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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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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인저리타임
2014년 08월 31일 21시 49분  조회:888  추천:0  작성자: 비전


단편소설


인 저 리 타 임


장 학 규

 

조씨는 맥이 풀리는듯 낮다란 바위돌우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2월이면 청도는 봄철에 접어든다고 말할수 있다. 겨우내 푸들푸들하던 나무들이 살판 만난듯 새움이 돋아나고 얼뚱말둥하던 민물의 살얼음이 어느새 풀려진다.
그러나 황해가의 봄바람은 여전히 매우 날카롭다. 만주벌판처럼 쌩쌩 소리내며 달려드는건 아니여도 옷섶을 와락 헤치며 몸을 오싹하게 하는 매서움이 있다. 기온은 영상에서 맴돌아도 귀가 얼어가는 느낌은 겨울이나 다를바 없다.
청도의 바다는 하루에 두번 고조와 저조가 반복되는 반일조이다.
철썩 철썩…
만조때에는 노한 파도가 그대로 집채처럼 해안바위를 부신다. 천군만마처럼 우야야 달려와서 방울방울로 산산히 부셔져내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간조에는 물우에 훌쩍 드러난 해변 바위사이를 가로막은 낮다란 방파제를 볼수 있다. 그것은 밀물에 딸려온 고기들이 다시 썰물과 더불어 바다 깊이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아주 원시적이고도 효과적인 장치이다. 염전처럼 바다물이 방파제안에 갇히면서 작은 바다고기들이 그속에 허우적거린다.
그때면 맞춤하게 갈매기떼들이 달려든다. 박력감있고 속도감 넘치는 갈매기들의 날개짓에 사람들은 저절로 매료된다. 싱크를 맞추어 나란히 날면서 손님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노오란 부리로 냉큼 집어삼키는 모습은 전률 그 자체이다. 흰색의 몸뚱이 밑으로 길게 뻗은 황색 다리를 달싹이며 한껏 낮아진 바다물에서 고기를 집어먹는 자태도 그저 귀엽기만 하다.
조씨는 특히 간조때를 좋아한다. 운이 좋으면 돌틈에 기여든 게를 쇠줄로 끄집어내는 재미는 물론 갯바위에 찰싹 들어붙은 굴도 더러 캘수 있다. 이젠 다슬기 정도는 별로 눈에 차지 않는다.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방파제안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엄지굵기만한 우럭을 공짜로 주을때도 있었다. 그 재미에 조씨는 매일 48분 차이로 시간이 뒤로 밀리면서 나타나는 간조때를 용케 맞추어 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바다를 아는 친구 하나가 조씨보다 먼저 나타나서 한바퀴 서리해버리고난 뒤였다. 얼굴이 분칠한것처럼 하얀 사내였는데 평소 조씨가 다니던 루트대로 묘하게 다니면서 싹쓸이하고있었다. 훤칠한 키에 멋이 철철 흘러넘치는 회색의 윈드 재킷 차림새였다. 얼핏 보기에 이 동네를 그저 스쳐지나가는 행객이 분명했지만 방정 맞게도 밥알 한톨 흘리지 않을 정도로 샅샅히 훑고있었다.
“씨발, 재수에 옴 붙었군. 어디서 굴러온 넘이지?”
조씨는 흰얼굴 뒤를 잰걸음으로 쫓아갔지만 그 긴다리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체념한듯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술덤벙 물덤벙이 성격인 조씨는 입안소리도 남들 듣기에는 마냥 요란하다. 아닌게 아니라 앞서가던 흰얼굴이 주춤 멈춰서면서 획 돌아섰다.
“이제 그 말 나더러 한겁니까?”
정확히 조선말이 되돌아왔다. 하느님 맙소서. 조씨는 가끔 친구들로부터 언젠가는 주둥이가 찰떡이 되어 돌아올수 있다는 경고를 듣는 사람이다.
“아, 그게 뭐…말하자면…”
조씨가 미역 감다 물 먹은 넘처럼 꺽꺽거리는데 흰얼굴은 냉소를 머금고 다시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갔다. 무표정한 얼굴표정도 그렇고 끼있는 걸음걸이도 그렇고 쉽사리 건드리기 어려운 사람이 분명했다. 조씨는 흰얼굴의 우덕진 뒤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돌아섰다. 아무래도 오늘은 가게에 점잖게 붙어있어야할가부다.
조씨네가 저 멀리로 부두가 비스듬히 바라보이는 이곳에 국밥집을 오픈한지도 벌써 서너해가 되여온다. 처음에는 항구를 오가는 동포들을 념두에 두고 차렸지만 요즘에는 색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 팔도방언으로 와글와글 끓던 그 많은 동포들이 어느덧 과거로 굳어져버렸고 대신 클릭되여진건 쏼라쏼라 팅부둥세상이였다. 주변에 살면서 어느새 국밥에 길들여진 혀꼬부라진 당지인들이 단골로 자리매김한데다 오가는 관광객들이 다른 동네 음식을 맛본다며 찾아드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게에는 어느덧 손님 서넛이 들어있었다. 조씨가 그나마 바다생물을 반봉다리라도 들고 들어오는 날이면 마누라는 공짜 해물국밥을 만들수 있어서인지 기뻐 날뛰기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도로 잔소리는 없이 대수 넘어가주었다. 그러나 빈손인 경우에는 때시걱 준비로 굽은 허리를 펴면서 말없이 쏘아보기가 일쑤였다. 오늘도 례외가 아니였다. 쌀쌀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독기 어린 마누라의 눈길을 직시할수 없어서 조씨는 고개를 숙인채 주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바닥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느닷없이 들려오는 조선말에 조씨는 본능적으로 홀안을 내다보았다. 가물에 콩나듯 드물게 들려오는 조선말은 조씨에게 언제나와 같이 위안이였고 또한 아픔이였다. 뜻밖에도 소리의 임자는 아까 바다에서 조우했던 흰얼굴이였다. 첫인상처럼 참말로 남다른 사람이였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흰얼굴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손님들이 맥주로 목을 추기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이였다. 그러나 맞춤맞춤하게 먹고 얼른얼른 나가야 할 국밥집에 와서 술 한병도 아니고 “한잔”을 달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흰얼굴이 유일했다.
어느새 흰얼굴이 구들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있었다. 번연히 폼잡는듯한 인상을 주는 회색의 윈드 재킷은 벌써 벗겨져 무릎옆으로 구겨져있었다. 사실 흰얼굴은 신사타입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그런 부류였다. 몰골은 허여멀쑥했지만 자세나 언동이나 옷차림이나 서로 매치가 잘되지 않는것이 첫눈에도 알렸다. 소고기국밥을 받아놓은 자리 바로 옆에 아까 바다에서 주어담은 해물 주머니를 놓아두고 있었다.
“쯔쯔쯔…”
마누라가 혀를 끌끌 찼다. 영문 모르는 조씨가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니 마누라는 귀속말로 소곤거려왔다.
“자기가 들고온 굴에다 김치를 넣고 해물국밥을 말아달라는걸 거절했어요.”
“주인장, 술 한잔 주시오.”
흰얼굴이 많이 신경질이 난다는듯 다시 한번 갈린 목소리로 재촉했다.
“예에, 인차 나갑니다.”
자그마한 가게라 홀서빙 도우미가 달랑 미스 왕 한사람이다. 그래도 한때 그럭저럭 괜찮게 나갈때는 일군도 여럿 썼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쁠때는 조씨도 웨이터 역할을 놀아야 한다. 조씨는 마누라가 말리는것도 뿌리치고 새 술병을 따서 두냥짜리 잔에다 술을 가득 부어 들고나갔다.
홀안은 봉당과 구들로 양분되여있다. 올방자 틀고는 마냥 불편할 한족들을 위해 한쪽으로 맨 봉당에 테이블 세개를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구들우에도 맞춤하게 상 세개를 일자로 놓았다.
“아, 우리 구면입니다그려.”
흰얼굴은 의외라는듯 기쁜 표정을 지었다. 업이 업이니만큼 조씨도 몹시 반가운듯 악수를 청하고나서 모든 손님들에게 그랬던것처럼 밑반찬에 서비스로 삶은 땅콩 한접시를 얹어서 내놓았다. 흰얼굴은 많이 감동을 먹었는지 연신 감사를 치켜올렸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같은 민족 만나니 제일 반갑네요.”
조씨는 그런 겉치례 인사에 인젠 많이 지쳐있는 상황이였다.
“청도 처음 오시는 길이네요.”
“아니요. 3년전에 청도에 와서 한국회사에 취직했더랬습니다. 그런데 겨우 밥먹고 살 정도밖에 안되더라구요. 그 정도 살자고 고향 떠나온건 아니잖아요. 몇번 이곳 저곳 옮겨다니다가 어떻게 운으로 고기배를 타게 되였는데 1년 좀 넘어 일해보니 세상에 사람새끼가 제일 못해먹을게 배넘이라 이번에 접안하는 기회에 때려치우고 귀국하는 길입니다.”
조씨는 아까 바다가에서 흰얼굴이 아주 익숙하게 해물서리를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렴 그렇겠지. 그래도 대수라도 배 타본 사람이 뭔가 알긴 아는 법이였다. 
“그럼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길이네요.”
“고향 가봤자 마을에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나 찾아볼가 생각중입니다.”
조씨가 흰얼굴과 몇마디 너스레를 떠는 사이에 마누라의 부름소리가 두번이나 날아왔다. 조씨는 황급히 주방으로 물러나와 마누라가 넘겨주는 음식그릇을 다른 손님들의 상에 배달해주느라고 어느덧 흰얼굴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항상 그랬다. 특별히 단골손님이 아니고 일반 손님은 거쳐가는 즉시 잊혀지는 법이다.
흰얼굴이 언제 자리를 떴는지 조씨는 몰랐다. 손님들을 다 보내고 청소하면서 보니 흰얼굴이 앉았던 상에 해물꾸레미가 그대로 놓여있는것이 보였다. 마누라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모르는 일이란다. 대신 계산을 맞추면서 카운터에 놓인 가게 명함장을 집어 주머니에 넣더라고 알려주었다.
“나중 혹 문의할게 있으면 카카오톡 넣을게요.”
그렇지만 카카오톡 때릴거란 흰얼굴은 그뒤로 감감무소식이였다. 하기사 모기 배꼽마저 빼먹을 요즘 세상에 누구를 믿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였다.
그뒤로도 조씨의 채바퀴 돌리는 일상은 여전히 반복되였다. 매일 잊지 않고 간조때를 맞추어 바다가로 나가는것도 멈추지를 않았다. 하루에 밀물이 두번 들어오고 썰물이 두번 나가는 바다처럼 국밥집도 매일 두번 손님이 들어왔다 나가는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날은 점심시간이였다. 음력 보름이 가까와오는터라 밀물이 해변가를 꽉 채우고있었다. 일찍 들이닥친 카페리 손님들을 한바탕 치르고난 가게방은 폭격 맞은것처럼 지저분했다.  창밖 풍경도 별로 신통할게 없었다. 행인이 드물게 오가는 한산한 거리에는 때아니게 늦여름 바람이 훑어지나면서 휴지쪼각들을 날리고있었다. 항구쪽 검푸른 바다우에는 갈매기떼들이 날개를 펴고 우쭐 춤을 추고있는것이 보였다. 꽈아악 꽈아악 하는 울부짖음 소리가 방불히 들려오는듯 싶었다. 갈매기와 대칭되듯 알록달록한 여러가지 연들이 하늘이 모자라게 높이 높이 떠올라있었다. 이곳 시민들에게는 둘도 없는 취미 놀음이 연띄우기였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불현듯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잠시 손님이 들지 않을것이라 믿고 주방에서 담배쉼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던 조씨는 흠칫 놀랐다. 말소리가 무척 귀에 익어 본능적으로 구들쪽을 힐끔 내다보았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국밥집에 와서 술 한병도 아니고 “한잔”을 달라는 사람이 어디 또 있겠는가?!
조씨는 후다닥 뛰여일어났다. 친지도 아니고 연고가 깊은 사람도 아니였지만 어차피 마음속에 계속 응어리로 남아있는 사람이였다. 아닌게 아니라 흰얼굴이 구들우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사이 패션이 바뀌여져 있었다. 회색의 윈드 재킷을 입어야 할 캐릭터가 말도 안되게 몸에 꽉 낀 런닝셔츠우에 헐렁한 드레스 셔츠를 입고있었다. 물론 양복은 어느새 벗겨져 무릎옆으로 구겨져있었다.
조씨는 선반우에서 술단지를 내렸다. 오미자, 구기자에 양삼따위를 넣어 담근 근들이술이다. 그건 솔직히 흰얼굴때문에 만들어진것이다. 전번에 흰얼굴이 다녀간후로 조씨는 처음으로 가게 운영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았다. 사실 조씨도 다른 식당에 홀로 갔다가 작은병들이 술은 입맛에 안맞고 입맛 맞는 큰 술 한병은 부담이 되여 맨밥을 먹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손님의 수요가 시장이 아닌가. 조씨는 시골에서 하던대로 약주를 담가보았다. 손님들의 반응이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알고보니 순 국밥집 손님중에도 다모토리 술군이 더러 끼여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반년 좀 넘었는데 웬 호들갑입니까.”
흰얼굴은 조씨가 겉치례 인사를 하는것도 모른채 급급히 해명했다. 정확히 시간까지 기억하는걸 보니 흰얼굴도 조씨네 국밥집에 깊은 인상이 남았던 모양이였다. 얼굴은 때가 아니라 먼지로 얼룩덜룩해져있었다. 모름지기 꽤나 지체있는 모습이였다.
조씨는 흰얼굴이 전에 두고간 해물꾸레미도 있고 하여 마누라가 시장에 나가고 없는 기회에 해물국밥을 진하게 끓여서 내왔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말도 마시우.”
흰얼굴은 괜스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척 억울한듯 이마살을 잔뜩 찡그리면서 하많은 사연을 호소하려는듯 입을 실룩거렸다.
“배넘 노릇 며칠 해본덕에 회 뜰줄 좀 알아서 회집 차려봤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아 밑천만 날리고 걷었습니다.”
“겨우 서너달만에 맥을 버린겁니까?”
“견적을 보면 딱 답이 나오잖아요. 그리고 바로 한국갈 기회가 나졌네요.”
조씨가 뭐라고 더 말하려는데 마침 밖에 나갔던 마누라가 돌아왔다. 보스에 캐셔이기도 한 마누라를 조씨는 많이 어려워한다. 어려워하는만큼 마누라가 지키는 자리에서는 조씨가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지 않는것이 거의 법처럼 되여있다.
흰얼굴이 언제 나갔는지 조씨는 그냥 모른다. 마누라 말로는 흰얼굴이 나갈때 먼저번처럼 가게 명함장을 챙기고 나갔단다. 그러나 그 뒤로 흰얼굴은 여전히 전화를 해오지 않았다.
(아마 정말 한국에 나갔나보다.)
조씨네가 흰얼굴의 생김새마저 다 잊혀갈 무렵 별로 시원치않은 한해도 무난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여파는 오가는 행객들의 모습에서도 인차 엿볼수 있었다. 전에는 큰짐 작은 짐 챙겨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따리 따이궁은 물론 청도에 와서 한판 사업을 벌려보려는 웅심을 가지고 전 재산을 싸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부두에 나가면 사람을 마중하느라고 여기저기서 훈민정음 피켓을 내들고 있었다. 국내선이던 해외선이던 반갑다고 부둥켜 안고 란리도 아니였다. 팔도방언이 범벅이 되여 항구의 하늘을 시끌법적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배웅하러 나온 사람이 더 많았다. 보따리를 꿍져지고 떠나는 사람들의 뒤모습은 마냥 서글프다. 어린 자식의 손목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겨우 발걸음을 옮기는가 하면 누군가를 의식하며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피는 불안한 눈빛도 있었다.
그런 어수선한 항구 국제여객터미널로 조씨는 들어섰다. 한국에서 10여년 불법체류하다가 자진신고하고 귀국하는 동서를 마중하기 위해서이다.
이곳에 올때마다 항상 느끼는것이지만 선착장도 세관이 될수 있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고작 난간 둬개에 검사대 한번으로 국경 역할을 한다는게 아이러니했다. 조씨의 인생경험에 국경이란것은 강으로 그어지거나 아니면 산에 철조망을 두르고 만들어지는것이다. 국방군의 순라가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바다의 국경이 너무 생소해서 올때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바다에 금을 그을수도 없고 하늘우에 구름이 그대로 길다랗게 거쳐있고 바다속의 물고기가 왔다갔다 하고 바다새들이 철따라 오가고 하는데 령물이라는 사람들은 오히려 갇혀서 검문검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심하기도 했다. 아무튼 조씨로서는 인간세상이 참 요지경이라는 느낌뿐이다.
오늘도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다. 아직 추위가 완전히 가셔지지도 않았는데 하늘에서는 가는 비줄기를 뿌리고있었다. 방향감이 없이 좌충우돌하는 바다바람도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는 밉상이다. 항구를 오가는 선박들의 고동소리도 마냥 서글프고 애처롭다.
줄지어 나오는 손님들속에서 동서를 발견한 조씨가 남달리 톤이 높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것도 모자라 대구 손을 흔드니 멀리서도 동서가 전형적인 시누런 이발을 환하게 드러내고 시무룩이 웃는것이 보였다. 조씨가 입국장을 나선 동서의 손에서 트렁크를 받아드는데 불시에 누군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쳐왔다.
“여기서도 만납니다.”
고개를 들고보니 흰얼굴이였다.
기억이란게 참 희한한 물건이였다. 어떤 사람은 매일 보는거 같은데 도무지 기억에 남지 않지만 흰얼굴은 거퍼 몇번 만나지 못했어도 보자마자 기억에 퍼렇게 살아오는것이 아닌가. 그래도 남의 국수사발에 괜히 초치는 흰얼굴이 별로 반갑진 않았다.
“글쎄 말이유.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가는게 아니라 오는겁니다. 한국서.”
흰얼굴의 패션이 그사이 다시 바뀐것을 조씨는 놀랍게 발견했다. 물이 간 검정색 점퍼에 짙은 토색의 구식 캐주얼화를 받쳐 신고있었다.
“접때 간다더니 기어코 갔구마이.”
조씨는 더이상 흰얼굴과 말섞기 싫어 동서의 짐을 끌고 씨엉씨엉 앞서 걸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국밥집에 이르러 뒤돌아보니 어디로 갔을법한 흰얼굴이 멀쩡하게 뒤따라와있었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흰얼굴은 구들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 소리쳤다. 천천히 점퍼를 벗더니 무릎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조씨는 흰얼굴의 주문대로 순대국밥에 약술 한잔을 가득 부어 가져다주면서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다.
“간지 얼마 안되지 않습니까?”
“반년 안되였을걸요.”
흰얼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사이 얼굴이 많이 검실해졌고 살도 크게 빠져있었다.
“한국에게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거의 거지취급이지요.”
“부자 대접 받자고 간건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온갖 더러운 일, 힘든 일, 어려운 일을 다 하면서 중국에서도 받지 않는 괄시를 받는건 정말 참을수 없습니다.”
동서가 오래간만에 온데다가 또 다른 손님도 돌봐야겠기에 조씨는 잘 드시란 인사를 마치고 물러났다. 그리고 동서와 마주앉아 세상살이를 주고받느라고 흰얼굴이 언제 갔는지 미처 살필 사이가 없었다. 나중 손님들이 모두 나간다음 문뜩 생각나 마누라에게 물었더니 흰얼굴이 계산하면서 카운터에서 가게 명함장을 한장 짚어가더라는것이였다. 그렇지만 역시 한번 간 흰얼굴은 전화를 다시 걸어오는 법이 없었다.
동서는 달포정도 머물었다. 고향에 가보았자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중국에 남은 외동딸은 초중도 졸업하지 못하고 북경에 가서 몇년동안 뒹굴더니 어떻게 여행사 취직이 되여 지금은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동서와 함께 나갔던 조씨의 처제는 여직 한국에 숨어서 살고있다. 그대로 남아서 돈을 벌다가 동서가 중국에서 자리를 잡으면 때맞추어 돌아와 살면서 기한이 차기를 기다려 다시 한국으로 나갈 생각이였다.
동서는 우선 딸애가 있는 북경에 가겠다고 했다. 가능하다면 2년 후 다시 한국으로 나갈때는 딸애를 데리고 갈 타산이였다. 합법적인 신분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느꼈다면서 동서는 한국에서 겪은 일화들을 매일매일 들려주었다. 원체 얼음에 박밀듯 달변인 동서는 한국과 한국인의 나쁜점만 부각해 말했다. 그러면서도 또 나간다고 한다. 그것도 딸애까지 끌고 가겠다고 한다. 조씨는 아무래도 리해되지 않았다.
동서가 북경으로 떠나가는 날이다. 오후 기차라 동서는 집에서 늦잠을 자고 조씨는 조씨대로 가게에 나와 점심 준비로 바삐 보내고있었다.
어쩌면 하늘이 구멍이 뚫린 모양으로 기분 나쁘게 비방울을 날리고있었다. 시커먼 구름이 낮다랗게 떠서 뭉게뭉게 떠도는가 하면 바다가답게 맵짠 바람이 한껏 불어치고있었다. 일년치고 바람 잘 날이 며칠 없었다. 그 덕분에 바다가에는 연들이 마냥 떠서 하늘을 장식하고있다. 군용외투로 온몸을 꽁꽁 감싼 로인들이 줄을 길게 늘이고 당겼다 풀었다 하는 품이 제법 전문가다운 멋이 있었다. 긴줄배기 룡연으로부터 독수리연은 물론 작은 잠자리연까지 연놀이군들의 손끝에서 한껏 재주를 부리고있었다. 멀리 질주하는듯 하더니 금세 춤추는 자세로 멈추는가 하면 낮게 맴돌더니 불시에 소소리 높이 올리솟구치기도 했다. 모든것이 연놀이군들의 손놀림에 달려있었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조씨는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 흰얼굴의 석쉼한 목소리였지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목을 내밀고 홀을 내다보았다. 다른 누가 아닌 흰얼굴이 버젓이 구들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간 날씨가 조금 풀려서인지 흰얼굴은 갈색의 엷은 양털셔츠를 차려입고있었다. 겉옷은 검은색의 양복인듯 벌써 무릎옆으로 구겨져있었다. 조씨는 흰얼굴에게 이 차림새가 가장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고향에요.”
흰얼굴은 소태를 씹은듯 이마살을 잔뜩 찡그렸다.
“정말 뭔가 해볼려고 했었는데 도대체가 할 일이 없네요. 중국은 무슨 업이나 다 꽉 들어찬 느낌입니다그려.”
”그럼 일단 출근하면서 기회를 찾아볼거지요?”
“아니요. 청진기 갖다대기전에 진단이 먼저 나옵디다.”
조씨는 입을 가시면서 더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흰얼굴이 아무 국밥이나 알아서 달라고 하여 별 생각없이 콩나물국밥을 내놓았다. 끓이기 쉬운 원인도 있었지만 갖다놓고보니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고향 초가집 한구석에 벼짚으로 엮은 콩나물시루가 우렷이 떠올랐다. 가둑나무로 기둥을 해서 받치고 밑에 큰소래를 놓고 물받이로 쓰던 그 콩나물시루는 한가정의 버팀목이기도 했었다.
떠나는 동서에게 점심을 대접하려고 집으로 잠간 갔다오는 사이에 흰얼굴은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마누라에게 물어보니 이번에는 흰얼굴이 가게 명함장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쿠 얼마나 말을 조리있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깜짝 속히겠더라구요.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사람이데요.”
마누라는 인민재판을 마치듯 한마디 툭 던지고 다시 가게 일에 분주했다. 동서와 조촐한 밥상을 마주하고 술 한잔 나누면서 조씨는 할 말을 잃은듯 했다. 머리속에는 엉뚱하게 별로 엮인것도 없는 흰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조씨가 다시 바다가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간 동서가 다녀가면서 소홀히 했던 해물 서리를 더 지굿게 해나갔다.
솔직히 조씨는 바다를 엄청 좋아한다. 아마도 조씨의 심저에는 바다의 유전자가 살아숨쉬는게 틀림없다. 확실하게 한방 날리는 바다바람도 마음에 들었고 바다하늘을 나는 갈매기와 연도 짜릿한 스릴을 준다. 특히 썰물로 인해 해면이 가장 낮아지는 간조때면 바위 틈서리에 기여든 게나 돌바위에 그대로 붙은 굴을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누라의 지청구도 여전하다. 그나마 해물꾸러미를 대강 들고오는 날이면 공짜 해물국밥을 할수 있어서인지 별 말이 없다. 그러나 빈손인 경우에는 일에 지친 허리를 구부린채 독기있게 쏘아보군 했다. 조씨는 이제는 그런데 습관되여있다. 대신 신경이 도사려지는 일이 한가지 추가로 생겼다. 가게 일을 하다가도 시도때도 없이 홀안을 내다보는것이였다. 어쩌면 갑지기 구들에서 석쉼한 목소리가 울려올것 같아서이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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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바이러스 2020-04-25 0 464
30 2020-04-25 0 541
29 막차 2019-11-29 0 505
28 개미 투 2018-09-10 0 831
27 왕로얼 별전 2017-06-07 3 787
26 향이의 맞선 2017-05-23 1 762
25 개미 2017-01-13 0 774
24 26년 2016-10-21 1 844
23 빈하로 레전드 2016-04-08 1 862
22 두 녀인의 포옹 2015-12-23 1 1002
21 낚시 2015-06-25 1 1319
20 에볼라 에볼라 2015-04-22 1 939
19 노크하는 탈피 2015-01-25 1 1209
18 하늘엔 울바자가 없다 2014-08-31 0 1222
17 필터링 2014-08-31 0 987
16 청도로그인 2014-08-31 0 1234
15 조깅 2014-08-31 0 1004
14 일탈 2014-08-31 0 1144
13 인저리타임 2014-08-31 0 888
12 하숙집 2014-08-31 0 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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