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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하늘엔 울바자가 없다
2014년 08월 31일 21시 56분  조회:1222  추천:0  작성자: 비전


단편소설

하늘엔 울바자가 없다
장학규


사방이 쥐죽은듯 괴괴하다. 칙칙한 어둠이 깊고 무겁게 드리워있다.
문득 눈앞에 암황색 비슷한것이 서서히 펼쳐지더니 인차 연분홍색으로 변한후 또다시 피빛같은 붉은색으로 천천히 번져갔다. 그와 더불어 어딘가 못 견디게 강렬한 아픔이 침습해왔다. 피할려고 눈을 감은것 같은데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혼령이 돌아온 모양이네요.”
귀가에서 전혀 생소한 말소리가 모기소리처럼 낮다랗게 들려왔다.
“선유했는줄로 아셨습니까?”
석쉼한 목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날숨이 머리카락을 조용히 스쳐갔다.
“글쎄요. 시간이 시간인만큼 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럴리가요. 이분의 양수는 아직 길고도 깁니다.신선이 되자면 아직 수련을 많이 닦아야 합니다.”
이윽고 말소리가 뚝 끊기고 또다시 어두운 침묵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스스로도 지금 어딘가 누워있다는 감각이 잡혀왔다. 눈을 떠볼려고 무지 애를 썼으나 웬일이지 전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까 원래 눈을 감고있었던건지 아니면 떴던 눈을 다시 감았던건지 전혀 판단이 안되게 헷갈렸다. 아마 팔까지 허우적거렸던 모양이다.
“무량천존, 이러면 안돼요. 좀만 더 꼼짝 말고 누워있으세요.”
석쉼한 목소리가 달래듯 말해왔다.
마음 한구석에서 저 말씀은 꼭 들어야 할것이라고 속삭여왔다. 곧바로 신경을 느슨히 풀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온몸이 그대로 둥둥 떠서 훨훨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저아래 밑으로 쭉 펼쳐진 산이 기막히게 예뻤다. 산세는 부드럽지만 겉은 거칠게 울퉁불퉁한 바위들로 덮혀있었다. 나무의 초록색보다 바위의 회색빛이 더 많이 보일 정도로 순도높은 바위산이다. 굵은 바위덩치들이 곳곳에서 힘자랑을 한다. 거기에 노란색의 야생 원추리꽃이 돌틈사이를 이악스레 비집고 피여나와 한폭의 선경같이 매혹적이였다.
이 산이 해상제일명산이랬던가? 이곳이 북구수라는 동네였던거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느닷없이 어디선가 물소리가 똘랑똘랑 들리는가싶더니 순식간에 폭포가 되여 요란한 잡음을 만들어냈다. 우에서 내려다보니 폭포는 세단계로 꺾어져서 흘러내리면서 못 두개를 이루고있었다. 우아하게 말하면 담이고 대수 형용하면 구덩이였다. 우에 위치한 못은 입구가 항아리 모양을 하고있었는데 물속이 파아란 색을 형성하여 그 깊이가 얼마인지 전혀 알수 없었다. 5~6메터는 쉽게 될거 같았다. 아래 못은 상대적으로 넓은대신 투명하게 밑바닥을 들여다볼수 있었다. 그 옆으로 커다란 석주정이 있었는데 거기에 “조음폭포(潮音瀑)’라는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그 글자는 특별히 당대 서화대가 엽공작(叶恭绰)이 쓴것임을 밝히고있었다.
옆사람들이 두런두런 말하는걸 들어보니 이 폭포는 밑에서 올려다보면 흩날리는 물보라가 고기비늘처럼 보인다고 하여 “어린폭포(鱼鳞瀑)”로도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우에서 내려다보니 벼랑을 만나면서 어쩔수 없이 떨어지는 물도랑에 다름아니였다. 바위돌에 부딪치면서 생기는 조수같이 사나운 물소리는 역시 듣기에 좋았다. 그리고 그 아래 파아랗게 누워있는 못도 시원함을 풍겨주고있었다.
가끔 강렬한 태양빛에 의해 못에 채색무지개가 걸렸다 사라지군 했다. 그때마다 항아리처럼 생긴 못의 입구는 저 옥황상제가 계시는 신선세계로 통하는 길목처럼 유혹을 질질 흘려놓아 사람을 한없이 설레이게 하였다. 푸른 옷을 입은 선녀가 환한 웃음을 머금고 손짓해 부르는상 싶었다. 아니, 정말로 지구인력처럼 강하게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한걸음 다가가 선녀의 손을 엉거주춤 부여잡고싶었다. 혹시나 나무군더러 챙기라고 벗어놓은 날개옷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몸이 어느새 가벼운 새처럼 허공에 날았다. 솔나무들이 바람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고 무지개도 사뭇 기쁜양 하늘하늘 춤을 추었다. 금방 풍덩하는 요란한 물소리가 제법 귀청을 때려왔다. 순간이기는 해도 날리는 물방울이 오색찬란한 화환으로 멋지게 변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였다.
지지리도 참기 어려운 기나긴 정적의 터널을 지나온거 같았다. 어쩌면 삼라만상과 더불어 혼곤히 잠들어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다듬는데 아까 그 석쉼한 목소리가 다시 침묵을 사정없이 깨버렸다.
“깨여난지 한참 된것 같은데 이젠 일어나시지요?”
본능적으로 눈을 번쩍 뜨고보니 침대가 아니고 구들에 누워있었다. 일견에도 어느 도관의 료방(寮房)이 틀림없었다. 숨을 들이쉬기 무섭게 진한 향내가 코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밝은 해살이 비쳐드는 넓은 창문쪽에는 진무대제(真武大帝)와 삼관신상(三官神像)이 모셔져있었다.
봉당에는 두사람이 서있었다. 람색의 홑두루마기를 입고 혼원건(混元巾)을 머리에 두른 나이 젊은 사람은 묻지 않아도 이곳 도관의 도사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옆에는 어딘가 낯익어보이는 예순쯤되여 보이는 로인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장난꾸러기 표정을 짓고 서있었다.
“선복수(善福寿)님은 어디서 오신 뉘십니까?”
인자한 얼굴의 도사는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저 산아래 하장에서 사는 봉입니다.”
봉은 황망히 기여일어나다가 속옷 바람인것을 발견하고 급히 이불을 다시 둘렀다.
“제가 어떻게 이곳 선궁에 오게 되였습니까?”
“오전 일 하나도 기억나시지 않습니까?”
오전이라? 노산 북구수를 등반한것은 오전 8시무렵부터였고 아홉번째 물구비를 돌았을무렵은 해빛이 가장 따가운 10시쯤이였던 기억이 났다. 파도소리 같았던 폭포의 울부짖음이 귀가에 다시금 메아리쳤다. 그리고 천상의 입구같던 깊은 웅덩이가 선히 떠올랐다. 
“빈도는 재밥을 준비해오겠습니다. 상세한건 이분한테 물어보십시오.”
젊은 도사는 설명을 옆에 선 늙은 향객한테 미루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이윽고 누군가에게 나지막하게 무엇을 분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림짐작으로 점심시간이구나 싶었다.
넌짓이 로인을 건너다보니 여전히 익살꾸러기처럼 가는 미소를 입가에 띄운채 말이 없었다. 일본인같은 코밑수염이 인상적이였다. 좀 잔인해보이는 인상이였다. 어쩌면 시종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을것 같은 늙다리였다. 
봉은 재빨리 집안을 둘러보았다. 머리맡에 그의 옷가지가 차곡차곡 개여있었다. 별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등산용의류들이였다. 한국 관광을 갔을때 아울렛에서 코오롱이란 브랜드로 내의부터 자켓까지 통일하여 등산용품을 구입했다. 흔히 제조사마다 주력제품이 따로 있어 진정한 산꾼들은 등산제품을 같은 회사거로 구입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봉은 방수만 되면 되고 편하면 된다는 대수간단팬이다. 자기가 싫증난 곳에서 남이 싫증난 고장으로 이동하는것이 관광이란것처럼 봉이는 남이 싫증낼지도 모르는 브랜드를 들고 오면서도 별로 미안하거나 부끄러운 느낌은 없었다.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고 바닥에 내려서면서 오 그렇지 등산화만은 례외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군가 등산화만은 트랙스타로 고르라고 해서 별도로 선택했던것이 유일한 례외였다. 그의 등산 장비중에서 그래도 제일 값진 것은 배낭이였다. 그것은 봉이 산것이 아니다. 미국제 그레고리 배낭은 선물로 받은것이다. 물론 그 배낭이 계기가 되여 이번 산행을 떠난것이다.
“어딜 가시우? 인사 한마디 없이 그렇게 떠나는 법이 어디 있소?”
로인이 싱겁게 중얼거렸다.
봉은 그러건말건 아무 대꾸도 없이 배낭을 메고 문을 나섰다. 사합원처럼 사방이 집으로 둘러쌓인 그 가운데 향객들이 혹자는 향을 올리고 혹자는 도사님께 점괘를 묻고있는것이 보였다.
봉은 조용히 왼손편으로 따라 신묘에 들어선후 잠간 멈춰섰다가 향로와 삼보거리에서 두손을 마주잡고 허리굽혀 절을 올렸다. 연후 한발짝 걷고 또 큰 절 올리고 다시 한발짝 걸으면서 큰 절을 올리니 바로 향로가 모셔진 보단앞이였다. 손에는 미처 향을 준비하지 못했지만 향을 향로에 꽂는 흉내까지 내고 삼배구두의 례를 올렸다. 
도관을 나서니 구불구불한 왼딴 산길을 따라 쌀쌀한 봄바람이 어슬렁 불어왔다. 어느새 하늘이 낮아졌고 구름이 검게 무거워왔다. 공기속에 습한 립자가 뿌려지는것 같더니 인차 바람에 딸려 침방울같은것이 얼굴에 스쳐왔다.
봉은 아무래도 비오려나보다고 생각하며 씨엉씨엉 산길을 걸어올라갔다. 량옆으로 돌부리가 들숭날숭 보였고 낮다란 솔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있었다. 산길이 도대체 어디로 통하는건지 봉이는 알지 못했다. 알고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어디로 무얼하려 가는지 그 자신도 모르고있었다.
“좀 기다리시우. 같이 갑시다.”
아까 늙은이가 어깨에 멜가방을 하나 메고 허둥지둥 뒤쫓아왔다. 평복을 한 차림새만 보면 별로 산행에 익숙한 사람은 아닌것 같았다. 헐레벌떡 다가온 늙은이는 한번 피뜩 봉을 쳐다보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한번 심심히 느낀것이지만 세상인심이란게 원래 그렇게 야박한건가보오. 기껏 살려주어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달아나고 말이오.”
“…?”
“내사 도사님 대신 불평하는거잖소. 근데 폭포서 왜 뛰여내리셨소?”
눈앞에 다시 한번 천궁을 향한 입구가 나타났고 파도소리같던 폭포소리가 귀가에 울렸다. 그러고보니 그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발생했던 일이 틀림없었다. 아침 8시에 등산을 시작해서 10시쯤에 조음폭포에 다달은것이다. 다르다면 봉은 뛰여내리지 않았다. 푸른 못에 입구가 있었고 거기에서 선녀들이 대기하고있었다. 뛰여내린것과 요청되여 내려간것은 본질적으로 구별이 된다고 알려주고싶었다. 분명 봉은 누군가 파아란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초청하는것을 보았었다. 그리고 울긋불긋 꽃보라가 맞이해주는것도 목격했었다. 그걸 어떻게 뛰여내렸다고 표현을 할수 있는지 리해되지 않았다. 속된 인간들은 마냥 자기 립장에 서서 자기식으로 세상을 아무렇게나 해석하는것이다.
“꼭 그렇게 망가지는 방식이 아니여도 죽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소. 자동차나 방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가스 밸브를 틀어놓고 음악을 감상하다가 가는 로맨틱한 방법도 있고 또는 혈관을 베여놓고 마지막 피 한방울 남을때까지 섹스를 하는 장렬한 방법도 있다네. 더 호방한 방법은…”
이때 하늘에서 후둑후둑 비방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인적이 끊긴 산길에 급기야 바람소리가 요란하게 가득찼다. 산허리까지 내리드리운 검은 구름이 브르릉 떠는가싶더니 불시에 쾅하고 화려하게 폭발했다. 비방울이 굵어지면서 인차 쉴새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로인은 더이상 말이 없이 멜가방에서 비옷을 꺼내 걸치고 휘청이며 앞서 걸어나갔다. 봉도 얼굴의 비물을 훔치며 승벽하듯 뒤따랐다. 역시 명품은 명품이였다. 접지력이 좋은 트랙스타 등산화는 비물속에서도 전혀 미끌지 않고 발이 편했다. 창의 두께도 알맞춤해 바람을 안고 걷는데도 피로감이 별로 들지 않았다.
류운정이라는 정자에서 한숨 쉬고싶었지만 로인이 아무런 말이 없어 그대로 지나쳤다. 점점 로인에게 끌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어쩌면 로인이 온하루 그와 더불어 함께 했던것 같았다. 
“저 앞산이 말이 엎디여있는 모습같다고 와마봉이라고 하네. 여기서 한 오십보 나가면 자그마한 동굴이 나지는데 거기서 비를 피하는게 어떤가?”
로인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추적추적 산비탈쪽으로 걸어갔다. 로인은 이 동네 지리를 환히 꿰뚫고있다는듯 곧추 동굴로 찾아갔다.
그것은 동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하찮았다. 입구는 산비탈을 등지고 나졌는데 바로 우쪽으로 돌무지가 쌓여있었다. 높이는 성인 목부위 정도 높았고 비대한 사람 하나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수 있는 넓이였다. 안에는 겨우 서너명이 앉을만큼의 공간이였고 입구외에 따로 출구도 없이 모두 막혀있었다.
“이건 청산가리네. 입에 대면 즉사하지.”
로인은 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비옷을 벗어 구석쪽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멜가방에서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더 굵은 진한 색의 병을 꺼내 아래우로 한번 흔들어보인후 땅바닥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연후 다시 가방을 뒤지더니 이 동네 특산인 랑아대백주 두병을 끄집어내였다. 그것은 원액 70도인 선물용 술로서 값이 만만치 않은 물건이였다.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진하게 삶을 론쟁하면 어찌 풍류스럽다하지 않겠소. 도수가 높은만큼 쉽게 취하기도 하겠지. 더이상 유감없이 할 말 다하고 취할대로 취한다음 마지막으로 청산가리를 타서 쭈욱하는게 대범하기도 하고 군자스럽기도 하고 얼마 좋소?! 이 방법이 아까 말하자던 호방한 죽음이오.”
로인은 남의 말을 하듯 무표정하게 지껄이더니 정말로 병마개를 따서 미리 준비해온 종이컵에 따랐다. 장난꾸러기같은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엄숙한 분위기가 흐들흐들 기름기가 번져진 얼굴에 쭈욱 깔렸다. 사람을 제압하는 살기같은것이 꼿꼿하게 날이 선 눈길속에 흐르고있었다.
“죽음이란것은 신성한것이네. 그래서 홍모보다 가볍거니 태산보다 무겁거니 하면서 죽음을 달리 형용하는것이오. 말하자면 외형적으로 같은 죽음인것처럼 보이지만 실지 본질적으로는 모두가 다른것이 죽음의 실체요. 어디 말해보오.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선택했었소?”
“장사에 실패해서 큰 빚을 지었습니다.”
그레고리배낭이 화근이였다. 무역업에 갓 올인한 봉에게 한국 민사장은 혜성같이 다가온 은인이였다. 작은 오더를 가끔 뿌려주고 결제도 깔끔하게 제때에 해주었다. 그렇게 몇달간 달콤한 밀월이 이어졌다. 달변인데다 사내답게 시원한 성격인 민사장은 봉을 제주도에 데리고가 직접 가이드역까지 맡아주었다. 그때 민사장은 통크게 그레고리배낭을 선물로 봉에게 주기도 했었다. 봉도 배낭관광족이여서 그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가는 물건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 순간 가슴 언저리까지 축축히 젖혀주던 짜릿한 감동은 지금까지도 리얼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였다. 봉이 귀국후 그 배낭 가치의 수백배가 넘는 물건을 계약금도 없이 후불 약속으로 보낸후 민사장은 불시에 지구상에서 증발해버렸다. 물건을 받았다는 답복도 없었고 핸드폰은 이미 사용중지가 되여버렸다. 급히 한국에 달려갔으나 민사장은 사무실을 이미 물려버린 뒤였다. 전세로 살던 집도 처분한지 여러날이 되였다. 세관기록에도 민사장이 물품을 차실없이 인수했음을 밝혀주고있었다. 알만한데는 다 뒤져보고 또 걸어둘만한데는 다 신고식을 올리고 기진맥진하여 집에 돌아왔을때는 어느새 새여나간 소문을 들은 당지의 하청업체 사장들이 둥지를 틀고 앉아있었다. 째지게 가난했던 시절을 함께 했던 안해의 정말 오래간만에 피여난 얼굴이 그사이에 주름살이 한결 더 깊게 파여갔다.
일단 살던 집과 타고 다니던 차를 팔고 얼마 안되는 류동자금까지 깡그리 털어 빚을 절반나마 갚았다. 그간 거래를 틀면서 정을 쌓아왔던 하청업체 사장들도 더이상 닥달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올게 없으니 시간을 주자 그런 셈법 같았다. 아무튼 봉은 난생처음으로 목표도 없고 욕망도 없는 회색기를 맞았다. 세집에서 하루하루 감각도 없는 세월을 보내는중에 오늘 새벽 문득 구석쪽에 그대로 꿍져져있는 이사짐에서 비죽히 얼굴을 내밀고있는 그레고리배낭을 발견하게 되였고 그래서 그 길로 무작정 산행을 나서게 된것이다.
“자, 한잔 받으시우.”
로인은 자기 먼저 종이컵을 들어 쭉 들이킨후 다시 한컵 부어 내밀었다.
“별게 아니군. 공수래 공수거라 했잖소. 돈은 몸밖의 물건이라 난 거기에 대해 크게 집념해본적이 없수다. 쌓이면 수자같고 허물어지면 먼지같아서…”
봉은 두손으로 종이컵을 받아들고 로인처럼 목을 꺾고 단숨에 넘겼다. 칼같이 날카로운것이 목줄을 타고 내려가더니 순간적으로 욱하고 치밀어올라 두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급히 튕겨 일어나 입구로 달려갔으나 입에서는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껄껄, 도수가 높은 술은 얼리면서 마셔야 하우.”
봉은 제자리로 돌아와 앉으면서 컵을 돌려주었다.
“선배님은 웬일로 이곳에 오게 되였습니까? 역시 사연이 있을법한데요.”
“선배는 무슨…형님이라고 부르게.”
“형님…?”
“그래. 난 말이야. 아우를 만나려 특별히 온걸세.”
“…?”
“아직도 기억 못하는군. 자네가 뛰여내리기전에 난 바로 자네 옆에 앉아있었어. 멋있었네. 솔직히 속되기는 해도 한폭의 그림같았네. 그래서 자네의 물품들을 챙겼어. 물론 사람은 못가에서 손씻던 도사님이 구했지. 물가에 가까운 루대가 먼저 달을 얻는다했잖은가?!”
저런 달변을 스크린에서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났다. 전생의 인연처럼 꼭마치 어디선가 낯익었던것도 그때문이였던 모양이다.
“난 살면서 내절로 손을 내밀고 달라고 한적이 거의 없었어.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가져와서 떼맡기듯 던져놓고 가는거야. 건사할데 없어 박스에 담아 쓰레기처럼 침대밑에 넣어두기도 했어. 그런데 내일이면 곧 퇴직하는데 갑자기 여럿이 와서 집안을 뒤지는거야. 장물이라면서 싹 빼앗아가고 말이야. 그리고는 쌍개란것을 선포했지. 원래 내것이 아니니까 가져가면 뭐라나? 이날 이때까지 두루 살았으니까 나락으로 떨어진다해도 원이 없어. 정말 이 산을 내집처럼 수도 없이 다녔어. 언젠가 이 동굴에서 햇병아리같은 계집 둘을 끼고 그 노릇한적도 있었어. 내가 참을수 없는건 배신감이야. 물어먹은 넘도 차압한 넘도 판결을 내린 넘도 다 나한테 코밑치성을 했던 사람들이란 말이야. 우에서 한마디 발호하니까 바로 군대처럼 하나같이 뒤로 돌아섯 하더란 말이지.”
로인은 진실로 감정이 동한 모양으로 컵을 움켜잡으며 부르르 떨었다. 기세가 넘치는 로인의 퍼포먼스에 봉은 떨리는 눈길을 동굴밖으로 돌렸다. 창대같은 비줄기가 억수로 퍼붓고있었다. 시뿌연 하늘은 정지된듯 움직이지 않았고 사방은 비소리만 진동하고있었다.
갑자기 주먹만한 돌멩이가 쿵하고 입구로 떨어지더니 이어 가는 돌덩이들이 따라서 주룩주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동굴로 들어올때 우쪽에 돌무지가 쌓여있던것을 본 기억이 났다.
“산사태가 발생할 모양입니다. 아까 보니 웃쪽에 시공하다 남겨진 잔해들이 불안하게 보이던데...”
“그게 자네 뜻과 맞물리지 않는가?”
어느새 평정을 찾은 로인이  이미 비여진 컵을 내밀었다. 봉이 엉거주춤 컵을 받기 바쁘게 맞춤히 술을 부어주었다.
“오. 지금 자네가 나를 걱정해주는건가? 감동적인데…그렇지만 여보게, 홀로 가긴 적적하잖은가?! 자네가 마다하지 않는다면 내가 배동해주겠네. 난 조라고 부르네.”
조씨는 백가성 첫글씨가 자기 성이 된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그만큼 그는 운이 좋았다. 태항산 깊은 산골에서 추천을 받아 대학을 가면서 순탄한 인생길을 걷게 되였다. 작은 향진의 교사로부터 시작하여 수백만 인구를 가진 대도시에서 한얼굴 내놓고 다니기까지 사람들이 입에 떠올릴수 있는 공직을 하나하나 모두 겪으면서 한번도 인생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문전성시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권력이나 금전은 허무했다고 조씨는 설명했다. 무엇보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것이 괴로웠다고 한다.
“자네 신기루를 보았는가? 난 젊었을때 청도 앞바다에서 정말로 보았단 말일세. 장관이였지.”
조씨는 두문불출하고 매일 허황한 인터넷 세계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가 경외의 자살사이트에 심취하게 되였다.
거기서 갓 20대의 취라는 친구를 만났다. 아이디가 녀성화된데다가 화법이나 문장구성이 섬세하고 절제된 형태를 보여 처음에는 녀자인줄로 알았다. 마침 같은 청도 출신이여서 가까이 다가서게 되였고 결국 화상채팅을 이루면서 허무하게 남자인것을 알게 되였다.
취는 외형상으로도 애잔하게 생겨 련민을 자아냈다. 곱게 키워오던 애완견이 잃어져서 살고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따위 사연으로는 자살 리유가 되지 않는다고 설복했지만 취의 태도는 굽힘이 없이 견결했다. 대학입시에서 락방한것도 원인중의 하나라면서 오히려 조씨의 당당하지 못함을 비판해왔다. 당장 래일 동반자살하자고 제의해왔다.
“그래…그럽시다.”
조씨는 한마디로 흔쾌히 제의를 받아들였다. 시간은 오전 여덟시 반, 지점은 조씨가 노산 북구수 동굴로 정했다. 그러나 10시가 가까이 다가오도록 취는 나타날념을 않았다. 조씨는 씨무룩이 웃었다.
(암, 그러면 그렇지. 아직은 인생이 미련이 많이 남아있는 나이이지.)
조씨는 죽음이 무섭진 않았지만 외로운 고혼이 되기는 싫었다. 멜가방을 다시 둘러메고 내려오다가 조음폭포에서 잠간 다리쉼을 하는중에 예상외로 바위돌에서 다이빙하는 봉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것이다.
“첫눈에 자네가 마음에 들었어. 술에 취하면 하루 행복하고 사람에 취하면 평생 행복하다 했네. 우리 오늘 남은 평생을 즐겨보세. 자 간베이!”
조씨는 벌써 좀 취해있었다. 혀는 그나마 잘 돌아가고있었으나 몸이 휘청이였다.
돌무지는 자꾸 굴러내리면서 점차 입구를 막아올리고있었다. 이제는 얼굴 하나 내밀정도의 구멍만이 남아있었다. 원래 빛이 어두운 동굴이 더 어두워졌다. 봉은 배낭에서 비상용 후레쉬를 꺼내 켰다. 순간 동굴안이 환하게 밝아왔다.
두사람은 잔을 돌려가며 많은 말도 주고받았다. 봉은 창업의 어려움을 많이 호소했고 빚독촉으로 몇번이나 죽으려 했던 일을 돌이켰다. 조씨는 그 로반들을 거개 잘 안다면서  왜 자기를 찾지 않았냐고 타발해왔다. 그땐 당신을 몰랐잖느냐고 하니 조씨는 지금도 자기가 나가면 개자식들이 벌벌 길거라고 호기에 차서 씨벌렸다. 조씨는 조씨대로 관가의 에피소드를 끝없이 이어갔다.
그들에게 이제는 물러설 뒤길이 없었다. 둘은 입구가 다 막히기전에는 절대 청산가리를 먹지 말자고 약속했다. 봉은 그 약속때문인지 본능적으로 자꾸 입구쪽을 돌아보게 되였다. 웬일인지 입구는 더이상 막히지 않고 빠금하게 하늘을 내비치고있었다.
어쩌면 비가 멎은듯 싶었다. 으릉으릉하는 우뢰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번쩍하는 번개치는 모습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봉은 안해에게 자기의 죽음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음으로 봉만 믿고 살아온 안해였다. 그녀에게 빚만 잔뜩 남겨주고 소리없이 사라진다면 진정 사나이다운 처사가 아니지 않는가. 최소한도로 자기가 왜서 이 길을 택했다는 설명은 해줘야 했다. 그리고 대학입시를 앞둔 딸년에게 한마디 뭔가 말해주고싶었다. 본능적으로 주머니를 더듬었으나 핸드폰은 집에 두고왔는지 없었다. 
봉은 조씨에게서 핸드폰을 빌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동굴속이여서 신호소리가 전혀 없었다. 주춤 일어서서 입구에 남은 구멍쪽으로 비틀비틀 다가가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겨우 신호가 터져 두번도 울리지 않아 안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루종일 어디 가 있어요? 지금 속히 집에 오세요.”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가?”
“급한 일이 아니고 기쁜 일이예요. 오전에 영사관에서 전화 왔는데 당신더러 속히 한국으로 나가라네요. 한국경찰에서 민사장을 붙잡았는데 돈을 찾을수 있을거라네요.”
봉은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졌다. 입구가 다 막히지 않은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하느님 맙소서. 말 한마디 못하고 멍청하니 그 자리에 서있는 봉의 옆으로 조씨가 어슬렁 다가왔다. 무슨 낌새를 챘는지 조씨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봉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아 주머니에 넣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사는게 좋겠지? 도사님께서 자네의 양수가 아직 길다고 했어.”
살고싶은것은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미련이 너무 많았다.
“오늘은 아닌 모양이야 처음부터. 하늘이 울바자를 치지도 않는데 억지로 그속에 갇히려고 하는건 무리지.”
조씨는 구멍쪽으로 손을 내밀어 돌을 파내기 시작했다. 쉽게 파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움직임이 진동이 되였는지 우에서 이번에는 흙이 한무더기 굴러내려왔다. 저렇게 흙이 계속 굴러내려 정말 약정처럼 입구를 완전히 막아버린다면 어째야 하냐고 번개같이 생각을 굴리고있는데 갑자기 밖으로부터 가느다란 손이 쑥 들어와 흙을 그대로 퍼내갔다.
“조씨 삼촌, 안에 계셔요?”
취였다. 나약하고 유연해보인다는 조씨의 자살 파트너 취였다!
“응. 취, 나 맞아. 너 언제 왔지?”
조씨는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구멍을 파나갔다.
“온 하루 산을 헤맸어요. 포기하고 내려가다가 사람의 말소리를 들었어요. 조씨 삼촌, 누구랑 함께 있어요? 저랑 같이 가기로 약속했잖아요.”
“글쎄 그렇게 되였구나. 도덕경에 이르기를 전쟁을 잘하는 용장은 무용을 뽐내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분노하지 않으며 적을 잘 이기는 자는 적과 다투지 않는다고 했네라. 우리 자살을 입에 달고 살지 말자.응?”
“네에”
두사람은 안팎에서 미친듯이 손으로 돌무지를 팠다. 손끝에 피가 흥건이 흘러내리고있었지만 멈출념을 하지 않았다.
봉도 달려들어 이악스레 구멍을 팠다.
구멍은 점점 넓어졌다. 기어나갈수 있는 넓이가 된줄도 모르고 그들은 계속 파고 또 팠다.

2013년 4월 초순 청도 문향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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