 달려야 한다. 그러나 달려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토끼는 적다. 이 도시 대부분 샐러리맨 토끼들에게자기 소유의 집은 너무 먼 꿈이다. 나는 이 도시에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있지만 은행 할부로 분양받은 것이여서아직 그 집의 진정한 소유주는 내가 아닌 은행이다. 월부를 제때에 제대로 갚지 못하면 내 몫의 집은 은행몫으로돌아가고 나는 신용불량자가 되여 이 나라에서 기차표도 비행기표도 예매하지 못할 것이다. 집의 속성에 대해서생각해봤다. 그건 그냥 세멘트와 철근과 벽돌장으로 올리 쌓아진 물리적인 덩어리일 뿐인데. 그렇게 높던 건물들도 무너지면 결국 한무더기 허무한 쓰레기더미일 뿐인데. 무너질때 버섯모양으로 치솟는 먼지 연기는 그 안에 살던 인간들의 한숨일 것이다.

저 앞에 오른쪽에 새로 일떠선 건물 외벽에 어떤 사내가 매달려 유리를 닦고 있다. 동아줄 두 가닥에 의지해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려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사내가 꼭 달팽이처럼 보였다. 저 건물 안에 저 사내가 들어가 살 집은 없을 것이다. 사내의 머리에 쓴 노란헬맷이 해빛을 받아 노란 별처럼 보였다. 똥별인가? 노란…

똥별이라면 저 별은 위태로운 슬픈 별일 것 같다. 나는 별도아니고 별똥도 되지 못한 슬픈 것들의 꿈에 똥별이라는 단어를 달아주기로 했다. 아까 식탁 앞에서 반짝 하고떠올랐던, 내 국어사전 안에 장난기로 슬쩍 끼워넣기로 한 똥별이라는 새 단어의 뜻을 저렇게 삶을 위해 위태롭게매달려있는 군상들의 집합체를 상징하는 단어로 해석해주기로 했다. 똥별 같은 인생들. 

똥별은 가느다란 거미줄에 의지해 허공에 매달려있는 한마리 거미 같았다.거미줄은 약하고 언제든지 툭 하고 끊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득한 높이에서 툭 하고 거미줄이끊어지면 그대로 아득한 아래로 추락하고 말 연약한 존재.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는 바람에도 그 거미줄이 끊어져나갈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가.

차가 그 건물을 지나갈 때 나는 다시 한번 창문 유리 너머로 그 건물 외벽의 사내에게 눈길을 주었다. 똥별 사내가 지탱해야 할 삶의 무게는 저 사내를 매달고 있는 바줄이 당하고 있는 무게보다도  몇배, 몇십배  더 무거울 지 모른다.

 

무거운 것이여

가볍게 매달려

대롱대롱

 

우리 모두는

건물 외벽에 매달린

위태로운 거미 한마리

 

삶은 무겁고

숨결은 가벼워

우리 숨쉬며 살고 있지만

 

거미줄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모르네

바람 앞에 간신히 매달려있는

거미줄 안전 점검 누가 해주는가

 

치렁치렁 매여달린 인연들은

열줄 스무줄 벗어날 길 없는

씨줄과 날줄 같은 거

 

그 속에 갇힌 거미는

오늘도 허공에 위태로운

작은 점 하나.

 

이런 시가 떠올랐다. 나는 시인이였다. 회사랍시고 하나 차려놓고 직원을 몇 명 두고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몸 먼저 마음이 늙어버려서 욕심 없이 법인대표이름은 안해의 이름으로 올려놓고 있었다. 결재 싸인만 내 몫이였다.

안해나 내나 다 저 건물 외벽에 매달려 있는 한마리 거미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라는 명목으로 번 것보다 더 많이 뜯어가는 각종 가렴잡세. 그 잡세 집행행정부문들의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등쌀에도 웃으면서 살겠다고 아득바득 회사를 운영해나가야 하는 가련한 소상공인인 우리는 돈벌이에 눈이 아홉개 되고그 눈마다 혈안이 되여 돌아가는 이 사회의 시스템 안에 어쩜 저 건물 외벽에 매달린 거미 한마리보다도 더 작은 딱정벌레인지도 몰랐다. 밟히면 딱 하고 배 터지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형체없이 이지러지고 뭉개여져 사라질 작은 벌레. 운명공동체인 안해와 나는 이 시스템 안에서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벌레이기나 한 걸가.

나는 간신히 매달려 우로 올라가는 거미이기보다도 어쩜 이제는 더 욕심 없이 안전한 땅으로 기여내려오고픈거미인지도 모른다. 대신 나보다 젊은 안해는 가족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이르려고 애쓰는 것 같다. 행복에도 높이가 있다고 믿고 있고 그 높은 곳의 열매가 더 맛있어보여 따서 맛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 열매를 따서 온 가족이 함께 누려보고픈 것이다. 세 식구 함께 하는 행복. 더 큰 행복. 안해는 아직 꿈이 있고 더 잘살고 싶은 것이다. 더 잘살아보고픈 것이다. 그런 안해가 고맙고 안스럽지만 어쩌겠는가, 포기하면 그대로 뚝 떨어질 수도 있는 생인 것을. 입 벌리고 먹고 살아야 할세 식구 가족의 무게를 안해는 안다. 입에 풀칠해 먹고 사는 짓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을. 제도권의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는 소상공인인 우리는 나라를 향해서 손을 내밀 대신 나라에 버는 것 이상으로 가져다바치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거지 뭐… 하고 스스로 자기를 속이고 위안하면서 그렇게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느 녀자후배가 그랬다. 더 살 수 없을 때까지 살아보자고살안해니까 살아지더라고. 피 터지게 이 악물고 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버텨내니까 벼텨지더라고. 그 후배는 어떤 끈을 잡고 그렇게 대롱대롱 삶의 외벽에 악착같이 매달려있었을가. 남편? 아들? 사랑? 가정? 그렇게 버텨서, 그렇게 살안해서, 그후배는 지금 행복이라는 거미줄을 잡은 것일가, 그 거미줄에 매달려 즐거운 그네를 뛰고 있는것일가. 그녀는 어쩌면 지금도 아슬아슬한 삶의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래동안련락이 없다. 후배도 외롭고 아프고 힘든 하나의 똥별인지 모른다. 나는아니겠는가. 안해인들 아니겠는가. 우리는 다같이 빛이 아닌 것을 빛이라고믿고 빛을 내려고 악을 쓰는 똥별들인지 모른다. 

벌레는 기여서 어디로 가는가. 분명한 건 꿈을 향해 기여가는거미는 없다는 것이다. 거미는 당장 눈앞의 작은 먹이로 스스로를 먹여살리기 위해서 기여가는 것이다. 하루하루 살안해기 위해서 기여가는 것이다.

작곡가가 아닌데 어떤 곡이 떠오른다. 그 곡에 맞춰 어떤 가사가떠오른다. 항상 그랬다. 시인인 내가 가사를 떠올릴 때면. 그 리듬은 적지 않고 가사만 적는 것이 시인인 나의 몫이다.  

 

거미에게 꿈을 묻지 말아요

오늘의 밥그릇이 아직 비여있어요 

배고픔을 길게 뽑아 그물로 펼쳐요 

래일도 배고프면 너무 슬프잖아요

슬프지 않은 거미가 되려고

거미는 쉬지 않고 거미줄 쳐요

날개 대신 허공에 그물을 펼쳐

그 그물 속에 한점 마침표처럼

바람 속에 흔들려요

흔들리는 작은 점 하나

바람 앞에 꺼지지 않는 작은 초불 하나

땅에 심어져 꽃으로 피여나고픈

작은 소망의 까만 꽃씨인가요 

외줄 그네 우에 흔들흔들 작은 점 하나

거미는 날개 펼치고 날고 싶어요

거미는 슬픈 노래 부르지 않아요 

 

제목을 <거미의 꿈>이라고하면 좋을 것 같다.

거미의 목소리로 슬프게 노래 부를 수 있는 령혼의 가수가 있다면 그 가수에게 이 가사를 주고 싶다.  거미의 슬픔을 아는 처절한 목소리의 가수가있다면 그 가수에게 이 가사를 주고 싶다. 아픔을 아는 자만이 아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아픈 목소리로.

목 아프지 않은 가수가 어데 있겠냐마는… 가슴이 아픈 가수는 목소리의 떨림부터 다르다. 빛이 없는 똥별 거미의 빛을 내고저 하는 그 처절한 몸부림을 담을 목소리의 주인공은 따로 있을 것이다. 그 가수도 지금 어느 치렬한 생존경쟁의 거미줄에 매달려 한점의 빛을 내려고 한점의 별이 되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며싸우고 있는지 모른다.

가느다란 거미줄에 매달린 똥별들의 몸부림.   

 

소설 둘. 거미를 먹는 녀자- 소설을 위한 면접방법

- 그렇게 반시간씩 모모와 마주보며 무슨 대화 나누죠?

-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볼 뿐이예요.

- 그럼 모모가 눈빛으로 전하는 모모의 마음이 읽혀지나요?

- 아직 모모의 눈을 찾아 마주본 적은 없어요. 정면으로 마주보는 경우보다 그냥 모모의 옆모습이거나 뒤모습을 볼 때가 더 많아요. 모모는자기 집 안에서  움직임이 생각보다 무지빨라요.

- 모모에게도 눈이 있을 거 아니예요?

- 있겠죠.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모모와 눈빛을 마주친 적이 없네요. 두 앞다리 사이에 얼굴을꼭 감추고 있어 그런가봐요.

- 위챗에 올린 거 보니까 팔에 꼼짝 않고 붙어있던데…

- 아, 걔가 무지 겁이많은 같아요. 팔에 올려놓으면 그 많은 다리로 저를 꽉 붙잡는게 확연히 알려요.미끌어떨어질가봐 본능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어 집게처럼 집는 것 같아요. 

- 걔는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거 아니예요. 떨어지는 순간 꽁무니로 거미줄 토하면 되니까. 그 거미줄에 매달리면 되니까.

- 안될걸요? 그 큰 몸뚱이를그 가느다란 줄이 견디지 못할걸요… 떨어지는 걸 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취미동아리에 올라온 모멘트들을 보니까 조심하지 않아서 떨군 적이 있는데배 터져 죽은 거미도 있대요.

떨어져서 배가 터져 죽은 거미…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약간 끔찍했다.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그녀는 표정의 변화 없이 담담히 이야기했다.자기가 겪었던 일이 아니여서 자기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는듯…

이제는 감이 잡히리라. 모모는 거미의 이름이고 우리는 지금그녀가 기르는 거미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우리 회사에 리력서를 제출하고 면접 보기로 했던 녀자가기르는 거미의 이름이 모모였다. 나도 방금 대화를 통해 알아낸 것이다. 

나는 지금 펫 스파이더를 사육하는 녀자와 마주앉아있다. 펫스파이더, 애완거미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냥 거미가 아니라반려견처럼 비싼 돈을 주고 사서 집에서 기르는, 비싼 돈 들여 먹이를 사서 먹여주며 사육하는 반려거미.

반려견이 아닌, 반려거미를 기르는 녀자. 그 녀자와 면접이라는 명목으로 처음 만나서 면접에서 상투적으로 물어보는 신상정보에 관한 내용들은 리력서에 적어서보내온 그대로 거의 믿어주기로 하고 대화가 일찍 끝났다. 대신 나는 엉뚱하게 그 녀자가 기르는 반려거미에대한 화제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요로 일본시장을 상대로 하는 작은 무역회사여서 일어를 잘하는 직원이 필요했다. 일본어수준 국제1급, 직장경력 5년 이상의 신선한 피가 필요하다고 HR 커뮤니티 페이지들에 광고를 냈더니 일본어를정통했다는 자신만만한 리력서가 들어왔다. 대우도 4대보험에 기본 월급 15K에 플러스 알파 성과급. 월 기본 2만원이상은 달라는 소리다. 우리 회사 기준 대비 높은 대우 요구에 부담이 좀 가고 너무 자신만만한 어투에 약간믿음이 가지 않았으나 그러나 혹시나 싶어서 면접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면접 보기로 했던 날 약속시간을 반시간 앞두고 녀자에게서 문자가 들어왔다.

- 미안합니다. 급한일이 생겨서 오늘은 면접 보러 갈 수가 없네요. 다른 날 잡아서 련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문자를 받고 나는 이미 그 녀자애를 면접리스트에서 지우고 있었다. 아무리급한 일이라고 해도 약속시간 반시간 전에 일방적으로 면접취소를 통보해오는 건 취직의지가 강하지 못하거나 우리 회사에 취직하고픈 열망이 작다는 뜻일게다. 이곳 저곳 여러 곳에 취직희망서를 넣었다가 오늘 아침 갑자기 우리 회사보다 실력 있어보이고 제시한대우조건도 더 좋아보이는 회사에서 면접통지가 날아오니까 그냥 그 회사로 면접 가기로 마음을 바꾸었을 수도 있었다. 큰떡이 보이면 그 큰 떡 향해 손을 내밀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니 리해해주기로 했다.

면접 약속시간에 얼굴도 내밀지 않고전화 한통, 문자 한줄 없이그냥 무소식으로 면접약속을 무시해버리는 취직희망자들도 많았다. 취직을 그냥 고추장 맛보기로 대하고 회사생활을식은 죽 먹기로 대하는 사회 초년병들이 아직 많은, 아직 상식 이하가 상식으로 통하는 취직시장이였다. 그나마 문자를 보내온 건 최소한의 례의는 갖추고 있는 셈이였다.

취직희망자로서는 영 아니올시다였지만 나는 그 례의에 례의로 좋은 뜻의 답변을 문자로 날려주었다.

- 좋은 직장을 찾아서 크게 발전하세요.

그랬는데 며칠이 지난 그저께 저녁 그 녀자애에게서 다시 문자가 들어왔다.

- 전번에 제 개인사정으로 취소되였던 면접, 래일 다시 가능할가요?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늦은 밤시간이였다. 나는 즉시 답변하지않고 안해에게 말했다.

- 이 친구 재밌는 친구네. 인생자기 편한 대로 사는 친구인 것 같애. 전번에 면접 취소했던 쉬메이라는 녀자애 말야, 래일 다시 면접 보러 와도 되냐고 문자 보내왔네? 여러 곳에 면접 다녀봐도다 맞갖지 않았는 모양이지?

- 그럴 수도 있지 뭐. 우리도꼭 뽑아줘야 할 의무가 없으니까 편하게 만나봐요. 일어를 잘하는 직원이 필요하니까… 딴딴의 일효률은 정말아니야. 다른 애들도 다 딴딴과 팀워크하려 않는다니까… 내가 걔 개인번역사 역할 해야 돼요…ㅠㅠㅠ

- 알았어. 약속시간잡아보지 뭐. 나도 랠은 좀 바쁘니까 후날로 잡아볼게.

그리고 그 녀자애의 정체성이 조금 궁금해져서 위챗에 추가된 그 녀자애의 위챗 모멘트를 들어가보게되였다. 위챗이 좋은 게 그런 거였다. 자기 개인 계정을 공개하지 않는사람이면 방법 없지만 개인 계정을 공개했을 경우에는 그 계정에 올린 모멘트 내용들을 보면 그 사람의 일상의 모습들을 통해 그 개인의 취향이나 세계관같은 것을 대충 보아낼 수 있었다. 물론 그 모멘트들이 그 사람의 진실 전체가 아니고 이 세상을 향해서 보여주고픈아름다운 것들만 선택되여져 올려지는 내용 혹은 꾸며진 내용이라 할지라도…

그 모멘트를 보면서 나는 약간 충격을 먹었다. 하얗게 이쁜녀자의 팔뚝 우에 붙어있는 커다란 거미의 사진이 오늘 갓 올린 따끈따끈한 이미지로 제일 우에 위치해있었다. 정상적인성인 녀성의 팔뚝 사이즈와의 대비를 통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거미의 크기를 훨씬 릉가하는 커다란 거미임을 이미지를 통해서도 보아낼 수 있었다. 몸뚱이와 다리에 기다랗게 덮여있는 털들이 징그러웠다. 너무 상상 밖의 사진이여서시각적인 충격이 컸다. 그 충격을 머리를 흔들어 털어내며 계속해 모멘트를 밑으로 내려 훑어보니 거미에 관한게시물들이 많았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본 배추벌레 같은 벌레를 거미가 먹고 있는 동영상도 올려져있었다. 나는 등으로 오싹 차가운 랭기가 흘러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징그러웠다. 녀자는 거미를 사육하고 있었다. 거미를 기르는 녀자, 거미와 사는 녀자… 일본어실력이나 업무능력 등을 떠나서 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녀자이구나 하는 생각에 한 회사에서함께 일할 동료로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벌써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동영상을 보여주면 안해도 오싹 몸서리를 칠가봐 그냥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슬쩍 말을 던져보았다.

-직원채용 광고를 그냥 반복해 올려서 다른 사람을 찾아보지그래?

-리력서 여러장 들어왔는데 다들 초짜야. 월급 많이 주더라도 경험이 풍부하고 일어를 정말 막힘없이 할 수 있는 직원을 뽑아야 돼요. 지금 몇몇 안되는 애들 비교해봐도  그중 그래도 월급을 많이 요구하면서 입사한 쇼천이 그만큼 일어도 잘하고일도 제일 잘해요. 경험과 언어실력 중요하다니깐요. 얘도 진짜 능력있으니까 자신 있게 리력서 넣었을 거 아니예요? 일단 면접 봐줘요… 다른 회사 면접 돌고 돌다 오면 뭐 어때요?  와서 일만 잘해주고 일본어실력만 좋으면 되지뭐.

안해는 능력 있는 조수가 급히 더 필요하다고 호소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거미를 기르는 녀자를선뜻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뽑을 용기는 없었다. 뱀 같은 파충류와 거미 같은 징그러운 절지 곤충들을 나는 제일싫어하고 무서워했다.

위챗 모멘트를 봐서는 개인취미가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취직희망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성이 강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 개성을 충분히 존중해줄 마음의 준비가 되여있다고 생각했는데 거미를 기르는 녀자는회사 직원으로 영 아닐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너무 개성이 강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회사 분위기를흐린다면 그것도 미리 경계해야 할 대상이였다. 이렇게 개인취향이 독특한 취직희망자이면 회사에 불러서 사무실이라는딱딱한 환경에서 면접을 보기보다는 다른 열린 환경에서 편하게 만나 대화를 나누며 그 개성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자애의 현재 거주지가 우리 회사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다고 전번에 리력서에 적혀있던 걸 기억해내고위챗에 이런 문자를 넣었다.

- 늦은 밤인데 아직 쉬지 않고 문자를 주어서 감사합니다.

- 아니요, 전 부엉이과에속해서요.

- 혹시 모레 시간이 어떠세요? 마침제가 모레 티위시루 쪽으로 일 보러 나가야 되는데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그 때 그쪽에서 편하게 만나보는 것이 어떨가요?

꾸며낸 것이였다. 티위시루 쪽으로 일 보러 나간다는 건.

3개월이라는 수습기간이 있으니까 대충 뽑아서 사용하면서 관찰해보고마음들지 않으면 수습기간 완료 전에 내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그건 회사관리를 너무 우습게 보고 하는 말씀이시다. 사람을 한명 잘못 뽑으면 회사엔큰 랑패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게 조직이라는 생명체의 생리이다. 뽑아서 회사의 식솔로 받아들이는 건 쉬워도능력이 안된다고 내치기는 쉽지 않은 게 인사관리다. 회사운영에서 인사는 그만큼 오너에게 가장 신중성을 요구하는어려운 것이였다. 직원 한명을 더 뽑는 건 쉬워도 그 직원의 인생에 회사로서의 책임을 다 해서 꿈을 심어주고날개를 달아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였다. 회사와 함께 클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했다. 한 밥솥 먹는 식솔로 받아들인다는 건 그 식솔에 대한 책임을 의미했다.

- 오케이. 모레 몇시에티위시루 쪽으로 나오게 되죠? 저는 모레 오전에 시간이 괜찮은데…

- 혹시 그럼 아침 아홉시 반이 어떨가요?

- 오케이.

미팅 약속이 쉽게 잡혔다.

- 장소는 D출구 왼쪽맞은켠에 보이는 스타벅스로 할가요?

- 오케이.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녀자와 마주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이미 만난 지 반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리력서에 적은 나이로는 서른살,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해 휴대폰대화로 서로를 확인하며 내가 앉아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녀자는 생각했던 대로 완전 개성 넘치는 신세대였다. 가슴골이약간 로출되게 맞춤하게 패인 아이보리색 면티에 근년에 류행하는 무릎이 훤히 로출되는 청바지를 받쳐입고 나왔다. 꼭면접이라고 못박아서 만든 미팅은 아니지만 그러나 회사 취직을 전제로 오너와 만나는 자리에 입고 나온 복장으로는 대담한 코디였다. 브라운톤으로 염색한 단발머리를 무스를 진하게 발라 남자처럼 뒤로 빗어넘겨 이마 전체를 너무 도발적으로 로출시키고있었고 얼굴에도 이곳 광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컬러화장을 하고 나왔다. 입술에도 충분히 섹시함을 과장해서어필해주는 반짝이는 립스틱을 칠하고 있어 상상으로 남자들의 혀끝을 자극하는 효과를 내기에 충분한 화장이였다. 손가락에도아주 개성이 넘치는 은빛의 금속 해골반지와 마노로 된 가면 반지를 량쪽 검지에 서로 대칭되게 끼고 나와 저도 몰래 눈길이 그 반지 둘을 번갈아향하게 했다. 화장할 줄 아는 녀자였다. 코디에 능란한 녀자였다. 화장과 코디로 자기 개성을 충분히 표현할 줄 알고 그 개성을 감추려 하지 않고 대담히 표출할 줄 아는 녀자였다. 아니, 오히려 그 개성을 어필하려고 한 화장과 코디였다는 인상을 주었다. 너무 임팩트한 첫 인상에 나는 벌써, 이 녀자는 직원으로는 아니겠구나 하는생각이 들었다. 나야 뭐 젊은 직원들의 모든 개성을 다 수용해줄 수 있는 성격이지만 조용하고 약간 보수적인성격의 내 안해와는 어울리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둬마디 인사 나누는 시늉만 하고 그만둬야겠구나하고 마음은 벌써 도리머리를 젓고 있었다.

그런데 스스럼없이 손을 먼저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거라든가, 굳이사양하지 않고 메뉴를 펼쳐 커피를 익숙하게 주문하는 거라든가… 세련된 커리어 우먼의 포스가 확 풍겨왔다. 우리같은 작은 회사가 아닌, 큰 회사에서 단련받은 경력이 자신감으로 표출되고 있었다.그건 꾸며서 되는 게 아니였다. 긴 시간 사회경험으로 몸에 배인 사교능력이였다. 나는 내 첫 인상을 지우고 이 녀자와 좀더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어쩜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일 수도 있었다. 안해에게 모자라는 파워풀하고모던한 이미지로 회사의 분위기를 바꿔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기 쪽에서 먼저 쿨하게그 날 면접약속을 어긴 데 대해 사과를 표시해왔다.

- 아, 그 날은 정말미안했어요. 변명 같은 건 안할게요. 단 그 날 분명 면접과 취직보다더 중요한 일이 갑자기 생겼다는 것만 말씀 드릴게요. 그 일처리를 위해서 며칠 광주를 비우고 있다가 어제저녁 늦게야 광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오늘 뵐 수 있어서 좋네요.

맞춤한 언어능력과 능란한 사교능력이였다. 한마디로 믿음이 가게만들었다.

- 아, 그럴 수도 있죠뭐. 급한 일은 잘 처리되였구요?

- 돈과 친구와 사업과 우정이 얽힌 문제예요. 쉽게 풀리진 않겠죠?

녀자는 눈을 한번 과장해 찡긋해보이며 환히 웃었다. 그러나그 웃음 속에 이 며칠 동안 분명 골치 아픈 문제를 처리하느라 피곤했음을 알려주는 피로 같은 것이 묻어났다. 사연이많은 녀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잘 풀렸음 좋겠네요.

- 잃느냐 얻느냐, 어느걸 잃고 어느 걸 남기느냐 하는 것들은 항상 골치 아픈 선택거리죠.

녀자는 스스럼없이 자기 고민을 토로하고 있었다. 면접이 아니라면치고 나오는 대화법이 돋보이는 소통능력이였다. 사연이야 어떻든 그 날 면접을 빵꾸낸 데 대한 해석으로선 충분한내용이였다. 비즈니스에 필요한 치고 박고 밀고 당기는 네고 능력이 강할 것 같았다.

- 학교 공부를 마치고 거의 십년 동안 몇개 회사 거치면서직장생활 충실히 하시다가 요 2년 동안 공백으로 남겨놓았던데… 혹시 개인사업을 하셨나요?

- 예리하시네요. 네…친구와 동업해서 심수에서 베이커리사업 했어요… 결과는… 실패지만… 돈 날리고 시간 투자하고… 좋은 공부 했죠. 남은건 교훈 뿐이고… 사업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다시 취직생활 하려는 거구요…

부담이 가는 대목이였다. 개인사업에 2년을 미쳤던 사람이면 평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쉽게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다고해도 직장의 업무에 충실하기가 힘들 것이다. 자꾸만 시중에 흐르는 돈에 신경이 가고 회사업무보다도 개인사업신규 아이템 발굴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이였다. 사업하다 넘어진 사람은 사업으로 다시 일어서는 게 맞았다.

- 아, 대단하시네요. 베이커리사업, 투자금도 만만치 않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을 건데…저희 무역회사 업무보다 열백배는 더 힘들게 신경 쓰고 챙겨야 할 부분들이 많은 사업이였을 건데…

- 그렇죠. 직장생활 하면서 모았던돈 다 투자했죠. 결국 다 날렸지만… 직장생활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 배운 것도 많아요.

아쉬움과 여한이 많이 묻어있는 어조였지만 표정은 쿨하게 밝았다. 이제사업 실패가 주는 슬럼프에서 거의 헤여져나온 해탈된 표정이였다.

- 넘어진 데서 다시 일어서라는 말 있잖아요? 취직보다도 그냥 사업 쪽으로 신경쓰시는 게 더 맞을 것 같은데요. 

- 그럴 수 있으면 좋겠죠. 그런데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타협해야죠 현실과.

그녀는 두손을 내보였다. 다 날리고 이제는 손에 쥔 게 없다는뜻이였다.

로스팅 커피가 드립 완성되였다는 신호가 책상 우에 놓인 알람에 빨간 신호로 반짝였다. 녀자가 내 먼저 그 알람을 들고 일어섰다.

돌아온 녀자가 자리에 앉으며 코로 커피향을 맡았다.

- 음… 제가 직접 로스팅한 커피보다 향이 못한 것 같네요. 스타벅스 커피가.

자신 있는 어투였다.

- 베이커리 매장보다 오히려 커피숍을 하시지 그랬어요? 

- 하하, 요게 모자라잖아요?

그녀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다. 투자금이모자랐다는 뜻이였다. 그래, 하고픈 사업 다 할 수 있는 자금력을 충분히갖춘 사람이면 왜 굳이 사업을 시작해야 할가. 내가 원래 하던 사업에서 한번 발목을 접지른 후 나와 안해도정말 어렵게 어렵게 단돈 10만원으로 다시 시작해 몇년 동안 회사를 키워 오늘에까지 이르른 것이였다. 쉬운 사업은 없었다.

판단이 섰다. 이 녀자는 우리 회사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인력이였다. 지금 다른 직장에서 커리어우먼으로 출근하고 있다면 스카웃해서라도 데려다가 직접 관리자 책임을 맡길 수 있는 인재였다. 그러나 우리 회사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였다. 회사는 회사와 함께 동고동락하고함께 크면서 회사의 발전과 개인의 성장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자는아니였다. 지금은 잠시 사정이 어려워 직장생활로 유턴하려고 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기회만 생기면 개인사업을위해서 다시 회사를 뛰쳐나가 독립할 녀자였다. 화제를 돌렸다.

-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도 괜찮은지 모르겠는데… 위챗모멘트에 보니까 거미를 기르시던데…

- 아, 모모…

녀자의 눈빛이 금방 빛을 반짝이며 표정이 환해졌다.

거미의 이름이 모모인 모양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모에 관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어느새 면접을 목적으로 녀자를 만났다는 것을 거의 잊고 녀자가 기르고 있는 거미에 더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징그럽게 생각하던 거미에 관하여…

작은 개인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건 내겐 어쩜 명색 좋은 허울일 수도 있었다. 기업 운영자이기 전에 나는 글쟁이였다. 먹고 살려고 작은 개인사업체라도 운영하는것이지 나는 먹고 사는 짓 같은 거 전혀 신경쓰지 말고 글에만 미쳐도 된다고 세상이 허용한다면 브라보를 웨치고 책만 껴안고 글만 쓰면서 살고픈인간이였다. 뼈속까지 글쟁이였다. 이 녀자는 어느새 소설가로서의 나의호기심을 강렬히 자극하고 있었다. 거미를 기르는 녀자… 내가 싫어하던 징그러운 이미지의 곤충이길래 더 호기심이발동되였는지 모른다.

- 거미가 떨어져서 배가 터져 죽는다구요? 상상이 안 가네요.

- 아직 모모가 얼마나 배불뚝이고 모모가 늘이는 거미줄이 얼마나가늘고 약한지 보지 못해서 그래요. 직접 보면 믿음이 갈 거예요. 

- 갑자기 모모에게 확 관심이 땡기네요. 은근히 보고파지네…

그랬다. 거짓이 아니였다. 나는갑자기 지금까지 징그러운 곤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미가 보고싶어졌다.

- 미리 말씀하셨으면 나올 때 모모를 들고 나오는 건데…

- 아, 밖에 들고 다닐수도 있어요?

더욱 호기심이 발동했다.

- 모모를 넣고 기르는 모모의 집을 그대로 들고 나오면 되여요.

- 아, 그러시구나. 궁금해요. 모모가 사는 집, 그리고 모모가먹는 먹이들, 모모가 움직이는 모습이랑… 위챗에서도 봤지만 직접 눈으로 보면 다르겠죠?

나는 어느새 거미와 사는 녀자의 집이 궁금해졌다. 처음 만난녀자가 생활하는 사적인 공간에 관심이 생기다니… 거미와 사는 녀자, 거미와 사는 녀자가 사는 공간은 어떤곳일가. 어쩔 수 없는 소설가 본능으로서의 호기심이였지만 면접 보려고 처음 만난 녀자의 은밀한 생활공간에대한 호기심 발동은 남자로서 충분히 그 동기가 의심받을 만한 대목이였다.

녀자의 눈빛이 잠간 흔들렸다. 거미와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가보고 싶다고 지금 요청해줄 수 없냐고 묻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내 호기심의 바늘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직감으로 정확히 짚어내고있었다.  이 남자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적인 공간에도가보고 싶어하는구나 하는 것을 직감으로 눈치채고 믿고 요청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순간 했던 게 분명했다. 눈빛의흔들림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더 치고 나가면 실례로 이어질 수 있었다. 내 스스로에게 그리고그녀에게도 퇴로를 만들어줘야 했다.

- 초면이 아니라면 무조건 지금 모모 보러 가자고 억지를 부릴것 같아요. 그 정도로 모모의 모든 것이 궁금하네요. 저 사실 거미같은 거 굉장히 겁나하는데.

- 기회가 되겠죠 뭐. 속으로강렬하게 원하고 기도하면 언젠가는 하늘이 알아서 이루어준다고 하잖아요?

그녀의 얼굴에 잠간 묘한 웃음이 살짝 스쳐지나갔다. 당신이그렇게 원한다면 언제 저와 모모의 사적인 공간에로 당신을 요청할 수도 있어요 하는 표정으로 읽혔다.

- 그런데 왜 거미를 무서워하죠?어릴 적 시골에서 사신 경험이 없으신가봐요…전 어릴 적 시골에 살아서 처마 밑에 바자굽에 장독대 사이에 변소 가는 길에 채소밭에…어데 가나 거미를 만날 수 있었어요. 어릴 적 거미는 그냥 저의 동년생활의 한 풍경이고 한부분이였어요. 끝부분이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가지에 거미줄 감아서 잠자리를 잡았고 거미 꽁무니에서 거미줄 뽑아 그 거미줄에 거꾸로매달린 거미를 건드려 그네를 뛰우며 놀기도 했어요. 왕거미가 무릎 관절이 아픈 사람에게 좋다고 해서 온 들판쏘다니면서 왕거미를 한아름 되게 잡아다가 무릎 아파하는 아버지에게 갖다 드려 약주를 담궈서 들게 하기도 했구요… 거미는 그냥 저의 동년과 함께한 친구 같은 존재였어요. 물론 지금 기르는 모모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긴 거미이지만요… 지금 기르는 모모는불꽃장미라는 이름을 가진 칠레산 거미로 제가 어릴 적 시골서 가지고 놀았던 거미보다 덩치가 몇 배는 더 큰 놈이죠.

녀자는 거미를 무섭다고 하는 나를 리해하지 못했다. 나도 어릴적 시골서 자랐다. 거미꼬리에서 거미줄을 잡아당겨 누가 더 길게 뽑는가 친구들과 내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거미를 집안에 들여다가 거미와 함께 살 수도 있다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동네 어느 집 아버지가 무릎관절에 좋다고 왕개미를 잡아 술에 담궈 약주로 해서 마신다는 소문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서로 다른 지역이고 서로 다른 민족이고 서로 다른 문화여서일가. 거미문화라는단어조합이 떠올랐다. <제의적 의미로서의 거미에 대한 문화적 고찰> 뭐이러루한 제목을 가진 론문 같은 것들이 이미 나와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가면 네이버에서한번 검색해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어느새 스파이더홀릭이 되여가고 있었다.

- 근데 왜 굳이 거미를 기르죠?반려견이라든가 반려묘도  많은데…하다못해 앵무새라도…

- 아, 걔네들은 털이심하게 날리고 주위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먹이도 많이 먹고 배설물도 많잖아요? 시간에 맞춰 예방접종도 시켜줘야하구 그러다가 아프면 병원에도 데리고 다녀야 하구… 너무 시중들면서 키워줘야 되잖아요? 야근을 밥 먹듯 하는직장인과 하루 24시간을 30시간으로도 모자라게 사용해야 할 자영업자에게그렇게 모셔서 키울 시간적 여유가 어데 있어요? 그냥 작은 집 하나 마련해주면 그 안에서 스스로 알아서 놀아주는거미가 반려용으로 키우는 덴 최고예요. 얘들은 울지도 물지도 않고 먹이도 며칠에 한번씩 주면 되고 집에 털도날리지 않고 배설물 처리도 거의 해줄 게 없어요. 케어가 굉장히 편해요. 그냥습도와 온도를 일정하게 잘 맞춰주기만 하면 돼요.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 모모는 내게서 뭘 빼앗아가려고 하지 않아요. 아무 욕심 없어요. 사랑해달라고 칭얼거리지도 않아요. 며칠씩 집을 비우고 나가야 할 경우에도 애가 혹시 굶어죽을가봐, 배고파할가봐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열흘이고 보름이고 자기 스스로 자기 몸에 저장하고 있던 영양소로 잘 버텨요.  려행길에 며칠씩 나가있다 돌아와도 원망 한마디없어요. 항상 보면 그냥 혼자서 신나게 잘 놀고 있어요. 짝을 찾아주지않아도 외로움을 모르는 아이예요. 모모는 혼자 노는 법을 잘 알고 있어요. 혼자서도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알고 있어요. 친구가 없어도 그냥 그렇게 혼자서 시간을 죽일 줄 알아요. 그게 얼마나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예요? 그리고 모모를 키우면서 저는 그냥 내버려두는법을 배웠어요. 너무 집착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거, 그냥 혼자 내버려두어모모 혼자 스스로 잘 놀고 잘 크는 걸 지켜보면서 그저 빙그레 웃어주는 거,  모모를 키우면서 느끼고 배운 게 그거였어요.가까이 혹은 멀리서  믿고내버려두고 지켜봐주는 거 그것도 사랑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요…

나는 녀자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외로움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에게서 상처를 입은 자의 냄새가 났다. 많이 사랑하고 많이 상처입고 많이집착하고 많이 실망했댔구나… 나이 서른을 넘어서는 녀자의 목소리에 충분히 묻어있을 수 있는 여러가지 삶의 냄새들이였다.그걸 한번에 다 맡는 듯한 느낌이였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묻힌 삶의 냄새들을 떨쳐버리려고 일상의목소리에 냄새로 담아서 털어내기에 허둥대는 녀자…

내 머리 속에 어떤 인물의 륜곽이 서서히 잡혀가고 있었다. 마침편집부의 원고 독촉에 시달리고 있던 참이였다. 그 편집부에 써줘야 할 소설의 제목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거미를 먹는 녀자>

거미를 기르는 녀자를 앞에 두고 <거미와 사는 녀자>의 이야기를 써야지 하고 떠올리면서 왜서 그런 섬뜩한 제목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그냥 지금 내 앞에 섹시하게 움직이는 녀자의 입 안에 거미의 죽은 시체가 들어가는 장면이 순간적으로 련상되여 떠올라서였다.

녀자의 손에 들려있던 거미가 툭 하고 땅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보였다. 떨어진게 아니라 버린 건가… 클로즈업된 녀자의 눈 그리고 그 눈에 역시 겨울 얼음강판에 짝 하고 금이 가듯 흰 줄이 한줄 쭉 건너간 거미의 큰 배가클로즈업되여 보여지고  그 안에서 하얀거미알들이 미여 터지도록 잔뜩 배여나온다. 그 흰 거미알들에서 금방 투명하게 이쁜 거미새끼들이 우주의 전사들마냥막 밀리듯 달려나왔다. 그 거미들이 순식간에 옆으로 쫘악 퍼지고 그렇게 퍼지는 사이 거미들은 어느새 온몸에시커먼 털을 뒤집어쓴 큰 거미로 변했다. 그 거미들이 녀자가 살고 있는 집 공간을 비좁게 다 차지하고 그리고녀자의 몸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녀자의 팔과 다리 그리고 배와 가슴, 목, 얼굴… 눈 코 입을 다 덮은 거미들… 녀자가 거미들을 털어버리려고 허우적이며 입을 벌리고 소리치는 순간, 녀자의 입이 블랙홀인 듯 거미들이 줄지어 녀자의 입안으로 빨리듯 달려들어간다. 솨르륵솨르륵…거미들이 바람소리를 내며 달려들어가는 소리, 녀자가 놀라서 재채기를 심하게 하자 이번에는 녀자의 입에서녀자의 코에서 녀자의 눈에서 녀자의 귀에서 거미들이 녀자의 입안으로 들어간 거미보다 훨씬 많은 거미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나온다. 밑도 끝도 없는 거미의 동굴, 거미의 행렬… 이젠 녀자의 몸 어데라 없이 구멍이되여 거미들을 온몸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녀자의 몸에서 빠져나온 거미들은 순식간에 다시 녀자의 집을 다 점령하고 이번엔 집 밖으로 나간다. 녀자가 사는 동네를 거미들이 순식간에 점령해버린다. 그대로 거미들에 의해 사각사각먹혀버리는 동네… 거미들은 동네를 벗어나 거리로 나선다. 거리의 차들이 그대로 거미의 포로가 되고 먹이가된다. 도시 전체가 거미들에 의해 점령된다. 이제 거미들은 줄지어 다른도시를 향한 진군을 시작한다…그렇게 도시와 도시가 거미들에 의해 점령당하고 지구가 거미들의 통치하에 놓인다. 이제거미들은 우주선에 올라 우주 정복의 길에 나선다…

나는 너무 과장된 상상에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언제 우주의운명을 다루는 공상작가가 될 꿈을 꾸기라도 했던 적이 있던가. SF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이런스펙터클한 환상을 하다니…

그러나 나는 맞은켠에 앉아있는 녀자에게 미안하다거나 내 상상에 내 스스로 오싹 징그러워 몸을 떨고싶다는 생각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그냥 으흠 오늘 면접을 밖에서 보길 잘했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이미 다된 거였다. 미루고 미루어 데드라인을 이미 보름이나 넘긴 소설이실실 웃으며 나를 향해 기여오고 있었다. 소설은 항상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건져지는 것이였다. 이번 소설이 이렇게 거미의 형상으로 나를 향해 기여와줄 줄 오늘 아침까지도 나는 몰랐다.

물론 소설은 과학공상소설이 아닌, 현실제재로 씌여져야 할 것이다. 한 녀자와 한 남자의 뜨거웠던 사랑과 식어가는 사랑의 이야기를 쓰면 될 것이였다. 이미식어버린 사랑이라는 외줄 거미줄에 매달려 위태롭게 억지로 가정이라는 허울을 유지해 가고 있는 녀자와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면 충분히 매리트 있는소설이 될 것이다. 일단 제목이 임팩트하지 않는가.

<거미를 먹는 녀자>…

얼마나 처절한 사랑의 몸부림으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핥고 씹고 쓰다듬어주었던가.  그러나 언제부턴가 해 진 뒤의 어스름처럼 두사람 사이에 드리우기 시작한 차가운 음영… 두 사람은 해가 다시 뜨면 그 음영이 사라지고 다시 그늘 없는 공간 속에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쉽게생각했는데 그러나 점점 안개처럼 짙어지다가 차거운 얼음벽으로 두 사람 사이에 드리운 령하의 랭랭한 벽. 만져질수 있을 정도로 두터워 진 그 벽의 이쪽과 저쪽에서 남자와 녀자는 서로를 뜨거운 심장이 아닌 차거운 눈으로 바라보고… 서로에게 다시 다가가 대방을껴안는 길은 차거운 얼음벽을 깨뜨리고 그 벽 너머로 넘어가주는 것.  그러나 남자와 녀자 중 그 누구도 먼저 선뜻이 그 얼음벽을 향해 다가서지않는다. 먼저 다가서서 부딪치면 먼저 상처 입고 피를 흘릴 자신의 이마… 주먹으로 그 얼음벽 깨는 방법도있지만 그러나 그 주먹은 이젠 어쩜 얼음벽을 깨기 위해 움켜쥐는 것이 아닌, 서로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향해날리려고 악으로 뭉쳐진 듯, 누군가 먼저 그 얼음층을 향해 이마를 부딪치고 주먹을 날리면 그 얼음벽은 쨍그랑하고 깨여질 것인데… 남자와 녀자는 그 얼음벽처럼 둘의 둘레를 둘러싸고 있던 사랑이라는 허울의 울타리도 함께 허물어질가 두렵다. 어쩜 이미 둘 사이에 점점 두터워지는 얼음벽보다도 더 얇아진 가정이라는 허울 껍데기… 두 사람은 뒤로 넘어져 그허울을 깨뜨릴 용기도 없다. 그냥 마주보면서 서서히 얼음벽처럼 차거워지고 식어갈 뿐이다. 사랑의 온기가 완전히 다 사라질 때까지… 이미 말라버린 사랑의 껍질을 두 손안에 마저 부숴버리는 엔딩작업은 누구의몫으로 남을 것인가… 파멸이라는 단어는 소설 속에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녀는 사랑 안에 완성될 수 없으면사랑 밖에서라도 완성의 방식을 찾을 수 있는 것일가. 완성이 없는 사랑과 인생,그 명제를 글에다 풀어서 담안해야 할 일이였다. 상처주기도 결국은 사랑이라고 믿는 그래서 아픈상처도 그냥 받아안는… 사랑이라는 거짓명제로자기를 변명하기에만 성급하고 상처를 합리화하는 데만 영악한 상처주기의 달인들. 그들이 바로 가정이라는 껍데기안에 헛것을 지키고 사는 피멍 든 주인공들이 아닌가. 

결혼 생활 15년, 나도이제야 겨우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씩 깨우쳐가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내 글에 남녀의 위태로운 외줄타기같은 혼인사와 가정사를 담으려고 하는 걸 봐선. 이젠 나도 마음이 많이 여려져 이제야 허황한 먼곳이 아닌가까운 곳을 들여다보며 서서히 철 들기 시작하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철 들긴 개뿔… 나는 내 자신에게 커다란 X표를 꺼내들었다. 철 들기는커녕 나는 어쩜 더 고약해지는 나쁜 놈인지 몰랐다. 내 녀자의 속을너무 썩여 그 속을 야금야금 먹어들어가는 독거미인지도 몰랐다. 내가 얼마나 고약한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 안해는 이 녀자처럼 무독성 반려거미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거미보다 몇백배 덩치 큰 그리고 악독성 독극물을내쏘고 있는 거미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독거미와 살며 그 거미의 독극물에 서서히 잠식당하고 그 거미의독성 강한 이발에 야금야금 인생 전체를 다 씹히고 소진당하고 있는 가장 불쌍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매번 부부간말다툼 때마다 정제되지 못한 독한 말을 참지 못하고 안해에게 독화살처럼 날리군 하는 나. 그 때마다 내 독설에눈가에 핑 눈물이 맺히군 하던 안해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악독성 거미일지언정 그나마 가슴 한구석에 량심과 후회의 게놈인자를 조금이나마 남겨놓고있다는 뜻일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이들수록 점점 더 늘어만 나는 내 고약한 심술과 독설… 근데 내가 왜 지금 오늘 처음 보는 녀자 앞에서 거미에 대한 소설을 구상하며 안해에 대한반성모드일가. 나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체크하며 녀자에게 말했다. 

- 어느새 점심식사 시간이 다되였네요. 우리 함께 점심식사나 하고 모모 이야기 좀더 해요.

- 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초면에 제가 너무 모모 이야기 많이 하고 있었네요.

모모 이야기에 홀릭되여있은 자신을 그제야 깨달은 듯 녀자가 얼굴에 약간 민망한 기색을 띠였다. 그만큼 녀자는 많이 외로워져있었다. 다치면 톡 하고 터질 거미의 커다란 배처럼. 

- 아니예요. 모모에대해서 더 많은 걸 들을수록 모모와의 만남이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오늘 오후 꼭 모모와의 만남이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녀자는오후에 꼭 나를 자기와 모모가 함께 하는 은밀한 공간으로 안내해 데려갈 것이였다. 모모는 느닷없이 나타난제3의 침입자를 반겨줄 것인가.

녀자가 방금 거미도 탈피한다는 이야기를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 려행으로 며칠 집을 비웠다가 돌아와 거미집 안을 들여다보니 안에거미 두 마리가 있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분명 한 마리만 기르고있었는데 느닷없이 두마리라니요? 그래서 숨 죽이고 거미집 안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더니 한마리만 성수나게 그냥돌아다니고 한마리는 그냥 땅에 착 엎드려 꼼짝 않고 있는 거예요. 얘가 왜 아프나? 지붕 문을 열고 손가락으로 살짝 그 엎드려있는 놈을  눌러보았더니 도톰히 부풀어있던 등이 푹 꺼져내려앉는 거예요. 너무 놀랐죠. 그리고 깨달았죠. 모모가껍질을 벗었다는 것을. 그제야 모모를 분양받을 때 모모가 해마다 껍질을 벗고 새로 태여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기억이 떠올랐어요. 제가 려행을 다녀오는 며칠 사이 모모가 껍질을 벗고 새로 태여났던 거예요. 아, 모모가 새로 태여날 때 옆에 함께 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어요. 껍질을 벗을 때 꼭 충분한 먹이로 영양을 잘 공급해주고 습도와 온도를 잘 맞춰줘야 한다고 당부하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잘 보살펴줬어야 하는데… 평생 가슴에 빚이죠.

꼭 필요할 때 주지 못한 사랑, 그 사랑을 녀자는 한으로 남기고있었다.

그보다도 내게 더 중요한 건 거미 껍질이라는 이미지였다. 

됐다. 껍질을소설에 담으면 될 것이었다.

 

녀자는 거미집 문을 열어 거미를 바깥으로꺼내줬다. 낯선 세상 앞에 거미는 잠간 주춤하는듯 싶더니 기다렸다는듯 쏜살같이 발을 움직여 순식간에 어데론가사라져버렸다. 둘러보아도 거미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증발하듯 사라져버린남편처럼.

거미집 안에는 거미가 벗어던진 거미의 빈껍데기만 과거의 어느 한 시간을 상징하듯 죽은 듯 엎드려있었다. 남편이 떠나고 없는 텅 빈 집안에 빈 껍질처럼버려져 홀로 남겨져있는 녀자처럼.

 

이렇게 결말을 맺으면 소설이 될 것이였다.

아니, 이런 구절 한마디를 더 보태도 괜찮을 것 같다.

 

녀자는거미집 안으로 팔을 뻗쳐 그 거미 껍질을 손에 들었다. 속 빈 그것을 조심스레 작은 비닐용기에 담았다. 그리고 그 비닐용기를 이미 려행준비로 잘 정리되여있는 트렁크 한쪽 구석에 담았다. 거미와의려행을 떠나야 할 시간이였다.

텅 빈 껍질 끼리의 려행은 이제 시작이였다.

바람에 날릴 일은 없었다. 

 

소설 제목을 <껍질 끼리의 려행>이라고 바꿔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내 려행 트렁크에 녀자를 착착 접어서 담는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상상은자유, 무죄이지 않은가.

 

소설 셋. 무적의스파이더 패밀리- 다른 한 소통의 방식과 채널

토요일,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오후 일찍 집으로돌아오는 날이여서 그나마 날 어두워지기 전에 일찍 퇴근하는 날이다. 그런데 저쪽 칸에 있는 안해가 걸상을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미가 소리로 들려오지 않는다.

직원들은 쉬여도 우리 부부는 쉬지 못하고 그냥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해야 했다. 회사랍시고 자그마한 실체를 꾸려놓고 보니 뭔 일이 그리 끝이 없고 신경써야 할 게 그리 많은지… 듣기 좋아 오너이고사장이지 직원들 다 쉬는 시간에도 우리 둘은 그냥 일을 찾아해야 하고 일을 만들어해야 했다. 직원들이 오히려사장이고 우리 둘은 직원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라도 몸을 쉬울 수가 없었다. 점점 더 일의 노예가 되여가는안해의 모습이 안스러워서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벽을 하나 사이에 둔 안해의 사무실로 건너갔다.  

-오늘은 날 어둡기전에 일찍 퇴근하지 그래. 윤초도 이젠 집에 왔겠는데.

일주일중 토요일 저녁 한끼니만 세 식구가 한데 앉아 그나마 밥 같은 밥을 함께 얼굴을 마주보며 먹을수 있는 기회였다. 아이는 일요일 아침 식사는 늦잠으로 훌쩍 건너뛰고 점심시간이 다되여서야 자기 방에서 나와과일과 건과류 같은 군것질로 허기를 달래군 했다. 점심에는 밥상앞에 나앉기는 하되 이미 군것질로 거의 불러진배에 더 식욕이 별로 없는지 엄마가 정성껏 차려주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몇숟가락만 퍼넣는 시늉만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기숙사에 머무를 일주일 동안 아침 저녁으로 먹을 우유와 사과 같은 간식을 챙기고 책가방을 훌 들고 다시 학교에 가버리면끝이였다. 집에서 미처 완성 못한 주말숙제를 학교에 일찍 가서 저녁 자률학습시간 전에 완성해야 한다는 게그 리유였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토요일 저녁 퇴근길에는 항상 동네 전통시장에 들려서 평소에 우리 둘 뿐일 때면거의 먹지 않는 육류랑 생선류 같은 것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가군 했다. 일주일에 한번만 차례지는 아이와의저녁식사상을 그나마 밥상꼴 나게 차리기 위해서였다. 그 한끼 ‘풍성한 집밥 밥상’으로 우리 부부는 일주일동안 학교 식당 음식에 질린 애의 위도 달래주고 일주일 동안 애를 학교에 내맡기고 가슴에 따스하게 한번 안아주지도 못한 마음의 빚 같은 걸 갚는셈이였다.

엄마가 해준 밥을 맛있게 먹는 딸애를 보는 토요일 저녁식사 시간이 우리 부부에게는 힐링과 위로와행복의 시간이였다. 토요일마다 나보다 안해가 더 들떠서 일찍 퇴근하려고 서두르곤 했는데 오늘은 아니였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벌써 혼자서 불닭면 한봉지 끓여먹고 있겠는데뭐, 걍 내삐둬… 오늘은 그냥 라면 한봉지 더 배부르게 먹게 놔둬.

안해는 잔뜩 골이 나있었다. 아까 애의 학급 학부모 동아리 대화방에 학급담임이 이번 달 시험성적을 올린 걸 보고 안해가 화가 난 것임을 나는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낮게 나오고 등수에서도 전번보다 훨씬 뒤로 밀려나있는 성적이였다. 뜻밖의 성적에 아까 나도 잠간 속에서 망연한 무엇인가가 불끈 하고 치솟으려고 했었다.

성적은 행복순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애가 그냥 명랑하고 당당하게 자라만 주면 된다고, 애의 공부성적에 절대 연연하지 말자고, 애를 입시교육의 희생양으로 만들지 말자고잘못된 교육 시스템에 애를 끼워맞추지 말자고 약속한 우리 부부였다. 그래놓고도 정작 애가 중3이 되여 고중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선 안해도 나도 은근히 애의 성적에 신경을 쓰게 됨을 어찌할 수 없었다.

- 우리가 이렇게 당황한데 애도 얼마나 당황하겠어. 당사자가 더 속상해할 거니까 집에 가서 아무 말 말고 그냥 맛있는 거만 해주자. 쳐도쳐도 끝없는 게 시험이니까 한번 시험에 애가 기가 죽고 주눅이 들게 하지 말자. 그냥 안아주고 다독여주면애가 다 알아요 부모 마음을…

- 아는 애가 이렇게 시험을 엉망으로 쳐?이번엔 애가 좀 너무 심했어. 중3인데 아직 긴박감 같은거 모르는 것 같애. 집에 오면 일요일 점심이 다될 때까지 늦잠 자고…  애가 위기감 같은 거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야? 왜 이러지? 우리 윤초…

안해는 많이 억울해져있었다. 그렇게 믿었던 딸아이의 시험성적이앞으로 치고 나간 게 아니라 뒤로 밀려졌다는 사실을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 아 주말인데 나도 좀 맛있는 거 얻어먹자. 정리하고 일어나. 집 가자. 우리 딸기다리고 있는 우리 집으로. 

- 토요일이면 윤초를 맛있는 거 해준다는 핑게 대고 당신이 폭식하군하는 거 당신 알아? 당신 배 좀 봐… 건강 좀 챙겨요…

안해는 이번엔 나를 향해 불만을 토로해왔다.

- 그래서 내가 배짱이잖아. 얼굴못나서 얼짱 못하는 대신 배라도 잘나서 배짱이라도 해야지…

- 배포 하나는 짱이다. 그래, 인정해줄게요. 당신 그 배짱.

드뎌 안해도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아이는 낮은 성적 앞에 생각보다 기가 죽어있지 않고 당당했다. 중2 때심하던 사춘기 반항심리가 이젠 좀 숙어들었는지 얼굴 표정도 1년 전보다 많이 풀려있었다. 돼지갈비에 감자를 넣어 푹 익힌 료리를 애는 엄지를 추켜세워 보여주며 맛있게 먹었다.

- 감자가 그렇게 맛있어?

나를 닮아서인가, 애는 감자료리를 무척 즐겼다.

내가 묻는 말에 안해가 대신 대답했다.

- 누가 아빠 딸이 아니랄가봐… 부녀가 감자라면 오금을 못써요.

- 윤초, 아빠 딸이잖아?

내가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을 윤초가 뱉어냈다. 그렇지? 하는 뜻으로 눈을 찡긋하며 나를 바라봤다.

- 그래, 아빠도 딸아빠잖아? 그치? 딸 아빠, 아빠 딸이니까 둘 다 감자 좋아하는 거 당연한 거지, 안 그래?

거의 매주일마다 되풀이되곤 하는 나와 딸아이의 딸 아빠- 아빠딸 레퍼토리였다. 그 순간 만큼은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윤초는 아빠기분이 뭘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윤초, 아빠 딸이잖아- 한마디의 위력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세살 때부터 지금까지 몇마디 할 줄아는 한국어중에 가장 아빠 속을 후련하게 해주고 달콤하게 해주는 완벽한 한국어 표현이였다.

- 아빠는 윤초 아빠 딸이잖아 그 한 마디면 그냥 룰랄라 딩동댕이야.

- 윤초도 그냥 룰랄라 딩동댕이야.

꼭 세살둥이 윤초를 무릎 우에 앉히고하던 그 레퍼토리 그대로 유치한 부녀간의 대화였다. 제발 유치할 수 없을 때까지 유치하자, 변함없는 이 유치버전 레퍼토리로…

이쯤에선 안해도 행복한 웃음을 얼굴에 피워올릴 수 밖에 없다.

엄마의 표정이 부드럽게 펴지자 윤초가 입을 열었다.

- 아빠, 엄마…

아빠와 엄마를 동시에 부를 때면 애가 꼭 부모에게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다는 뜻이였다. 두 사람의 동의를 동시에 얻어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이였다. 안해와 나의 눈빛이동시에 애의 얼굴로 향했다. 부모의 눈에 비친, 뭘? 혹은 왜? 의 뜻을 딸애는 잘 읽어냈을 것이였다.윤초가 중국어로 말을 했다.

- 나 펫 하나 기르고 싶어.

- 펫?

뜻밖의 제안에 나와 안해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딸애는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너무 기르고 싶어했다. 동네에 산책하러나온 강아지들을 볼 때마다 가까이 다가가서 귀엽다고 쓰다듬어주군 했다. 개의 본능인 공격성을 많이 잃고 인간과친하게 지내는 반려견이지만 그러나 억제되여있던 공격성이 언제 어떻게 튀여나올지 알 수 없는 것이여서 나는 애가 낯선 반려견들에게 너무 친근하게다가가는 것을 항상 경계했다.

- 강아지털 집에 날리는 거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거 너도알잖아?

어망간에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여나갔다.

- 아! 빠!

윤초의 목소리가 갑자기 짜증기를 확 담고 톤이 높아졌다.

- 아빠, 내가 지금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말했어? 아니잖아?

나는 어망결에 되물었다.

- 강아지가 아니면?

아이는 내 물음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내게 따지듯 물어왔다.

- 아빠는 왜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해석해? 아빠는 내가 왜 아빠가 싫어하는 강아지를 기르겠다고 말하려 한다고 미리 단정지어버리지?아빠가 그렇게 내 마음을 다들여다보고 잘 알고 있어? 아빠는 내가 지금 뭘 기르려고 하는지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가 싫어하는것부터 내게 강조해주려고 급해하잖아?

애는 화산처럼 폭발해서 불만을 분노처럼표출하고 있었다. 너무 뜻밖이였다. 딸은 아직까지 질풍노도 반역병을앓고 있는 민감한 사춘기 15세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위험한 폭발물이였다.

억이 막혀 대답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나를 대신해 안해가 목소리를 높였다.

- 아니면 그럼 뭐야? 초중 3학년인데 정신차리고 공부나 열심히 해야지, 공부에만 매달려도 시간이 모자랄판에 뭔 펫 타령이야?

안해를 향하는 아이의 눈에 불꽃이 번뜩이는 것을 나는 보았다. 아, 안해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아이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었다. 아니, 이미 건드린 것이였다.

아니나 다를가, 아이가 들고 있던 저가락을 식탁 우에 탁 하고소리나게 내려놓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 공부, 공부… 일주일에 집에와있는 단 하루라도 제발 공부타령 듣지 않고 살게 내버려두면 안돼? 꼭 공부야?꼭 공부 뿐이야? 난 공부외 다른 걸 생각하면 안되는 거야?  공부가 그렇게 내 인생 전부여야만 해?

아이는 신경질적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내뱉고는 훌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그 뒤에 대고 안해가 역시 발작하듯 꽥 소리를 질렀다.

- 윤초야, 너 나오지못해?

하!내 입에서 땅 꺼지는 한숨이 터져나갔다. 갑자기 온몸의 탕개가 탁 풀리는 느낌이 왔다. 행복하던 저녁식사 시간이 살벌한 고함소리가 오가는 전쟁의 시간으로 바뀌는 순간이였다. 애의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지 못하고 성급히 내 생각을 애에게 강요하려고 한 내 불찰로 시작된 불화였다.

아빠가 잘못했으면 엄마라도 참고 애를 달래고 난처한 장면을 슬기롭게 풀어줘야지 엄마가 덩달아 애하고소리지르면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왜 하필 건드려서는 안될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냐 말야…

속으로 갑자기 안해에 대한 원망이 검은 연기처럼 콱 솟아올랐다. 저가락을내려놓는 내 입에서 자기도 몰래 이런 말이 튀여나갔다.

- 왜 덩달아 야단이야? 왜 하필공부타령이야? 우리가 애를 공부만 하는 애로 키우려고 낳은 거야? 학습성적때문에 애에게 스트레스 주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애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날부터 약속했었잖아? 그렇게 공부로애를 윽박질러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뭐야? 애가 지금 당장 책상 앞에 나앉아서 열심히 공부할 것 같애? 애가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애와 한판 붙으려고 작정하고 있었던 거였어?

아, 내 입은 이미 독극물을 분사하기 시작한 독사의 입이였다. 터지면 막을 수 없는 무너진 방파제였다. 애가 들을가봐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시작한 말이 어느새 내가 듣기에도 놀랄 정도로 노기를 띠고 높아져있었다.

이번엔 안해가 저가락을 탕 하고 내려놓았다.

- 당신이 왜 내게 목소리를 높여?당신이 먼저 애가 하는 말을 중간에서 잘랐잖아? 당신이 애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뜻부터 애에게강요했잖아? 벌둥지는 당신이 쑤셔 터뜨려놓고 왜 잘못은 항상 내 몫이야? 당신은왜 항상 자기만 옳다고 생각해?

아… 이쯤 되면 부부의 싸움이였다. 욱 하고 올리치미는 분노를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때려부시고 싶었다. 그러나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폭력은 절대 불가였다. 그러나 부들부들 온몸이떨리게 치솟는 분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쨕 하고 내 오른쪽 얼굴을 힘주어 때렸다. 그렇게 자학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였다. 쨕 소리가 미쳐가는 신경을더 흥분시켰다. 이번엔 왼손바닥 차례였다. 쨕.

그리고 쨕, 쨕…

죽어라 힘주어 치는데 아프다는 감각은 없었다. 그냥 얼얼하게마비되는 느낌뿐이였다.

-꼴 좋다… 더 쳐. 으으으, 미쳐.

안해도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미쳐가기를기다려온 듯한 사람처럼 서로를 자극주고 있었다.

나는 일어서서 신발을 발에 신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 집안에머무른다면 방안에 들어가있는 애를 끄집어내여 일을 더 크게 벌이고야 말 것 같은 느낌 때문이였다. 나는 나로서도분노하고 있는 나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빨리 이 화약냄새 나는 공기 속에서 벗어나야 했다.

한시간 즈음 후, 나와 안해는 애의 침대 우에 애와 나란히비좁게 붙어 누워있었다. 나는 왼팔에 내 딸 윤초를 안고 있었다. 나도안해도 애에게 량해를 구하고 있었다. 애도 생각보다 선선히 우리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윤초는 말없이 내 팔에 뜨거운 눈물을 쏟고 있었다. 울음소리 참아가면서 아빠의팔을 눈물로 적실 수 밖에 없게 억울하고 외로운 딸애의 립장이 너무 안스러웠다.

이제 인생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기 시작하는 나이, 칠색무지개로아롱지기만 했던 네 동년의 즐겁기만 하던 세상은 갑자기 어데로 가고 세상은 어느 순간 너에게 문득 얼마나 거대하고 황당한 그림자와 무게로 다가왔을것이냐. 그것을 갑자기 감당하기엔 아직 너무나 여리고 약한 너의 작은 심장. 그심장에 따스한 사랑의 입김 대신 차거운 못을 박아준 아빠 엄마가 미안하구나. 그러나 그 못을 뽑고 그 심장안의 피를 더 끓여서 이 세상과 대담히 맞서고 맞짱 뜨고 이겨나가야 하는 것은 네 몫. 아빠 엄마는 그냥옆에서 그걸 안스럽게 지켜보면서 박수를 쳐주고 응원만 보내주는 응원군 역할 밖에 더해줄 게 없구나. 그래, 울거라. 울어서 눈물로라도 갑자기 다가온 네 청춘의 방황과 분노를 조금이라도달래줄 수 있다면 실컷 울거라.

한참 지나자 윤초의 소리없는 흐느낌도 멈춘 것 같았다.

- 다 울었어?  

- 응. 다 울었어. 

- 우니까 좀 시원해?

- 응, 좀 나아졌어.

엄마의 물음에 대답하며 윤초는 나의 목을 더욱 꽉 끌어안아왔다.

- 아까는 아빠 엄마가 정말 잘못했다고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할게. 그리고 아까 윤초가 기르고 싶다던 거 뭐였어? 이젠 알려줄 수 있지?

안해가 다시 애에게 물었다.

- 아니야, 기르지 않기로했어.

- 아빠 엄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잖아? 이제부터는아빠 엄마하고 속생각을 속임없이 공유한다고 방금 약속해놓고서는…

- 아니야, 사주겠다는아빠 엄마의 마음만 있음 됐어. 사지 않을 거야.

선선히 포기하고 나서는 아이가 철들어보여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애가 정말 속으로 상처를 입고 아직도마음을 닫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닫아버린 아이의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있는 대화법을 찾을수 없어 안타까웠다.

이럴 땐 안해의 대화법이 효과를 보았다.

- 음, 강아지가 아니라면고양이는 더욱 아닐거구… 맞지?

- 응, 고양이도 아니야.

- 그럼 혹시 뱀?  언젠가 우리 셋이 모봉산에 갔을 때 파란색 죽엽청 뱀을 보고 네가 이쁘다고잡아다가 집에서 기르고 싶다고 했잖아? 아빠가 그 뱀이 독사라고 질겁해서 소리치면서 너랑 엄마를 끌고 막멀리로 도망친 적이 있잖아?

그 날 덩치 큰 아빠가 남자라는 게 가장 호들갑 떨면서 뱀이 무서워서 멀리 도망치던 기억을 떠올렸는지애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 뱀도 아니야. 뱀은다리도 없고 털도 없잖아? 내가 기르고팠던 건 다리도 여러개고 털도 나있어. 어쩌면아빠가 뱀보다도 더 징그러운 거라고 더 무서워하고 싫다고 할지도 몰라.

순간 내 머리 속에는 며칠 전 보았던 모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상체를 들고 고개 숙여 윤초를 내려다보며 자신 있는 어투로 말했다.

- 아, 알 만해. 아빠 딸 거미가 기르고팠던 거지? 또 아빠가 잘못 추측했다고 화내기 없기.

윤초의 눈이 반짝했다.

- 어, 아빠가 어떻게알아? 거미 맞아.

언제 울었더냐 싶게 윤초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 흐흠. 아빠 딸 마음을알아맞추는 데는 그래도 아빠가 엄마보다 한수 우지.

나는 일부러 득의연한 목소리를 냈다.

- 등이 빨간 장미색이여서 불꽃장미라고 불리는 거미, 원조는칠레산, 성인 거미의 길이는 15센치에서20센치 사이. 령상 20도에서 25도 사이의 온도와 60% 좌우의 습도만 유지시켜주고 그늘진 곳을 만들어주면스스로 알아서 잘 잠자고 뛰여놈. 먹이는 징그러운 배추벌레 혹은 빵벌레. 맞어?

윤초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 맞아. 아빠가 어떻게 그렇게잘 알아? 아빠가 지금 내 머리 속에 들어와 내 메모리 기억장치를 다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윤초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나는 속으로 며칠 전 면접을 위해 만났던 쉬메이라는 녀자애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자는 내게 소설 한편을 주었을 뿐 아니라 오늘 이렇게 또 내 사랑하는 딸과 내 사이에 소통과 화해의 채널 하나를제공해주고 있었다. 

안해도 놀란 눈길을 내게 보내왔다. 감탄이 섞인 목소리로 안해가내게 물었다.

- 희한하네. 당신이어떻게 애 마음을 그렇게 잘 맞추고 그리고 언제 거미에 대해서 그렇게 연구했어?

딸과 안해 앞에 더 으시댈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였다.

- 윤초 말 맞아. 윤초가원하는 게 무엇일가 알게 해달라고 하늘에 대고 간절히 소원하니까 방금 하늘이 아빠더러 잠간 윤초 머리 속에 들어가보게 했어.

- 피, 아빠 뻥. 그런데 진짜 너무 신기하다. 아빠 오늘 정말 갑자기 슈퍼맨 된 게 아니야? 아니야, 갑자기 스파이더맨 된 게 아니야?

- 윤초 눈에 아빠는 항상 윤초네 세대 생각을 읽을 줄 모르는고태라고 생각했댔지? 아빠도 충분히 윤초네 세대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 믿어? 안 믿어?

- 아 믿어.

윤초가 급히 대답해왔다.

이거였다. 내가 노린 건.

- 그럼 이젠 아빠랑 대화가 통하는 거지?

- 응.

윤초는 이제 무조건 예쓰였다.

속으로 너털웃음이 나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딸과의소통이 가능해 진 것이다. 나는 말했다.

- 근데 아빠 딸은 어떻게 펫 스파이더로 불꽃장미에게 관심을가지게 됐지?

- 스파이더맨의 특징이 뭐야? 어데나착 달라붙으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거잖아. 그리고 거미줄 쫙 뻗치면 날아가고픈 어디나 날아가서 착 달라붙을수 있는 것. 그게 우리 중3들의 소망이기도 하잖아? 고중 입학 시험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붙고픈 고중에 턱 하고 붙을 수 있는 신비의 힘, 그걸 애들은 비는 거지. 그래서 요즘 중3학생들에게가장 인기있는 펫이 스파이더야.

아, 그렇구나…

갑자기 중3인 내 딸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입시교육의 압력이 컸으면중3의 롤모델이 스파이더맨이고 중3들은 스파이더맨의 공상적 힘에라도의지해 이 힘든 시간을 이겨내려 할가.

나는 다시 몸을 뉘여 내 딸 윤초를 꼬옥 안아주었다.

- 그래, 펫 스파이더사줄게. 그리고 아빠도 윤초를 지켜주는 스파이더맨이 되여줄게.

그리고 한마디 더 장난기 섞어 이야기 했다.

- 우리 세식구 다 스파이더가 되면 어떨가? 스파이더파파, 스파이더맘, 스파이더걸로 뭉쳐진 스파이더패밀리. 아마이 세상 가장 강력한 무적의 파워풀 패밀리가 될 걸.

- 굿 아이디어.

윤초가 벌떡 일어나앉으며 오른손을 펼쳐들었다. 윤초는 지금아빠 엄마와 하이파이브가 하고픈 거다.  나도벌떡 일어나 앉아 오른손을 내밀어 마주오는 윤초의 손바닥을 향해 힘있게 부딪쳤다. 안해도 어느새 일어나서윤초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바닥을 보내왔다. 안해와나의 하이파이브를 바라보는 윤초의 눈에 어느새 행복의 물결이 찰랑이고 있었다.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러나 금방 다시 서로를 꼭 보듬어안고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가족이라는무적함대.

 

누가 거미를 징그럽다고 했는가.

거미는 사랑스러운 것이다.

출처:<장백산>2017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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