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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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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낚시
2015년 06월 25일 05시 54분  조회:1318  추천:1  작성자: 장학규

 

단편소설

 
낚   시

장학규

 

눈앞이 어느새 흐릿흐릿해온다. 그나마 물고기 배처럼 희끄므레하던 서쪽하늘도 기진맥진한듯 검게 손을 들고있었다.

선웅이는 별로 바쁘지 않다는듯 느릿느릿 걸었다. 내리막길인데다가 길에 자잘한 돌멩이들이 여기저기 깔려있어 여러번 발을 접질러 넘어질번 했다. 다행히 눈감고도 다닐수 있는 익숙한 길이기에 어렵지 않게 봉변을 피할수 있었다.

이제 이 내리막을 지나서 50여 메터 정도를 나가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호수가 나진다. 그물치는 매생이 급들이 가끔씩 부담없이 떠다니는 대수 보아줄만한  웅뎅이이다. 옛날에는 저 앞의 백사하와 이어지는 만(湾)이였다고 한다. 그게 막히면서 호수가 이루어진듯 싶지만 분명히 석호는 아니였다. 인공적인 흔적이 도처에 엿보이고있었다.

옆으로는 무성한 나무숲이 산처럼 높이 뻗치고 있어 바로 도심에 린접하고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수 없이 한적한 곳이다. 저 앞으로 쉴새없이 헤드라이트를 켠 차량들이 분주히 오가지 않는다면 정말 도심에 이런 낚시터가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것이다.

선웅이는 나무숲을 등지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량옆의 풀들이 깨끗이 베여지고 평퍼짐한 바닥이 닦아진 좋은 낚시터였다.
그곳은 거의 선웅이의 전용 터라고 할수 있을만큼  일년치고 대부분의 시간을 선웅이가 차지하고있는 곳이다.

오늘도 혹시 누가 먼저 자기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을가 못내 속을 조였었다. 낚시군들은 대개 익숙한 터를 선호한다. 물깊이도 그렇고 그곳에서 노니는 고기류에 대해서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한번 자리를 빼앗겨 달리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기란 말처럼 그렇게 수헐치는 않다. 그래서 베테랑 조사님들은 쉽게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아직은 밤낚시가 일찍한 시점이다.

선웅이는 느릿느릿 낚시가방을 열고 일단 낚시대부터 맞추었다. 낚시줄을 고정시키고 찌에 케미컬라이트를 부착하는데 부시럭부시럭 사람이 다가오는 인기척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석쉼한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일찍하시오.”
얼핏 건너보니 전혀 생소한 얼굴이였다. 예순쯤 되여보이는 로자였는데 선웅이와 서너발 떨어진 거리에 멈춰서더니 짐을 풀기 시작했다.
“아, 네.”
선웅이는 외마디 단창을 뽑은다음 더이상 아는체 하지 않고 곧바로 떡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선웅이는 이 동네 낚시군들과 거의 면목이 있다. 만나면 서로 굵직한 롱담도 주고받을수 있는 사이이다. 그런데 로인은 처음 보는 사람이였다.

하늘이 점차 어두워오면서 떡밥이 제대로 반죽되는지 감이 도무지 잡혀오지 않았다. 후레쉬를 켜서 보니 생각밖으로 그런대로 대수 쓸수 있는 정도는 되여있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 읊는다고 선웅이도 이젠 웬만해서는 손느낌으로도 떡밥을 만들수 있었다.
“이 사람아, 헤드랜턴은 없나? 후레쉬는 빛이 너무 강렬해요.”
그때 아까 그 로인이 저쪽에서 다시 말을 걸어왔다. 얼핏 짜증같아 보이는 말인데도 로인은 온화한 목소리로 상냥하게 말하고있었다. 불과 3~4메터 건너에 있지만 로인은 이젠 점과 각이 모두 없어진 검은 물체로만 보여졌다.
“아, 네.”
선웅이는 또다시 짤막하게 중얼거리면서 본능적으로 낚시가방에서 헤드랜턴을 더듬어잡았다. 인츰 파란색 불빛이 호수면을 어지럽게 오갔다. 선웅이는 급히 랜턴을 머리에 고정시키고 낚시에 떡밥을 끼기 시작했다.

어둠과 더불어 오가는 차들이 점차 뜸해지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저 앞 백사하 강뚝으로 저녁 산보를 나오기 시작했다. 스모그와 소리의 벽이 많이 엷어진 시간대여서인지 가까운 거리의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들이 바로 옆에서 소곤거리는것처럼 선명하게 들려왔다.

“저 춘양댁네 새 차를 바꾸었당꼬.”
“춘양댁이 누꼬?”
“거 무지? 말 꽁댕이마다 말이 말이 하는 할무이 있자너.”
“오 그 할무이 아들이 돈 잘 번댄다. 갠데 문 차 또 산대지? 지금 굴리는것도 새차 아니가?”
“글켔지? 뭐 아오디 에이 8이라나 무나. 80만이라카면서 말이말이 글더라구.”
“왜 몇십년만에 생리통이 되돌아온갠가? 별걸 다 배 아파?”
“배 아프긴 물? 울도 먹고 살만큼은 살루.”
“글카나. 그 집 따래미도 여간 날구뛰는겨. 요즘 상가 두개씩 갖구있는 집 몇개 있을까나. 부러버 마.”
“누가 부러바할새나.”
    주고받는 말들이 조선말들이여서 선웅이는 귀를 잔뜩 세우고있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했던가. 백메터이상 빛을 비추며 줌 기능까지 갖춰 편리한 랜턴을 머리에 걸고있는 선웅이가 고스란히 듣고있는줄도 모르고 귀먹은 동네라고 여기고 스스럼없이 말하고있었다. 아무리 물고기들이 빛을 보고 인지하지 못하는 블루 랜턴이라 해도 사람은 볼수 있는게 아닌가.
  
 (하여간 머리 아퍼!)    
선웅이는 잔뜩 골난 사람처럼 신경질적으로 낚시대를 잡아챘다. 먹이감이 깨끗이 털려버린 빈 낚시코가 랜턴 불빛속에서 약 올리듯 하느작거렸다. 잠간 정신을 팔고있으면 그렇게 빈털터리가 되여버리는 낚시때문에 선웅이는 인내심을 많이 잃어가고있었다.

이젠 도정신해야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어신을 감지할수 있는 케미컬라이트만 주시하니 그렇게 생생하던 말소리들이 금방 소음장치가 된듯 가뭇없이 사라졌다.

캄캄한 수면우에 놓여진 케미컬라이트 불빛과 바람소리가 멎어버린 조용한 수면을 은밀히 흔드는 찌울림이 한결 흥분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굵은 씨알의 붕어가 손아귀에 들거라고 확신하면서 찌 솟음과 더불어 낚아챘지만 웬걸 여전히 홀쪽 말라버린 낚시코였다. 그러기를 여러번 반복하면서 선웅이는 차츰 영문없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담배 한대 하지 않을라나?”
문득 바로 등뒤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와 선웅이는 그만 초풍할 지경으로 깜짝 놀랐다.
저쪽에 있던 로인이 아무런 기별도 없이 다가온것이다. 표정을 전혀 읽어낼수 없는 어두움속에서 로인은 어떻게 선웅이의 불만을 감지하였는지 두서없이 뒤말을 이었다.
“실은 … 기침 둬번 …오면서…”
그러면서 알뜰하게 불까지 붙인 담배대를 내밀었다. 얼결에 그걸 받아들고 선웅이는 허구픈 웃음이 나오는걸 겨우 참았다. 괜히 손을 들었다가 제뺨 치는 형국이 되고말았다. 사실 선웅이는 담배를 끊은지 벌써 반년이 되여오고있었던것이다.
“콜록 콜록 …”
“담배 못하나보군. 그런데 먹이집 만들었나?”
로인은 여전히 자상한 어투로 말을 걸어왔다. 금방 있었던 난처함을 완전히 털어버린듯 티가 묻지 않은 목소리였다.
(아차!)
선웅이는 그제서야 여직 먹이집도 만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거마저 잊어버릴수 있단말인가. 오늘은 꼭 한쪽 뇌를 분실한 느낌이였다. 많이 다치지 않고서야 머리 회로가 이렇게 자꾸 단절될리 없잖은가.
선웅이는 기계적으로 알갱이 고기밥을 서너줌 호수에 던졌다. 사르르 호수물을 가르는 소리가 스릴있게 들려왔다.
“아직 대어가 출동하기는 좀 일찍하네. 작은 친구들 두둑히 먹게 내버려두게. 그 작은 배들 금방 채워진다네. 그리고 먹이집을 발견하고 어른들이 어슬렁 찾아오면 저절로 알아서 물러나네. 급해말라구.”
선웅이는 그만 마음이 도적맞힌 느낌이 들면서 얼굴이 뜨뜻하게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고참 조사님이 분명했다.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선웅이의 현재 기분상태를 파악하고있었고 그래서 다가와 해학적으로 귀띰해주고있는것이다.

선웅이는 로인이 언제 자기 자리로 돌아갔는지 모른다. 사실 선웅이도 밤이나 새벽이 되면 대어들이 활발해진다는것쯤은 상식적으로 알고있었다. 물고기들도 커가면서 본능적인 경험이 많아진다. 경험과 본능이 경계심으로 이어지면서 한낮보다는 고즈넉한 어둠을 틈타 사냥에 과감히 나선다. 그리고 먹이감인 민물새우 등이 물가로 가까이 나오는 시간대가 또 밤시간대인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찌놀림이 적어졌다. 대신 한번 움직였다싶으면 그대로 물속에 처박히듯 곤두박질쳤다. 눈으로 그걸 확인하고 머리의 빠른 회전을 통해 팔로 전달되는 그 전률은 그저 아찔할 지경이였다.
주먹만한 붕어 한마리는 미처 낚시대를 쳐들기도전에 백메터 속도로 옆의 풀속을 향해 내뺐다. 선웅이가 젖먹던 힘을 다해 붕어의 주둥이를 물밖으로 끌어내지 않았다면 그대로 놓칠번했다. 

한뺌 정도의 붕어들이 그물망태에서 퍼덕거리면서 시끄럽게 소리를 낼 즈음에 복부가 느닷없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남들은 대변이 마려우면 홍문이 무거워온다지만 선웅이는 배에 통증이 먼저 찾아온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죽을 병인줄로 알았다. 급하게 볼 일 먼저 보고 그다음 약을 먹으려니까 아픈 배가 금세 탈이 없어졌다. 그런 일을 여러번 반복해 겪고보니 배 아프면 의례 뒤가 나오려니 했고 그게 신통하게도 백프로 맞아떨어졌다.
“붕~붕~붕~”
그나마 가스가 뿜겨나가는 경우는 덜 괴로웠다. 솔직히 선웅이는 고기가 한창 앞다투어 물려대는 지금 이 시각에 자리를 뜨고싶지 않았다. 무리채로 몰려다니는 물고기는 한번 물기 시작하면 잇따라 줄줄히 물었다. 그러다가 아니 하고 한번 가버리면 한동안은 다가오지 않는 법이였다.
(배속에는 대장균이 적당히 있어야 한다니까.)
그러나 선웅이는 얼마 뻗치지 못하고 곧바로 투항해버렸다. 가스가 다시 나오지 않는대신 붕어를 끌어올리느리고 힘을 쓰기 바쁘게 바지가 끈적거려왔던것이다.
(젠장…)
선웅이는 낚시대를 그대로 내던지고 허둥지둥 나무숲속으로 올라갔다. 언덕으로 높이 솟은 나무숲은 올라가는 길이 사선으로 좀 가팔라 미끌었지만 그런대로 기여올라갔다. 나무숲은 반경이 20메터도 되지 않았지만 은근히 울창했고 깊숙했다.

마침 동남풍이 불어 로인한테 냄새가 풍길 념려는 없었다. 궤춤을 내리기 무섭게 부르륵 방귀같기도 하고 아닌것같기도 한 소리가 나면서 액체화된 대변이 줄달음쳐나왔다.
(저녁에 뭐 잘못 먹었나?)
선웅이가 주저앉은채로 손으로 배를 주물럭거리는데 나무숲 밑에서 먼저 그 로인의 익숙한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마 누군가와 통화하고있는 모양이였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틀림없는 조선말이였다. 하느님 맙소서. 아까 로인이 말을 걸어왔을때 별로 억양이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았었다. 대략 남쪽 동네 사람일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했었다. 청도라는 도시가 원래 동서남북 사람들이 모여들고 드나드는 고장이라 판별이 어려운것도 사실이였다.
그렇다면 로인도 아까 호수 건너편에서 들려온 대화를 엿들었음직했다. 아니, 틀림없이 들었을것이였다.
“언제 떠난다구?...그렇게 빨리?... 여기서 일 안되면 가야지므… 글쎄 다 망한다구 하더라만…”
로인은 아까처럼 유창한 중국말을 하지 않고 순 조선말로만 대화했다. 아무래도 가까이에 있는 선웅이가 들을가봐 언어를 바꾼게 틀림없었다.
호수 건너편의 사람들도 그런 심태였을것이다. 어쩌면 로인도 그게 참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공감한것이 아닐까.
선웅이는 배속을 깨끗이 비웠지만 자칫 내려가면서 소리라도 만들면 로인의 대화가 중단될거 같아 주저앉은 그대로 넌지시 멈춰있었다. 아직 단풍을 모르는 초가을의 향기로운 꽃냄새가 살살 실바람을 타고 전해왔다.
“삼성이 협력업체 100여개 달고 서안에 들어갔다면서?.... 먼저 가서 기회 잡아야지…응. 모르긴 해도 이제 다 서안으로 튈거다. 10년내로 여기 조선족인구 절반 이상 줄어들거다…뭐 해먹을게 있어야 말이지. 그래말이다…모두들 오더 떨어져서 빈털터리야. 빛 좋은 개살구이지…응 그러자. 나 밤낚시 나왔다. 아들 속타하는거 눈앞에 두고 볼수 있어야지. 내일 오후에 만나자. 그래.,,”
전화를 끊었는지 잠잠해졌다. 그렇지만 선웅이는 선뜻 내려가지지 않았다. 한참동안 더 앉아있다가 다리가 막 저려와서야 부시시 일어나 늘쩡늘쩡 벨트를 조였다.

밤은 깊어갔다. 어느 사이 기온도 많이 내려가 몸이 차갑게 떨려왔다. 낮기온이 30도를 치달아도 한밤중에는 쌀쌀한게 이 고장의 기후이다.
선웅이는 기척없이 자리로 내려가 우선 파카를 찾아내여 몸에 걸쳤다. 금세 온몸이 따스해오는게 느껴졌다. 그 파카는 선웅이가 지난해 한국 출장을 갔다가 특별히 시간을 내여 남대문시장에 가서 산것이다. 별로 큰 돈을 준것도 아니지만 품질은 나름대로 일류였다.  바느질이 제법 꼼꼼해 질기고 단단한것은 물론 가볍기도 하고 따스하기도 해 선웅이는 낚시질 나갈때마다 꼭꼭 챙겨다녔다.

선웅이는 급한김에 아무렇게나 한옆에 버렸던 낚시대를 주어들고 다시 낚시질에 집념했다. 한꺼번에 나를 잡아가소 하고 물려들것만 같았던 물고기들이 그러나 오래동안 도무지 물려주지 않았다. 역시 자리를 비워둔게 문제였다. 물고기는 잡힐때 계속 낚아야 하는 법이다.

시간이 얼마 흘렀는지 선웅이도 알수 없었다. 무거운 정막이 두텁게 내리드리우고 한기가 어설렁 침습해오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자정대를 넘긴거 같았다. 팔뚝 같은 붕어가 다시 물리기 시작했고 더불어 추위에 손발이 오징어 타듯이 살살 쪼그라들어왔다.
“어, 어…”
선웅이는 저도몰래 외마디 떨리는 소리를 내면서 급히 도구상자를 열었다. 그속에는 물을 끓여먹을수 있게 버너와 코펠이 비치되여있었다. 선웅이는 번마다 낚시질 나오면 코펠에 물고기를 삶아서 술 한잔 마시는것으로 추위를 덜군 했다.
굵은 붕어 두마리를 깨끗이 다듬어서 냄비에 넣고 물이 끓어오기 시작할 무렵 느닷없이 소변이 마려웠다. 어두컴컴한 한밤중이라 보는 사람도 없어 그 자리에 일어선채로 옆으로 방뇨하면서 그 경황에도 머리를 돌려 헤드랜턴으로 찌를 지켜보는데 방정맞게도 그때 찌가 심하게 둥둥 떠올랐다. 선웅이는 소변을 멈추고 후다닥 낚시대를 잡아챘으나 이미 미끼는 략탈당한 뒤였다. 게다가 불시에 속옷으로 되들어간 거시기가 브레이크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여뇨를 줄줄 흘리면서 살이 찜찜해왔다. 꿩 잃고 알 깬 형국도 아니고 어쨌던 많이 랑패상이였다.
그나마 그 사이 고기가 잘 익어있어 다행이였다. 고추장을 크게 풀지도 않았는데 주변에는 온통 구수한 고추장냄새가 풍겨왔다.
(흐흐흐. 이제는 나도 조선족인줄 알아차렸겠네.)

아무래도 저쪽 로인을 요청하는게 인사인듯 싶었다. 선웅이는 후레쉬를 켜들고 로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이 사람아, 헤드랜턴으로도 올수 있잖아? 후레쉬는 빛이 너무 강렬해요.”
지청구도 아니고 욕은 더욱 아닌 이런 자상한 타이름이 튀여나올거 같았지만 예상외로 파라솥밑에 의자를 놓고 앉은 로인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로인은 어느새 잠들어있었다. 늙은 사람들은 초저녁 잠이 많다더니 맞는 말이였다. 금방까지도 선웅이는 로인이 낚시대를 던지는 소리를 들은듯싶었다. 선웅이는 발뺌발뺌 뒤걸음쳐 물러났다.
선웅이는 홀로 술 두잔에 붕어 두마리를 발라먹고 도구와 그릇들을 거두고 다시 낚시질에 몰입했다.

“스르륵 스르륵…”
새벽 이슬이 내리는 소리가 방불히 들려왔다. 시간이 흐르긴 흘렀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선웅이는 갑자기 전률하듯 몸을 뒤탈았다. 이슬 내리는 소리가 이렇게 선명할리 만무했다. 다시 귀를 도사려보니 아까 자기가 뒤를 보던 수풀속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그것도 한사람이 아니였다.

선웅이는 머리칼이 쭈볏이 곤두섰다. 본능적으로 랜턴을 끄고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어 잭나이프롤 거머잡았다. 이 시간대에 이 자리에 사람이 나타난다는건 상서로운 징조는 아닐것이다. 잠간이기는 했지만 로인쪽으로 조금 움직일가 생각을 굴렸다가 괜히 애매한 로인에게 불똥이 튈거 같아 선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일단 여기서 싸움이 붙으면 잠귀가 밝은 로인이 금방 깨날것이다. 와서 도우지 않더라도 그사이 경찰에 신고만 해줘도 큰 도움이 될것이 틀림없었다.

“스르륵 스르륵…”
풀잎을 밟는 소리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는 나무가지를 스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어림짐작으로 인기척이 아까 선웅이가 대변을 보던 자리쯤에 들어선것 같았다.

(제발 그 물똥 좀 밟고 한넘 넘어져라.)
백치같은 넘은 천치같은 생각을 굴리는 법인가보다. 선웅이가 막무가내로 온갖 궁리를 펼치는 사이 다가오던 인기척이 문뜩 뚝 멈춰졌다.

“집에 가야해. 엄마가 야단한단말이야.”
뜻밖에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애리애리한 녀자애의 목소리였다. 순간 선웅이는 긴장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그리고 녀자애의 말이 역시 조선말이라는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있었다.
“지금 두시가 넘었어. 우리 집에 돌아가자.”
“내일부터 볼수 없는데 좀 더 있으면 안돼?”
징징대는 남자애는 아직 목청도 채 여물지 않은듯 했다.
“온 하루야. 식당에서 노래방까지…엄마는 그저 너를 바래주는줄로 안단말이야. 오늘 우리 한 일 알면 난 죽어.”
“이미 한바하고 한번 더 하자. 노래방에선 사람이 갑자기 들어올가봐 조마조마해서 혼났다.”
말소리가 뚝 끊기고 대신 애무가 이어지는지 간간히 신음소리가 낮다랗게 들려왔다.

선웅이는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그대로 낚시질도 못하고 서성거리기만 했다.  생각같아서는 어린애들의 철딱서니없는 행각을 저지하고싶었지만 딱히 어떻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어쩡쩡해있는 사이에 녀자애가 속삭이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다시 들려왔다.
“벌써 끝났어?”
“급하니까 …이걸 어쩌니.”
남자애는 죄지은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녀자애는 별로 개의치 않는듯 한결 밝은 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만 집에 돌아가자.”
“좀만 더 있으면 안돼.”
“너 계속 끝없이 칭얼대면 어쩌니? 오늘 벌써 두번이잖아. 그렇게 싫은거 왜 가? 안 가겠다고 뻗치란 말이야.”
“대학 안 갈수 없잖아. 말로는 여기서 시험칠수 있다고 해도 그게 아직은 실행단계에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더라.”
락담한 남자애는 주절주절 두서없이 말했다.
“너도 명년이면 고향에 돌아가 공부할테지.”
“아마 그러겠지.”
두사람의 목소리가 오던 길로 멀어지더니 나중에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가 가까와오는 시점이였다. 생물체로서의 인체가 가장 취약한 시간대였다.

선웅이는 하품을 길게 하면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더이상 낚시질할 흥취가 없어졌다. 낚시대를 거두며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선웅이는 개떡같은 인생이라도 찰떡같이 살아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동녘이 바야흐로 희게 기지개를 켜는지 주변 물체들이 흐릿하게나마 어른거렸다.

선웅이는 짐을 지고 일어섰다. 후레쉬를 켜려다가 괜히 단잠을 자는 로인을 깨울가봐 한발짝한발짝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미처 다가가기도전에 로인이 서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먼저 눈에 띄였다. 어느새 로인도 깨여있었다. 그리고 선웅이가 다가오고있는것도 벌써 눈치채고있었다.

“집에 돌아가시오?”
로인은 뒤돌아도 보지 않은채 말을 걸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로인은 고기망태를 들어 그속에 든 고기를 그대로 호수에 다시 방류하고있었다.
“아, 고기를 그대로 놓아주네요.”
“암, 손맛을 즐겼으면 그만 족하우. 고기는 고기대로 살아야겠지.”
로인은 여전히 온화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그러는 로인뒤로 선웅이는 지나치면서 아마 이 평생 다시는 낚시질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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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허창렬
날자:2015-06-28 22:26:12
장형의 블로그에 들려야 그래도 글다운 글을 읽을수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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