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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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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필터링
2014년 08월 31일 21시 54분  조회:987  추천:0  작성자: 비전


단편소설

필터링

장학규


환은 자기가 왜서 이름마저 알바 없는 이곳으로 허둥지둥 찾아왔는지 모른다.
량쪽으로 클래식한 건물들이 우중충 들어섰고 그 가운데로 넓지도 좁지도 않은 거리가 오불꼬불 뻗어있다. 청기와 또는 회색의 기와장들이 지붕우에 스산하게 얹어져있고 칠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붉은색 기둥 사이로 투박한 널판자로 된 대문들이 줄줄히 열려져있다. 그 사이로 연기와 음식냄새와 서로 다른 물건들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들이 범벅이 되여 한꺼번에 터져나와 거리를 꽉 메우고있다. 게다가 사람들이 왁작지껄 고아대는 소리도 귀가 멍멍해질 정도였다. 거리를 거닐거나 가게앞 쪽걸상에 걸터앉았거나 집안에서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옷차림새 역시 알록달록 가관이였고 몽치같은 팔뚝을 드러냈거나 아예 여러가지 동물을 문신한 알몸뚱이를 그대로 내놓은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도 처음에 환이는 배가 좀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프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뭔가 아무거라도 대충 요기거리가 없을가 그렇게 방안을 구석구석 뒤지다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결김에 거리로 향한 창문을 열었다. 순간 뭔가 대뇌를 왕 하고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였다. 그것은 형체가 전혀 없는 소리라는 물건이였다. 최저 80데시벨이상이였다. 그 현장에 직접 몸 담으면 바로 100데시벨로 업그레이드될게 틀림없었다.
환이는 배 고픈건 잘 참아도 궁금한건 죽어도 참지 못한다. 하물며 정말로 배가 고픈데야 어쩐단말인가. 길 떠난 나그네에게는 배가 시간이고 다리가 방향이다.
환이는 그러나 급할게 없다는듯 늘쩍늘쩍 거리에 들어선다. 언제나 환이는 자신의 일을 남의 일처럼 느껴지기기 십상이다. 진실한 자기가 구경 어떤 모습인지 그 자신도 잘 모른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오가고 여기저기서 사구려소리가 요란하다. 환이가 혹시나 제법 먹을만한 음식이 없을가고 부지런히 난점들을 살피는 와중에 마주 다가오는 웬 아가씨와 가며오며 어깨를 부딪쳤다.
“땡~”
환이의 손에서 동전 하나가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면서 저만치로 딩굴어갔다. 그것은 1원짜리 동전이였다.
환이의 왼손에는 언제나 1원짜리 동전이 쥐여져있었다. 그 동전은 요술장이인듯 가끔은 주먹속에 조용히 들어있다가 슬그머니 엄지검지중지 가운데 끼워지기도 하고 가끔은 손등을 타고 오르기도 한다. 그 동전은 환이의 호신부나 다름 없는 물건이였다. 아니, 환이의 분신처럼 10년은 그의 몸에 붙어서 함께 해온 물건이였다.
흙색이 된 환이는 세상 한번 볼만하다는듯 꼬물도 사죄할 의향이 없이 계속 두리번거리며 나아가는 아가씨를 쏘아볼 겨를도 없이 급히 동전을 뒤쫓아갔다. 다행히 동전은 행인의 발길에 부딪쳐 방향을 바꾸면서 어느 탁자밑으로 기여들어가 주저앉았다. 환이는 한달음에 달려가 탁자밑으로 무작정 기여들어갔다. 그때 누군가 발로 동전을 지려밟았다.
“이봐 친구, 그게 몇푼이라고 야단인가?”
목소리가 퉁방울 굴리는 소리였다.
머리를 들어보니 온 얼굴에 구레나릇인 험상궂은 사나이가 한주먹도 안된다는듯 환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시 탁자밑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다리 네쌍이 더하기 모양으로 마주 앉아있었다. 마작판이였다.
구레나릇이 나무토막같은 다리를 치우고 동전을 집어들어 환이앞에 내밀었다.
“마침 잘 됐어. 나 잠간 소피 보고 올테니까 나대신 두판만 놀아줘. 딱 두판.”
환이가 보배인양 동전을 공손히 받아들기 바쁘게 구레나릇은 꺽쇠같이 우직한 손으로 환이의 팔목을 잡아 일으켜 의자에 눌러앉혔다.
“난 잘 놀줄 모르는데…”
“멱은 볼줄 안다는 말이지? 그치?”
“거야 뭐…”
상대 세사람은 모두 예순이 넘어보이는 사람들이였다. 그중 두사람은 령감쟁이였는데 둘 다 겨릅대처럼 강말라있었다. 나머지 한사람은 로친네였는데 두 령감과 정반대로 부쩍 몸이 퍼져있었다. 메주처럼 커다란 젖두덩이 웃옷을 고무풍선처럼 불려놓고있었다. 로친은 입술을 벌겋게 칠하고 거기에 담배를 끼워물고있었다.
구레나릇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요청한 두판보다 한판 더 놀았다. 정확히 한고패가 돌아오는셈이다. 마작은 동네마다 노는 방법이 달라 시작하기전에 관련 규정과 방법들을 묻느라고 시간을 어지간히 랑비해서 그렇지 그렇잖으면 아마 두판은 더 놀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세판에서 환이가 한판 “후”해서 구레나릇이 내놓고 간 돈이 오히려 불어나서 다행이였다.
환이는 주사위를 손에 들고 아까 구레나릇이 사라지던 쪽으로 바라보았다. 저만치에서 구레나릇이 돌아오다가 어떤 안경쟁이와 악수를 나누며 지껄이는 모습이 보였다. 허리를 굽히고 얼굴에 비굴한 웃음을 떠올리고있는것을 보니 상대가 꽤나 세력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인거 같았다. 그런 대면이라면 오래가지 않는다는것을 환이는 잘 알고있었다. 패쪽을 쌓는 시간이면 맞춤하게 돌아오겠지싶어 느끗하게 담배 한가치 피워무는데 마주켠에 앉은 로친네가 꽥 소리질렀다.
“이 자식아, 세월 다 간다. 얼른 안 던져?”
환이는 자기가 왜서 이런 재수없는 자리에 캐스팅되어 이 수모를 당하는지 그저 억울하기만 했다.
주사위를 치고 패쪽을 다 집어올때까지도 구레나릇은 오지 않았다. 다시 눈길을 피뜩 들어 건너다보니 빌어먹을 구레나릇이 그사이 안경쟁이를 놓아보내고 이번에는 거리에서 군밤을 파는 웬 아낙네의 어깨를 끌어안고  히히닥거리고있었다.
(배포 하나는 두둑한 넘이네.)
이번에도 환이가 용케 후했다. 그전부터 마주켠 로친네의 신경질이 슬슬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먼저는 웃집 령감이 동작이 꿈뜨다고 “벌써 손가락에 중풍 온겨?” 하고 야단하더니 다음엔 아래집 령감이 패 잘못 던져서 졌다면서 “머리가 비면 팔다리가 고생해.”하고 고아댔다. 짓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것을 잘 아는 환이는 히죽히 웃으면서 “지랄 고만하셔.”하고 시까슬렀다. 길길히 뛸것만 같은 로친네가 꼬리를 내린 대신 어느새 돌아온지도 모르는 구레나릇이 환이의 뒤통수를 손으로 가볍게 쳤다.
“과부집 숫캐처럼 함부로 나대면 죽는수가 있어.”
몽타주 하나는 기똥차게 잘 나올거 같은 구레나릇이 자리를 내주려고 일어나는 환이를 그대로 다시 눌러 주저앉혔다.
“그만 놀고 밥 먹으러나 갑시다. 내 한턱 낼게요. 친구도 같이 가.”
“갑세.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는데 쉽지 않구려.”
머뭇거리며 일어서는 령감들 뒤를 따라 엉거주춤 일어선 로친네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문뜩 환이를 건너다보며 의미있게 눈을 끔벅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기기 다행인줄 알어. 저 친구 숨쉬는거 내놓고 다 거짓말인데 오늘은 간만에 부처님이 되실 모양이야.”
환이는 그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삥 뜯길 주머니도 없었다. 갈비 뜯는 날이 명절이라고 아무렴 먹을것만 있으면 좋았다. 한동안 잠자던 배가 꼬르륵 소리를 다시 냈다.
청룡의 해를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텅 비여버린 몽뚱이로 맞이할수는 없다. 어차피 사나이로 태여난바에는 한번 달리는 말처럼 인생을 채찍질하면서 살아야 하는게 아닌가. 그러자면 에너지 보충은 필수적이다.
거리 가운데쯤에 위치한 자그마하고 지저분한 란저우손국수집에서 소고기국수 한사발씩 앞에 놓고 맥주를 청했다. 두 령감쟁이는 시다달다 말없이 맥주에다 소고기국수를 부지런히 먹었다. 대신 뚱보 로친은 마냥 측은한 눈빛으로 환이를 힐끔힐끔 건너다보군 했다. 구레나릇은 술보다는 말에 더 재미가 있는 모양이였다. 그가 침방울 튕기는 동안 두 령감은 먹던걸 깨끗이 비우고 고맙다고 허리를 둬번 굽석이고는 자리를 떠버렸고 나중 남은 로친은 그래도 말 한마디 남겨놓고 나갔다.
“하여간 뻥치는데는 챔피언감이야. 고만 지껄이구 저 친구 보내줘.”
그다음 싸구려 맥주 한병을 얻어먹고 기분이 좋아진 환이는 웬 영문인지도 모르고 구레나릇에게 이끌려 한 건물앞에 이르렀다. 클래식한 건물더미속에서 쉽지 않게 야한 현대식 건물이였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겁나게 위압감을 주었고 알록달록 네온등 빛이 집안에서부터 눈시리게 뿜겨져나왔다. 나이트클럽이였다.
출입문에서부터 긴 복도까지 량옆으로 아가씨들이 쭉 늘어서있었다. 아직은 약간 이른 시간인데도 속옷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밤유니폼을 입은 아가씨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희희닥거리고있었다. 빵 냄새가 유달리 심한 백인아가씨가 여럿이 보였고 석탄에 그을린듯한 흑인아가씨 하나도 유표하게 그속에 끼여있었다. 크고 작고 실하고 야위고 제나름대로 천태만상이였지만 굽 높은 하이힐을 신은것만은 한결같았다.
(아차 잘못 걸렸구나!)
환이는 미처 속이 철렁할 사이도 없이 구레나릇에게 끌려들어가 구석쪽으로 개굴처럼 펑 뚫린 룸에 그대로 구겨박혀졌다. 이윽고 맥주가 박스채로 들어오고 곧이어 마담의 손길을 따라 다 벗어버린듯한 아가씨들이 한줄로 쭉 들어섰다. 노래방이 레스토랑이 되여진건 벌써 수년전부터 많이 보아온터였지만 나이트클럽까지 노래방술집 짬봉이 되여진건 처음 이였다. 모름지기 스릴이 발동했다.
환이는 흥분이 지나친듯 겉옷을 훌훌 벗어던졌다.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환이는 자주 한다. 자조적이고 자기기편적이기는 하나 그렇게 아큐처럼 생각하면 마음 하나는 참 편했다. 만사를 포기한듯한 환이의 자충수에 구레나릇은 약간은 의아하다는 눈치였다. 그랬건말건 환이는 그중 빵빵해보이는 아가씨 하나를 지목하여 옆에 앉혔다. 구레나릇은 생김새처럼 취향이 유달라서 온몸이 숯같은 흑인계집애를 손저어 불러놓고 그 자리에서 냉큼 통통하게 튀여나온 젖통을 한웅큼 거머쥐고 주물럭거렸다. 
술이 둬순배 돌았을무렵 환이는 파트너 아가씨를 끌고 사람들로 붐비는 홀속에 들어가 한바탕 흔들었다. 온몸에 땀이 배여나고 기분이 붕붕 떠올랐다. 파트너 아가씨의 어깨를 부여안고 룸에 다시 돌아와 맥주컵을 거머쥐니 아까부터 환이를 살피듯 주시하던 구레나릇의 경계하는 눈빛이 서서히 풀려가고있었다. 구레나릇은 참 오래동안 참아와 정말 더이상 참기 어렵다는듯 흑인 파트너의 허리를 무작정 끌어안고 춤과 노래로 아우성판인 홀안으로 휘청휘청 나갔다. 환이는 느끗하게 파트너에게 맥주 두고뿌를 연거퍼 권했다. 마침내 파트너가 뇨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환이는 그 기회를 놓칠세라 한옆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웃옷을 잽싸게 주어들고 부랴부랴 나이트클럽을 나와버렸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는 한결 흥성했다. 그러나 환이는 그런걸 구경할 흥심이 가뭇 사라졌다. 구레나릇이 당장 쫓아나와 뒤덜미를 거머쥘것만 같았다. 환이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만사불구하고 앞으로 닫기 시작했다. 
필터링같은 가로길을 두개 뛰여넘었지만 환이는 여전히 가슴이 세차게 뛰였다. 어떻게 튀여나왔던지 이제는 기억에 가물가물했다. 똑마치 악몽같은 느낌이였다. 악몽도 꿈이라면 꿈이다. 꿈은 자라는 속성이 있다. 악몽이 자란다면,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유산이 되여 평생을 두고 묵직하게 따라다닌다면 진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일것 같았다. 환이는 그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될수만 있다면 그 악몽을 기억에서 삭제하고싶었다.
환이는 본능적으로 뒤를 다시 돌아보았다. 분주히 왔다갔다하는 사람들틈에 구레나릇외에도 자신을 노리는 다른 사람들이 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들었다. 피해망상증이 아니라 자기처럼 의지가 약한 사람은 쉽게 남들의 먹잇감이 될수도 있다는 도리를 문뜩 발견한것이다.
환이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길옆 가게안으로 쑥 들어갔다. 잠간 숨이라도 돌리고싶었다. 이제는 구레나릇이 뒤쫓아오지 못할것이라고 짐작했다.
가게는 밖에서 보기보다 훨씬 넓었다. 악세사리를 진렬한 매장이였는데 질서정연한 실내처럼 들락거리는 사람도 없어 한결 조용했다. 분위기탓인지 환청이 가뭇없이 걷어지고 마음이 저절로 평온해왔다.
아마도 환이의 할딱이는 숨소리때문인지 아니면 환이가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안쪽 문이 말없이 열리면서 늙수그레한 한 로인이 걸어나왔다.
“거… 궁민이라는 분 맞아유? 조궁민?”
환이를 보는 눈이 많이 부드러웠다. 그런 자상한 눈길을 환이는 오래간만에 보는 느낌이였다. 로인은 기력이 쇠잔하여 말하는 톤은 낮았으나 어딘가 모르게 끈기가 있어보였다.
“전 환이예요.”
“사장님이 아까부터 기다리셨수. 이쪽으로 오십소.”
로인은 환이의 대답을 별로 새겨듣지도 않고 바로 환이의 손을 잡고 안쪽으로 안내했다. 환이는 꿀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해석도 못하고 로인이 끄는대로 따라 들어갔다.
뜻밖에도 문을 열고 나가니 안쪽엔 제법 움직일만한 울안이 나졌고 그 뒤로 “흠삼진”이라는 간판을 내건 어마한 공장건물이 있었다. 백여명 녀직원들이 여기저기 널려서 여러가지 악세사리를 조립하고있었다.
사장 집무실은 2층에 있었다. 전씨 성을 가진 사장은 퍼그나 인자하고 온화한 모습이였다. 서류를 보다가 사람이 들어오자 점잖게 일어나 그때까지 꿔온 보리자루처럼 어정쩡 서있는 환이에게로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전입니다.”
“전…”
“허허허, 전국 전이 아니구 전세계 전입니다.”
“그게 아니구요. 사람 잘못 아신 모양입니다. 전 가게에 구경 들어온 사람일뿐입니다.”
“아, 그래요? 가끔 왔다가 그런 핑계를 대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다시 잘 생각해보십시오. 앞으로 큰 일 하자면 밑바닥부터 잘 다져야 합니다.”
환이는 괜한 오해를 산게 억이 막히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음차양차로 본의 아니게 우연히 끼여들긴 했지만 아예 이대로 후딱 취직해버리는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을거 같았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타는 어린애처럼 인생길을 그렇게 타박타박 걷고싶었다. 그러면 마음이 많이 든든해지고 편안해지겠지.
“돌아가서 잘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환이는 점잖게 인사를 올리고 돌아섰다. 털면 먼지뿐인 주머니에 손을 깊숙히 질러넣고 진렬장을 거쳐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 경황에도 혹시나 해서 두리번거리던 환이의 얼굴이 금세 시꺼멓게 질려갔다. 저 멀리서 천으로 머리를 싸맨 구레나릇이 쇠파이프를 질질 끌며 오는것이 보였던것이다. 고무신짝에 착 달라붙은 껌보다도 더 질긴 넘이였다. 저걸 떼여버린다는게 조련찮다는 심각한 위기감이 앞섰다.
(잘못 걸려들었구나.)
이날 두번째로 터져나온 한탄이였다.
다행히 구레나릇은 아직 환이를 발견하지 못하고있었다. 고개를 빳빳하게 올려세우고 앞만 내다보며 오고있었다.
환이는 웃옷을 벗어 머리에 뒤집어쓰고 총총 걸음으로 앞으로 달렸다. 그나마 날씨가 차츰 어두워져오는게 다행이였다. 그래도 방심할수는 없었다. 행여 구레나릇에게 잡히면 뼈다귀도 추리지 못한다는걸 잘 알고있었다.
달리면서 다시 돌려 생각해보니 자신의 노릇이 참 한심했다. 하필이면 꼭 이 한길로만 줄창 달릴 필요가 있냐 말이다. 그것은 결국 궁지에서 탈출하는 방법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구레나릇이 우직하여 이 길로 따라온다고 하여 환이 자기도 티나게 이 길로 계속 달아나야 한다는 법은 없잖은가.
길은 여러갈래가 있었다. 직진하는것이 한 방향이라면 좌우로 커버를 돌면 역시 새로운 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그대로 잠자코 있는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수도 있잖은가. 옳지, 그게 좋은 방법일수도 있다.
환이는 아까 공예품회사에서 차를 대접 받으면서 여유를 즐겼을걸 그랬다고 괜히 후회를 하면서 아무렇게나 문이 열려진 가게로 빨리듯 들어갔다. 거짓말처럼 진짜로 차를 판매하는 가게였다. 여직껏 대수 익혀온 룡정차, 노산녹차, 기문홍차, 철관음, 대홍포, 벽라춘, 말리화차, 보이차는 물론 이름을 제대로 밝힐수 없는 차들도 많았다. 그러나 손님은 오히려 그 가지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손님을 접대하는 직원은 주인인듯한 사람 달랑 혼자였다. 들어오는 손님에게 차물도 대접하고 또 손님의 요구대로 이것저것 샘플도 보여주고있었다.
“여기 와서 차나 한잔 드시우.”
매대앞을 왔다갔다하면서 열심히 구경하는듯한 환이에게 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가게 한쪽 구석쪽에 나무뿌리로 멋지게 조각한 큼직한 차탁이 있었고 거기에 앉아 차를 마시던 마지막 손님도 주춤 일어서는중이였다. 환이는 차탁쪽으로 걸어가 밖에서 들여다보기 쉽지 않은 각도를 찾아 점잖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쪽 환한 쪽으로 앉으시죠.”
주인은 환이의 속내도 모르고 지궂게 요청했다.
“괜찮아요. 그런데 왜 이리 한산하죠?”
“아, 그러면 물건 가지러 온 분이 아니시네.”
주인은 뜻을 알바 없는 희미한 웃음을 흐들흐들한 얼굴에 떠올렸다. 흥분에 많이 들떠있던 언성도 금방 어눌하게 내려앉았다. 환이는 그만 오리무중에 빠져버렸다. 순간이지만 스파이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암호접속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물건이라?)
전생까지 옹근 두생을 합쳐도 옷스침 한번 없는 사람한테 와서 무슨 물건을 가져간단 말인가? 환이는 여기서 가져갈수 있는 물건이 어떤것인지도 몰랐고 가져가야할 물건도 없었다. 솔직히 환이는 물건 가지러 온것이 아니라 숨으러 온것이다.
“뭐 견주지 말고 까짓껏 한번 대담하게 접어들어봐요. 시작이 절반이란 말이 장사에 딱 들어맞아요. 나한테서 차를 도매해간 사람치고 여직껏 밑졌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역대리를 달라면 그것도 가능하니까 잘 생각해봐요.”
그제야 환이는 웬영문인지 조금은 알것 같았다. 이런 바보라구야. 차집에 와서 차 내놓고 무엇을 가져간단말인가. 환이는 손을 들어 스스로 자신의 뒤통수를 탁 쳤다. 자기는 모름지기 곤충 컨셉이여서 사람 말을 바로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타입이라는 한심한 생각에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앞뒤가 꽉 막히니 숨통이 졸리지 않을수 없잖은가 말이다.
환이가 대략 난감하여 뭔가 말하려고 고개를 쳐드는데 가게 앞으로 때맞추어 여러 사람이 왁짝 고아대며 지나갔다. 얼결에 건너보니 입에 거품을 문 구레나릇이 앞장서서 걸으며 악에 받쳐 소리치고있었다.
“감히 이 어른을 사기치다니? 겁대가리 회쳐 먹었군. 이넘 잡히기만 해봐라.”
환이는 앉은 자세로 시무룩이 웃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려움이 뺑소니를 쳐버린것이다. 어쩌면 후둑후둑 튀던 심장이 눈깜짝할 사이에 랍치당한 모양이다.
돌아보니 구레나릇에게 죄진 일이 쪼매도 없었다. 마작을 대신 놀아달라고 골골거려서  놀아준것뿐이고 밥 사준다해서 따라가 맥주 한병 얻어먹은데 불과했다. 그리고 나이트클럽은 끌려가다싶이 했었다. 주머니가 땡그라니 비여버린 환이가 환장했다고 아가씨 궁둥이치러 그 비싼 곳으로 찾아간단말인가. 주변에 널려있는 아주 닳아진 아줌마들의 손목이나 한번 잡아보고 그것을 스킨쉽으로 자위하며 즐거웠던 환이였다.
골기있게 살자. 살바에는 사람답게 살자. 이것저것 다 두렵고 여기저기 모두 무서우면 어떻게 산단말인가.
입도 헤프고 몸도 헤프고 마음마저 헤픈 환이지만 태생적으로 뼈마디 하나만은 굵었었다. 원래 세상이란게 그런 법이 아닌가. 쌍코피 터지게 악쓰며 살아야 밥상에 변변한 반찬 한가지라도 더 올라온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들면 세상에 무서운게 뭐란 말인가.
환이는 벌떡 일어섰다. 온몸에서 주체할수 없는 힘이 우뚝 솟아오르는게 저절로도 느껴졌다.
가게 주인은 환이의 뜻밖의 모습에 흠칫 놀라며 뒤로 둬걸음 주춤 물러섰다. 우묵하게 꺼져들어간 눈속에 일종의 경악같은것이 자리잡고있었다. 그러건말건 환이는 고개를 약간 숙여 목인사를 가볍게 올리고 활개를 치며 가게를 벗어났다.
구레나릇네들이 한번 훓고 지나간 거리에는 낯설고 생소한 사람들로 다시 꽉 채워져 여전히 흥성거렸다.
량쪽으로 클래식한 건물들은 여전히 우중충 끝없이 이어지고있었고 넓지도 좁지도 않은 거리는 마냥 오불꼬불 길게 누워있었다. 청기와 또는 회색의 기와장들이 지붕우에서 어느새 고요히 잠들었고 칠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붉은색 기둥 사이로 열려진 투박한 널판자로 된 대문들로 지칠줄 모르는 사람들이 쉴새없이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그곳에서는 연기와 음식냄새와 서로 다른 물건들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들이 범벅이 되여 끊임없이  쏟아져나와 거리를 화끈 달구고있었다. 특히 사람들이 불륨을 최대한도로 높혀 왁작지껄 고아대는 소리는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거리를 거닐거나 가게앞 쪽걸상에 걸터앉았거나 집안에서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옷차림새 역시 각양각색으로 천차만별이였고 내노라며 몽치같은 팔뚝을 드러내거나 아예 여러가지 동물을 문신한 알몸뚱이를 그대로 내놓은 사람들도 가끔 보였다.
환이는 이제 허기질 일이 없었다. 궁금증도 말끔히 사라졌다. 발이 방향잡이여서 사거리에서 유턴해서 새길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구레나릇과 오며가며 마주칠 일도 없어졌다.
대신 주먹속에서 슬그머니 나와 엄지검지중지 사이에 조용히 끼워졌다가 손등을 타고 멋지게 오르던 1원짜리 동전이 그만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환이의 어깨를 부딪치는 바람에 대리석 바닥에 “땡”하고 떨어지면서 대굴대굴 앞으로 굴러갔다.
환이는 먼저번처럼 황황히 뒤쫓아가지 않았다. 누군가의 발길에 부딪쳐 어딘가에서 멈춰설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환이는 이제 그 동전이 멈춰서는 곳에서 인생에 한판의 승부를 크게 걸리라 다짐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2014년 1월 초 청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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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에볼라 에볼라 2015-04-22 1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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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하늘엔 울바자가 없다 2014-08-31 0 1222
17 필터링 2014-08-31 0 987
16 청도로그인 2014-08-31 0 1234
15 조깅 2014-08-31 0 1003
14 일탈 2014-08-31 0 1144
13 인저리타임 2014-08-31 0 887
12 하숙집 2014-08-31 0 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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