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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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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향이의 맞선
2017년 05월 23일 19시 03분  조회:763  추천:1  작성자: 장학규
 
단편소설
 
향이의 맞선
 
 
 
향이는 눈 오는 길을 질척질척 걸었다. 올들어 처음 오는 눈이다. 눈은 내리면서 그녀의 마음처럼 녹고있었다. 
올 겨울은 참 유별나다. 살얼음이 새벽에 좀 생겼는가싶다가도 거퍼 점심전에 녹아 없어지는것도 그렇고 시도때도 없이 비가 실실 내리는것도 그렇고 많이 반상적이다. 왕년엔 그래도 겨울 흉내를 내느라고 손바닥 두께의 얼음이 얼기는 했었다. 그리고 하다못해 일년에 둬서너번 눈이랍시고 날리기도 했었다. 음달진 구석에는 아직 봄은 꿈도 꾸지 말라는듯 흰눈이 소복히 쌓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올해는 전혀 아니다. 어쩌다 온다는 눈이 하늘하늘 발밑에 떨어지자마자 바로 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는 인차 또 비를 뿌린다. 도대체가 말릴수 없다. 겨울인지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하늘만 보고는 전혀 판단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향이는 기쁘다. 실없이 자꾸 킬킬 웃음이 나가는것을 참을수 없다. 
엄마의 일그러진 얼굴이 캡처되여 우렷이 떠오른다. 집을 나설때 하던 엄마의 말이 새삼스럽게 귀가에서 쟁쟁거린다. 
 
“왕청 총각이라는구나. 정말 이전에 그 애 …이름 뭐더라? 건이든가 맞지? 그 애도 왕청애였지 아마?”
“몇천번 얘기했어? 왕청사람이 아니라고? 청도서 태여났단 말이야.”
“글쎄 말이다. 아무래도 니 명에 왕청이 찰거마리처럼 들어붙었는 모양이구나.”
엄마가 이렇게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반듯하게 차리고 나서면 아직도 30대로 착각하게 하는 엄마는 딸이 어느새 그 착각하는 나이에 이르렀다는 위기감에 젖어들면서 갑자기 로쇠해진듯 싶었다. 남들이 뒤에서 손가락질할가봐 좀체로 화장도 할념을 하지 않았다.
“딸을 과년시켜놓고 무슨 체면에 얼굴 분칠이냐고 욕할거잖아...”
고작 2년이였다. 2년만에 엄마는 백기투항해버렸다. 처녀 귀신이 되여도 왕청 총각은 절대 안된다며 바락바락 악을 쓰던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거퍼 1천날의 3분의 2를 조금 넘기고 더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그만 엔진이 펑크나버린것이다. 
어느날 엄마가 조용히 향이를 불렀다. 
“엄마네 뜨개 모임에 새로 흑룡강 언니 하나가 왔는데 참한 총각이 있다면서 소개해주겠다는구나.”
청도에는 다른 동네에서는 흉내도 내지 못할 희한한 모임들이 많았다. 어투와 습관이 서로 다른 동네에서 오구작작 모여와서 함께 어울릴수 있은데는 그런 모임들이 한몫 단단히 하고있었다. 처음에는 옴니암니 다투고 모순도 많았었지만 점점 청도의 날씨처럼 미지끈해지고있었다. 
“싫어.”
 
향이는 단마디에 거절해버렸다. 아직도 건이를 밀어내지 못한 향이의 마음에는 다른 남자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것이다. 
“글쎄 나도 좀 께름직하긴 하더라. 어쩌면 방정맞게도 또 왕청 총각이라니 말이다.”
엄마는 차라리 잘되였다는듯 중얼거리더니 인차 얼굴을 흐리고 난색을 지었다. 
“총각은 좀 괜찮은 모양이더라. 포장회사를 꾸린다던가? 왕청사람이면 뭐라니? 사람이 똑똑하고 돈 잘 벌면 되는거지.”
 
엄마는 우왕좌왕 말에 두서가 없었다. 웬간해서는 물러서지 않던 원칙도 저절로 마구 허물어버렸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뒤에다 붙이는것을 잊지 않았다. 
 
“아무래도 니 명에 왕청이 찰거마리처럼 들어붙었는 모양이구나.”
엄마가 왕청사람을 싫어하는 리유는 연길에서 왕청사람한테 사기를 당하면서부터였다. 세집살이하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을 2만원이면 한국로무 보내준다고 꼬셔서 그 돈을 가로채서 도망간 사람이 바로 왕청 출신이였던것이다. 엄마는 5년동안 고리대금 본전에 리자를 갚으면서 어느 하루 이를 갈지 않은 날이 없었다. 피난민처럼 한밤중에 이불짐을 꿍져지고 연길을 도망나온 엄마는 평생을 두고 그 아픔을 잊지 못할듯싶었다. 물론 아버지는 곁불에 매일매일 들볶이군 했었다. 그 왕청사람을 집에 끌어들인 사람이 다름 아닌 아버지였기때문이였다.
 
“이젠 니 나이도 서른이다. 사람 좋으면 되잖아. 왕청사람도 알고보면 좋은 사람이 더 많더라. 우리가 딱 나쁜 왕청사람 만나서 그렇지. 그리고 그 언니한테 둘이 한번 만나게는 하겠다고 언질을 주었다.”
 
향이는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엄마가 성격적으로 강세적이여서인지 향이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종래로 엄마와 정면으로 대든적이 없었다. 엄마 역린을 건드려서 결코 좋은 일이 없다. 자칫 일년내내 들들 들볶이면서 지청구를 들어야 한다. 만나라고 하면 만나면 무난하다. 
 
그래서 향이는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로 나갔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거나 얼굴이 스르르 붉어지는 그런 스릴은 느낄수 없었다. 남자만 봐도 쥐구멍을 찾게 되는 그런 나이는 이미 지나가있었다. 그보다도 남자란 동물에 감흥 자체가 사라져버린것이다.
 
눈 오는 겨울날이였다. 눈은 내리면서 비물처럼 흐르고있었다. 요즘 겨울은 칼라가 선명하지 않다. 
향이는 질척이는 거리에서 블랙션 커피숍을 마주하고 섰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바엔 들어가긴 들어가야겠는데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맞선 장소를 이런곳으로 선택했는지 알수 없었다. 폼 한번 잡아보느라고 그런건가? 자기가 이렇게 우아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다 뭐 그런 냄새를 풍기기 위해서인가? 
 
향이는 자기도 놀랄 정도로 힝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향이는 녀자이고 또 처녀지만 커피숍같은 곳은 좀 서먹하다. 아니, 서먹하기보다는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차라리 식당같은데서 미팅하는게 더 적성에 맞다. 좋기는 소주를 깔쭉댈수 있는 장소면 많이 자유스럽다. 손삿대질이랑 하면서 인생이 어떻고 사랑이 저떻고를 재잘거릴수도 있을거 같다. 향이는 입을 오므리고 호호 하면서 낮고 천천히 얘기를 주고받는데는 습관이 잘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벌써 이렇게 진부하게 변했다는 점에 또한번 소스라치듯 놀란다. 아직 인생 시동도 제대로 걸지 못했는데 벌써 시들시들 꺼지고있는게 억울하기도 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홀안에는 오가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등불을 빌어 홀안을 한바퀴 둘러보아도 눈에 띄우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빈상에 파리만 앉았다가 가는 집인듯싶었다. 
 
이때 구석쪽에서 누군가 그녀를 향해 손짓하는게 언뜻 보였다. 아주 잠간이긴 했지만 향이는 전률하듯 몸을 흠칫 떨었다. 그때 귀가에 엄마가 언니라고 부르는 뜨개 모임의 그 흑룡강아줌마가 전화에서 하던 말소리가 들렸다. 
“커피숍에 가면 너를 한눈에 알아볼수 있는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 그대로 가면 돼.”
 
하다못해 상대의 전화번호라도 달라고 하니 아줌마는 근심걱정 붙잡아매두라는듯 달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향이는 상대가 자신을 알고있을 확률이 높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녀가 홀에 들어서기 바쁘게 누군가 손을 젓고있었다. 아직 어두운 홀안에 적응이 되지 않은 눈은 상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있었으나 어딘가 익숙한 느낌에 저도몰래 불안해지고있었다. 
 
그때 향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화면에 그녀가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또 애타게 기다리는 이름이 떠올랐다. 건이였다. 2년전에 소리없이 사라진 건이였다. 열흘동안 꼬박 미친듯이 전화했지만 줄곧 전원이 꺼진 상태로 흔적도 찾을수 없었다. 그 뒤로 향이도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언젠가는 부재중전화를 보고 련락해오리라 믿었지만 2년동안 건이는 다른 전화로도 다시 걸어오지 않았다. 철저히 잠적해버린것이다. 
 
“킬킬…”
 
향이는 눈물과 함께 터져나오는 웃음을 도무지 참을수 없다. 어쩌면 그렇게 의뭉스럽고 능청스러울수 있는지 생각만 해도 건이가 대견스럽다. 스러워 스러워 스러워를 곱씹어 내뱉어도 건이가 매파를 내세울 궁리까지 했다는건 정말로 믿을수 없었다. 그토록 마음이 여렸던 건이가 얼마나 안달이 났으면 2년동안 갈고닦아서 매파를 보냈을가 싶었다. 
 
커피숍의 희미한 구석에서 건이를 확인했을때 향이는 가슴이 미여져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건이의 마음속에 자신이 차지하고있는 분동을 알게 된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자신이 건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다시한번 절실히 느꼈기때문이였다. 여느 남자에게 마음 한번 준다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지만 그 한번 준 마음을 거둔다는것이 얼마나 더 어렵다는것을 향이는 2년이란 시간을 통해 새삼스레 다시 터득한셈이다. 
“그간 공장을 세우고 길을 닦느라 많이 바빴어.”
 
건이가 변명삼아 말했지만 향이는 고깝다거나 괘씸하다는 그런 서운함이 없었다. 건이는 썰렁한 개그를 펼칠 정도로 계산적이지 않다는것을 향이는 너무 잘 알고있었다. 
 
이 남자를 어떻게 만났던지 향이는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의 일거일동을 지금도 레코드판처럼 오차없이 기억하고있다. 
 
4년전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가 자리잡은 청도에 뿌리를 내린 향이는 우연한 기회에 월드옥타에서 조직한 차세대리더양성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였다. 화이트칼라 생활보다는 창업쪽에 더 집념하던 차에 쉽지 않게 만난 기회였다. 
 
그날도 눈이 내렸다. 그것도 펑펑 내렸다. 모두들 청도 와서 처음 보는 폭설이라고 말했다. 차가운 바다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눈꽃을 날려 제법 한겨울의 풍경을 도출하고있었다. 
 
그러나 호적문제로 부모를 떠나 멀리 동북 고향에 가서 3년간 공부하면서 대학입시를 맞았던 향이에게는 이 정도의 눈은 말그대로 눈에 차지도 않았다. 동북 겨울의 차가움과 매정함에 결코 비길수 없이 많이 누그러져있는 청도의 겨울이였다. 
 
그런데도 캠프에 참가한 원우들은 춥다고 야단이였다. 집에서 옷견지를 더 가져오지 않았다고 후회하는 친구들이 생각밖으로 많았다. 오구작작 침실에 모여앉아 카드를 치면서 수료식이 시작될 저녁시간을 기다리고있었다. 
 
유독 한사람만이 흩날리는 눈보라를 헤치면서 눈사람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건이였다. 향이가 건이의 존재를 알게 된것은 그때가 처음이였다. 건이는 특별히 잘 생긴것도 아니였다. 보통 키에 어딘가 날카로운 눈매가 돋보였다. 특히 먹물을 쏟아부은듯 짙은 눈섭이 위엄기를 더해주고있었다.
 
수료식은 열광의 도가니속에서 끝났고 향이는 어느새 많이 취해있었다. 
 
녀자가, 그것도 처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는게 말도 되지 않을법하지만 향이는 고중시절부터 가끔 취하군 했었다. 그때는 엄마가 그리우면 비슷한 애들이 모여서 독한 빼갈을 홀짝거리기가 일쑤였다. 대학때는 남자동창들한테 업혀서 숙소로 돌아간적도 많았다. 
 
한번은 졸업을 앞두고 남녀 동창 10여명이 가을놀이 캠핑을 나간적이 있었다.  캠핑 첫날밤 향이는 남자 동창들의 권유에 못이겨 죽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어떻게 쓰러졌는지 자신도 몰랐다. 아무튼 한밤중에 방뇨가 급해 뛰쳐나가 아무렇게나 숲속에 엉치를 까고 내버리고 자기 잠자리로 돌아온다는것이 그만 흐리멍텅 남자들 텐트에 기여들어가 그대로 코를 박고 잠들었다. 그러다가 가슴이 답답해 눈을 떠보니 웬 남자의 다리가 배우에 올라와있었다. 다행히 남자들도 모두 돼지처럼 뻐드러져있었다. 
 
향이는 그때 일만 생각하면 부끄러움보다는 참 다행이였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런 상황에서는 신사가 따로 없다. 하물며 술 먹은 남자는 짐승의 본질을 드러내기 마련이잖은가. 그런데도 향이는 짐승의 무리에서 용케 자신의 처녀성을 지켜낸것이다. 
 
그후부터 향이는 취해도 정신만은 도사린다. 처녀성이 중요해서만이 아니였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처녀로 남아있는 녀동창은 보호동물처럼 적었다. 향이는 그보다도 흐리멍텅하게 녀자의 첫번을 멋대가리 없는 사람한테 주고 평생을 후회할가봐 더 걱정이였다. 
 
수료식에서도 그랬다. 향이는 눈앞이 흐려왔지만 신경의 끈은 놓지 않았다. 짐작했던대로 술상에서 화끈했던 친구들은 시탐삼아 몇번 향이곁에 와서 넌지시 지껄여보았다가 여의치 않았던지 인차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향이는 시무룩히 웃으며 여유작작 와인잔을 즐겼다. 그러다가 향이가 이젠 집에 갈때가 되였다고 생각하며 비칠거리면서 일어서는데 누군가 손을 내밀어 그녀를 부축했다. 언제 나타난지 알바 없는 건이였다. 술 마실때 그를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이틑날 향이가 눈을 떠보니 자기 방이였다. 건이가 아파트단지앞까지 차로 데려다준 기억까지는 났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건이한테서 핸드폰 메시지가 벌써 들어와있었다. 아마도 원우 통신록을 뒤져서 향이의 전번을 알아낸 모양이였다. 
 
“일어났으면 점심에 해장술 한잔 할가요?”
“데이트 신청이신가요?”
“그렇게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구요.”
“저 주사가 심해요. 자칫 후회막급이예요.”
“같이 취합시다. 인생 너무 맑아도 피곤하네요.”
 
향이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주저없이 건이가 오라는 “청향관”이라는 한식당으로 찾아갔다. 2층으로 올라가니 건이는 먼저 와서 료리를 주문해놓고 기다리고있었다. 테이블에는 갓 보글보글 끓여낸 된장국이 군침을 당기고있었다. 향이는 건이에게 눈인사를 마치기 바쁘게 방약무인인듯 숟가락으로 된장국을 듬뿍 떠서 입에 넣었다. 뜨거운것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배속을 후끈 덮혀주었다. 
 
‘와, 속이 시원하다!”
건이는 말없이 시무룩히 웃기만 한다. 향이는 다시 숟가락을 집어들었다가 싱거운듯 내려놓는다. 
“여자가 꼴불견이지?”
“아니, 난 그런 니가 좋아.”
“별걸 다 좋아하고 자빠졌네. 변태냐?”
“응, 변태 맞아,”
 
둘은 금세 어색함을 털어버리고 술잔을 기울이며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학창시절 얘기도 나눴고 창업이야기도 했으며 주변의 시시껄렁한 에피소드도 털어놓았다. 왔다리 갔다리 이야기가 설왕설래하는 사이 주변손님들은 하나둘씩 가버리고 2층에는 그들만 남았다. 
 
해장술에 다시 취한다는 말이 틀림없었다. 향이는 거퍼 맥주 두병도 채 마시지 못하고 해롱해롱 취해버렸다. 엊저녁 술이 채 깨지 못한 탓이다. 향이는 점점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도 건이는 할 말이 무진장 남아있는지 정력이 뻗쳐 끝없이 중얼거렸다. 
 
향이는 희미해져오는 의식을 붙잡으려고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정신이 좀 드는듯싶었다. 그러나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으려고 변기쪽에 있는 휴지에 손을 뻗치는 순간 몸이 평형을 잃으면서 향이는 벌러덩 화장실 바닥에 넘어졌다. 머리는 어쩔새도 없이 변기통을 들이박았다.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악 소리가 터져나갔고 심한 통증이 밀물처럼 엄습해왔다. 
 
“웬일이야? 어디 많이 다쳤어?”
 
건이가 화장실로 후다닥 달려들어왔다. 무작정 뒤로 향이의 량쪽 겨드랑이에 손을 질러넣고 일으켜 세웠다. 다급한 김에 큼직한 손이 향이의 두툼한 가슴우에 얹혀진것도 모르고있었다. 향이는 허우적거리면서 건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바락바락 악을 썼다. 그럴수록 건이는 향이가 더 큰 사고를 낼가봐 그러는지 뒤에서 더욱 억세게 끌어안았고 향이는 점점 건이의 품속으로 파묻히고있었다. 향이는 더이상 발버둥치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탓인지 괴괴하고 적막한 느낌까지 주었다. 향이는 건이의 단단한 가슴이 기둥처럼 듬직했다. 거기에 소리없이 기대고있을라니 불현듯 잠들고싶다는 욕망이 간절해졌다. 빙빙 돌던 머리속도 진정이 된듯 조용해졌다. 
“자 이젠 나가자.”
건이는 향이를 끌어안은 손을 풀기 아쉬워하면서도 조용히 말했다. 귀가에 스쳐오는 건이의 숨결이 급촉했다. 
“아니, 좀만 더 있어.”
 
향이는 자극을 받은듯 부시럭거리면서 몸을 돌려 건이의 품에 다시 파고들었다. 
 
그러고보니 향이는 건이를 적잖게 알고있는상 싶었다. 차세대프로그램에 건이란 남자외에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가 눈사람을 만들었고 수료식때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고있었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그런 감각은 누가 귀띰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몸의 세포가 먼저 느끼고있는것이였다.
 
향이는 고개를 들고 건이의 얼굴을 물그러미 쳐다보았다. 잘난 얼굴은 아니였다. 그렇지만 모난 얼굴은 틀림없었다. 어딘가 고집이 어리고 포기를 잘 모르는 그런 얼굴이였다. 향이는 이런 개성적인 얼굴이 좋다. 아니, 전형적인 호인보다는 각이 선명하게 나져있는 사람이 향이는 더 좋았다. 
 
“나를 좋아했던거야?”
“응.”
“그래서 멀찌감치 나를 따라다녔어?”
“알고있었구나.”
“새침을 뗀게 아니고 나를 끝까지 챙기나 지켜봤지.”
 
향이가 손을 뻗쳐 건이의 얼굴을 만지려는 찰나 건이의 입술이 허둥지둥 덮쳐왔다. 투박하고 어설픈 건이의 손이 향이의 옷우에서 방향을 잃고 마구 헤맸다. 
 
이듬해, 그 이듬해 겨울에도 꽤나 눈이 왔다. 얼음도 손바닥 두께쯤 얼었붙었다. 바다바람은 역시 청도가 틀림없다는듯 기승을 부렸다. 아마 바람만 아니였어도 청도의 겨울은 결코 춥지가 않았을것이다. 
 
그해가 다 가는 어느날 건이는 선물을 사들고 향이네 집을 찾았다. 2년간의 열애사실을 신고하기 위해서였다. 향이의 통보를 미리 받은 부모들도 손님 접대 준비에 바빴다. 사위 마중에 장모님이 신을 거꾸로 신고 나간다는 말처럼 엄마가 더 부산을 떨었다. 그런데 첫마디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어디 사람이유?”
“청도에서 태여났습니다.”
“부모의 고향이 어딘가 말이지.”
“왕청입니다.”
 
그때 엄마의 얼굴이 금세 일그러졌다. 신경질적으로 손사래를 치더니 느닷없이 언녕 향이를 통해 알고있는 사실을 물었다. 
“지금 무슨 일하고 있소?”
“뭐 좀 해볼가고 여기저기 알아보는중입니다.”
“무직업자로 놀고있다고 하면 될 일가지고…”
 
엄마가 괜히 트집을 잡고있다는것을 향이는 대뜸 알아차렸다. 왕청이라는 지명이 엄마한테는 알레르기이고 스트레스라는것을 향이는 잘 알고있었다. 청도로 이주한지도 10년이 가까워오지만 고향에서 형성된 그 프레임에서 엄마는 시종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젊디나 젊은 사람이, 그것도 대학공부까지 한 사람이 지금까지 부모 등 쳐먹고 산다니 말이나 되우. 이 혼사 우리 동의 못하겠으니 얼른 나가우.”
 
엄마는 건이가 가져온 선물꾸레미를 통채로 문밖에 내다놓으며 무작정 건이를 쫓아냈다. 
 
엄마와의 마라톤식 전쟁은 그때로부터 시작되였다. 향이는 울며불며 사정도 해보았고 입을 악물고 단식도 해보았다. 그러나 엄마한테는 만사가 통하지 않았다. 
 
건이가 열번쨰로 엄마에게 쫓겨나던 날 둘은 “술독”이란 간이식당으로 기여들어가 깡술만 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청도의 밤거리를 정처없이 걸었다. 야심한 밤에 행인도 드물었다. 그사이 날씨가 많이 풀려있었다. 훈훈한 바람이 눈물범벅이 된 두사람의 얼굴을 어루만지고있었다. 둘은 손잡고 걷다가도 문뜩 멈춰서서 취한듯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한번 붙은 두 입술은 좀체로 떨어질념을 하지 않았다. 어눌한 건이에 비해 향이는 많이 공격적이였다. 기어코 건이의 입을 열고 혀를 깊숙히 들이밀었다. 허공에서 떠도는 건이의 손을 잡아 가슴속에 넣어주기도 했다. 향이는 이제 이 남자를 놓아주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거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우리 어디 가요. 저기 저 집에 가요.”
 
향이는 취한듯 노끈한 어조로 주절댔다. 길 건너편에 “쉼터려관”이란 간판이 손저어 부르고있었다. 
 
2년간 그들에겐 서로를 탐할수 있는 기회가 참으로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사고없이 넘겼었다. 순결을 지킨다는 그런 고루한 리유는 아니였던거 같다. 사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관념 자체를 모르고있다고 해도 무방할것이다. 향이도 특별히 그 욕구를 거절하려는 본능같은것을 가진것은 아니였다. 건이가 싫지 않았고 그가 막 충동적으로 달려들때는 몸을 열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꼭 그 대목에 가서 건이가 아니면 향이가 리유없이 제어기능을 작동한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들은 왜서 여직껏 남들이 다 하는 그것도 못하고 지내왔는지 스스로도 모르고있었다. 오늘에 와서 향이는 그러지 못한 자신을 후회하고있었다. 
 
자그마한 려관의 프론트에는 신수가 말쑥한 중늙은이가 있었다. 건이가 신분증을 더듬는 사이 중늙은이는 향이를 힐끔힐끔 건너다보고있었다. 그러건말건 향이는 수속을 끝마친 건이를 따라 룸안으로 들어갔다. 
 
절망감때문인지 건이는 험하게 향이를 다루었다. 룸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벽쪽으로 밀어부치더니 긴 키스부터 퍼부었다. 전에는 둘데가 마땅치 않아 갈팡질팡하던 손이 어느새 로련하게 변신해 스스럼없이 궤춤안으로 쑥 들어왔다. 그건 처음으로 있는 일이였다. 향이는 웃몸을 건이한테 오픈한지는 꽤나 오랬다. 그러나 하신을 침범당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사랑행위를 할때마다 허우적대던 그때의 건이가 아니였다. 당돌한데가 있었다. 향이는 저도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갔다. 건이가 하는대로 몸을 맡겨버렸다. 건이는 무대공연을 하듯 그녀의 옷을 한견지 한견지 벗겨냈다. 연후 훌쩍 들어 침대로 던져버렸다. 희미한 등불아래에서 그녀의 몸이 출렁거렸다. 건이는 야수마냥 그녀의 몸우에 덮치더니 한입에 향이의 왼쪽 젖가슴을 물었다. 
“아!”
아픔보다 짜릿한 느낌이 먼저 엄습해왔다. 
 
건이는 부지런히 애무하면서 아래몸을 움직여 그녀의 다리를 벌리려고 무등 애썼다. 향이도 어느덧 황홀한 경지에 깊이 빠져들고있었다. 머리속에 무수한 꽃보라가 터졌다가 하얗게 비여가는 느낌이였다.
 
바로 그때 출입문이 벌컥 열리면서 향이의 아버지가 한달음에 뛰여들어왔다. 손에는 야구방망이같은 물건이 들려있었다. 그뒤로 프론트의 중늙은이도 따라들어왔다. 
 
“쿵!”
미처 반응할사이도 없이 건이는 아버지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저만치에 나가 넘어졌다. 순식간에 얼굴이 피범벅이 되였다.
 
“자식이, 오늘 죽여치우고말테다!”
아버지가 사나운 짐승마냥 울부짖으면서 몽둥이를 다시 쳐드는 찰나 향이는 부끄러움도 잊은채 알몸뚱이채로 건이의 몸우에 엎어졌다. 
 
“아빠, 죽일려면 나부터 죽여요. 내가 건이를 여기까지 끌고왔어요. 이렇게 살고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빨리 죽여줘요!”
 
아버지는 라체의 딸이 민망했던지 얼굴을 외면하더니 사정없이 뺨을 후려갈겼다. 
 
“옷 입고 얼른 꺼져. 꾸물거렸다간 이 참에 죽여버릴테다.”
 
아버지는 건이에게 호통치고 프론트의 중늙은이를 끌고 나가버렸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들은 마작친구였다. 향이가 언젠가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놀음돈을 갖다준적이 있었는데 그때 향이를 알았다고 한다. 
그렇게 떠나간 건이는 다시 향이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향이를 철저히 잊으려는듯 전화를 꺼버리고 잠적하더니 얼마후에는 살던 아파트마저 팔아버리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하긴 머리가 깨진것보다 가슴속에 생긴 피멍이 더 아팠을것이다. 
 
향이는 지금껏 건이를 려관으로 끌고들어갔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기어코 그런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좀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부모를 설득했더라면 혹시 성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항상 향이를 괴롭혔다.  
 
그런데 다시는 이 세상에서 만날수 없을것만 같던 건이가 갑자기 나타난것이다. 그것도 자기가 직접 미팅을 요구하지 않고 매파를 내세워 맞선보는 형식을 취한것이다. 어쩌면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할수 있었을까?
 
건이는 아버지한테 한번 되게 맞으면서 정신이 펄쩍 들었다고 한다. 정말 자기가 무슨 체면에 향이를 허락해달라고 했던지 알수 없었다고 한다. 마땅한 일자리도 없고 벌어둔 돈도 없었다. 여느 친구들처럼 늙은 부모들의 등을 쳐먹으면서 살수는 없었다. 
얼마후 건이는 부모를 설복하여 아파트를 팔고 세집을 잡았다. 집 판 돈을 투자하여 친구 몇이서 포장회사를 설립했다. 아이템이 좋았던 관계로 회사는 설립 당해로 투자금을 회수하였고 이듬해부터 이윤이 나오기 시작했다. 
 
“며칠전에 새 아파트를 샀어. 이젠 당당하게 청혼해도 될거 같더라.”
 
건이는 향이 엄마의 반대 리유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원래 건이는 청도사람이였다. 청도에서 태여났고 청도에서 자랐다. 
 
“킬킬…”
 
향이는 집에서 안절부절 못하면서 맞선 소식을 기다릴 엄마가 떠올라 걷잡을수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가 궁금했다. 
 
“아무래도 니 명에 왕청이 찰거마리처럼 들어붙었는 모양이구나.”
 
맞선 상대가 건이란것을 알고서도 이런 말이 나올수 있을지 의문이였다. 어쨌던 엄마한테는 엄청난 난제이겠지싶다. 
 
향이는 눈 오는 길을 질척질척 걸었다. 올들어 처음 오는 눈이다. 눈은 내리면서 그녀의 마음처럼 녹고있었다. 
왕년에 비해 올 겨울 청도는 많이 따스했다. 
 
2017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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